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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회 기독교문화대상 봉사부문 수상자 김종세 장로 인터뷰
    Q.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A. 그동안 큰 과오 없이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진감내라는 말처럼 막상 큰 상을 받고 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다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35년간의 긴 세월 동안 박봉과 한직에서만 근무한 못난 사람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저를 지지해주며 직장생활을 함께 해 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Q. 공직 35년간 사회봉사업무만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A. 제 나이 3세 때 광복과 함께 일본에서 아버님을 따라 선친의 고향인 경북 달성군 논공면 시골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습니다. 어렵게 살아오던 중 다섯 살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셔 큰 슬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몹시 힘들었던 것은 또래들과 어울리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과 가난 그리고 외로움이었습니다. 13세 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16세 때 제가 열병에 걸려 병원에서 수혈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직감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저와 같은 불우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한평생 봉사하며 살겠습니다”며 서원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2주 뒤 병이 완치되어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하나님께 한 이 약속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Q. 한 길만 걷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A.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졸업 후 1968년 6월 1일부로 3급 아동상담원 발령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상담 지도하는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한 사람 한 사람 상담하다 보니 눈물겨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어린 시절보다 불행한 아동,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저들의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했지만 많은 문제를 지닌 아동·청소년들과 여러 해 상담을 하다 보니 너무나 힘이 들고 지쳤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때마침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가 신설되면서 서주실 총장님께서 교수채용 제의를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도 교수채용 제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결국 사양하고 하나님께 서원한 약속을 지키기로 다짐했습니다. Q. 처음 전문아동상담원으로써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A. 가출부랑아동 전담 아동보호시설인 ‘재생원’을 중심으로 5년간 약 6만명의 아이들을 상담했습니다. 개별상담지도 및 조치를 하는 업무였습니다. 매일 30~50명의 아이들을 상담했는데, 5년간 지속하다보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가출 아동들은 거짓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상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이성에 지나치게 밝은 걸 보면서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 일을 하라고 저를 살려주신 것이죠? 그럼 가겠습니다”며 매일 새롭게 다짐했습니다. Q. 그간 어떤 직책을 거쳐오셨는지요? A. 35년간 아동복지사업소 교육계장과 아동청소년회관 청소년부장, 근로청소년회관장을 역임했습니다. 새로운 업무개발과 수혜 대상자를 넓혀가기 위해 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근로청소년회관장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사하구 다대동에 근로자임대 아파트를 건립해 미혼근로여성들의 주거 안정을 도왔습니다. Q. 홑트아동복지회 부산사무소 개설을 추진하신 것으로 압니다. A. 보호자로부터 버려진 아동을 기아, 길을 잃어 떨어지게 된 아동을 미아라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던 1968년 당시에는 기・미아 아동이 750~800명으로 고아가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과거에는 비일비재 했습니다. 당시 30대 청년이 저를 찾아와 연인과 동거 중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엄마가 도망을 갔고 보름된 아기가 집에 방치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급히 직원과 함께 집을 찾아가 보니 참혹한 상황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물과 울음에 찌든 아기를 안고 데려왔습니다. 아기가 입을 옷이며 먹을 음식이며 양육에 필요한 물건들이 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찾던 중 홀트아동복지회에 연락해 협의한 끝에 부산사무소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3세 미만 기・미아 전담 기관으로 보호자를 찾아주고 힘들 경우 국내외 입양을 도와주는 기관입니다. Q. 어린이집 4개소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영유아복지를 위해 또한 근로 중인 여성들을 위해 어린이집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도 생각되어 근로청소년회관 내 시립어린이집 1개소(정원 131명), 아동복지사업소 2개소(어린이집 180명, 지능개발실 40명), 동백아파트 복지동 내 국공립어린이집(정원 60명)을 설치했습니다. Q. 전국 최초 아동신고센터를 개설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1972년 전국 최초 가출아동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했고, 아동학대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했습니다. 아동복지사업소, 부산역, 부산진역에 개설해 운영했습니다. 서무계, 교육계, 상담지도계를 조직해 주도적인 일을 했습니다. 과거 육교나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구전, 도벽, 걸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이 아이들을 착취하는 넝마주의집단이 28곳 있었습니다. 경찰들과 함께 아이들을 꺼내오기 위해 집단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사복을 입은 경찰 두어 명과 함께 들어가 아이 한 명을 데려 나오는 게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데려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용돈을 주고 상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Q.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만났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습니까? A. 숱한 사연들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8번째 가출을 하고 저를 만난 명호(가명), 안동에서 부산진역으로 오게 된 선우(가명), 그리고 지금도 가끔 인사를 건네는 영희(가명)가 기억에 남습니다. 한번은 아동학대신고센터에 문현동에 부모 없이 3남매가 있다며 이웃집 아주머니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위해 찾아가보니 방 한칸은 주인이 사용 중이고, 다른 방 한칸에는 고2 여학생과 두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누나는 각혈을 해 급히 보건소로 데려가 입원을 시켰습니다. 폐병 3기로 생명까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돈을 털어 약을 샀습니다. 6개월간 약을 먹고 병이 고쳐졌고 영희가 학업과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취업한 후 떨어져 지내던 남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며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가끔 제게 안부를 전하며 감사인사를 합니다. Q. 앞으로의 바람이 있으시다면? A. 이번 기독교문화대상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만약 하나님께 서원하지 않았다면 결단코 힘든 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남은 여생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불우한 아동청소년들을 돌보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옛날처럼 많은 일들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지친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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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2-23
