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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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가장 미스터리한 인생을 사신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한다고들 합니다만, 바울은 한 순간에, 그것도 백 팔십 도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복음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던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님의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무렵 어떤 사람으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설득을 당하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가 뿌리치기 어려운 이들, 예컨대 부모님이나, 존경하는 스승이 그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바울은 당대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신뢰를 받았고, 유대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은 그를 특히 총애했고,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오도록 공문을 주어 파송할 정도로 기대를 걸었습니다. 예수님께 기울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신념이 더 굳어져 예수님의 적으로 살아갈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는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내신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강력하게 나타나셨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더 이상 그를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를 태양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만큼 그를 향한 사랑이 뜨거웠던 증거입니다. 이처럼 그는 처음부터 어떤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 직접 사로잡혔습니다.
그를 부르시고, 눈에 낀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게 하시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파송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신을 보낼 때마다 이 사실을 언급하곤 했습니다. 본문 디모데전서 1장 1절에서도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명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분명했습니다.
그 후의 바울의 삶은 정말 고단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까지를 보면 이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런 고단하고 위험한 삶,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삶을 살면서도 그가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절대 존재였습니다. 그 분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분이고, 그 분께서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최고의 존재이시기에 거절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머릿속에만 계신 개념이 아니라, 살아서 바울과 동행하시고, 매 순간 역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생생한 주님이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명령이었기에 그는 평생을 사도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주님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생각합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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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누구의 명령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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