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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화가 최영이 권사
    수영로교회 최영이 권사는 초등학교시절 미술선생님이셨던 친구 아버지의 영향과 난초 그림을 잘 그렸던 언니의 영향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방문 앞 언니가 걸어둔 액자에 그려진 흰 수염에 인자하신 모습의 하나님, 그 주위에 발가벗은 아기천사들이 둘러싼 그림이 지금도 생각난다고 합니다. 그림을 시작할 때 동양화를 배우면 자연히 불교미술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양화를 포기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바로 서양화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국내·외를 다니며 전시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전도지를 만들어 전도용으로 사용하기도하고, 미술선교를 하는 최영이 권사에게 주위에서 미술선교사로 불러줘 행복하다고 합니다. 기독교 관련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1977년 3월23일 구덕운동장에서 큰 집회가 있었고, 기도 가운데 갑자기 “너는 그림을 그리지 않니?”라며 그림으로 나를 전하라는 음성을 듣는 순간 눈물을 흘리며 그림으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품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길 원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길 기대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믿는 자들에게는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최근 부전교회 새 성전에서 2017청년 연합말씀사경회 겸 종교개혁500주년기념전에 100호 2점을 비롯해 크고 작은 13작품을 전시했는데, 청년들이 사진을 찍으며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는 작품도 있었고 다양한 성화 그림들이라 감상하는데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유물전시회에서도 8점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예수님의 온화하심과 아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으로 이스라엘유물전에 더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최영이 권사는 교회마다 작품을 전시 할 수 있는 갤러리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하면서 “목사님들께서 강단에서 설교하실 때 ‘탕자의 비유’ 돌아 온 탕자를 그린 렘브란트 그림과 작가를 소개 등 그림을 활용하면서 성도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이라도 그림으로는 얼마든지 복음을 전 할 수 있기에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그림으로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부산,경남 기독문화 일정> 1.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 4월30일(주일) 오후2시30분 : 해맑은교회 2. 선한사마리아인의 밤 (경남중·고 기독동문회 주최) 4월27일(목) 19시 : 협성뷔페. 3. 성경서예작품초대전 : 초대작가 병암 여운부 장로 * 주최 : CBS 부산방송 이사회 * 전시기간 : 17년 4월25일 ~5월 3일 (관람시간 10:00~18:00) * 전시장소 : CBS부산방송 5층전시실 * 전시작품 100점 4. 비저너리 한주희 집사(가야금) 초청 연주회 4월30일(주일) 오전11시, 오후2시 : 믿음찬교회 5. 우미나 (찬양사역자) 4월27일(목) 오후7시 : 수영로교회 4월30일(주일) 오후1시30분 : (서울) 주님의교회 5월14일(주일) 오전11시 : 이음교회 6. 디아코노스 (연극팀) 4월29일(토) 오후3시 : 장전제일교회, <초록구슬>연극 5월11일(목) 오전10시20분 : 덕천초등학교, <초록구슬>연극 5월11일(목) 오후6시50분 : 경북대학교EF, <카페살인사건>연극 5월13일(토) 오후7시 : 부산대청교회, <붕어빵 아줌마의 첫차랑>연극 5월13일(토) 오후2시15분 : 영도효성교회, <초록구슬>연극 5월14일(주일) 오전11시30분 : 사직동교회. <Are you happy?>연극 7. 민들레(인형극단) 5월1일(월) 푸른교회 5월2일(화) 부산진교회 5월4일(목) 샘물어린이집 5월7일(주일) 시온영광교회 5월11일(목) 평화노인요양원 5월14일(주일) 브니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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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7
  • [기독교 교양 읽기 25] 한국교회, ‘이주민’에 더욱 관심 기울이길
    이주민과 ‘함께’! 20년 전 어느 날 성남의 한 양말공장에서 일하다가 부당한 처우와 상습적인 성추행 등을 피해 도망쳐온 이주노동자 8명이 저자가 담임하던 교회로 피신해 왔다. 여성이 7명이었다. 그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민중목회를 하던 부부 목사가 당시 던졌던 물음은 이러했다.“오늘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때 그들이 들은 대답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소리였다. 이들은 이 소리에 바로 응답하였다. 외국인 노동자센터를 설립하고는 이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특히 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전용쉼터를 한국 최초로 마련하였다.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여성들이 대폭 늘어남으로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도 설립하였다. 그리고서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구조적인 문제, 나아가 한국인의 인식 문제 등에 대해 하나씩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그동안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이주민들이 고통받은 구체적인 사례도 많이 제시해 놓았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저질렀던 악행이다. 우리 먼저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주민인권운동의 원칙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주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르게, 평등하게》 || 최정의팔, 한국염 목사는 둘 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면서 부부이다. 20여년 외국인노동자와 국제결혼 이주여성 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이주민 운동을 해왔다. 동연, 2016.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인 한국염과 최정의팔 부부 목사의 말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컴퓨터로 ‘인권’을 치다가 받침 ‘ㄴ’을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이권’이 된다. ‘함께’를 놓치면 인권이 이권이 되기 쉽다. 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이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도 이주민이었음을 기억해야김길구 최근 우리나라에 닥친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이주 외국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들을 보는 우리의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히브리민족도 이주민 또는 떠돌이인 에일리언(alien)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끊임없이 이들에게 ‘나그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는 힘없는 자는 물론,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김현호 신약에도 ‘나그네 같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 길이요, 나그네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신자들은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시민으로서 국내에 들어와 함께 사는 이주 외국인들에 대한 의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할 시점이라 봅니다.김길구 그렇죠. 신약시대에 베드로가 전도하였던 대상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디아스포라, 즉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은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김수성 얼마 전 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은 ‘더럽고’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기피하고 싶은, ‘미개하고’ ‘무식하고’ ‘게으르’면서도 ‘돈을 밝히는’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를 빼앗는 집단’ ‘잠재적 테러리스트’ ‘아이를 낳으러 팔려온 불쌍한 사람’이란 편견에 시달려야 합니다.김현호 이러한 것은 결국 한국 사람들의 선민의식 때문 아닐까요? 단군의 자손이라는 신화,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왜곡된 선민의식 말입니다. 이러한 선민의식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성 또는 혐오증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더하여 피부 색깔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적 무의식도 잠재된 것 같습니다. 동화정책을 넘어 통합·조화로 나가야김길구 여기에 더하여 법이나 정부의 정책도 대체로 외국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들의 취업에 관한 법을 보면 몇 차례 개정을 통해 2008년부터 고용허가제가 전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때문이죠.김현호 결혼 이주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들 역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특히 소개소를 통해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중에 학교와 사회에서 편견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김수성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 중 가장 큰 문제는 ‘동화(同化)정책’ 일변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떤 형태로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숫자가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는 아직도 이주민에 대해 동화정책만을 고집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이 책에서도 지적하다시피 ‘동화’가 아니라 ‘통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입니다. 이 역시 ‘불통’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저는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통합에 더하여 ‘조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기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소통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오늘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주민들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톺아보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사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는 이 책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많은 사례를 보면 알 것입니다. 