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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국가권력은 예배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1. 문제점 제기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7월 8일, 교회의 정규예배 이외의 모임과 행사, 식사제공 등을 금지하고, 출입 명부 관리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7월 10일 오후 6시부터는 교회 수련회, 구역예배, 기도회, 성가연습, 성경공부 등 각종 대면 소모임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심지어는 정규예배에서 찬송가는 작게 해야 하고, 통성기도는 금지해야 하는 등 소소한 세칙까지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시 3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교회 운영을 일시 중단시킬 수 있다고 위협했다. 심지어 경기도 구리시는 7월 13일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는 종교시설에 대하여 신고할 경우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지했다고 한다. 수도권에 이어 광주, 전남 지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게 되자 이를 예방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지만 기독교회의 예배나 집회에 대한 제한 조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교계 지도자들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교회 이름으로 모이는 집회를 제한하고 이를 규제하려는 것은 종교의 자유 혹은 신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독교회는 그동안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협조하고 방역 수칙을 준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마치 코로나감염병의 진원지인 것처럼 간주하고 교회 집회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독교회 집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게 한다는 점이다. 셋째, 불교나 천주교 등 타 종교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고 유독 기독교회에만 이런 제한 조치를 강제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편파적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감염자의 교회 출입으로 문제를 야기한 경우는 전체 6만여 교회 중 30여개 처 교회로 0.053%, 교회 관련 확진자는 전체 성도수의 0.0057%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치는 매우 부당하고 형평성을 잃은 조치이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 글의 목적은 이런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교회 집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제한 혹은 금지 조치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역사에 기대어 지적해 두고자 한다. 2. 국가권력의 예배의 자유 제한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기독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worshiping community)라고 불리는데 예배는 교회의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회는 처음부터 예배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고투해 왔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예배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일로부터 출발했다. 예배의 자유는 곧 신앙의 자유였고, 예배 금지는 바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었다. 기원 64년 6월 로마의 화제 사건을 계기로 로마제국이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최초의 조치는 그리스도인들의 집회 금지였다. 기독교인들의 공개적인 집회를 불법화한 것이다. 그 다음 조치가 교회 지도자들의 색출이었다. 근거 없는 소문을 빌미로 기독교를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했던 로마 사회는 기독교를 혐오집단으로 규정했다. 로마 사람들이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단하다는 이유였다(행16:21). 다시 말하면 로마인들이 받아드릴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습(unlawful custom)을 전한다는 이유였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그 시대의 풍속으로 볼 때는 도널드 크리빌의 말처럼 ‘전도(顚倒)된 가치’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암적 존재로 규정되었고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불법의 종교(religio illicita)로 규정되어 공식적인 집회를 금지한 것이다. 그래서 비밀집회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공개된 장소에서 회집할 수 없었기에 은밀하게 가정집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가정교회’(domus ecclesiae)로 출발했다. 공개적으로 모일 수 없었고, 이방인이나 불신자들은 참석할 수 없는 기독신자들만의 모임이었기에 이런 비밀 집회를 ‘잠근동산’(enclosed garden)이라고 불렀다. 아가서 4장 12절에서 빌려온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안이었다. 그가 신자들 간의 비밀 집회를 ‘잠근 동산’(hortus conclusus)라고 불렀던 것은 이교도나 불신자 등 외부인들에게는 닫혀진 비밀 집회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공개적인 집회를 할 수 없었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 모였지만 로마제국은 이 마저도 통제하고자 했다. 비교적 관용적이었던 트라이얀(Traijan, 98-117) 황제조차도 어디서든 어떤 형식이나 조직이든 15인 이상 모이는 집회를 금지시켰을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집회의 제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세월이 흘러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때, 그 첫 번째 조치는 집회의 자유였다.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 시장에서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조치가 바로 기독교에 대한 공인(公認)이었다. 공개적인 집회가 가능했고, 몰수 되었던 재산은 되돌려 주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종교의 자유는 곧 집회의 자유라고 할 수 있고, 집회 자유에 대한 통제는 기독교 탄압의 첫 번째 단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구소련이나 중국 같은 공산국가에서도 동일했다. 중국은 최근 기독교 예배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집회소에 대한 자기 표현인 십자가를 철거하고 집회소를 통폐합하고 축소시키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간 안후이성 루안시, 마안샨시, 화베이시, 푸양시 등에서만 250여 교회를 파괴하거나 십자가를 강제로 철거했다. 집회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기간 루안시에서는 183개 이상의 교회 십자가가 철거되었다. 이런 집회 방해와 함께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예배 참석을 금지시켰다. 기독교 박해 국가 23위(오픈 도어즈의 발표)인 중국에서의 집회방해 혹은 집회 제한 조치는 기독교 박해의 첫 번째 단계에 속한다. 해방 이전까지 북한은 기독교가 융성했던 지역이었다. 해방 당시 북한에는 2천여 개 처의 교회, 30만 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공산정권의 수립과 함께 기독교는 서서히 멸절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취한 첫 번째 조치가 집회 방해였다.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집회를 제한하고 축소하고 감시했다. 두 번째 단계는 교회 지도자들을 검거하고 투옥시키거나 살해했다. 세 번 째 단계는 신학교를 축소, 통폐합하고 후에는 그 마져도 폐쇄했다. 교회당은 몰수 되거나 전용되었다. 집회소가 사라지고 공개적인 예배는 불가능했다. 물론 이와 병행하여 어용기독교 조직을 이용하였다. 북한에서 기독교 탄압의 결정적인 사례가 1946년 11월 3일 주일날 시행된 선거였다. 기독교를 탄압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11월 3일 주일날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예배를 방해할 목적이었다. 교회는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결의했으나 집회는 통제되었고, 이를 미끼로 지도자들을 체포하였고 교회는 서서히 북한 땅에서 사라져 갔다. 집회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기독교 박해의 첫 번 째 단계에 속한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할 때도 기독교회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1910년 조선을 병탄할 당시 일제는 한국의 기독교회는 1900여개 처의 집회소, 20만 성도, 300개 이상의 기독교학교, 3만 명이 넘은 재학생, 외국인 선교사 270명, 조선인 교역자 2천3백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실제보다 더 높게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기독교는 선교사들을 통해 외국 여론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기독교 세력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가 식민지배의 중요한 요소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일제의 정책은 일면 탄압, 일면의 양면적인 것이었다. 탄압의 첫 번째 단계는 집회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집회를 감독하고 설교를 정탐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동향을 사찰하고, 목회자들의 거주 이전을 신고하게 했다. 이런 연유 때문에 조선 총독부에 제출했던 주기철 목사의 거출계(居出屆)가 남아 있다. 물론 기독교회에 대한 법적 규제를 병행했다. 후에는 기독교 집회소를 축소하기 위한 교회 통폐합을 실시했다. 1942년 경남노회 지역의 경우, 325교회 처가 있었으나 108 개 교회는 통폐합되어 교회수는 217개 처로 축소되었다. 경남노회 지역의 3분지 1의 교회를 폐쇄시킨 것이다. 집회에 대한 제한이나 예배 방해는 기독교 탄압의 시작이었다. 정리하면서 이상에서 집회 제한 혹은 금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역사에 기대어 제시하였다. 이번의 정규 예배 이외의 집회에 대한 제한 혹은 금지 조치는 코로나 현실에서 불가피한 잠정적인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한 조치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훼손일 수 있고, 자칫 기독교에 대한 통제 혹은 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비의도적인 잠정적인 요구라할찌라도 후일의 전례가 될 수 있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비의도성으로 포장된 의도적인 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불리는 국제적인 위기 현실에서 기독교회가 앞장서서 방역 수칙을 지키고, 코로나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협조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밀집 회합 조직 중 기독교회에 대해서만 집회를 통제하거나 금지하는 행정 명령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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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1
