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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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장르에 있어서 종교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들은 교리와 역사(사건) 그리고 인물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 제작되어 왔다. 교리는 종교가 주장하는 가치관을 드러내며, 역사는 종교가 현실사회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인물은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종교영화 속에서 이 세 가지는 균등하게 배분되기 보다는 혼재되기도 하며 영화에 따라서는 강조점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기독교영화를 예로 들자면 기독교변증영화의 성격을 갖고 있는 <신은 죽지 않았다>(2014)는 대학 신입생이 무신론자인 철학교수에 맞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교리’에 초점을 맞춘 기독교영화다. 반면 애니메이션 <켈스의 비밀>(2009)은 9세기 무렵 수도원에서 제작된 아일랜드의 국보 ‘켈스의 서(The Book of Kells)’라는 이름의 성경 제작 과정을 서사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기독교 역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를 다룬 <루터>(2003) 같은 기독교영화들은 ‘역사’와 ‘인물’ 모두에게 초점을 맞춘 ‘역사 속 인물’을 보여주었고 세실 드밀 감독의 예수의 생애를 그린 <왕중왕>(1927)이나 <십계>(1956) 같은 성서영화들은 대개 ‘역사’와 ‘인물’ 그리고 ‘교리’가 함께 스크린에 투영되어 총체적으로 기독교신앙의 면모를 드러내었다.
종교영화 가운데서 가장 최근에 제작된 <두 교황>(The Two Popes, 2019)은 철저히 인물에 초점을 맞춘 가톨릭 영화다. 2005년 교황에 오른 베네딕토 16세와 그의 뒤를 이어 2013년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선출과정과 그들의 만남가운데서 일어났던 일화들을 모았다. 영화 제작 시점에서 살아있는 전·현직 교황 두 사람의 교황선출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로 제작되어 배우가 현 교황 역을 맡아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크게 화제가 되었다.
앤서니 홉킨스(베네딕토 16세 역)와 조너선 프라이스(프란치스코 교황 역)라는 관록 있는 세계적인 배우들을 내세워 교황 역을 맡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독교 영화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을 누가 맡느냐 하는 점은 배우의 평판과 이미지 등을 두루 고려하여 신중하게 선택하듯이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 또한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에서 교황 역을 맡은 배우들은 교황이 가진 권위와 영화가 추구하는 대중적 친밀감 모두에 부응할 수 있는 성공적인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의 제작사가 넷플릭스(Netflix)란 사실은 관객의 호응도를 평가하는데 어렵게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영화들은 대부분 극장개봉이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즉 월 사용액을 지불한 넷플릭스 회원들이 TV나 컴퓨터 모니터 혹은 휴대폰으로 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제작비용이나 작품의 수준이 결코 극장상영용 영화들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으며 현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연출자나 배우들이 대거 넷플릭스의 영화제작에 나서면서 넷플릭스의 신작영화들 가운데 주요영화들은 극장상영과 인터넷 상영이라는 두 가지 상영방식을 모두 택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인터넷 영화가 과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 상영되는 영화들과 같을 수 없다는 전통을 고수하는 유수의 세계 영화제 관계자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호기심을 보다 자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19년 12월 11일에 개봉한 <두 교황>의 공식 관객 수는 27,598명이다. 현 교황이 갖고 있는 대중적 인기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는 아니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다는 인터넷 서비스의 장점은 이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을 수치로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보여주고 싶은 교황’과 ‘보고 싶은 교황’
종교영화의 연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드러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터뜨리는 충격요법이 두 번째다. 두 방법 모두 영화의 흥행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성경의 내용이나 기독교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관객의 호기심을 떨어뜨릴 것 같지만 오히려 자신의 신앙과 경험을 재확인하고 학습하려는 의도를 가진 관객들이 적지 않은 까닭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사도 바울의 로마감옥 생활을 묘사한 <바울>(2018)이 27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 관객을 모아서 흥행에 성공했는가 하면 애니메이션 <천로역정:천국을 찾아서>(2019)는 무려 3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아 역대 급 기독교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가톨릭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교황>이 개봉되기 한 달 전 로마교황청이 직접 제작에 나선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2018)가 한국의 극장에 상영되었다. 익히 잘 알려진 현 교황의 행적을 따라가며 교황의 육성이 담긴 메시지를 담은 영화지만 <두 교황> 보다 많은 39,138명의 관객을 모았다.
독일 영화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교황청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이 영화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필리핀의 재해 현장과 지중해 난민캠프 등 가난과 고통이 있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메시지를 전하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연출되었다. 고급 리무진 대신 소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축구를 좋아하고 탱고를 즐기는 서민형의 소박한 교황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로마 교황청이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교황의 모습인 셈이다.
그러나 <두 교황>은 신선한 충격을 관객에게 선사한다는 점에서 앞의 영화와는 다르다. 즉 세상이 보고 싶은 교황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 때문에 세계 각국의 추기경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를 일컫는 콘클라베(Conclave)로 시작한다. 빗장을 걸어 잠근 성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교황 선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말로만 들어왔을 뿐이다. 영화 또한 실제모습이 아닌 연출인 까닭에 콘클라베 전부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으로서는 보고 싶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2013년에 있었던 콘클라베는 종신직인 교황이 스스로 사퇴 후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새롭게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며, 또한 최초의 남반구 국가 출신이라는 ‘최초’의 수식어가 여럿 붙어있다. 영화는 이 최초를 가능하게 한 인물이 바로 전 교황이며 새로운 교황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려는 바티칸의 의지가 담겨있음을 말하고 있다.
 
교황의 회개와 변화
<두 교황>은 전·현직 교황의 미묘한 갈등이 어떻게 창조적인 계승으로 이어지며 세계를 향한 변화의 발걸음으로 도약하는 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는 베르고글리오(조너선 프라이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직을 사임하기 위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앤서니 홉킨스)를 만난다. 베르고글리오는 어떻게든 교황의 사인을 받기 위해 서류를 내밀지만 베네딕토 16세는 오히려 자신의 사임 의사를 밝히며 베르고글리오에게 교황직을 권유하기에 이른다.
“이런 난국이 있나. 내가 승낙해주지 않으면 당신은 교회에서 은퇴할 수 없고. 당신이 남기로 동의하지 않으면 난 사임할 수 없고.”
베네딕토 16세가 베르고글리오에게 교황이 되기를 권했던 이유는 그가 노쇠한 바람에 교황직을 수행할 만큼의 건강을 갖고 있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베르고글리오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황의 전통을 강화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낙태, 피임, 동성애 등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고수해왔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 교황들과 다를 바 없지만 사랑과 긍휼이라는 자세를 취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지적인 수도단체인 예수회 소속이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자를 섬겼던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은 현 교황이 과거와 다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예증인 셈이다.
또한 영화에서 두 교황이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정권이 국민과 교회를 탄압할 때 저항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과거 문제가 된 사건을 흑백장면으로 처리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써가면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교황은 무흠한 인물이 아니다. 그 역시 실수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온 과거가 있다. 그러나 교황은 회개했고 이를 영화를 통해 온 세상에 알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회개는 변화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교황 영화는 가톨릭의 홍보용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12억 명의 신자를 둔 가톨릭의 수장이 고백한 회개와 변화를 통해 현대인이 교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 영화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사실은 새해에도 변함이 없음을 기억할 일이다.
강진구 교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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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에 눈높이를 맞춘 교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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