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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단법인 21세기포럼 故 장성만 이사장님을 기리며…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목이 멥니다! 새벽기도회 때도 눈물만 흐릅니다. 이사장님이 실로암 공원에 묻히셨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문화대상 시상식을 마친 다음 날(4일) 병상에서 시상식 참석자와 수상자, 그리고 수상자들의 소감 내용을 전했을 때 수고했다는 뜻으로 잡아주시던 이사장님의 따뜻한 손을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2005년 하순경 어느 날, ‘월요회’ 오찬모임을 마치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밥만 먹고 헤어질 수 있느냐? 맘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좋은 일 좀 합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21세기포럼을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 아닌가, 혹은 ‘포럼 내에서 우리는 들러리만 서는 것이 아니냐는 등 색안경을 낀 사람들의 시선과 오해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만 계시던 이사장님의 큰 그릇됨이 그립습니다. 2007년 10월 12일 마부노호 선원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되어 생사를 헤맨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그날 밤 ‘부기총’ 대표회장을 만나 기독교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동서대와 경남정보대 학생들의 축제비용에 쓸 2억 원을 생명을 구하는 데 쓰자며 학생들을 설득하셨고, 노구를 이끌고 서울과 부산을 다니시며 2주 만에 7억 원이란 거금을 모아 전달하는 등 이사장님은 정확한 사태판단과 신속한 대처능력을 보여 주신 탁월한 지도자셨습니다. 초창기 문화대상 시상금을 혼자 부담하시면서 힘들어하시던 모습과 2011년 재단법인 설립을 위해 애쓰시던 모습을 보며 포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크신지도 알았습니다. 제 평생에 이사장님과 같은 분을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사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5년 CBS에서 성국경 목사님(아르헨티나 선교사로 계시다 순교)의 뒤를 이어 재부 기독교 기관장회 간사를 하면서 였습니다. 이사장님은 40여 년을 훌륭한 교육자로, 올곧은 정치인으로 활동하셨지만 그 보다도 눈물이 있고 사랑이 있고 교만하지 않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을 키우는 진정한 목회자이기도 하셨습니다. 저의 멘토(mentor)이신 이사장님을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메기의 추억’을 같이 부르며 “2절 가사가 참 좋다”라고 하시던 이사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는 장 총장 말씀대로 예수 잘 믿어 천국에서 만날 수밖에 없으니 제 휴대전화에 담아 둔 이사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날을 마음 속 깊이 고대합니다. 2015년 12월 12일 21세기포럼 상임이사 임현모 장로
    • 기고/강연
    • 기고
    2015-12-21
  • [기고] 사회 법정으로 가는 교회 지도자들(목사,장로)
    교회의 송사 문제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심각해져가고, 교회 안팎에서 세상 법정으로의 송사가 더욱 더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한국의 대형 교회와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 법정에서 재판 계류 중이거나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서 세상 법정에 송사하지 말라하셨고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씀의 거울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말씀의 저울에 달아보며 말씀의 척도에 재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고신 총회가 제 58 회, 제 59 회, 제 60 회, 제 62 회, 제 63 회 총회에서 세상법정에 고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부득이한 경우에 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상 교회 안의 일을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직자이든 지도자들이든 우리는 거룩한 백성인데도 자신의 욕심과 탐심과 명예 때문에 사소한 일로 서로 다투고 싸우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목사와 목사, 목사와 장로, 교회 지도자 및 중직자들이 서로 싸워 놓고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과 경찰관, 변호사, 검사, 판사 앞에서 ‘우리가 싸웠는데 결판이 안나니 판결 좀 해주십시오.’ 하는 것은 정말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차라리 억울함을 당하고 손해를 보고 누명을 덮어써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하신 갈라디아서 5장 22절 말씀 처럼, 형제까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으로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주님의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 기고/강연
