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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2)
    열두번 세 번 사건이 발생한지 1년도 넘었습니다. 기독교보에 이를 언급한 시론도 썼습니다. 정근두목사님의 반론을 읽고 그에 대해 재반론도 썼습니다. 총회장에게 드리는 질의서에 동참도 했습니다. 이제 두 번째 관전평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편에 이어) 결론은 버킹돈 이번 열두번 세 번 사건의 결론은 25억원입니다!! 이로써 그동안 교계에 알려진 자조적인 불문율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사고치고 버틸수록 돈 많이 받는다!” 이번에는 회수 작은 것 열두 번, 큰 것 세 번, 기간 1년, 금액 25억입니다. 여기에 교세도 고려되었습니다. 교세, 기간, 횟수 등을 가지고 금액이 산정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수치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기준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 기준표를 활용해서 화해조정도 빨리 진행할 수 있습니다. 총회 산하 교회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목사 살리기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참 합의안에는 경지에 달한 유머 스킬도 보이더군요. 딱딱한 일을 하면서 그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다니 과연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합의안은 총회재판국의 선고와 같은 법적인 효력이 있음을 상호 인정한다.” 이 부분 읽다가 저 혼자서 빵 터져버렸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번에 재판국은 재판 하나마나한 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재판 다시 해라고 하면 다시 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 정치권이 간절히 원하는 그런 재판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위치에 위원회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 힘없는 재판국과 동급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위원회!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실력과 유머를 갖추고 있으니 면직을 역전시켜 25억으로 만든 거죠. 그리고 역시 결론은 버킹돈입니다! 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드디어 고신이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글의 제목처럼 되었습니다. “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제목을 조금 바꿔도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고신 드디어 기록을 세우다!” 뉴노멀의 시대에 뉴노멀을 만든 겁니다. 이제 고신 목사들의 행동반경은 파격적으로 자유로워졌습니다. 뉴노멀에 의하면 예닐곱번 정도의 목사와 여성의 밀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독신 여성의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한 두번까지는 봐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현직 총회장들과 교단의 지도자들이 교단 목사님들에게 드리는 코로나 시대의 선물입니다. 와우, 후배들이 그 덕을 톡톡히 보겠습니다! 그래도 위험은 있습니다. 과정의 공정을 외치면서 감동을 준 대통령도 부도내는 세상이니 고신도 부도의 우려는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생명은 거룩이라면서 방침을 갑자기 휙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눈치껏 자유를 누려야 할 겁니다. 자기가 성골이나 진골 등에 속해 있는지도 미리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게 타 교단 목사로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가끔 만나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그 교단만 회개하면 한국교회는 깨끗해져.” 이제는 우리가 그 교단을 추월해버렸습니다. 그 친구 만나면 이렇게 말해줄 참입니다. “김목사, 미안하다. 너그한테 배웠는데 우리가 너그 추월했다! 이해해라. 청출어람 청어람 아이가.” 빈이형 교회가 왜 이래? 권력자들은 사법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법관 탄핵을 외칩니다. 그들이 이번에 고신을 보았다면 부러워하고 존경할 겁니다. 앞으로 정치는 목사들에게 배워야겠다고 고개 숙일 겁니다. 총회장이 판결 선고 보류하는 것도 배웠고 시간 끌어서 재판부원 바꿔서 재판 다시 시키는 것도 보면서 탄복했을 겁니다. 후임 총회장들에게도 좋은 모본이 생겼습니다. 이러는 동안 세상 정치와 공통적인 원칙도 보여줬습니다. “우리 편이 정의”라는 것 말입니다. 고신 신앙의 핵심은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고 합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의미는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번에 그 허구성이 드러났으니까요. 나훈아씨의 질문이 자꾸 떠오릅니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저는 칼빈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빈이 형, 교회가 왜 이래?” 고신의 설립자이신 한상동목사님은 초량교회에서 빈손으로 훌쩍 떠나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드려봅니다. “동이 형님, 고신이 왜 이래요?” 신학생들을 형님이라고 부르시던 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아이고, 형님들, 다 알면서 왜 그래?” 네, 다 알기에 마음이 서글픕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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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0
  • (기고)고신 드디어 기준을 세우다! (1)
    열두번 세 번 사건이 발생한지 1년도 넘었습니다. 저는 기독교보에 이를 언급한 시론도 썼습니다. 정근두목사님의 반론을 읽고 거기 대한 재반론도 썼습니다. 총회장에게 드리는 질의서에 동참도 했습니다. 이제 간단한 관전평과 함께 파일을 닫으려 합니다. 목사 면직과 목사 구하기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은 슬프고 약간은 좌절감도 느낍니다. 하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전적타락을 믿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본성에서 비껴날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두번 세 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된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충격받을 건 없습니다. 그래도 이 사건을 깊이 아는 어느 장로님께 생각을 물었더니 즉시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목사 면직이지요. 지금 하는 건 목사 구하기 아닙니까.” 참고로 제가 보기에 그 장로님은 법 없어도 살 분입니다. 남에 대해 나쁜 소리 할 줄도 모르는 분입니다. 그런 분의 입에서 그런 매정한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맞습니다. 면직이 정답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정답대로 되던가요. 오답을 정답이라고 우기는 게 세상사 아닌가요. 말만 잘하면 진실도 가짜로 둔갑되고 가짜도 진실로 바뀌는 세상 아닌가요. 줄만 잘 서면, 아니 줄만 잘 잡으면 되는 세상 아닌가요. 그런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 속에 놓여 있습니다. 고신도 힘을 다해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뭐 특별한 기대를 가지지 않는 게 속 편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습니다. 