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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 파도를 넘어 순항하도록 돕겠다”
    Q. 부산장신대 총동문회 회장으로 선출되신 소감 부탁드립니다. A. 너무 부족한 사람이 부산장신대 총동문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자문 해 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중책을 맡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섬기겠습니다.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Q. 힘든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는데, 학교에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학교역량 평가에서 최하의 평가를 받은 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의 시간을 통하여 이사와 교수, 동문들을 한마음으로 묶어 주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문들이 힘을 합쳐 좋은 학생들을 추천하여 적극적으로 보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하여 장학금을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학업에 전념 할 수 있도록 동문들의 힘을 모으는데 저의 역량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Q. 최근 이종삼 이사장님과 허원구 총장님을 위시하여 학교에 좋은 변화가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정말 어려울 때 준비 된 귀한 분들이 세워진 것 같아 위로를 받습니다. 두 분이 쌍두마차가 되어 힘껏 달려 갈 수 있도록 함께 섬기며 협력하고자 합니다. 동문들의 도움을 요청 할 때 몸을 아끼지 않고 힘써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Q. 학교를 바라보는 동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학교의 조직을 교회의 조직으로 비교해 보면 이사회가 당회라면 총장은 담임목사라 생각이 되어 집니다. 부산장신대라는 배가 거친 파도를 넘어 순항 할 수 있도록, 이사들이 총장 이하 교수와 교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수와 교직원들은 이사회를 믿고 존경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분열을 조장하는 그 어떤 세력도 서로가 용납지 않는 하나 된 이사회와 교수회, 교직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동문으로서 학교의 자랑은 무엇인지요? A. 학교의 규모로만 비교했을 땐 타 대학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을 배우는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배움에 열정을 가진 학생들로 학업 분위기가 우수합니다. 또한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들 역시 탁월하십니다. 그렇기에 ‘작지만 강한 대학’, ‘내실 있는 대학’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현 시대는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좋은 강의를 듣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TV, 핸드폰을 통해서 수많은 강의를 접할 수 있습니다.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 유수한 학자들의 강의를 접할 수 있죠. 이는 교회도 동일합니다. 성도들에게 설교가 부족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TV, 라디오, 온라인 등을 통해 매일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은 단순히 지식 습득에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 개인의 능력과 개성을 알고, 전인적 성장을 돕는 것은 ‘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장신대는 교수와 학생이 1대1로 만나서 함께 성장하는 대학입니다. 교수와 학생들, 학생과 학생들의 건강한 관계를 통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대학입니다. Q. 끝으로, 동문회의 향후 계획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전도서4:12절 “한 사람으로서는 당해 낼 수 없는 공격도 두 사람이면 능히 막아낼 수 있으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모든 동문들이 모교를 향한 애교심을 가질 수 있도록 흩어진 동문들의 마음을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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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06-21
  • “모교의 서포터가 될 수 있는 동문회가 되겠다”
    제12대 고신대학교 총동문회 회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 2019년 2월 졸업생까지 포함하여 현재 21,383 명의 고신대학교 학부 동문들이 세상에 배출되었습니다. 2만여 동문들을 대표하는 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이 뒤따릅니다. 22개 학과 동문들이 자긍심을 갖고 모교를 사랑하고, 모교의 서포터가 될 수 있는 동문회가 되도록 미력을 다해 섬겨볼 생각입니다. 총동문회가 대학 발전에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혹은 대학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신 사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 고신대 총동문회는 1996년에 결성되었으니 올해로 23년째 입니다. 고신대 전신인 고려신학교 시절부터 본다면 73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고신대 동문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입니다. 그 동안 총동문회에서는 대학이 재정적으로 힘들었을 때 동문들의 힘을 모아 발전기금을 전달하기도 하였고, 총동문회 장학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을 중심적인 사업으로 수행해 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향후, 고신대 22개 학과의 졸업생들이 모두 고신대동문들로서 한 가족임을 인식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고,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대동단결적 사업을 가져 볼 계획입니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한번 동문은 죽는 순간까지 동문인 셈이지요. 