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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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2)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입니다.)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2) ▲ 김경천 목사 (전. JMS 부총재) 4. 포교전략과 활동, 특징들 1) 청년대학생 중심의 포교 처음에는 주로 대학생들이 주로 포교대상이었다. 청년대학생 때는 진리에 대한 갈망과 도전의식이 가장 활발한 기간이다. 청년대학생들이 성경 공부하다가 정명석을 재림예수로 깨닫게만 되면 학업이고 가족이고 취직이고 전부 뒷전이다. 청년대학생들은 재림예수를 만났다는 감격에, 바울이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여긴 것처럼, 그리고 베드로가 그물과 배를 집어던지고 예수님을 따랐듯이,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학생은 학과 친구를 어떻게 하면 전도할까만 생각한다. 학점은 중요하지 않다. 취직은 B급이나 하는 것이다. 학과 친구는 전도의 대상일 뿐이다. 가족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도할까 포교의 대상일 뿐이다. 반대하면 부모라도 그냥 사탄의 하수인으로 보이고, 심지어 원수가 된다. 어떤 대학생이 30개론을 듣고 정명석의 사명을 깨닫게 되면, 그 학생은 한명, 한명 전도하여 동아리를 만든다. 그 학생은 전도하기 위해 대학을 다닌다. 동아리에서 30개론을 가르치고, 계속하여 재생산이 일어난다. 전도된 학생이 다른 대학의 친구를 전도한다. 그 학생도 자기 대학에 가서 역시 동아리를 세운다. 그렇게 해서 전국적으로 대학마다 동아리가 들어가게 된다. 청년대학생들은 부모들이 주는 돈을 가지고,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땅 끝까지 이르러 다시 오신 재림주님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다. 2) 청소년들과 문화선교 최근에 JMS는 7만 선교 목표를 발표 한 바 있다. 정명석이 출옥하기 전까지 7만 명 정도 만들어서 선생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한층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전에는 대학가에서 주로 포교하였으나, 지금은 중고등학생들에게로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청년대학생들은 이미 JMS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포교가 쉽지 않다. 힘들게 포섭하여 교리공부 시키다가도 ‘여기가 JMS다!’라고 깨닫는다면 중도포기하기 때문에 대학생 이상의 성인들에게는 포교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자연히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악평도 듣지 않았고,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하는 단순함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 누가 친절하게 대해주고 운동도 가르쳐 주고, 밥도 사주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최고다. 교리는 상관없다. 특별히 예수님에 대한 충성도도 없거나 낮다. 누가 자기에게 재미있게 해주고, 잘해주는가가 관심사일 뿐이다. 오늘 자기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주는 사람이 더 좋다. 그렇지만 중고등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성경공부로 연결시키는 일은 드물다. JMS는 문화선교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운동을 통해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야구나 축구를 통해서다. JMS 회원 중 국가대표나 프로구단 출신의 야구선수가 전국대회규모의 야구대회를 열어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야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주말마다 훈련시킨다. 그리고 같이 샤워하고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진다. 친해지면 인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30개론을 조금씩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은 평소 야구를 너무 하고 싶어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JMS는 그런 청소년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필요를 채워주며 전도하는 것이다. 야구 유니폼도 다 맞춰 입고 제법 규모 있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기가 그런 자리에 선수로 참가하여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단이고 사이비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그렇게 신경써주는 JMS단체가 너무 고맙게 생각된다. 게다가 교리공부를 통하여 정명석은 예수님처럼 죄가 없지만 악평자들의 모함으로 누명을 쓴 것으로 배우게 된다. 청소년들은 눈물을 흘리며 JMS를 힘들게 하는 기성교회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게 된다. 축구는 더 세밀하게 조직되어 있다. 초등부부터 전국대회규모의 축구시합이 있다. 꿈나무 축구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합숙훈련도 하며 그 조직에 녹아들게 한다. 그리고 축구대회도 지역마다 있고, 전국단위의 축구대회도 있다. 그리고 JMS의 전국체전 때는 세계에서 자신들의 국기를 들고 입장하여 올림픽을 방불케 하는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평소 때는 조기축구나 일요예배 후 교인들끼리 모여 축구를 많이 한다. 축구에 한번 맛 들인 사람들은 축구하자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들은 축구가 좋고, 사람들이 너무 좋고, JMS라는 단체가 너무 좋다. 그곳을 떠나서는 죽을 것 같다. 떠나봤자 할 것도 없고 그동안 재미있게 지냈던 인맥과 결별하는 것도 싫다. 이탈하면 자기혼자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긴다. 오히려 JMS에서 잘릴까봐 두려움이 생기고 소속감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여자들은 치어나, 모델, 째즈, 무용 등 예술을 통하여 전도한다. 정명석이 1980년대 초반, 고려대와 연세대 정기전을 참관하면서 양교의 화려한 치어 쇼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뒤로 JMS내에 남녀 치어 팀 들이 수십 개가 생겨났다. 치어리더가 되려면 여자들은 키 170, 남자들은 180은 되어야 한다. 해마다 전국 치어대회를 열기도 한다. 자체에서 우승하기도 쉽지 않다. 치어도 본부 치어가 있고, 지방 치어가 다 따로 있다. 정명석이 축구할 때면 본부 치어들이 나선다. 그 깊은 월명동 산골짝에서 밤이건 낮이건 정명석이 축구하면 치어복장을 한 치어걸들이 쭉 선다. 여자 회원들은 치어리더가 되고 싶어도 키가 작으면 될 수가 없다. 치어리더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정명석이 축구할 때마다 수십 명의 미녀치어리더들이 열심히 응원을 하니, 동네 축구지만 마치 프로축구나 국가대표 경기하듯 재미있게 바라보는 것이다. 모델은 슈퍼모델 대회가 따로 있다. 여자들 키가 178이상 되어야 한다. JMS의 수퍼모델 대회에 가보면 우리나라에 저렇게 키 크고 예쁜 여자들이 많이 있었나 하고 놀랄 정도이다. 정명석은 욥의 딸들이 동방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예뻤다고 했듯이, JMS의 회원들이 모든 종교 가운데 제일 예쁘다고 자랑하였다. 정명석은 이와 같이 성경을 통해 자기자랑을 한다. 그러나 참된 목사라면 성경 가지고 예수님을 자랑한다. 일반교회에서 야한 옷 입고 슈퍼모델 대회 같은 것 개최하기는 좀 부적절해 보이지만, 젊은 아가씨들이나 십대소녀들의 ‘예술성’과 ‘끼’를 발산케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아이돌 그룹에 광란하며 반응하는 십대들의 끼를 교회는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금식기도 해서 파김치 만들어 버리는 것이 답일까? 아니면 신나는 찬양을 통해서 발산해야할 것인가? 교회도 재미있어야 하지 않은가? 청소년들을 교회로 가게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가? 마치 시동 꺼진 차를 뒤에서 밀고 가듯이 힘들다. 그러나 그렇게 밀지 않아도 시동 걸린 비행기처럼 일반교회로 날아가게 할 수는 없을까? 이단들은 하나같이 예술성이 발달했다. 통일교의 리틀엔젤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신천지의 마스게임이나 카드섹션 등도 볼만한 광경을 연출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단들은 행사 때마다 식전행사로서 올림픽의 식전 행사를 방불케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예술제를 보면서 ‘역사가 시작 되었구나’ 하면서 감격한다. 그 외에도 연극부가 있어서 정명석의 설교를 연극으로 재현해 보이기도 한다. 만화부도 정명석의 설교를 만화로 표현하기도 하고, 설교 때마다 삽화를 넣어 이해를 돕는다. 그 외에도 뮤지컬부 등 다양한 부서들이 있다. 3) 해외 선교 (1) 미국 미국은 총신대 졸업한 전도사가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 미국선교사가 카펫트 청소하며 힘들게 한명 두명 가르쳐 수료시켰다. 수료하면 한국으로 무조건 다녀가게 한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방문은 성지순례와 같은 일이다. 외국인들이 정명석에 대해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기면 한국의 선교사들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정명석은 철저하게 그 나라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맡기는 전략을 쓴다. 처음에 한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토사구팽 당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선교사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속셈도 깔려 있다. 초대 미국 선교사는 JMS를 이탈하였다. 미국은 현재 200명 내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2) 일본 일본은 고려대를 졸업한 한 학생이 일본 쯔꾸바 대학으로 유학하면서 시작되었다.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주로 포교활동에 전념하였다. 곧 바로 일본대학생 10명 정도를 전도하여 한국에 데리고 왔다. 그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후 일본은 몇 백 명으로 불어났고, 선교사의 영향력은 너무 컸다. 통일교의 초대 일본 선교사가 일본을 개척한 다음에 배신하고 나갔다는 것을 염두에 둔 정명석은 JMS초대 선교사도 그럴 것이 염려되었는지 선교사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하였다. 그 일본선교사는 정명석이 자기를 일본회원들과 이간질하는 말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사업을 한다는 미명하에 JMS를 이탈하여 나갔다. 일본은 현재 3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JMS는 밖으로는 전혀 교회 같지 않다. 그냥 사회단체처럼 보인다. 예배가 끝나면 배구나 각종 스포츠를 통해 문화선교를 많이 한다. 그들은 자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끈끈한 정을 JMS를 통해 맛보고 있다. 그들은 방송에서 JMS의 비리가 아무리 많이 폭로되어도 별로 흔들림이 없다. 일본은 유난히 엘리트 계층이 많다. 처음부터 대학생들을 포교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20-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중견간부들로 성장했다. (3)대만 대만도 JMS에게는 특별한 나라이다. 천수이벤 전 총통이 유명해지기 전에 젊은 시절에 월명동을 방문한 바 있다. 그는 그 후에 국회의원이 되고, 타이페이 시장이 되고, 대만 총통이 되었다. 천수이벤 총통은 JMS의 대만 행사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정명석은 천수이벤 총통도 자기 제자라고 적극 홍보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정명석이 중국에서 체포되었을 때 불리하게 작용되기도 하였다. 천수이벤은 그 후 부정부패로 20년 형을 선고 받고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를 JMS로 전도했던 비서관도 질병으로 요절하였다. JMS에서는 그가 총통일 때는 그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홍보하였으나, 지금은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대만은 JMS내에서 일본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대만과 일본 지도자들은 서로 경쟁하며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대만도 2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4) 동남아, 기타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JMS는 동남아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은 정명석이 일찍부터 공들인 나라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장년부가 홍콩으로 이민 가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나중에 정명석은 홍콩별장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고, 조사 받던 중 중국으로 밀항하게 된다. 말레이시아도 JMS의 국제 행사를 개최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모델이나 치어 등의 문화선교로 3000명을 동원한 바도 있다. 그 외에 전 세계 50개국에 걸쳐 뻗어 있다. (5) 해외선교의 특징 JMS의 해외선교는 철저하게 현지인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반교회는 주로 교회에서 선교후원금을 보내주지만, JMS는 한국본부에서 대주는 일이 거의 없다. 이민을 가면 그 사람이 바로 선교사로 임명 받는다. 혹은 학생들이 유학을 가면 그 학생이 바로 선교사다. 그 유학생들은 부모들이 대주는 돈으로 공부는 소홀히 하면서 선교를 열심히 한다. 유학생이 선교사이고, 이민자가 바로 선교사이다. 장년부들도 이민 가서는 아르바이트 하면서 선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단의 부담 없이도 선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지인이 몇 명만 되면 한국에서 간 사람들은 뒤에서 관리만 하고, 담임 교역자는 전부 현지인들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몽골 같은 곳을 예로 들어보면, 일본의 한 여학생이 부모에게 몽골로 유학가고 싶다고 말하여 부모의 돈으로 몽골에 유학 갔다. 처음부터 그녀는 유학보다는 선교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녀는 혼자 30-40명을 전도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몽골은 밥만 먹여주면 얼마든지 더 많이 전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몽골의 대표자 몇 명이 한국으로 성지순례를 왔다. 경비는 몽골에서 사업하던 한국 회원이 대줘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한국에 성지순례를 와서 크게 감동받고 돌아갔다. JMS 선교는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에 의하기 보다는 자발적 성격이 강하다. 일본 여학생이 몽골에 가서 선교하는 것이나, 한 캐나다 학생이 남아프리카로 가서 그곳에서 선교를 하여 몇 십 명을 만들어놓기도 하였다. 한국 교단에서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 자발적인 선교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발적인 선교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정명석의 사명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땅 끝까지 가서 전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30개론을 새 복음이라고 하면서 가르치고 있다. 4) JMS의 구원관 JMS의 구원관은 카톨릭의 연옥사상과 비슷하다. 구약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선영계, 구원받지 못한 영들은 음부로 간다. 타종교나 선한 양심으로 산 사람들도 선영계로 간다. 거기서 죽어서라도 예수 믿으면 낙원으로 올라간다. 심지어 음부에 가서도 예수 믿고 낙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 정명석에 의하면, 선영계에 간 영혼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 땅에서 메시야를 기다렸듯이, 선영계에 가서도 계속하여 메시야를 기다린다. 거기에서라도 예수 믿으면 낙원에 올라가게 된다. 불교인도 천국이나 낙원은 못 가더라도 선영계는 간다. 석가모니도 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다. 기독교가 전깃불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촛불이나 호롱불 정도는 된다. 그러므로 불교라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JMS의 구원론은 상당히 포용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다원주의이고 예수님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부정하게 한다. 마귀는 이와 같이 그럴싸한 교리로 다가온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죽은 다음에는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죽은 다음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죽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가 살아서부터 믿겠는가? 죽어봐서 거기서 믿으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죽은 다음에 기회가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살아서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천하인간에 예수 외는 구원자가 없다. 시대별로 구원자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5) JMS의 율법주의 JMS의 율법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선악과를 여자의 성기로 풀기 때문에, 성교하는 것은 원죄를 짓는 것으로 본다. 그들은 성교하지 않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갖게 된다. 성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게 된다. 성교는 오직 정명석의 허락받고 결혼해야 가능하다. 정명석의 허락 없이는 7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려야 한다. 성적으로 깨끗해지기 위하여 점점 성욕자체를 금기시하게 된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억눌러야 하고, 그런 감정이 생긴 것 자체를 회개기도 해야 한다. 당연히 이성교제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유치원 때 남학생의 손잡은 것 까지 회개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다가 약간의 신체접촉이나 자기도 모르게 로맨틱한 상상만 했어도 엄청난 죄책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너무 높은 수준의 실천과 성윤리를 강조하다 보니,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는, 죄책감과 죄의식이 너무 심해 정신분열이나 정신질환에 시달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JMS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지 않는다. 천국에는 검은 색깔이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부터 천국 생활해야 한다며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정명석이 말하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교역자가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면 불경죄로 인식될 수 있다. 그들은 밝고 환하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교회 올 때는 당연히 하나님 뵈러 오는데 최고로 신경 써서 잘 입고 가야한다. 청와대에 대통령 만나러 간다면 그렇게 옷 입겠느냐? 그런 율법적인 가르침을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철저한 율법주의에 단련된 JMS회원들은 일반교인들을 볼 때 자유분방한 민병대처럼 우습게 보는 것이다. JMS사람들은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일반교회에서 목사가 교인들에게 커피 마시지 말라고 하면 아마 다른 교회로 떠나든지 아예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도 속출할 것이다. 그러나 JMS 회원들은 정명석의 먹지 말라는 한 마디에 마시지 않는다. 아마도 몰래 혼자 집에서 마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그는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에 꺼림하게 되고, 회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마시지 말라는 이유는 건강 때문에 시작했지만, 정명석이 말했기 때문에 구원받기위한 교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단들은 이와 같이 회원들의 생활의 세미한 부분까지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 라면, 과자, 탄산음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먹지 않는다. 술 담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술 한번 마시면 지옥 가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목숨 걸고 술을 마시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만족감을 느끼고 교만과 자랑이 싹트는 것이다. JMS의 율법주의는 사람들을 조이면 조일수록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우리 선생님은 진짜 하늘 사람이야 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날 일반 정통교회에서도 어떤 공로나 행위가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신율법주의가 판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엡2:8). 6) JMS의 윤리의식과 거짓말 정명석은 회원들에게 철저한 율법주의를 요구하지만 정작 자기는 무법 방종주의나 상황 윤리자처럼 행동한다. 정명석에게 절대적이란 것은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고 지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새벽에 일어났을 때 기도하기 전에 절대로 다른 사람과 먼저 대화하지 않는다. 대변 보고 오른 손으로 뒤처리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른 손은 사람들에게 안수기도해주는 손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껌 같은 것도 한번 안 씹기로 한 후로 절대로 씹지 않는 것 등이다. 정명석의 그런 겉모습에 사람들은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하고 감동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는 무법 방종주의자나 상황 윤리주의자처럼 행동한다. 예를 들면 상사병 걸린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그 아들의 연인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아들의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죽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정명석은 아들을 살리려면 들어가야 한다고 강의한 바도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는 사는 것이 우선이다. 그의 그런 윤리의식이 성 스캔들을 양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서라면 여자회원들과 간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간음이 아니라 구원행위이고 은총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짓말도 할 수 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거짓말해도 좋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모사(謀事)라는 미명하에 선한 행위로 포장된다. 그러나 거짓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JMS 회원들도 점점 거짓말과 모사를 많이 쓰다 보니 서로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명석이 어떤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 속에는 ‘선생님이 지금 무슨 모사 쓰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다. 어떤 때는 정명석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회원들이 믿지 않자, 정명석은 “이것은 모사 아녀!”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JMS회원들은 테러도 할 수 있다. 테러도 주님을 증거 하는 일이니 선한 일이다. 오히려 나간 사람들이 정명석의 비리를 폭로해도 가만히 있으면 정명석은 ‘너희는 내 제자도 아니다’ ‘지금 가만히 앉아서 뭣들 하느냐?’ ‘내 심정 맞춰서 행동하는 놈 하나 없느냐’ 며 테러를 부추긴다. 그것이 바로 테러를 명령하는 사인인 것이다. 그런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강한 충동감을 느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적으로 시키면 테러 사주로 걸리니까 회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형식을 띠어 테러하도록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탈자들에 대한 테러가 여러 번 발생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상숭배도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는다. 가족을 전도하기 위해서라면 명절에 조상들에게 넙죽넙죽 절하라고 허용하기도 했다. 마음만 우상숭배 안하면 되지, 겉으로는 절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냐? 정명석은 자기의 그런 무법방종주의적인 행동을 이치(理致)라고 하였다. 그 말은 자기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통일교를 줄기와 같은 원리라고 한다면 자기는 가지와 같은 이치라고 하였다. 정명석은 거짓말의 달인이다. 그의 거짓말은 법정에서도 발생했다. 검사가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라는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당신이 중심인물이오? 라고 묻자 그것도 “아니오”라고 했다. 그것은 평소 자기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JMS 사람들은 선생님께서 지금 모사 쓰고 계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네가 왕이냐?” 하는 빌라도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셨다(요18:37). 그리고 예수님은 도망가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정명석은 도망 다니다가 잡혔다. 정명석은 방송이 처음 터졌을 때 부리나케 해외로 도주하였다. 그러나 회원들에게는 해외 선교하러 나갔다고 말하였다. 검사가 “당신이 그렇게 무죄하다면 들어와서 의혹을 풀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정명석은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들어왔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안 잡힐 줄 알고 도망 다녔다는 말인가? 자기가 죄가 없는데 누명을 썼다면, 그리고 순수하게 해외선교 나간 것이라면, 이렇게 강제송환되기 전에 진작 들어와서 의혹을 풀었어야한다. 정명석은 자기가 재림예수니까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림예수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황윤리는 선한 일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정명석의 거짓말은 그냥 성범죄를 숨기기 위한 악한 거짓말일 뿐이다. 7) JMS의 사업 JMS는 월명관광(버스임대업), 보험, 화장품, 생활필수품 등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으나, 통일교나 다른 이단들에 비해서 사업성은 크게 떨어진다. 휴대폰 사업이나 부동산 사업 등 여러 가지로 투자했으나 다 망했다. 사기도 여러 번 당하였다. 