  • “마산재건교회에서 30년 목회는 참 행복했습니다”
    먼저 제1회 경남기독문화상(목회자부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시상식 몇일 전에 통보받았을 때 무척 놀랐고, 그리고 송구스러움이 많았습니다. 교회와 교단적으로 볼 때 작은 공동체를 섬겨 온 평범한 목회자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분에 넘치는 수상은 개인과 교회와 교단적으로 위로가 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여러모로 부족이 많은 목회자 가족임에도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품어주신 마산재건교회와 지역 교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남기독문화상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아름답게 헌신하고 기독교문화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분’들에게 주는 상으로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동안 지역교계에서 많은 연합운동을 주도해 오셨습니다. 활동해 오신 이력 등을 소개해 주십시오. - 10년 가까이 영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경험을 쌓아 오면서 받은 도전중의 하나는 ‘교회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주가 되신 하나님, 교회의 시야를 넓히며 섬겨나가자. 그리고 사역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격목회에 힘쓰자’, 그래서 마산재건교회에 부임했을 때 첫해에 내 놓은 교회표어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벧전 2:21), 제시한 비젼은 “교육, 빛과 소금, 선교”였습니다. 교회와 소속 교단을 위해 최선으로 섬겨 나오면서 지역의 교회연합사역에 꾸준히 동참하면서 초교파적으로 선교사, 선교단체, 기독교적 NGO단체들을 후원하며 동역해 나왔습니다. 그 열매로 점차 우리 마산재건교회는 교단에서 중심적인 교회로 성장하면서 지역에서도 좋은 교회로 인정받으면서 지도자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교단적으로 총회장, 총회신학원장을 엮임했고 지역에서는 마산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IVF경남지방회 이사, 한국라브리 이사, 하나의코리아 고문...등 섬기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 아내 역시도 상담의 은사가 있어서 창원극동방송에서 초창기때부터 지금까지 ‘소망의 기도’ 진행자로 쓰임 받고 있음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재건교회 목사님이 지역 연합운동을 주도해 오셨다는게 놀랍습니다. 그동안 교단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재건교회의 유별난 보수적 특성으로 인해 상당 기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가지 예로 타 교단 출신이여서 노회와 총회에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당회가 담임목사 방패막이 역할을 감당해 주셨고, 담임목사의 목회비젼에 적극 호응해 주심으로 점차 교단적으로나 지역교계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물론 10여년 가까운 세월을 요구받았지만 교단적으로 재건교회 목사로 인정해 주셨고, 지역에서는 연합사역에 힘써 나오면서 재건교회의 좋은 뿌리를 알리면서 위상을 높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특히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담임목사 가족을 가슴에 품어주고 신뢰하고 동역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6일, 원로목사 추대 감사예배에서 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마산재건교회에서 30년 목회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은퇴 후 활동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십시오. - 아직은 특별히 말씀드릴 활동이나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 30년 목회가 가치있고 보람을 갖기 위해서는 은퇴 이후 마산재건교회가 은혜가운데 더욱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은퇴를 앞두고 교회 앞에 부탁드린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목사님 중심으로 교회가 안정가운데 더욱 역동적으로 부흥케 하옵소서”, 그리고 아내와 저를 위해서는 이런 기도제목을 갖습니다. “오랜 세월을 주위의 시선들을 의식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감사와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끝으로 지역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오늘날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처지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염려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되는데, 특히 교회지도자들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우리 국민들 마음이 이처럼 찢겨지서는 안되는데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위기의식을 갖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교회가 살아있다면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마저 본질에서 벗어나고 타락한다면 그때는 끝장이요 희망은 사라지고 언제 하나님의 진노의 매가 임할는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대강절기를 보내고 보내면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눅2:14), 그런 은혜를 바라면서 그 누구보다 부디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한국교회가 부단히 갱신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램이요 기도 제목 일 것입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마산을 중심으로 지역의 복음화와 선한 일을 위해 함께 사역할 기회를 주신 지역교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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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2-18
  •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겠다”