  • [기고] 부산장신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2001년 교육부 인가를 받아 김해시 구산동에서 새롭게 시작한 부산장신대학교는 52명의 교육부 인가를 받은 신학생을 받았다. 최무열 교수, 박만 교수, 김형동 교수, 김은정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학교를 아름답게 세워갔다. 신입생이 학부를 졸업하기 전인 2003년에 신학대학원이 세워졌고 총회 인준 50명과 교육부 인준 25명 등 75명이 신학대학원을 입학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교수가 세워지고 총회와 노회 그리고 교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훌륭한 목회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이 약 20년이 흐른 2018년에 교육부로부터 3순위 평가를 받아 2019년 신입생부터 국가장학금 신청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새로 부임한 허원구 총장은 전국을 다니며 학생들의 학비를 구하다가 심장에 문제가 생겨 시술을 받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주인이 없다는 것과 둘째는 주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주인이 없다는 것은 책임을 진 주체가 없음을 말한다. 학교의 위기에 자기희생이 필요한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이 너무 많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통해 자신을 유익을 구하는 자들과 학교의 위기를 기회 삼아 자리다툼이나 조건부 기부를 약속하는 자들만 득실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2020년 7월 교육부는 부산장신대학교에 대한 새로운 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총장 이하 모든 교직원은 교육부의 좋은 평가를 통해 학생들이 국가장학금이라도 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필자도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미래의 부산장신대학을 그려야 한다. 먼저는 교육부의 평가와 관계없는 내실이 있는 학교를 만들 것과 다음으로는 학교를 지지하고 도와줄 중심 교회들을 늘려야 한다는 것. 교육부평가와 관계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이는 영신과의 통합을 말하지만, 교육부가 영신 부산캠퍼스를 영신과 묶어서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은 종교로 특화된 학교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종교로 특화된 학교가 되면 교육부의 평가를 받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장신대학의 사복과나 특교과를 대폭 줄이거나 폐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과의 비중이 50%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현재 부산장신대학은 신학과의 비중이 50%가 되지 않음). 문제는 이러한 대안들로는 학교를 정상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부산장신대학에 필요할까? 첫째, 대학원 위주의 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원 위주로 학교를 전환하면 교육부의 평가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학원생들은 국가장학금이 없기 때문이다. 2001년 52명이 입학을 했을 때 학부 졸업생은 16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5년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75명의 학생 중 약 70명이 3년 후에 졸업했다. 따라서 학교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석박사 중심의 대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박사학위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교수진을 제외한 나머지 교수들은 구조조정을 하여야 한다. 더불어 나머지 학과들도 폐지하여 순수신학 중심의 대학으로 변경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롭게 변한 학교를 미국의 여러 신학교와 아시아와 남미의 신학교들과 연계하여 이들 신학의 장단점 등을 연구 발전시켜 아시아 신학의 중심이 되는 학교로 세워나가야 한다. 특히 학교 내에 가족을 위한 기숙사를 마련하여 가족 중심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그들 자녀 교육과 생활 목회 경험 그리고 그들의 의료문제 등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신학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에서 한국 신학을 동경하는 많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산장신대학의 장점인 국외파 교수들의 이중언어를 통해 그들을 문제없이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부산 경남의 중견교회들이 부산 장신 출신의 목회자를 담임으로 청빙해야 한다. 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총장 이하 이사장과 이사들 그리고 부산·경남의 교회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부산·경남의 중견교회 목사 중에서 부산 장신 출신을 청빙하는 경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산장신대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려고 해도 과부가 렙돈 두냥 드리듯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부산 경남의 중견교회가 지금이라도 부산 장신 출신의 담임 목회자를 청빙하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부산장신대학은 여러 교회들의 힘과 지지를 얻어 안정될 수밖에 없다. 이제 부산장신대학교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 길에 오래전부터 12 기둥을 붙잡고 기도한 학생들의 눈물이 하늘과 연결된 향로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축복이 있기를 2001년부터 13년간 부산장신대학교를 다닌 졸업생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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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기고] COVID19 이후 교회교육의 회복 및 개선 방안
    SNS에 코로나 19로 인한 진단과 이후의 대책을 논하는 여러 가지 글이 올라오고 있지만, 교회학교에 대한 위기에 대한 글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에 교회교육전문가로서 책임을 느끼며 이 글을 통해 고민하는 일선 교회교육 담당 교역자와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교회는 건물의 개념이 아닌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앙 공동체라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교회당 건물과 성도의 숫자에 적지 않은 관심을 쏟아부었던 한국교회에 이번 코로나 19는 교회를 특정 장소로만 생각하는 건물 중심적 교회관에서 벗어나 '성도의 모임'이란 교회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고, ‘하나님과 만남’이란 예배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모이는 예배가 안 되고, 더욱이 ‘하나님과 만남’이라는 예배의 모습은 더더욱 갖추지 못했는데 이는 일시적인 변화가 생겼다기보다는 그동안 가르쳐 왔던 것에 대해 혼란이 생긴 것이다. 교회교육에서는 이제 생존의 문제이다. 안 그래도 한국교회 전체의 60% 이상 교회학교가 없고, 그나마 교회학교를 가진 40%의 교회들마저 아이들이 절반 이상 떨어져 나가 이후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물론 소수의 교회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서 교회에 오지 않아도 각자의 집에서 교육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중지되었던 교회학교의 예배와 교육을 다시 정상적으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교회의 출석을 끊어버린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언제든지 일이 생기면 안 나가도 된다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는 과제 앞에 큰 부담을 갖게 된 것이다. 이에 앞으로 교회학교의 회복을 위한 방향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회교육의 회복 방향 교회학교의 문제는 이미 코로나 19 이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단지 심화된 형태로 드러났다고 본다. 이를테면 교회교육이 그 내용보다는 숫자에 관심이 치중되었던 상황에서 코로나 19는 남은 아이들까지 출석을 걱정하게 된 수준에 이르렀다. 교회학교마다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생각이지만 이전에도 그 위기의 정도 차이일 뿐 수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교회학교의 회복 방향은 수적인 것보다는 그동안 부족했던 교육의 본질인 내용으로 가져가야 한다. 따라서 지금 몇 명이 남았든지 먼저 이 아이들의 신앙 성장을 위한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교육적으로 피교육자의 수가 적을 때 개인을 위한 교육이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올바른 교육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난 후에 수적인 성장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점차 교회학교의 회복을 기대하게 된다. 1) 1:多數(소그룹 포함)의 교육보다는 1:1에 초점 맞추기 ① 개인의 신앙상태 및 상황에 대한 이해 확대 이미 교사들에게 이 문제를 상담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코로나 19 이후에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예측이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부모의 생각에 움직이는 아이들은 그렇다 하지만 이후에 교회 출석의 의지를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신앙으로 이를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사가 아이들의 신앙상태를 파악하고 있다면 이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사태 전후의 신앙교육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반 아이들은 多數지만 교사는 1:1로 아이의 신앙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 ② 개인의 ‘신앙 성장 로드맵’ 가지기 교사가 아이들의 신앙상태를 안다는 것은 개인의 신앙 성장을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어 아이들이 어떤 신앙 위치에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신앙 성장 로드맵’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구원의 확신’ 여부부터 ‘교사의 관리가 많이 필요한 아이’인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혼자의 신앙생활이 가능한 아이’인지, 그리고 ‘신앙이 어린 친구들을 도울 정도가 되는지’ 등에 대한 신앙 성장 단계를 기록한 그림을 말한다. 교사는 이러한 신앙 단계에 따라 사태 이후 아이들의 교회 출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아이들 개인 ‘신앙 성장 로드맵’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이는 아이들의 신앙 성장에 적합한 교육을 위해 교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방향 제시가 될 수 있다. ③ 수적 회복 프로세스 가지기 수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무조건 전에 나왔던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통지해서 오라고 하는 방법은 좋지 않다. 상황에 따라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에 대상별로 분류하여 프로세스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좋다. 우선 전체적으로는 그간의 상황과 이후의 새로운 교육계획을 담은 가정통신문을 작성해서 보내고, 첫 번째 부류로 교회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을 알리고 전달만 하면 올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sns와 전화로, 두 번째 부모의 반대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님을 만날 심방 계획을 세우고, 세 번째 아이들의 마음이 돌아선 경우는 아이들 대상의 심방 및 미팅을 시도해 보아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후 교회학교의 변화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교회학교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앞에 언급한 교회학교 교육 방향이 한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진 경우라면 아이들과 부모들은 교사를 대할 때 이전과 다른 교육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면 회복을 위한 노력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은 선물 공세로 인한 단회적인 초청이 아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전략적 전도 계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교회학교 전도전략은 다른 기회에 언급하기로 한다. 