김현호 저는 교회의 선교사업에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 나가 선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 이주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삼는 것 역시 중요한 선교사업입니다.김수성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입장에서 볼 때 이주민에 대한 선교는 선교정책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합체에서 현지 언어 예배 추진하길김길구 이주민에 대한 교회의 선교정책은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약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보살핌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의 미래를 위한 선교정책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미래 한국의 성장 지렛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이를 위해서 지역별로 교회들이 협의하여 현지 언어별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A교회에서는 중국어 예배를, B교회에서는 베트남어 예배를, C교회에서는 필리핀어 예배를 하는 식이죠. 그러면 자연적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될 것입니다. 부기총 등 교회연합체에서 이를 추진하면 좋겠습니다.김수성 우리도 마더 데레사의 말을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주위에 있는 이주민 한 사람씩만 사랑하다보면 모두가 이웃이 될 것입니다.김길구 신학교에서도 이와 관련한 강좌 개설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주자 선교나 이주자 복지와 관련한 학과 개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신학교가 나갈 방향 중의 하나로 설정한다면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김현호 우리 아이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인데, 교회의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면 노인들만 사는 가정에 유학생 등을 위한 홈스테이 주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원하는 이를 선교사로 양성하여 본국으로 파송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방법이죠.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YMCA 등에서 제3세계 청년들을 초청하여 공부하도록 주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공부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이상을 내다본 투자입니다.김길구 미래를 위한 교회의 선택이라 할 수 있겠군요. 우리 교회가 이슬람 공포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을 향한 선교의 손을 내밀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개종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이들을 우호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다음에는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 2010)을 읽고, 교회 출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다문화가구수는 27만 8,036가구이고, 결혼이민자·귀화자는 30만 4,516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2012년 조사 때에 비해 만 9~24세 자녀 수가 8만 2,476명으로 24%나 증가했다. [위의 표 자료는 통계청의 ‘2015년 다문화인구 동태 통계’에서 발췌한 것임.]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더불어 사는 다문화 함께하는 한국교회》 / 조성돈 외 / 예영 《마지널리티: 다문화 시대의 신학》 / 이정용 신재식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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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4-10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새노래 찬양단 - 부산대학교 SFC 찬양팀
    부산대학교 안에 기독교 동아리인 SFC가 있는데, 이 단체 안에서 생긴 찬양팀인 새노래찬양팀은 역사가 무려 30년이 된 전통 있는 찬양팀입니다. 1987년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창단된 이 팀은 초창기에 기타2대를 메고, 학교 정문에서 등하교길에 찬양을 하며 복음의 메아리를 대학 캠퍼스에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라 학교정문에서는 온갖 시위와 최루탄가스로 인해 등하교 때마다 몸살을 앓고 있던 형편이었는데, 찬양으로 이 지역을 정화해가며 복음을 전하던 이 운동은 많은 반향과 기독교문화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교내에서 1달에 한번 찬양집회를 가지기 시작하여, 많은 기독대학생들이 모여 같이 찬양하며 기도하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해가는 학원복음화의 핵심적인 역활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2년에 대운동장에서 열린 찬양큰모임은 당시 세상적인 축제문화에 맞서 기독교적인 축제문화를 당당히 캠퍼스에 선포한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찬양모임은 더욱 확대되어 다른 대학에서도 찬양팀을 조직하여 부산지역 캠퍼스의 복음화를 이루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지현 학생을 비롯한 6명의 단원이 이 팀을 이끌어가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마다 SFC의 큰모임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이라 음향 장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상태에서 섬기다보니 처음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부분도 있고, 선배들이 졸업하면 후배들이 또 이어받아 가야하는 대학교팀의 특성상 새로운 멤버를 구성하고 교육시키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찬양의 가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알아가고,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격하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찬양팀은 청중의 은혜를 돕는 은혜의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가는 이 젊은 학생들의 찬양이 캠퍼스에서 귀한 역할을 잘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부산, 경남 문화사역자 일정> 1. 늘소리 (국악찬양팀) -4월23일(주일) 저녁7시 : 천안중부교회 부활주일 찬양집회 2. 그리스도의 편지 (찬양팀) -4월9일(주일) 오후2시30분 : 효성교회 -4월16일(주일) 오후2시 : 교리제일교회 3. 약속의 땅 (찬양팀) -4월16일(주일) 오후2시30분 : 창남교회, 거창부활절 연합집회 4.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 -4월9일(주일) 오후2시 : 동신교회 찬양집회 -4월11일(화) 오후6시30분 : 부산밀알화요모임 찬양인도 -4월16일(주일) 오전11시 : (청도) 별빛교회 찬양예배 5.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및 기독교부산방송 후원을 위한 ᆞ성경서예작품초대전ᆞ * 초대작가 : 병암 여운부 장로 * 초대일시 : 4월 25일 오후2시 * 전시기간 : 4월25일 ~5월 3일 * 전시장소 : 기독교부산방송5층전시실 * 문의 : 전화 051-636-0050, 작가 010-7712-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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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0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인형극단 민들레
    민들레 인형극단은 2005년 창단된 팀으로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말씀을 인형극에 담아서 전하고, 공연 예술문화 확산과 발전에 힘쓰는 인형극 전문극단입니다. 먼저 민들레가 하는 일은 당연히 인형극 공연입니다. 인형극의 특성상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다보니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형극 공연이 가장 많습니다. 특히 정서발달에 가장 중요한 나이인 아동들에게 인형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면 이 아이들의 기본정서에 복음적 내용이 깔리게 되고, 이 복음적인 기초위에 사회성, 상상력, 창의력이 쌓이다 보니 많은 분야에서 민들레를 찾고 있습니다. 특히 민들레는 교회에서의 인형극도 많이 하지만 일반 교육분야에서도 특히 많이 찾고 있습니다. 일반 유치원, 학교, 도서관, 문화센터 등 믿지 않는 곳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는데, 이 팀이 하는 인형극의 모든 내용이 성경을 기초로 한 뒤 그 내용을 일반인에게 맞게 각색하여 인형극을 하다 보니 그 어느 문화단체보다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서 역할을 효과적으로 잘 감당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회가 노령화되어가는 이 시기에 노인대학 등에서도 인형극을 많이 하는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마음이 어린이처럼 인형극을 무척 좋아하고 이를 통해 복음이 정말 잘 전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인형극에 관심이 많은 교회나 단체의 교육에도 열심을 내고 있어서, 학교의 자유학기제 강의, 여러 전문 강습회의 강의, 세미나, 문화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인형극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인형극을 보급하는 귀한 일들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 인형극을 배워 여름성경학교나 각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교회가 많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인형극을 하기에는 소품을 마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민들레에서 각 교회의 성격에 맞는 캐릭터 인형 직접 제작 판매하며, 무대 주문 제작 공연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인형극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언어의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 있는데 이 인형극을 통하여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어서 정말 효과적인 복음의 도구가 되었고, 중앙아시아의 학교 및 유치원 등을 다니며 해외선교에서 큰 힘을 다하고 있는 귀한 인형극팀입니다. 이 귀한 복음의 도구가 되는 팀이 앞으로도 많은 교회와 단체에서 인형극으로 복음을 전하는 귀한 자리가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공연문의 051)202-2770 / 010-2851-7195 (김영희 공연팀장) E-mail. hannah-1972@hanmail.net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일정> 1. 찬양사역자 김인희 음반 발매 쇼케이스 3월 25일(토) 저녁 6시.공간 이음(부전역 2번출구) 2. 그리스도의 편지 (찬양팀) 3월25일(토) 오후2시 평강교회 3. 36차문화전도아카데미 : <바리스타로 전도한다> 강사 : 김삼송 목사 3월23일(목) 오후7시, 늘노래연구소 4. 노래하는 순례자 (찬양팀) 3월26일(주일) 오후3시 : 푸른교회 4월2일 (주일) 오후2시30분 : 연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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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사역자
