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이상규 교수.jpg

2012년 6월 5일자 부산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1951년 6월 11일 부산의 소아병원 해피 마운틴(Happy Mountain). 병원 입구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한 어린이가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목발에 의지한 아이의 오른 쪽 발은 자려나가고 없다. 병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른 모든 위대한 나라처럼, 한국의 미래는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교육과 복지에 달려 있다.’ 해피 마운틴은 소아전문병원이자 고아원이었다. 미군은 해피 마운틴을 한국최초의 소아과 병원으로 기록했다. 해피 마운틴은 그 동안 부산향토사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설로, 병원의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기사와 함께 해피 마운틴 관련 두 장의 사진이 소개되어 있었다. 미군이 주둔했던 하야리아 기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부산시 시민공원추진단이 2012년 1월 미국문서관리청(NARA)이 보관해 오던 기록 사진 400장을 입수하여 공개했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던 사진이었다.

이 기사와 사진이 흥미로웠으나 다른 분주한 일로 그냥 지나치게 되었는데 6.25 전쟁기 부산에서의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시 이 기사를 읽게 되었고, 이 무료병원의 이력을 추적하게 되었다. ‘부산지역 의료 130년사’를 쓴 정규환 신경정신과 의사는 부산지방 의료 혹은 의학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는데, 나는 연산동에 위치했던 그의 병원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에 의하면 ‘부산무료소아과 의원’(Pusan Free Pediatric Medical Clinic)은 1950년 가을 부산시 서구 아미동의 제2병참기지 사령부 소속 ‘행복산 육아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2병참기지 사령부 소속인 메컨 대위가 전재 고아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행복산 육아원 일부를 의무실로 만들어 운영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행복산을 미군은 ‘해피 마운틴’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 작은 시작이 1951년 3월에는 재 부산 메소닉 클럽의 원조로 메소닉 클럽과 합동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소아과병원으로 확장되었고, 이때부터 ‘부산무료소아과병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 입구에는 국한문 병원이름(Pusan Free Pediatric Medical Clinic, 부산 무료소아과병원)을 내 걸었고, 진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고 밝히고 있다. 병원 입구 목재 담벼락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The Future of Korea, like any other Great Nation, is dependent on the Education and Welfare of its children Today.

1952년 1월에는 다시 ‘부산아동 자선 병원’으로 개칭되었고, 부산시, 경상남도 사회사연엽합회, 메소닉 클럽, 그리고 일반 유지들이 연합하여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산시 소유의 완월동 원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1953년 12월에는 사단법인을 구성했는데 중심 인물이 장기려 박사였다. 1955년 8월에는 메소닉클럽 주관 하에 기독교세계봉사회 원조로 AFAK의 자제로 부산대학교병원 구내에 100병상 규모의 원사를 건립하였다. 그러다가 1971년 1월 29일 서구 암남동 18번지, 곧 고려신학대학 맞은편의 기독교아동복리회(CCF) 회복병원과 병합하여 ‘부산아동병원’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해피 마운틴 곧 행복산 육아원에서 소아과 병원을 시작했을 대의 첫 위치가 어디일까? 아미동이라는 점만 알려져 있기에 아미동의 아름다운교회 김용로 목사를 통해 그 지역 유지들의 자문을 받아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지금 아미동의 ‘아미농악단’ 건물 있는 아미로 24번길 이라고 한다. 본래의 흔적은 사라졌으나 아픔을 치료했던 아름다운 손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면 이상규.png
<부산일보2012.6.5>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 무료 소아과 병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