원로목사가 어떻게 개입을 했고, 부목사는 어떤 일을 했고, 장로들은 어떻게 나누어졌고, 교단의 누구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재판 절차에 이런 문제가 있고.. 다들 일가견 있는 말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주변 사안들이 열두번 세 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원로목사가 그런 짓 하라고 부추겼는지. 아니면 방치를 했으니 잘못한 건지. 부목사가 좋지 않은 자료 폭로했으니 나쁜 건지. 장로들이 비협조적이라서 그런 짓을 한 건지.. 어쨌든 다른 문제들을 전면에 배치시키려고 무던 애를 썼습니다. 초점을 다른 데로 돌려서 열두번 세 번 사건이 묻히게 하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본질 흐리기 그걸 보면서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옛날 살기 힘겨웠던 시절, 어머니들 간에 빌린 돈 때문에 많이들 싸우셨습니다. 돈 내놓으라. 언제 안 준다 하더냐? 왜 약속한 날 주지 않냐?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곧 준다고 하지 않느냐? 준다 해놓고 안 주니까 이러지. 그러다가 언성이 올라갑니다. 채권자의 입에서 험한 소리라도 한 마디 나오면 채무자는 왜 욕하냐고 소리 지릅니다. 내가 언제 욕했냐고 대답합니다. 채무자는 계속해서 욕을 왜 하느냐고 소리 지릅니다. 빚을 욕으로 바꿔치기합니다. 초점을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본질 흐리기에 성공합니다. 빚진 어머니는 힘든 순간을 그렇게 넘어갑니다. 그건 안타까운 시대에 생존을 위한 기본 전술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의 본질 흐리기는 사악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상대방을 매장시키는데 활용됩니다. 특히 선거철에 많이 등장합니다. 유권자들이 자주 속아 넘어가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SNS를 활용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과대하게 비비 꼬아서 뿌려댑니다. 계속 약을 올리다 보면 상대방이 미끼를 덥석 뭅니다. 그러면 대어가 낚이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은 상대방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선수는 선수끼리 어울리니까요. 그래도 상대방의 “손님 실수”를 바라면서 줄기차게 물고 늘어집니다. 본질 아닌 것을 중심으로 열심히 싸워댑니다. TV 토론에서 무슨 고상한 정책을 말했는지는 기억에 남지도 않습니다. 생태탕인지 생떼탕인지에 대한 비웃음만 남습니다. 이번에는 서울 부산 유권자들이 속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매번 속기만 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도 다음 선거 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서로 싸우겠죠. 그게 칼빈주의 전적타락 교리와도 맞아떨어지는 거겠죠. 어쨌든 정치가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그 장로님 말씀처럼 목사 구하기에 성공했습니다. 기본 전술인 본질 흐리기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소한 문제를 큰일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게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치우친 법리 지식도 효과적으로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제 내친김에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화해조정에서 과거사위원회로 열두 번 세 번 사건의 본질은 담임목사와 여전도사의 새벽 인적이 뜸한 시간에 지하주차장의 승용차안에서 은밀한 만남 열두 번, 부인이 집을 비운 주간에 미혼인 여전도사집 안에서 일대일의 만남 세 번입니다. 아 물론 그게 정확한 숫자는 아닙니다. 들킨 게 그 숫자입니다. 어쨌든 이 은밀한 만남 외의 모든 사안들은 곁가지일 뿐입니다. 열두번 세 번 사건이 터지지 않았으면 언급도 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그러나 곁가지를 열심히 흔들어서 화해조정위원회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위원회를 만들어서 재판국 결정을 무력화시키고, 다시 재판하게 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이것은 고신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이런 류의 사건이 일어나면 담임목사는 즉시 사임 또는 면직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총회장을 비롯해서 교단 지도자들이 대거 활약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례를 창조해내었습니다. 다른 어떤 교단보다 탁월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이제 과제가 한 가지 생겼습니다. 열두번 세 번보다는 훨씬 미미한데 돈은커녕 시벌만 받은 목사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번의 진취적인 전개와 결정들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할 겁니다. 재심도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권리를 되찾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도 돈을 받아서 교회를 개척할 기회를 드려야 공정합니다. 그래야 열두번 세 번에 못 미치는데 사임한 분들의 억울함도 사라질 겁니다.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분들은 자기들의 정치 능력 부재와 뒷배경 없음을 한탄하면서 땅을 치지 않겠습니까? 고신이 그렇게 불공평하면 안 되겠죠. 이번에 교단의 발전적 조치를 이루어내신 분들이라면 그 정도는 고려해주셔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과거사위원회를 만드시라고 요청드립니다. 과거사위원회와 화해조정위원회가 앞장서서 “목사 구하기”에 지속적인 결실을 맺으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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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기고] 교회사 이야기 - 은성교회
    한양교회와 남부민교회가 하나의 교회, 은성교회로 통합이 되었고 이 교회에 저 유명한 최상식(崔相湜) 목사가 새 담임목사로 부임을 해온 것은 1974년 8월 11일이었다. 그가 교회의 조원경 장로를 통해 청빙을 받아 담임목사로 부산 은성교회로 부임을 해왔던 당시의 나이는 48세였다. 당시 최상식 목사는 삼각산에서 100일 금식 기도를 한 후여서 그랬는지 영적으로 성령이 충만하였고 변화된 사람으로 말씀에 은혜와 능력이 넘쳐 있었다. 최상식 목사가 부임을 하자 교회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새 당회장의 부임과 함께 교회는 각부 부장의 개편이 있었고 그해 말에는 당회원의 책임분담도 새롭게 되었다. 재정부장에 이건호 장로, 관리부장에 조원경 장로, 교육부장에 박근성 장로, 전도부장에 도환호 장로를 임명했다. 그러나 최상식 목사가 하나의 교회로 통합이 되었다는 은성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으나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못한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에서 새롭게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최상식 목사가 은성교회로 부임을 한 후의 첫 번째의 기도 제목은 우선 교회건축이었다. 낡은 것은 지나갔고 새롭게 되는 일 만이 그의 가슴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옛 남부민교회의 건물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현재의 교회당이 비좁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서라도 새롭게 성전을 건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새 성전 건축과 함께 은성교회의 힘은 하나의 교회로 집약이 될 것이고 아름다운 성전의 완성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뀐 1975년 1월, 최상식 목사는 새해의 표어를 전도하는 해, 교육하는 교회, 봉사하는 성도로 정하고 열심히 가르쳤다. 