    • 기고
    2015-05-29
  • [기고]장로교단의 분열과 형성을 이룬 천명(하)
    ▲ 박병진 목사(총신명예교수 교회헌법) 디모데도 부러울, 3대 이룬 장로 가정, 바른신학, 바른신앙, 나침반된 고려신학 (승전) 1952년 제37회 총회가 대구 서문교회당에서 회집되었는데, 출옥성도 중심의 고려신학교의 주체인 경남법통노회는 여전히 배제된 채 “…신학졸업생 목사 장립 규정에 관한 건에 있어서도 정 제14장 제12조 3항과 제3조 1항에 의하여 총회직영신학교 졸업생은 바로 강도사가 될 수 있고, 다른 신학 졸업생은 6개월 이상 후보생으로 있어야 강도사가 될 수 있으며, 제33회 총회결의대로 한다”(동 총회록 P.7)고 고려신학교 졸업생은 따돌림을 당하게 되자 기미년 독립만세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경남법통노회 엄주신 장로는 신앙절개를 지키기 위해 신사참배를 반대한 신앙과, 박해가 두려워 일본귀신(태양신) 앞에 참배한 신앙과는 본질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여겼는지, 그래도 총회 안에서 총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기대와 염원이 무너졌는지, 총회와의 고별을 선언하였고, 이 선언에 따라 옥중에서 죽다가 살아남은 산 순교자격인 출옥성도가 주축이 된 고려신학교와 경남법통노회는 같은 해, 즉 1952년 9월 11일 진주성남교회당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노회 제 1회로 회장 이약신, 부회장 한상동, 서기 홍순탁 등 임원을 선출하고 오늘의 고신과 총회의 초석을 놓게 된다.목사도 아닌 장로 엄주신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영적으로 교만한 독선주의자라고 지탄을 받던 출옥성도의 무리가 일사분란하게 엄주신의 결별선언을 따라 고려측 총회를 형성하게 되었는가? 대한예수교 장로회 칠원교회 100년사에 의하면 역대교역자 권남선, 고은서, 지창술, 임종만, 주홍근, 백성인, 제판호 목사 등과 함께 역대장로 1대 손종일, 2대 엄주신, 3대 안기림, 4대 엄영환, 5대 정재화, 6대 김재봉, 김명주로 기록되었는데, 엄영환 장로는 엄주신 장로의 자제분이시다. 그리고 엄주신 장로의 손자이며, 엄영환 장로의 자제분인 엄동규 장로는 서울 동산교회에서 시무 중에 있으니, 3대째 장로집안이다. 그리고 100년사는 1908년 1월 산림법을 공포하여 목재를 구하기가 어려울 때에 영수 엄주신의 밭에 심었던 나무가 자라 그것을 찍어다가 예배당을 지었고, 1937년에 일본귀신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사당에 참배를 강요할 때에 칠원교회 아이들이 이에 불응하였다고 초등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내렸는데, 세 학생은 손종일 장로의 손자요 손양원 조사의 아들인 손동인 학생과, 엄주신 장로의 쌍둥이 아들 엄문섭, 엄무섭 학생이었다. 한의사이면서도 엄주신은 한의사를 생계수단의 차원을 넘어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구제하면서 복음전도의 방편으로 삼았던 자선가요 전도자요 애국지사였다.딤후 1장 3~6을 보면 사도 바울이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기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한 것을 보면 디모데의 집안은 외조모와 어머니와 디모데, 이렇게 3대째 믿음으로 믿음을 승계한 거짓 없는 믿음의 집안이라고 하였거니와, 엄주신 장로의 집안도 벌써 3대째 거룩한 장로의 직분으로 장로의 직분을 잇게 한 집안이요, 2대 장로인 엄영환은 일본귀신 ‘아마데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라는 태양신의 사당인 이른바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40일 동안이나 계속된 왜경의 혹독한 취조에도 굴하지 않자, ‘영리하기는 해도 예수에 미쳐 망가졌다’고 온갖 능욕을 당했으며, 공산세력과도 맞서 싸워 한 몸이 부서져도 스스로 교회를 지키는 수문장 역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3대 장로인 엄동규는 서울 동산교회에서 작금 은퇴하였는데, 교회법에 탁월한 식견을 갖춘 정평있는 변호자로 약자를 돕는 일에 헌신해 왔다.민수기 14장을 보면 10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따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어찌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우리는 장관 한 사람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던 출애굽 1세대, 즉 유아와 보행하던 장정만 60만명 이었으니(출 12:37), 부녀자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수였겠는가? 