정명석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물질주면 타락할까봐 사랑해서 주시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돈 많은 사장이 본부인과 둘째 부인에게는 물질을 주지만 마지막에 얻은 부인에게는 사랑만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유대교(본부인)와 기독교(둘째 부인)에게는 물질 주셨지만 JMS(마지막 젊은 부인)에게는 사랑만 퍼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8) JMS의 봉사활동 JMS는 태안기름유출 사건이 났을 때 어떤 단체들 보다 최장수 봉사를 하였다. 다른 단체들은 휙 왔다 가고 휙 왔다 가고 하였지만, JMS 회원들은 끝까지 남아 현지인들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들었다. JMS 의료팀은 대민 봉사활동을 자주 한다. 그리고 월명동에서 지역주민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한다든가, 문화공연을 통해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전부 JMS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누가 되었든지 간에 맛있는 밥 주고 관광시켜 주고, 공연 보여주고, 의료서비스 제공해주는 사람이 최고로 생각 들게 마련이다. (사)밝은 미소운동이라든지 (사)빛사랑청소년회 등의 법인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2002년 대통령 표창장도 받은 바 있다. 이단들은, 비단 JMS 뿐만 아니라, 대민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9) JMS의 기적과 표적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이라도 미혹하리라”(마24:24)고 하셨다. 모세 앞의 애굽 술객들도 모세와 똑 같이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었다. 정명석도 그런 것이 있었다. 정명석이 눈이 오라고 기도했는데 눈이 온 사건이 있었다. 정명석이 서울에 올라와 성향원이라는 허름한 집에서 무상거주하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자, 겨울에 눈이 오면 차마 내쫓지는 못할 것이라며 눈이 오게 기도하자고 한 것이었다. 겨울이라서 우연히 눈이 온 것이었을까? 두 번째로 나가라고 한 날에도 눈이 오라고 기도했는데 눈이 왔다. 그리고 한번은 여름 태풍이 북상 중에 있었는데, 정명석이 설교 중에 “내가 태풍 눈을 빼 버릴꺼여!” 하며 눈 빼는 액션을 취하면서 설교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뉴스를 보는데, 아나운서가 “북상하던 태풍의 눈이 빠졌습니다.”라고 멘트를 하였다. 정명석이 서해안 백사장에서 청년회원들과 배구를 하는데 그날 밀물 시간이 되었는데도 물이 올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월명동에서 행사를 하다보면 구름이 떠서 독수리 모양도 만들고, 사람얼굴도 만든다. JMS회원들은 항상 오늘은 독수리 구름이 뜨지 않을까 하고 이미 기대 심리가 높다. 독수리가 뜨면 JMS의 상징이 독수리니까 좋아한다. 정명석을 동방의 독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 구름이 뜨면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감격한다.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보면 금방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기적과 표적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예수님 외는 아니라는 강한 믿음과 신앙의 정조가 있어야 한다. 10) JMS의 신비주의와 영적 현상들 JMS는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한 단체다. 정명석의 설교의 대부분은 자기의 꿈 이야기이다. 그가 받았다는 30개론 도표가 환상으로 계시 받은 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JMS 사람들도 “너 왜 자냐?”고 물으면 “꿈꾸려고요” 라고 대답할 정도로 계시받기를 갈구한다. 요즘은 계시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이 나타났다. 토마스 주남의 “천국은 반드시 있습니다”는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나타났다. 그리고 캐더린 백스터의 지옥간증, 천국 간증과 천주교 안나 수녀의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정명석의 홍위병들이 되어 “천국 가니까 예수님과 선생님이 나란히 보좌에 앉아 있더라”, “생명책을 보았는데 누구누구의 이름이 있더라”, “이번에 새롭게 JMS신부들을 위해서 황금성을 만들었더라” “나가서 선생님을 악평하는 자들의 영혼들이 지옥에서 혀가 난도질 하는 광경을 보고 왔노라“ 고 간증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JMS 회원들 가운데 예수님을 못 보았다고 하거나, 천국지옥을 견학하지 못하는 사람은 명함도 못 내민다. 자연을 보더라도 그냥 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하여 무엇을 계시하는가 생각하며 의미를 찾는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떨어지는 정명석의 계시와 자기들이 받는 환청이나 환상, 꿈에 더 의미를 둔다. 사탄도 광명한 천사로 분장하고 나타나(고후11:4), 사람들에게 천국지옥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40일 금식하신 예수님께도 사탄이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하면 다 준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이단의 교주들이 계시 받았다는 주장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다. 성경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 떠나서 어떤 개인의 영적체험이나 신비경험이 우리의 신앙규범이 될 수 없다.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이다. 11) 월명동 개발과 약수 정명석은 10년 이상 월명동 개발에 온통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앞산 돌 조경이 다섯 번이나 무너졌다. 원래는 시멘트 콘크리트로 계단을 만들려고 했으나 환상이 보이면서 하나님께서 지금과 같은 돌로 쌓으라고 하셨단다. 땅을 파다가 보니 낙타 모양의 바위도 나왔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러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이 낙타타고 왔듯 재림예수인 자기의 출현을 그와 같은 상징물로서 보여준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돌 조경은 천국의 하나님 보좌의 형상이고, 앞에 있는 돌들은 네 생물이 보좌 앞에 있듯이, 네 가지 형상의 돌들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가관이다. 어찌 정명석의 생가가 하나님의 보좌가 될 수 있으며 4돌이 4생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적 근거가 없다. 하나님 보좌와 정명석의 생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솔로몬은 그 멋진 금성전을 짓고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시기에 부족하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하였다. 그런데 정명석은 자기가 쌓은 돌 조경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하는가? 가당치 않다. 월명동 잔디밭 밑에는 샘물이 있다. 어떤 권사가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그 물이 약수라고 가르쳐줬다고 한다. 정명석은 어떻게 자기에게 먼저 안 가르쳐주고 권사에게 먼저 계시해 줄 수 있느냐며 말하기도 하였다. 독일 청년은 그 물을 마시고 불치병이 나았다고 청중 앞에 간증하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았다고 하였다. 정명석은 하나님께서 월명동을 유명하게 하시려고 약수를 주셨다고 좋아했다. 정명석은 자기도 이가 아플 때 그 물을 머금고 있으니까 마치 마취주사를 맞듯이 통증이 가라앉더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정명석은 물의 효능을 너무 신봉한 나머지, 한번은 눈이 아프자 그 물을 발랐는데 오히려 눈이 충혈되기도 하였다. JMS 사람들은 그 물을 쉴 세 없이 떠 날라서 마신다. 박태선이 기도한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하였고, 할렐루야 기도원에서 능력의 생수라고 장사하여 팔더니만, JMS에서도 치유의 약수터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복음이 없는 곳에서는 이와 같이 비본질(非本質)로 본질(本質)을 가려서 복음을 못 보게 한다. 월명동 수련원에는 그리스의 판테논(만신전)을 닮은 본부건물이 들어서 있다. 월명동은 본래 달밝골인데 정명석이 월명동이라고 개명하였다. 월명동은 정명석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그곳은 그들에게 성지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교주들은 공통적으로 생가를 개발하여 성지화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JMS는 최근에 분당에 38억 자리 건물도 샀다. 원래 일반교회로 쓰던 장소인데 헐값에 샀다. 그리고 지역마다 교회를 짓거나 일반교회 건물을 매입하는 추세이다. 일반교회 가운데 무리한 건축으로 말미암아 은행이자를 못 낸 교회 건물들이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성전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일반 정통교회에서는 외적 예배당의 건축보다는 내적 성전건축에 더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12) JMS의 자기 증거 (1) 유별난 자기 사랑 정명석은 자기 증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그는 축구를 하더라도 혼자 50골, 60골씩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어떤 때는 골키퍼를 30명씩 세운 뒤 골인시켜놓고 즐거워한다. 물론 제대로 막고 제대로 수비하면 정명석은 한골도 넣기 힘들다. 정명석의 팀은 A급 선수출신들이고, 상대팀은 B급의 아마추어들이다. 실력대로 붙어도 B팀이 질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B팀 선수들은 정명석이 볼 잡으면 막는 시늉만 한다. A팀 선수들은 슈팅할 수 있는 노마크 찬스가 와도 정명석에게 패스하여 정명석으로 하여금 슛하게 한다. 게다가 골키퍼는 반대방향으로 넘어지고, 들어간 다음에 슬라이딩한다. 치어들은 팔짝팔짝 뛰면서 골인을 축하한다. 빵빠레가 울려 퍼진다. 사람마다 이것은 김일성축구라고 한마디씩 한다. 그는 축구 유니폼을 입어도 혼자만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요셉만 채색 옷을 입었듯이, 자기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2) 시인 정명석 시를 쓰더라도 자기를 직접 증거하는 시들이 많다. 책을 쓰더라도 주로 독자들은 JMS회원 들이다. 정명석의 <인물났네>라는 다음의 시를 보자. 자신을 인물(人物)이라고 직접 찬양하고 있다. 그의 시는 주로 자기를 찬양하는 시이다. <인물(人物)났네> 인물(人物) 났네 인물났어. 백년이나 묵은 토담집에서 저 기와 요처(要處) 고대광실(高臺廣室) 그 높은 집도 하고 많은데 하필이면 첩첩산중 두메산골 토담집에서 인물이 났다니! 하기야 저 아브라함 링컨은 통나무 집에서 났고 예수는 베들레헴 촌락 움막집 말 마구간에서 났다지. 아! 고금역사 이후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영웅열사 성현성자들이 다들 그랬었지 움막이면 어떠하고 토담이면 어떠하고 통나무 집이면 어떠하랴 그저 천품 좋고 재질 능하고 제 때 나면 그만이지 지자(知者)는 강을 좋아하여 강가에서 낳고 인자는 산을 좋아하여 산에서 난다지 그렇고 그렇고 말고 그래서 그런 곳에서 난거지 아! 전설에 얽힌 대둔산 영산준령 인대산 노령산맥 쭉뻗어내 맞닿은 저 두메산골 월명동 백년이나 묵은 토담집에서 인물났네 인물났어 작고도 작은 마을에서 지구촌의 큰 인물이 났네 (1989년 1월 16일 영감의 시-선생님의 과거와 미래를 회상하며) (3) 수십 번의 죽을 고비 월남전에서 수십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도 자기를 오늘날처럼 쓰기 위하여 특별히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정명석이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베트콩들의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목욕하고 있었는데, 베트콩 3명이 따발총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안 나와 베트콩들이 한국군에 자수하여 그 사실을 말함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은 베트콩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는데 터지지 않았다고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막대기인 줄 알고 집었는데, 막대 수류탄이었다고 한다. 누가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던졌는데 바위 구멍 속에 들어가 터져서 살게 되었다는 식이다. (4) 30개론 도표제작 30개론 도표를 금산에 있는 도표 화가에게 부탁하여 그리게 하였으나 자기에게 품삯 줄 돈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 대신 도표 하나하나를 설명하여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사람이 “당신 이 도표 가지고 나가서 성공 못하면 나한테 몽둥이로 맞아 죽을 줄 알아!”라고 하더란다. 그 말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처럼 들렸다고 한다. (5) 21년 수도생활 자기가 21년 동안 수도 생활한 것이 처음부터 21년 동안 하라고 했다면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조금만 더하면 군(郡)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 그리고 “또 다시 조금만 더하면 도(道)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고 하고, 그 기간이 끝나자, 또 다시 “조금만 더 하면 네 나라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 또 다시 “세계에서는 큰 소리 치겠다.”고 했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21년을 수도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다 못 배웠으나 앞으로 계속 배워가면서 사명 감당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6) 수많은 귀신들 한번은 정명석이 영안으로 보니까 대둔산부터 인대산까지 귀신들이 가득했다.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귀신들이었다. 그 귀신들이 하는 말이 ‘저 놈을 죽여야 한다. 저 놈이 세상 나가면 우리들은 끝장이다’고 하면서 죽이는 시늉을 하더란다. 그러나 그 귀신들이 막상 몇 미터(m)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정명석의 이런 비슷한 간증들은 참으로 많다. (7) 영계 학교에서 1등하다 정명석이 영계학교에 처음 가보니 세상의 날고 기는 도사, 신령한 사람들은 다 와 있었다고 한다. 처음 수업을 듣는데 거의 한 글자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가면서 조금씩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다 알겠더란다. 영계학교에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은 정명석 자기 혼자 남게 되었고, 그래서 1등 하여 재림 사명 받아왔다고 한다. (8) 붓 받은 사건 한번은 정명석이 예수님께서 그림을 그리는 대로 따라 그리고 있었다. 동그라미 그리면 동그라미 그리고, 세모 그리면 세모...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갑자기 사라졌다. 얼굴을 들어보니 저기 앞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려고 하더란다. 그래서 가시려면 가신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야할 것 아니냐?고 했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제 너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다. 이것이 마지막 붓이다”고 하면서 여러 개의 붓 가운데 가장 큰 붓을 뽑아서 던져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정명석이 그 붓을 받았다고 한다. 정명석은 그 붓이 무엇일까 고민하였고, 화가가 되라는 말씀인가 생각하다가 누가복음1장 2절에 데오빌로 각하에게 말씀을 적으려고 붓을 들었다는 글을 읽고 아하 말씀의 붓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정명석은 그 뒤로 입만 열면 말씀이 술술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가 예수님께 받은 붓은 가장 큰 붓으로서, 더 이상 해석할 것이 없는 마지막 나팔과 같은 큰 말씀의 붓이라고 하였다. (9) 꿈에 구직 여행을 떠나다. 정명석이 하루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기도하다가 잠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나타나서 밤새토록 수십 군데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장로님이 경작하고 있던 제주도 감귤 밭이었다고 한다. 그 장로님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싱글벙글하며 어찌 이런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까 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는 사람 하나 네 농장에 맡기려고 데리고 왔다고 하더란다. 그러자 그 장로는 예수님의 부탁인데 자기가 어떻게 거절하겠느냐며 얼마든지 맡기라고 하더란다. 그러나 정명석이 가만히 보니까 귤 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평생토록은 못하겠더란다. 그래서 싫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아무 부담 갖지 말고 네가 싫다면 싫다고 하라시며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한다. 그러기를 40-50군데 했는데도 결국은 다 못 마땅하더란다. 그래서 정명석이 저는 평생 예수님만 따라 다닐래요 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 따라 다녀도 좋으나 배고플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예수님만 따라가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사명하게 되었노라고. (10) 골키퍼 하다가 군화 발에 채인 사건 정명석이 월남 다녀온 후 동네에서 축구시합이 있었다. 그때 정명석이 골키퍼를 하고 있었다. 정명석이 하도 날렵하게 볼을 잡아내곤 하자 상대방 선수가 일부러 정명석의 머리를 군화발로 있는 힘껏 찼다고 한다. 정명석은 떼굴떼굴 굴러서 쓰러졌다. 주변에서 죽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 누워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단다. 그 사람이 너를 찬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찼다고 하시더란다. 왜 차셨느냐고 물으니까, 배신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냥 죽여야 하는데 죽는 이유라도 알고 죽이려고 왔다는 것이다. 무엇이 배신입니까? 고 묻자 왜 네가 아나운서 되려고 하였느냐고 물으시더란다. 정명석은 아나운서가 되어 방송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였다고 한다. 자기가 예수님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한 것인데, 그게 어찌 배신이란 말입니까? 아니다. 배신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도 배신이다. 나는 너를 세계적인 사명을 주어 쓰려고 했는데 무슨 난데없는 아나운서냐 라는 것이다. 정명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한번만 살려주면 세상사람 다 전도하여 드릴 테니 살려달라고 간구했다는 것이다. 그때서야 예수님의 화난 얼굴이 살짝 돌아오면서 어떻게 전도하려느냐? 고 묻더란다. 그래서 한명을 제대로 가르쳐서 구원시키고 그가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해서... 나중에는 전도할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 이와 같이 전도해서 지금 JMS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때 형들은 자기가 죽을 줄로 알고 죽어도 한이나 없게 수술하자고 하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저 수술대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여 수술 받지 않고, 예수님이 고쳐줘서 살았다고 한다. 형들이 발로 찬 사람을 살인미수죄를 적용하여 벌하려고 하였으나 자기는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사람을 용서해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 세상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아나운서가 되어 이렇게 새 시대 새 말씀을 전하게 되었노라고 간증하였다. 다른 교주들도 이와 유사한 간증들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다 하고 있다. 정명석의 형들은 자기 동생이 축구하다가 발에 채인 뒤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모친은 그 외에도 정명석이 옛날에 미친 행동을 했었다고 말하였다. (11) 정도령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정명석은 자기야 말로 정도령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정(鄭)씨가 같고, 도령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령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인데 자기는 진리를 전하고 있지 않느냐? 자기야 말로 결혼하지 않았고, 진리를 전하는 정도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대산 밑에 옛날부터 큰 사람이 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자기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둔산에서 두 문을 통과하여 도를 닦는 사람이 도인이 되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원효가 문(門) 하나를 통과하여 도를 닦았는데 그곳이 대둔산의 태고사 절이라면, 자기가 기도한 곳이 바로 독수리 봉인데 그곳은 돌 문(門) 두 개를 통과해서 들어가는 장소라고 하였다. 자기가 그곳에서 기도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였다. 자기가 깨달은 도는 마치 “설한풍(雪寒風) 속의 생화(生花) 한 송이”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셨다고 한다. 1999년 8월 초 정명석은 프랑스 파리의 상공에 떠 있었다. 상공에서 바라본 파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때 음성이 들리기를 “겉은 천국이나 속은 지옥이로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해였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다 바캉스를 떠나고 도시 전체가 텅텅 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정명석은 그곳에서 체전을 열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와서 이런 평화의 체전을 열고 있으니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주인공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였다. 정명석은 자기를 성경의 재림예수로 믿었기 때문에 한국의 정도령도 자기이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주인공도 자기라고 믿었던 것이다. 정명석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전설이나 예언이 있다면 그것은 전부 자기를 두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1)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JMS의 포교전략과 대책 ▲ 김경천 목사 (전. JMS 부총재) 1. JMS란 무엇인가? JMS란 원래 정명석의 영어이니셜이다. 그래서 초창기의 회원들은 가슴에 "JMS"라는 뱃지를 달고 다녔었다. JMS는 정명석의 이니셜이 분명하지만, JMS측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새벽별(Jesus' Morning Star)의 이니셜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JMS측에서는 계2:28에서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이긴 자에게 새벽 별(morning star)을 주리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자기들이야말로 바로 새벽별을 받은 이긴 자들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공식명칭도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이라고 하였다. 정명석은 JMS단체의 이름을 여러 번 바꾸었다. 방송이나 언론에 부정적으로 비칠 때마다 바꾸곤 하였다. 처음에는 애천 교회로 시작하여,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 국제크리스찬연합, 기독교복음선교회로 이어지고 있다. 법인으로는 동서선교회가 있다. 동서선교회 이름으로 월명동 수련원 땅을 관리하고 있다. 월명동(정명석의 출생지)은 외부명칭은 수련원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성지 땅’으로 부른다. JMS교회들은 예수교 감리회로 간판을 걸기도 하고, 장로교라고 달기도 한다. 그리고 JMS교회는 간판이나 십자가 없이 창문에 교회 이름만 썬팅으로 마무리하고, 자기들만 알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신입생들은 처음부터 예배에 참석시키지 않는다. 되도록 30개론 다 듣고 수료해야 참석하게 한다. 2. 정명석은 누구인가? 1945년 3월 16일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서 정팔성과 황길례 사이에서 6남 1녀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위로 장남 정oo목사(성결교)와 차남 정oo목사(통합) 등이 일반교회 목사인 기독교집안에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 집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장남이 어려서 동네에서 어린이들끼리 ‘춘향이 놀이’(무당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쥐고 있던 대가 흔들리며 ‘나는 베드로다. 예수를 믿어라’는 음성을 들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정명석이 태어난 그 동네는 일제 때 금 광산으로 인해 제법 북적거리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화전민들만 남아 살던 지역으로 집이라고는 3채 밖에 없던 두메산골이었다. 형들은 공부하러 도시로 떠나고, 동생들도 돈 벌러 다 떠나고, 홀로 늦게까지 남았던 정명석은 나무하러 가서 기도하고, 굴에서 기도하고, 대둔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나는 못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나는 못 생겼습니다”라고 신세한탄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때, “누가 아니래?! 그렇지만 이제부터 내가 너를 가르쳐 주마”라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너는 처음에는 창피하지만 배우고 나중에는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굴속에서 주로 기도를 하였는데, 가을에 굴에 들어갔다가 그 이듬해 나오기도 하면서 초인적인 수도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틈틈이 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한번은 너무 어려워 땅에 묻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읽을 것이라고는 만화책도 없었고, 다만 초등학교 교과서와 성경 책 밖에 없어 성경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성경책을 2000번 가량 읽었다고 자랑하였다. 정명석은 두 번씩이나 파월장병으로 월남 전쟁을 경험하였다. 월남전에서 수 십 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월남 전쟁은 메시야인 자기를 연단시키기 위해서 발생했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바깥에서 보면 미치광이겠지만, 그를 재림예수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엉터리 주장도 진리처럼 통한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역사(歷史)를 구속사(救贖史)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정명석은 주장하기를, 2002년 한국의 월드컵 4강은 자기가 재림예수라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적이 되듯이, 정명석이 ‘이 시대의 사명자’라는 표적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다시는 한국에서 월드컵도 열리지 않고, 한국이 4강까지 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2012년 영국올림픽에서 홍명보호가 3위 성적으로 동메달을 땄다. 