교회교육 개선 방안 1) 예배에 대한 본질적 교육 Digital 도구는 코로나 19로 인한 여러 가지 악조건에서도 나름 방법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부여했다. 특히 예배에 대한 대체적인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어서 이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후의 주일예배와 거의 중지되었던 교회교육을 재개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검토와 점검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가 ‘하나님과 만남’이라는 본질을 찾아가는 교육이 돼야 한다. 이는 교회학교의 예배 특히 유초등부 예배는 ‘예배자’로서의 기대보다는 ‘예배교육과 훈련’의 측면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예배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하고, 단지 교회에 오면 당연히 드리는 예배로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예배에 대한 교육이 우선되어야 하되, 예배의 목적에서부터 예배의 모든 요소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가르치고 교회학교 예배를 통해 이를 함께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만남’이라는 예배의 본질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2) Digital 도구 활용에 대한 이해 범위 확대 부모 세대와 아이 세대의 가장 큰 간격은 Digital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다. Digital 도구를 게임과 탈선에 대한 염려의 시각으로 보는 부모들과 자신의 놀이와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공감으로 활용하고 싶은 아이들 간의 이해와 현실의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19는 이러한 Digital 도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계기가 되었다. 이에 편승하여 교회는 Digital 도구를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가져야 하는데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원격교육이다. 원격교육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학습자와 교육자 간에 원격통신 등 전파장치를 사용하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교회의 출석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원격교육을 통한 교회교육의 장을 열어두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19는 원격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본다. 단, 원격교육이 학습능력의 편차가 다양함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똑같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이 어린 학생들은 경우 별도의 심화학습이 필요함을 유념해야 한다. 둘째는 새로운 자기표현의 장으로의 활용이다. Digital 도구가 사용되는 cyber 공간은 획일적이고 고정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발달 기회를 제공한다. 즉, 이 공간에서는 한 개인의 표현에 여러 친구가 공유하면서 이들은 하나의 공동체적 모습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그는 동시에 여러 가지 다른 특성으로 각기 다른 집단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 이로 인해 그는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형성할 수 있어 현실 세계보다 훨씬 확장된 자기표현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Digital 도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 교육의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는 개인적 소통 도구로의 활용이다. Digital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개인적 소통’이다. 교육이 1:多數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효과적이지만 1:1의 도구가 될 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효율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 이는 다수가 같이 대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필요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소통 시간과 장소만 서로 맞으면 된다. 이로 인해 교사는 다른 아이들과 교육의 균형을 맞출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긴밀한 상담을 통한 개인 신앙 관리가 가능하다. 3) off-line과 on-line 교육의 병행 주일예배와 교육이 재개되면 off-line 교육과 on-line 교육은 구별되어야 하지만 기왕에 형성된 on-line 교육의 모든 방법을 없앨 필요는 없고, 여러 가지 교육의 필요에 따라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주일예배와 교육 그리고 주중 교육의 차별적 시행이라는 방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예배는 분명히 주일에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교육은 주일 공과 공부 때 충분치 못한 교육시간을 on-line 주중 교육으로 확대할 수 있다. 이는 교육을 off-line에서만 해왔던 그동안의 방식에서 벗어나 on-line을 활용할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공과 시간을 주일에는 ‘storytelling’을 통한 성경 말씀의 전달 중심으로 진행하고, 주중에는 on-line을 통한 개인의 ‘이해와 적용’을 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성경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4) non-contact 교육 코로나 19가 가져온 사회현상 중 두드러진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non-contact)’인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것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회문화로 남아 있게 된다는 예측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혼자서 먹고, 놀고, 즐기는 문화를 개발하는 것이다. 반면 교육적으로는 어울려 하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교육 컨텐츠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듀넷’ 운영이다.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들어올 수 있는 cyber 교회학교를 만들어 교회에서 배운 내용을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도록 교육 관련 내용을 디지털화하여 온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터넷 서핑이 ‘에듀넷’까지 드나들게 된다면 교사가 가진 한계로 인해 contact 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실질적인 결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 밖에 인터넷 교재를 개발하여 교회나 청소년 스스로가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거나, 기독교 세계관과 문화에 대해 탐색하는 공간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가면서 코로나 19로 인한 후유증으로 생사기로에 서 있는 한국교회, 특히 교회교육은 커다란 방향의 전환과 본질적인 교육으로의 회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회생 불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숫자에 매인 교육에서 벗어나 한 영혼이 믿음으로 세워지고 성장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코로나의 풍랑에 좌초될지 아니면 더 빨리 갈지,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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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독자투고] 인간의 숙명과 창조주의 섭리
    오랜 인간의 역사를 통해 살펴볼 때 인간의 숙명(運命)을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동양의 관상학과 사주팔자(四柱八字), 풍수지리 따위나 농업과 깊은 관계를 가진 음력을 중시하는 동양인들은 삶을 통한 경험이나 통계적 시각에서 체계화시킨 인간의 숙명은 자유 의지적 선택과는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인생이 숙명적(宿命的)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의 숙명에 대한 타당성과 창조주의 섭리(攝理,야훼의 의지))와의 관계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창조주의 섭리‘라는 말은 창조론을 믿는 학자가 아닌 ‘진화론적 개념’을 따르는 학자들은 완강히 부정한다. 인간사의 모든 일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뿐 숙명 따위는 결과론적 변명이란 것이 행동주의자들의 태도인 반면 숙명론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숙명이나 운명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떤 사건이나 사고의 결과를 두고 마치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인간생활에는 불가항력적인 사건도 적잖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무조건 인간의 운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가령,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향해 인도로 걸어가는 도중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승용차와 기타 여러 종류의 차가 갑자기 운전미숙이나 엔진고장 등으로 인해 인도로 돌진하여 지나가던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경우를 목도하다보면 갑자기 피해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숙명이나 운명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불가항력적으로 닥친 사건을 두고 생각해 보면 그 순간 본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과는 전혀 관계없이 어떤 사고나 사건이 발생했다면 자유 의지적 선택이란 무의미한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과 Covid19로 인한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 그리고 근래 38명의 희생자를 낸 이천물류창고 폭발사건의 피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재에 가까운 이 모든 사건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숙명이란 말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 이들 사건에는 많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즉, 우리나라 형법에서도 불가항력적인 사건과 긴급피난 따위의 행위는 흔히 무죄가 되는 이유가 바로 본인의 자유의지나 선택의 여지가 전혀 반영 될 수 없는 조건을 전제로 한 불가항력적인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인간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두고 따져볼 때 한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종교의식, 기술이나 취미, 잠재능력, 성격, 생활방식에 따라 선호하는 기호가 다르고 선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즉,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생활의 적응에 있어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능의 개념을 사고능력이나 종합적인 문제의 해결능력 또는 환경의 적응능력이라고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숙명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잘못해서 나쁜 결과를 초래했는데도 마치 자기합리화를 도모하기 위해 숙명이란 말로 포장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수영을 좋아해서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사망한 경우, 흔히 사람들은 숙명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익사를 방지하려면 아예 수영을 하러 가지 않으면 될 것이고 또 굳이 수영하고 싶으면 수영의 기술을 충분히 익혀 연습하면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본인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전혀 반영될 수 없는 여건이거나 조건이 주어질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형법에서 말하는 불가항력이란 상황은 자유 의지적 선택과는 거리가 먼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5층 건물에서 갑자기 불이나 급히 대피해야 하겠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급한 바람에 창문을 열고 급히 뛰어 내렸더니 그때 마침 불구경하던 다섯 살 아이가 깔려 죽었다면 살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 할 여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상황을 분석해서 부주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된다. 