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2-26(금)
 
‘바츠해방전쟁’ 10주년을 기념하는 고객 행사를 지난 2014년 5월 20일 NCSOFT 판교R&D 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바츠해방전쟁’에 직접 참여한 유저들과 미디어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바츠해방전쟁’ DK혈맹 총군주인 ‘아키러스’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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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화와 반복
신화(Myth)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ythos)’는 이야기를 뜻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mythology(신화학)’를 만들었을 때 그 의미는 ‘가공의 인물을 다룬 이야기’를 뜻했다. 이 말은 신화가 진실을 표현할지라도 정교한 픽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하여 신화가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비난했으며 『국가』(Republic)에서 이상적인 폴리스는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추방한다고 했던 것이다. 반면 플라톤은 비유(allegory, 어떤 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는 가르침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의 이상향인 ‘아틀란티스 이야기’나 ‘동굴의 비유’는 알레고리로 보편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가르침에 있어서 유용한 방식으로 본 것이다.
플라톤의 추방령에도 불구하고, 시인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두꺼비를 보면서 항아 이야기를, 까치를 보면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호랑이를 보면서 곶감 이야기 등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화는 그들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에 나타난 무수한 상상력이 암호처럼 현대 문화와 사상에 녹아들어 있다. 아니 우리 삶의 곳곳에 신화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양 언어권에서 요일과 달의 이름은, 곧 달력에서부터 태양계 행성 이름(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은 로마의 신 이름에서 가져왔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나 로마,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프로이트(S. Freud)가 신화를 인간 무의식의 일부로, 곧 인간 내부에 깊이 뿌리박힌 심리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공유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이나, 융(C. G. Jung)처럼 신화를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는 것 역시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그저 한 순간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J. Campbell)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종교와 철학, 예술,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에 존재한 인류의 사회 형태, 과학과 기술의 주요 발견, 잠에서 생겨나는 바로 그 꿈들은 신화라고 하는 원형적인 마술 반지에서 끓어오른다.”라는 말은 신화의 반복, 그 핵심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2. 신화와 게임; 서사학에서 게임학으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화의 반복이 온라인 게임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적인 서사학(narratology)이 게임 자체의 게임학(ludology)으로 패러다임 전환한 것이다. 또한 매체 중의 매체라고 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삶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면서 ‘인터랙티브 인간’(interactivity human)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로 표시되던 종래의 ‘지혜로운 인간’에서 ‘상호작용성’을 통한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 게임이 그 대표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임은 언제나 현실을 모방해왔고, 현실을 비틀고 재창조하면서 스스로의 영역을 확대해왔다. 현실과 가장 관련이 먼 것처럼 보이는 SF 소재의 게임이나 중세 판타지 풍의 MMORPG(Massive Multi-us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놀이 게임, RPG는 각 유저가 역할을 분담해 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RPG 중에서도 MMORPG는 온라인 상에서 여러 명이 RPG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이다.)도 현실을 은유적인 형태로 재해석해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게임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게임 속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순간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리니지2>에서 발생한 바츠해방 전쟁은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가상공간에서 얼마나 강렬한 형태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3. 바츠해방 전쟁
바츠해방 전쟁은 2004년 6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약 4년간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 발생한 인터넷 전쟁을 말한다. (독재자로 유비되는) 드래곤 나이츠(Dragon Knights: 일명 DK) 혈맹의 철권통치로 사냥터라는 생존의 터전을 봉쇄당하고 척살의 공포에 떨던 피지배계급 민중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의 민중들은 ‘바츠 연합군’을 형성하여 DK 혈맹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동맹군의 화살받이가 되어 무수히 죽어가면서 유일한 대응 방법인 인해전술로 싸웠다. 이 전쟁에 참여한 사용자는 연인원 20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마치 『일리아드』나 『삼국지』, 혹은 성경 「여호수아」와 「사사기」를 보는 듯, 바츠해방 전쟁 안에는 현실세계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신분 차별과 권력의 횡포, 혁명과 좌절, 전쟁과 독재, 사랑과 죽음, 기만과 배신, 전술과 희생, 정의와 자유, 영웅의 탄생과 죽음, 숭고한 희생과 가치, 그리고 동지애와 감격의 눈물 등 수많은 참여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한 편의 웅대한 서사시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적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2>의 내복단(저레벨 캐릭터로 내복만 겨우 걸치고 값싼 뼈 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 혁명의 상퀼로드, 즉 ‘긴바지를 입는 빈민층’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부른다. 내복단의 주류는 하루 이틀 정도 육성한 레벨 10 전후의 캐릭터이다. 이들의 공격력은 5-10 포인트-한번 공격할 때 상대가 입는 데미지-이다.)으로 가상현실을 현실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넘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동지애’라는 고귀한 가치에 연대하는, 현실보다 더 숭고하고 더 인간화된 공간으로 변모시킬 수 있음을 깨달은 다음의 내복단의 글은 감동스럽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바츠 연합군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 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혈맹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겸댕이대왕, ‘호소문-전 서버 유저들이여 궐기하라’, <리니지2> 게임 자유게시판 2004년 6월 16일.)