그리고 한국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도 개최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한국의 월드컵 4강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과 정명석이 무슨 관련성이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강력한 표적이지만, 한국이 월드컵 4강을 하고, 심지어 우승할지라도 그것이 정명석이 재림예수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명석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신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마치 예수님께 하나님의 신이 강림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하나님의 신이 들어왔다고 주장하며 재림예수니, 보혜사 성령이니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만 40명도 넘는다. 전부 자기네 교주만이 진짜 재림예수라고 믿고 있으나, 예수님 말고는 전부 가짜 들이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뿐이다. 정명석은 자기를 기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대둔산에서 기도할 때는 너무 추워서 옆에 있던 소나무는 얼어 죽었는데, 자기는 살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까맣게 된 손톱을 보여주며 그때 동상 걸린 흔적이라고 하였다. 모든 교주들이 하나같이 고생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여 마침내 계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일맥상통,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자기가 한참 기도할 때는 번뜩하면 이산, 번뜩하면 저산, 자기가 어느 산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자기 몸이 그 산에 가 있더라는 것이다. 소위 축지법까지 썼다고 자랑하였다. 자기가 전주에서 전도하다가 밤에 출발하여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진산까지 와서 새벽기도에 참석했다고 한다. 참고로 전주에서 진산까지는 자동차로 달려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그러나 나는 30년 가까이 그의 옆에 있었으나 그가 축지법 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다만 이해하려 하다 보니, 지름길로 가서 좀 빨리 이동한 것을 두고 말하는가, 아니면 축구를 남보다 오랫동안 하는 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이해하였을 뿐이다. 정명석은 그 외에도 거짓말(모사)과 과대포장이 심한 사람이다. 항상 부풀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따르는 회원이 2만 명쯤이면 외부 사람들에게는 15만 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명석은 자기증거와 자기자랑에 목메는 사람이다. 항상 자기가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며 자기 증거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늘 자기를 증거 하라고 독려하였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이 증거 잘못 해서 죽었다고 하면서...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정명석은 결코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아니다. 간혹 증거 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잠깐 이용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악을 행할 때도 "예수님도 그랬다"고 물 타기 하거나, "예수님께서 시켜서 하는 일이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악용하였다. 3. 30개론의 특징 1) 성경을 비유로 읽는다. (1) 오병이어 기적 실제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인 것이 아니라, 그날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오천 명이라는 것이다. 열두 광주리는 열두 사도를 의미한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날 어린 아기가 내미는 도시락을 바라보시고, 떡을 떼고 또 떼서 사람들을 먹이신 것이 아니라, 도시락은 한쪽에 놓고, 그 대신 말씀을 전하여 그들로 생명의 떡으로 배불리 먹였다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실제 떡을 먹고 배불렀다면 예수님을 떡집 아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들었기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정명석의 비유론 해석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매혹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오병이어로 5천명이 아니라 5만 명의 사람이라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말씀의 떡만 먹고 끝난 사건이라면 표적이라고 하면서 굳이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오병이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실제 표적의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비유로 풀거나 가현설(假現說)적으로 푸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고, 사탄의 미혹이다. (2) 베드로와 물고기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셔야 했을 때, 성경의 문자대로 베드로가 물고기 한 마리 잡아 아가미에서 돈을 빼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다는 세상을 비유한 것이고, 물고기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누구 돈 좀 없냐고 물었을 때 먼저 대답하여 돈을 꺼낸 준 사람이 물고기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돈이 필요할 때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 필요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물고기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바다에 나가 물고기 잡아서 돈을 꺼내 어떻게 바쳤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가르침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성경의 기적들이 억지로 믿을 필요도 없이 술술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어려워서 못하실 일이 있겠는가(창18:14).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만약 정명석의 말대로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돈 꿔서 낸 것이라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에는 실제적으로 기적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평소 설교자는 확신을 가지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이와 같은 비유적인 해석방법은 성경의 기록을 실제역사로 보지 못하게 한다. 결국 재림에 대한 예언도 비유로 읽게 되는 바, 사람을 재림예수로 믿고 따르게 된다. 성경은 이와 같이 억지로 푸는 자들에게는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벧후3:16). (3) 공중휴거 정명석의 공중휴거는 전반기와 후반기가 다르다. 전반기에는 공중은 하늘공중이 아니라 지구를 공중이라고 본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새 역사로 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구약사람이 신약 사람 되는 것이고, 신약사람이 성약사람 되는 것이야말로 들림 받는 것이다. 구름은 깨끗해진 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약사람들(기독교인들)이 정명석을 재림주로 믿고 따르는 성약사람들(JMS)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휴거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애굽에서 모세를 따라 나선 것이 휴거이고, 광야에서 여호수아를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휴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휴거가 두 번 일어난다고 수정하였다. 육적 휴거(1차 휴거)와 영적 휴거(2차 휴거)가 있다는 것이다. 육적 휴거는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정명석을 믿고 따르는 것이 육적 휴거요, 영적 휴거는 육적휴거를 이룬 사람들 중에 말씀 듣고 실천하여 빛나게 된 영혼들이, 성자본체가 하늘에서 영으로 내려올 때 올라가는 것이라고 한다. 평소 휴거에 자신이 없거나 거부감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가르침이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휴거는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몇 년 걸려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단번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고전15:51).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 예언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하나님께는 사람들처럼 그 일이 어려운 일이냐 쉬운 일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약속하신 일이라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전부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불러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롬4:17). (4) 선악과 정명석은 선악과를 비유로 본다. 하나님께서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인간들의 입장에서 죽는다고 해도 따 먹을 것은 무엇인가? 남녀 성관계 아니겠는가? 하와가 따먹고 잉태하는 고통을 얻었는데 무슨 과일을 먹어야 잉태하는가? 입으로 따먹었다면 마스크를 하고, 손으로 따먹었다면 장갑을 꼈어야지 왜 하체를 가렸는가? 하체로 따 먹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따먹으면 죽을 과일을 만들어놓고 시험하는가? 왜 인간은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기어코 따먹었는가? 생식기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인간들은 따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하와가 어린 나이에 성교하여 원죄를 지었듯이, 오늘날도 눈을 들어보라. 전부 온 세상이 성적인 문제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가? 정명석은 선악과는 여자의 성기를 비유한 것으로 푼다. 정명석은 이와 같은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육이 온전히 성장하기 전에는 절대로 성교하면 안 된다고 통제한다. 자기의 허락 없이 성교하는 사람들은 원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타락론으로 인하여 JMS 회원들은 자유롭게 이성교제를 하지 못한다. 이성교제 하다 보면 타락하게 되니까 아예 원천봉쇄 하는 것이다. 예배시간에도 남녀 따로 따로 앉는다.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강요한다. 10년이고 20년이고 정명석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다. 세상에 이런 통제는 북한 공산주의에도 없다. 그래서 허락받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합동결혼식이다. 간혹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스스로 결혼한 사람들은 JMS를 떠나야 하고(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추방이다), 떠나지 않고 JMS에 남아 있더라도 낮은 급 구원을 받게 되고, 옆의 회원들로부터도 갖은 눈총을 받으며 평생 죄지은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정명석은 타락론을 강의할 때, “기독교 목사들은 밤마다 선악과 따먹으며 원죄 짓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JMS 회원들은 자기들만이 원죄를 해결하고 가장 깨끗한 주님의 신부라며 자긍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JMS 회원들은 엘리트의식과 영적 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정명석은 성관계 하지 말라고 푸니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양립할 수 없다. 정명석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악과는 영원히 따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 따먹게 하려고 하셨다고 변명한다. 그런 가르침은 통일교와 똑같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 선악과가 익은 다음에 따먹으라는 말씀이 있는가? 이와 같이 이단들은 성경에 없는 말을 지어내서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이득(利得)을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벧후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성경에는 비유도 있지만 핵심은 전부 하나님의 약속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 만약 성경을 정명석처럼 비유로 읽는다면 해괴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트린 사건은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문자 그대로 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정명석의 비유론 식으로 해석한다면 신부가 첫날밤을 위해 향유옥합을 준비하였듯이, 처녀가 남편을 위해 평생 간직한 것이 무엇이냐? 바로 처녀의 순결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향유옥합을 깨트려라’ 라는 것은 ‘처녀의 순결을 내게 바쳐라’가 된다. 정명석에 의하면 자기는 완성한 아담이다. 그렇다면 익은 선악과는 따먹어도 괜찮다. 자기는 따먹어도 원죄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명석의 타락론은 그를 희대의 성범죄자가 되게 한 것이다. 선악과는 따먹으면 죽는 실제 과일이었다. 절대 여자의 성기가 아니다. (5) 불 심판 정명석은 불 심판을 말씀심판이라고 푼다. 자기가 전하는 말씀 들으면 구원, 안 들으면 심판받고 지옥 간다. 그러므로 자기가 지금 불 심판을 감행하고 있으니 재림예수라는 것이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논리다. 물론 성경에는 말씀을 불로 비유한 것도 있다. 렘23:29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그러나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라.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 받았듯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하다 하셨다. 눅17:29-30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러므로 재림 때의 불도 실제 불이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의 7절 말씀을 보자.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개역한글> 이단들은 여기서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른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불 심판은 말씀심판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자. 동일한 말씀이란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벧후3:5). 노아 홍수 심판 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물로 심판하셨다(벧후3:6). 그와 같이 종말에는 불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불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동일한 말씀이란 말씀으로 천지 창조하시고, 말씀대로 노아홍수 심판하셨던 하나님의 그 말씀. 그 동일한 말씀이 종말에도 말씀하신대로 불 심판 하실 것이다. 결코 비유가 아니다. 벧후3: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공동번역> (6) 구름 정명석은 구름을 사람으로 푼다. 예수님께서 영으로 자기 몸에 들어오셔서 자기를 타고 나타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구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구름떼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따르니 그것이 바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육신을 타고 나타나셨고, 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따르니, 자기가 바로 구름타고 오신다는 재림예수라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천사들이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행1:11)고 하셨다. 그러므로 실제 구름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7절에도 “보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고 하였다. 혹자가 나타나 ‘예수께서 구름타고 오시리라’는 명백한 역사적 예언을 불신하고, 비유로 해석하여 자기가 바로 구름타고 온 재림예수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정명석도 예외는 아니다. 이단들은 엘리야가 온다고 하더니 세례요한으로 왔듯이,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으나 전혀 다른 사람으로 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도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셔서 구름타고 승천하셨던 예수님, 그 예수님이 다시 하늘 구름을 타시고 영광중에 오시기 때문이다.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는 동일한 분이시다. 결코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으신다. 히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 시대성(時代性)으로 읽는다. 정명석은 성경을 시대성으로 읽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시대성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은 정명석으로, 마리아는 정명석의 모친으로, 베들레헴은 월명동으로 자동 번역하여 읽으라는 말이다. “너희가 구원을 얻을까 하여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은 곧 나를 증언하느니라(요5:39)”는 말씀을 읽는다고 치자. 그 성경을 읽을 때마다 신구약 성경이 정명석을 증언하고 있다고 읽는다. ‘새벽별을 주리라’는 정명석을 재림주로 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흰 돌을 주고 그 위에 나의 새 이름을 쓴 것이 있나니 받는 자 외는 모르더라(계2:17)”는 계시록의 말씀도 흰 돌은 정명석, 예수님의 새 이름은 정명석, 이렇게 읽으라는 것이다. 마치 신약성도들이 구약성경 읽을 때 선지자들의 예언을 예수님으로 해석하면서 읽듯이 말이다. JMS회원들은 “받는 자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는 말씀도, 자기들만 선생님을 알아보았기에 예언이 성취되었다며 감격감사 한다. 동방의 독수리도 답을 정명석이라고 믿기 때문에 당연히 동방은 한국, 독수리는 정명석으로 읽혀진다. 정명석은 항상 자기를 예수님과 빗대서 설교하기 때문에, 정명석을 배신하는 것은 예수님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어떤 약점이 들어나도 정명석과 등 돌리기는 쉽지 않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몰라서 십자가에 못 박았듯이 오늘날도 기성교회 목사들이 “선생님”을 몰라보아 심정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는 것이다. 십자가도 시대마다 다르다고 한다. 모세는 구리 뱀 십자가,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 재림주는 심정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 밖에 없다. 모세의 구리 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한 것으로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았듯이,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요3:14-15). 모세가 만든 장대 위의 구리 뱀은 모형(模型), 예수님의 십자가는 원형(原型). 다른 말로 하면 그림자와 실체. 그리고 끝이다. 더 이상 다른 십자가는 없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책이고, 십자가의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다(벧후1:25). 재림예수는 심판 주로 영광중에 오시기 때문에 초림 때와 같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이 없다(히9:28). 교주들이 실정법을 어겨 감옥에 가게된 것은 자기 죄 값으로 간 것이다. 그러하기에 자기는 지금 ‘세상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졌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십자가는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완전한 구원이다(히10:14).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모형으로 삼는 또 다른 십자가는 없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은 시대성으로 읽으면 절대 안 된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고, 그 예언은 단일회적으로 성취되었다. 그것을 월명동으로 시대성으로 재해석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나귀새끼 타고 오신다(슥9:9)는 예언도 그대로 다 이뤄졌다. 베들레헴을 자기가 태어난 동네라고 읽고, 구름을 비유로 푼다면 세상 누구라도 다 재림예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시대성을 두고 읽으라는 것은 초림주는 예수, 재림주는 정명석 자기라고 말하고 싶은 내용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시대성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3) 영적으로 읽는다. - 부활문제 정명석은 예수님께서 육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이 부활하셨다고 가르친다. 육신이 살아나셨다면 왜 낙향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봤겠는가? 육신이 살아나셨다면 왜 제자들과 함께 역사를 더 펼치시지 않고 사랑하는 제자를 떼놓고 승천하셨는가? 무덤이 비었다고 그것이 육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히틀러 시체가 없다고 히틀러가 부활했다는 말인가? 6.25때 죽은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 육신이 부활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영이 부활했기 때문에 잠긴 문으로도 들어오실 수 있었고, 동시에 여러 군데 나타나실 수도 있었다. 고기 잡수시던 모습도 영적 현상이다. 조상 영들도 제사상에 나타나 음식먹지 않느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도 육신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이 부활한 것이다. 육이 부활했다면 왜 예수님의 12제자의 명단에도 없고, 그 뒤에 특별히 뭘 했다는 말이 없느냐? 엘리야도 육신이 부활했다면, 변화산상에 나타난 엘리야는 무엇이냐? 기독교인들은 승천한 엘리야는 육이라고 하면서, 변화산상의 엘리야는 왜 영이라고 하느냐? 육으로 승천해서 영으로 재림했다는 말이냐? 아니다. 승천한 엘리야도 영이고 변화산상의 엘리야도 영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도 영으로 부활하셨으니 영으로 재림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육신도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만 부활하여 구약시대는 선영계, 신약시대는 낙원, 성약시대는 천국으로 시대급의 구원대로 가는 것이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도 물과 같은 밋밋한 율법 말씀이 달콤한 신약말씀의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날 포도주가 떨어진 그들에게 질펀하게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이 아니라, 그날 설교를 통하여 말씀의 포도주를 마시게 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중 포도주가 더 좋았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신 것도 실제로 걸으신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 바다를 유대교인들처럼 율법의 노(櫓)로 저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말씀으로 걸어가니 사람들이 귀신(이단)이라고 하였다. 그 바다에서는 귀신 출현설이 있었고, 세상 바다에서는 이단출현설이 있기로 예수님을 보자마자 귀신(이단)이라고 했던 것이다. 자기에 대해서도 이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역시 성경의 역사를 전부 거짓말로 만드는 것으로 절대로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다. 성경에 기록된 실제적 역사를 영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은, 초대교회 때 예수님의 육체를 환상이라고 해석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영지주의의 가현설과 똑 같은 주장이다. 성경의 기적은 실제역사이다. 4) 축소 확대로 읽는다. 한 가지 설명하고 그와 같이 그러하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런 교육을 천재적 교육이라고 자랑한다. 하나를 깨닫게 해주면 열 가지 백가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 앞에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하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라고 푼 후 어느 시대나 다 그러하다고 말한다. 모세와 여호수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루터와 칼빈, 남자와 여자... 축소하면 왼팔과 오른팔, 왼쪽 귀와 오른 쪽 귀, 왼 눈과 오른 눈, 정맥과 동맥, 자전과 공전, 암술과 수술... 확대하면 초림주와 재림주. 초림주는 예수 재림주는 정명석. 결국 예수님과 자기는 하나님 앞에 두 감람나무라고 한다. 자기를 재림주라고 말하기 위해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11:4)는 증인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해석되어 있다(계1:20). 둘은 증거의 숫자이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주님을 증거 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감람나무란 이단들의 주장처럼 문선명과 정명석, 혹은 박태선과 문선명, 이만희와 홍종효... 이와 같은 어떤 특정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더 확대하여, 가장 큰 두 감람나무는 성부 아버지와 성령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즉 그 말은 하나님도 부인이 있다는 말이다. 성경을 축소 확대하면 그와 같이 황당무계한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더하거나 빼지도 말라고 경고하였다(계22:18-19). 하나님께 무슨 부인이 있다는 말인가? 부부신론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오는 이방신론이다. 동방의 독수리 예언도 페르샤의 고레스로 성취되었다. 그것을 고무줄처럼 늘려 시대성이니 축소 확대니 하면서 한국의 정명석으로 풀면 안 된다. 이미 성취된 예언이다. 정명석처럼 성경을 읽으면 본문의 해석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었다가 하게 되고, 성경을 맘대로 더하고 빼서 읽게 된다. 성경은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계22:18-19) 바울도 기록된 것 외에 넘어가지 말라고 교육하였다(Do not go beyond what is written.) 