    2017-03-2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5 - 권력과 폭력
    “걸작은 새로운 다중을 창조한다.”(질 들뢰즈) 질 들뢰즈에 의하면 걸작의 참된 의미는 대중의 주어진 감수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다중)을 창조하는 것, 대중이 듣기 원하는 입에 발린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감수성을 창조하고, 현실 안에 잠재된 어떤 힘을 드러내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문제의 해법에만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고 한다. 옳지 않은 문제에 옳지 않는 답도 문제지만, 옳지 않은 문제에 옳은 대답은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이론과 실천은 두 다리와 같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면 왼발이 따라가고, 왼발이 앞으로 나가면 오른발이 따라간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하다. 대중이 한발 나가니, 헌법기관이 한발 따라온다. 그렇다면 헌법기관이 한발 나아가면 정치가 한발 따라갈까? 목하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중을 창조하는 걸작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리고 걸작을 창조하는 새로운 지식인이 필요하다. 1. 지식인: 자퀴즈! 20세기 ‘지식인들의 지식인’이었던 장 폴 싸르트르(J. P. Sartre)는 지식인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계몽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을 첨가하면 참다운 지식인은 세 종류가 된다. 첫째, ‘참견하는 지식인’은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쌓아올린 명성, 곧 상징자본을 세상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지식인이다. 가령, 1898년 드레퓌스 사건의 한복판에서 에밀 졸라(É. F. Zola)가 소설 쓰기를 제쳐두고 “자퀴즈!”(J’accuse!) 곧 “나는 고발한다.”라고 외치고 나섰을 때, 반드레퓌스 우익세력이 한목소리로 작가가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드느냐고 비난의 화살을 쏘는 순간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탄생했다. 둘째, ‘계몽적 지식인’은 소위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스스로 철학자라고 불렀던 지식인들, 곧 (프랑스로 한정하여) 볼테르,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로 만들었다. 중세의 타락한 가톨릭 교회 권력에 맞서 미몽의 세상에 빛을 끌어들였던 참 계몽적 지식인들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유기적 지식인’은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가 말했던 바, ‘사회 계급의 신경 노릇을 하는 지식인’이다. 노동자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야말로 그람시적 지식인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지식인은 당대 피억압자를 대신해 그들의 대표자, 대변자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지식인, 곧 대중 위에서 대중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지식인은 죽었다. 대중이 스스로 지식의 주인이 되었으므로 이러한 지식인이 퇴장한 것일까? 아니면, 침묵 속에 짓눌려 익사당한 것일까?¹ 지금 대한민국은 후자에서 전자로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그 지식과 대중은 정치적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 2.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의사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대통령의 국정농단)이기도 하며,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대통령 탄핵)이기도 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우리 일상생활 주변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스티븐 룩스(S. Lukes)는 『3차원적 권력론』 (나남, 1992)에서 “권력은 1, 2, 3차원으로 분류되는데, ‘직접적인 힘으로 제압하는 권력’인 1차원적 권력과 ‘법이라는 간접적 힘’으로 통치하는 2차원적 권력, 그리고 ‘설득과 영향력으로 부지불식간에 작용’하는 3차원적 권력”이 있다고 한다. 가령,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담임목사가 자장면을 시켜 먹자고 하면 부목사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담임목사가 가진 힘을 1차적 권력이라고 한다. 따라서 1차원적 권력은 권력의 일반적인 정의로 국가의 국민에 대한 공권력 행사, 사회적 강자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력 행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행태적(behavioral)’권력이라고도 한다. 2차원적 권력이란 ‘구조적(structural)’ 권력으로, 어떠한 문제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표면 위로 올릴 수 있는 혹은 올리지 않는 권력을 뜻한다. 교회 내적 문제에 관하여 당회가 막강한 권력으로 사안을 결정하여 좌지우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구조적 강자가 소수자의 의견을 아예 제도적, 혹은 원천적으로 막아서 그들의 의견이 수면위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권력을 뜻한다. 3차원적 권력은 ‘구성적(constitutive)’ 권력으로,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권력을 말한다. 그러나 보통 언론이나 매체의 권력을 뜻하기도 한다. 가령, 조선일보가 노조에 대해 ‘귀족노조’식으로 폄하하여 기사를 쓴다면(교회적으로는 여론을 형성하는 대형교회가 담론을 형성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노조를 ‘귀족노조’로 구성한다는 의미에서의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구성적 권력의 힘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국민 여론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괴벨스는 선전 수단으로 라디오에 주목했다. 그는 국가 보조금을 풀어 노동자들의 일주일분 급여인 35마르크만 있으면 라디오를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7시 라디오 뉴스에 ‘오늘의 목소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총리 관저를 르포(reportage)하도록 했다. 나치스 지지 군중대회도 실황으로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러한 괴벨스의 정치 연출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성은 필요 없다.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라.”라는 것이었다. 반면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은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괴벨스에서 링컨으로 넘어가고 있다. 1, 2차원적 권력이 구체적으로 권력을 실천하는 것이 폭력이다. 대한민국은 촛불혁명과 헌법제판소의 일련의 절차를 통하여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비폭력과 민주적 혁명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권력과 폭력의 고고학은 어떨까? 3. 폭력의 고고학: “잔혹함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며, 사랑이 없는 잔혹함은 맹목적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았다.” (알베르 카뮈) 관용(tolerance)이란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과 행위 양식을 존중하고 승인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이 아무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관용의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관용은 모든 것을 관대하게 대하는 중립적 관찰자의 태도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그 존재 안에서도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태도이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류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통찰에 근거한다. 그러나 관용에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 관용의 정신 자체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민음사, 2006)에서 전체주의 정치체제를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비유로 통렬하게 비판한 칼 포퍼(K. R. Popper)는 이것을 ‘관용의 역설(paradox of tolerance)’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무 제약 없는 관용은 반드시 관용의 소멸을 불러온다. 우리가 관용을 위협하는 자들에게까지 무제한의 관용을 베푼다면, 그리고 불관용의 습격에서 관용적인 사회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관용적인 사회와 관용 정신 그 자체가 파괴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용의 이름으로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천명해야 한다.” 열린사회(the open society)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사회 전체의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차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 사회이다. 반면 닫힌사회(the closed society)는 불변적인 금기와 마술 속에 살아가는 원시적 종족 사회로서 국가가 시민생활 전체를 규명하며 개인의 판단이나 책임은 무시되는 사회이다. 지금 지금 대한민국은 열린사회 안에 작은 닫힌사회가 있다. 이 닫힌사회 속에 갇힌 어르신들을 사랑해야 할까? 아니면 이러한 관용의 역설에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천명해야 할까? 폭력의 고고학을 소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력에 관한 고고학’의 첫째 이론가인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W. Benjamin)은 에세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 (1920)에서 “폭력에는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이 있다.