사건당시 창문을 열고 밖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살펴보지 못하고 뛰어 내렸을 경우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반면에 반대로 5층에 불길이 심하게 번져 피할 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생명에 위험이 닥쳐와 하나밖에 없는 창문으로 밖을 살펴 볼 겨를이 없는 다급한 상황에서 뛰어내렸다가 설사 아이를 치어 죽였다 하더라도 살인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인 긴급피난이 적용’되기 때문에 무죄가 성립된다. ‘창조주의 섭리’가 곧 불신자들이 흔히 말하는 운명이나 숙명과 유사한 점도 없지 않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전문어부인 베드로를 가리켜 후일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분히 계획적이고 마치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생각을 떠 올리게 한다. ‘모세의 사건’이나 ‘요셉의 일생’ ‘바울사도의 신앙심’ 그 외에도 수많은 일들을 두고 생각해 볼 때 알파(창조주)와 오메(심판주)가 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손으로 지으셨다. 즉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의해 이루어 졌음을 짐작케 하는 동시에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창조의 역사를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시고 섭리 하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두고 우리는 만세전에 예비하시고 섭리하셨다는 말을 곧잘 한다. 구약이 신약의 예언서요 매시야가 오실 것과 예수님의 부활 역시 예언이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적인 선택을 두고 논할 때 학자들은 인간여생이 마치 커다란 파이프 같은 카테고리라는 한계적 상황에서 좌, 우로 움직일 수 있는 미세한 운신의 폭이 곧 자유 의지적 선택이라고 역설하는 학자도 있다. 즉, 건강관리를 위해 음식과 운동을 적절히 병행함으로 다소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국에는 모든 인간은 병들거나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란 사실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굳은 의지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결정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일을 하다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또 아무리 과학적으로 계획하고 검정하고 도전해도 Covid19처럼 자연 재난이 닥쳐오고, 태풍에 바닷물이 쓰나미로 밀려 올 때는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 막을 길이 없는 지극히 무능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이다. 육지와 하늘, 바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각종 사고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자유에 의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 나머지 도전하여 성취감과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본 사람으로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이를테면 밤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은 무엇을 먹을까? 라고 생각해서 선택하는 일이나 오늘하루 나는 무엇을 할까? 라고 생각해서 결정하는 일은 모두가 본인의 생각과 자유 의지적 선택이라고 생각했지 운명이나 숙명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이나 피 동체란 생각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불완전하고 순간순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심지어 불신자들도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때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란 말에 공감이 갈 때가 많다. 나는 부끄럽게도 나의 의지에 의해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를 지혜롭게 잘 피해가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적지 않았다. 솔로몬은 일찍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강조한다. 무소불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무척 쉬운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분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손에 쥐어 주어도 모른 다’는 속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바울사도가 무식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이방전도에 힘을 쏟은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그분의 뜻에 달린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힘써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간다. 불교에서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공덕을 쌓으므로 비로소 ‘성불’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숙명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의한 자유 의지적 선택’이란 뜻이 된다. 반면에 우리 기독교에서는 구원은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요 아무런 조건 없이 받은 은혜”란 차원에서 개인의 공덕이나 선행 때문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16절에 명시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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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기고] 21대 국회와 차별금지법
    4.15총선을 통해 여당이 180석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을 할 수 있는 거대 여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21대 국회가 개원되기 전인데 벌써 여당 인사들은 각종 입법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가 4월1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제21대 국회는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 시행하는 ‘평등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우리 기독교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차별금지법’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제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래로 새로 출범하는 국회마다 발의되고 있으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문제 삼으며 반대함으로 지금까지 통과되지 못하였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12월 12일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안’을 만들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12월 2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 10명이 ‘차별금지법안’ 발의, 2012년 11월 6일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 10명이 ‘차별금지법안’ 발의하였으나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2013년 2월 12일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 등 51명이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하였고, 같은 해 2월 20일 민주통합당 최원식 의원 등 12명도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였으나 보수기독교의 반대로 본회의에서 철회하였다. 차별금지법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렇게 국회의원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소위 대권 잠룡이라 일컫는 인사들이나 진보지식인들의 끊임없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엔인권이사회,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 유엔 국가별인권상황정기검토(UPR) 심의 등 국제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대한민국에 인종, 성별,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HIV 감염 등의 차별금지 사유의 항목이 들어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 권고하는 상황이다. 위와 같은 국내외의 흐름 속에서 21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의 발의는 반드시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위키백과에서는 이제까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 “보수 기독교계의 집단 협박 및 항의 전화”, “보수 기독교계의 압력”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막기가 힘들거나 불가능할 상황이라고 예측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대응팀(task force team)을 만들자. 한국교회언론회(4월17일)는 “기독교의 가치관과 활동을 제한하는 많은 법률들이 거대 여당을 통하여 끊임없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런 예견을 앞두고 전직 기독국회의원, 법률가, 행정가, 교수, 신학자, 목회자,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입법에 관한 전문적인 분들로 구성된 교파를 초월한 범기독교적인 대응팀을 만들어야 한다. 가능하면 현직에 있고, 사명감을 가진 경륜 있는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직접 대응팀원이 되거나, 자문위원이 되면 발의 이전단계부터 대응전략을 모색하기에 용이 할 것이다. 둘째, 대안을 제시하자. 국회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여 입법 예고하면 무조건 반대하며 폐기를 외쳐서는 안 된다. 대응팀에서 발의된 법안에서 기독교의 가치관에 반하거나, 기독교의 활동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사항들을 면밀하게 찾아내고, 대안을 마련하여 수정을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도 그 내용을 빠른 시간에 알려 공유하여야 한다. 셋째, 조직적인 대응을 하자.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함에도 입법을 강행할 때에는 교회를 통해 전체 기독교인들이 연대 서명을 하여 국회와 언론에 전달함으로 의사표시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수정법률안을 만들어 통과될 때까지 조직적인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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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2