고전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5) 영적체험을 바탕으로 해석한다. (1) 예정론을 뗄 때 한번은 정명석이 인삼 지주목을 사기 위해 쌀 40가마 값되는 돈을 아는 사람에게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사기치고 나무를 갖다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 사람은 정명석이 보는 앞에서 차용증서를 불태우고, 등잔대로 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명석은 하도 기가 막혀서 망연자실 하고 있다가, 주일날 청주서문교회에 갔는데 그날 설교제목이 예정론이더란다. 정명석은 그렇다면 내가 사기 당한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란 말인가? 그러면 하나님께 따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느 농가에서 그대로 엎어져서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앞에 8등신의 예쁜 아가씨가 서 있더란다. 그런데 손은 조금 덜 예쁘게 보였다고 한다. 그 때 음성이 들려서 “네가 이 아가씨와 결혼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여자 전부와 결혼하는 것이지, 손이 안 예쁘다고 손만 자르고 데려 가겠느냐? 눈이 예쁘다고 눈만 뽑아서 데려가겠느냐?” 하더란다. 그러면서 그 아가씨가 지구로 확대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는 전체 인간을 예정한 것이지, 어찌 일부만 예정 하였겠느냐?고 하시더란다. 그리고 사람의 구원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어찌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별하여 놓았겠느냐? 라고 하시더란다. 구원도 조건대가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도 안 죽으실 수도 있었는데 사람들의 무지로, 그리고 세례요한의 증거부족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한다. 정명석은 그런 식으로 도표 하나하나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2) 타락론의 인봉을 뗄 때 정명석은 새벽에 기도 굴에서 나오면서 선악과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 맞아 이거야 하면서 주먹으로 돌을 쳐서 피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 그거 아니야, 너 그거 잘못 깨달았어!”라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아니기는 뭐가 아녜요? 선악과가 여자 성기 맞다”고 하면서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메시야인 내가 아니라고 해도 너는 끝까지 맞다고 주장했지? 잘했다. 그와 같이 네가 이 진리 갖고 나가면 세상 사람들이 다 들고 일어나서 네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메시야인 내가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하면서 밀어붙였듯이, 너는 앞으로도 계속 하여 포기치 말고 밀고 나가라”고 하시더란다. “주님 제가 보는 것이 태양 맞지요? 그와 같이 선악과도 여자 성기 맞습니다.” 주님은 “그래 맞다. 너는 내가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주장했듯이, 세상에 나가 이 진리를 전할 때 그 누구가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하며 하나하나 이해시키며 가르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해석을 하여준 주님이라는 영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성경을 이렇게 엉터리로 가르쳐 준 영이 절대로 예수님일 리가 없다. (3) 한때 두때 반때 한때 두때 반때는 JMS회원들이 최고로 자랑하는 교리이다. 정명석은 다니엘서를 읽을 때마다 한때 두때 반때가 늘 궁금했었다. 1972년 남한산성 부근 어느 교회의 사찰집사를 하고 있을 때, 눈이 허벅지까지 온 새벽이었다. 정명석은 눈을 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머리가 총명해지며, 미국 돈을 한국 돈으로 환산하듯이, 한때 두때 반때는 환산해야 하느니라. 그러면서 한 때는 1년, 두 때는 2년, 반 때는 6개월로 풀어야 한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한때 두 때 반 때는 날짜로 고치면 1260일이다. 1일을 1년으로 환산하면, 1260일은 1260년이 된다. 그리고 성경의 미운 물건은 오마르 사원이고 그것은 688년에 세워졌다. 미운 물건을 세울 때 688년부터 1260년을 더하면 1948년이 나온다. 1948년은 육적 이스라엘의 육적해방, 그 다음 688년에 1290년을 더하면 1978년, 19789년은 영적 이스라엘인 기독교의 영적 해방, 자기가 1978년부터 말씀 전하여 기독교를 신약 주관권에서 해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1978년 6월 이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6월부터 사명을 펼치기 시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명석은 1948년이 맞았음으로 1978년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88년에 1335년을 더하니 2023년이 나온다. 그때가 정명석의 사명이 끝나는 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1일은 1일이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다고 하시고 그대로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노아 홍수 심판 때 40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셨는데, 문자 그대로 40일 동안 비가 왔다. 1일 예언이 1년으로 풀린 적이 없다. 그리고 미운 물건은 오마르 사원이 아니다.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병행구절을 보자.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예수님께서 다니엘서의 멸망의 가증한 것을 (로마) 군대라고 해석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정명석의 미운 물건에 대한 해석은 틀렸다. 그리고 오마르 사원이 688년에 세워진 것도 아니다. 브리테니커 사전에 의하면 685년부터 691년도 까지다. 시작년도 틀리고 준공년도 틀렸다. 더구나 한때 두때 반때는 정명석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간된 한에녹의 ‘영원한 복음’에 나온 도표와 똑같다. 표절을 한 것이다. 정명석은 1978년부터 21년 전반기를 뛰면 1999년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같은 일이 자기에게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검찰에 고소되고 방송에 나고 제자들은 다 도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1999년 1월에 실제로 방송에 나오고 검찰에 고소되고, 제자들은 많이 흩어졌다. 정명석의 예언이 맞은 것이다. 그러나 메시야 선포를 여의도 광장에서 멋들어지게 하려고 했는데 방송을 통해서 원치 않는 방향대로 되었다고 했다. 정명석은 자기 사건을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우측 강도요, 자기를 조롱하고 비아양 거리는 사람을 좌측 강도와 같다고 하였다. 자기는 죄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도둑같이 심판해 버리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한일 월드컵의 해인 2002년 모든 법적 문제가 끝나고 부활하여 후반기 21년을 뛴다고 하였다. 그러나 끝내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그는 홍콩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후 숨어 지내다가 급기야 체포되어 10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지금은 부활이 2002년이 아니라 2012년이라고 역사론을 수정한 상태이다.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그러나 정명석은 법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2002년 부활한다는 예언도 맞지 않았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종말을 기다리는 하나님의교회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전문입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하나님의교회 ▲ 탁지일 교수(현. 부산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 1.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은 한국사람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녀를 각각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한다. 설립자인 안상홍(安商洪)을 “재림 예수” “재림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으로, 그리고 1985년 안상홍 사후 후계자로 등장한 장길자(張吉子)를 “어머니 하나님”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 “성령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로 믿고 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안상홍님 지으신 모든 세계”로 바꿔 부르고, “안상홍 하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포교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님”에게 기도하고 “아버지 안상홍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십자가를 세우지 마세요. 일요일도 거짓말예요. 우리는 이 세상 교회 없는 어머니도 있죠. 우리의 구원자 안상홍님도 계신답니다. 안상홍님 믿어야 하늘나라에 가죠”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안상홍과 장길자 두 사람이 하나님으로 등장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교회는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 나오는 “우리”라는 복수형 단어를 성경적 근거로 들고 있다. 즉 여기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복수 명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으니, 따라서 하나님은 복수인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엘로힘(אֱלֹהִים)”은, “엘로아”(אֱל֫וֹהַּ)의 복수(gods)로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한분 하나님(the supreme God)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하나님의교회는, 부정확한 성경원어 해석을 근거로, 한국인 남녀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고 합리화하는데 이르게 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표면적으로는 안상홍과 장길자에 대한 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교회 실세는 김주철(金湊哲) 총회장이다. 하나님의교회 정관 제28조에 따르면, “총회장은 성령 안상홍 하나님께서 세우신 김주철님이시며, 영구직이다.”라고 명시하고, 총회장의 직무에 대해, “모든 회의의 의장이고, 진리를 전수하여 반포하는 책임자이며, 자산에 대한 최고 책임자로 총회 재정을 감독하고, 정관 및 규정의 최종 해석권자이며, 권징의 최고결정권자이고, 총회 운영부서 및 지역 교회를 통괄하는 책임자”라고 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상홍과 장길자는 겉으로만 신격화된 인물들일뿐, 막강한 절대 권력을 가진 김주철 총회장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실세라고 할 수 있다. 2. 반복되는 시한부 종말 주장 하나님의교회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은, 장길자와 김주철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www.watv.org)가 아니라, 안상홍의 아들이 이끌고 있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www.ncpcog.co.kr)이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안상홍의 교리를 계속 변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공식홈페이지에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근본뿌리와 진리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세계선교복음협회(증인회)는 1985년도 이후에 안상홍님의 가르침에도 없고 성경에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신 적도 없는 어머니하나님을 세우고 또한 시대별 구원자와 새이름이라는 교리의 바탕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안상홍님의 함자로 기도를 올리고.... 현재는 살아생전 안상홍님의 책자와 육성말씀의 가르침보다는 그 곳에서 만든 교리를 바탕으로 책자를 만들어 어머니하나님을 증거하는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이 안상홍의 가르침을 그대로 준수하고 있는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안상홍의 모든 저서, 친필로 기록된 설교문과 교회연혁, 육성설교, 유품, 사진 등을 전자책 및 그림파일 형태로 게시하고 있어, 가장 정확한 안상홍의 원래 교리 연구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들 자료들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교리는 시한부 종말론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1988년은 세상종말”이라고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또한 안상홍은 그의 저서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에서, 1988년뿐만 아니라 2012년도 종말의 때라고 주장했다. 안상홍은 이 책에서 “서기 1844년에서 168년을 합하면 서기 2012년이 마지막 끝 날이 되겠습니다.”라고 주장했는데, 1844년은 하나님의교회가 뿌리를 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가 주장했던 종말의 연도이고, 168년은 모세가 성막을 세우는데 걸린 168일을 의미하며, 그리고 1844에 168을 더하면 2012년이 종말의 해라는 주장인 것이다. 하지만 1988년과 2012년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하나님의교회는 시한부 종말론 주장을 줄곧 부인해왔지만, 최근 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안상홍 사망 이후 1988년 종말이 온다는 취지의 전도서를 만든 바 있고, 1999년에는 신도들에게 Y2K나 1999년 지구멸망예언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으며, 하나님의교회 내에서 2012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었던 점”을 이유로 들어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론이 허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하여, 안상홍은 교회 내에서 여성을 신격화하거나, 지도력을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83년 측근 엄모 여전도사로 인한 분란에 대해, “예루살렘을 한 여자로 해석하다는 것은 정신환자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설교를 통해 경고하고, 신부는 한 여성이 아니라, 144,000 성도들이라고 단언했다. 1985년 안상홍 사후, 서울과 부산 세력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김주철 총회장이 직접 작성한 글에 따르면, “장길자 전도사 본인 자신도 우상화 하는 것을 원치 않고 우리도 우상화 할 수 없다.... 144,000 성도들이 신부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 중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필자가 방문했던 양산 통도사 인근 공원묘지에 있는 안상홍의 무덤은,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는 격이 맞지 않는 규모로, 벌초조차 되지 않고 방치된 모습이었다. 3. 종말은 실패해도 교세는 오히려 성장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 주장에는 종말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 주장은 계속 실패했지만, 교세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신격화된 안상홍이 사망하고 시한부 종말 주장이 실패하면, 신도들이 하나님의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국내외 이단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식의 눈’이 아니라, ‘신도들의 눈’을 통해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즉 신격화된 교주의 죽음을 받아드리고,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드리는 순간, 신도 자신은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게다가 그 단체에 몸담고 헌신했던 지난날들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러한 현실은 교주의 죽음과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드리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받을 비난과 동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신도들은 스스로를 위해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업그레이드된 신격화 과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또한 새로운 교리 변개를 통해, 새롭게 설정된 또 다른 종말의 때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변개된 교리를 근거로 배수진을 치고 재무장한 신도들은, 외부적으로는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통해 새로운 신도들을 영입하고, 내부적으로는 2세대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교세의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의 신도수가 수백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20~30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연 국내 최대 이단조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주력 연령층이 30~40대라는 사실이다. 특히 해외에도 다수의 외국인 신도들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외선교사들 및 현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교회는 이미 복음전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해외교회 설립현황을 분석하면, 세계 곳곳에 수많은 모임처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 반대편 페루에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도 수십 개의 하나님의교회가 짧은 시간 내에 세워져 운영 중이다. 현지 선교사들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건물을 세우고,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하나님의교회 피해자들이 반대운동(www.examiningthewmscog.com, encountering-ahnsahnghong.blogspot.kr)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공동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하나님의교회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재산이 3~4조에 이른다고 한다. 통일교처럼 사업을 하지 않는 하나님의교회가 어떻게 이런 거대한 자산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종말의 때로 주장했던 2012년에 하나님의교회가 했던 일을 보면,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종말의 때라고 주자했던 2012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의교회는 국내 29곳에 대형 교회를 건축하거나 매입했다. 과연 종말의 순간에 대규모 부동산을 매입하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종말의 때를 대비한 방공호 용도로 매입했을까? 과연 하나님의교회 지도자들은 정말 2012년을 종말의 때로 믿었을까?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론이 실패와 재설정을 거듭하는 동안, 하나님의교회 교세는 성장하고 재산을 지속적으로 증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4.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홍보전략 하나님의교회의 홍보 방식이 특이하다. 한편으로는 가가호호 방문과 거리포교 등의 직접적인 포교전략을 구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성격을 감춘 채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노출을 시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장길자가 대표로 있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www.weloveu.or.kr)와 새생명복지회(www.newlifewf.org) 가 그 전위조직들이다. 성경은 “너희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태 6:3)라고 가르치며,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하나님의교회 홍보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한 후, 그 내용을 상대적으로 통제가 용이한 지역 언론을 통해 기사화 한다. 둘째, 해당 기사를 가지고 지역 공공기관을 찾아가 상장 수여를 요청한다. 주민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거절할 명분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하나님의교회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수상 내용을 보도자료로 배포하여 다시 기사화하거나,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나 신도들의 블로그에 올려 선전한다. 넷째, 이를 밖으로는 포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안으로는 반대하는 신도들의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데 사용한다. 이 과정을 국내외에서 반복하며, 주변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종교단체의 사회적 노출 정도와 효과는 그 성패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통일교를 비롯한 1세대 이단들이 네거티브홍보(nega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사회에 알렸다면, 최근 신세대 이단들은 포지티브홍보(posi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사회에 각인시킨다. 즉 자신들이 사회적 역기능을 수행하는 위험한 사이비종교가 아니라, 친사회적인 평범한 종교단체인 것을 알리는 전략이다. 물론 이들의 최종 목적은 명백히 반기독교적이다. 즉 안상홍과 장길자를 하나님으로 세상에 알리며, 하나님의교회가 기독교의 대안세력으로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함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교회 홍보전략은 일면 성공적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성공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사회봉사에 열심인 하나님의교회 신도와 비윤리적인 범죄를 저지른 기독교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비기독교인들은 누구를 선택할까? 기독교가 아무리 이단을 교리적으로 정죄한다고 하더라고, 요즘 분위기를 볼 때 한국사회는 사회적 순기능을 하는 이단을 더 선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교회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타락한 기독교의 대안세력으로 세상에 내세우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이단대처에 필수적이다. 개혁된 교회만이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단들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이단대처 현장에, 사리사욕과 정적제거의 목적을 가지고 이단문제를 악용하는 교회정치세력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기득권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이들 정치세력들이 바로, 이단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이단대처를 위한 연합활동을 방해하는 반교회적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판은,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한 기독교를 향한 엄격하고 높은 사회적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불확실한 세상에서 민족을 위해 신실한 삶을 살았던 한국교회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국사회는, 근래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날카롭고 냉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단과 주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신호를 읽을 줄 아는 교회만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다. 5. 복면이단 하나님의교회 대처 가이드라인 시한부 종말 주장으로 사회와 가정에 혼란을 야기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사회봉사단체라는 복면을 쓰고 활발하게 친사회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이들의 포교전략은 조직적이고 집요하다. 청소년들과 청년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젊은 가정주부들에게 집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거리에서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에게 미혹된 청소년들이 하나님의교회로 자의반 타의반 이끌려 들어가 교리교육과 침례까지 받는 피해사례들이 발생하는가 하면, 집요한 가가호호 방문포교를 통해 미혹된 주부들로 인해 가정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봉사라는 복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채, 친근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예방과 대처 없이 한국교회의 복음전도와 이단대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님의교회에 대처하기 위한 합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첫째,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은 길거리 혹은 집을 방문해 집요한 포교를 진행한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길에서 미혹해, 교리교육을 시킨 후 침례를 주기도 하고, 집을 방문해 교리교육을 시키고 집안 화장실에서 샤워기로 침례를 준 사례도 있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하고 멀리하고(딛 3:10),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요이 1:10) 권면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의 접근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 집요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을 만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나 공권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도록 자녀들에게 경계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 밖 봉사활동에 신중해야 한다. 다양하게 진행되는 하나님의교회 봉사활동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봉사학점 이수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야 될 경우, 혹시라도 하나님의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물론 다른 이단들도 최근 사회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각 지역 자원봉사단체에도 하나님의교회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단체에 대해 미리 확인한 후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가면을 벗겨야 한다.