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2018년도 트렌드 키워드 슬로건은 ‘WAG THE DOGS’” (김난도 외, 『트렌드코리아 2017』)

dog.jpg▲ 웩더독 큰 그림

1. 무술년, 황금 개의 해,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WAG THE DOGS).
 
올해 2018년은 무술년(戊戌年)이다. 무(戊)는 오행에서 흙(土)과 노랑(중앙)에 속한다. 12간지 동물 가운데 개를 뜻하는 술(戌)도 양(陽)과 흙(土)에 해당된다. 따라서 2018년 무술년은 ‘노랑(황금) 개띠의 해’로 풀이된다고 한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해마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한다. 매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2018년에는 어떤 트렌드가 한국 사회를 주도할 것인가? 『트렌드 코리아 2018』 (미래의 창)은 2018년의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WAG THE DOGS’로 선정하였다.  
왝더독은 일종의 속어로, 권력자가 어떤 불미스러운 행동이나 부정행위 등으로 인해 여론의 비난을 받을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가령 <왝더독(Wag the Dog, 1997)>이라는 영화를 보면, 선거를 앞둔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우트 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치 문제 해결사들이 이름도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포장하고 여론을 조작해 성추문을 덮는다.  
그러나 원래는 금융시장 용어로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꼬리)이 현물시장(몸통)을 좌우할 때 쓰는 경제적 의미이다. 그러나 이처럼 정치, 경제에서 쓰이는 말이 이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견된다. 곧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자주 발견되는 것이다. 가령 사은품을 본상품보다, SNS가 대중매체보다, 1인 방송이 주류 매체보다, 카드뉴스가 TV뉴스보다, 노점의 푸드트럭이 백화점 푸드코트보다, 인디레이블들이 대형 기획사보다, 인터넷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대형스타보다, 싱글 프로덕트 브랜드가 대형 종합 브랜드보다 인기를 더 끄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련의 정책은 시급 노동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하청과 협력업체의 권익을 향상시키고자 하고 있는데, 이 역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인 언더독(underdog)의 약진이 뚜렷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김난도 교수팀은 2018년의 트렌드로 ‘WAG THE DOGS’를 선정했다는 것이다(김난도 외, 8-9).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교회와 목회자 관련으로),
 
1) What’s Your ‘Small but Certain Happiness’?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수필집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이렇게 말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작지만 확실한 행복. 그렇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으며 거창하지 않다. 그런데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일상에서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회는 소확행을 위해 강소형 교회가 힘을 내야 한다.
 
2) Added Satisfaction to Value for Money: ‘Placebo Consumption’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 ‘플라시보 소비’
플라시보 효과는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들으면 가짜 약이라고 할지라도 증상이 호전되는 효과를 말한다. ‘마음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가성비에 마음을 더한 ‘가심비’는 소비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줌으로써 불안을 잠재우고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오늘날 목회자의 설교는 가심비는커녕, 협박과 심판의 메시지가 아닌가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3) Generation ‘Work-Life-Balance’ ‘워라밸’ 세대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Work-and-life balance)’의 준말이다. 개인의 원자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타인과의 관계보다 스스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중요시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직딩’이 출현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칼퇴’는 기본, 취직은 ‘퇴직 준비’와 동의어이며, 직장 생활은 더 소중한 취미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편이다.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이 신세대 직장인, ‘워라밸’ 세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교회의 미래가 밝을 것이다.
 
4) Technology of ‘Untact’ 언택트 기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무인(unmanned) 기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contact)을 지워버리고 있다. 공항에서든 패스트푸드점에서든 이제 어디를 가나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모니터 화면이다. 사람과의 접촉이 부담스러운 디지털 원주민들은 언택트 기술을 반기는 반면, 늘 대면 접촉을 하고 살았던 디지털 이주민들은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편하고 저렴하고 빠른 언택트 기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여기서도 ‘사람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잊지 말자. 이것은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5) Hide Away in Your Querencia 나만의 케렌시아
스페인어인 ‘케렌시아(Querencia)’는 ‘나만이 알고 있는 아늑한 휴식 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그냥 편하게 쉬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원래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즉, 뭔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최대한 에너지를 모으는 곳이란 뜻이다. 바쁜 일상에 지쳐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공간이 바로 ‘케렌시아’가 아닐까? 케렌시아는 공간 비즈니스와 수면 산업 등 현대인에게 필요한 신산업 분야의 발전을 예고한다. 교회가 케렌시아가 될 수 있을까? 영적인 창조의 공간으로, 고통스런 삶의 재충전 장소로서 교회가 이 시대의 케렌시아가 되지 못하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6) Everything-as-a-Service 만물의 서비스화
최근 아파트를 고를 때 시공사와 인테리어보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발레파킹은 기본이고 하우스키핑과 컨시어지 서비스, 호텔급 조식까지. 자동차를 살 때도 앞으로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니라, 내부 서비스가 더 고려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자동차가 그저 운송수단이 아니라 달리는 ‘서비스 단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은 만물의 서비스화를 더욱 앞당기는 배경이다. 물건을 사면 서비스는 공짜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 서비스는 제품의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예배라는 몸통보다 주차장부터 교회의 건물, 환경까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세상, 신앙의 본질도 흔들리고 있다.
 
