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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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신앙 사이에서의 갈등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강동헌 감독의 <기도하는 남자>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금전적 어려움과 이에 따른 파격적인 상상과 행동을 보여주는 바람에 화제를 모은 영화다. 금년 2월에는 극장 개봉에 성공했지만 1,661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친 것은 당초 기대에 어긋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한국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노출되었던 까닭에 적은 관객이 본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다만 6월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재조명 받으며 개척교회 목회자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그나마 의미 있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기독교 영화로서의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든지 아니면 일반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화 같으면서도 뭔가 아닌 것 같고, 일반 영화라 하기에는 교회를 배경으로 목회자의 신앙관이 영화의 줄기를 형성하는 까닭에 기독교인이 봐야 하는 영화처럼 느껴져서 교회와 세상 가운데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만 한 까닭이다.

  기독교 영화라면 어떤 갈등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가치관이 드러나야 하지만 이 영화는 갈수록 우리가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신앙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는 바람에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적 관점을 제기하여 회개와 회복을 촉구했던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과 같은 부류의 영화에 속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기도하는 남자>는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는 목적이지만 돈에 집착한 개척교회 목회자가 일으킨 파국과 왜곡된 욕망을 그린 일반 영화로 볼 수 밖에 없다. 즉 이 영화는 목사 대신 다른 어떤 종류의 직업에 속한 사람을 대입해도 비숫한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영화란 사실이다.

  태욱(박혁권)은 주일 예배 출석 성도가 5명에 불과한 개척교회 목사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기도로 감당하며 하루 하루 견뎌내지만 밀린 월세에다 장모(남기애)의 간이식 수술비용이 당장 필요한 현실은 그를 대리운전 기사로 내몰았다. 5천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밤새 대리운전을 하고 교회에 와서 잠깐 눈을 붙이는 생활을 반복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 정인(류현경) 또한 어떻게든 자신의 간을 어머니께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5천만 원은 고사하고 당장 2백만 원이 드는 검사비가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여기까지는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독교 영화 쪽으로 방향을 돌려 개척교회 목회자가 겪을 수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의 현실을 조망하고 신앙과의 갈등을 묘사하며 이것이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목회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방향으로 설정된다면 훌륭한 기독교 영화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와 목회에 대한 이해의 부족

 강동헌 감독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부족함을 안고 있다. 하나는 기독교 신앙 및 교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는 점이다. 그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어릴 때 여름성경학교에 몇 번 가본 게 교회 경험의 전부임을 밝혔고, 다만 영화감독의 삶이 개척교회 목사의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대형교회가 아닌 개척교회 목회자와 영화감독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만을 갖고 돈에 대한 유혹과 갈등을 다루었던 셈이다.

 

  그래도 영화에 나타난 개척교회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신앙의 정황에 대한 이해는 신학대학 출신의 제작부장의 도움을 받았음을 언급했다. 이것은 개척교회 목회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돈과 신앙 사이의 갈등을 목회에 대한 소명 가운데서 깊이 다루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한 가지의 부족함은 처음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데서 오는 창작에 대한 부담감이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의 가치를 비켜가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처음 극장용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관객들이 많이 찾는 영화를 만들어서 대중성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한편으로 영화의 메시지나 완결성에서 비평가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에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게 마련이다. 이때 초보 감독이 저지르는 실수는 여기저기 여러 영화의 인상 깊은 장면이나 이야기를 가져다 뒤섞는 일이다. <기도하는 남자>의 전반부는 이미 전윤수 감독의 <베사메무초>(2001)에서 본듯한 장면들이 전개되었다.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을 날리게 될 처지가 된 남편(전광열)은 개인 투자자의 아내로부터 성적 유혹을 받는 한편, 1억을 빌리는 조건으로 아내(이미숙)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대학 선배로부터 잠자리를 요구받았었다. 아이들이 줄줄이 있는 가정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가정의 부부라면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음이 분명하다.    

  <기도하는 남자>의 감독은 5천만 원을 구하기 위해 성적 유혹을 받는 대상을 목사의 아내로 설정한 대신 목사는 유혹을 넘어 범죄를 도모하는 악인의 캐릭터로 자신만의 영화적 독창성을 구현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돈 때문에 성직자가 얼마나 야비하고 비인간적인 범죄자로 변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성에 사로잡힌 목회자의 정체성

<기도하는 남자>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태욱이 대리운전을 하다 술 취한 커플을 태우게 되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신학교 후배와 그의 내연녀였던 것. 아버지로부터 대형교회를 물려받은 후배 목사 동현은 태욱을 알아보고 애들 과자라도 사주라며 돈을 더 얹어주지만 손과 달리 입은 신학교 때 잘나가고 존경스러웠던 선배가 겨우 개척교회나 하면서 대리운전이나 하고 있느냐는 모멸감 섞인 말을 내뱉는 바람에 태욱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불륜의 현장을 들킨 동현은 거액의 현금을 제안하고 태욱은 상한 자존감과 장모의 수술비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멋을 부린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태욱은 캠코더로 동현의 불륜현장을 담아 장모 수술비에 필요한 5천만 원과 맞바꾸려다 동현이 고용한 일당들에게 납치되어 얻어맞고는 속옷 차림으로 인적이 드문 길에 버려진다. 태욱은 나중에 동현에게 자신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되돌려주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문제의 발단이 된 장모를 청부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실행 직전까지 가게 된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줄거리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  spoiler)라 한다. 스포일러는 무단 복제 만큼이나 영화의 세계에서는 금지된 사항이다. 영화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서 관람을 회피하게 만드는 까닭에 예비관객이나 제작자에게 손해를 입힐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스포일러는 오히려 한국의 기독교인과 목회자들에게 어떤 영화인지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개척교회 목사로서 숨기고 살았던 감정을 토해내는 한편으로 못마땅한 일이 많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억지 웃음을 지으며 살았던 평소 볼 수 없었던 목회자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목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

기독교 영화도 아니고 작품성 높은 세상 영화도 아닌데 굳이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글을 지면에 실은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영화 속의 목회자들의 이미지는 세상이 기독교 성직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사회의 믿음을 져버리고 방역을 소홀히 여기다 확진자를 배출시킨 몇몇 교회와 목회자의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바탕을 둔 상상력이며, 영화적 상상력은 개연성, 즉 그럴듯하다고 여겨질 때 관객의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 즉 <기도하는 남자>에 등장한 두 목회자의 이미지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바탕 위에서 창작된 인물이다. 이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목사는 부자교회의 목사와 가난한 교회의 목사로 양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교회 목사는 아버지를 잘 만난 덕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지만, 가난한 교회의 목사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남의 차를 운전하는 대리기사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 생각한다.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큰 결점인 양극화 현상을 교회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는 큰 교회 목사와 작은 교회 목사 모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점이다. 대형교회 목사 동현은 성적으로 타락했고 개척교회 목사 태욱은 돈 때문에 범죄 저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동현은 선배 목사인 태욱에게 “나는 형을 동경했다”며 타락한 자신과 달리 이상적인 성직자가 한 사람쯤은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 목회자는 세상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잘못된 목회자를 등장시킨 영화는 극장 밖을 나오면 잊어버릴 수나 있지만, 코로나 19의 전염지가 되어버린 교회와 세상의 걱정거리로 남은 목회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어쩌란 말인가! 한국교회는 과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말하며 전도하는 일이 앞으로 가능하기나 할까? 영화를 보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멸망을 앞에 둔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는 생각을 한 건 지나친 비약일까? 성경이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유는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창18:32).

 

강진구 교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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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은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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