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고 선전하는 하나님의교회 정체를 주변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즉 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는 단체이며, 반복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해 왔고, 이로 인해 재산 갈취와 가출과 이혼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받아드려졌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교회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교회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다시 사회봉사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는 교회만이, 시한부 종말의 위기를 조장하며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오염시키는 ‘이단 하나님의교회’에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 (「목회와 신학」(2016년 2월호) [부록] 이단 동향 분석 및 향후 전망 이단은 동시대 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자신을 타락한 교회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렇기에 이단현상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재확인하고,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최근 이단사이비단체들의 활동을 분석하고, 향후 전망과 대처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1. 사리사욕(私利私慾) 단 한 차례도 시한부종말론이 성공한 적이 없다. 성서는, 종말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교회)의 멈추지 않는 시한부종말론과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144,000명 육체영생 교리를 내세운 조건부종말론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 소중한 가족과 꿈을 포기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2012년 종말을 주장하던 하나님의교회가, 2012년 한 해 동안만 전국 29개 지역의 땅을 사고, 건물을 마련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종말의 순간에 부동산을 매입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재도 앞으로도 이들의 시한부 종말 주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또한 신도수가 144,000명에 이르면 육체영생하고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된다던 신천지는, 144,000명이 거의 찼다는 2015년에 부동산 매입과 건축에 혈안이 되었다. 144,000명이 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세상의 땅과 건물에 집착하는 신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시한부종말론과 144,000 교리를 내세운 조건부종말론은 거짓 명분일 뿐, 재산증식을 위한 사리사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거짓이 밝혀지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계산, 돈이 있어야 신도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계산, 신도들이 통제되어야 교주의 신상에 문제가 생겨도 조직이 건재할 수 있다는 계산, 종말론적 이단들의 이런 얄팍한 계산에서 산출된 사리사욕(私利私慾)이 두드러진 2015년이었다. 2. 세대교체(世代交替) 주요 이단들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룬 이단은 하나님의교회가 거의 유일하다. 소위 “아버지 하나님” 안상홍씨에서 “어머니 하나님” 장길자씨로의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종교사회학적으로는 신흥종교로의 정착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대처가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 신천지 등, 대다수 이단들의 세대교체는 현재 진행 중이다. 참가정을 표방하는 통일교의 세대교체는 부모자식 그리고 자식들 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식이 어머니를 “사탄의 핏줄”이라고 부르고, 자식들도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참가정도, 참부모도, 참자녀도 없는, 명분 없는 재산과 권력 다툼의 모습만 노출되고 있다. 신천지는 지난 해 설립자 이만희씨의 후계자로 김남희씨를 지명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이씨가 영생불사한다면, 후계자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결국 이만희씨의 사후를 대비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상한 교리와 명분으로 포장되더라도, 이단들의 세대교체는, 첫째, 교주의 사후를 대비한 보험 차원의 사전 포석이며, 둘째, 교주 사후에 일어날 수 있는 신도들의 혼란과 이탈을 막기 위한 사전 통제장치의 마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단들의 세대교체 성공이 어려운 만큼, 조직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예를 들면, 통일교 문선명씨의 부인 한학자씨, 그리고 아들들인 문현진, 문국진, 문형진의 권력투쟁이 진행 중이며, 신천지 내부에서도 영향력 있는 지파장들이 분리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 주요 이단 세대교체(世代交替)의 혼란기가 한국교회 이단대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 여성시대(女性時代) 이단들의 여성시대가 열렸다. 주요 이단들의 후계자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다. 통일교의 한학자씨,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조은씨, 하나님의교회의 장길자씨, 신천지의 김남희씨, 중국이단인 전능하신하나님교회(동방번개)의 양상빈씨 등의 여성들은 6천년 만에 태어난 재림주 독생녀, 어머니 하나님, 이긴자의 영적 배필, 혹은 재림 그리스도 등으로 신격화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영역에서 여성지도력이 급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여성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사회 핵심 지도력으로 여성들이 부상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 이단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생존전략상 시대 트렌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남성을 후계자로 정할 경우, 현 지도자를 배신할 우려도 있고, 후계자를 꿈꾸는 여러 남성 2인자들 사이의 분란과 조직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김백문, 문선명, 박태선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단교리의 성(sexuality)적 특징과도 관련되어 있다. 한국이단들은 교리적으로 음양의 결합을 온전함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이들 여성 후계자들의 배후에는 일반적으로 전권을 가진 실세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뒤에서는 남성 중심의 조직이 가동된다. 통일교 한학자씨의 측근들, 하나님의교회 총회장 김주철씨 등을 비롯해, 카리스마적인 남성 창교자의 뒤를 잇는 여성 후계자 뒤에는, 남성 중심의 조직이 도사리고 있다. 이단 후계자들의 여성시대(女性時代)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단 조직 내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은 지속될 전망이다. 4. 사회봉사(社會奉仕) 사회봉사가 이단들의 특징이 되었다. 최근 성장하는 이단들은 앞 다투어 사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대통령상 수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신천지는 낙후지역 벽화그리기와 이주민지원 등의 봉사활동에 힘을 쓰고 있다. 다른 이단들도 국내외 봉사활동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변화는,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봉사에 헌신적인 이단’과 ‘개교회주의에 집착하는 교회’가 있다면, 비개신교인들은 누구를 더 선호할까? 사회적 순기능을 하며 ‘표창장을 받는 이단’과 사회적 역기능을 노출하며 ‘비판의 대상으로 떠오른 교회’ 중에서, 한국사회는 누구를 더 선호할까? 사회의 동의와 공감을 결여한 이단규정은 마녀사냥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단이 문제가 아니라, 이단을 규정하는 주체가 문제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고심하며 이단과 정통을 분별하는데, 한국사회는 이러한 이단논쟁을 교회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보고 외면할 수 있다. 최근 성장하는 이단들은, 소수의 기독교인들에게 교리적인 인정을 받는 것보다, 다수의 비기독교인들에게 사회적인 공신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으로는 사회봉사(社會奉仕) 활동에 헌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악을 저지르는데 망설임 없는 이들 이단들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건강한 교회만이, 이단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건강성과 사회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단 대처를 위한 영적 힘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도 이단대처를 위한, 한국교회의 체질개선 지속되어야 한다. 5. 해외진출(海外進出) 한국이단들이 한류바람을 타고, 성공적으로 세계화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교파 간, 교회 간 경쟁을 통한 비효율적인 선교를 진행하는 동안, 이단들은 조직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선교 오지를 효과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단 대처가 결여된 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었다. 신천지처럼, 해외 교민사회에 침투하는 이단들도 있고, 하나님의교회와 기쁜소식선교회 국제청소년연합(IYF)처럼 현지인들을 주로 미혹하는 이단들이 있다. 신천지는 해외에 있는 친인척과 지인들에 관한 정보를 신도들로부터 수집하여, 그들만의 모략포교, 즉 거짓말 포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교회는 국내에 방문한 외국인들에 대한 자원봉사활동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한 후, 현지 침투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 설립되는 하나님의교회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선교사들로부터 이단들의 정체와 대처방안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국내차원의 이단대처를 넘어, 해외진출(海外進出)을 시도하는 한국이단들을 예방하고 대처할 글로벌이단대처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 네트워크는 교파주의의 틀 속에 갇혀있는 국내보다는, 현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초교파 조직으로 구성될 때 효과적일 수 있다. 한국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영문 자료들의 제작 및 배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6. 허망지설(虛妄之說) ‘거짓되고 망령된 말’로 미혹하는 신천지가, 동료 이단들의 추종을 불허하며 활동하고 있다.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된, 반사회적이고 비성경적인 신천지의 거짓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가정과 교회 안에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신천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신천지로 인한 분열과 불신이 두려운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이단은 거짓말을 앞세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분열시켜왔다. 거짓 형제들이 우리 안에 가만히 들어와, 예수 안에서 자유 한 우리들을 그들의 종으로 삼으려고 미혹을 멈추지 않았다(갈 2:4). 144,000을 명분으로, 부모자식 간에, 부부 간에, 형제자매 간에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거짓말이 난무하도록 신천지가 만들었다. 거짓말이 합리화된 기독교 종파는 없다. 기독교는 어떤 시대와 상황을 만나도,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만을 그리스도로 고백해왔다. 설령 이 믿음으로 인해 박해와 순교를 당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을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선포해 왔다. 결코 나의 믿음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기독교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기독교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 것이다. 허망지설(虛妄之說)의 신천지가 결코 기독교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7. 지피지기(知彼知己) 효과적인 이단대처에 있어서, 신속하고 공신력 있는 정보의 제공이 가장 중요하다. 부정확한 정보의 제공은 ‘흑색선전’과 다르지 않으며, 부정확한 정보의 활용은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사회와 교회가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이단정보의 수집과 제공이 필요하다. 이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이단의 정체를 간파하게 해주는 동시에, 이단의 활동을 통재할 수 있는 합법적인 여건을 조성해 준다. 이러한 정보는 이단들마저도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이단을 비판할 경우, 오히려 이단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어떤 이단들이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공신력 있는 정보를 통해 이단의 정체를 파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단 현상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단의 영향력이 기성교회와 교인들에게 폭넓게 자리 잡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이단대처와 교회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다. 건강한 교회가 이단 바이러스를 잡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 8. 필승불패(必勝不敗) 교회는 반드시 이긴다! 이단은 예외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참된 교회는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독교역사는 증언한다.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사회적 순기능을 감당해왔던 기독교에 대한, 한국사회의 높은 기대치가 날카로운 비판으로 표출되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다. 교회가 이러한 뼈아픈 시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단이 문제라면, 교회가 답이다! 공권력과 언론은, 사건 발생 이후에야 개입하여 문제해결과 공론화를 위해 애쓴다. 오직 교회만이 이단의 본질을 간파하고, 사건을 예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영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순기능의 전통을 잇는 교회가 이단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단의 발흥은 주님 다시 오실 때, 세상 마지막 때의 표징이다. 이단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미혹하며 어지럽힌다. 하지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가 쟁취하실 최후의 승리에 대한 필승불패(必勝不敗)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목회와 신학」(2015년 12월호)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
    (이 글은 제9회 부울경기독교수 선교대회에서 발표된 기조강연입니다.)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1. 머리말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삶의 거의 모든 분야를 결정하는 오늘날 자신의 신앙을 심각하게 취급하는 기독교 지식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기독교적으로 정치하고, 사업하고, 예술창조 활동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기독교적으로 학문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쉽다 할 수 있다. 다른 어떤 활동보다 오늘날의 학문을 기독교 신앙과 조화시키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학자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다. 자신들의 활동을 신앙과 연결시키는데 어떤 확실한 지침을 기독교 학자들이 제시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학문이란 정신활동이고 신앙과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 활동 거의 전부가 지식에 근거해야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기대를 받고 있는 기독교 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지식인들의 이런 고민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헬레니즘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해야 했던 초대교회 지식인들도 그들의 신앙을 그 시대의 학문과 연결시키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의 학문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려 했던 Justinus, Clement of Alexandria, Origen, Irenaeus, Eusebius 등과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Tertullianus, 지식을 초월한 신앙을 강조한 Augustinus, Anselm of Canterbury, 그리고 양자의 종합을 시도한 Thomas Aquinas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었다. 현대에도 Herman Dooyeweerd, Cornelius Van Til, Ravi Zacharias, Francis A. Schaeffer, Gordon Clark, G. K. Chesterton, C. S. Lewis, Carl F. H. Henry, Edward John Carnell, Bernard Ramm, Alvin Plantinga, Nicholas Wolterstorff, Bob Goudzwaard, Mark Noll 등의 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였다. 한국 교회도 이제 100여 년의 역사와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신도를 가지고, 수많은 신학자들과 학자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과 학문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일어나고 같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2. 현대 학문에 대한 이해 현대 학문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용은 전혀 없이 형식으로만 이루어지는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내용이 거의 전부인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현대 학문은 매우 다양하므로 공통되는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학문은 진리발견을 그 목적으로 한다. 사실을 밝혀내고, 주어진 현상을 바로 설명하며, 원리나 법칙을 발견하여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역사학도 단순히 옛날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한, 두 가지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이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학은 단순히 사실을 연대에 따라 기록하는 연대기 혹은 실록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학문이란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 논리적 체계 (systematic)가 있어야 한다. 앞의 발언과 뒤의 발언이 서로 모순되어서도 안 되고, 모순되는 명제를 한 글에서 주장해서도 안 된다. 유기체에서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듯 한 학술논문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예술과 다르다. (2). 현대 학문에 사용되는 방법론의 기본은 인과론 (causality)이다. 물론 양자물리학에서는 인과법칙이 절대적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인과론이고, 인과관계가 분명해져야 어떤 문제가 설명(explanation)되거나 예측 (prediction)될 수 있다. 물이 어는 것은 온도가 0도 이하로 내려갔기 “때문이고”, 그것을 알면 날씨가 추워질 때 물이 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과학은 그 이전의 Aristoteles 과학의 목적론과 대조된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는 인과론적 설명보다는 공감하는 상상(sympathetic imagination)을 통한 이해(understanding)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실증주의에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사용되는 방법론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모든 학문은 원칙적으로 객관적 (objective)이라야 한다. 실제로 어떤 것이 객관적이며 그것이 사실 객관적인가에는 항상 논란이 있지만 모든 학문은 객관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개인적인 감정, 감각, 이해관계, 경험 등은 사실을 왜곡할 수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general) 것이라야 보편적 진리란 전제가 깔려 있다. (4). 이론이나 결론은 직관, 경험, 자료에 의하여 실증될 수 있어야 (verifiable) 한다. 현대자연과학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논리적으로 일관성만 있으면 충분히 객관적이라고 믿었다. 모든 인간에 공통되는 능력으로서의 이성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이성의 논리적 판단에 어긋나지 않으면 진리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Galileo 이후의 현대과학에서는 논리학과 수학을 제외하고는 실증될 수 없으면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진리로 수용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인문학인 역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5). 한 이론의 대상은 동질성을 가져야 한다 (homogeneity of the objects field). 즉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어야 같은 학문의 범주에 속할 수 있고, 동일한 체계에서 논의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영역으로의 전이 (“stepping into another field” - metabasis eis allo genos)는 허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달(月)’과 ‘10원’은 동일한 이론체계에서 다루어질 수 없고, 심지어 ‘몸’과 ‘마음’도 동일한 체계 안에서 논의될 수 없다.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발언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학문적 명제가 될 수 없다. 몸과 마음은 ‘존재’란 지극히 추상적인 공통분모 외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6) 학문은 넓은 의미에서 실용적 (practical) 이라야 한다. 이런 관점은 이미 Bacon에 의해 시사되었지만 Comte에 의하여 강화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매우 두드러진다. 최근에 과학과 과학기술의 차이가 점점 무시되고 있는 것도 그런 경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진리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진리란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다. 힘 혹은 능력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데 지식은 힘이다 (Scientia est potentia, Bacon). 진리를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Savoir, c'est pour prévoir. Comte),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응할 수 있다. 역사학에도 이런 의의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학문은 넓은 의미에서 실용적이다. 논리학, 수학, 천문학, 이론 물리학 같은 순수학문은 아무 실용적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기초가 없으면 실용적인 학문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들 학문은 직접적으로는 실용적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실용적이고, 실용적인 결과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하므로 매우 실용적이다. 3. 경쟁관계에 있는 학문과 종교 예술과 달리 학문은 종교와 경쟁관계에 설 수 밖에 없다. 양자가 다 진리를 주장하고 (truth claim) 있고, 그 진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안 학문의 발달은 다른 어느 분야의 발달보다 인류에게 더 큰 힘을 제공하여 이익을 끼쳤고 사람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인간이 개발한 다른 어떤 능력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인류는 학문에 대해서는 상당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주장하는 진리와 그 진리가 가능하게 하는 힘 때문에 학문은 종교와 갈등관계에 서게 되었다. 학문과 종교의 갈등은 이미 학문의 생성과 발전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상당히 오랫동안 학문은 종교를 “대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종교를 대체 하고 유학은 고대 중국의 무속종교에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철학이 그리스 종교를 대체했다면 그 철학은 아직도 종교의 형태로 남아 있는 기독교와 경쟁관계에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초대교회 교부 Tertullianus는 철학의 도시 아테네와 신앙의 도시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하고 반문함으로 지식과 신앙의 갈등관계를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기독교는 인간의 모든 안전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의하여 보장받는 것으로 믿는 반면에 그리스 사상에서는 영원히 불변하는 존재와 법칙에 삶의 안전보장을 위탁한다. 그런데 그 존재와 법칙을 알아야 그것에 순응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진리를 아는 것, 곧 지식이 구원의 길인 것이다. 