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야훼를 가리킨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일곱명과 딸 일곱명을 두었는데, 그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니오베는 불경죄를 저질렀는데, 자신이 레토(Leto) 여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냈던 것이다. 레토에게는 아들 아폴론과 딸 아르테미스 한명씩밖에 없었다. 따라서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으로 하여금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는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다. 반면, 벤야민이 든 신적 폭력의 사례는 구약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이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으나,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반기의 명분이었으나, 사실은 같은 레위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모세에 대한 반역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무리는 한꺼번에 소멸 당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이르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불살랐더라(민수기 16:32-35).”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벤야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라고 말한다. 곧, 신화적 폭력이 법을 정립하고 보존하는 폭력, 다시 말해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인 것이다. 벤야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하였다. ‘신화적 폭력이 생명체를 희생시킴으로 자족하지만, 신적 폭력은 생명체를 위해, 생명체를 구현하기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약간의 신학적 무리수가 있긴 하지만, ‘레토(신)-니오베(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모세)-인간(고라)의 관계’에 ‘신이 폭력으로 편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신화적 폭력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폭력이 되지만, 신적 폭력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한쪽을 편들어 주는 것이다(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한쪽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면 여기서 벤야민이 쓰는 ‘폭력’의 의미란 무엇인가? 독일어 ‘Gewalt’는 ‘힘ㆍ폭력ㆍ권력ㆍ권능ㆍ무력’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벤야민이 다루는 폭력은 ‘윤리적 상황’과 관련된 폭력을 뜻한다. 가령, 화산폭발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으로서의 폭력은 고찰대상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폭력이 윤리적 현상으로 파악된다면, 그때 폭력은 법과 정의와 관련된다. 곧, 벤야민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법적 폭력’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폭력은 이성의 한계에서, 법은 이성의 정당한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폭력은 정치의 근원이자 토대이고, 법은 정치의 종점”이라고 한다. 곧, 세상의 폭력을 제어하는 것이 법이 아니라, 오히려 법의 궁극적이고 내재적인 목적이 폭력 내지 권력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에 준거하는 것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한다. 전자가 경계를 설정한다면 후자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를 만들고 속죄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제거한다. 전자가 협박적이라면 후자는 충격적이고, 전자가 피의 냄새를 풍긴다면 후자는 피의 냄새가 없고 치명적이다.” 그러나 ‘폭력에 관한 고고학’ 그 두 번째 이론가인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법의 힘』 (1994)에서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이 텍스트에서 발견하는 가장 가공할 만한 것은 … (하나의) 유혹이다. 어떤 유혹 말인가? 대학살을 신적 폭력의 해석 불가능한 발현의 하나로 사고하려는 유혹”이라고 비판 한다. 사실 데리다와 달리 벤야민은 파쇼의 시대를 살았다. 따라서 ‘신적 폭력으로서 메시아를 요청’하는 벤야민을 데리다는 이해하기는 하나, 이러한 벤야민의 폭력론은 좌파와 우파가 뚜렷하게 구분되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근친성’ 속에서 저술된 것이며, 그런 만큼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베냐민의 신적 폭력, 곧 피도 흘리지 않고 한꺼번에 내리치며 휩쓸어버리는 신의 폭력이 ‘최종 해결’이라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대학살은 벤야민의 ‘신적 폭력’의 한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모세를 나치로, 고라를 유대인으로 본다면 데리다의 비판은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폭력에 관한 고고학’ 그 세 번째 이론가인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 Agamben)은 『호모 사케르』(1995)에서 “신적 폭력을 ‘최종 해결’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데리다의 주장은 정말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오해이다.”라고 비판한다. 또한 ‘폭력에 관한 고고학’ 그 네 번째 이론가인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 Zizek)은 아감벤과 같이 데리다의 ‘오해’를 비판하고, 베냐민의 ‘신적 폭력’을 옹호한다.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에서 “신적 폭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모호함을 피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벤야민의 신적 폭력의 구체적 사례로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Jacobins, Jacobin Club) 공포정치², 그리고 1919년 러시아 내전 때 붉은 군대의 ‘테러리즘’을 거론한다. 아무튼,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신적 폭력이라는 이름의 ‘순수한 혁명적 폭력’을 변호한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신적 폭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지르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대항 폭력이며 이러한 신적 폭력은 그 내부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고라를 자본주의 세계체제로 본다는 말일 것이다.) 체 게바라도 “진정한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의 감정에 이끌린다.”고 했다. 곧 사랑이 없으면 혁명도 없는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I. Kant)의 명제를 비틀어 지젝은 “잔혹함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며, 사랑이 없는 잔혹함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 진정한 혁명은 잔혹, 곧 폭력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지젝의 결론이다.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부활의 기쁨이 없다는 기독교 신학의 정수를 역설적으로 폭력의 역사를 통해 메시아의 신적 폭력의 그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을 국가로 확장하면 성 어거스틴(A. Augustinus)의 ‘정당한 전쟁론’(just war theory)을 살펴볼 수가 있다. 어거스틴은 “자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되나 살해인 경우,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실천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이러한 살인에 대한 부분적 허용이 ‘정당한 전쟁론’으로 발전했는데, 그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8개의 기본원칙은 “첫째 하나님의 공의를 침해하는 경우, 둘째 전쟁의 악함이 현저하다고 도덕적으로 판단될 때, 셋째 폭력의 사용을 위한 정당성이 인정될 때, 넷째 국가의 영적인 상태가 심각히 위협을 받을 때, 다섯째 신앙생활에서 복음적 기준의 해석들이 위협을 받을 때, 여섯째 불의한 사회적 변화에 더 이상 수동적 태도만으로 일관할 수 없을 때, 일곱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성서에 비추어보았을 때도 적절했을 때, 여덟째 평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라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인가? 폭력의 고고학은 미래 권력을 향하여 묻고 있다. ----------------------------------------------- (각주) 1) 사실 ‘지식인의 고향’, ‘지식인의 태반’이었던 대학이 대기업과 대자본의 하청업체가 되어 버렸다. 대학은 ‘죽은 지식인들의 묘지’가 되어 버렸고, 앞으로도 더 극심해질 이러한 세상에 싸르트르적 지식인의 ‘불온한 기운’이 부활해야 할 것이다. 계몽적 지식인이 권력에 맞서 미몽의 세상에 빛을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수많은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불의에 대한 저항’의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2) 자코뱅파는 프랑스 혁명기에 생긴 정당 중 하나로 프랑스 혁명을 주도하였다. 파리의 자코뱅 수도원을 본거지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중심이 되어 급진적인 혁명을 추진하였다. 국민 공회에서 왼쪽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좌익’의 어원이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높이 평가했으며, 따라서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라 할 수 있다. 최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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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23
  • [기독교 교양 읽기 24] “사회는 포용성과 시민상식 가진 목사 원해”
