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0(금)
 

안동철 목사.jpg

몇 주 전 한 지인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조용히 식사하는데, 갑자기 단체 손님이 들이 닥쳤다. 들어올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목사님, 권사님, 집사님...” 식당에는 이미 몇 명의 손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점령군들은(?) 다른 손님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순간에 소수자가 되고 말았다. 그분들의 기세에 기가 죽고, 이들의 소리는 식당에 전세를 놓은 듯 더욱 커졌다.
이윽고 음식이 들어오고, 목사님이 일어서더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거센 경상도 사투리에 큰 목소리로 말이다. 각종 수식어를 붙인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성령충만’을 말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을 대적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참 길게도 하셨다. 사람들은 목사님의 간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멘’이라는 추임새를 계속해서 넣었다.
나도 목사이지만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불편해진다. 나는 대중음식점에서 기독교인이 단체로 들이닥쳐서는 예의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좌불안석이었다. 게다가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며 기도를 할 때면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해 본다. 불교신자들이 식당에 승려들과 들이닥쳐서는 서로 합장을 하고,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하고, ‘반야심경’ 같은 불경을 외운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어떨까? 아주 불편할 것이다. 나는 공공장소에서의 기도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찰스 킴볼(Charles Kimball)은 그의 책 <종교가 사악해질 때>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신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이 이웃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종교는 이미 타락해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확신해도 된다.”
얼마 전 식당에서 기독교인들이 식사기도를 하다 신천지로 오해되어 경찰이 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경우는 기독교인들이 식당에 들어오니까 식당주인이 집안 일이 있어서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 손님 받기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 받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중식당에서 대표기도는 하지 말 것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조용히 묵상기도를 하고 식사할 것을 말이다. 정말 필요해서 기도를 해야 할 경우라면 옆의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작은 소리로, 짧게 기도할 것을 말이다.
박성철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한국교회 내 기독교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연구>라는 논문의 결론에서 로마서 12장 14-21절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타인까지도 품기 위해 노력하는 자이다.”
코로나 19 이후 기독교가 이 사회 가운데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정말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생명의 도’라 불리는 기독교가 과거에 당연히 해왔던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죽어버린 유럽의 교회들처럼 화석화의 길로 들어설 것 같은 두려움이 크다. 어항 안의 물고기처럼 사회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고‘ 이웃사랑’과 ‘섬김’(diakonia)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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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철 목사] 무례한 기독교 탈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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