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40년이란 긴 세월 속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민주화의 화염이 불 타올랐을 때는 조국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이후에 ‘한’이 맺힌 민족이었다. 60년대 보릿고개를 지내온 세대는 알 것이다. 그 놈의 정치가 무엇이길래 같은 동족끼리 6.25 사변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국군에 의해 총검으로 학살 당하고 몽둥이로 피흘려 죽어간 영혼들의 피 맺힌 한이 40년이 지난 기념식에서 문대통령은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한다면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다”고 옛 전남도청 앞에서 헬기 사격의 발포 명령자의 규명과 진실과 은폐 조작 의혹 같은 국가 폭력의 진상을 아직까지 밝혀 내지 못하였단 말인가?
“세월은 흘려가도 산천은 안다”란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그 진실 앞에 우리는 멈춰있구나라는 생각을 필자는 지울 수가 없다.
1980년 5월은 그 다음 해에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가장 보수 교단의 보루라 하는 고신대 재학생(문부식 신학과, 김은숙 기독교교육과, 이미숙 의대) 학생들 손에 의해 “왜 주한 미군이 광주 데모 진압에 군을 파견하도록 허락 했는가?”란 반미 감정에서 부산시 중구 한복판 대청동 소재에 있는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고신대 학생이 하필 필자가 다녔던 부산 중부교회 주일학교 부장 산하에 교사가 그들이었던가?
그런데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좌우 배경과 더불어 사건의 핵심 가운데 객관화하는 팩트가 진실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왜 40년이 넘도록 역사의 진실은 밝혀 지지 않고 의혹과 의심스런 말들만 무성할까?
▲1980년의 광주 5.18 관련 미국정부가 40년 만에 기밀 문서 해제로 밝혀진 내용
당시 서울의 미국 대사관이 본국 정부에 보고한 전문 내용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이 밝혀져 일반 언론 방송사들은 핵심 내용을 보도조차 안하고 있는 실정이 현 대한민국 언론의 현 주소이다.
▲“당시 군부의 폭압적인 진압 때문에 시민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고 밝혀져
당시 계엄군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폭동을 진압해서 진정 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놀라운 것은 광주 5.18 폭동은 김대중 추종자와 북한 간첩들에 의해 professoionally하게 선동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인 무슨 민주화운동 같은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미국정부가 절묘한 Timing을 골라 5.18의 날 직전에 공개한 저의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5.18이라고 하면 추상적인 것 말고 현실적인 것은 광주로 파견된 군인들이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하는데 대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고 21일 오전 8시경 군인 진압군이 온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대학생들이 완전 무장하여 매복해 있다가 14대의 군 지프차를 탈취하고 바로 군수창이었던 아세아 자동차 공장에 가서 탱크 4대와 374대의 트럭을 탈취하여 바로 전남 내에 있는 17개시 군의 무기고로 가서 무기, TNT를 가지고 나와 22일 광주 교도소에 있는 흉악범과 간첩들로 하여금 사회를 혼란시키기 위해 6번씩이나 교도소를 습격한 사실 등을 어느 청년의 유튜브 5.18 진실성을 폭로 한 사실이 사실이라면 광주 사태를 과거사 진실 규명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보수교단 지도자들은
고급호텔에서 전두환 씨를 초청해 놓고 조찬기도회를 열고 하나님께 기도 했는데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셨을까...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은 회개와 동시에 이번 광주 5.18 40주년에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한다면 용서,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발표자 한쪽에만 밝혀야 되겠는가? 모두 다 역사의 진실 앞에 마음을 비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회개와 양심에서 우러나는 참회의 기도가 앞서야 할 것이고 너 탓이 아니고 내 탓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편 통합측 총회장 김태영 목사는 이번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해서 고 문용동 전도사(당시 호남신학대 4학년, 상무대교회 전임전도사)를 추모하여 5월 20일 호남신학대학교에서 문용동 전도사에게 명예졸업장과 아울러 순직기념예배를 총회와 해당 노회 차원에서 드린다고 발표했다. 문 전도사는 당시 27세였고 5월 27일 다른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가 끝내 계엄군에 의해 총을 맞고 순직했다. 그와 함께 도청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당시 김용복씨는 도청 지하실에 있는 엄청난 양의 무기와 폭탄 TNT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을 밤새독록 하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으로 죽음을 당했는데 만일 이 엄청난 폭탄을 제거하지 아니 했더라면 수많은 희생자가 더 많이 났을 거라는 증언이 나와 의로운 죽음으로 총회가 순교자로 인정한 것이다. 광주에 있는 광주제일교회와 교우들도 이 사태를 위해 수습과 지원을 한 사실도 무시할 수없이 한국교회가 바라보는 광주 사태의 시각은 완전 두 쪽으로 허실, 그리고 아픔과 비방이라는 두개의 사실 앞에 지금도 존재하는 역사 현장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40년이란 긴 세월 속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민주화의 화염이 불 타올랐을 때는 조국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이후에 ‘한’이 맺힌 민족이었다. 60년대 보릿고개를 지내온 세대는 알 것이다. 그 놈의 정치가 무엇이길래 같은 동족끼리 6.25 사변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국군에 의해 총검으로 학살 당하고 몽둥이로 피흘려 죽어간 영혼들의 피 맺힌 한이 40년이 지난 기념식에서 문대통령은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한다면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다”고 옛 전남도청 앞에서 헬기 사격의 발포 명령자의 규명과 진실과 은폐 조작 의혹 같은 국가 폭력의 진상을 아직까지 밝혀 내지 못하였단 말인가?