    “목회는 삶의 현장에서!” 모두 4부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목회도 패러다임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패러다임은 본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한 것 같다. 삶의 현장에 적합한 목회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패러다임이라기보다 ‘상대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노인들과 소외받은 아이들이 대부분인 산골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목사가 지역주민들의 노동 현장에 뛰어들고, 당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이들과 생활하면서 목회자로서 깨달은 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3부와 4부에서는 신앙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1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1부는 어느 정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면, 3부와 4부는 내용 자체가 가볍지 않다. 사용한 단어도 까다롭고 사변적이어서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 어렵다. 다 읽고 나니 목회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조금 더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의 제목인 ‘목사 사용설명서’가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고, 몇몇 미디어에서 이를 취재하여 기사화하면서 저자와 시무하는 교회가 많이 알려졌다. ‘사용설명서’ 중 마지막에 제시한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가 언론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교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가려는 목회자의 심경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목사 사용설명서》 || 김선주 목사는 충청북도 영동의 물한계곡교회에 시무하고 있다. 그는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어 마을공동체와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목회자이다. 대장간, 2016.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아, 잡꿀. 세상 모든 꽃들이 제 향기를 섞어 하나로 만든 꿀. 나는 퍼뜩 ‘잡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하나의 전문성을 가진 순혈적 인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할줄 알고, 다 소통하는 인간. 만능 엔터테이너.나도 잡놈이 되고 싶어졌다. 목사라는 제사장적 순혈주의, 그 위선적인 거룩함과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벗고 잡놈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참 잡스럽게 사셨다. 목수, 의사, 선생, 혁명가, 설교자, 상담가……. 아,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꿀맛이었구나.” [34쪽]글쓴이는 꿀을 뜨면서 잡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스스로도 ‘잡놈’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순혈주의적 사제의 모습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의도적으로(?) 거친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속물이다’로부터 ‘영성, 싸구려 유행상품’ ‘집단강간체제와 목사의 이력’ ‘도끼날처럼 시퍼런 가을하늘’ 등. #말로만이 아닌 ‘당장의 축복’이 중요김길구 : 옆에 있던 분이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이 책 제목을 보더니 당장 “이건 너무했다”고 합디다. 목사가 물건도 아닌데 ‘사용설명서’라니, 이런 반응이었죠. 김현호 : 심정을 이해할만합니다. 그러나 저자인 김선주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경우, 대부분 교인이 노인인데다 이들은 목사를 ‘특별한 분’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죠. 이에 비해 저자는 현장에서 이들을 돕고 함께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터로 뛰어들죠. 교인들이 자꾸 부담스러워 하자, 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라는 제목인데, 언론에 보도되면서 ‘목사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지게 된 것 같습니다.김수성 : 제목 자체로만 본다면 상당히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다른 분들이 쓴 것인데, ‘○○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을 붙인 책이 몇 권 있습디다. 한마디로 유행어처럼 퍼진 것이죠.김길구 저자는 교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 따라 목회자는 현장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스로 이야기하듯 ‘목사는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김현호 : 김 목사의 목회철학인 것 같습니다. 목사는 교회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독려하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목회는 지역적이지만 세계사적 인식과 사유를 통해 지역을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김수성 : 그는 ‘축복’도 관념의 언어로 끝나서는 안 되고 ‘당장의 축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에 홀로 사는 할머니 교인집의 고장난 연탄보일러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택의 연탄불을 빼내 겨우 마무리하자 날이 밝았다는 이야기는 ‘당장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김현호 : 그의 목회철학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일손이 필요할 때 일꾼이 되고, 추위에 떠는 교인의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지금 목마른 사람에게 당장 물 한 모금을 주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목마름을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축복을 가장한 위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물한계곡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배포하여 화제가 된 ‘이럴 때는 전화하세요’ 내용. 목사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연세 높은 교인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이다. 목회란 보편적이면서도 상대적임을 보여준다. #시골교회-도시교회 이분화는 잘못김길구 :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 교회의 지역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할 당위성은 몇 차례 거론했습니다만, 도시교회에도 이런 인식이 더욱 시급한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그 문제점을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교회의 지역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운대구에 있는 교회와 강서구에 있는 교회가 동일할 수 없듯이, 전국의 5만 3,000여개의 개교회가 각각 고유한 교회공동체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즉, 목사가 교회성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지역에서 복음의 보편성을 실천하고자 노력할 때 존중받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김수성 : 그런데 문맥을 살펴보면, 시골교회와 도시교회로 이분화하는 데 대한 반발도 내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는 성공한 사람, 시골교회 목사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의미이죠. 목사 청빙을 할 때 세속적인 기준에 우선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김길구 : 시골교회 또는 작은 교회 목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에 대해 일침을 놓은 것 같습니다. 복음은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골사람에게나 도시사람에게나 복음의 중요성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는 이를 구분하고, 그러한 잘못은 교회에서도 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부터 이러한 잘못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늘날의 목사직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근 들어 언론에 목사직에 대한 불편한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사를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 기준에 빗대보면, 목사직이 올바른 자질을 갖춘 목회자로 바로설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목사직의 위치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금방 답을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영성 훈련도 인터넷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소비만능사회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좀 더 내실을 기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목사직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야김길구 : 목사직을 수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는 물론 교인들이 목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직 역시 주어진 상황, 지역성이라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보편성에 더하여 지역성이 가미되어야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김현호 : 오늘날 목사직은 선포 중심에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는 수행(遂行) 중심의 목회자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가끔 배타적 특권의식을 가진 성직자를 볼 수 있는데, 지금의 사회와 교회는 포용성과 시민 상식을 발휘하는 공공성의 목사직을 바라고 있습니다. 각 교단에서도 이에 유념하여 기독교의 질을 한 단계 높여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김길구 : 이 책은 열 번째로 제시한 ‘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합니다’라는 항목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목사 사용설명서’로 붙였습니다만,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저자가 생각하는 교회와 신앙, 그리고 사회에 관한 에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독자 스스로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다음에는 최정의팔, 학국염 목사가 함께 쓴 《다르게, 평등하게》(동연, 2016)를 읽고, 다문화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목사의 길》 / 윌리엄 스틸 / 복있는사람 《목사란 무엇인가》 / 조석민 외 / 대장간 《목회 영성의 흐름, 주일과 주일 사이》 / 유진 피터슨 / 좋은씨앗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7-03-03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우미나