고신대 총동문회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문으로써 대학 자랑을 부탁드립니다. - 첫 번째로 고신대는 민족적, 애국적 신앙을 추구했던 한국교회 지도자가 세운 대학이라는 점을 들 수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고신대학을 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님과 주남선 목사님,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 등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큰 선생님들이시지요. 이런 분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뜻을 모아 세운 고신대학교를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고신대학교는 기독교세계관의 기초 위에서 모든 학문과 삶을 추구하고 또한 펼쳐나가고 있는 대학풍토와 문화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혼합주의와 정체불명의 사상과 신학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대학인 고신대학교의 정신으로써 매우 돋보이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현재 안민총장체제로 전환된 이후, 고신대학교의 분위기와 환경이 매우 미래지향적이고 다이나믹이 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대학환경은 전국적으로 우울하지만, 고신대학교의 환경은 매우 희망차고 적극적이라는 사실이지요. 총장과 교무위원들의 환상적인 결속력과 교수들의 단합된 모습은 놀라우리만큼 강력해졌습니다. 이러한 힘들이 시너지 효과로 발휘되어 고신대학교를 힘차게 세워나가는 것 같습니다. 대학 부총장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현재 대학 현황을 소개해 주십시오. - 현재 고신대학교는 5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에 22개학과, 6개 특수대학원, 20개의 연구소와 부속기관들을 포함하여 약 5,000 여명의 학생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디엄사이즈 기독교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과 1,000베드 규모 대학부속 종합병원이 있는 대학입니다. 고신대학교는 신학, 의료, 보건, 복지 분야로 특성화되어 있는 강소대학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어 3년간 약 90억의 국고지원을 받는 대학이 되었지요. 끝으로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고신대학교는 이제 이 시대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21세기형 글로벌 기독교대학으로 재정비하고 웅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놀라울 정도로 매일 매일 달라지고 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힘차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본래 대학은 동문들이 자신들의 출신모교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애정을 갖는가에 따라 명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동문 여러분, 시간이 날 때 한번 씩 모교를 방문해 주시고, 동문회가 소식을 전해드릴 때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동문회장도 최선을 다해 동문 여러분들을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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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06-18
  • (인터뷰)부산기독교유적지 소개 영상 만든 탁지일 교수
    Q : 먼저 부산기독교 유적지 소개 영상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부산지역에는 기독교 유적지의 보존이 열악합니다. 그 이유는 ‘역사의식의 결여’라기보다는 ‘한국전쟁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국 각지로부터 일시에 몰려온 피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산의 지형도 바뀌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독교 유적지의 보존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현재 부산지역에는 동일한 역사적 ‘공간’은 남아있지만 그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복음전도자들의 역사적 흔적과 증언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동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 동영상을 보며 부산지역의 기독교 유적지를 걷는다면, 소중한 공감과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년 전에 한국연구재단에서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 개발 및 활용방안 연구”라는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그 후속 작업으로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한 달에 두 번 정도 국내외에서 부산지역을 찾는 분들이 신청을 받아 탐방 안내를 했는데, 그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동영상 제작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 동영상은 제가 소장으로 있는 부산장신대학교 부설 부산경남교회사연구소의 지원과 신대원 제자인 김한별 전도사의 도움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Q : ‘부산’은 한국교회에 있어서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 먼저 부산은 조선 복음화의 첫 기착지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 온 초기 선교사들이 그 첫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부산이라는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알렌과 아펜젤러의 일기를 비롯한 다수의 기록들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유입 경로나 그 우선순위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진실을 기록해, 복음화율이 열악한 이곳 불교의 땅에서 살아가는 다음세대 기독교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입니다. 또한 부산은 복음의 피난처입니다. 내년은 한국전쟁 70주년입니다. 전국 각지의 기독교인들이 부산으로 피난 내려오면서, 부산은 한시적인 한국기독교의 중심이 됩니다. 