  • [기고] 초기 기독교는 전염병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 우리가 대역병(大疫病) 혹은 전염병을 말하면 중세기 특히 14세기의 흑사병을 생각한다. 그것이 대역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유의 질병은 그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염병은 초대교회 시대에도 창궐하여 교회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시대에도 끊이지 않고 발병하여 인류 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1918년의 스페인독감 이후만 보더라도 1957년의 아시아독감, 1968년의 홍콩독감, 2002~2003년 사스, 2003~2009년의 조류독감, 2009년의 신종 플루, 2015년의 메르스 등이고 최근(2019-2020)에는 중국 후베이성 무한(武汉)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 이런 질병이 창궐할 때 그 시대 교회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이번에는 초대교회 시대의 역병과 교회의 대응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역병(165-180) 첫 3세기 동안의 초기교회 시대에는 크게 두 차례의 국제적인 전염병이 발병했다. 첫 번째 경우가 2세기 중엽, 곧 165년 겨울에 발생한 역병이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황제 치하에서 근동 실루기아에서 베르스의 군부대에서 발병한 이 역병은 180년까지 15년간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역병이 안토니우스 역병(Antonine Plague)인데, 이 병의 확산을 목격하고 기록한 그리스 의사의 이름을 따 ‘갈레노스 역병’(Plague of Gale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역병은 골(Gaul)로 그리고 라인강을 따라 확산되었고, 원정에서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동부의 로마 제국으로도 전파되었다. 고대 사회는 통계에 무관심하여 정확한 사망자를 알 수 없으나 윌리엄 맥닐(William McNeill)은 로마제국 인구의 4분지 1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매우 높은 치사율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세균학자이자 의사학자인 한스 진저(Hans Zinsser, 1878-1940)는 “사망자가 많아 이탈리아의 도시와 마을이 공동화되고 황폐화 되었다”고 썼다. 이 역병은 일, 이년 정도로 유행하다가 종식된 것이 아니라 무려 15년간 지속되었고 166년 이전에 중국에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에 사태가 매우 심각했다. 황제 아울렐리우스 자신도 이 역병으로 180년 3월 17일 사망했다. 흔히 지병의 악화가 사인이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 역병으로 고생하던 중 비엔나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시신은 테베레 강변의 하드리아누스 영묘에 안치되었다. 한스 진저는 이것이 서구사회에 최초로 등장한 천연두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엄청난 인구가 유실되자 인력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었다. 두 번째 역병(249-262) 두 번째 발병은 249년 시작되어 251년 창궐하기 시작했다. 262년까지 계속된 이때의 전염병은 도시와 농촌으로까지 파급되었는데 이번의 역병은 홍역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이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천연두나 홍역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역에서는 면역력의 부재로 피해가 컸고 치사율도 높았다. 이때 로마시에서만 하루에 5천명이 죽었다는 보고가 있다고 맥닐은 주장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인구의 3분지 2가 죽음을 맞았을 것으로 보우크(A. Boak)는 추정했다. 이때의 역병에 대해서는 기독교 관련 여러 기록이 남아 있는데,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우리 가운데 많은 이가 이 전염병과 흑사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썼다. 몇 년 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는 부활절 설교에서 “청천벽력처럼 그 어떤 재앙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인 이 질병이 임했다”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기독교회의 대처 문제는 이런 역병이 창궐했을 때 기독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그리고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종교의 가치는 위난한 상황에서 유효한 역할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 당시 대역병의 현실에서 종교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첫 째는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가 하는 재앙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앙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에 대한 모범을 제시해야 한다. 자연과학과 의학이 발전한 오늘에는 그것을 종교가 답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초대교회 당시는 사람들은 종교가 답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종교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도피였다. 그래서 이교의 사제들은 피신했고 고위층 관리들이나 부유한 이들은 도시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이교도들은 환자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보아 격리만이 최상의 도피였다. 물론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으나 도피가 최상의 대책이라고 여겼다. 부모는 자녀를 버렸고, 자녀도 부모를 버렸다. 돌보지 못한 자녀들과 연로한 부모들이 회생의 가능성이 고려되지 못한 채 보호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했을까? 이때의 역병에 대처 했던 교회 지도자들의 여러 기록이 남아 있는데, 당시 교회는 모든 질병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보았고, 도피가 최상의 길이 아니라 보살핌과 배려라는 사랑으로 질병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점이 이방종교와 그 신봉자들과의 현격한 차이였다. 이때는 데시우스(Decius, 재위 249-51) 황제 치하에서 기독교가 조직적인 박해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Alexandria, c. 200- c. 265)는, “이교도들은 처음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쫓았고, 가장 가까이 이는 자들이 먼저 도망쳤고, 병든 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버려지고 매장하지 않는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서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고자 했으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도망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 달랐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역병의 현장에서도 사랑의 시혜자이고자 했다. 자기만 살겠다고 도피하는 현실에서도 도피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도리어 감염된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고 소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었다. 도움을 베풀되, 교회 밖의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했다. 키프리아누스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단지 우리(그리스도인)들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태양을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내리셔서 씨앗들을 기르시고 이러한 모든 선하심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키프리안은 전염병이 돌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역병이 절정에 달하던 260년 디오니시우스는 부활절 설교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우리 형제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 주었으며 한시라도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를 보살폈고,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었고 주님 안에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감염되자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을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았습니다.” 자신이 감염될 수 있고 또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형제 사랑을 실천했는데 이는 이교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단어가 ‘파라볼라노이 παραβολάνοι’ 곧 ‘위험을 무릎쓰는 자들’이라는 단어였다. 3세기 당시 기독교 공동체에서 파라볼라노이라는 칭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위난자들에게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했다는 중요한 증거였다. 디오니시우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 대가로 죽음을 맞았고, 또 이런 사랑을 실천했던 장로나 집사 혹은 평신도들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들이야 말로 순교자와 다를 바 없다고 설교했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후일 ‘사랑은 영혼의 손’(Love is the hand of the soul)이라고 말한 것이다.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키프리아누스나 디오니시우스, 그리고 역사가인 유세비우스 등은 이런 역병이 기독교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병든 자를 간호하고 위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푼 결과로 죽음을 맞기도 했으나, 모든 치료가 중단된 상태에서 기본적인 간호만으로도 사망률을 현저히 낮출 수가 있었다고 의사학자 맥닐은 주장한다.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쇠약해진 이들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방 종교 신봉자들에 비해 기독교 공동체의 생존율이 월등히 높았고, 또 그리스도인들이 베푼 형제애적 사랑은, 이교 숭배자들의 마음을 열어 기존 종교를 폐기하고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는 변화, 곧 기독교로의 개종이라는 종교적 이행(移行)이 이루어져 기독교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이런 질병이 로마제국 쇠퇴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에드워드 로밀리 보크(Author. E. R. Boak, 1888-1962)와 역사가들은 계속되는 일련의 역병의 발발로 인구가 감소하였고, 모자라는 군인을 농부와 지역 공무원으로 충당하였기 때문에 식량 생산량도 감소하였다. 또 도시와 농촌 등 행정 지원 부족으로 야만인 침략을 막는 로마제국의 역량이 약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자연재해나 역병이 역사의 변화를 초래하지만, 이런 대 변역의 와중에서 기독교는 절망한 민중들에게 소망을 주었다. 현세적이든 내세적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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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군을 무너트리는 행위는 좌시할 수 없다