“세월은 흘려가도 산천은 안다”란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하늘이 알고 땅이 알 그 진실 앞에 우리는 멈춰있구나라는 생각을 필자는 지울 수가 없다.
1980년 5월은 그 다음 해에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가장 보수 교단의 보루라 하는 고신대 재학생(문부식 신학과, 김은숙 기독교교육과, 이미숙 의대) 학생들 손에 의해 “왜 주한 미군이 광주 데모 진압에 군을 파견하도록 허락 했는가?”란 반미 감정에서 부산시 중구 한복판 대청동 소재에 있는 미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고신대 학생이 하필 필자가 다녔던 부산 중부교회 주일학교 부장 산하에 교사가 그들이었던가?
그런데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좌우 배경과 더불어 사건의 핵심 가운데 객관화하는 팩트가 진실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왜 40년이 넘도록 역사의 진실은 밝혀 지지 않고 의혹과 의심스런 말들만 무성할까?
▲1980년의 광주 5.18 관련 미국정부가 40년 만에 기밀 문서 해제로 밝혀진 내용
당시 서울의 미국 대사관이 본국 정부에 보고한 전문 내용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이 밝혀져 일반 언론 방송사들은 핵심 내용을 보도조차 안하고 있는 실정이 현 대한민국 언론의 현 주소이다.
▲“당시 군부의 폭압적인 진압 때문에 시민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고 밝혀져
당시 계엄군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폭동을 진압해서 진정 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놀라운 것은 광주 5.18 폭동은 김대중 추종자와 북한 간첩들에 의해 professoionally하게 선동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인 무슨 민주화운동 같은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미국정부가 절묘한 Timing을 골라 5.18의 날 직전에 공개한 저의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5.18이라고 하면 추상적인 것 말고 현실적인 것은 광주로 파견된 군인들이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하는데 대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고 21일 오전 8시경 군인 진압군이 온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대학생들이 완전 무장하여 매복해 있다가 14대의 군 지프차를 탈취하고 바로 군수창이었던 아세아 자동차 공장에 가서 탱크 4대와 374대의 트럭을 탈취하여 바로 전남 내에 있는 17개시 군의 무기고로 가서 무기, TNT를 가지고 나와 22일 광주 교도소에 있는 흉악범과 간첩들로 하여금 사회를 혼란시키기 위해 6번씩이나 교도소를 습격한 사실 등을 어느 청년의 유튜브 5.18 진실성을 폭로 한 사실이 사실이라면 광주 사태를 과거사 진실 규명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보수교단 지도자들은
고급호텔에서 전두환 씨를 초청해 놓고 조찬기도회를 열고 하나님께 기도 했는데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셨을까...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은 회개와 동시에 이번 광주 5.18 40주년에 “이제라도 진실을 고백한다면 용서,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발표자 한쪽에만 밝혀야 되겠는가? 모두 다 역사의 진실 앞에 마음을 비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회개와 양심에서 우러나는 참회의 기도가 앞서야 할 것이고 너 탓이 아니고 내 탓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편 통합측 총회장 김태영 목사는 이번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해서 고 문용동 전도사(당시 호남신학대 4학년, 상무대교회 전임전도사)를 추모하여 5월 20일 호남신학대학교에서 문용동 전도사에게 명예졸업장과 아울러 순직기념예배를 총회와 해당 노회 차원에서 드린다고 발표했다. 문 전도사는 당시 27세였고 5월 27일 다른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가 끝내 계엄군에 의해 총을 맞고 순직했다. 그와 함께 도청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당시 김용복씨는 도청 지하실에 있는 엄청난 양의 무기와 폭탄 TNT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을 밤새독록 하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으로 죽음을 당했는데 만일 이 엄청난 폭탄을 제거하지 아니 했더라면 수많은 희생자가 더 많이 났을 거라는 증언이 나와 의로운 죽음으로 총회가 순교자로 인정한 것이다. 광주에 있는 광주제일교회와 교우들도 이 사태를 위해 수습과 지원을 한 사실도 무시할 수없이 한국교회가 바라보는 광주 사태의 시각은 완전 두 쪽으로 허실, 그리고 아픔과 비방이라는 두개의 사실 앞에 지금도 존재하는 역사 현장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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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에 담긴 虛와 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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