비록 서양 중세에는 Thomas Aquinas의 사상에 따라 자연의 영역에서는 이성이 그리고 초차연의 은혜 영역에서는 믿음이 지배하도록 영역을 분리함으로 학문과 종교의 불안한 공존이 시도되었지만 만족스런 조화는 이룩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과학적 학문은 역시 그리스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고, 따라서 기독교적으로 학문한다는 것은 다른 편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경기하는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 물론 현대의 과학적 학문에서는 종교적 요소는 거의 다 제거되었지만 그러나 그 유산은 아직도 남아 있다. 아직도 학문은 종교적 신앙과 경쟁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실용적인 가치 이외에 그 자체로 진리요 다라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그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 자체는 학문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어떤 형식적인 체계도 그 체계 안에서 그 체계의 타당성이 증명될 수는 없다 (Gödel). 학문에 대한 믿음은 인간 이성을 Archimedes의 거점으로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 성격을 갖는다. 학문의 권위가 인간 이성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믿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적 전제라 할 수 있다. 과학철학자 P. Feyerabend는 자연과학도 하나의 이념 (ideology)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4.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현대 학문 학문과 종교의 관계에는 3 가지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즉 (1)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은 학문이란 입장과 (2) 성경이 더 권위가 있고, 학문은 성경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입장, 혹은 (3) 학문과 종교의 영역은 서로 다르므로 양자가 병존할 수 있고 상호관련도 상호갈등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은 학문이란 입장은 대부분의 비기독교 학자들이 취하는 것이다. 학문이 그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학문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미신에 불과하던지 학문이 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제시하므로 학문과 갈등관계에 설 만큼 권위를 가지지 못하거나 갈등관계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학문의 결과에 더 의존하므로 학문은 그들에게 일종의 종교적 권위를 가진다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종교적’이란 함은 종교를 매우 넓은 의미로 이해해서이다. 상당수의 기독교인인 학자들은 (3)의 입장, 즉 학문과 종교의 영역은 서로 다르므로 양자가 병존할 수 있고 상호관련도 상호갈등도 있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부분적으로는 불신 학자들과 동의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손쉬운 타협이다. 상당하게 많은 경우 그런 입장을 견지할 수 있으나, 양자가 주장하는 진리가 상반되는 경우는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대부분은 학문의 편에 서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1)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2)의 입장, 즉 성경이 학문보다 더 권위가 있고, 학문은 성경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의 논리적인 결론이다. 그 입장을 다음과 같이 변호해 볼 수 있다. 1)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는 모든 영역에서 절대주권을 행사하시고, 절대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절대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성경이 가르치는 참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청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 논리, 법칙, 이성, 경험 등도 모두 하나님에 의하여 가능하고 하나님에 의하여 그 정당성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학문이 발견한 진리도 그것이 진정한 진리라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물론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진리로 믿을 때 가능한 주장이다. 학문의 결과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종교적 전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종교적 전제다. 2) 학문적 지식은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A. 과학적 학문은 “이런, 저런 양상” (modality)을 대상으로 하고 “이것, 저것 등 개체”(individuality)를 상대하지 않는다. “노란 색”은 학문은 개나리가 가지고 있는 속성 혹은 양상이고 우리 집 뜰에 서 있는 “개나리”는 개체다. 학문은 보편적인 것을 취급해야 하는데, 양상만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집 뜰에 서 있는 개나리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개체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을 취급하는 학문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 역사학은 “이순신”의 업적이나 영향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으나, “이순신 학”은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상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다만 존재하는 여러 개체들에 속해 있는 속성 (property)이다. “노란 꽃” 은 있지만 “노란 색”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하면 칠판에 그려졌거나 종이에 인쇄가 되어 눈에 보이는 3각형은 진정한 3각형이 아니다. 3각형은 세 직선으로 이루어지고 , 직선은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일 뿐 넓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3각형은 이미 하나의 개체이므로 기하학의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3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직각의 합과 같음을 증명하는데 분도기로 세 각을 제어서 합산하지 않는 것은 분도기로 젤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3각형이 진정한 3각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H₂O란 것도 비슷하다. 실재하는 물은 H₂O외에도 여러 가지 이물질을 다 포함하고 있다. 순수 H₂O는 3각형과 마찬가지로 이념으로만 존재한다. Max Weber는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하는 것들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형(ideal types)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순수 자본주의 국가나 순수 사회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학문이 취급하는 대상은 실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이념(ideas)들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세계는 모두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노란 색을 보지만 그것은 노란 꽃, 노란 종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학문은 원칙적으로 개체들을 그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면 학문의 영역은 매우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만약 요즘 점점 더 인정되고 있는 것과 같이 개체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양상들의 합 이상”이라면, 개체를 대상으로 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는 지극히 제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B. 학문이 상대로 하는 대상은 항상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others being alike” = ceteris paribus)는 모든 이론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모든 현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 가지만 변하고 다른 것은 모두 그대라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물은 0도에서 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물이 실제적으로 다 0도에서 어는 것은 아니다. 물의 순도, 물이 위치해 있는 장소의 기압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물은 0도에서 언다”는 것은 물의 순도, 기압 등 다른 모든 조건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학문적 이론은 Procrustes의 침대가 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Procrustes는 여관을 운영하면서 침대의 길이보다 키가 큰 손님은 머리나 발을 잘라서 침대에 맞추고 침대보다 짧은 사람은 잡아당겨 침대길이에 맞추었다. 말하자면 유기적이고 지극히 복잡한 현실을 학문적 이론으로 끌어 맞추는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Karl Popper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런 우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현실을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이념의 틀에 맞추기 위하여 온갖 강제를 다 동원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학문적 이론의 권위를 과대평가 하므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Procrustes의 침대를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의 머리와 다리를 잘라버렸다 할 수 있다. C.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학문이 설명할 수 없다. Max Weber는 학문 (Wissenschaft)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Tolstoy의 주장에 동감을 표시했으며 Wittgenstein은 그의 Tractatus에서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과학적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 바깥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삶의 의미, 사랑, 고통, 존엄성, 자유, 평등, 정의감 같은 것은 누구에게나 다 중요하지만 학문이 그런 것을 전제할 수는 있어도 설명할 수도 없고 그것에 도움을 줄 수도 없다. 이론적으로 사랑을 설명할 수도 없거니와, 설명된 사랑이 우리로 사랑하는데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3) 학문도 하나의 게임이다. 게임의 특징은 그것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동의하는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문이란 게임의 규칙은 앞에서 제시된 학문적 이론의 요구조건들이다. 이 조건들은 어떤 그 타당성이 우리의 직관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어떤 절대적 권위에 의하여 결정된 것도 없으며 어떤 객관적 근거에 의하여 확실하게 증명된 것들이 아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자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에는 달라질 수 있는 역사적인 것들이다. 현대과학 이전 Aristoteles 물리학에서는 목적론이 자명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인과론이 그렇지 보이고, 인과론도 양자 물리학에서는 절대적이 아니라 한다. 그들 조건은 궁극적으로 학문 공동체의 약속에 불과하다. Th. Kuhn과 M. Polanyi (Personal Knowledge)는 영원불변한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학문공동체(academic community)가 학문과 학문 아닌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Thomas Kuhn에 의하면 한 시대의 과학의 성격은 그 시대의 과학 교과서가 대변한다고 보았다 textbook science). 그리고 학문의 “혁명”에서 혁명 이후의 paradigm이 그 이전의 것보다 더 발전된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그 전의 것을 포함하거나 능가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 책 이름에 “학문의 발전”이란 말 대신 “학문의 혁명”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게임이라 하여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Huizinga는 인간의 문화 활동 거의 대부분을 놀이로 취급했다 (Homo ludens). 다만 그것이 어떤 만고불변의 규칙이나 영원한 직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에 의하여 만들어진 규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과 그 규칙에 적용되는 분야에서만 그 타당성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생물학적인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에서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할 수 있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나 꼭 한국식으로 먹어야 사는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놀이가 아니라 한국식으로 먹는 것은 놀이의 성격을 갖는다. 게임이기 때문에 학문은 상대적이고 부분적이다. 건물의 높이를 측량하는 방법에는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물질이 땅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을 재어서 계산하는 방법, 3각 측량법도 있지만 긴 줄자로 재는 방법도 있다. 한 가지만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 할 수 없다. 과학적 설명은 주어진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학문을 하나의 놀이로 상대화하면 학문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학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비판적, 상대적 태도이고 그런 태도로 접근할 때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창조는 “관념의 유희” (play with ideas)로 이루어진다. 학문을 종교적으로 절대화해 놓으면 비판적인 접근이 불가능하고 창조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기독교인이 더 훌륭하게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다. 5. 기독교적으로 학문하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명령은 학문 활동에도 적용된다. 진리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기독교적 학문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학문적 진리 발견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될 때만 그것은 가치를 가진다. 만약 진리 발견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라면 학문은 종교의 위치에 서게 되고, 따라서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학문연구를 통해서 발견된 진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이 될 때 기독교 학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1) 그 진리가 정말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가를 재점검하고, (2) 그것과 모순된다고 생각되는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가 올바로 이해했는가를 반문해 보며, (3)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았을 때는 당분간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적어도 너무 성급하게 그 어느 쪽을 취할 이유는 없다. 지금의 상황이 절대적이고 그 이상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 분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것도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 이외에는 영원불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학문적 연구로 발견된 진리는 얼마든지 바꿔질 수 있다. Ptolemaeus의 물리학은 Newton의 물리학으로 대체되었고, 그것은 다시 Einstein의 물리학으로 수정되었다. 양자 물리학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한다. 우리는 가끔 과학의 발견을 이용하여 성경의 내용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본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 방법이다. 지금 진리인 것으로 나타나는 과학적 발견이 항상 진리로 인정받으리라는 보증은 없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과학적 지식을 과대평가하고 성경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즉 과학적 발견은 확실한 반면에 성경의 가르침은 좀 더 증명되어야 할 만큼 불확실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성경보다 과학을 더 믿으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과학종교일 것이다. 과학의 주장이 과학보다 더 확실한 근거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으면 몰라도 그 자체로 절대적이라 믿으면 종교적 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학문과 기독교 간의 갈등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특히 Richard Dawkins의 전투적이고 도발적인 저서들이 이런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여기서 앞에서 언급된 3 가지 입장이 잘 구별된다. 창조론을 전혀 부인하고 진화론만이 옳다는 입장,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 창조론은 종교적 신앙의 내용으로 양자를 다 인정하는 입장, 그리고 창조론을 믿고 진화론을 상대화하는 입장 등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입장에는 진화론은 전적으로 부인하는 ‘젊은 지구 이론’ (young earth creationism)과 진화적 창조론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하나님께서 진화론적 과정을 사용하셔서 생명체를 창조하신다는 입장이다. 그런 주장은 창2:2-4절로 그 주장의 타당성을 성경으로 증명하려 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둘 다 과학적으로는 증명될 수 없는 믿음이다. 다만 진화론은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적 전제이지만 그 가설을 실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Popper의 주장대로 과학이 성립하려면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이 있어야 하고, 비록 이제까지는 반증되지 않은 경우라도 반증이 가능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 가지 경우로라도 반증이 가능하면 과학적 이론으로서는 그 자격을 상실한다. 진화론 가설에 대해서 창조론자들이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은 그 가설에 그만큼 약점이 많기 때문이다. 캠브리안 폭발 (Cambrian explosion)을 둘러 싼 논란들은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증거를 둘러싼 문제들 외에도 진화론은 “우연”의 요소를 도입하지 않고 인간의 자아의식과 언어현상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설득력 있는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한다. 물론 좀 더 확대해서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진화론이 전제하는 자연의 동일성 원칙(the principle of uniformity of nature)이 과연 영원불변한 것인지, 그리고 과 그것에 근거한 외삽 (外揷=extrapolation)이 과학적으로 합법적인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자연의 동일성 원칙이 영원불변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어길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에 근거한 것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것도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법칙에 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6. 맺는말 신앙이 학문적 지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이 신앙에 의하여 결정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올바른 신앙에 입각한 지식만이 참 된 지식이다. 지식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많이 고민한 Augustinus나 Anselmus는 “알기 위하여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 이란 결론을 내렸다. 즉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안다는 것이다. 만약 학문적 노력에 의하여 어떤 진리가 확실하게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이며, 그 진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학문과 이성이 하나님과 독립하여 자율적이 되면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종교적인 신앙의 위치에 서고 만다. 그러므로 학문은 종교적으로 중립적이 될 수 없다. 참고문헌 Conford, F. M., From Religion to Philosophy. New York: Harper & Row, 1957 Feyerabend, P., Against Method, New Left Books, 1975 Gerth, H. H. & C. W. Mills eds. From Max Webe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8, Holmes, Arthur F., All Truth is God's Truth, Grand Rapids, Eerdmans, 1977 Kant, Immanuel, Welches sind die wirklichen Fortschritt, die die Metaphysik sein Leibnizens und Wollf's Zeiten in Deutschland gemacht hat? 1804 Kuhn, Thomas,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Polanyi, M., Personal Knowledge: Towards A Post-Critical Philosophy, Chicago: Chicago University, 1974 Popper, Karl, The Poverty of Historicism, Lond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1957 Stevenson, J., ed., A New Eusebius: Documents illustrative of the history of the church to A.D. 337, London: S.P.C.K., 1957 Wittgenstein, L.,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 Wright, G. H. von, Explanation and Understanding, Ithica,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71 (영문 요약) To Do Sciences in Christian Way Christian academicians have been wrestling with the problem ever since Christian faith was introduced to the Hellenistic world. Most academic activities today have scientific character. They have to be systematic (logical), objective, empirical, useful, use the method of causal explanation and have homogeneous object field. Science is not value neutral as many claim; they are more for power than satisfying curiosity. Conflict between Christian faith and science is inevitable for they both claim truth and truth, whatever the kind, is supposed to provide security. Many insist that science has replaced faith, some tried uneasy compromise, some put them opposite to each other, and some tried to explain away Christian faith with science. But the ultimate validity of scientific knowledge cannot be proved scientifically. It itself has a religious presupposition. Both Christian faith and science claim truth and in some their claims collide each other. In principle we must put science under God’s sovereignty. If there is any truth in science, it also is God’s truth. The principles all sciences presuppose, such as the principle of the uniformity of nature, are, should be God’s principles if they are true. Science is limited because it deals only aspects of reality, not the individuals, while the reality is composed of individual objects. Scientific knowledge is inevitably abstract because the method requires them to leave aside those irrelevant aspects (ceteris paribus). Further, science can never explain or solve the most important elements of human life, love, meaning of life, human dignity, freedom, right, etc. Science is also a game. It is exercised according to the rules agreed upon by the contemporary academic communities. Therefore, they are temporal and transitory. If there is any conflict between science and Biblical teachings, (1) we should examine whether the scientific conclusion is truly valid. If is undoubtedly true, (2) we may reflect whether our understanding of the Bible is correct. If the conflict is still not resolved, we should wait patiently until further discoveries are made. Not all the so-called scientific truths have been valid always and our understanding of the Bible is not absolute. science, faith, truth, presupposition, game,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2-17
  • 장성만 목사의 삶과 이념