    먼저 부산NCC 회장으로 연임되신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 지금 우리 사회는 중차대한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부산 NCC 회장에 연임이 된 것에 다시 한 번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질서가 세워지도록, 제가 가진 소임을 다해 부산 NCC를 세우고 부산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회기 부산 NCC 활동과 사업등을 평가해 주신다면 .....? -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김용균 추모 예식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12월 25일 성탄절날 부산지역기독교단체연합으로 고 김용균 추모 예식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 청년들이 죽고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여전히 교회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또한 작년에 이어 미 8부두 세균무기실험 진행 관련 기도회와 남구시민대책위에 참여하여 활동한 것이 있습니다. 방위비분담금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미국에 우리가 현금으로 주는 방위비가 우리를 헤칠 수도 있는 세균무기를 만드는 것에 활용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지역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으로 일본그리스도교 교회 한국 신학원인 호도스신학원에서 함께 연대하여 전야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 ‘3.1독립운동과 그 재판 결과에 No!를 외치면서 걸어온 한 일본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일본 메이지 법대 사사카와 노리카츠 교수를 모시고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당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생생한 법정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잘 아시겠지만, 제 9회 부산반핵영화제 조직위원회에도 참석하고 후원하였으며, 일본의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규탄 비상시국회의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in부산과도 연대하였으며, 11차 방위비분담 협상중단 촉구 시민사회 공동 대응에도 연대하며 활동하였습니다. 아쉬운 것은 올해에 박효섭 목사님과 유성일 목사님께서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두 분 다 우리 교계의 큰 인물이셨는데, 하나님께서 너무 일찍 데리고 가셨습니다. 금년 주제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하여라’ 라고 들었습니다. 주제에 맞는 어떤 활동계획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 하나님의 평화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꿈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자기희생과 섬김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소수자,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향한 시대와 사회적 폭력에 대해 주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소외된 이들의 이웃으로 소외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에 침묵하지 않고 함께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동행하겠습니다. 나아가 기후변화와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고통당하는 지구적 삶의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동행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지역, 세대 간의 갈등 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데요. 이제는 교회와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 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NCC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습니다. 비록 서로의 섬기는 위치가 다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진보적 색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보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일이 세상으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지역교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지난 해와 같이 한반도의 정의 평화 인권과 환경 통일운동 및 그리스도교 일치에 힘써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랑의 연대를 이루고 계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대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나간다면, 땅에 떨어진 교회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을 이루게 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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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2-09
  • 조의금을 선교헌금으로 낸 故 배경숙 권사 가족들
    ▲ 이송학 장로와 故 배경숙 권사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듯이 한 사람의 인생이 다녀간 자리에도 흔적이 남는다. 한 평생 살면서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배움에 대한 열정, 선교에 대한 헌신, 가족의 사랑을 남긴 이가 있다. 지난 11월 5일(화) 소천한 故 배경숙 권사(부산영락교회)이다. 가슴의 열정을 행동으로 故 배경숙 권사는 신앙의 개척자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늘 말씀을 읽고 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이 믿도록 기도했다. 이를 본 배 권사의 자녀들 역시 외가 식구들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배 권사의 남편 이송학 장로는 “신앙의 개척자에겐 의로운 영적인 부담이 있다. 가족과 친척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늘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자녀들까지도 이 일에 동참하게 교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수련회를 갔는데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을 교회 교사들이 듣고 신기하게 여긴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그리고 그 후 믿지 않는 친척과 처가의 형제자매 중 많은 분이 주님을 영접했다”고 덧붙였다. 이송학 장로는 부인 배 권사를 회상하며 “아내와 결혼하고 산지가 벌써 49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자식을 낳고 업을 이루면서 머리는 맞대고 의논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아내는 책을 좋아하고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했다. 그래서 어떤 해는 말씀을 10독하기도 했고 영어성경 전권을 써서 그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아들이 결혼할 때 혼인서약을 했다”고 말했다. 서로 아주 다른 성정을 가졌지만 각자의 인생을 세상 권이나 지성, 인기, 시류 등에 두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신의 전 존재, 즉 사고나 생각, 행동, 믿음을 두기 위해 노력했다. 故 배경숙 권사는 늘 돕는 배필로 살기를 원했다. 자녀들을 돕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그 사상들과 성경의 말씀에 근거해 자녀들을 양육했다. 그러면서 부정적이거나 희망적이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자식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 장로는 “특히 자녀들이 스스로를 부족하게 생각하거나 실망하는 것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일을 아주 잘했다. 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식이나 재물이나 재능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자녀들과 부모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 장로의 자녀들은 많은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려고 했으며, 손자들과 손녀들도 그러했다. 특히 배 권사와는 더욱 친밀했다. 이송학 장로와 배경숙 권사 슬하에는 1남 2녀가 있다. 아들은 현재 경희푸른한의원을 경영하고 있고 경희대 한의대에서 임상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큰딸은 보스턴 뉴잉글랜드 컨설바토리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해 뉴잉글랜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작은딸도 같은 학교를 나와 보스턴대학교에서 반주학 박사를 받고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배 권사는 대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이송학 장로 역시 교육에 관심이 많아 시의원 시절에도 교육 분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며느리와 사위들 역시 교육현장에 있는 이들이다. 