    그 동안 군인권을 빌미로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하던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시민단체인 바른군인권연구소(대표 김영길)와 자유와인권연구소(대표 고영일)로부터 지난 8일 “군사기밀 보호법 및 무고/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임 소장의 국방부 군인 복무정책 심의위원회 위원 해촉을 촉구하는 요청도 하고 있다. 그 고발의 주된 내용은, 두 단체가 낸 성명서에 의하면, 임 소장이 지난 2018년 12월 소위 계엄령 문건이라며 폭로한 사건으로, 기무사령관을 지낸 이재수 전 사령관을 죽음으로 내 모는 계기가 된 사건과, 2018년 7월 박찬주 대장에게 소위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프레임을 씌워, 대한민국 군대의 4성 장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을 들고 있다. 또 2017년 11월에 국방부가 군인들의 복무 주요 정책을 다루는 정책위원회 심의 위원에 임 소장을 위촉한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이를 해촉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 위원회의 심의 위원에 해당하는 사람은, 군대에서 3성 장군급(차관급)으로 하는데, 임 소장은 2004년 군형법 92조 6(항문성교 금지)을 이유로 군대 입영을 거부하여, 헌법 제39조 ‘국방의 의무’를 위반한 사람으로,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발 내용은 첫째는 형법 제156조의 ‘무고죄’ 조항인데, 임 소장은 피해자 박찬주로 하여금 형사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인 국방부 종합민원실에 피해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였다고 본 것이다. 둘째는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보고 있다. 임 소장은 피해자(박찬주 대장)가 공관 비품을 절취하였다고 언론 기관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무혐의 처분이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언론에 허위 사실을 적시함으로, 피해자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행위이다. 소장(訴狀)에서는 임 소장의 소위 계엄령 문건 유출은,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이라면 군사기밀보호법상의 군사기밀을 일반에 누설한 경우로 군사기밀 보호법을 위반한 경우에 해당하고, 피고발인이 작성하여 생성한 문건이라면 공문서 위조 및 동행사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009년에 임태훈 소장에 의하여 설립된 시민단체로 국방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고 있으나, 2012년 민주당 비례 대표에 공천 신청을 한 적도 있고, 또 2017년 11월에는 국방부가 군인들의 복무 주요 정책을 다루는 정책위원회 심의 위원에 위촉되기도 하여,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민단체라는 지적을 받아 온 바 있다.이 단체는 나름대로 군대 내 인권을 개선한다고 하여 출발했지만,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현상금을 내건 건이 법에 어긋난 ‘모금 활동’을 벌여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거기에다 이번에 시민단체인 바른군인권연구소와 자유와인권연구소로부터 “군사기밀 보호법 및 무고/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당한 사건은, 임 소장이 과도하며 과욕에 의한 폭로성 행위가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군인권을 위한 활동도 필요하지만, 피의(被疑) 대상자를 억울하게 하고, 국가의 기밀을 비전문가 입장에서 함부로 폭로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문제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0년간 활동에서 시민단체로써 상당히 알려졌다. 그것은 그만큼 책임감과 정확성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번에 고발 사건을 검찰에 접수한 바른군인권연구소와 자유와인권연구소가 발표한 성명서에 보면, 군대의 생명은 보안과 군기이며, 군인은 명예를 생명과 같이 여기는데, 이에 대하여 (군인권센터는) 군에 대한 불신과 장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치욕스러움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군대는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이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아주 막중한 역할을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군인권센터가 무리한 활동을 통하여 군을 무력화 시키고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데 ‘갑질’ 행동을 한 것이 법률적 판단으로 잘못이 드러나면, 이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이든지 세우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무너트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우리 군의 기강과 명예, 수고와 희생을 세우는 것은 민/군 서로 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안보 문제는 중요하다. 만약에라도 군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곧 국가를 해체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군이 무너지고 국가가 해체된다면 누구에게 유익이 되며 누구에게 피해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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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4
  • [기고] 약산이 6,25의 원흉인가?
    약산(若山)이 약산(龠散)되었다고 마구 짓밟지 마라! 약산 김원봉 의열단단장에 대한 논란이 많다. 약산의 처조카 이었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한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글깨나 쓴다는 논객들이요 교수들이다. 정치인들도 몇 마디씩 한 것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독립운동사에서는 산(若山)이 되어 한 산맥을 이루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약산(龠:피리 약,散:쓸모없는 산) 즉“쓸모없는 피리”가 되었다고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먼저 역사를 바로알고 평가하자! 겉으로 나타난 어떤 사실 하나만 가지고 단순하게 말하지 말고, 그 당시의 역사적인 정황을 알고 평가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예술작품도 진지하게 분석하면서 평가하는데 한 인물을 가볍게 단정 지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 약산을 심지어“6.25의 원흉”,“6.25남침에서 핵심역할을 했던”,“6.25전쟁의 1등공신으로 훈장”, 모 당 대변인은”북한정권수립의 공훈자 한국전쟁 중 대한민국 국군을 많이 죽인댓가로 김일성 훈장을 받은“, 그 당 대표는 독립군을 괴롭힌 간도특성대 출신 모 장군을 찾아가 약산을“6.25남침의 주범가운데 한 명”, 모 신문사설에는“6.25남침에도 공을 쌓았다고 훈장까지 받았다”고 단정하였다. 거기다 댓글 쓴 것을 보면 더 가관이다.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며 풍악을 울리는 소리가 듣길 정도이다. 그러면 약산이 흔히 말하는 6.25전쟁의 주범이고 원흉인가? 김일성이 빨치산 동료들을 감시 보고하는 프락치 역할로 소련군부의 신임을 얻어 1945년 9월초에 소련 극동전선군 제88독립보병여단의 애송이 대위가 스탈린에게 북한 지도자로 발탁되었다. 그 여단은 만주 빨치산 출신 조선인들이다. 이들이 조국을 떠난 지 오래되어 해방후에 귀국하면서 국내에 기반이 없으므로 소련군에 업혀 귀국한다. 나중에 김일성이 북한 실세가 될 때 북한의 핵심세력으로 발판을 구축한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비록下.중앙일보.1993.”에 김일성이“빨치산그룹을 중심으로 소련파가 당과 군대를 장악케 하고 연안파에 내각의 요직을 맡기며 ~ 자신의 수족인 빨치산파와 소련파로 하여금 당과 군대를 장악케 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선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당이며 그 다음이 군대이기 때문이다”라 밝혀주고 있다. 약산은 1948년 4월에 남북협상으로 늦게 북으로 갔다. 9월에 북한내각구성에 보면 군이나 당 실권에서 밀려나 명목상 한직인 “국가검열상”이 되었다. 김일성은 군의 실권은 빨치산출신 인민집단군총사령관인 최용건에게“민족보위상”을 맡긴다. 그리고 군의 핵심자리에는 유성철에게 인민군 작정국장을 맡겼다. 소련이 북한을 통치하려니 김일성도 못 믿어 소련에 있는 지식이 있는 고려인 200여 명을 5차에 걸쳐 북한으로 데려온다. 이들을 소련파라 한다. 북한의 권력은 빨치산을 거친 제88여단 출신과 소련파가 핵심요직을 장악한 실세들이 된다. 이제 김일성은 자기세력중심으로 권력구조를 구축해놓고 눈을 남한으로 돌린다. 그리하여 1950년 3월 30일 ~ 4월 25일까지 박헌영과 같이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허가를 받고, 5월에는 중국으로가 마오쩌둥을 만나 우리는 2~3주안에 남한점령을 끝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 후 소련 군사고문단은 남침작전 계획을 인민군 총참모장 강건에게 넘겨 1950년 6월 25일에 남침을 개시하여 한반도에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약산은 북한에서 그의 세력이 없다. 조선의용대 출신들은 해방 후에 거의 다 흩어졌고, 한글학자인 정치력이 없는 김두봉의 연안파와 협력하지만 그 핵심세력에는 밀린다. 나중에 인민공화당으로 독자세력을 구축한다. 그러나 김일성 세력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끝까지 “조선로동당(공산당)”에는 가입하지 않는다. 이러한 북한의 정치판도에서 약산이“전쟁의 원흉”이 되고 전쟁에 참가하여“국군을 많이 죽일 수 있는”위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1952년 3월 19일에 공훈을 받은 것은“국가훈장 1급 최고훈장”이 아닌 1951년 조선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평북도 전권대표로 있을 때 평북지역 보리파종실적이 우수하다고 인민회의상임위원장 김두봉이 준“로력훈장”이다. 전쟁도 끝나지 안했는데“전쟁공로훈장”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전쟁 후에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3일 만에 끝낸다고 호언장담했던 전쟁이 실패하게 되자“시베리아의 유형을 면치 못하리라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다고”임은(북조선창설주역.김일성왕조著)은 말해주고 있다. 그는 전쟁실패로 군 장성 70여명이 숙청을 당했는데 전쟁공훈자는 최현이라고 한다. 최현은 빨치산출신으로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무학자이다. 그는 전쟁 후에는 승승장구하여 인민무력부장까지 지냈다. 북한에서 군의 모든 실권은 빨치산출신들이 장악했는데 약산이“6.25의 원흉”이고“6.25전쟁의 1등 공신으로 훈장”을 받았다는 것은 그 당시 북한 정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전쟁이 나면 남한에 잔존한 남로당 20만이 대환영 할 것이라 장담했던 박헌영의 말이 공수포가 되어버리자 김일성은 전쟁실패의 책임을 뒤집어 씌어 평양에 있는“미제간첩”으로 죄목을 붙여 처형했다. 약산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 탈북(?)하려다 발각되어 역시 중국 장제스의“간첩”이라는 죄명으로 숙청되어 가족 모두 사라졌다. 약산의 죽음은 아무도 모른다. 20대 초반부터 조국해방독립을 위해 활동한 약산(若山)이다. 한때는 서슬이 푸른 일제경찰도 약산을 수배하기 위해 최고의 현상금을 걸고 수십 년간 뒤쫓았으나“산 같이”흔들림 없는 약산(若山)이었다. 오히려 우리 동포가 약산을“쓸모없는 피리”같은 약산(龠散)으로 만들어 버렸다. 금년은 약산을 중심으로 조직된“의열단”창단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쓸모없는 피리가 된“약산(龠散)”을 다시“약산(若山)”의 자리로 세워볼 수 없을까? 이번기회에 산산조각으로 갈라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 지난날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한 선열들의 유지(遺志)를 이 땅에 이루어나가도록 다 함께 힘써보자! 지금은 기독교의 성령강림절기이다.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엡4:3)라 말씀하셨다. 이번 절기에 우리 민족의 분열된 생각과 마음을 하나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자! ▲ 박의영 목사(전 경성대학교 교목. 박문희 박차정 의사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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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3