당회에서는 새 성전 건축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여 이미 동의를 얻었다. 마침내 1월 26일에는 건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2월 2일에 교회 앞에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최상식 목사가 부임을 하자말자 새 성전을 짓게 된 배경에는 모든 성도들의 단합된 힘이 그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최상식 목사의 목회가그냥 형식적이며 말로만 하는 목회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목회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인들을 사랑하되 진정 그 영혼을 사랑하였고 인간을 사랑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얼마나 교인들을 사랑하였는지 그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어느 날 이건호 장로의 부인 김순옥 권사가 어깨 쪽에 난 종기가 덧나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다. 구역 식구들과 함께 심장을 간 최상식 목사는 그 종기를 직접 손으로 짜주었는가 하면 급기야는 입으로 고름을 다 빨아내어 그 상처를 낫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뿐 만 아니었다. 청년들과 함께 야유회를 갔을 때의 일이었다. 청년 가운데 장원삼 집사가 그만 뱁에 물려서 위급한 지경에 처하였을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최상식 목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직접 입으로 그 독을 빨아내어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교인이든 교인이 아니든 이웃에 초상이 나면 언제나 제일 먼저 달려가서 시신에 염을 하는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 했던 것이다. 언제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교인들을 사랑했던 최상식 목사는 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목회를 했던 참으로 보기 드문 목회를 한 참으로 보기 드문 목회자였다. 최상식 목사가 주도했던 성전건축이 완성이 된 것은 1979년 8월 31일이었다. 이렇게 새 성전을 건축하고 부흥과 발전을 거듭했던 교회에서 최상식 목사가 돌연 사의를 표명했던 것이다. 그가 교회에 사의를 표한 것은 잘못된 호적 때문에 나이가 정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목사 정년 70세가 원래의 나이보다 6년이나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최목사가 떠나는 김해공항에는 믿지 않는 동네 사람들이 전송을 나왔던 것을 보면 그는 과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목회자였음을 알 수가 있다. 교회가 합동이 된 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산적한 교회에서 오직 겸손과 섬기는 자세로 일관되게 목회를 해왔던 그는 1991년 18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남은 여생을 다른 사역지에서 그 사명을 더하기 위해 은성교회를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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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5
  • [독자투고] 교회사 이야기-봉화제일교회
    1919년에 창립된 경북 봉화의 봉화제일교회는 2년 전인 2019년에 100년을 맞아 역사적인 봉화제일교회100년사를 발행하게 되었다. 이 교회의 담임 권정호(權正鎬) 목사가 제26대 담임목사로 교회에 부임을 한 것은 1993년 3월 28일이었다. 역사의 교회에 담임으로 부임을 한 그는 앞으로 26년 후인 2019년이 되면 100년이 된다는 사실을 미리부터 인식하고 부임을 한 그때부터 100년사를 발행할 꿈을 품은 채 목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교회가 걸어온 100년의 역사 가운데 크고 작은 일들이 허다하게 많았지만 해방 후였던 1948년 9월에 있었던 제13대 박기환 목사의 죽음에서 비롯 되었던 그 사건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기에 ‘교회사 이야기’에 가장 먼저 소개를 하게 된 것이다. 박기환 목사의 그 사건은 1948년 9월에 있었던 일이었다. 제45회 경안노회가 경북 영덕군 영덕읍교회에서 열렸을 때였다. 노회에 참석을 했던 목사와 장로 총대들이 노회를 끝낸 이튿 날은 영덕에서 20여리 떨어져 있는 강구 바다에서 뱃놀이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40여명의 노회원들이 큰 어선을 빌려 타고 강구 포구를 벗어나 강구의 등대 밖으로 나갈 때 까지는 꽤 기분이 좋았으나 뱃놀이를 하던 중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 그만 노회원들이 타고 있었던 어선이 전복이 되고 말았다. 그들 중에 헤엄을 잘 쳤던 몇 사람은 등대까지 헤엄을 쳐가서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대부분의 노회원들은 모두 익사를 하고 말았으니 강구 앞바다에서의 노회원들 익사 사건은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참 이상한 일이었다. 봉화제일교회100년사를 집필한 집필자는 당시 강구 국민학교 3학년으로 강구교회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여서 교회의 전도사님을 따라다니며 그 현장을 모두 목격할 수가 있었다. 강구 부두가에 즐비하게 누어있던 그 시신들은 보는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구교회 김전도사님은 수레에다 밥과 국, 그리고 주전자에 식수를 싣고 가서 몰려 온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대접을 하였는데 필자는 친구들과 함께 전도사님을 따라 다니며 심부름을 했던 것이다. 강구 부둣가에 몰려온 구경꾼들은 불행하게 죽은 이들을 향해 이런저런 말로 비방을 하고 있었다. “예수쟁이들이 죽으면 천당에 가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용궁에 갔구먼.”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전도사님에게 그 말뜻이 무어냐고 물었지만 전도사님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중에 알려 줄게 하면서 그런 말은 잊어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강구 앞바다에서 희생되었던 사람들 중에 봉화제일교회 제13대 담임 박기환 목사와 그해 3월에 봉화제일교회를 사임하고 떠나갔던 제12대 장재석 목사도 함께 시신이 되어 부둣가에 누어 있었으니 당시의 심오했던 역사의 감추어진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일 수가 없다. 그 박기환 목사의 불우한 소식이 본시 성내교회라고 불렸던 봉화제일교회로 들려왔던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는 약간의 돈을 준비해서 당시 남선교회 회장이었던 박영식 집사를 먼저 강구로 내려 보냈던 것이다. 교회를 대표해서 박 집사가 강구로 왔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박기환 목사의 아들이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나 연락을 할 길이 없었다. 이튿 날은 강구에 장이 서는 날이니 하룻밤을 자고 장에 가서 우선 광목 한필과 관(棺)을 구입을 해서 시신부터 수습을 하였다. 그 때가 6,25 전이었으니 트럭을 대절하려고 했지만 엄청난 돈이 있어야 했으니 박집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박집사는 지게를 하나 구입을 하여 지게로 그 관을 나르기로 했던 것이다. 그 때가 9월 중순, 아직 여름의 더위가 가시지 않은 때여서 시신을 넣은 관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그해 4월에 교회로 부임을 해와서 불과 5개월 남짓 담임목사로 교회에 시무를 했던 박기환 목사의 시신을 그대로 외지에다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강구면 사무소를 통해 봉화군청에 전화를 해서 교회의 청년 한사람을 강구로 와 달라는 부탁을 하자 시외버스를 타고 청년 회장이 강구로 와서 이튿날 두 사람이 번갈아서 지게에다 관을 지고 박 목사의 시신을 옮겼다. 