며느리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큰사위는 보스턴 버클리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작은사위와 작은딸도 연세대와 성신여대, 백석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들 이진신 씨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늘 책과 함께하셨다. 물론 강인한 생활력으로 아버지를 뒷바라지하시고, 교회생활도 열심이셨다. 특히 선교에 열정이 많으셨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첫 장은 어머니의 서재이다. 방에는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서 “특히 철학과 신학, 이성과 종교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에는 펴서 읽을 만한 쉬운 책은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주 유익한 책들을 찾아 읽곤 하였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일들을 남겨 故 배경숙 권사는 대구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 계명대학교, 부산영남신학교, 동아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철학박사)를 전공했으며 대학에서 철학개론, 사상사 이해, 현대사회와 철학, 논리학, 과학과 종교, 과학론, 과학철학, 현대신학, 종교철학, 교양영어 등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세계종교의 이해>, <진리와 자유 그리고 은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남편과 함께 쓴 <그 나라로 가는 길에>가 있다. 평소 선교에 관심을 갖고 교회에서도 앞장서 섬긴 배 권사의 삶을 기리며 가족들은 조의금 3천만원을 선교헌금으로 냈다. 가족들의 뜻이 모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남편 이송학 장로를 비롯해 자녀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뜻 선교헌금을 내며, 배 권사의 삶을 기억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지만, 그로인해 세계 곳곳에 영적 생명을 얻는 이들이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는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가신 분이다. 가족들이 아름다운 일들을 남겨놓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면서 “간호사 출신으로 신학도 배우고 철학박사 학위를 배우며 늘 공부하는 분이었다. 남편 이송학 장로님과 함께 교회에서도 늘 배우고 연구하는 부부였다. 고인의 뜻을 잘 기려서 가족들이 큰 결심을 했다. 많은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계속해 선교에 관심을 갖고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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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천파워
    2019-12-04
  • “50년사 화보집 발간 계획 중”
    제50회 전국장로회 회장으로 추대되셨습니다.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 부족한 종에게 전국장로회연합회를 섬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추대해 주신 총대 장로님들 그리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때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금년 50회기에 이르기까지 회기마다 수고하신 선배님들에게 누가되지 않고, 고신교회의 책임있는 기관으로서의 장로회가 되도록 한 회기동안 최선을 다해 섬길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금년 전국장로회 주제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그렇게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금년 회기의 주제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 5:5)입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50회기 희년의 의미를 살려 장로님들 모두가 장립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새로운 50년을 준비하자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국장로회는 매년 1월 신년하례회, 4월 목사장로 기도회, 8월 장로부부수련회, 11월 총회를 갖고 있습니다. 이 사업 외에 장로님께서 특별히 계획하고 계신 사업이나 정책 등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 그동안 계속되어 온 사업은 그 의미와 성과를 분석하여 미비점들을 보완하여 계승하고자 합니다. 대신 매 사업마다 50회기의 의미를 살리거나 이번 회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순서가 있다면 병행하여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이번 회기는 다음세대 신앙계승을 위한 수직선교에 향후 장로회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현재 해외선교는 교단의 KPM을 중심으로 전국남여전도회와 교회와 각 기관들이 헌신적으로 훌륭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세대에 대한 신앙전수는 교회마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수직선교영역은 결혼을 통한 믿음의 가정 만들기부터 시작하여, 믿음의 자녀 많이 낳기, 가정예배 살리기, 주일학교활성화, 신앙교재개발, 교회SFC살리기, 전문지도자 양성 등 많은 분야가 있습니다. 아직은 저의 개인적인 구상입니다만, 앞으로 저희 장로회는 이를 위해서 총회교육원,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전국SFC 등과 협의하여 지원방법을 찾고, 전문지도자 양성을 위해 고신대와 신학대학원과 의견을 교환하여 지원방안들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전장연 정관에 의해 설립된 결혼정보센터와 고신장학회가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했으면 합니다. 이런 수직선교는 수평적이고 공간적인 선교인 해외선교와 달리 시간적인 선교라 이번 한 회기만 노력해서는 안되고 오랜기간 지속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전국장로회에서 내부토론 등 공감대가 필요하고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위한 노력의 시작이 되는 한 회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전국장로회가 50회를 맞이 했습니다. 희년과 관련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 희년은 자유, 회복, 쉼 등의 의미와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50년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의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의미로 50년사 화보집 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의 자료정리와 평가, 향후 방향설정 등 간략한 내용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회 일부에서 합동이나 통합 장로회가 실시하는 ‘지역순환제’ 목소리가 있습니다. 특정지역에서 3회 연속으로 회장에 선출되거나, 특정인이 4회 연속으로 수석부회장에 출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의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회장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 전국단위의 조직이라 최근의 현상은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규정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지역순환제’는 역동성을 저하시키는 면도 있고, 출마횟수 재한 등은 내부 논의가 필요합니다. 끝으로 교단 산하 장로님들께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우리 장로님들이 교회와 교단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머니 같은 교회가 오늘의 우리장로와 장로회를 길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는 정관에 명시된 대로 노회장로회와 지역별 장로회협의회와 유대를 공고히 하고 교단 및 전국교회의 발전과 복음사업에 기여함을 주요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관심과 참여일 것입니다. 노회장로회와 지역장로회를 통해 결집되는 힘이 전국장로회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도해 주시고, 힘과 격려,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11-21