이 시기에 많은 피난교회들이 도처에 설립되고, 부산지역 기독교는 성장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한국교회사적으로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아픔 속에서 이루어진 복음의 전국적 확산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로마제국 복음화를 위한 흩어지는 선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면, 한국전쟁은 복음의 전국적 확산을 가능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부산이 있습니다. Q : 영상에 나오는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들을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 순례’ 동영상에는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이 첫 발을 내딛은 기착지로부터 이곳 부산에서 순교한 선교사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일제강점기 부산지역 3.1운동의 시발점인 부산진일신여학교와 한국전쟁 당시 산모와 영아들을 위해 설립된 일신기독병원의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부산항 역사를 볼 수 있는 부산본부세관박물관, 그리고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에 관한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지금은 부산의 평범한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심 속 장소들이지만, 교회사 이야기들을 통해 바라보는 기독교 유적지들은 새로운 의미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이 동영상 내용을 참조하여 교회 각 기관 및 가족 단위별 탐방이 가능합니다. 지난 6월 14일(금)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부설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 회원들과 함께,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각자 시청한 후, 제가 직접 동영상의 장소들을 안내를 하며 탐방을 했습니다. Q : 혹시 경남지역 기독교 유적지 영상이나 이단관련 영상 제작은 계획이 있으십니까? A : 물론입니다. 올해는 특히 호주선교가 시작된 지 1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부산경남지역은 호주선교부가 선교를 담당했던 지역일 뿐만 아니라, 손양원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 등의 신실한 신앙인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호주선교와 관련된 교회 및 유적지들에 대한 동영상 스토리라인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여건이 허락 되는대로 제작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부산지역에 비해 마산, 통영, 진주, 거창 등 접근성이 쉽지 않은 넓은 지역에 기독교 유적지들이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고민입니다. 동영상의 제한된 분량을 고려할 때,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면서 현재적 의미가 있는 대상을 선별하여 촬영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좋은 제안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 현재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으로 있는데, 현재종교가 부산 토크 콘서트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 등을 알고 싶습니다. A : 선친 탁명환 소장의 25주기를 맞아 지난 5월 25일(토) 서울 정동제일교회 아펜젤러홀에서 <현대종교 이단 바로 알기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서울지역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관심 있는 이단피해자, 일반목회자, 대학교목, 평신도, 청년대학생 등이 참여했습니다. “최근 이단 트렌드 읽기”(탁지일 교수), “캠퍼스 이단 바로 알기”(탁지원 소장), “이단 문제 관련 실정법 이해하기”(김혜진 변호사)의 주제 강의를 듣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만간 부산지역에서 두 번째 <현대종교 이단 바로 알기 토크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정보전달식의 강연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통한 체계적인 분석과 실제적인 대안마련을 모색하는 소통과 공감의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Q : 지난 2월 고 탁명환 소장 25주기 추모예식에서 디지털 자료집을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요? A : 선친을 위해서 제가 할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중 두 가지를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첫째로, 2009년 선친 탁명환 소장이 30여 년간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700여 쪽에 이르는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를 출간했고, 둘째로, 지난 2019년 2월에는 탁 소장의 저서 23권과 논문 90편 등을 PDF로 제작한 「이단연구 저서논문 자료집」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이를 ‘한국교회사학회’ 학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고, 이에 대해 학회는 저희 선친에게 감사패를 증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 과제는 선친이 발로 뛰며 직접 촬영하고 녹음한 오디오비주얼자료들을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전의 두 과제들에 비해서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얼마 전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에서 “한국 기독교 신흥종교운동 오디오비주얼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탁명환의 연구 자료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과제가 선정되어 향후 3년(2019~2021)간 연구비 지원을 받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모든 언론, 정부기관, 연구자, 목회자, 평신도들에게 대가와 제한 없이 제공할 예정입니다. Q : 끝으로 부산기독교 유적지 소개 영상과 관련해서 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동영상을 교회와 모임의 용도에 따라 널리 활용해주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비록 제한된 예산과 제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완성도면에서는 미숙한 점이 많지만, 이 작업이 부산지역의 기독교 역사를 바로세우고, 다음세대들의 신앙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함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는 ‘역사성’과 함께 도심에 밀집되어 있어서 ‘접근성’과 주변 문화관광자원들과의 ‘연계성’이 뛰어납니다. 