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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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얼굴’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꽂힌다. 대면(對面)과 비대면(非對面)이라는 단어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화두가 되는 이유도 있지만 최근 돌아가는 정치판과 교계의 지도자들의 모습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임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교차 되면서 깊이 상고(詳考)하게 된다. 얼굴은 한 사람을 대표하는 그 사람의 정체를 쉽게 얼굴로 인식되고 있는 신체 부위이다. 물론 한 사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지문(指紋)이나 음성(音聲), 안구(眼球), DNA(유전인자) 같은 것으로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일상에서는 그 사람의 얼굴로 사람을 알아보고 인식하도록 학습하며 살아온 것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개’ 하면 그 사람이 얼굴이 먼저 떠오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가름하기도 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觀相)을 중요시하면서 운명까지 읽으려 하는 문헌들이 전래 되어오고 있다. 그러나 한편 관상 전문가들의 한가지 빼놓지 않는 것은 심상(心相)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링컨의 어록에는 40이 넘으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얼굴로 진솔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왜냐면 순진하게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가 손해 보가 일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하게 되어, 소위 말하는 포커페이스(poker face)로 감정을 감추면서 다른 사람의 패를 읽어가는 처세술(處世術)에 길들어지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음으로 얼굴과 관련하여 생기는 체면(體面) 문화이다.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하여 빗을 내서라도 과도한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치르는 관습, 체면 때문에 자식을 일류대학에 진학시키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들이 즐비(櫛比)하다면 심한 표현일까? 게다가 체면을 위해 자신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과하지 않는 뻔뻔함에 염치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을 철면피(鐵面皮)라고 부른다. 소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사는 것 같다는 말이다. 각종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합법을 가장하여 버젓이 고개를 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니고 있는 속물들이 이 시대의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이런 부류들을 속된 말로 안면(顔面) 몰수 하고 사는 파렴치(破廉恥)한 자들인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각종 종교단체들과 지도자들의 비리와 부도덕한 일로 공동체가 싸움터가 되고 사회 법정에까지 가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투(me too)에 걸리고도 끝까지 반성이나 회개 없이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고 우기며 피해자에게 다시 고통을 주는 지도자들도 있음에 탄식이 나온다. 이런 철면피들이 득실거리는 시대가 되었다.

성경에서는 특히 예수님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외식(外飾)하는 자라고 부르셨다. 그 당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협하며 방해하는 신분의 사람들을 바리세인들과 서기관이라고 하셨다. 그 시대에 이들은 오히려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고 누구보다 성경에 능통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만 7번이나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여기 사용된 외식이라는 단어는 [영] hypocrite[히 uJpokrithv"]의 번역인데, 원래는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서 연출하는 배우를 가리킨 것으로서 신약에만 사용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외식하며 철면피로 파렴치하게 살게 되는가? 우리 내면에 있는 죄, 아담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숨기는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우리와 대면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을 꺼리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온 절망적인 죄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로 죄인과 대면하여 만나 주신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은 감히 하나님을 대면할 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을 외면하시면서까지 그 십자가에서 우리와 대면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십자가로 가면을 벗고 연기를 멈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寶血)로 성형 수술을 받아서 진솔하게 하나님과 대면 할 수 있는 회개와 믿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시편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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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신 목사] 얼굴(안면顔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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