  • 5년 동안 총 47회 전도대회 가진 부산복음화운동본부
    2014년 11월 5일 출범한 부산복음화운동본부(이사장 이재완 목사, 총본부장 윤종남 목사)가 어느듯 5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부산복음화운동본부는 총 47회에 걸쳐 전도대회를 펼쳤고, 목회자 세미나, 구국기도회, 치유대성회, 광복절기념예배 등 다양한 사업 등을 진행해 왔다. 지난 4일 순복음금정교회에서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이재완 이사장, 윤종남 총본부장, 정명운 사무총장, 김기태 실행위원 등을 만나 그동안의 소회감과 오는 27일 부산복음화운동본부 4주년 기념성회에 대해 물어보았다.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전도대회를 펼쳐왔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 이재완 목사 : 하나님께서 부산복음화운동본부를 사랑하고, 정말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귀한 분들을 붙여 주셨고, 좋은 장소와 전도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비가오거나 때로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전도열정이 식지 않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그동안 수고해주신 전도대원들게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교회가 아닌 정말 부산 복음화를 위해 수고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동안 전도대회를 몇 차례나 가졌고, 특별히 기억나는 전도대회가 있으십니까? - 윤종남 목사 : 지금까지 총 47회 전도대회를 가졌습니다. 부산 전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도대회를 가져왔습니다. 동쪽 끝에 있는 기장군과 서쪽 끝에 있는 강서구까지 전도대가 안간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교회를 위해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곳, 전도대가 전도를 해야 할 곳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습니다. 최근에 우리 복음화운동본부를 찾는 교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동래구기독교연합회측은 내년 한 해 동안 동래구쪽 교회에서 전도대회를 개최해 달라고 요청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한 해 동안 특정지역에만 할 수 없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내년 1-3월 동래구지역 교회에서 전도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 복음화운동본부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치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복음의 열정만으로 달려온 지금은 많은 교회들로부터 좋은 말씀과 신뢰감을 높여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같이 순수하게 복음의 열정만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를 당부드립니다. 이번에 5주년 기념성회를 성대하게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정명운 목사 : 이번 부산복음화운동본부 설립 5주년 기념성회는 11월 27일(수) 오전 10시30분 순복음금정교회 대성전에서 ‘복음을 위하여 주가 쓰신다’라는 주제로 개최됩니다. 총 1부와 2부로 진행되는데, 1부 예배 말씀으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이 예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본성전 및 전 세계 선교지에 위성으로 중계 됩니다. 지난 5년 동안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비전선포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2부 예배는 교회부흥세미나가 개최됩니다. 강사로는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님께서 ‘목회부흥비결 8가지 원칙’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아시다시피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성공적인 분립개척으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또 건전한 대형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공적인 개혁모델을 제시하는 정성진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다가오는 2020년을 계획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큰 기대가 됩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있다고 소개해 주십시오. - 김기태 목사 : 이사장님, 총본부장님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의 순수함을 지역교회가 알아주시는 것 같아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같이 꾸준하게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기쁨이 되고, 한국교회에 전도 열정이 되살아 날 수 있도록 우리 복음화운동본부가 한국교회 작은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역교회에서 많은 관심과 기도,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11-11
  • 교정, 교화활동 통해 ‘국무총리 상’ 수상한 강형식 목사
    10월 28일 교정의 날. 정부는 교정의 날을 맞아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제74주년 교정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강형식 목사(예인교회, (사)문화쉼터 대표)는 교정과 교화활동 통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2019년 교정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강 목사는 “때로 힘들어 멈추고 싶을 때도 있었고, 사역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담 안 형제들의 편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감동과 메세지가 힘이 되었습니다”며 “이 모든 것이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강 목사가 교정사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29년 전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부산교도소 교무국장이 전화가 왔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요시찰 인물 한명을 소개하면서 “매번 사고를 쳐서 골치가 아프다. 목사님이 상담 한번 해 달라”는 부탁을 전해왔다. 보통 요시찰 인물들은 사고를 자주 일으켜 6개월에 한 번씩 타 교도소로 이동시켜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강 목사가 상담한 재소자도 당시 교정시설 안에서 악명 높은 인물로 통했다. 그런데 상담을 받은 이 재소자가 더 이상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고, 이후 1년 8개월 동안 부산교도소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요시찰 재소자들이 부산교도소에 들어오면 강 목사에게 연락이 왔고, 상담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본격적으로 교정사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한다. 강 목사는 “그분들도 같은 인간입니다. 선입견 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분들도 마음을 열어준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며 재소자들과 가까워진 계기를 밝혔다. 본격적인 교정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초창기 교정사역 하는 기독교 단체만 13개 정도였는데, 대부분 절기에 먹을 것만 전달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강 목사는 “당시에 재소자들을 만나보면, 먹는 것 보다 성경공부를 원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산교도소에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지금까지 재소자 성경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고 소개했다. 