성경은 저들이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광야 40년에 모두 죽었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 즉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말라(민 6:6~9)고 외치던 두사람만은 출애굽 2세들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세월은 흘러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영도한지 어느덧 14년, 그때에 그는 이미 110세의 파파노인이 되어 하나님이 부르실 날이 가까운 것을 내다보면서 유언적인 당부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시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 24:14~15, 21, 24) 그때에 백성들은 큰 감동을 받고 여호와만 섬길 것을 거듭 거듭 다짐하고 서원하였으니 여호수아의 선언이야 말로 천추만대에 보화같은 선언이 아니었는가? “10년 후에 보자!” “총회장, 총회임원을 불신임한다”가 보화같은 선언이었을까? 태양신을 섬겼던 이들의 총회와의 결별선언이 보화같은 선언이었는가? 누가 여호수아의 선언을 닮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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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15-02-14
  • [기고]장로교단의 분열과 형성을 이룬 천명(상)
    ▲ 박병진 목사(총신명예교수 교회헌법) 10년 후에 보자던 호통 왕성 ‘기장’ 현실 되고, 총회장, 임원불신임 선언 ‘통합’총회 터전 되다 1912년에 창설된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는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일어난 박해 이전에 대원군이 박해하던 천주교회처럼 여기는 처지에서 혹심한 박해를 받아오던 중, 한일합방은 나라만 빼앗긴 것이 아니고, 이른 바 국어상용(國語常用)이라며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창씨개명(創氏改名) 운운하면서 대개 한글자로 된 성에 두글자로 된 이름을 가져온 한국 고유의 전통을 빼앗아 일본인들처럼 두글자 성을 가지게 하였으며, 처녀들을 잡아다가 일본군의 노리개를 삼았으며, 특히 일본귀신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라는 태양신의 사당을 지어놓고 강제로 참배케 할 뿐 아니라, 일본의 군왕을 사람으로 나타난 신(現人神)이라며, 천황이 거하는 곳 동방을 향하여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는 동방요배까지 강행케 했었다.그러나 이같은 모질스런 박해에도 굴하지 아니하니 감옥에 처넣어 옥고를 치르게 하거나, 손톱 발톱을 뽑아내고, 귀를 자르고 눈을 뽑는 등 온갖 만행으로 죽임을 당하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어찌되었든지 일제침략 시대에는 조선예수교 장로회가 일본 기독교단처럼 둔갑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꾸준히 하나의 교단을 이루고 있은 것으로 볼 수는 있으려니와, 해방 후 조선신학교 김재준 교수의 자유주의 신신학을 가르치는 일로 해서 ‘기장측’이 갈리고, 이어서 해방 후 옥중에서 풀려난 산 순교자 같은 주의 종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려신학교에 대하여, 일본 침략시절에 신사참배에 미소끼바라이라는 귀신을 섬기는 의례에까지 앞장섰던, 그리하여 부산, 경남지역에서 교권을 장악했던 김 모 씨가 노회장이 되면서 고려신학교를 몰아내는 사태가 총회에까지 이어지니 고려측이 갈렸으며, 당시 총회가 정회된 후 난데없이 총회장과 총회임원을 불신임한다는 선언에 따라 오늘의 통합측의 터전이 형성되었으며, 1979년 제64회 총회시에는 총신 김학장의 모세 5경에 대한 이설(異說)과 총신의 재단이사회 사유화(私有化), 전권위원 전권정치, 노회에 대한 불법 난도질 등등으로 합동측이 주류와 비주류(당시 총회가 회집된 대구 일간지들은 진보계 인사는 예배당에 들어가서 총회를 진행하고, 보수계 인사는 예배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났다는 뜻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주류는 합동측의 보수계란 뜻에서 세칭 그대로 합동보수라고 불린다) 로 갈렸고, 합동보수측은 그 후에도 합동개혁이니, 예장이니, 개혁이니, 청담이니 하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이어지고 있다.이같이 교단이 여러갈래로 나뉘는 과정 속에 교단을 새로 형성하는 선언과 천명(闡明) 등 상징적인 발언을 보면, 보는 이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는 있으려니와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자유주의 신신학의 대부 김재준 교수가 권 제6장 제42조(이단과 교회 불법분리 죄)에 의해 목사면직이 선포된 후, 조선신학교 출신은 강도사나 목사장립을 금하게 되자, 1952년 6월 3일 대구에서 호헌대회를, 그 이듬 해 6월 10일 서울 수유리 한신 강당에서 제38회 총회를 다시 따로 모여 총회장에 김세열을 선임하였고, 그 다음해에 ‘대한기독교 장로회 총회’로 칭호를 바꾸었는데, 당시 총회를 떠나가면서 경동교회 강원룡 목사가 회중을 향해 “10년 후에 보자!”고 하였다는데, 이 말이 ‘기장’형성에 깊은 인상을 준 선언처럼 여겨진다.