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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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기 부산을 방문했된 전도자이자 구호사회가는 로버트 윌야드 피얼스[Robert Willard Pierce, 1914-1978] 목사였다. 애칭 밥(Bob) 피얼스로 불리는 그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1950년 민간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창립한 인물인데 3년 후 한국 선명회(宣明會)라는 이름으로 한국지부가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고아들을 구호대상으로 여겼으나 곧 고아들만이 아니라 전쟁미망인, 상이군인 등 전화의 아픔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도 도움을 베풀었다.

월드비전의 창시자인은 밥 피얼스 목사는 1914년 10월 8일 아이오와주 포트 도지(Fort Dodge)에서 목수의 아들로 출생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남켈리포니아로 이사하여 나사렛교회에 다녔다. 후에는 파사데나 나사렛대학(Pasadena Nazarene College)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재학 중에 목사의 딸린 로레인과 혼인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1937년부터 1940년까지는 순회 전도자로 활동했고, 1940년에는 침례교 목사로 안수 받았다. 그 이후 십대선교회(YFC: Youth for Chris) 창립과 청소년 운동에 관여하였는데,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이 선교회 부총재였다. 1947년 집회 인도차 중국 아모이로 갔는데, 거기서 네덜란드계 미국인 여선교사 티나 홀케보어(Tena Hoelkeboer)의 초청을 받고 그가 사역하는 학교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백옥(白玉)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일로 이 소년은 집에서 쫓겨나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밥 피얼스는 그가 가진 마지막 5달러를 주면서 매달 5달러씩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평생 자매결연을 맺어주는 결연사업이 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버림받은 아이 백옥에 대한 가슴 아팠던 일을 기억하고 성경 갈피에 이렇게 써 놓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로 인하여 제 마음도 상하게 하소서!”(Let my heart be broken by(with) the things that break the heart of God).

밥 피얼스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49년 9월이었다. 이 때 서울 남대문교회에서 그 교회 담임인 김치선 목사와 함께 전도집회를 개최했다. 당시 김치선 목사는 300만 구령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이 운동의 일환이었다. 밥 피얼스는 1950년 봄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서울과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대대적인 전도 집회를 개최했다. 이때 밥 피얼스는 옥호열(Harold Voelkel)의 소개로 한경직을 만나게 된다. 그의 주선으로 남대문 옆 공터에서 대중 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그가 귀국한 후 두 달 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음을 알고 한국을 구체적으로 돕기 위해 1950년 9월 22일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월드비전’이라는 민간 구호단체를 조직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 다음 달 ‘크리스찬다이제스트’의 종군기자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전쟁 중이었음으로 민간인 신분으로 내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한한 그는 영락교회 담임목사였던 한경직 목사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특히 부산을 방문하고 피난민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과 전쟁고아들의 참상을 필름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리며, 전쟁고아들을 미국의 기독교인 가정에 연결하는 결연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 일을 지원하며 동역했던 이가 한경직 목사였다. 이렇게 되어 밥 피얼스 목사는 한경직 목사와 한마음이 되어 수많은 한국전쟁 고아들과 전쟁미망인,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 맹인, 농아, 장애자와 이들을 위한 의수족 사업, 그리고 상이군인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다.

그런데 피비얼스가 부산에 왔을 당시 부산에는 전란을 피해 300여명의 목사들이 부산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들은 집도 교회도 잃고 영적으로도 침체되어 있었다. 이들에게 영적 쇄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산에서 밥 피얼스를 강사로 첫 번째 목회자수양회가 개최된 것이다. 통역은 한경직 목사가 맡았다. 이런 목회 수양회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처럼 밥 피얼스 목사는 대중 집회를 인도하는 등 한국복음화를 위해서도 헌신하였다. 그는 진실로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부흥사이자 선교사였고 구제사업가(relief worker)이자 기독교 사회운동가였다. 전쟁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내한하여 한국교회를 섬겼다. 그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가 1975년 10월 2일이었다.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한국 복음화를 위한 그의 기여와 공적을 감사하는 예배가 그날 저녁 이화대학교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선명회’는 한국전쟁기 창립된 민간구호기간으로 큰 기여를 했는데, 1998년에는 모든 지부의 명칭을 월드비전으로 통일한다는 국제본부의 방침을 따라 한국선명회는 한국월드비전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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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 온 밥 피얼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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