오랜시간 재소자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듣고 많은 눈물도 흘렸고, 비록 담안에 있는 몸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강 목사는 “한번은 성경필사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재소자가 성경을 필사해서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성경을 필사해서 저에게 보내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재소자들의 성경필사 전시회를 꼭 한번 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몇 년 전부터 간절한 기도제목이 생겼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친해진 재소자들이 출소 후 강 목사를 찾아오면서 생긴 기도제목이다. “OECD 국가중 우리나라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다시 범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고 그들을 편견없이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드려야 하는데, 아직 이 부분이 미숙한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지금 강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 3층 생활관에는 갈 곳 없는 재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머물고 있다. 이런 재소자들을 위해 강 목사는 재활촌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 꼭 재활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들이 머물고, 일하면서 일정한 수입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교정, 교화 활동은 담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출소한 분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끝으로 강 목사는 “교회가 좀 더 재소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맞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들을 밀어내면 또 다른 범죄자로 만들 수 있고, 사랑으로 맞아준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구보다 충성된 일꾼으로 잘 살아 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고 전하며 사랑과 관심, 기도를 당부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장 1-3절)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11-11
  • 문학비평가로 왕성한 활동 인정받아 부산시 문화상 수상한 남송우 교수
    제62회 부산광역시 문화상 시상식이 지난 10월 28일(월) 오후 4시 부산예술회관에서 개최됐다. 부산시 문화상은 1957년부터 매년 부산의 문화예술 진흥과 향토문화 발전에 공이 큰 문화예술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날 문학 부문 수상자인 남송우 교수(부산중앙교회 장립집사)를 만났다. 지역에서 40년간 문학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수상소감을 묻자 남 교수는 “이 나이까지 활동할 수 있도록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년 이후에도 지역 문화를 위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아 감사하다. 사실 이 상의 의미는 제게 주시는 게 아니라 같이 활동했던 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주신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면서 “바쁜 활동으로 가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미안하고 그런 중에서도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남송우 교수(부경대학교 명예교수)는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교직했고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사)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사)부산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남송우 교수는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며 지난 1991년 국내 최초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을 창간했다. 시, 소설, 현대문학 등 문예지가 있으나 비평 전문지는 없던 당시 서울도 아닌 지역에서 발간되며 이목을 끌었다. 비평이 활성화되면 문학 전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동인들과 함께 창간한 것이다. 비평전문 계간 문예잡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창간 당시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서울에서도 힘든 비평 전문지가 부산지역에서 창간되었다는 점에 주목 받았다. 그러나 주목과 함께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출판이 취약한 지역이었지만 지평출판사, 세종출판사의 도움으로 출간을 이어왔다. 남 교수는 당시를 회고하며 “4년이 지나고 5, 6년이 지나면서 재정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출간하면서 한국 문학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부산을 중심으로 비평 담론을 새롭게 만들어간다는 평가로 폐간할 수 없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체적으로 ‘책읽는사람’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출판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봉생문화회에서 주최하는 봉생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하며 재정의 도움을 받았고, MBC문화대상에서도 수상하며 받은 상금 1천만원으로 출간을 이어오게 됐다. 그리고 요산김정한문학상과 KNN에서도 수상하며 출간을 이어왔다. 상금으로 출간을 이어왔지만 수상이 계속 되는 것도 아니고, 상업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었던 잡지였기에 알아보던 중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잡지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했고 <오늘의 문예비평>이 선정됐다. 남 교수는 18년간 편집인을 맡아왔고 20년이 넘어서면서 후배들이 전적으로 맡아 진행했고, 지금도 발간 중이다. 국내에선 가장 오래된 비평전문지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남송우 교수는 과거 부산지역 독서율을 설문조사한 적 있다. 조사 결과 초중등학생까지는 타지역과 비교해 평균 정도를 차지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타 지역보다 낮은 독서율을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의 독서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 영광도서와 함께 ㅈ난 1993년 3월부터 영광독서토론회를 개최했다. 작가와 비평가, 독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주로 비평가들이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참석한 시민들도 함께 질문하며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다. 때론 얼굴일 울그락불그락하며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시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황석영, 공지영, 신경숙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영광독서토론회에 자리했다. 남 교수는 “현상에 대해, 대상에 대해,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비평이다. 이런 비평 정신을 시민들이 삶에서 활성화시켜 시민의식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영광독서토론회는 일반 독자들이 생각하지 못했거나 작가가 놓친 부분을 잡아주며 문제를 짚어낼 수 있는 힘을 익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영광도서 건축 관계로 토론회가 일시 중지된 상태다. 이 외에도 국제신문과 오늘의문예비평팀이 협약해 국제문예광장을 개최해 지역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을 지원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이순신 평전을 펴냈다. 