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홍석진 목사.jpg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에 한 장사꾼이 살았습니다. 한 날은 그가 팔던 방패를 소개하면서 하도 단단하게 만들어져 천하에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노라 했습니다. 뒤이어 같이 팔던 창 한 자루를 들고는 천하에 어떤 물건이라도 뚫지 못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구경꾼 하나가 만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중국 고전『한비자(韓非子)』에 전합니다.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는데, 모(矛)란 창이요 순(盾)이란 방패를 가리키는 한자라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모순은 일견 보기에도 또한 듣기에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나 의견이 공존하려 할 때 나타나는 비논리적 현상입니다. 모순 현상이 발생하면 특히 발화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바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물론 모순의 성질을 일부러 이용하여 자기 의견의 타당성을 극적으로 배가시키려는 기법도 존재합니다. 아이러니(irony)와 패러독스(paradox)가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라면 모순은 의견이나 주장에 아주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코로나 20’이라고 명명해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7월 8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장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통해 교회를 향한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7월 10일 18시부터 정규 예배 외 모임 · 행사 금지, 단체 식사 금지, 상시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수칙 준수를 의무화한다... 교회 내에서도 찬송 자제, 통성 기도 및 큰 소리 금지, 음식 금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의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 및 집합금지명령을 발할 수 있다.” 당장 교계는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사회적 안전을 위한 취지를 십분 공감하더라도 왜 교회만 특별한 제한과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을 거론하는 분도 있지만 취약 계층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때문에 초래되는 불이익이라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개신교에 대한 차별’이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른바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의원 10인의 발의로 다시 등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교계의 반발이 다시 격화되었습니다. “다시”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지난 2017년부터 국회 제정 법률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제정 조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다투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 몇 분은 설교를 통해 차별금지법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성도들에게도 이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차별금지법 반대’가 첫 번째 국민 청원이 되면서 벌써 10만 명 이상이 찬성 버튼을 누른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는 내용이 있을 때, 아무리 법률의 이름으로 선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법안의 이름이 ‘차별금지법’입니다. 이런 말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별금지법은 반대한다.” 두 문장은 상호 모순이 아닌가,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우스갯소리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제일학문의 공리’로 모순율을 제시하며, “어떤 것이 동시에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이 동일한 것에 동일한 관계에서 동시에 속하며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를 달고 아무리 그럴 듯한 설명을 해도, A의 부정의 부정은 A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또한 지금 교회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차별금지법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거나 타당성을 희석시킬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성경은 차별을 조장하는 책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교회가 차별을 일삼는 집단으로, 교인들이 차별주의자로 여김 받는 낙인 효과가 발생할까봐 우려됩니다. 그 어떤 때보다 성경적 지혜가 필요하며, 어젠다(agenda)의 재정비와 홍보전의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칼럼] 창과 방패 같은 차별 금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