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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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성결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배를 만들라고 하거나 부교를 설치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단 하나였으니, 백성의 성결이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 5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성결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규례를 주셨습니다. 본문인 민수기 19장에는 부정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규례가 나옵니다. 그 중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민수기 19장 18절 앞에 보면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물건과 사람에게 뿌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정결한 사람이 부정한 사람에게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 정결케 하도록 하셨으므로, 다른 이들을 정결하게 하려면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정결해야 했습니다. 만약 공동체 전원이 부정하다면 누가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주겠습니까? 그리고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리는 사람은 본래 정결한 자였으나, 이 일로 인하여 함께 부정한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21절에서는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주는 사람은 남을 위해 자신이 부정하게 되는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결하게 하려고 자신이 부정해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부정한 죄인이지만, 예수님만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정결한 분이기 때문에 부정한 자들에게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 주실 자격이 있습니다. 만약 공동체 전원이 부정하면 그 누구도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려줄 수 없는 것이라면, 이 세상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의 의인도 없습니다.(참고, 롬 3;10) 그런데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죄가 없는 정결한 분이어서 우리에게 뿌리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기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부정에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야말로 가장 처절한 형틀로서 가장 부정한 죄인이 매달리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리신 게 아니라, 당신의 보혈을 뿌려 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보혈은 사람들의 온갖 흉악한 죄악을 씻기며 흐릅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가 나환자 계곡에서 나와서 먼발치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화면은 예수님의 손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그 피가 십자가 밑동으로 흐르고, 그 고귀한 피가 쏟아지는 빗물에 섞여 대지를 적시며 흘러내려가는 것을 차례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의 얼굴을 비추는데, 바로 그 때 나병으로 인한 그들의 문드러졌던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사야 53장 5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 덕에 우리는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정하게 되심으로 우리는 정결해졌습니다.
사순절입니다. 그 정결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우리는 살게 되었고,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결하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바라보면서 사순절을 경건하게 지내길 원합니다. 아울러 거룩하고자 하는 결단으로 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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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그 정결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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