같은 무렵 8.15 해방과 함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감옥으로 끌려가서 죽다가 남은 살아 있는 순교자 격인 주의 종들의 생각에는 평양신학교는 일제의 박해로 어용(御用) 신학교가 되는 일을 피해 자진 폐교되었고, 이남의 조선신학교는 조선총독부의 마음에 들어 허용된 자유주의 신신학의 모체가 되었으니 기대할 수가 없고, 그런즉 가장 시급한 것은 개혁주의 보수정통신학과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청순하고 순결한 삶을 표방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양성하는 신학교 설립이라고 생각하고 1946년 9월 20일 부산 금성중고등학교 자리에 임시교사를 마련하고 ‘고려신학교’를 개교하였는데, 교단의 힘을 모아 육성 발전케 하지는 못할망정, 1948년 4월 20일에 서울 새문안교회당에서 회집된 제34회 총회는 고려신학교는 총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고려신학교 입학 지원자에게는 천서를 주지 않기로 가결하다”(1948년 제34회 총회록 p.23)고 결의하였으며, 그 이듬해 1949년에도 서울 새문안교회당에서 회집된 제35회 총회는 ‘장로회신학교를 총회직영 신학교로 가결하면서 (동 총회록 p.58), …’고려신학교에도 거년 총회결정대로 노회가 관계를 가지게 되는 일은 총회의 결의에 위반되는 일이매 삼가하심이 마땅하오며…‘라고 결의하였으며, 1950년 대구제일교회당에서 회집된 제36회 총회는 경남노회 총대의 회원권 문제를 보류한채 총회를 개회하였으나, 개회 후에도 양대 세력으로 갈린 경남노회 총대문제로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정회, 혹은 비상정회를 거듭하다가 “금번총회는 9월 첫주일 후 화요일(19일) 오후 7시 30분까지 정회하되, 장소는 대구에서, 회원은 금번 총회원으로, 비용은 각노회 상납금 중에서 지출할 것” 등을 결의하였는데, 이날이 바로 1950년 4월 25일 이었다.그런데 정확히 2개월 후 즉 1950년 6월 25일에 동란이 일어났으니, 이것은 정녕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사태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여겨질 때에 우리 민족의 살길은 총회의 정상화와 거족적인 회개에 달린 것은 아니었는가?정회되었던 총회는 6.25로 말미암아 9월 19일에 대구에서 속회되지 못하고 해가 바뀐 1951년 5월 25일에 부산중앙교회당에서 속회되어 마산측, 3분측, 중간측으로 갈린 경남노회 문제(실제로는 목숨을 걸고 신앙절개를 지킨 출옥성도들과 신시참배자들의 대립이 아니었을까?)에 있어서 출옥성도 중심의 경남 법통노회를 배격하고 비고려측 총대를 받아들였는데, 문제는 그 다음해에 터져 버리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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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31
  • [기고]죄로 망한 엘리 제사장의 책임 (삼상2:12-17, 3:14)
    ▲ 고창세 목사(부산노회 공로목사)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가 사단의 유혹으로 타락하여 저희가 벗었음으로 두려워서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을 때에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이심으로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구속사적 구상을 세우셨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번성케 하시고 출애굽 역사를 통하여 구약교회를 세우셨다. 약 2천여 년 간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실 준비를 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 탄생과 십자가 정사와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신약교회가 탄생되고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교회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이 사명이다. 그래서 교회가 빛을 밝혀야 세상이 밝아지고, 교회가 부패하면 사회도 부패하여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한다. 엘리 제사장 시대의 사례1. 엘리 제사장의 부패로 망한 역사적 상징삼상 2장-4장 “엘리 제사장에게 홉니와 비느하스, 두 제사장이 있는데 불량자라 그들의 습관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고기를 삶을 때 사환들이 세 살 갈고리를 갖고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찔려 나오는 것을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고 기름을 태우기 전에 사환들이 와서 제사장이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함으로 날것을 원한다 하여 듣지 아니하면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인 헌금탈취 행위의 상징이다. 뿐만 아니라 삼상 2:22-25 “회당 문에서 수종하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지어도 엘리 제사장이 이를 금하지 아니했다” 그래서 삼상 2:29-34 “너는 네 아들을 나보다 더 중하게 여겼느냐 그러므로 네 집에 노인이 없을 것이며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며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라 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삼상 3:313-14 “엘리 집의 죄악은 어떤 제물이나 예물로도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했다” 삼상4:1-18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쳐 이스라엘 군 3만 4천명이 죽고 엘레 제사장의 두 아들이 한 날에 죽고 하나님의 법궤도 빼앗겼다. 