강구에서 금호들을 거쳐 영덕과 지품, 영해, 창수를 거쳐 안동으로 갔고 해가 지면 남은 광목을 몸에 두르고 노숙을 하며 영주를 지나 봉화에 도착을 해서 삼일 되는 날 봉화제일교회당에 우선 시신을 안장하고 장례식을 거행했다. 이 갸륵한 소문이 좁은 동네 봉화군 일대에 두루퍼지자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의 정성이 저렇게 지극할 수가 있는가?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를 외지에 묻어버리지 아니하고 지게에 짊어지고 280여리의 길을 걸어 지극정성으로 교회로 모셔왔으니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해!” 박기환 목사의 유해는 봉화군의 석평 2리 유록골에 안장시켰으며 그 박영식 집사는 평생동안 그의 무덤에 벌초를 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교회는 전에 없었던 부흥을 이루게 되었다. 교회의 남선교회와 여전도회, 그리고 청년회는 깨어서 기도하며 새벽에도 모이고 저녁에도 모이며 열심히 기도하기를 게을리 않더니 얼마 안되어 교인의 수가 일시에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그 때 교회의 모든 교우들은 하나가 되었고 함께 뭉쳐 서로 도우면서 그 어려운 때를 믿음으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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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5
  • [기고] 현장 점검 공무원을 VIP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코로나 19를 보도하는 세상 언론의 편향된 모습에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신경 끄려 했는데 요즘은 더욱더 심해지는 것 같다. 코로나 19에 조금이라도 교회가 관계있으면 ‘교회발 확진자’라 해서 자극적인 기사를 마구 쏟아낸다.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와 교회를 향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을 배설하다시피 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어떤가? 교회는 말할 것 없고, 국가 역시 하나님이 위임하신 통치권이 있는 곳이다. 특별히 그들에게는 공권력이라는 칼이 있고, 그래서 기독교인은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상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롬 13:1-7).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와 국가가 크게 갈등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다보니 교회 점검인지 단속인지 주일마다 많은 공무원들이 교회로 온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끊임없이 문자가 날라 오고, 전화로 방역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이 온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아주 우호적으로 이 문제를 대처하기도 하지만, 어떤 지자체에서는 아주 강압적인 방법까지 사용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로 인해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관과 교회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회에 온 공무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교회의 법을 존중해야 한다. 법의 집행자이지만 그렇다고 점령군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를 방문할 때 존중하는 자세로 와서 교회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의 경우이겠지만 무례하고 위협적인 말로 안 그래도 울고 싶은 교회의 분노를 자아낸다. 공권력은 힘을 가졌다고 함부로 쓰는 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요즘 일부 교회와 기독교 기관들의 일탈 행위 역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방역을 무시하여 대규모 확진자가 나온 일부 교회들, BTJ 열방센터, 대전 IEM국제학교, 광주 TCS국제학교로 인해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물론 이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비상식적 운영과 지도자들이 내뱉은 말들은 교회 내에서 사용하는 ‘기독교 용어’였고, 이로 인해 한국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코로나 19 이후 어떻게 이 민족 가운데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최근 교회 사무간사가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중 우리 교회가 정부의 방역에 잘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계속 정부의 방역지침을 잘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시청의 담당 국장이 교회를 방문하여 협조를 구했다. 이번 주 혹시 우리 교회에도 점검이 나올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런 일을 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의 불편한 생각을 잠시 접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전도가 정말 안 되는데, 이렇게라도 찾아오는 공무원들이 혹시 하나님이 보내시는 VIP가 아닌가?’, ‘비어 있는 자리에 한 명이라도 더 앉게 해서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될까?’ 너무 발칙하고 허황된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새벽 시간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중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교회에 오는 공무원들이야 위에서 명령을 받아 온 것이고, 이 분들로서는 지난 1년 동안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교회에 일하러(?) 온다면 결코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않는가? 이들 중에는 분명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공무원들은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교회를 한 번도 방문해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들이야 말로 VIP가 아닌가? 매년 교회가 VIP초청잔치를 위해 많은 예산을 들이는데, 찾아온 조금은 ‘불편한 VIP’를 주님의 마음으로 영접하면 어떨까? 상냥하게 맞이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며, 음료를 제공하고, 갈 때는 교회가 준비한 선물을 안겨주면 안 될까? 혹시 적대적인 마음으로 온 사람이라도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간다면 결국 이들이 다음에 VIP로 교회에 오지 않을까? 우리 주님께서는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피한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다(요 4장). 사마리아 여자라는, 이미 5명의 남편이 있었고 지금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까지도 우리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다. 이것이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품는 것이 바로 생명의 도라 불리는 기독교의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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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8
  • [기고] 선빵(선제적방역)
