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황동한 목사.jpg
한 경매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누구도 사지 않을 낡아빠진 바이올린이 경매장에 나왔습니다. 경매인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여 빨리 판매해 버리고 싶은 마음에 10달러부터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이 20달러를 불렀고, 마지막 사람이 25달러를 불렀습니다. “더 없습니까?” 아무도 25달러 이상으로 살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한 노인이 걸어 나와 그 낡은 바이올린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먼지를 털고 후후 불더니, 느슨해진 줄을 팽팽하게 조율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멋진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내에 분위기가 조용해졌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연주였는지 모릅니다. 연주가 끝나고 경매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얼마에 구매하시겠습니까?”라고 경매인이 외치자 여기저기에서 1천 달러, 2천 달러, 3천 달러.. 결국 3천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방청객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가격에 낙찰이 됩니까?”
누군가가 대답하였습니다. “그 바이올린은 잘 아는 주인의 손을 스쳐왔기 때문입니다.”
경매장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바이올린을 평가했습니까?
처음에는 외형이었고 연주한 뒤에는 소리였습니다. 그럼 그 소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바이올린을 켜는 주인공에 달려있습니다.
다시 바이올린의 기준은 무엇이라 정할 수 있을까요? 누가 바이올린을 켜느냐에 따라 바이올린의 소리는 달라집니다.
우리는 흔히 바이올린만을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진짜 기준은 바이올린 연주자입니다.
이제 이 바이올린 이야기를 두고, 함께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바이올린이 스스로 기준을 정할 때
우리들은 스스로 기준이 되려고 합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거나 자신의 경험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젊을 때 얕은 지식과 적은 경험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며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편향되었던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넓고 다양하게 말하고 볼 수 있었는데, 나의 기준에 대한 확신 때문에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지나니 우습고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외고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을까... 제아무리 비싼 바이올린이라도 연주할 수 없는 사람의 손에 있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바이올린은 누구 손에 있는지가 값어치를 결정합니다.
 
2) 내가 기준인 시대
우리는 자기중심주의에 잡혀 살아갑니다. 어렸을 때는 우리 가정의 습관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삶의 방식도 맞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는 우리 교회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찬양, 기도, 말씀 등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정해놓은 것만이 바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며 내가 고집한 삶의 방식, 내가 맞다고 생각한 교회의 모습들이 옳았을 수도 있지만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다 옳다라고 여겼던 ‘나 자신’의 기준이 무너지고 확장이 일어났습니다. 나의 생각이 변하고 나의 기준이 바뀌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다툼과 갈등으로 이어져 사회가 변질되어 갑니다.
 
3) 주인의 손에 달린 평가
요즘은 물질, 소유, 지식, 정보의 양으로 판단 기준을 삼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바이올린은 켤 줄 알아야 가치가 있는 것처럼 가진 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기준이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준은 그 사람의 자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손에 닿을 때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때 그 사람은 새롭게 변화됩니다. 나 자신이 값어치가 있다 없다고 평가하지 말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일으켜 세우신다면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도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 손에 다룸을 받아 아름다운 소리를 흘려보내는 바이올린이 되시기 바랍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목회자칼럼] ‘내가 기준이다’라고 하는 세상에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