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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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1년 1월 로마의 한 언덕 위 포도밭 주인 펠리체 데 프레디스(Felice de Fredis)는 오래된 나무를 파내려가다가 우연히 지하의 작은 방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조각상을 발견합니다. 기원전 1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작품 '라오콘 군상'이었습니다. 라오콘은 트로이의 제사장으로 호메로스에 의하면 그리스 군대가 남기고 간 거대한 목마(木馬)를 속임수라며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트로이 사람들은 라오콘의 경고를 묵살하고 목마를 전리품 삼아 성안으로 들이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그 밤, 야음을 틈타 목마 속에서 쏟아져 나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트로이는 패망에 이르렀고, 라오콘 역시 두 아들과 함께 신의 저주를 받아 바다뱀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동시대 인물이었던 플리니(Plinius the Elder, 23-79)가 남긴「박물지(Natural History)」에 언급된 라오콘 상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던 미켈란젤로(1475-1564)는 기록보다 훨씬 뛰어난 실물 앞에서 그만 할 말을 잃었다지요?

 그런데 트로이에서 목마를 경계했던 인물은 라오콘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왕의 딸이자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카산드라(Cassandra)도 목마로 인해 초래될 불길한 운명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녀 역시 망국의 공주로서 적국에 볼모로 잡혀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트로이 목마와 카산드라 이야기를 떠올린 까닭은 최근 벌어진 초유의 사건 때문입니다. 며칠 전 개성공단 내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측에 의해 폭파되었습니다(6. 16. 14:29).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으로 설치된 지 꼭 800일 만입니다. 세계를 경악에 빠뜨린 이번 폭파 사건을 주도한 인물은 북한 정권의 실질적인 이인자로 이른바 백두 혈통이라 불리는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이라고 봅니다. 사흘 전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직접 공언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체제 속에서 우뚝 솟은 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판 트로이 목마에, 폭파를 주도한 그녀를 카산드라에 비한다면 지나친 유비일까요?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해서 작성한 서사시가 바로 호메로스의「일리아드 오디세이」입니다.「일리아드」는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전사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서 전투 현장으로 끌고 다니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따라서 일리아드의 주인공은 유일한 약점이었다고 하는 발꿈치에서 유래한 아킬레스건으로도 유명한 아킬레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오디세이」는 목마를 만들어서 트로이를 혼란에 빠뜨리고 결국 무너뜨리는 주역 오디세우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10년 동안이나 전쟁만큼이나 치명적인 항해를 경험합니다. 이후로 많은 이들이 아킬레우스의 용맹을 '비에(bie)'로, 오디세우스의 지혜를 '메티스(metis)'로 부르며 비교하기를 즐겼는데, 호메로스 자신은 전자를, 로마의 베르길리우스는 후자를 높이 샀습니다. “지능과 인내를 바탕으로 하는 오디세우스의 인간적인 영웅주의가 아킬레우스의 팔팔한 영광보다 우위에 놓인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Jenny Clay) 반대의 견해들도 존재합니다(L. Freedman).

 남북관계도 그 동안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역사가 오락가락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2000년, 2007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그로 인한 결과물 특히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 등이 대표적인 오디세이적인 측면이라면, 여러 차례 시도되었던 북한의 핵실험과 핵개발 및 1999년과 2002년의 1, 2차 연평도 해전 그리고 2010년의 천안함 사건 등은 모두 대표적인 일리아드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편이 남북의 대립을 해소하고 전쟁을 종식시키며 한반도에 통일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고대 그리스 희곡에는 복잡한 갈등을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는 극적인 방식이 존재했습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신이 개입해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일리아드도 아니고 오디세이도 아니요, 인류의 문제는 또한 한반도의 문제는 오직 대주재(행 4:24; 계 6:10)만이 온전하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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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한반도 트로이 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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