    1년이 넘는 팬데믹은 한국교회를 직접적으로 괴롭혔다. 이 시점에 목회자이자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의 대한을 제시해 본다. 그것은 바로 선제적방역이다. 한국교회는 항상 선제적으로 역할을 해왔다. 3.1 만세운동때도 해방후에도 한국에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모든 일에 선제적으로 앞장서 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원망과 불평 그리고 종교에 대한 핍박등을 내세우며 여호와라파만 기다리고 있다. 결국 이것은 한국교회가 세상보다 뒤처져 있고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독교의 문화를 접한 많은 성숙한 성도들은 비록 교회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반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몇몇 교회와 목사들로 인해 자영업자들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작은 교회들의 상황을 어디에도 대변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 이유는 지교회중심주의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과 내 교회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각 교회마다 독자생존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제 정신을 차려 한국 교회를 바라보니 그 동안 왜 그렇게 방어만 했으며 왜 그렇게 공격만 받아 왔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바로교회의 선제적방역의 부재때문이다. 코로나 상황을 준비하지 못한 한국교회가 대면예배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는 대면예배 중요성의 강조와 다음은 노년층에 대한 배려의 부족 마지막으로 감독교회와 회중교회의 만연이다. 대면예배의 중요성은 한국교회의 역사이고 전통이다. 육신의 가족처럼 성도들을 섬기는 마음이 서로의 대면을 당연시하고 모이기를 힘쓰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순응함에 있다. 노년층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라 함은 비대면 예배를 드리기 위한 사전준비로 노년층에 대한 스마트 기기의 습득과 활용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데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빠른 조치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독교회와 회중교회의 만년이라 함은 (초)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문제가 한국교회전반에 퍼져있다는 것이다. 감독교회라 함은 교회가 커질수록 담임 목사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상향식 성직자 구조를 갖는 교회를 말하고 회중교회라함은 감독교회를 회피하는 교인들이 사사시대처럼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신앙생활 하는 교회를 말한다. 때문에 코로나팬데믹 상황에서 대형교회들은 지교회 중심의 방역과 예배를 교회가 감독하고 소형교회들은 성도들의 소견대로 방역과 예배를 드림으로 인해 방역거부와 실패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를 바라보는 세상은 이래나 저래나 교회가 탐탁지 못한 것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동기목사 중에 한 분이 성도들은 절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이것이 팬데믹의 현주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교단차원의 선제적방역이다. 총회가 감독교회의 역할을 자처하여 국가가 원하는 이상의 방역 지침을 선제적으로 내려 교회와 교회 주변의 모든 이들을 돕고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는 그런 교회들이 되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방역의 선수를 잡아야 한다. 우리가 늘 해왔고 잘하는 것들을 정부와 언론에 앞서 시행하고 정부 시책을 잘 따라주고 함께 나아가는 그런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방역으로 욕먹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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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6
  • [기고] 이단과 역병의 시대 읽기
    소소한 행복을 집이나 캠핑카에서 즐기는 일상,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 마음 훈훈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감동 콘텐츠가 코로나 역병의 시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제한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대리만족과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힘든 역병의 시대, 각자의 자리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감사와 기쁨의 코드들을 애써 발견하며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다. 중세 흑사병의 창궐은 중세교회의 무기력함을 노출해주었지만, 동시에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피어오를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구한말 콜레라의 창궐은 무기력하게 몰락하는 조선사회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으로 등장한 기독교의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사 알렌, 언더우드, 예이비슨과 기독교인들의 헌신적인 콜레라 방역과 퇴치 활동이 조선민족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최근 인상적이고 통찰력 있는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키워드로 보는 포스트 코로나 세상”이라는 장제국 총장(동서대학교)의 <21세기포럼>에서의 주제 강연이었다. 대학 운영의 책임자로서 코로나 세상에서 바라보는 사회와 대학의 미래에 대한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장 총장이 제시한 키워드들을 가지고 ‘이단과 역병의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에 적용해보고 싶었다. 첫 번째 키워드는 “거리두기”다. 나와 타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극 권장되고 있다. ‘밀폐’된 공간, ‘밀집’된 장소, ‘밀접’한 접촉 등 소위 3밀을 피하면, 감염을 대부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이단들도 친밀한 관계 형성을 통해 밀접 접촉을 시도하고, 그들만의 밀폐된 공간으로 유혹해 비성경적 감염에 노출되도록 만든다. 이를 위해 심지어 사전에 개인 정보를 취득한 후, 거짓말까지 동원해 맞춤형 미혹을 진행한다. 이단과 역병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영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자발적 고립”이다. 악수와 포옹은 친밀감의 표현이 아니라, 위협적인 행위가 되었고, 나의 영역 안으로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개인주의와 함께, 국가적 차원의 폐쇄적인 경제적·정치적 이기주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비상식적인 분열과 편 가르기가 상식으로 둔갑해 자리 잡았다. 이단에 미혹되면 나타나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이단에 의한 생활, 정보, 사고, 감정을 통제 당하면서 고립은 시작되고, 이는 가족과 지인들로부터의 자발적인 고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거나 가출도 불사한다. ‘자발적 고립’은 이단의 통제를 훨씬 더 쉽게 수용하게 만든다. 세 번째는, “냉소와 조롱과 위선과 악성댓글이 만연한 자기중심적 내로남불”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편견이 소신으로 신념화되고, 거짓 정보마저도 진실로 받아드려 진다. 극단적 분열과 선전·선동이 합리화된다. 이단에 미혹될 경우에도, 인지적 왜곡, 오류, 선택이 동반된다. 