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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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종말’(The End of Power)은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태어나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에서 주로 활동한 모이제스 나임(Moises Naim)이 쓴 책의 제목입니다. 그가 여기서 거론하는 권력과 종말이란 개념은 니코 멜레(Nicco Mele)가 얘기하는 ‘거대 권력의 종말’(The End of Big)과 유사합니다. 나임에 의하면 그 동안 진입장벽을 두고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거대 권력(macropower)은 세 가지의 혁명, 즉 장벽을 무력화시키는 양적 증가 혁명, 장벽에 구멍을 뚫는 이동 혁명, 장벽을 침식시키는 의식 혁명으로 말미암아 점차 그 힘이 약해지고 수명 또한 짧아지고 있으며 그 빈자리를 이른바 미시 권력(micropower)이 급속하게 채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때마침 「권력의 종말」 출간 이듬해인 2016년 10월 한국에서 벌어진 민주항쟁(民主抗爭)과 이어지는 대통령의 탄핵은 촛불을 든 다윗 같은 미시 권력이 골리앗과도 같은 거대 권력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닙니다. 2019년 4월 홍콩에서 통상 범죄인인도법이라 부르는 ‘송환법(送還法)’ 반대 운동으로 시작된 대규모 군중 시위는 결국 홍콩행정장관으로 하여금 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손에는 우산을 들었을 뿐인 작은 권력들이 중국을 배후에 두고 있는 홍콩 정부라고 하는 거대 권력에 맞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피해자가 속출했고 그 결과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홍콩의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궐기가 4개월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10월 들어 홍콩 당국은 ‘복면금지법’을 제정하여 시위를 압박하기 시작했지만 미수(未遂)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권력의 종말을 야기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인 IT 시대의 ‘급진적 연결성’(radical connectivity)은 그런 식으로 해서 억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남아메리카의 에콰도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역시 거대 권력의 종말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유류보조금을 폐지하여 기름값이 두 배 이상 폭등하자 운송업체가 파업을 시작했지만 대통령이 곧장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법당국이 주동자들을 체포하면서 노조는 이틀 만에 파업 중단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25% 가량을 차지하는 원주민들이 2000년과 2005년에 이어 이번에도 들고 일어나 결국 대통령이 수도를 떠나 지방으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에콰도르가 포함된 남아메리카는 특히 군부 독재와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한 혼란이 극심했던 대륙입니다. 하지만 점차 시민들의 힘인 ‘피플 파워’(people power)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독재 정권과 부패한 정부, 타락한 대기업이나 부조리한 거대 노조, 탐욕스러운 매스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설 자리는 없다는 강력한 반증입니다.
일본에서 소비세가 인상되고 수도민영화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도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경제생태계를 위협하는 조치와 평화공존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발언을 남발하는 지도자를 오히려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고 옹호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총리 관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양심들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거대 권력의 담론이 지배하는 일본 땅 군데군데 작은 권력들이 촛불처럼 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시위 당사자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이라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문득 광화문과 서초동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대상이 누구이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을 가만히 두고 보는 국민이 아닙니다. 더할 나위 없지만 그래도 하나만 더 바란다면, 관용의 정신과 존중의 태도를 겸비하여 더욱 위대해지는 작은 권력들의 나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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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권력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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