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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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인들은 자식농사 잘 지은 집안은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산정현교회 원로 양덕호 장로(86세, 사모 이정일 권사)의 가족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고 양두현 장로(부인 지누두 권사)는 넷째 아들을 1928년에 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논 18282평과 밭 2681평(현 시가 약 10억원)을 그가 섬기던 공주제일감리교회에 봉헌했다.

그의 큰 아들 양재순 장로는 공주시 양의사 1호 의사로 공제의원 원장으로 70년간 진료했다. 넷째 아들 양덕호 원로장로(부산 산정현교회)는 성산 장기려 박사가 시작한 부산 청십자사회복지회 대표이사로 25년간 봉사했으며 고신 복음병원 초창기 설립시절부터 장박사의 수제자이자 양아들 같이 고 박영훈 원장과 같이 섬겨 왔다.

양 장로는 부산의대로 박영훈 원장은 경북의대 외과의사로 양대 쌍벽을 이룬 한강이남에서 수술로서는 1, 2인자로 이름을 높여 온 수제자이지만 훗날에는 장박사가 양덕호 장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여 같은 부산 산정현교회에서 장로 원로로 섬겨 왔다.

양덕호 장로의 아들은 양한광(서울의대 암센터장)은 워싱턴 포스트시즌 선정한 세계 50대 의사 중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받게 된 엘리트 명의다. 그렇게 인정받게 된 배경은 위암수술의 최고 권위이기 때문이다.

양덕호 장로는 지금도 여든까지 넘은 분이어도 부산노회에서 해마다 농·어촌의료봉사에 참여하여 전국남선교회연합회와 총회까지 의료봉사대상까지 받은 헌신의 아젠터이다.

그의 부친 양두현 장로 의사와 모친 지누두 권사는 1931년 5월에 그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기념비석을 세웠다.

필자가 아는 양덕호 원로장로 집안은 대대로 내려 온 의사집안이면서 교회를 섬겨 오면서 성가대와 성악가로 교회 음악에 지혜가 깊다. 그의 사모 역시 동아대 음대 교수로 헌신한 권사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 노인대학에 가서 노년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이 꼭 필요한 강의를 무료로 헌신해 주고 있다.

지금도 사하구 엄궁에서 노인요양병원 원장으로 진료를 하는 부지런한 의사 장로이다. 그의 부친에 대한 일화는 퍽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나이 80세에 부인과 사별하고 나서 새장가를 들어 아기를 낳았다. 바로 양덕호 장로와 동생 사이의 나이 차이는무려 56세가 넘는 동생 딸이 자라고 있다.

오빠와 동생은 누가 봐도 소녀와 할아버지 관계이지 누가 동생이라고 소개하면 “제발 웃기지 마라”고 코 웃음 친다. 양덕호 장로는 장기려 박사의 청빈사상과 이웃들에게 지금도 섬김과 봉사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장 박사는 산정현교회에서 원로로 섬겨 오다가 함석헌 옹의 정신과 김교신 선생의 스승이었던 일본 내촌(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신앙적 정신에 물들어 그만 교회를 아무 이유없이 박광선 목사 시무 당시 가정교회랍시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소위 무교회주의를 불어 짖고 있었던 김교신 선생의 함석헌 옹과의 부산 모임을 여기 저기에서 때로는 복음병원장 사택에서 혹은 교회나 결혼예식장에서 전전하며 부산 모임을 가졌지만 양덕호 장로는 교회 섬기는데만은 그의 스승 장박사에게 따라가지 아니하고 오로지 산정현교회만을 지금도 섬기고 있다. 장 박사는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성가대와 주일학교 선생으로 교회를 섬겨 왔는데 한국교회가 1980년대 교회가 부흥하면서 교회당과 기도원을 교육관 짓는데만 교회이기주의에 올인하는 것을 보고 어느날 부산 모임을 마치고 “왜 장박사님이 교회 장로이신데 교회를 떠나 이런 부산 모임을 김서민 선생과 조광조 장로와 함께 이렇게 하고 계십니까?”라고 질문하자 이와 같은 대답을 필자에게 대답하지 않는가. 그때부터 장기려 박사는 교회 장로 명칭보다 장 박사라고 부르고 다녔다. 그러니까 양덕호 장로는 신앙과 스승을 함께 양립할 수 없는 제각각 길을 걸어 온 셈이다.

다만 의사로서의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본받아 섬김과 봉사 정신만은 계승한 것으로 여겨왔다. 지금도 가정교회 한답시고 형태의 무교회주의를 선호하는 한국교회 ‘가나안’ 성도가 있는 것은 대부분 의사, 교사 등 지식층 계통에 속하는 엘리트인들이 대부분이다. 함석헌 옹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여 깨어있어라”라며 세례 요한처럼 사상계에 기고한 글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였으며 재야 인사로 전환하여 유신독재 타도 국민회의는 가담하여 옥살이를 했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도 따랐던 장박사는 함석헌 옹의 범재야운동권과 반정부운동에는 가담도 않고 오로지 육신을 진료하는 의사를 천직으로 평생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장박사는 교단이나 교파주의는 완전 외면하고 장로교의 전통에 살아가지 않고 불쌍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작은 예수로 살다가 간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은 평소 불쌍한 이웃들을 위해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채규철 선생의 도움으로 국내 최초로 세워 주민들을 섬겨왔던 이유로 막사이상을 수상했고 장미회를 만들어 나환자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했던 것이 장박사의 대표적인 박애정신이자 살아있는 예수정신을 실천한 무소유로 살다가 낙엽과 같이 어느날 12월25일 예수 생일날 하나님이 부르신다고 우리 곁을 떠나갔었다. 그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양덕호 장로로 하여금 살아 실천하는 것이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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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호 원로장로의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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