• 최종편집 2021-04-1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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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창립된 경북 봉화의 봉화제일교회는 2년 전인 2019년에 100년을 맞아 역사적인 봉화제일교회100년사를 발행하게 되었다.

이 교회의 담임 권정호(權正鎬) 목사가 제26대 담임목사로 교회에 부임을 한 것은 1993년 3월 28일이었다.

역사의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을 한 그는 앞으로 26년 후인 2019년이 되면 100년이 된다는 사실을 미리부터 인식하고 부임을 한 그때부터 100년사를 발행할 꿈을 품은 채 목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교회가 걸어온 100년의 역사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이 허다하게 많았지만 해방 후였던 1948년 9월에 있었던 제13대 박기환 목사의 죽음에서 비롯 되었던 그 사건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기에 ‘교회사 이야기’에 가장 먼저 소개를 하게 된 것이다.

박기환 목사의 그 사건은 1948년 9월에 있었던 일이었다.

제45회 경안노회가 경북 영덕군 영덕읍교회에서 열렸을 때였다. 노회에 참석을 했던 목사와 장로 총대들이 노회를 끝낸 이튿 날은 영덕에서 20여리 떨어져 있는 강구 바다에서 뱃놀이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40여명의 노회원들이 큰 어선을 빌려 타고 강구 포구를 벗어나 강구의 등대 밖으로 나갈 때 까지는 꽤 기분이 좋았으나 뱃놀이를 하던 중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 그만 노회원들이 타고 있었던 어선이 전복이 되고 말았다. 그들 중에 헤엄을 잘 쳤던 몇 사람은 등대까지 헤엄을 쳐가서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대부분의 노회원들은 모두 익사를 하고 말았으니 강구 앞바다에서의 노회원들 익사 사건은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참 이상한 일이었다. 봉화제일교회100년사를 집필한 집필자는 당시 강구 국민학교 3학년으로 강구교회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여서 교회의 전도사님을 따라다니며 그 현장을 모두 목격할 수가 있었다. 강구 부두가에 즐비하게 누어있던 그 시신들은 보는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구교회 김전도사님은 수레에다 밥과 국, 그리고 주전자에 식수를 싣고 가서 몰려 온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대접을 하였는데 필자는 친구들과 함께 전도사님을 따라 다니며 심부름을 했던 것이다.

강구 부둣가에 몰려온 구경꾼들은 불행하게 죽은 이들을 향해 이런저런 말로 비방을 하고 있었다.

“예수쟁이들이 죽으면 천당에 가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용궁에 갔구먼.”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전도사님에게 그 말뜻이 무어냐고 물었지만 전도사님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중에 알려 줄게 하면서 그런 말은 잊어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강구 앞바다에서 희생되었던 사람들 중에 봉화제일교회 제13대 담임 박기환 목사와 그해 3월에 봉화제일교회를 사임하고 떠나갔던 제12대 장재석 목사도 함께 시신이 되어 부둣가에 누어 있었으니 당시의 심오했던 역사의 감추어진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일 수가 없다.

그 박기환 목사의 불우한 소식이 본시 성내교회라고 불렸던 봉화제일교회로 들려왔던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는 약간의 돈을 준비해서 당시 남선교회 회장이었던 박영식 집사를 먼저 강구로 내려 보냈던 것이다.

교회를 대표해서 박 집사가 강구로 왔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박기환 목사의 아들이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나 연락을 할 길이 없었다. 이튿 날은 강구에 장이 서는 날이니 하룻밤을 자고 장에 가서 우선 광목 한필과 관(棺)을 구입을 해서 시신부터 수습을 하였다. 그 때가 6,25 전이었으니 트럭을 대절하려고 했지만 엄청난 돈이 있어야 했으니 박집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박집사는 지게를 하나 구입을 하여 지게로 그 관을 나르기로 했던 것이다.

그 때가 9월 중순, 아직 여름의 더위가 가시지 않은 때여서 시신을 넣은 관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그해 4월에 교회로 부임을 해와서 불과 5개월 남짓 담임목사로 교회에 시무를 했던 박기환 목사의 시신을 그대로 외지에다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강구면 사무소를 통해 봉화군청에 전화를 해서 교회의 청년 한사람을 강구로 와 달라는 부탁을 하자 시외버스를 타고 청년 회장이 강구로 와서 이튿날 두 사람이 번갈아서 지게에다 관을 지고 박 목사의 시신을 옮겼다.

강구에서 금호들을 거쳐 영덕과 지품, 영해, 창수를 거쳐 안동으로 갔고 해가 지면 남은 광목을 몸에 두르고 노숙을 하며 영주를 지나 봉화에 도착을 해서 삼일 되는 날 봉화제일교회당에 우선 시신을 안장하고 장례식을 거행했다.

이 갸륵한 소문이 좁은 동네 봉화군 일대에 두루퍼지자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의 정성이 저렇게 지극할 수가 있는가?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를 외지에 묻어버리지 아니하고 지게에 짊어지고 280여리의 길을 걸어 지극정성으로 교회로 모셔왔으니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해!”

박기환 목사의 유해는 봉화군의 석평 2리 유록골에 안장시켰으며 그 박영식 집사는 평생동안 그의 무덤에 벌초를 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교회는 전에 없었던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교회의 남선교회와 여전도회, 그리고 청년회는 깨어서 기도하며 새벽에도 모이고 저녁에도 모이며 열심히 기도하기를 게을리 않더니 얼마 안되어 교인의 수가 일시에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그 때 교회의 모든 교우들은 하나가 되었고 함께 뭉쳐 서로 도우면서 그 어려운 때를 믿음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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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교회사 이야기-봉화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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