    (이 글은 부산ㆍ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장성만 목사의 삶과 이념 김대식 (동서대학교 교수, 전 장성만 박사 비서실장) 시작하면서 학교법인 동서학원의 설립자인 장성만 목사는 신앙 에세이집 ‘약속의 땅’에서 “그 곳이 어디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 ‘거룩한 땅’이요, 그 부름(使命)에 발 벗고 나서는 자가 사명자인 것이다.”고 설파하였다. 믿음 아래 예배당 안과 밖에서 열정적으로 예수의 삶 쫓아 사역과 인재양성, 기독교정신 국민에 전파한 정치활동으로 한평생 봉사한 인물이다. 2015년 12월 6일 소천한 장성만 목사(1932-2015)는 “예수 빼면 허수아비”라고 고백했을 정도로 삶 속에서 예수의 정신을 실천한 크리스천이었다. 장 목사는 예배당 안에만 머물지 않았으며, 성(聖)과 속(俗)이 구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배와 삶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크리스천은 적극적으로 사회 속에 뛰어 들어가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믿음에서 장 목사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으로 평생을 사역활동과 함께 인재양성, 정계 활동에 바쳤다. 대학을 세워 인재를 키우고 젊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과 국회에 나가 입법 활동을 통해 기독교 정신을 온 국민에게 펼치는 일도 목회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발 뿌리에 구원을 갈구하는 백성이 있는 한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든지 그 사람은 복음의 사역자라고 했다. “생애에 일어난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계시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 속엔 기쁜 일, 슬픈 일, 깜짝 놀랄 일, 숨이 막히는 고통, 환희의 순간들이 짜깁기처럼 섞여 있었지만 그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이요, 사랑이요, 은혜였다” 고 한 장성만 목사는 감사와 영광을 오로지 주님께 돌렸다. 장 목사는 1961년 일본 오사카 성서신학교를 졸업한 뒤, 1964년 미국 신시내티신학대학원을 수료, 1975 미국 미드웨스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1~80년까지 경남공업전문대학교 학장역임, 1981~88년까지 제 11,12대 국회의원 역임, 1988~2015년 사단법인 한국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1995~97년 동서대학교 총장역임, 2005~2015년까지 21C 포럼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77년에는 부산시 문화상(지역사회 개발분야)을 수상하였으며, 1978년에는 대통령 표창(교육공로)을, 2007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장성만 에세이 전집 5권〉과 〈도전과 시련 그리고 새로운 약속〉, 〈民意와 政策사이〉, 〈디지털 사회를 사는 지혜〉 등 27권이 있다. 본 원고는 <경남정보대학교 50년사> 및 그 밖의 자료를 통해 요약, 발췌하였음을 밝혀둔다. 1. 첫 번째 부르심: 목회자로서의 삶 장 목사는 마크 맥시(Mark G. Maxey) 선교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원래 맥시 선교사는 미군 종군목사로 일본에 머물고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처참한 상황에 처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장 목사와 만난 것이다. 맥시 선교사는 “장성만 목사, 좀 더 웅대한 꿈을 가져라. 세계는 아주 넓다. 일본에 유학 와서 공부할 생각은 없는가, 내가 너의 모든 삶을 보장하겠다.”면서 ‘신학의 바다’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심어주었다. 당장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지만, 유학의 꿈을 갖고 계속 기도를 드린 끝에 일본 오사카 성서신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한 · 일 외교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비자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맥시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규슈행 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일본 유학은 장 목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일본 유학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 맥시 선교사가 조용히 장 목사를 불러 “장 목사, 이제 더 큰 물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미국의 친구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모두 해두었다. 미국 신시내티의 신학대학교에서는 장 목사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이미 결정했다. 생활비를 지원할 후원자도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유학이 결정되었다. 1961년 말, 2년여의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한국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6남매를 헌신적으로 키워낸 어머니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의 공부만을 생각해 어머니 곁을 또 떠나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1962년 1월 첫 주일, 부산 항서교회 김길창 목사님의 특별한 배려로 새해 첫 설교를 맡게 되었는데 이날 예배를 통해 아주 소중한 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박동순,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다. 박동순 여사는 당시 성가대에서 찬양을 담당했었는데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박 여사는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점수도 확보해놓고 유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심한 반대 때문에 미국 유학의 꿈을 접어버렸다. 그런 여사는 장 목사의 설교를 듣고 용기를 냈다. 장 목사의 일본 유학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들었다고 한다. 박 여사는 집회가 끝난 며칠 뒤, 유학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장 목사를 찾아가 유학에 대해 많은 것을 물었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면서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갔다. 그리고 일생을 함께할 반려자가 되어달라고 프러포즈를 했다. 장 목사는 1962년 9월에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원래 약혼자 박동순 여사와 함께 미국에 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약혼자의 비자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혼자 갔다. 신시내티 신학대학교에 도착하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우편배달부였다. 미국의 여러 교회에서 많은 편지가 도착했다. 주로 설교 부탁을 하는 내용이었다. 대학원장인 루이스 포스터 박사부터 찾아갔더니, “장 목사, 당신을 많이 기다렸다. 장 목사에게 기대가 크다. 일단 교수 두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엘리오트 교수와 심스 교수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친인 R. C. 포스터 교수에게 장 목사를 데려갔다. 여든이 넘은 포스터 교수는 신약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그는 마치 손자를 맞이하듯 정겹게 장 목사를 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대학원 공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다고 한다. 거의 매일 리포트를 작성했는데, 짧은 영어로 논문을 준비하고, 그것을 발표하는 일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장 목사는 신시내티에서 가장 분주한 학생이었다. 미국 20여 개 주의 교회를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다. 서투른 영어로 한국의 참상을 또박또박 알렸다. 그들은 장 목사의 말에 때로는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활짝 웃었다. 일제 치하와 6·25전쟁의 역사를 넘어 극한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다. 장 목사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집회를 인도했다. 2. 두 번째 부르심: 교육자로서의 삶, 인재 양성의 꿈 그 힘겨운 시기에 낭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모든 고통을 일시에 날려버린 기쁜 소식이었다. 장 목사가 미국에 온 지 한 달 반 만에 약혼자 박 여사의 비자 문제가 깔끔하게 처리가 되어 미국에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사고무친한 미국 땅에서 인생의 반려자가 될 사람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여간 큰 기쁨과 위로가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에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늘 서운했다고 했다. 그렇게 장 목사는 신시내티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아내 박동순 여사는 기독교 교육을 공부했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아내가 기독교 교육을 선택한 것은 좀 의외여서 “왜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려 하는가?”고 물었더니, “당신은 조국에 돌아가 기독교 대학을 설립할 꿈을 갖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원대한 꿈을 펼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좋은 내조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공부라고 생각해다오.”라고 했다. 둘은 서로를 의자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미국은 기능사회이다. 기술을 가진 사람이 대우받는다. 아이비엠(IBM)에서 컴퓨터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면 시간당 4달러 45센트를 받았다. 그러나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사람에게는 시간당 1달러 40센트가 주어졌다. 아무 기술도 없는 사람은 노동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았다. 심지어 공동묘지 잔디를 깎는 사람도 자동차가 두 대였다. 잔디를 깎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었다. 다시 한국 국민 1인당 GNP가 87달러였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 본 장 목사는 “야, 바로 저것이다. 조국에 돌아가면 고급 기술자를 양성하리라. 기술을 가진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리라.”고 인생 계획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을 놓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런 와중에도 장 목사는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여러 교회로부터 초청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수많은 교회가 자신의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찌 알고 자기를 초청했을까. 정말 신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회 초청을 한 교회에 넌지시 “나를 어떻게 알게 됐나?”고 물어 보았더니, “맥시 선교사가 편지를 보내왔다. 한국의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미국에 올 것이라고···. 당신을 잘 도와주라는 당부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였다. 당시 미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정말 뜨겁고 순수했다. 그러면서 장 목사는 한국에 기독교 대학을 설립해 기술과 신앙을 가진 인재를 양성할 것이라는 비전을 밝히고 기도를 당부했다. 장 목사는 공부와 설교를 병행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수 십 년 동안 유학해도 배울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미국에 유학하기 전 장 목사는 강릉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다. 래쉬 선교사가 그를 초청한 것이다. 그는 선교활동에 약간 지쳐 있었고,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이 실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래쉬 선교사는 “장 목사, 한국 사람들은 게으르다. 맘에 들지 않는다. 이들의 정신 상태를 좀 개조해다오.”고 부탁했다. 교회로 향하는 길은 질퍽거리고 지저분했고, 예배당 벽지는 갈기갈기 찢겨져, 도대체 예배당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장 목사는 집회를 갖기 전에 청년 몇 사람을 불러 모아, 청년들과 함께 길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모래를 퍼와 새로 길을 단장하고 밝은 색 벽지를 사다가 예배당 벽면도 깔끔하게 도배했다. 하루 만에 전혀 새로운 예배당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를 본 래쉬 선교사는 깜짝 놀랐다. “장 목사, 넌 보통 한국 사람과는 다르다. 우리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원한다. 미국에 다녀와서 무얼 할 계획인가?”고 물었다. 이에 장 목사는 “나는 대학을 세울 것이다. 고급 기술과 신앙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이다.”고 대답했다. 래쉬 선교사는 장 목사의 비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곳에서는 선교 활동에 한계가 있다. 나도 너와 함께 일하고 싶다. 미국에 다녀오면 나를 꼭 부산에 불러다오. 나 역시 학교 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둘은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장 목사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6개월 전, 그는 이미 부산에 내려와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킨 것이다. 그렇게 장 목사와 래쉬 선교사는 함께 영남기독교실업학교를 세우게 된 것이다. 1965년 11월, 원대한 꿈을 향한 출발의 총성이 울린 날이다. 래쉬 부부와 장 목사 부부가 학교 건축을 위한 첫 삽을 뜬 날이다. 이것이 역사적인 학교 사업의 시작이었다. 장 목사가 교장을, 래쉬 선교사가 교감을 맡았다. 장 목사는 설립허가를 얻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무려 36번이나 왕복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쳤다. 미국에서 귀국하기 2주 전에 가계(家系)를 이을 장남 제국이 태어났다. 신시내티는 동양인이 아주 드문 도시다. 동양인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현지인들에게 아주 재미난 뉴스였다고 한다. 심지어 신문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제국이를 낳고 2주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장 목사 부부는 미국 유학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고 한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난 것이 최고의 축복이었다. 비록 피부·언어·풍습은 다르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공통점 하나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없었으면 매우 고달픈 삶이었을 것이다. 둘은 항상 그것을 감사드렸다. 1965년, 드디어 그리운 고향 부산에 도착했다. 학교를 세울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오직 꿈과 비전만 초롱초롱 빛냈다. 강원도에서 사역하던 래쉬 선교사가 유일한 동반자였다. 우선 과수원을 하다가 그만둔 땅을 구입해 학교 건물인 알파홀을 짓기 시작했는데, 래쉬는 바위를 깨뜨리고 블록을 찍는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한번은 장 목사가 잠을 자는데 빗소리가 들렸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장 목사는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학교 건물 공사를 하는 곳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물길을 내주지 않으면 산 아래 주민들이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빨리 물길을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장 목사는 삽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하나님, 학교를 지켜주세요. 만약 건물을 짓다가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면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도와주세요.” 학교는 지대가 높은 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만약 공사장에 물이 차올라 산사태라도 나며 큰일이었다. 폭우를 맞으며 장 목사는 산길을 올라갔다. 순간 발을 헛디뎌 심하게 꼬꾸라졌다고 회고했다. 흙탕물에 휩쓸려 한참 동안 미끄러졌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몸이 걸렸다. 조금만 더 떠내려갔으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믿음을 주세요. 소망을 주세요.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라고. 폭우 속에서 드린 간절한 기도였다. 그것은 일종의 절규였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깨달았다다고 한다. 그는 폭우 속에서 삽으로 물길을 만들어 빗물을 계곡 쪽으로 유도했다. 이런 숱한 시련들을 딛고 첫 건물인 알파홀이 들어섰다.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일이 가능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우여곡절 끝에 건물이 완공됐다. 그러나 인가도 나지 않은 학교에 과연 학생들이 얼마나 찾아올 것인지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더구나 당시에는 인문계를 숭상하는 풍토가 지배적이었다. 기술자를 양성하는 실업계 학교는 가난하거나 성적이 신통치 않은 학생들이 가는 곳쯤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트럭을 몰고 부산·경남 일대를 순회했다. 주로 극장·예식장·교회에서 “우리나라도 곧 기능사회로 변한다.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최고의 기술을 가르쳐 줄 것이다. 학비는 걱정하지 마라. 모두 장학생이다.”고 열정적인 강연을 했다. 첫 입학식이 열렸다. 학생은 총 19명, 주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강연을 듣고 찾아온 젊은이들이었다. 교육 슬로건은 ‘성경과 보습을 들고’였다. 학훈은 ‘근면·자립·협동·신앙’이었다. 이것이 2년제 초급대학의 첫 출발이었다. 장 목사가 가사를 만들고, 부산대 이상근 교수가 곡을 붙여 교가도 만들었다. “낙동강 굽어보는/ 민석대 위에/ 진리의 이상탑이/ 우뚝 서 있네/ 새 시대 새 일꾼을/ 길러나가는/ 아! 그 이름/동서기독교실업학교/ 근면 자립 협동 신앙/ 우리의 학훈/ 만방에 펼치자/동서기독교실업학교” 장 목사가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은 성경적인 삶이었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불신자였으나 졸업할 때는 기독교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도록 지도했다.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가르친다. 장 목사는 학교의 설립자이며, 교수이며, 경비원이었다. 뭐든지 닥치는 대로 감당했다. 이런 정신이 우리 민족에게 정말 필요한 시기였다.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게으르다. 게으른 민족은 절대 잘 살 수 없다.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한다. 자립정신으로 무장해야한다.” 그런데 학교를 설립한 이듬해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은 ‘근면·자립·협동’이었다. 우리 학교의 교훈 4가지 중 ‘신앙’만 빠진 것이다. 사람들은 장 목사에게 “학교가 새마을 운동의 4대 정신을 모방했다.” 고 말한다. 그러면 장 목사는 늘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학훈을 흉내 낸 것이랍니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비록 지금은 입학생 19명의 초라한 입학식이지만, 나중에는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올 것을 믿었다. 그것을 어느 목사님은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영광스런 그날을 상상하며 오늘의 시련을 극복했다. 절망의 벽은 탱크 같은 강한 기도로 분쇄하면 된다. 기도는 기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19명의 신입생을 나는 ‘엘리야의 구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엘리야가 처음 본 것은 손바닥만 한 구름이었지만 그것이 나중에 거대한 구름으로 변할 것을 믿는다. 어렵게 모집한 19명의 첫 신입생은 엘리야의 구름 같은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욥기서 8장 7절). 장 목사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 미국을 10여 차례 오가며 재정지원을 호소했고, 재미재단 이사회는 최선을 다해 장 목사를 도와주었다. 학생들은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주로 일을 했다. 이제 갓 시작한 학교였기 때문에 항상 일손이 부족했다. 2년 후에는 감격적인 첫 졸업식을 가졌다. 입학생 중 5명은 중도 탈락하고 14명만 남았다. 졸업식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서로 고생을 많이 했기에 감동도 컸다. 1970년, 정식으로 전문대학교 인가를 받았다. 그런데 정말 ‘엘리야의 구름’과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신입생 80명을 모집하는데, 구름처럼 많은 학생이 모여든 것이다. 2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인 것이다. 일찍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길 원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이제 최소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각 도시를 순회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다. 사람들은 장 목사에게 “대학을 빠른 시일에 크게 발전시킨 비전이 뭡니까?” 물으면, 장 목사는 “첫째는 설립정신에 충실한 것입니다. 둘째는 교육시설을 첨단화하는 것입니다.” 고 대답했다. 그는 학생들의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를 대리점을 통해 구매하지 않았다. 직접 본사에 가서 그것을 구입해왔다. 시마스제작소와 메그로회사의 전자계측기인 오실로스코프 싱크스코프 밸런스 등을 구입할 때도 장 목사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담당자를 만났다. “난 부산실업전문학교 학장이다. 학생들의 실습 기자재를 구입하려 한다.”고 말하자 “우리는 개인에게는 기자재를 판매하지 않는다. 대리점을 통해 구입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이 당신의 회사의 기자재를 익혀놓으면 나중에 엄청난 판매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좀 다오. 결코 당신들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고 설득했다. 그러자 담당자가 “당신의 열정에 감동했다. 기자재의 값을 40% 할인해주겠다. 계속 우리와 거래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움을 갖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다. 교육은 곧 만남이다. 좋은 교육은 좋은 만남에서 출발한다. 장 목사 한 학기에 두 차례씩 ‘학장과의 대화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만남을 통해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갖는 교직원과 학생들의 채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원칙 중 하나였다. 모든 지식은 신앙의 바탕 위에서 빛이 난다. 신앙이 없는 교육은 때론 공허할 뿐이다. 그는 그룬두비히의 책을 읽고 그의 삶을 많이 연구했다. 그의 정신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면 독서하고(知), 둘이면 노래하고(情) 셋이면 체조를 하자(意) 하나님·이웃·땅을 사랑하는 ‘심애의 마음’을 갖자.” 머리로 배우는 지적교육, 가슴으로 느끼는 정서교육, 손으로 일하는 의지적 교육을 강조했다. 그리고 반드시 1년에 두 차례씩 부흥회를 열었다. 주일은 대교그리스도의 교회 담임을 맡아 사역했고, 평일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방학 중에는 미국에 건너가 도움을 청했다. 최근 파악해보니 부산실업전문학교 출신 목회자가 11명이나 됐다. 교회에서는 세족회를 만들어 신앙 좋은 청년들을 선발, 훈련 시켰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목사가 2명 배출 됐다. 서울 답십리교회 박구하 목사와 중국선교사 김찬영목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장 목사는 졸업생 중 목사 장로 집사가 많이 배출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다. 기술교육은 시대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여러 회사에서 졸업생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 산업화를 외치며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충분한 실습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울산 현대조선을 비롯해 각 회사에 수 천 명이 취업했다. 또 한 가지 호재가 있었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측량 전기 토목 설계 기술을 가진 인력이 대거 중동에 파견된 것이다. 졸업생 취업률 100%.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1971년, 부산실업전문학교는 국내 최초로 사회교육원을 운영했다. 당시 한국에는 ‘사회교육원’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그것은 장 목사가 미국에서 배워온 것이었다. 대학에 주부 · 신부 · 노인 · 꽃꽂이 교실을 만들어 지역사회에 개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부산실업전문학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부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캠퍼스는 학교가 아니라 공원처럼 변했다 그 즈음 사업을 하는 이학수라는 분이 그를 찾아왔다.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더군요. 저는 중병에 걸려 곧 죽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면서 그는 장 목사에게 흰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봉투 하나에는 1,000만 원, 다른 봉투에는 500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당시 1500만 원은 지금의 1억 5000만 원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액수였다. 그 돈으로 종훈 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장 목사는 정말 분주한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의 성서학 강의는 물론 교회 대학 채플에서의 설교와 집필활동이 이어졌다. 결국 잠자는 시간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항상 새벽 4시 30분에 기상했다. 먼저 기도를 드린 후, 신문사나 잡지사에 보낼 원고를 집필한다. 그날 하루 중요한 일들은 새벽에 거의 마무리한다. 장 목사는 하루에 5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장 25절). 당시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편입할 4년제 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장 목사 부부는 무려 12년 동안 기도했다. 그런 12년 동안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1991년, 4년제 대학인 동서대학교가 인가를 받은 것이다. 오랫동안 염원해오던 꿈을 드디어 이루게 해주신 것이다. 