이단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는 비성경적인 눈’을 심어준다. 이를 통해 성경을 자의적·임의적 관점으로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도록 만든다. 첫 단추가 잘못 깨워진 옷처럼, 성경을 지속적으로 왜곡하고, 친밀한 주변 관계마저 단절하는 오류가 동반된다. 결국 가족과 교회와 세상을 비판하는데 집착하면서, 자신의 왜곡된 선택을 합리화하는 자기중심적 아웃사이더가 된다. 코로나로 인해 본격적인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교회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세련된 이단콘텐츠가 온라인상에서 횡횡하고 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이단들의 포교, 교육, 감시, 통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의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한편 국가나 경제 권력에 의해 개인과 신앙의 자유가 제한되는 "통제와 감시가 강화되는 시대"를 만들어졌다. 코로나 역병의 위기와 불안 속에서, 개인의 정보와 신앙의 자유가 합법적으로 통제되고 감시당하는 환경이, 우리가 만나게 될 뉴 노멀의 세상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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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9
  • [기고] 정근두 목사님께
    처음에는 이 글이 과연 정근두목사님의 글인지 그 이름을 빙자한 다른 누군가의 글인지 헷갈렸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번 정목사님이 제게 보내신 장문의 카톡을 다시 훑어보니 논조가 거의 같습니다. 답할 건 별로 없지만 소감이라도 적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동네마다 빚 때문에 일어났던 어머니들의 싸움 소리를 기억합니다. 빌려간 돈 돌려달라고 찾아갑니다. 지금 없으니 다음에 드리겠다. 벌써 몇 번째냐? 오늘은 받아가야겠다. 이런 식으로 싸움이 전개됩니다. 그러다 보면 흥분하게 되고, 험한 소리가 오가게 됩니다. 그러면 빚 문제는 어디 가고 당신이 욕하지 않았냐, 내가 언제 욕했냐.. 이런 식의 싸움이 됩니다. 빚만 제때 갚았으면 될 일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욕이 아니라 빚입니다. 정치권에서 그런 방식을 따라 합니다.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다른 더 시끄러운 문제로 주의를 호도하는 방식 말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빚에서 욕으로 살짝 바꿔 버리는.. 교회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코닷의 천목사의 글, 기독교보의 저의 시론, 총회재판국의 글 어디에도 불륜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극히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불륜프레임을 가지고 다룬다고 말합니다. 목사님의 그 반응이 자연스럽긴 합니다. 이건 불륜프레임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프레임 없이 그냥 사실로만 보면 이렇게 쓸 수 있겠죠. “50대 유부남이 미혼의 여성과 주차장에서 12회, 자기 아내가 없을 때 여성의 집에서 3회 만났다.” 이걸 놓고 일반인들이 뭐라 볼지는 명약관화할 겁니다. 그런데 이때의 유부남이 목사고 미혼 여성이 그가 데리고 있는 여전도사가 되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기준을 더 엄격하게 해서 보아야 합니까? 기준을 더 관대하게 해서 보아야 합니까? 그리고 어떤 프레임으로 보아야 합니까? 목회적인 프레임으로? 교육적인 프레임으로? 사역적인 프레임으로? 목사님은 박목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이 사안에 접근하고 있습니다만 열두 번, 세 번이 적은 건가요? 아니면 독신 여성 집에 가서 일대일로 함께 하는 게 아무 것도 아닌 건가요? 여성을 일대일로 만날 때는 방문을 열어놓으라는 말은 저만 아는 건가요? 다른 사람이 선입견을 가진 게 아니라 목사님이 (좋은 의미에서의) 선입견-박목사는 아니다-으로 접근하시는 거죠.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혹시 목사님은 박목사님을 만나서 교제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최근의 설교 1편이라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질문을 읽으면서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비틀거리면서 옵니다. 누가 봐도 음주운전입니다. 경찰관이 그 차를 세웁니다. 창문을 내리니 술 냄새가 확 풍깁니다. 경찰은 음주 측정기를 들이댑니다. 기사는 측정을 거부하면서 술 안 마셨다고 말합니다. 경찰은 불어만 주시라고 말합니다. (경찰은 음주운전이라는 프레임으로 기사를 대하고 있습니다!) 실랑이가 계속되니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가 툭 끼어들어 한 마디 합니다. 경관님은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아세요? 우리 목사님 설교 들어보셨어요? 이건 그야말로 상상하기 어려운 상상입니다. 그렇게 될 리도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거죠. 경찰관이 사모님의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이 생겼을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지금의 경우와 백 프로 맞아떨어지는 비유는 아니지만 목사님의 그 질문을 읽으면서 어이가 없어서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정목사님의 말씀은 설교를 잘하면 열두 번 세 번 정도는 괜찮다는 말로 들립니다. 사람이 훌륭하면 그런 행동도 괜찮다는 말로 드립니다. 그의 설교나 목회 능력이 그런 행동을 덮을 수 있다고 들립니다. 저는 목사님과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설교는 듣지 말라고 해야 옳다고 봅니다. 설교보다는 자숙을 권해야 옳다고 봅니다. 저는 노회나 총회임원회나 총회재판국의 처사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왈가왈부할 만큼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고요? 시론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열두 번 세 번이면 벌써 사임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재판거리나 됩니까? 서로 피곤한 일 아닌가요? 여기서 삐딱한 소리 한 마디 끼워 넣겠습니다. (이건 목사님께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앞으로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갈 거라는 소문도 들립니다. (이미 갔나요?) 요즘 교회들의 풍토가 그러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아예 세상 법정으로 가면 될 것을 뭐하러 그렇게 힘 빼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절차 논쟁 그만하고 그리로 갖고 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끼리 싸우지 않아도 되고 노회나 총회 경비도 아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교회 재판도 3심제로 해야 된다고 말하는데, 이미 우리나라 교회들은 5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 두 번, 세상 세 번이죠. 서글픈 현실입니다. 하여튼 다들 알아서 하십시오. 그런데 재판 받고 나면, 교회 재판이든 세상 재판이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에는 “재판장님께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면서 재판정을 나오더군요. 불리할 경우에는 정치적 판결이니 뭐니 하면서 거의 욕에 가까운 말을 하고요. 재판에 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겠죠. 다시 돌아와서, 앞으로 이 사건은 전례가 될 것입니다. 고신의 총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직 신학교 총장으로서 여전히 목사를 양성하시는 정목사님은 그 전례 만들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열두 번, 세 번은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예닐곱 번 만나고 치리 받는 사람은 억울해할 겁니다. 그런 희한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모여서 고신의 역사를 만들 것이고, 그게 다시 한국교회의 역사를 만들겠죠. 그게 자랑스러운 것이 될지 부끄러운 것이 될지는 훗날 알게 되겠죠. 이제 글을 끝내겠습니다. 사안에 대해 말하다가 사람을 비판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거룩하게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글을 쓰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거룩은 선택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치긴 하지만 저 자신이 기준에 너무 미달하기에 앞으로도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런 글은 쓰지 않겠습니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전원호 드림