7) Days of ‘Cutocracy’ 매력, 자본이 되다
매력의 ‘매(魅)’는 ‘도깨비 매’자다. 도깨비처럼 사람을 홀리는 힘에 누군들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매력은 이처럼 이성의 힘을 약화시킨다.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 ‘선택장애’에 걸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 ‘매력’이 필수다. 그냥 속수무책으로 집어 들게 만드는 라인과 카카오의 캐릭터 상품들을 생각해보라. 저항 불가. “그래, 졌다”라고 말하면서도 소비자는 행복할 뿐이다. 오늘날 교회가 목회자가 카카오의 캐릭터 상품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자본주의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은 어떻게 매력을 발휘할까?
 
8) One’s True Colors, ‘Meaning Out’ 미닝아웃
소셜네트워크의 해시태그는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을 세상에 소리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모일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슬로건의 시대’이다. 무엇을 걸치고 어떤 가방을 들고 무엇을 먹느냐가 ‘나’라는 사람을 정의한다.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소비는 투표와 마찬가지로 신념의 표를 던지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교회는 사회에 어떤 미닝아웃을 드러내야하는가? ‘생명, 평화, 정의’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교회는,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교인은, 이미 그 슬로건에 있어서 세상에 졌다.
 
9) Gig-Relationship, Alt-Family 이 관계를 다시 써보려 해
가장 가까운 가족들마저 때로는 짐으로 다가오고, 소셜네트워크의 수많은 지인들은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너무나 많은 관계의 압박 속에서 이제 사람들은 소수와 오랫동안 깊게 관계를 맺기보다 다수와 짧게 얕은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선호한다. 가장 확실한 관계 맺기라고 여겨지는 결혼조차 흔들리고 있다. 이혼은 물론이고 해혼, 졸혼이 유행하고 2040년쯤이면 결혼제도 자체가 소멸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제 관계 이후의 관계를 고민해야 할 때다. 성도 간의 관계, 목회자와 성도간의 관계, 성서는 아니 교회는 이러한 시대에 창조적 관계를 통해 여전히 사람들에게 힘이 될까?
 
10) Shouting Out Self-esteem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자세히 보라.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다. 지금처럼 자존감이 낮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흙수저를 자처하고, 끊어진 계급 사다리 앞에서 절망한다.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자기계발서들이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몽땅 차지하고 있다. 낮은 자존감은 어떻게 소비로 발현되는가?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교회의 전략이 더한층 필요한 때다. 예수는 세상의 주변인 갈릴리에서 ‘나’를 외쳤다. 자존감 있는 교회! 자존감 있는 교인!! 세상의 중심에서 주변을 외치라. 세상의 중심에서 예수를 외치라. 개도 2018년에는 소리 짖는다. “멍, 멍!”
 
2. 개 때문에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을 이겼다?
 