    2015년 5월 <나의고백>이라는 싱글앨범을 통해서 찬양사역을 시작한 우미나 씨는 보컬트레이너, 방송진행자, 솔리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역자입니다. 처음에는 사역에 대한 마음이 사실 전혀 없던 평범한 성도였지만, 사역을 하면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며 그 마음을 배우기 때문에 찬양사역자로 삼으셨구나’라는 확신이 들어 행복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개척교회를 섬겼습니다. 우 씨는 “개척교회에서 부흥을 꿈꾸기보다는 먼저 십자가의 용사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야겠다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으로 인해 주님은 그 곳을 부흥시켜주셨는데, 이런 간증을 통해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작은 개척교회 위주로 사역을 하고 있으며, 청년들이 모이는 곳에서 간증을 나눕니다. 자주 부르는 찬양은 한웅재 목사님의 <그 나무 아래로>라는 곡을 편곡을 했는데, 그 곡을 부른 영상이 화제가 돼 그 영상을 보고 연락이 많이 오고 있어, 어딜 가든 청중들은 그 곡을 부르는 우미나 씨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서울에서 사역을 위해 부산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합니다. “왜 내려가느냐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곳이자 하나님이 보내신 이 지역을 섬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사역을 하면서 곳곳에서 만나는 선배사역자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중심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참 좋습니다”. 우미나 씨는 하나님이 사용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찬양을 통해서 잘못된 길을 걷는 자들이 하나님 품으로 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일깨웠으면 영혼을 살렸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현재 극동방송에서 ‘우미나의 <소울터치>’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심야시간 방송으로, 청취자들이 사연과 듣고 싶은 찬양도 보내주시면 힘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찬양사역을 하기 전부터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현재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서 보컬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 외의 곳에서 ‘Self. Vocal. Training’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컬레슨을 하고 있습니다. (집회문의 : 010-6608-6203) <부산, 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 디아코노스 연기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 기간 : 2017년 3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2시 (약8주) - 장소 : 극단 디아코노스 연습실 - 모집인원 : 6명 - 수강료 : 180,000원 - 문의 : 석지철 간사 (010-3229-0889) 2. 크리스챤 리더쉽 아카데미 - 모집대상 : 기독청년이면 누구나 - 기간 : 2017년 3월 16일 ~ 6월 1일, 매주 목요일 오후7시30분 - 접수기간 : 2017년 3월 15일 마감 - 접수방법 : CLA 홈페이지에서 접수 http://cla.modoo.at - 위치 : 서면드림스퀘어 - 수강료 : 100,000원 - 문의전화 : 070-8860-1464, 010-2388-1464)
    • 문화
    • 문화사역자
    2017-03-0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4 : 레짐
    “천국에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1. 앙시앵 레짐: 적의 계보학과 꼰대의 등장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 Lacan)의 상징계(the Symbolic)처럼 우리는 태어나면서 언어와 사회 질서, 혹은 체제(regime)에 속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인 것이다. 불교 문화권에 태어난 사람은 불교 문화를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유교 문화를 상징계로 접한 사람은 유교의 이상을 자연스럽게 그의 가치관이나 사상에 반영할 것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팔레스틴 땅, 식민지 이스라엘과 주변 강대국의 문화와 영향은 예수의 말씀에 녹녹히 녹아있다. 예수의 비유가 그러하며 그의 날선 생명의 말씀이 그러하다. 이토록 레짐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본질적 상황이다. 그리고 이 레짐은 완결되지 않았고 완전하지도 않다. 보수는 기존 체제를 지키려 하고 진보는 그 체제를 변화시키려 한다. 여기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적의 개념을 상정하고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과 ‘누보 레짐(nouveau regime, 혁명 이후의 신체제)’이 체제수호와 변화의 변증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 앙시앵 레짐을 풍자한 그림 가상의 복제물이 실체를 가리고 대신한다고 말하는 장 보드리야르(J. Baudrillard)는 ‘적의 계보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敵)은 최초 단계에서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음 단계에는 ‘쥐’(제발, 특정인을 연상하지 마시라!)의 형태, 그리고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오다가 마지막에는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난다.” 늑대는 울타리 밖에 선명한 적으로 존재하니, 비록 그 공포와 폭력의 서슬은 시퍼렇되, 전선이 분명한 만큼 대적하기도 단순하고 쉽다고 한다. 그러나 쥐는 야음을 틈타 은밀히 우리를 갉아먹는다. 지하벙커 같은 음습한 어둠을 좋아하며, 울타리를 아무리 견고하게 둘러쳐도 끈질기게 집안 깊숙이 들어온다. 따라서 우리들의 허술하고 지저분한 비위생성이야말로 쥐에겐 좋은 서식처가 된다. 쥐의 단계를 넘어선 적은 이제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부지불식간에 내 몸 안에 들어와 기생과 숙주의 관계로 진화한다. 숙주로 하여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게 하거나,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긴다. 따라서 내 몸속의 적은 나의 탐욕을 조장하여 나 자신을 살찌운다. 숙주인 나는 날로 허허로워 치열하게 탐욕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기생충만 살찌울 뿐이다. 그러나 이 단계까지 적은 나와 구별되는 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한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대적하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 적이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없어진다. 적이 나인지, 내가 적인지 헷갈린다. 적의 낯선 타자성이 사라지고 어느덧 내 안에 내재화된다. 심지어 적은 나로 하여금 나를 타자화하여 주체를 전복시킨다. 소외와 일탈이라는 비정상성이 일상화되어 정상성으로 둔갑한다. 일종의 착란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실 2017년 2월의 대한민국은 지금 체제와 사람 모두 착란상태에 빠져있다. 상징계의 이러한 착란상태에 항상 라캉의 상상계(The Imaginary, 타자를 자신으로 오인하는 허구적인 주체의 단계)로 퇴보하며 상징계를 뒤덮는 꼰대가 등장한다. 꼰대는 기성세대나 선생님을 뜻하는 은어로도 쓰였던 말인데, 프랑스 단어 ‘콩테(comte, 백작)’에서 유래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백작, 공작, 후작 등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스스로를 콩테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이를 비웃던 백성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고 불렀던 것이다. 꼰대는 심리학적으로 ‘자기만 옳다고 느끼는 경향(sense of self rightness)’, ‘스스로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경향(sense of self entitlement)’을 말한다. 기본적인 상식과 통념을 부정하면서 전문가의 권위만을 내세운다. 자기만 옳고 똑똑하며, 돈과 명예까지 가졌으니 대접받아야 된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이러한 꼰대는 널려있다. 나이, 성별과 무관하게 계급장을 내세우고, 대접받고 싶어 한다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가장 대표적인 꼰대인 굉꼰(굉장한 꼰대), 젊꼰(젊은 꼰대). 여꼰(여자 꼰대) 등. 따라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대화의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고 여기면 꼰대가 되어간다는 위험신호라고 할 수 있다.¹ 그러나 문제는 이 꼰대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경제 체제와 정치 체제로, 곧 레짐으로 확장될 때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분열증적 자본주의의 폭력 사회 체제 속에서 우리는 개인의 ‘힐링(마음 치유)’을 넘어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날카롭게 들춰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분열증 자본주의와 디스토피아 들뢰즈/가타리(G. Deleuze/F. Gautari)는 『천 개의 고원』 (새물결, 2003)에서 “초점은 장군이 아니라 하급 장교들, 하사관들, 내 안에 있는 병사, 심술궂은 자이며, 이들 각각은 나름대로 성향들, 극들, 갈등들, 힘의 관계를 갖고 있다 … 억압당하는 자가 억압의 체계 속에서 항상 능동적인 자리를 취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은 마조히즘이 아니라 바로 이 미시적 짜임이다.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들은 제3세계에 대한 착취, 독재자들의 무장, 대기 오염에 능동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리좀-나무, 탈영토화-재영토화, 무리-군중, 사본-지도, 분자-그램분자, 소수-다수, 유목성-정주성, 전쟁 기계-국가 장치, 매끈한 판-홈이 팬 판’과 같은 무수한 이항 대립의 쌍을 변주하며, 사유의 방식, 기능, 양태들에 대해 설명하는(여기에는 무수한 자의적 개념이 춤추고 있다. 가령 리좀, 동물-되기, 소수-되기, 영토화와 탈영토화, 포획, 탈주선, 지층과 지층화, 기관 없는 신체, 얼굴성, 추상기계, 배치, 매끈한 공간과 홈이 팬 공간, 공리계의 접합접속 등등) 들뢰즈&가타리는 ‘차이의 철학’, 혹은 ‘욕망의 미시정치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 생물학과 언어학과 음악학과 경제학과 정치학을 가로지르며 다양체가 의식과 무의식, 자연과 역사,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어떻게 뛰어 넘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에서 분열증 자체이다. 주기적으로 위기는 돌아오고 증식하고 소멸하며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환투기와 주식 투매의 미친 바람이 불고, 자본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순간 휘몰아쳤다가 자양분을 빨아먹고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자본의 유동적 흐름은 포식자처럼 취약한 외환시장과 주식 거래를 삼켜버린 뒤 소화할 수 없는 뼈들만 뱉어낸다. 전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라는 정글에 방목된 사자들은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운용되는 토끼들을 사냥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의 사자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두에 인용했듯이 ‘지옥에 가는 길을 숙지’하면 되는 것인가? 들뢰즈/가타리는 이렇게 말한다. “점유하고, 거주하며, 보존하는 영토에서 끊임없이 달아나라!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무리로 달아나라! 무리로 달아나야만 하나의 도주로가 아니라 천 개의 도주로를 만들 수 있다. 