    • 기고/강연
    • 기고
    2020-10-19
  • [기고]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십자군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오늘 ‘생명의 도’(행 7:38, 개역성경)라 불리는 기독교를 믿는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십자가의 길’(The way of the cross)인가, 아니면 ‘십자군의 길’(The way of the crusade)인가? 요즘 기독교인들끼리 나누는 대화나 SNS(카카오톡, 페이스 북) 등을 통해 주고받는 글들과 유튜브 영상을 보며 안타까운 때가 많다. 그것은 자신이 ‘십자군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이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시대 때 일어난 ‘십자군 전쟁’(The Crusades)을 보자.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의 “성지(聖地)인 예루살렘을 어찌 이교도인 이슬람교도들에게 허락할 수 있겠느냐?”는 말은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였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는 교황의 말로 시작된 이 전쟁은 무려 198년간(A.D. 1095~1291) 9차례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 전쟁은 부끄럽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치러진 전쟁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당시 로마교회의 권력은 막강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Heinrich IV)를 눈이 날리는 카노사의 겨울 성문 앞에서 얇은 옷과 맨발 상태로 3일 동안 꼬박 세워 눈물로 용서를 빌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성지를 수복하자는 교황의 말은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멋진 명분과 종교심에 불타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지 수복을 향해 나아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당황한 로마교회는 이 전쟁에 참여하여 순교하면 천국이 보장된다는 약속도 하였다. 더 나아가 어린 소년 소녀들의 신앙의 힘으로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는 목표로 유럽 각지에서 수만 명의 소년들을 조직한 ‘소년 십자군’(Children's Crusade)까지 조직하여 전쟁에 참여케 했다. 이 전쟁의 참상은 너무 끔찍하여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분명 그들이 주장하는 명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명분을 이루는 방식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상의 길인 ‘십자군의 길’(The way of the crusade)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라고 외치며 이런 저런 일들을 한다. 그 열정과 헌신은 분명 귀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인 ‘숫자’와 ‘힘’을 통해서 이루려고 한다. 사람을 규합하고, 그 힘으로 세상과 싸우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십자군의 길’이다. 우리 주님은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가의 길’(The way of the cross)을 선택하셨다. 주님의 선택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는 낮아짐이셨다. 스승으로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기셨다. 5병 2어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아 로마를 뒤집으려고 할 때 홀로 산으로 가셨다(요 6:15). 유대 종교권력자들과 로마군병들에게 잡히셨을 때 그들이 가진 검과 몽치보다 더욱 강력한 하늘의 12군단의 천사를 동원하지 않으셨다(마 26:53).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셨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십자군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사회학자인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가 쓴 <기독교의 발흥>(The Rise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스타크는 불신자이다. 그런 그가 로마제국에서 신흥종교와 같았던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300여 년 만에 그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로마를 정복하고, 지금까지 2천 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결국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을 점령한 것은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대역병 때문이었다. 1차가 165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전 제국의 1/3 정도가 천연두로 사망했고, 2차로 251년 알렉산드리아 인구 2/3가 사망할 정도로 엄청난 전염병이 있었다. 로마 사회나 기성 종교가 좌절하고 역병 앞에서 종교인들이 먼저 도망갔을 때, 쌓여있던 시체들이 방치돼 쥐들이 병을 더 옮길 때,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를 다 정리하고 장례를 치렀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이 의료가 발달한 때가 아니었다. 지금의 코로나 19와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전염병은 이교도를 믿는 로마 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크리스천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이때 종교지도자와 돈 많은 제국의 사람들은 전염병이 제국에 돌자 안전지대를 찾아 달아났다. 결국 남은 사람들은 도망갈 힘도, 돈도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남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의식을 풀지 못했다. 전염병에 걸린 감염자와의 접촉을 극도로 피했다. 이때 초대교회의 교부인 키프리안(Thascius Caecilius Cyprianus)이 외쳤다. “우리가 단지 그리스도인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풉시다. 원수도 사랑합시다.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이것이 오늘 이 땅과 교회 안에 드리워진 수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우리는 지금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십자군의 길’을 걷고 있는가?