황금 개의 해에 개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개 때문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 경쟁자인 네안데르탈인을 이겼다는 가설 때문이다. 미국의 고인류학자인 팻 시프먼의 『침입종 인간: 인류의 번성과 미래에 대한 근원적 탐구』 (푸른숲, 2017)이 바로 그것인데, 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45억년 지구의 역사 중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지금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실 600만년 전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뒤 250만년 전 호모속이 출현한 이래 네안데르탈,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베이징 원인, 루시, 데니소바인 등 다양한 호미닌(호모과와 호모속 중간의 사람족)들이 살았다.  
특히 인간과 경쟁하다 3만년 전 사라진 ‘최후의 비인간 호미닌’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30만년 앞서 유라시아에서 진화해갔다. 네안데르탈인은 인간처럼 도구를 제작하고 불을 피울 줄 알았으며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무리 지어 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도 사냥했다. 사피엔스보다 뇌가 크고 다부진 근육을 갖춘 데다, 멸종 이전에도 한차례 빙하기를 이겨냈던 강인한 네안데르탈인은 왜 갑자기 멸종한 것일까? 
시프먼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물론 여기서 제목인 ‘침입종’은 고유종, 자생종이 아닌 원래 그 지역에 속하지 않는 종을 일컫는다. 외래종 중에서도 생태계에 미치는 침입의 영향력이 클 경우 생태학자들은 ‘침입종’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각별히 경계한다. 그러나 지구 역사상 사피엔스만큼 강력한 침입종은 없다. 시프먼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인간이 발을 들이고 나면 그 지역의 동물상(특정 지역에 사는 모든 동물)이 붕괴하고 생태계에 격변이 일어난다. 이러한 전 지구적 패턴은 지금까지 알려진 예가 없다.” 
시프먼이 이 책에서 집중한 공간은 인간이 침입종으로 처음 활동한 4만년 전 유라시아 대륙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사피엔스가 유라시아로 이동하자, 본래 이 지역의 주인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졌다. 그동안 인류학계에선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한 이유를 놓고 ‘기후변화설’과 ‘사피엔스와의 경쟁설’이 맞서왔는데, 시프먼은 이 두 가지가 배타적인 학설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이 능숙한 사냥 솜씨를 발휘하던 숲이 사라지고 평원과 툰드라가 늘어난 것에 겹쳐, 새로 이주한 사피엔스와의 먹이 경쟁이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즉 네안데르탈인들 입장에선 예전에 살던 대로 살기엔 환경이 척박해졌고, 사피엔스와 먹잇감을 나누기엔 부족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프먼은 생태적 지위가 같은 두 종은 공존할 수 없다는 ‘가우제의 법칙(Gauze’s axiom, 생활요구가 비슷한 2종류는 동일 장소에서 공존하기가 어렵고, 종간경쟁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한쪽이 다른 쪽에 의해 배제된다는 가설)’을 예로 들며,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중 어느 한쪽이 멸종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들은 왜 인간에게 밀려난 것일까?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지를 살펴보면,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들을 살해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직접 학살했다고 단정할 순 없는 것이다. 시프먼은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DNA) 분석, 세포핵 디엔에이 분석, 탄소연대측정법, 동위원소 분석 다양한 과학적 분석 기법을 종합해 네안데르탈인들의 멸종 과정을 짚어나간다.  
정리하면 이렇다. 몸집이 큰 네안데르탈인들은 생존하기 위한 에너지 필요량이 사피엔스보다 7~9%가량 더 많아 신체적 조건이 불리했다. 인간은 변화한 환경에 맞춰 식물성 먹이와 소형 동물에도 손을 대는 등 식단을 다양화했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중대형 육상동물 위주의 입맛을 고수했다. 초원지대에선 창을 손에 들고 직접 먹잇감을 찌르는 네안데르탈인들보다는 발사형 무기를 투척하는 사피엔스의 사냥 기법이 더 효율적이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의 유적지에서 동족을 잡아먹었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그만큼 생존 위기에 내몰린 이들의 절박함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프먼은 2009년 벨기에의 인류학자 미체 제르몽프레가 현생 늑대, 현생 개, 선사시대 개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를 거론하며, 늑대도 개도 아닌 중간지대 ‘늑대-개’가 3만2000년 전에 살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개의 가축화’가 신석기 시대 농부가 아니라, 구석기 시대 수렵 채집인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농작물을 기르기 시작한 9000년 전에 개의 가축화가 이뤄졌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이다. 게다가 ‘늑대-개’의 출현 시기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따라서 시프먼은 “개의 가축화가 인간이 네안데르탈인과의 먹이경쟁에서 승리하는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끌어낸다.  
인간은 바늘을 이용해 야무지게 털옷을 챙겨 입고, 위협적인 무기를 만드는 능력 외에도 ‘살아있는 도구’, 즉 가축을 ‘창조’함으로써 그들의 예민한 후각과 청각, 뛰어난 사냥 실력을 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사냥하면 사냥개의 도움을 받지 않을 때보다 획득한 사냥감이 56% 증가한다고 한다. 시프먼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동물을 처음으로 가축화한 것은 도구를 최초로 발명한 것과 맞먹는 커다란 도약이다.” 
물론,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개의 가축화와 연관 짓는 시프먼의 가설은 많은 논쟁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연대 측정기법 등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사피엔스의 실체를 놓고 더 풍성한 대화가 오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임이 틀림없다. 이것은 또한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인공지능 시대에 개의 가축화가 로봇의 인간화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2018년은 황금 개의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봇의 시작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강아지였다는 사실!

최병학 목사.JPG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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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34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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