  • “다음세대를 살리고 돕는 힐링 전문가”
    (재)21세기포럼(이사장 홍순모 장로) 비전100인위원회(위원장 이선복 교수, 동서대)가 주최한 제8회 부산지역 청소년청년 비전 컨테스트에서 청소년부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세상은 다음세대들을 망가뜨리기 딱 좋은 환경과 공간인 듯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저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고, 많은 다음세대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모른 체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런 세상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셨고, 다음세대들을 살리고 특별히, 어린아이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겨주는 사람이 되리라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1. 비전수립의 계기와 과정들 저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봉사, 고아원 봉사 등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자원 봉사를 많이 해왔고, 특별히 4년 전부터 저희 수영로교회와 러브부산에서 주최/주관하여 요트경기장에서 열리는 ‘어린이 대축제’ 행사에서 빠짐없이 하루 종일 봉사하며 섬겨왔습니다. 사랑스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다른 것들보다 더 즐겁고 행복해서 저는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중학교 3학년 말부터 저의 진로와 비전으로 만들기 위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저는 이 비전이 그리 확실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이 비전을 확실하게 해준 사건 중 하나는 작년 2018년 여름방학, 늘 그래왔듯 수영로교회 고등부 수련회에 참여한 후에 조금 쉬고 싶었지만 이어서 곧바로 진행된 ‘이웃교회 수련회’에서 저는 피아노 건반으로 그 곳에서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웃교회 수련회’는 저희 수영로교회에서 주관하는 미자립교회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회인데, 교회의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혹은, 다음세대들의 수가 작은 교회들을 위해서 2박3일 동안 1,2차에 걸쳐 저희 수영로교회가 모든 수련회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청소년캠프입니다. 그때 저는 취학아동과 청소년 중 취학아동부서에서 피아노 반주를 섬기게 되었고, 초등학교 4학년인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둘째 날 저녁집회 때였습니다. 제가 그 어린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한 이 저녁 집회 기도회에서 유일하게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서서 주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수련회가 끝나는 셋째날 아침 시간, 물을 먹기 위해 잠시 내려온 그 아이를 저는 만나게 되었고, 그 아이에게 어제 밤에 본 그 모습에 대해 칭찬을 한 후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예배드릴 수 있었어? 무슨 교회 다니니?” 그 아이는 저와 옆에 계신 선생님들을 보며 “하나님이 힘 주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랑 저랑 온 거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했고 그때 어린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도 그에 맞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생명복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심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에서 지치고 힘겨워하고 상처받는 다음세대 영혼들을 살리고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비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건은 앞 사건과 똑같이 작년 여름, 저는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서 진행하는 G-impact캠프(2박3일)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엔 친구 없이 혼자 가는 캠프라 정말 가기 싫었었는데 저의 예상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특별한 동역자들을 저에게 붙여 주셨고 제가 평생에 뵙고 싶어 했던 이지선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만남으로써 상담심리에 관해, 사회복지에 관해 깊게 공부하고 배워서 제대로 된 실력을 쌓아 다음세대들과 지역사회의 다른 사람에게 제가 가진 은사와 재능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캠프를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가 있는데, “배워서 남 주자”라는 문구입니다. 처음 이 문구를 한동대학교에서 보았을 땐 그냥 멋진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계속 이 문구를 보면 볼수록 ‘아, 나도 열심히 배워서 다음세대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다음세대들을 살리는 곳에 사용해 주세요. 주님의 어린 자녀들을 살리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고치는 곳에 나를 사용해 주세요. 주의 심장으로 섬기는 리더가 되게 해 주세요.” 2. 미래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앞으로 저는 지금처럼 교회에서 다음세대들을 위해 섬길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긴다면 그 곳에서 자원함으로 봉사하며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 될 것이며 지금 제가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배워서 저를 필요로 하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특별히 저는 현재 상담 심리나 사회 복지학과를 선택하여 조금 더 사회 사람들에 대한 지식을 넓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왜 아동 복지나 아동 교육이 아니냐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아동 복지와 교육에 대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상담 심리나 사회 복지에서는 아동 심리 뿐만 아니라 노인, 임상, 중독 등 다양한 심리학을 배울 수 있고, 아동 복지 말고도 지역사회, 국제사회, 학교사회 등 아주 폭넓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저는 그 2개의 과를 공부하고자 열심히 준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또, 아동, 심리, 복지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찾아가며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고, 다양한 봉사들도 더 많이 해볼 계획에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년도에도 이웃교회 수련회에 참여해 봉사할 것이며,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방문해 어린 아이들을 돕는 일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수영로교회 유년부 찬양팀 아이들에게 찬양의 기쁨과 감사를 더 열심히 가르치고, Q.T나 암송 등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성경을 풀어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 중에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모습들 모태 신앙으로 살아온 저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교만한 사람이었고 저의 능력을 믿으며 살았으며 특히 예배 부분에 있어서는 수련회나 다른 집회에 참석하면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바지가 내려간 줄 모를 정도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처럼 저 또한 그렇게 찬양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정작 주일예배나 적은 인원이 모여 드리는 예배에서는 그냥 대충 드리고 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겨울 고등부수련회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놀라우시고 넓으시고 깊으신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때 저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래도 사랑한다, 화영아”였습니다. 먼지보다 더 작고 쉽게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가던 저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고,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을 꿇고 펑펑 울며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이 수련회가 끝나고 나서, 저의 예배 태도는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대충 찬양하던 저는 주일예배도 수련회에 참석 한 것처럼 열정적으로 주님을 기쁘게 찬양하게 되었고 그런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교회에서 하는 6개월짜리 제자훈련과정을 밟으며 저의 신앙이 더 잘 자라고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었고, 지금은 고등부 찬양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피아노 반주자로 섬기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 유년부 아이들과 함께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함께 예배도 드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믿는 크리스천 학생으로서 매일 점심시간 열리는 기도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특별히 중학생 때 기도장을 맡으며 학교 기도회의 중요성을 알게 된 후, 학교에서도 주님을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기도장으로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리드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와서도 꾸준히 그 자리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참 어려울 때도 많았습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고, 매주 금요일마다 드리는 금요철야 예배를 가는 것을 알고 저를 놀리며 비난하는 아이들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를 응원해 주시던 한 전도사님께서 낙망하고 좌절해 있는 저에게 시편 34편 18-20절 말씀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를 알려주시며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난을 크게 생각하기보다 그 고난을 통해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힘을 기르기 위해 이 말씀을 지금까지도 매일 묵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기고/강연
    • 기고
    2019-06-07
  • 나의 꿈, 나의 비전