그 대신 정치에서는 손을 때고 교육과 목회에 전념하도록 새로운 길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동서대학교는 인가를 받은 이듬해부터 신입생을 모집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 그렇게 전문대학인 경남전문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편입학할 수 있는 4년제 대학이 생긴 것이다. 1995년, 동서대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과 신앙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 사실 그것이 학교를 설립한 목적이었다. 총장을 맡아 처음 선언한 것이 교육의 세계화였다. 국내에만 머무는 교육은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 것이다. 장 목사는 세계 20여 국가 78개 대학 및 연구소와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3. 세 번째 부르심: 정치가로서의 삶 장 목사에게 교육은 평생의 소원이요, 꿈이었다. 경남공업전문대학은 일취월장 발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근대화의 물결도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일생 중 가장 보람 있고 분주한 나날이었다.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부산시 문화상과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캠퍼스 중심에 초현대식 건물을 짓고 그의 호를 따서 민석기념관이라 명명했다. 거칠 것이 없는 성장의 연속이었다. 1979년, 정국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그해 10 · 26사건으로 박 대통령이 시해당하고 이어 12 · 12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최규하 총리가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듬해 9월1일에는 전두환 장군이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부산의 여러 모임에 참석해 나라의 안정을 역설하곤 했다. 이때 새로 등장할 정당은 전국에서 참신한 인물들을 찾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두 차례나 받았지만 계속 거절했다. 그런데 평소 안면이 있던 어느 분이 조용히 그를 불러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이 뜻을 전하기 위해 심부름 온 사람일 뿐입니다.” “우린 지금 새로운 정당을 조직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인물을 찾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당신을 추천했다. 이 지역의 새로운 인물은 바로 당신이다.”고 했다. 장 목사는 정치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갈 길은 목회와 교육뿐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교육(Teaching Ministry), 둘째는 목회(Preaching Ministry), 셋째는 치유(Healing Ministry)다. 이 셋은 결국 하나다. 그는 목회와 교육은 해보았지만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치를 통해 치유 사역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방향키는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세 번째 부리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 역사 창조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겠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 아래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81년 3월, 제11대 총선에 출마했다. 물론 지역구는 부산 북구였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 오묘했다. 선거전에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경남정보대학교 사회교육원에 참여한 주민들이 그의 선거운동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일순간에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확보했다. 돈을 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11대 국회의원이 되어 여의도에 입성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장 목사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국회 선교사’가 되려고 권고하는 분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국회에 보낸 뜻이 무엇일까? 어떤 일을 맡기실까?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하나님, 국회의원도 제게 주신 소명임을 믿습니다. 신앙적 신념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도록 지켜주세요.”라고 기도로 단단히 무장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항상 길을 열어주신다. 기도하는 사람은 약한 듯해도 강하다는 것을 안다. 중요한 일이 닥치면 더욱 기도의 강도를 높인다. 그때마다 놀라운 위로와 지혜와 힘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다. 국회에서는 교통체신위원회에 배속됐다. 당시에는 각 위원회 중 가장 인기가 없는 부서였다. 초선인 나로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무엇을 선택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보고를 받아보니 철도사업이 엉망이었다. 철도청장은 대부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적자는 연 수백억 원이 넘었다. 직원들 간의 음해성 투서는 도를 넘고 있었다. 이런 조직이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었다. “이건 순전히 나랏돈을 집어삼키고 있구나.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는 생각이 들자, 양복을 벗어던졌다. 점퍼로 갈아입었다. 6개월 동안 완행열차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그 결과 철도 운영 상황을 훤히 알게 됐다. 그는 현장의 경험을 토대로 ‘철도사업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철도 철도병원 식당을 민영화하고, 적자노선은 버스로 교체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철도사업은 대부분 이때 장 목사가 제안한 정책대로 운영되고 있다. 철도 자재의 무분별한 수입도 문제였다. 그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철도청은 창고에 재고가 쌓여 있는데도 계속 발주를 하고 있다.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것은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행위다.”고 말하자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초선 의원이 직접 현장을 발로 뛰어 조사한 것을 토대로 밝힌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반박할 수도 없었다. 택시 운영도 민원이 많았다. 그는 몇 개월 동안 택시를 타고 다니며 의견을 수렴해 ‘택시사업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주변에서는 참 별난 초선 의원이라며 장 목사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목사로서의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가 입법의원 시절, 국회의사당 지하에 채플룸을 마련해놓았다. 그는 11대 크리스천 국회의원, 사무처 직원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수요일 아침마다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국회조찬기도회 고문으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준비해두셨던 것이다. 이후 1985년 2월에 치러진 12대 총선은 그야말로 혈투였다. 김영삼, 김대중 씨의 지지를 받은 신민당 바람이 전국을 강타했다. 하지만 장 목사는 4년 임기동안 양산~구포 간 도로확장, 구포역 신축, 도서관 신설, 서부터미널 유치, 그린벨트 완화조치 등의 업적을 열거하며 득표활동을 벌이는 등, 차분한 정책대결로 맞섰다. 12대 총선을 치르고서야 장 목사는 비로소 정치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아니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온통 ‘복지사회 건설’에 있었다. 그가 정당에 들어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학을 세워 젊은이를 교육한 것도 복지사회 구현 때문이었다. 정책위의장을 맡고 보니 국민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정치국민을 위해 봉사할 결심을 하면 구체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대학생들의 학자금 문제가 시급했다. 영세민 자녀들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학자금 융자 제도’를 만들었다. 은행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융자해주고 이자의 50%는 정부가 부담하는 제도였다. 학생은 졸업한 뒤 직장을 구해 원금을 상환하는 제도였다. 서민과 학생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은행과 정부는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모든 정책에 대해 분명한 판단 기준을 갖고 있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은 이 일을 기뻐하실까. 과연 국민들이 기뻐할까. 이것이 국민을 위한 정책인가.”라는 이 물음이 바로 그의 정책 결정의 기준이 됐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장 목사는 정치를 하지 않아도 별반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 말고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학자금 융자제도를 반대하는 은행과 정부에 맞서 수차례 당정협의를 가졌다. 그리고 이 제도를 확정했다. 이 제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외에도 대학교수들의 연구년제를 도입했다. 교수들의 재충전을 위해 연구비를 지급하고 단기간 외국에서 연구 활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안식년제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이었지만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1986년에 가장 많은 국공립대학 교수들이 연구비를 지원받아 해외로 나갔다. 그는 교육자다, 교육은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자녀가 어렸을 적에 좋은 습관을 심어놓으라. 그러면 그 습관이 평생 동안 이어지리라. 습관은 나무와 같다. 오래된 나쁜 습관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서 그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습관과 신앙이다. 장 목사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한 가지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깨끗한 정치인의 꿈이었다. 적어도 물질의 유혹에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 한 평의 땅도, 당 한 푼의 돈도 옳지 않은 것이면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고 자부한다. 권력을 이용해 땅을 사거나 부를 취한 적이 없다. 초선 때부터 좋은 정치인의 습관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좋은 만남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12대 국회 후반에게 뜻하지 않은 중직을 맡게 되었다. 국회 정 부의장 선거에서 이재형 의원이 165표를 얻어 국회의장에, 장 목사가 160표를 얻어 부의장에 선출됐다. 재선의 국회부의장은 분명히 이변이었다. 그는 당선 인사를 통해 용광로 같은 국회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계층 세대 지역 간의 불화와 갈등을 수렴해 용해시키는 국회가 되자고 역설했다. 그는 일단 짐을 싸서 부의장실로 옮겼다. 공간도 널찍하고, 비서진도 중원이 되고, 관용차도 지급됐다. 이제는 지역구를 관리할 시간적 여유도 갖게 됐다. 의장단은 입법부를 대표해 외국 손님을 맞는 일이 많았다.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외국 대사를 접견하는 일도 중요한 업무였다. 지금까지는 ‘정책’에 몰입했으나 이제부터는 조금씩 ‘정치’를 배우는 시기였다. 1988년 4월 26일, 제 13대 총선이 치러졌다. 장 목사는 민정당 공천을 받아 부산 북갑에 출마했다.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일해 온 것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총선의 키워드는 ‘바람’이었다. 정치바람 앞에서는 ‘업적, 봉사, 지역발전’ 등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상대 진영에서는 선거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한 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때 장 목사는 정치는 바람인 것을, 바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속수무책인 것을, 정책도, 공약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선거 결과는 참패였다. 제13대 총선 실패를 ‘사막에서 찾은 무덤’으로 정의했다. 무덤은 종말이 아니다 무덤은 실패가 아니다. 무덤은 곧 희망이다. 그는 총선 실패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그것을 ‘사막의 무덤’으로 표현했다. 〈탈무드〉를 보면 사막을 여행하는 부자(父子)의 이야기가 나온다.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부자가 걷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그들은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공동묘지···.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의 손을 잡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묘지가 주는 희망의 메시지, 그것은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다는 암시였다. 낙선, 그것은 장 목사의 묘지였다. 새로운 희망의 암시였다. 가까운 곳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또 다른 선물이 있었다. 그를 지지해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지지해준 여러분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낙선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뜻이 있을 것입니다. 일단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연구소를 출범시킬 것입니다.” 그때 시작한 것이 사단법인 한국지역사회연구소다. 장 목사가 이사장을 맡았고,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지인들이 회비를 보탰다. 연구위원은 권영설 · 김동일 · 조승민 · 유동길 · 이성복 · 서의택 · 오석기 교수 등이었다. 자문위원은 정성모 · 서정화 · 이자헌 · 김중위 · 민병규 · 오한구 씨 등 현역 의원이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후회는 없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는 부산시선대위원장을 맡아 노태우 후보의 선거유세 때, 수영비행장으로 사용하던 장소에서 100만여 명을 모았다. 또 31개 개신교단 대표를 서울 힐튼호텔에 초청해 기도회를 가졌다. 노 대표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나, 딸 노소영 씨는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노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것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낙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장 목사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5남매를 기도로 키워온 한 여인의 삶이 89세로 마감된 것이다. 어머니는 폐암으로 1년간 고생하다가 가셨다. 아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거처를 서울로 옮겼을 때도 부산에 남으셨다. 주말마다 내려오는 아들을 위해 새벽 한 시든, 두 시든 기다렸다가 손수 문을 열어주신 분이다고 회고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입을 통해 세상 소식을 듣고자 했다. 그리고 목사인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100% 진실이라고 믿었다. 제13대 총선에 실패해 어머니의 가슴에 충격을 안겨드린 것을 장 목사는 늘 죄스럽게 생각했다. 반드시 재기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재기를 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것 때문에 내내 마음이 아파했다. 맺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3대 총선 실패는 화가 아니었다. 그것이 오히려 복이었다. 나중에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실패처럼 보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나 큰 사랑이었다. 그즈음 그는 부산 북구에 4년제 대학 설립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대학 설립 조건은 까다로웠다. 우선 시설을 미리 갖추어야만 했다. 장 목사는 열심히 부지도 확장하고 건물도 세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그 꿈은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2년제 전문대학 출신들이 4년제 대학에 편입해 공부하는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다. 일단 대학설립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학교명도 ‘동서’로 잠정 결정했다. ‘동서’란 동쪽(East)과 서쪽(West)을 의미한다. 즉 동양과 서양, 한국과 미국의 협력을 상징한다. 장 목사는 종합대학 승인을 얻기 위해 정원식 문교부 장관과 협의했었다. 그는 공과대학 말고는 승인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공과대학으로 출발한 것이다. 선진조국 건설에 앞장서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장 목사의 견학이념과도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1991년 허가를 받아 이듬해 첫 신입생을 모집했다. 12년 동안 드린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 정말 감격적인 입학식이었다. 4년제 대학 설립이 현실이 된 것이다. 초대 학장에 정권섭 장로가 취임했다. 장 목사는 이 학교가 MIT 공과대학처럼 세계적인 학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세계 석학들이 몰려오는 명문이 될 것을 믿었다. 1995년 장 목사가 총장으로 취임해 본격적인 교육 개혁을 시작했다. 총선 패배가 학교 성장의 기회가 된 것이다. 원래 그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목회와 교육, 그것이 그의 달란트였다. 우선 대학의 과장 계장 제도를 모두 폐지하고 ‘담당역 제도’를 시행해 결제 단계를 대폭 축소했다. 기관이 활성화되려면 의사결정이 신속해야 한다. 담당자가 기안한 문서는 그 다음 단계를 거쳐 곧바로 총장에게 올라오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5단계 절차가 3단계로 축소됐다. 또 캠퍼스를 교육존, 연구존, 스포츠존으로 분류해 공원화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강의실에서는 화상강의가 가능했다. 장 목사는 직원들에게 발상의 대전환을 강조했다. 또한, 동서대학교 총장을 맡아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교수평가 제도를 도입해 모든 교수가 교육 연구 봉사 부문에 대한 자기평가를 하는 한편 상호 간의 상대평가를 해 ABC등급으로 나누었다. 그것에 따라 업적금을 차등지급하는 제도였다. 3년 연속 A등급을 받은 교수는 ‘브랜드 교수’라는 칭호를 주고 연구비 지급, 정년 보장, 강의시간 조정 등 특혜를 주었다. 교과과정에 영어 강좌를 18시간 포함시켜 어학 교육을 강화했다. 재학생 대부분이 전공에 따라 미국 중국 일본에 1년씩 연수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리고 장 목사는 “후발 대학은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과 동일한 과정으로 경쟁해서는 이길 수 없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승산이 있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시작한 것이 디자인 분야였다. 우선 학부에 그래픽 디자인, 제품 디자인, 멀티미디어 디자인, 환경 디자인, 패션 디자인 등 5개 학과를 만들어 280명의 신입생을 모집했다. 국내 여러 기업과 산학협력을 맺었고, 일본 나가오카조형대학, 독일 바이센제예술대학, 중국 베이징이공대학, 상하이공정대학, 홍콩폴레텍대학 등과 교류 협정을 체결해 교수 및 학생의 교류를 시작했다. 2000년에는 동서대에서 국제 디자인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미국, 독일, 덴마크, 스웨덴, 일본 등의 수많은 학자들이 내한했다. 하나님은 2002년에 디자인 전문대학원 설립허가를 받도록 도우셨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처음 디자인 분야의 박사를 배출했다. 디자인 전문대학원장에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조영제 교수가 임명됐다. 일본나가오카조형대학 도요구치 학장과 독일 바이센제예술대학 기노부 교수가 객원교수로 초빙됐다. 최상의 교수진을 확보한 것이다. 그해 교육부는 우리학교를 디자인 분야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했다. 특성화 전략이 빛을 발한 것이다. 또한, 장 목사는 늘“우리 대학은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강조했다. 이 정신에 따라 국내외 봉사에 주력했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개교 때부터 한센병 환자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특히 국제기술봉사단의 인도네시아 봉사활동은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장 목사도 학생들과 함께 현지를 방문했고, 페트라대학은 ‘한국의 날’을 제정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나중에 수라바야 시장이 동서대학을 방문해 감사패를 전달했다. 경남정보대학교도 국제선교봉사단을 만들어 필리핀에서 사역하고 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버림을 받느니라.”(잠언 12장 24절). 동서대학이 개교 10주년을 맞이 한 해에 슬로건 두 개를 정했다. 그것은 Top 10 and the world’와 ‘너희 가슴에 세계를 담아라’다. 첫 번째 슬로건은 특성화 분야에서 국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이제 국내 대학끼리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즈음 임권택 감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장 목사는 “우리 대학에 임권택 영화예술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을 설치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붙인 단과대학은 아마 처음일 것입니다. 영화연구소도 만들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자 그는 쾌히 승낙해주었다. 임 감독은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겠다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서대학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제휴해 AFA(Asia Film Academy)도 개최하고 있다. 아시아의 젊은 영화 지망생들이 이곳에 와서 수업을 받으며 직접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2006년 1월 8일, 장 목사는 대학교회를 은퇴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김호규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현재는 최훈규 담임목사). 대학교회는 재적교인이 800여 명쯤 된다. 교회에 중보기도팀이 있어 365일 계속 학원복음화를 위해 릴레이 기도를 드린다. 대학교회는 장 목사가 설립한 대교 그리스도의 교회를 계승한 것이다. 장 목사는 총장으로 재직하면서도 목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름대로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회는 영적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이곳에서 모아진 에너지가 대학에 송전되어 기도의 불을 밝혀야 한다. 대학교회에서 기도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 캠퍼스는 계속 영적인 빛을 발하며 발전할 것이다. 장 목사는 그것을 믿는다.”고 늘 강조했다. 그는 목사였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대학을 설립하게 하시고 전 세계의 대학들과 교류하게 하신 뜻이 무엇일까. 장 목사는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캠퍼스 선교를 위함이다. 캠퍼스는 전도의 황금어장이다. 캠퍼스는 낚시로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 아니다. 그물로 한꺼번에 수많은 영혼을 낚는 가두리 양식장이다. 우리 대학에는 캠퍼스 선교사들이 있다.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대학생활을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도록 돕고 있다.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도 배출했다. 그것이 최고의 보람이다. 장 목사는 학기초와 학기말에는 직접 설교를 했다. “이 학교는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에 따라 세웠다. 기독교 정신이 희석되면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Number One이 아니라, Only One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지난 50년간 우리 학교는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우리 학교는 이공계 중심으로 발전한 학교다. ‘경남공전’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인문사회계통을 비롯한 다양한 학과를 신설하며 그야말로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대학은 그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지역사회를 떠난 대학은 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50년 동안 동서학원은 지역사회에 많은 은혜를 입어왔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흙을 실어 나르느라 먼지도 많이 날리고 고음도 심했을 텐데 큰 불평과 항의 한번 없이 많이 이해하고 참아주셨다. 장 목사는 “우리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지역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생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럴 때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더불어 동서학원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발행연도순) 《세 번째 부름》 민석문화사, 1983. 《의정활동과 정책과제》 민석문화사, 1984. 《장성만 에세이 전집》 전5권, 민석문화사, 1986. 《민의와 정책 사이》 민석문화사, 1988. 《도전과 시련 그리고 새로운 약속》 민석문화사, 1991. 《소향 박동순박사 회갑기념논문집》 소향 박동순박사 회갑기념논문집 편집위원회, 1999. 《디지털사회를 사는 지혜》 양서원, 2001. 《예수님 때문에 = Because of Jesus》 동서대학교대학교회, 2003. 《동서대학교 10년사》, 2003. 《(장성만 목사 설교집)약속의 땅》 현학사, 2003. 《행복을 선택하는 것》 현학사, 2004. 《성서가 말하는 행복과 성공의 비결》 시리즈 5권, 현학사, 2004. 《플러스 파워》 민석문화사, 2006. 《소향산책》 동서대학교 소향 박동순 총장 문집편찬위원회, 2007. 《박동순총장 문집2》, 2007. 《빌사일삼》 국민일보, 2010. 《경남정보대학교 50년사》, 2015. 《동서대소식》 341호, 201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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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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