하나는 붙잡히지만 천 개는 붙잡히지 않는다. 경로를 따르지 말고 그것을 자주 이탈하라! 내가 어디로 움직일지 그들이 알 수 없게 하라! 정주민들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머리둘 곳 없는 방랑자 예수와 그와 함께한 세리와 죄인들의 모습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따라서 『천 개의 고원』은 화폐와 노동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기계’의 포획에서 도망가도록 부추긴다. 국가-기계는 수많은 금기의 거미줄을 만든다. 제도들과 정책, 법과 치안의 그물로 국민을 포획하고 국가라는 지층에 편입시킨다. 따라서 조세와 병역 의무를 지우는 국가의 다양한 포획 장치로부터, 자본주의의 기계들(이를테면 정부, 한국은행, 군대, 나아가 학교, 종교단체 등)로부터 도망가라. 그때 구원의 문이 열릴 것이다. 아마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한(마태 2:3)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말이다.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므로, 디스토피아는 ‘어두운 미래 또는 현실’이 된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취업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 해법이 보이지 않는 교육·부동산 문제 등을 배경으로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와 담론에서 디스토피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어려웠지만 앞날에 대해선 낙관적이었던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역동감 있는 문화 콘텐츠와 상반되는 문화적 흐름이었는데, 이는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에 더 급진적 디스토피아로 전락했다. 디스토피아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체제 디스토피아, 인간 디스토피아, 문명디스토피아’가 그것이다. 체제 디스토피아는 ‘개선이 거의 불가능한 억압적인 체제’와 관련된다. 국가와 거대자본은 물론이고, 실생활에서 고통을 느끼는 모든 분야가 그 대상이 된다. 인간 디스토피아는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로 인한 디스토피아이다. 미시적이나, 사회 발전과 문명의 주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문명 디스토피아는 현대 문명의 비관적인 전망과 연관되어 있다.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 새 전염병, 외계인의 습격 등이 단골 소재가 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개신교는 물론 대한민국은 지금 ‘체제 디스토피아’의 최전성기가 무너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과 이후 해경·청와대·경찰·검찰·정치권 등 각 체제가 보여준 모습은 ‘체제 디스토피아의 완결판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김기춘-황교안-우병우 라인은 그 마지막 보루이다. 또한 ‘인간 디스토피아’는 그 정점을 찍었다. 청문회에 등장한 기득권층 인사와 고위 관료 등의 일그러진 모습을 통해 더 이상의 사회 발전과 문명의 주체를 긍정 할 수 있는 인간 유토피아를 상실했다. 다만, ‘문명 디스토피아’를 통해 다중들이 조용히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과 시의 세상을 누보 레짐으로 열 것이다. 3. 누보 레짐: 음악과 시의 시대로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음악의 음들에 관해 고대 영지주의자들은 “음악의 음들은 저마다 우주, 혹은 천문학적 공간 속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어떤 것과 상응한다.”라고 말한다. 가령 레는 ‘레지나 아스트리스(별들의 여왕인 달)’, 미는 ‘믹스투스 오르비스(선과 악이 섞여 있는 장소인 지구)’, 파는 ‘파툼(운명)’, 솔은 ‘솔라리스(태앙)’, 라는 ‘락테우스 오르비스(은하수)’, 시는 ‘시데루에스 오르비스(별이 총총한 하늘)’, 도는 ‘도미누스(신)’. 따라서 ‘달-지구-운명-태양-은하수-하늘-신’의 단계로 상승하는 음계를 통해 영적 지식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달과 지구에 국한된 인간의 운명은 태양과 은하수, 하늘에 속한 신의 레짐으로 귀속될 때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 길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시 해설집 『홀림 떨림 울림』 (나남, 2013)에서 이영광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시는 먼저 읽는 이에게서 생각이란 걸 빼앗아 갔다가는, 천천히 되돌려주는 것 같다. 그 찌릿찌릿한 수용과정은 ‘홀림-떨림-울림’으로 진행된다.” 시도 그렇지만, 2017년은 타자의 아픔에 홀려 가슴이 떨리고, 몸 전체에 큰 울림으로 남아 울림이 홀림이 되어 더 큰 떨림이 되기를 바란다. 이영광 시인도 “지상의 영화를 찬양하는 종교가 없듯이 현세의 복락을 지지하는 시도 근본적으로는 없고, … 어떤 종교는 고통 그것도 허망이라고 가르치지만, 모든 시는 허망을 고통이라 느끼는 곳에서부터 말을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결국 타자의 아픔에 홀려, 자신을 그 고통 가운데 내어주었고, 그 숭고한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떨림을 주었고, 이제 시대를 넘어 큰 울림으로 변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홀림은 계이름 ‘레’로부터 시작하여 ‘도’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목하, 음악과 시의 시대가 이 앙시앵 레짐의 시대, 곧 적의 계보학과 꼰대들의 시대에 새 희망을 주는 것이다. ------------------------------------------------------------------------------------------------------------- (각주) 1)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 5가지에 관해 북키닷컴 개발자인 이준행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나이를 먼저 묻지 마라. 한국 사회에서 버젓이 나이를 묻는 것은 상대방과 위아래를 겨루자는 의미이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음을 상대에게 주지시키고,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음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둘째, 함부로 호구조사를 하거나 삶에 참견하지 마라. 차라리 좋아하는 음식이나 동물을 물어보라. 셋째, 자랑을 늘어놓지 마라. 당신의 인생 자랑은 ‘노잼’이다. 당신이 살아온 시절에 대한 자랑은 당신에게만 유효하다. 당신의 인맥 자랑은 당신에게 잘 보이라는 알량한 호소임을 상대방은 너무나도 잘 알아챈다. 어느 것으로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넷째, ‘딸 같아서 조언하는데’ 같은 수사는 붙이지 마라.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는 이야기도 먼저 꺼내지 마라. 당신이 걸어온 길이 매력적이라면 상대가 알아서 물어올 것이다. 다섯째,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 나이나 지위가 없어도 타인에게 대우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섯째, 스스로가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라. 나이로 서열을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에서 꼰대성이란 자신보다 젊어 보이는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쉽게 꺼내는 내 안의 괴물과도 같다. 그 괴물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꼰대 탈출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상대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괴물을 늘 경계하라. 그러면 당신은 꼰대가 아닌 어른에 가까워질 것이다.” 최 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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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16
  • [문화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유랑창작극단 디아코노스
    현실과 꿈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꿈을 가져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무대에서 보여주길 기도하는 이들, 바로 극단 <디아코노스>의 사람들이다. 현재 10명의 전임간사들과 다수의 인턴단원으로 구성된 극단은 1996년 창단이후 1000회가 넘는 뮤지컬, 연극, 교육극 등 수많은 공연을 해왔다. 타극단과 그들의 다른점은 무엇보다 ‘공연장소’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극단이라고 하면 시설이 갖춰진 공연장에 티켓을 들고 가야 만날 수 있지만, 디아코노스는 극장뿐 아니라 학교, 교회, 어린이집까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 무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연기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하는 간사들. 새벽에 공연장소로 이동해 장비를 옮기고, 음향과 조명으로 무대를 만들어 공연 한 뒤 철거 작업까지 마치면 1일 1회 공연도 바쁘다. 배우가 스탭이 되는 순간이다. 또한 그들은 제작자가 된다. 창작극을 만들기 위해 극작, 작곡, 안무까지 가내수공업처럼 간사들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행사를 도와주는 조명과 음향 렌탈, 일반인을 대상으로 8주간 기초연기와 공연을 올려주는 디코 드라마스쿨을 기획하는 등 24시간이 바쁘기만 하다. 쉽지 않은 길을 걷는 그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걸까? “디아코노스가 헬라어로 집사, 봉사자잖아요. 열심히 일해야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상업주의 대신 진실한 꿈과 행복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말이죠.” ‘Again 1907’ 해운대 백사장에서 복음으로의 뜨거운 회귀를 외치며(2007년), 부산크리스마스문화축제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빛으로 오심을 축하하고(2010년), 부산국제연극제 ‘GO! 아비뇽 OFF' 에서는 상처입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풀어주며(2013년), 국민행복캠페인 ‘문화 나를 춤추게 하라’에서는 대상을 수상해(2016년) 공연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극단 디아코노스. 극단 디아코노스의 힘찬 걸음을 2017년도 응원해본다. 사역문의:010-2840-4834(윤은대실장)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문지희 집사 010-4570-2803) 2월19일(주일) 오후2시 : 모례교회 2월26일(주일) 오후2시 : 통영교회 2.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2월16일(목)~19일(월) : 제주도 순회 공연 3 이창주 (찬양사역자 : 010-8516-2594) 2월20일(월) 오후7시 : YIM 개학부흥회 2월21일(화) 오후7시 : 호산나교회(부산극동방송 드림스테이션 공개방송) 4. 변용세(찬양사역자 : 010-9986-4098) 2월17일(금) 오후1시 : 세광병원 2월19일(주일) 오전11시, 오후2시 : 진해맑은교회 2월22일(수) : 부산 CMBC 2월26일(주일): 00 부대 5. Friends of God (연합찬양예배팀, 최정일목사 : 010-4814-3690) 2월16일(목) 오후8시 : 부산기장순복음교회 2월23일(목) 오후8시 : 기장제일교회 6. 우미나(찬양사역자 : 010-6608-6203) 2월18일(토) : 예수정교회 2월19일(주일) 오후2시 : 모레교회
    • 문화
    • 문화사역자
    2017-02-16
  • [기독교 교양 읽기 23] “교회건물은 관계와 소통이 이뤄지는 곳!”