    (재)21세기포럼(이사장 홍순모 장로) 비전100인위원회(위원장 이선복 교수, 동서대)가 주최한 제8회 부산지역 청소년청년 비전 컨테스트에서 대학청년부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무교집안에서 자란 저에게 꿈과 비전이란 단순히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저는 중학교 시절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찬양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반해 교회에 따라가기 시작했고, 크고 작은 기도응답을 받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크신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는 큰 선물을 통해 불평하고 짜증내던 저의 삶이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삶으로 변하였고, 내 입술의 말과 생각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의 비전을 찾고 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전이란 나의 성공과 욕심만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일치할 때 비로소 나의 비전이라 말할 수 있고, 그 비전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하심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의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행하심을 경험하고 비전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학창시절 낙상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쳐 수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제가 깨달았던 것은 의료종사자들의 일이 아프고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의료 전문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부산가톨릭대학교 방사선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4학년이 될 때까지 특별한 꿈과 비전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 저의 비전은 단순히 방사선사가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때에 맞게 비전을 깨닫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주신 제 마음에 첫 번째 소원은 유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날씨 좋은 봄날, 하루는 같은 과 친구에게 한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 내용은 저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그 선배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혼자 호주에 가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 남쪽도시 멜버른에 있는 RMIT 대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루 종일 제 머릿속에는 온통 유학에 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신 전공을 살려 교육자가 되고 싶었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너무 유학하고 싶은데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싶습니다. 응답해 주세요”라고 밤마다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 주일 아침 예배당 앞자리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러 갔습니다. 류태영 박사님의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하며 목사님의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가난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도우심을 통해 저 멀리 덴마크에서 유학을 성공적으로 마치신 한 박사님이 쓰신 책이었습니다. 너무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기도의 응답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에게 미디안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기드온 300용사의 말씀을 하시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도 함께하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작은 것도 하나님께 묻고 구하며 호주에 갈 준비를 차근차근 하였습니다.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해 호주에 갈 비용을 모았습니다. 주위에서는 저에게 “네가 무슨 아브라함이냐? 겁도 없냐?”고 많이들 물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응답을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하다가도 그런 질문을 받을 때엔 또 제 마음은 한없이 요동친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함께하자, 같이가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졸업 후 9월에 저는 고작 현금 700불과 편도티켓 한 장만 가지고 시드니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도우심 없이는 갈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제가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직장을 구하게 해주셨고, 안전하게 지낼 집도 구해주시고 훌륭한 목사님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제 믿음도 조금씩 자라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감사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호주에 간 목적은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전공한 방사선학을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배우고 보다 더 크게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대학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제 삶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시드니대학교 방사선학과에 진학해 공부하고 싶었고 제가 자란 환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고 눈으로 직접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구해진 직장을 통해 2천만원의 학비를 모은다는 것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자 만료기간이 다가올수록 지금 당장 공부를 시켜주실 것이라는 편협한 나의 생각은 오히려 저를 힘들게 하였고 간절히 기다리던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학교입학을 위한 영어시험 점수까지 준비했지만 무용지물이었고, 결국 1년 3개월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부딪힌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이 언제 있었던 일이었냐는 듯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타이밍과 나의 타이밍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닌 가장 좋은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인도해주실 것이라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회가 올 때 놓치는 일이 없도록 지금도 꾸준히 영어공부와 전공공부를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실망과 좌절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시편37편 5-6절 말씀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는 말씀으로 낙담했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저를 인도하셨고 지금은 여성병원에서 태아정밀초음파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10년 전, 5년 전에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나의 삶도 감히 하나님께 맡기고자 합니다. 태아정밀초음파를 배우며 제가 갖게 된 또 다른 마음의 소원은 의료선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태아정밀초음파가 시행된 기한은 10년정도 되었고, 정부에서 수가지원을 해줄 정도로 임상에서 태아정밀초음파는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더 발전되는 의료장비와 전문지식을 통해 초음파검사는 보편화되어지고 그 중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사료됩니다. 초음파를 하다보면 아기들이 자라면서 크고 작은 기형을 갖게 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작게는 손가락기형, 구개구순열 등이 있고 크게는 태어나자마자 생명에 영향을 끼치는 심장기형들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통해 각자에게 주시는 신호나 사명이 있는 줄로 알지만 산전에 꼭 알아야하는 심장기형을 진단받지 못하고 태어나는 아기들은 수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도 한없이 슬프고 죄책감에 스스로 아파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 기회를 통해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금전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어려운 일들을 겪지 않도록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언어공부를 꾸준히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가 있다면 잘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우리 모두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운 전공과 기술을 이용하여 전문적인 의료선교를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소원합니다. 이를 통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거나 하나님을 알지만 멀리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들을 찾고 깨닫는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가운데 다양하고 많은 기도와 응답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 꿈과 비전들을 제 힘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이루고자 합니다. 일상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자녀답게 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삶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나의 비전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단순한 야망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현재 셀모임 장을 맡으며 또래 청년들과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역할을 통해 말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깊이 깨닫게 되었고, 말씀만이 나의 삶을 지탱하고 세워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믿음이 좋거나 잘하여서 장으로 세우신게 아니라 부족한 나를 그 사랑으로 더 채우시기 위해 세우셨음을 잊지 않고 이 시간들을 통해 더 온전한 자로 서길 바랍니다. 아무리 내가 가진 지혜와 능력이 크다하여도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의 비전은 세상 사람들이 이룬 것들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합니다. 셀모임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는 것처럼 주신 비전을 위한 것도 구별된 모습으로 늘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이루어내길 바랍니다. 나의 실력과 능력치도 최대로 끌어올려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믿음과 삶을 살아내는 실력이 같아져서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리더가 될 것입니다. 결국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나의 성공과 부를 이루는 것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 사랑을 전하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세상 속에 망가진 부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내게 주어진 작은 역할까지 잘 감당해 낼 것입니다. 물론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있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 걸어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나의 부족한 지혜로는 절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랍고 크신 계획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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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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