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6(수)
 

안동철 목사.jpg

코로나 19를 보도하는 세상 언론의 편향된 모습에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신경 끄려 했는데 요즘은 더욱더 심해지는 것 같다. 코로나 19에 조금이라도 교회가 관계있으면 ‘교회발 확진자’라 해서 자극적인 기사를 마구 쏟아낸다.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와 교회를 향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을 배설하다시피 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어떤가? 교회는 말할 것 없고, 국가 역시 하나님이 위임하신 통치권이 있는 곳이다. 특별히 그들에게는 공권력이라는 칼이 있고, 그래서 기독교인은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상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롬 13:1-7).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와 국가가 크게 갈등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다보니 교회 점검인지 단속인지 주일마다 많은 공무원들이 교회로 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끊임없이 문자가 날라 오고, 전화로 방역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이 온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아주 우호적으로 이 문제를 대처하기도 하지만, 어떤 지자체에서는 아주 강압적인 방법까지 사용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로 인해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관과 교회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회에 온 공무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교회의 법을 존중해야 한다. 법의 집행자이지만 그렇다고 점령군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를 방문할 때 존중하는 자세로 와서 교회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의 경우이겠지만 무례하고 위협적인 말로 안 그래도 울고 싶은 교회의 분노를 자아낸다. 공권력은 힘을 가졌다고 함부로 쓰는 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요즘 일부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의 일탈 행위 역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방역을 무시하여 대규모 확진자가 나온 일부 교회들, BTJ 열방센터, 대전 IEM국제학교, 광주 TCS국제학교로 인해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물론 이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비상식적 운영과 지도자들이 내뱉은 말들은 교회 내에서 사용하는 ‘기독교 용어’였고, 이로 인해 한국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코로나 19 이후 어떻게 이 민족 가운데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최근 교회 사무간사가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중 우리 교회가 정부의 방역에 잘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계속 정부의 방역지침을 잘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시청의 담당 국장이 교회를 방문하여 협조를 구했다. 이번 주 혹시 우리 교회에도 점검이 나올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런 일을 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의 불편한 생각을 잠시 접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전도가 정말 안 되는데, 이렇게라도 찾아오는 공무원들이 혹시 하나님이 보내시는 VIP가 아닌가?’, ‘비어 있는 자리에 한 명이라도 더 앉게 해서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될까?’ 너무 발칙하고 허황된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새벽 시간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중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교회에 오는 공무원들이야 위에서 명령을 받아 온 것이고, 이 분들로서는 지난 1년 동안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교회에 일하러(?) 온다면 결코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않는가?
 
이들 중에는 분명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공무원들은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교회를 한 번도 방문해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들이야 말로 VIP가 아닌가? 매년 교회가 VIP초청잔치를 위해 많은 예산을 들이는데, 찾아온 조금은 ‘불편한 VIP’를 주님의 마음으로 영접하면 어떨까? 상냥하게 맞이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며, 음료를 제공하고, 갈 때는 교회가 준비한 선물을 안겨주면 안 될까? 혹시 적대적인 마음으로 온 사람이라도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간다면 결국 이들이 다음에 VIP로 교회에 오지 않을까?
 
우리 주님께서는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피한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다(요 4장). 사마리아 여자라는, 이미 5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까지도 우리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다. 이것이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품는 것이 바로 생명의 도라 불리는 기독교의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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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장 점검 공무원을 VIP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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