전장에서 도망쳐 나온 자가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와서 보고하는 중에 법궤를 빼앗겼다 말하는 순간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서 놀래어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엘레의 나이 98세에 몸은 비대하고 눈은 보이지 않더라”이렇게 엘리 제사장의 조로 그 가문과 민족이 함께 망했다. 이는 후대의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 타락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상징적 예언이다.법궤를 빼앗긴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증거다. 한국교회도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는 경고다. 2. 한국교회의 부패상황一. 한국교회 총회 지도자들의 부패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인 헌금으로 총회장 운동비를 비롯하여 각양 명예와 영화를 위한 운동비로 수백, 수억대를 사용한다. 세례교인 매인당 세례비라고 하는 엄청난 금액을 다 어떻게 사용되는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의 세 살 갈고리로 찔러 내는 행위와 같은 행위다. 단테의 신곡 “천주교 법황 니콜라스 3세와 그 이전 시대의 법황들이 성직과 성물을 금과 은으로 매매하여 성물 모독한 죄로 지옥의 가장 고통이 심한 불구덩이의 형벌을 받고 있는 사실을 보였다. 二. 원로 목사들 세습을 금지해야 함하나님의 교회 사역자는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는 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상고하기 위하여 교회가 깊이 기도하며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인데 원로목사가 자기의 아들에게 전수하기 위한 편법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도적하는 행위다. 三. 원로목사 제도 폐지해야 함원로목사 되려고 20년 근속 연한을 채우려고 교회와 목사 간 신경전을 벌리며 교회를 괴롭히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교회가 싸움판을 벌리는 부끄러운 사건도 있다. 四. 총회 연금제도 이행 방해원로목사 모시는 교회는 총회연금제도를 외면한다. 그러므로 중소교회들만이 연금 적금을 하다가 말다가 하니 연금제도 시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합동 측 총회는 연금제도를 포기한 상태다. 원로목사들은 교회가 연금을 지급하니 생활이 유여하나 은퇴목사들은 자식이라도 넉넉지 못하면 병이 생겨도 치료도 못하는 비참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그래도 응급부라는데서 위문장 한 장도 없다. 그냥 은퇴 목사는 내버려져있다.감리교에 서는 원로목사 명칭은 있어도 연금은 강도사로부터 목회연조대로 연금을 지급한다.구세군은 원로목사제도가 없고 모든 사역자의 목회연조대로 연금을 지급하며 교역자들 노후 요양기관도 갖추고 있다. 마20:1-14 “포도원 일꾼 종일 일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동일하게 한 달란트 씩 준” 성경해석을 어떻게 하나요. 五. 신학교 난립으로 무자격자 배출 방지 할 것학력부족하고 사명감 없는 자들을 돈만 내면 입학시켜서 무자격 목사를 배출시켜 정치목회 세속화 목회 부덕행실로 교회 부패를 조장한다. 엘리 제사장의 불량한 두 아들을 양육함과 같다.결론, 한국교회의 타락으로 하나님께서 높이 드신 채찍 북한공산집단의 악한 사상과 악한 정한정책과 핵무기로 똑같은 동족인 남한을 그 무슨 원수로 불바다로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악담 저주를 하는 그대로 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가 미국을 의존하지만 별수가 없다.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거두게 할 방법은 한국교회 총회 지도자들이 겸허히 베옷을 입고 땅에 엎드려 과거와 현대의 모든 죄악을 회개해야 하나님이 채찍을 거두실 것이다.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찍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야 한다. 욥 20:12-13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에 물고 있을지라도 그 식물이 창자 속에서 변하여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다시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 그가 독사의 혀에 죽으리라”엘리 제사장의 죄로 그의 가문과 민족이 함게 망한 성경이 보여주신 표본이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하루속히 남북이 평화적 통일이 이룩되기를 간곡히 기도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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