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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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뮌헨의 교훈’(Lesson of Munich)이라는 국제정치학 용어가 있다. 독재자들은 평화협정 체결을 침략전술의 하나로 이용한다는 의미이다. 대화주의자 영국 체임벌린수상은, 체코를 침공한 히틀러에게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히틀러는 즉시 응답했고,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총리, 체임벌린 영국총리 등 4개국 대표는 독일 뮌헨에 서 역사적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1938년 9월30일, 체임벌린 총리는 협정문을 흔들면서 “앞으로 유럽에서 전쟁은 없다. 우리시대의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체임벌린은 대화를 통해 유럽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6개월 후인 1939년 3월, 히틀러는 체코전역을, 9월에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뮌헨평화협정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1973년 월맹(북베트남)은 미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했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 1월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됬다. 그러나 1974년에 미군이 철수하자 월맹은 곧바로 남베트남을 침공했고, 1975년 4월30일에 대통령궁 철문을 탱크로 밀고 들어가 남베트남을 공산화했다. 파리평화협정 후 벌어진 일이다. 파리평화협정 체결 당시 미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월맹군의 말을 믿고 평화협정체결 한 것을 가장 뼈져리게 후회한다고 훗날 술회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비밀문서에 의하면, 김일성은 1950년 6.25 남침하면서 세 단계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가 38선 인근에 병력을 우선적으로 집결시키는 것, 두 번째단계가 6월7일, 평화통일호소문 발표와 동시에 남북한 총선거 제안이다. 광복 5주년을 기념하여 8월5일부터 8일까지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실시하여 최고입법기관회의를 구성하고, 8월15일에 서울에서 첫 회의를 갖자고 했다. 세 번째 단계로, 이것을 의논하느라 어수선해진 틈을 타서 남한을 기습공격을 한다는 전략이다. 김일성은 평화통일을 호소한 뒤에 무력으로 남한을 침략한 것이다. 그 역시 독재자들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처칠은 전체주의 독재자들과 물질제공 협상이나, 굴복 혹은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했다. 역사는 이를 증명했다.

 최근, 미국 트럼프대통령은 김정은과 평화를 위한 대화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도 속내로는 체제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전제로 미국과 정전협정 혹은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한다. 우리정부도 최근 북한 대화론자들을 국정원장, 통일부장관과, 국가안보실장 등으로 지명하면서 북한과 평화(정전)협정을 위한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의 유훈을 헌법상 그들의 국가이념으로 받들고 있는 김일성주의 독재국가이다. 뮌헨의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교회지도자들도 우리가 원하는 평화통일이 누구를 위한 통일이어야 하는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정부의 동향을 주시해야만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에서는 신앙의 자유도, 복음전도의 자유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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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독재자들의 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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