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05(수)
 

김운성 목사.jpg

 예레미야는 남 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 13년부터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눈물의 예언자라 불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활동했습니다. 우선 당시 유다는 거의 몰락해가고 있었습니다. 또 그가 전한 메시지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유다는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전통적 강국인 애굽을 통해 바벨론을 견제하려는 외교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비롯한 열국을 심판하기 위해 택하신 채찍이니,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며, 그렇게 하면 반드시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바벨론을 대적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외쳤으니, 예레미야가 얼마나 미움을 받았겠습니까?

 게다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온갖 죄악을 일삼는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패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 26장 5-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접한 유다의 고관들은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아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예레미야가 죽어 마땅하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그들의 손에 있으니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서,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앙에 대해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가 죽을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온 나라가 여호야김 왕의 통치 아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거기 모인 고관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사견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기 때문에 죽일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히스기야 시대의 미가 선지자가 예루살렘을 쳐서 심판과 멸망을 예언했지만, 히스기야 왕과 당시 백성들은 미가를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히스기야 왕이 두려워서 여호와께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돌이키신 일이 있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면 오히려 자신들의 생명을 스스로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가 예레미야가 선포한 것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후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 백성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했습니다.

 예레미야 26장에는 비록 악한 시대였지만, 그 안에도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판이 기울어가는 유다 왕국을 바로 잡을 수 없었습니다. 유다 왕국은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소소의 바른 사람들의 존재 가치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들은 결과에 무관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말했습니다. 유다 왕국은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멸망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사회가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나라 전체를 바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의 위치에서 바른말을 합시다. 바른 삶을 삽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결과가 어떠하든지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주관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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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몇 사람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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