전기가 아닌 이순신 정신, 근원적 가치에 대해 그려낸 평전이다. 서울, 여수, 부산에 여해재단을 마련하고 재단 안에 학교를 개설했다. 청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순신아카데미를 열었고, 지난 2016년 1기를 시작으로 현재 7기까지 수료했다. 김 전 재판관의 권유로 부산지역을 남 교수가 맡아 진행 중이다. 남송우 교수는 과거 고려신학대학원이 송도에 있던 시절 신학대학원과 일반대학원을 동시에 다니며 공부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신학 공부는 포기하고 문학공부만 지속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학적 관심은 신학과 떨어져 있지 않다. 남 교수는 “선교 초창기처럼 말로 전하는 선교는 힘들다.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 되어 있기에 문화적 측면에서 선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학작품을 통해 시민들이 좋은 기독교 문학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지 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많이 없지만 기독교 문학 작품이 없는 건 아니라며 대표적으로 윤동주 시인을 꼽았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번연되어 국내에 소개된 김은국의 <순교자>, <소나기> 작가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엔도 슈사쿠의 <침묵> 등을 추천했다. 남 교수는 “문화적 토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지만 뛰어난 작가를 키워내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안타깝다. 다양한 형태의 선교전략을 고민하고, 그 일환으로 문화예술인을 많이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11-08
  • “나라가 잘되길 바라듯 한국교회가 잘되길”
    Q. 미국에서 오래 계셨기에 목사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가 하고 있는 주된 사역으로는 현재 디아스포라를 위한 GBS 글로벌복음방송에서 전담 강해설교 중에 있습니다. 저서로는 말씀의 틀 주해 강해 시리즈를 비롯해, 이종곤 강해 시리즈, 그루터기 주해 시리즈 등 주해 50여권, 강해 50여권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연구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Q. 이번 한국 방문 중 세미나를 개최하셨습니다. 그리고 회비, 강해설교자료 등을 무료로 제공하셨는데요. A. 친구인 박은수 목사님의 권유로 김해, 금정, 금곡 등에서 김해기독교총연합회, 부산복음화운동본부 및 합동 중부산노회 목회자들을 위한 강해설교 세미나를 열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평생 연구해 온 결과물들이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나이가 드니 그동안 연구해 온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의 거룩하신 생각과 경륜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풀어 전달하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하여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수많은 주석과 강해서적들을 넘겨가며 원고를 작성하고 강단에서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계획일까, 의도하신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과 자책을 할 때도 있습니다. 목사로서 당연하게 가지는 이 고민들을 공유하고, 함게 생각하며 한걸음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방송을 통해 강해설교 중인데, 방송선교사로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A. 방송은 다양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비신자들의 경우 세계관은 성경의 세계관과는 매우 다릅니다. 신자라도 서로 처한 환경이 아주 다릅니다. 출석하는 교회에 따라 교단이 다르고 그래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거주지역도 다르기에 문화도 다릅니다. 방송선교가 개교회 사역과 많이 다른 부분입니다. 지역교회는 비슷한 지역에 살고 서로가 공감하는 문화와 함께 배우는 교리 안에서 생활하지만 방송선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기에 예를 들어 구원에 대해 설명할 때는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및 복음주의의 이해를 함께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정보와 이해 및 시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팟캐스트 활동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A. 팟캐스트 팟빵(Podbbang)에 강의 파일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습니다. 제 방송은 변증론과 조직신학의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의 영적원리를 도출해 생활에 적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성경론으로부터 시작해 창세기 초기역사의 이해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데 현재 약290개의 강의가 올라가 있습니다. 1년전 이곳에 프로그램이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총 1만6천여 개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 2만4천여 개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면서, 상업적이든 혹은 사회적으로든 어떤 가능성이 있기에 프로그램이 생성되었다고 봅니다. 10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고 제가 속한 종교 분야에는 2,300여 개의 방송이 있습니다. 종교 부문 1위는 법륜스님, 2위는 신천지, 3위는 그날 업로드 되는 것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몰몬, 사주카페, 안식교, 천주교, 지방교회 등이 모두 상위권에서 발견됩니다. 각 방송이 청취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준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진리일 수는 없겠지요? 종교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실이 여기에서 증명됩니다.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한 합심된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Q. 외국에서 본 한국교회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A. 중학교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 46년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정권이 여러번 바뀌었고 그 정권의 방향에 따라 이익을 보기도 하고 해를 입기도 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외에 사는 교포들의 바람은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이 잘되길 바랍니다. 입양이든, 교포든, 고려인이든 우리 마음속에는 조국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입니다. 제 경우에는 조중동과 오마이뉴스, 한겨레를 같이 봅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것만을 계속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자유자본주의가 성경의 가르침에 가장 가깝다고 이해합니다.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일하게 한국교회 역시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Q.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둘러싼 논쟁이 시끄럽습니다. 목사님의 견해는? A.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목사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반복해서 금하는 동성애에 대해 이견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하면 동성애 질문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우리는 속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질문의 대답도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익집단의 입맛에 따라 세상이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2016년 브렉시트에서, 미국대선에서 보았습니다. 한국도 혼돈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왜 동성애가 지금 이 시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가를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입니다. 동성애를 비롯해 난민 및 열린 국경 이슈 등이 생기면, 즉 사회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반사이익을 얻는 집단은 누구일까요? 세상이 공유하는 정보 자체가 엉터리는 아닐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익집단에게만 주어지고, 나머지에게는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정치 경제 등 모든 부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동성애에만 반응하지 말고 왜 이 시점에서 이런 문제들이 부각되는가에 초점을 두고 방향을 지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혼돈이 있을 때 혼란을 부추기고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10-28