    “교회건물의 우상화를 비판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인근 교회 교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메가처치의 문제점을 비판한 책이다. 구약 시대의 ‘성전’과 예수님 이후의 ‘예배당’은 신학적으로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는 예배당을 지을 때면 으레 ‘성전 봉헌’을 강조한다. 목회자들이 교회 건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교회성장론과 관련이 있다.교회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예배, 하나님 말씀과 복음의 증언으로서 증거, 성도들의 거룩한 교통으로서 친교, 세상을 향한 섬김의 실천으로서 봉사의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며, 이 세상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물리적 공간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문제점 또한 지적한다. 예배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이미 신명기에 기록되었다. 신명기는 희생 제사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언급한다. 예배 행위가 있지만 그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때 그 예배는 하나님이 더 이상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끝으로 서울 강남의 ‘사랑의교회’ 건축 예를 들면서 현실적인 법질서와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회당은 하나의 건축물이므로 현행 법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과 예배당》 || 공동저자인 김동춘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권연경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조석민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유정훈은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이다. 대장간, 2016. 7,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강대화 장로(‘건축사사무소 토탈’ 대표) ▲ ‘건축사사무소 토탈’ 대표인 강대화 장로를 특별손님으로 초대, 교회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인들은 생각지 못하는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었다. 왼쪽에서부터 김수성, 김현호, 강대화 장로, 김길구. # 대형교회도 필요하나 고급화가 문제김길구 : 최근 부산에도 대형교회당이 건축됨으로써 교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고, 이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책은 교회의 본질에 대해 신학적으로 언급하였으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실천적인 관점에서 교회건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신선한 시각으로 교회건축을 해온 건축사인 강대화 장로를 초대했습니다(박수).김현호 : 우리 사회의 현상 중 하나로 ‘과잉’ 아니면 ‘결핍’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교회도 과잉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붉은 색 십자가가 우리나라 도시의 밤을 온통 장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고 싶은 교회는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김수성 : 결국 한국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겠죠. 최근 대형교회에 대한 문제점이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습니다.강대화 : 저는 개인적으로 대형교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의 역할도 있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있다면, 사람들이 건물의 대형화로 인해 화려하고 사치스럽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대형화하면서 필연적이기도 하지만 첨단 설비, 최고의 마감으로 건축되게 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비가 소요되는 것이지요. 막대한 비용 확보는 자칫 물질이 우선시됨으로써 교회가 물질주의 또는 세속화로 흐르게 되고, 교회에서도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반(反)교회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김길구 : 제사장 중심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성전과, 회중이 함께하면서 말씀과 성만찬 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약 교회는 기능과 행위 주체의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공간적 의미의 성전이 공동체 중심의 교회당으로 바뀐 것이죠. 그런데 한국 교회는 교회건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강대화 : 건물 설계를 하다보면 ‘호텔’처럼 해달라는 요구를 종종 듣습니다. 사업장의 영업적 차원이기도 하고 최고의 서비스 수요를 공급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풍족해진 우리 사회의 소비 수요현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거도 없는 과한 마감 장식으로 건물을 화려하게만 치장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를 소비하는 현상을 드러냅니다.김수성 :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만인이 현금을 통해 귀족이 되는 세상, 귀족의 환상을 파는 것이 백화점이요, 호텔이다.”[강심호,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 48쪽] #영상시스템이 오히려 ‘빛’을 차단해김현호 : 독서캠프를 하면서 몇몇 교회당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당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도시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강대화 : 한정된 대지 안에서 도시 속의 교회가 자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택이나 상가, 술집, 다세대주택 같은 다가구주택 등이 인접해 있고, 주차장 같이 번잡한 도로에서 교회로 바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 등 주위환경에서 경건성을 기대하기란 무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건축은 타 건물건축보다 규제가 더욱 까다로워, 환경과 법적인 조건들을 만족하기 위한 최대공약수를 찾는 작업이기도 합니다.김길구 : 요즘 교회 건축이 ‘예배의 이벤트화’ 또는 ‘예배의 엔터테인먼트화’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닌가요?강대화 :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장소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여유 공간입니다. 그러데 비싼 지가로 인해 여유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다보니 고밀도로 건축을 하게 되고 기능에만 충실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유 없는 공간구조가 목회자와 교인들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예배의 이벤트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봅니다.김현호 : 교회란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당은 말씀이 아닌 ‘설교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을 담을 수 있는 공간,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합니다.강대화 : 교회를 새로 지을 때 대부분 외형이 눈에 띄길 원합니다. 높은 종탑으로 돋보이기도 하지만 주변가로에서는 위압적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은 교회건물의 다소곳한 표정, 환영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길에서 교회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부터 매개의 공간으로, 과정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실내에서의 가장 큰 문제로는 빔 프로젝터 스크린과 같은 영상시스템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배당에 빛이 들어올 개구부(창문)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즉, 예배공간이 폐쇄된 공간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성과도 연관됩니다. 기독교에서 빛은 진리를 의미하고, 은총의 통로라는 느낌을 주는 신비감, 체험감의 접촉점이기도 합니다. 영상시스템을 중시하다보니 오히려 이 빛을 모두 막아버렸습니다. 김수성 :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편리성은 선함과 전혀 관계가 없죠. 그런데도 현대사회는 너무 편리함을 추구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는데, 교회의 영성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김길구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도 130년이 넘었는데, 이제 교회 건축물도 우리 것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강대화 : 건축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고,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으로 인해 타의에 의해 근대를 맞이하였고 현대로 넘어왔습니다. 한국 전통건축은 독특한 공간배치와 함께 자연환경 속에 스며드는 뛰어난 건축술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것으로 용해하고 재해석하며 진화하여야 하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랜드스케이프 고려하는 건축하여야김현호 : 신앙의 유산 차원에서 교회건축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회를 건축함에 있어 종교개혁 정신이 투영돼,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공간,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서로의 신앙이 깊어질 수 있는 장소로서의 예배당이기를 바랍니다.김길구 : 교회는 예배의 요소가 잘 어우러지는 성스러운 공간이기도 해야 하는데, 마무리로 바람직한 교회건축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강대화 : 교회건물은 관계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공간, 즉 매개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 사치, 과시가 아니라 예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상징적이든 형태적이든 의미적이든 투명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접근성과 친밀성이고요, 그와 더불어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공공성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건축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건축분야에서 말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 개념도 적극 고려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김길구 : 오늘 강대화 장로님을 모신 덕분에 전문적인 교회 건축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오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김선주 목사의 《목사 사용설명서》(대장간, 2016)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한국교회 건축과 공공성》 / 곽호철 외 / 동연출판사 《교회건축과 예배 공간》 / 제임스 화이트 외 /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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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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