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3-0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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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所聞)’의 사전적인 의미는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이다. 통용되는 용어로 가십(gossip), 데마고기(demagogy),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있지만 엄격하게는 구별되는 용어들이다. 가십은 신문·잡지에서 사생활을 흥미 위주로 다룬 기사(內幕記事)를 말하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원래 사교계 명사의 소문을 뜻하였으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에 따라 연예계, 문단, 정계 등의 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데마고기는 사실과 반대되는 선동적인 선전, 밑도 끝도 없는 인신공격으로써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불순한 의도로 유포시키는 선동적인 허위선전을 뜻한다. 유언비어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으로써 부언낭설(浮言浪說), 부언유설(浮言流說)이라고 한다. ‘세익스피어’는 “소문은 추측과 질투와 억측을 섞어서 피우는 파이프다.”라고 했다. 이런 추측과 억측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Holy gossip’이라는 말이 있다. 거룩한 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게 됨으로써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거룩한 소문이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 언론보도에 한국교회의 아름답지 못한 소문이 지면과 방송을 통해 퍼지게 됨으로써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반기독교적인 사람들이나 단체는 한국교회가 역사에 얼마나 위대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닫아버리고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한 사건을 부각시켜 교회의 위상을 국민의식에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더욱 엎드려 기도하고 거룩한 소문이 될 거룩한 사역에 힘써 거룩한 소문이 들려오게 해야 하는데 거룩한 소문은커녕 여전히 불편스러운 소문이 들려 우울하다.

 한 때 영구 시리즈가 유행했다. 평소 성질이 급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영구가 어느 날 마을버스를 탔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바로 출발하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것이었다. “왜 안 떠나는 거야?” 참다못한 영구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이 똥차 언제 떠나요?” 그 말을 들은 운전기사 아저씨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예~~~ 똥이 다 차면 떠납니다.” 이런 경우를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한다.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 침이 자기 얼굴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영어 속담에도 “Spit in the wind”라는 말이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하여 침을 뱉으면 그 침은 다시 자기 얼굴로 날아온다는 말이다. 왜 교회가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지 않는가? 누워서 침 뱉기를 하기 때문이다. 잠언 25:25절에서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여기 ‘좋은 기별’을 NIV 영어성경에 ‘good news'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까 ‘좋은 소문’을 전하는 사람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6일 전쟁은 세계 전쟁역사의 거울이다. 300만의 이스라엘이 1억이 넘는 아랍 연합군과의 대전을 6일 만에 승리로 이끈 전쟁사다. 이스라엘 탱크는 800대인데 아랍은 5,400대였고, 전투기도 이스라엘은 200대인데 아랍은 900대였다. 그런데 어떻게 대승을 한 것일까? 소문 하나 덕분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모세 다얀’장군은 “우리 이스라엘 군대가 신무기로 무장하였다.”고 소문을 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랍군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모세 다얀이 발표한 신무기는 전투기 같은 무기가 아니었다. “안식일 전에 이 전쟁을 끝내자.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싸우신다.”는 말로 전군을 정신적 무장 교육시킨 것이었다. 그 때 사용한 용어가 ‘Our weapon is God.’이다. 이것을 아랍에 ‘new weapon’ 소문으로 퍼트려 승리를 이끌어냈다. 좋은 소문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사의 재현이었다. 전쟁이나 일상이나 Attitude, 곧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는 희비가 된다.

 본래 소문은 좋은 소문이 있고 나쁜 소문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문을 듣고 살아간다. 나쁜 소문이나 헛소문은 더 잘 퍼지고 그래서 소문에 관련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심지어 헛된 소문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사례가 있다. 예수 믿는 성도가 명심할 것은 소문은 바람결에 지나가는 것이라는 정신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소문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 하다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여 그 소문을 인정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그 소문을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에 귀를 더 기울이려 하고 칭찬보다는 헐뜯는 것에 쾌감을 가지고, 남이 잘못하는 것을 들으면 이상한 쾌감을 느끼는 악성(惡性)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속성이다.

 탈무드의 교훈이 있다. 늙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 그 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 동정,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로, 그가 가진 것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손자가 묻자, 할아버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마음에 악한 늑대를 키우고 있는가? 착한 늑대를 키우고 있는가? 다시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내 안에 good news, 좋은 소문을 담고, 그리고 “Spit in the wind”가 아니라 good news maker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다보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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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소문(ru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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