  • “30년간 개최한 장애인선교자선음악회, 하나님의 은혜다”
    미문선교회(대표 박서근 목사)가 지난 10월 22일(목) 오후 7시 KBS부산홀에서 제30회 장애인선교자선음악회를 개최했다. 18일 미문교회에서 박서근 목사를 만나 30회를 맞이한 장애인선교자선음악회에 대한 소감과 사역, 에피소드 등을 들었다. Q. 올해 장애인선교자선음악회가 30회를 맞이했습니다. 감회가 어떠신지요? A. 제1회 장애인선교자선음악회가 1990년 10월에 개최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졌음을 고백합니다. 음악회를 처음 열던 그 당시만 해도 ‘장애인선교’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고 그런 말을 하지 않던 때입니다. 교회에서는 ‘장애인구제’라는 말이 익숙하던 때죠. 장애인 구제라는 말은 장애인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궁핍한 삶의 현장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실제로 많은 장애인의 삶이 궁핍했습니다. 사회적 틀이 잡히지 않아 삶이 힘들었고, 교회에 출석하기도 힘든 때였습니다. 그래서 휠체어, 보장구 등이 없는 장애인들을 도와 그들이 교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이에 윤형주 장로님께서 동참해주셔서 함께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동안 음악회를 통한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요? A. 해가 거듭되면서 과연 장애인들에게 휠체어, 보장구를 주는게 전부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지체장애인들에게 의료적 서비스를 돕는다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의료적 재활이 필요한 이들을 여수애양재활병원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직업재활입니다. 지금은 고용법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장애인들이 직장에 취업하는 게 당시에는 힘들었습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 길가에 구두수선 가게를 만들어주고 싶어 모금을 해서 구두병원을 만들어주는 일도 했습니다. 동사무소와 구처의 협의가 필요한 일이라 쉽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의 직업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 후에는 집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을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면서, 집에 나오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을 위해 집에 찾아가 함께 교제하며 기도하고, 때론 모시고 나와 교회방문을 돕기도 했습니다. Q. 미문선교회에서 음악회만큼 오래된 사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A. 올해까지 25년째 진행해 온 장애인국토순례입니다. 1년 1회 7-8월 중 전국을 다니며 기독교유적지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의 사회적 적응을 돕는데 무엇이 좋을까?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갖고 즐기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지난해는 일본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간 나가사키를 방문했고, 올해는 충청 천안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유관순 생가, 유관순 열사가 다닌 매봉교회, 유관순기념관, 공주영명학교 등을 방문했습니다. 역사도 알아보고, 문화체험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Q. 30년간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감사한 분이 있다면? A.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도로, 후원으로 동역해주신 분들이 있기에 지속해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잊지못할 분들이 있다면 당연히 1회부터 30회가 될 때까지 저희와 동역해주신 윤형주 장로님과 이정순 권사님입니다. 음악회에 출연해 주시는 CCM가수들은 윤 장로님께서 모두 섭외해 주셨습니다. 한결같은 섬김으로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30년간 무대에 빠지지 않은 필그림선교합창단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단장이신 이정순 권사님은 음악회 뿐만이 아니라 저희와 함께 장애인 가정을 심방하며 사역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 권사님은 올해 9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두 분의 노고와 많은 출연진들, 또 늘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윤형주 장로님을 섭외하기 위해 서울 종로에 있던 사무실로 찾아 갔었습니다. 당시 윤 장로님은 40대로 집사였는데, 저희 사역의 취지를 설명하자 ‘네. 목사님을 한번 돕겠습니다’고 허락해주셨습니다. 이후 4회 음악회를 마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윤 장로님이 그러시더군요. ‘목사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봅니다. 사실 목사님이 처음 찾아오셔서 하자고 할 때 힘들게 찾아오신 목사님에게 마지못해 수락하며 3년 정도 하고 그만두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목사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가는데 까지 가보겠습니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그만두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계속 동참해 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윤 장로님의 둘째 사위인 전병곤 교수님이 장인의 뜻을 이어받아 음악회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전 교수님이 속한 중창단 CRUX가 올해도 출연해 주셨습니다. Q. 앞으로의 사역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십니까? A.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발전하고, 다양성에 대한 수용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의 속도에 비해 더딥니다. 교회 내에서는 장애인이 경계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그림자도 아니고 투명인간도 아닌 채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 세계나 교인들 세계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환경적 장애인을 만들지 말자’고 주장합니다. 환경을 통해 장애를 느끼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사소하지만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뷔페는 힘듭니다. 또 문 턱, 계단, 경사 등 5cm의 작은 턱도 장애를 느끼게 합니다. 제 견해로는 비단 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인 것을 느끼지 못하게 작은 것이라도 배려하는 모습이 교회에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애인 선교의 계속적 취지는 장애인 인식개선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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