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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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현지 시간) 미국의 소위 억만장자 19명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정적인 후보군을 향해 서한을 보냈습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90세), 월트 디즈니 손녀 아비가일 디즈니(Abigail Disney, 60),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Chris Hughes, 37) 등 연령대도 다르고 경력도 다양한 이들이 공동으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할 도덕적, 윤리적, 경제적 책임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차원을 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아진 세금을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 부서진 계층사다리를 복구하기 위한 공평한 기회의 창출 같은 분야에 써 달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리투아니아 이민자 가정으로 자수성가한 엘리 브로드(Eli Broad, 87) 씨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나는 1% 부자에 속한다. 제발(please) 내 세금을 인상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67억 달러(약 7조 7,500억)로 미국 내 78위, 세계 233위에 해당합니다. 이른바 슈퍼 리치(super rich)를 넘어서 요즘은 울트라 리치(ultra rich)로 불리는 사람들의 이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6년 미국 뉴욕의 부자 40명은 주정부를 향해 증세를 자청했을 뿐 아니라 아예 ‘상위 1% 세제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스티븐 록펠러(Steven Rockefeller) 등이 내세운 주장의 취지 또한 사회간접시설과 복지자원 확충을 위해서 “우리는 책임과 능력이 있다”였습니다.
한국에는 부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금융권에서는 대략 10억에서 100억까지 순금융자산(HNW)을 보유한 이들을 슈퍼 리치, 그 이상을(UHNW) 울트라 리치로 분류합니다. KB국민은행에서 발행하는 ‘한국부자보고서’ 2018년 판에 따르면 슈퍼 리치 이상의 부자는 278,000명으로 이는 인구 대비 0.5%, 5년 사이 54% 증가한 수치입니다. 부자가 늘어나는 일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미국 상위 1%의 부가 21조 달러 증가할 동안 하위 50%의 부는 오히려 9,000억 달러가 줄었으며(FEB), 0.1%에 해당하는 초고소득층이 전체소득의 5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NBER). 수량만 다를 뿐 우리 경제도 비슷하게 체험하고 있는, 옛적에 ‘빈익빈부익부’, 지금은 ‘양극화’라 불리는 이 현상이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부자들이 앞장을 섰습니다. 자본주의 본산이라 해도 무방할 땅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자본주의 이전에 성경의 정신을 기반으로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성경의 주인이시면서 최고의 노블레스(noblesse)이기도 한 예수님은 이 땅에 몸을 두고 계시는 동안 반 세겔의 성전세(聖殿稅)를 지불하셨고(마 17:27),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인두세(人頭稅)까지도 마다하지 아니하셨습니다(막 12:17). 납세와 같은 수동적인 측면만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수만 명의 주린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소유하고 계시는 만유를 기꺼이 사용하셨습니다(오병이어). 제자들에게도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눅 12:21), 곁에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마 25:40).
이제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도 천박함을 넘어 성숙한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교회 역시 칭의(justification)와 함께 성화(sanctification)와 영화(glorification)를 함께 가르치고 추구해야 할 때입니다. 재물에 관한 하나님 나라와 청지기의 정신이 사회 저변으로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 속에서도 자신은 부자라며 보다 많은 세금을 자청하거나, 환경문제라든지 복지문제를 위해 기꺼이 거액을 기부하며,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슈퍼 리치들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물량과 수치로 인격을 규정하고 재단하기 마련인 이 세상 속에서, 더 이상 물질과 소유가 인간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나는 부자다. 그러나 너희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친다.’하신 십자가의 길 외에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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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나는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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