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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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목사는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한 후 외진 곳에서 하늘과 산을 벗 삼고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글을 쓰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언론사 기자가 찾아와서 이렇게 지내시는 것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목사님의 지난 세월을 터치하면서 은퇴 후 가슴에 묻어놓은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어 후학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고 싶지 않느냐고 어프로치를 했다. 먼 산을 바라보던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기자님은 은퇴목사 주제가를 아시는가?”라고 물었다. 당황한 기자 앞에서 목사님은 조용히 읊조리듯 은퇴목사 주제가라고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성도 없고,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성도는 어디가고 나 홀로 앉아서, 지난 일을 돌아보니 눈물만 흐른다.” 그리고 숨을 쉬어가면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회를 시무할 때 비가 새는 성전이었다. 이래저래 별 도리가 없어서 하늘만 바라보고 기도하여 새 성전을 지었다. 새 성전에서 교인들은 날마다 할렐루야 아멘으로 목사의 목회에 동역하고 동행했다. 아기가 이상하다면서 정신 줄이 나간 듯 한 어린 엄마에게 아이를 받아들고 기도하여 아이가 숨을 내쉬면서 울음을 터졌다. 그 아이 엄마는 나중 은퇴목사를 향해 온갖 욕을 다 하는데 앞장을 섰다. 일어설 기력이 없는 젊은 집사를 품에 안고 장자의 외편에 나오는 虛舟(빈 배)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축복한 후 자리매김을 잘 한 그 집사는 나중 그 목사를 향하여 있는 것 없는 것 다 만들어 모함하고 비방했다. 목사님은 나의 삶의 멘토이며 믿음의 아버지라고 눈물짓는 집사에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쏟아 부어 믿음으로 자라게 하여 장로가 된 후 그는 은퇴목사를 짓밟고 살아온 그 아름다운 목양의 세월을 걸레처럼 만드는데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 병든 몸으로 목양실을 찾아 치유 받고 싶다는 장로를 품에 안고 뼛속기력을 다해 기도하고 밤을 새워 중보 하여 회복된 그는 은퇴한 목사를 향하여 그게 목사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자식보다 더 애절하게 목사를 사랑하고 따르던 집사는 목사가 은퇴한 후 면전에서 온갖 치졸한 언행을 하면서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목사님은 참 목자라고 노래하던 교인들은 은퇴목사를 향한 그 숱한 모함 위증 거짓 폄훼 인격살인의 돌을 던지는 광기어린 사람들을 보면서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했다. 목사님이면 족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그 많은 교인들이 목사가 은퇴를 한 후 무슨 관계인가라면서 함께 돌을 던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주님을 향해 온갖 비방과 조롱을 쏟아낸 군중들처럼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 기막힌 상황을 겪으면서도 목사는 여전히 침묵했다. 휑하니 교회는 겨울바람을 맞은 듯 했고, 할렐루야 아멘의 소리는 훤화하는 소리에 묻혀버렸고, 그토록 아름답던 목회현장은 쓰나미를 맞은 듯 황폐해 가는 가운데서도 의인의 기도소리가 멈추지 않고 음부의 권세가 주님의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하는 진리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행보에 돌을 들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악담을 쏟아내던 사람들의 입이 닫혀지고, 온갖 조롱과 비방을 노래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아하, 아하,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라고 탄식하는 세월이 흘러갔다. 한참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던 목사님은 기자에게 한마디 독백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미워하지 못하고 사랑하면서 오늘도 살아가지. 왜? 내가 세례 베풀고 내가 기름 부어 임직을 하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사랑은 이해관계가 아닌 끝없이 주는 것이야. 그것이 <十字架의 道>야.”
그러면서 은퇴를 했으니 설교할 기회가 없는데 오늘 내 설교 한 번 들어봐요 하면서 인생이란 빈 배를 탈 때가 축복의 기회임을 말씀하셨다. 평생 목회를 하고 은퇴를 한 후 멈추어 뒤돌아보니 자신이 목회를 할 때는 언제나 만선(滿船)을 노래하듯 했는데 은퇴를 하고 나니 정작 밤을 새워 수고를 해도 잡은 고기 한 마리 없이 빈 배를 탄 베드로의 자리에 자신이 서 있음을 보았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물이란 고기를 잡는 도구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의 빈 배를 채우기 위하여 다양한 도구로 행복의 고기를 잡으려는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가 잡히지 않아 낙심한 베드로처럼 행복을 얻지 못해서 낙심하면서 스스로 삶을 비관하는 경우들이 있다. 육신의 질고로 건강치 못한 빈 배를 타고 인생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도 있다. 가난의 아픔을 안고 허기진 모습으로 삶의 빈 배를 타고, 이것저것 힘든 상황에 다양한 불편으로 아픔의 빈 배를 타고 인생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도 있다. 형 아우하면서 지내던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는 인격살인과 다를 바 없는 수모를 겪을 때,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배반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그에게 쏟아 부었던 사랑도 헛수고로 느껴지는 것이다. 다 하나같이 빈 배 탄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헛수고로 느껴질지라도 결코 헛수고가 아닌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주 안에서의 수고’다. 주님 안에서는 헛수고는 없다. 누가복음 5장에서 빈 배의 그물을 씻는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이 다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을 때 자기 의지 경험 생각 다 버리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지게 고기를 잡은 이야기가 바로 빈 배를 탈 때의 축복기회인 것이다.
다시 먼 산을 한 번 바라보신 목사님은 허허 웃으면서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축복이란 언제나 지금, 여기야”하시면서 손주보다 조금은 더 나이가 든 어린 기자의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무 말도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꾸벅 인사를 하는 기자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목사님은 한 마디 더 하셨다.
“빈 배를 타고 있을 때가 주님 만날 기회가 되고 주 안에서는 헛수고는 없어. 그래서 오늘도 나는 주님 말씀을 따라 빈 배를 타고 그물 내리러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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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인생의 빈 배를 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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