    • 기고/강연
    • 기고
    2020-09-11
  • 오늘, 고신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가운데 교단과, 신대원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두 분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고신대 신학과 75학번, 신대원 93 학번인 진신덕목사입니다.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아온 지 23년째입니다. 고신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저의 신앙의 모태인 사랑하는 고신의 현주소를 찾으며,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두 분의 지혜와 경륜을 빌어 저의 질문에 해답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개질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무례하다 외면하지 마시고 저의 어리석음을 속 시원하게 깨우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코로나-19 대유행과 관련한 질문입니다. 1.1 정부 당국이 대유행 조짐이 보여 거리두기 2.5 단계 방역지침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비대면 예배 행정명령을 내렸는데, 2020.8.21 <고신-대신-합신 총회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명서 발표가 늦은 감이 있습니다. 미리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대한 교단 입장을 발표했더라면 8.23 주일예배 대면 예배를 강행한 일부 고신교회들과 행정기관과의 마찰이 예방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부산기독교총연합에는 고신교회들도 가입되어 있는데 정부 방역지침에 반발해 대면예배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교단 방침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부산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같은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고신 총회가 가입한 한국교회총연합은 정부 방침에 반발해 대면예배를 사수하겠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신속히 조정할 것인지요? 1.2 주일예배를 대면예배를 드려야만 주일성수가 되는 것입니까? 비상상황에서 비대면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심각한 교리 위반 행위인 것입니까? 성명서만 발표한다고 개교회와 성도들이 이해하고, 전적으로 동참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신학적 연구와 해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2. 고신교단과 전광훈은 어떤 관계인지요? 2.1 전광훈은 예장 대신에서 제명된 사람이고, 한기총 회장일 때, 이단 변승우를 이단 해제하고, 한기총 공동회장으로 받아들인 이단 옹호자입니다. 이런 자가 주최하는 정치행사와 주일예배, 부흥회 등의 각종 집회에 고신 목사, 장로, 성도들이 참여하는 것은 개인 신앙의 자유에 속한 일입니까? 전광훈이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단에서 진작에 전광훈에 대한 명확한 이단 규정을 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뉴스에서는 총회 이단대책위에서 이번 총회에 상정할 문건이 보도되고 있지만 아직 총회 홈페이지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고신 이대위는 전광훈을 “이단성 있는 이단 옹호자”로 보고서에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미 고신 깊숙이 전광훈을 지지하고, 추종하는 많은 ‘전광훈들’이 자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전광훈 집회에 집단적으로 동참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단 옹호자’라는 규정이 너무 약하고, ‘사후약방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3. 고신교단과 대장연(대한민국장로연합회)은 어떤 관계인지요? 대장연은 정치활동을 안한다고 하면서도 정치적 발언과 집회를 계속하고 있는데 고신 장로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에 해당하는 일인지요? 4. 고신교단과 소위 “태극기부대”와는 어떤 관계인지요? “태극기부대”에 일반국민도 있지만 고신 목사 장로들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도 개인의 판단에 따른 정치참여로 교단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까? 5.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고신의 입장은 무엇인지요? 지금 국회에는 장혜영 의원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다른 의원들도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온갖 반대의견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고신교단의 신학적 입장은 무엇인지요? 동성애 조장, 동성애 비판 설교시 처벌 등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신학적으로 법안에 대한 정확한 검토에 근거한 입장을 밝혀주셔야 찬반 논란을 정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6. 고신의 ‘개혁주의적 미디어 리터러시 정책’은 무엇인지요? 한국의 소셜 미디어 환경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온갖 이단들의 선전 동영상은 물론이요, 가짜 뉴스와 선전선동물들이 기승을 부립니다. 많은 성도들도 이런 미디어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짜뉴스가 교인들 단톡방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개인의 취사선택에 맡겨두기가 힘든 위험한 미디어 환경입니다. 적어도 신앙과 신학에 관계된 미디어에 대한 ‘필터링’과 비판, 바로잡기를 위한 체계적이고 상시적인 기구와 활동이 시급하다고 판단합니다. 총회-신대원-고신대-고신언론사-기독교언론-시민운동단체의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성도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돕는 다양한 활동이 요청된다고 생각하는데 교단과 신대원의 입장은 무엇인지요? 7. 총회의 민주적 운영과 소통 강화에 대한 정책은 무엇인지요? 정기총회는 1년에 한번 모이기에 코로나 -19와 같은 돌발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긴급한 사안은 임시총회를 열기도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총회 임원회와 각 부서와 위원회가 가동되지만 전국 교회와 성도들과 소통이 어렵습니다. 총회 홈피에 자유게시판이 있지만 청와대 국민청원과 같은 대화 창구가 활짝 열려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의견을 제시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총회 차원에서 응답하는 소통의 광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특히, 총회 총대제도는 목사 장로로만 총대가 구성되고, 그것도 교세와 연차에 따라 선출되어 전체 교회의 의견 수렴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대 선출에 대한 혁신적인 방안을 마련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예를 들면, 전국여선교회 대표, 주교교사 대표, SFC 대표, 안수집사회 대표 등을 총회 언권회원으로 받아서 발언할 시간을 주고, 정책제안을 하게 하는 방안입니다. 이사회와 총회 부서, 위원회 구성도 여러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왔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공개토론과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총회의 각종 회의록과 안건 등 교단 운영에 관한 자료들을 공개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소통하는 방안은 있으신지요? 신대원은 총회에서 연구보고를 주문하는 것만 기다리고, 능동적으로 <교회의 교사> 역할을 할 의향은 없으신지요? 과문한 탓에 신대원이 자발적으로 교단 발전을 위한 세미나, 연구 등을 진행하는 소식을 듣지 못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신앙의 중심을 잡고, 고신의 정체성과 생활의 순결을 지켜 나가도록 총회와 신대원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등불과 지팡이 역할을 잘 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저의 질문에 대해 우문현답을 기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2020. 9월 미국 일리노이 샴페인에서 진신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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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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