물론 게임의 데이터베이스 위를 이동하는 사용자들의 움직임은 가상적이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다운받은 프로그램 속의 상상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의 체험이 사용자의 인생이듯 가상공간의 체험도 사용자의 인생이 된다. 비록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아니지만 그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의 경험들은 사용자가 만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 된다. <리니지>에서 작은 혈의 군주로 있다 사소한 문제로 거대혈의 공격을 받게 되어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정식 혈전을 요청한 후 처절하게 전사한 경험이 있는 한 내복단은 이렇게 말한다. 
“혹자는 그럽니다. 이건 게임일 뿐이라고 현실과 착각하지 말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유저들이 이렇게까지 그러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온라인 게임은 가상현실의 세계입니다. (중략)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 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비록 제 자신 한 명은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어떠한 것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결국 바츠 연합군이 <리니지2>의 중추인 DK혈맹의 아덴성을 집단 지성과 공성전을 통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바츠해방 전선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혁명 성공 후 바츠 연합군이 이익을 가지고 서로 분열하면서 결국은 DK혈맹이 한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벌이게 되고, 그 틈을 타 DK혈맹이 다시 세력을 잡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간 아쉬운 전쟁이었다.
 
4. 게임, 기만인가? 혹은 해방의 도구인가?
이 시대는 발터 벤야민(W. Benjamin, 1892~1940)과 테오도르 아도르노(T. Adorno, 1903~1969)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이다. 암울했던 20세기 초 대중문화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문화산업의 근원을 추적하고, 통렬한 비판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던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대중문화가 자유를 향한 출구인가, 억압과 기만의 도구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대중매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동일한 것이 무한 반복되는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는 현대 인물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술적 복제로 현대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온 대중예술은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온 이 시대 예술의 희망인가, 대중을 기만하는 수단인가?’를 묻고 있다.
대중문화를 기만적이며 억압적이라 보는 아도르노와 대중문화의 발달된 기술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보는 베냐민의 관점은 각을 세운다.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라디오와 영화, 재즈 등에 대해 분석하며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문화산업은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허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 … 대중문화가 주는 즐거움이란 결국은 도피에 불과하며 즐김이 주는 도피는 사실상 현실의 억압과 모순에 대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대한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영화 ‘몽타주 효과’를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선사하는 해방의 가능성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아도르노가 지나치게 비관적이었다면, 베냐민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이다. 곧, 벤야민에게서는 ‘해방’인 대중문화가 아도르노에게서는 ‘기만’이 되어버렸다. 동일한 맥락에서 게임은 해방일까?, 기만일까?
<리니지2>처럼 온라인 상에서 혁명은 불가능했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의 원죄(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는) 때문이 아닐까? 성서는 그것을 정확히 지적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 ‘바츠’(로 은유되는 이 대한민국)가 해방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메시야인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믿음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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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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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2 :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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