다른 지역의 교계에도 소개해주시고, 부산을 찾는 가족친지들이 계시다면 함께 부산 도심의 유적지 탐방을 계획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행사 시기와 연계해 진행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학교와 청년대학생들을 비롯한 교회와 기독교기관에서 이 동영상을 활용해서 각자의 특성에 맞는 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걸으며 오감으로 체험하는’ 기독교 유적지 순례는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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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06-13
  • 설립 54주년 맞은 동서학원 박동순 이사장
    1. 먼저 동서학원 설립 54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지난 54년이었습니다.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학교를 세워야겠다는 꿈과 믿음 뿐, 비빌 언덕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보다 훨씬 더 크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19명으로 시작한 학교가 지금은 2만명이 넘는 학교로 성장하였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씀을 동서학원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따뜻하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면서 새로운 50년을 하나님께서 이 학원을 통해 이루시고자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2. 동서학원 내 동서대학교와 경남정보대학교, 부산디지털대학교가 있습니다. 이들 학교 자랑 부탁드립니다. -경남정보대학교는 1965년에 세워진 전문대학으로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막 산업화 시대로 들어설 무렵, 절실히 필요했던 중견기술자를 배출하여, 조국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경부고속도로, 국토개발 건설현장에, 또한 수출입국의 기초가 되었던 전자산업 현장의 중심에, 우리대학 졸업생들이 있었습니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역할을 감당한 것이지요. 이제는 4차산업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최첨단 교육과정을 통해 ‘미래산업시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동서대학교는 1992년에 설립된 젊은 대학이지만, 디자인, 영화영상, 정보통신 (IT), 디지털콘텐츠 등의 특성화 분야에서는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명실상부한 국제화 된 대학으로서 전 세계 64개국에서 1,200명의 외국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에 현지 캠퍼스를 설치 운영중에 있으며, 매년 1,000명의 재학생이 해외캠퍼스에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래형 대학’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국제화된 대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부산디지털대학교는 2002년에 출범한 지금 이 시대에 꼭 맞는 대학입니다. 우수한 강의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어디서나 들을 수 있지요. 100세 시대, 빠르게 변해가는 직업의 변화에 발맞추어, 한발 앞서 필요한 재교육과 평생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3. 동서학원을 떠올리면 부군이신 고 장성만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두 분이 불모지 땅에 어떻게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196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선진국 미국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당시 전쟁의 상흔으로 허덕이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귀국하면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우며 내건 모토가 “머리로 배우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일하는 교육”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 정신을 가진 실용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오직 믿음만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지 벌써 54년이 되었습니다. 4. 50년 넘게 학원을 이끌어 오면서 많은 보람과 기쁨, 그리고 고통과 슬픔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뻤던 일, 그리고 아쉬웠던 점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지난 반세기 동안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셨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것을 직접 체험했으니까요. 학교를 경영하다보면 대소간 많은 일이 생기고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련을 통해서 새로운 약속을 하시는거지요. 아쉬웠던 일도 많지만, 이는 결국 인간적인 욕심이 낳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적 욕심에 몰두하면 좌절에 빠질때가 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꼭 그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5. 고 장성만 목사님은 부산교계에 선한 영향력과 많은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아내로서 장 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분은 참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손도 언제나 따뜻했고 마음이 푸근했지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어요. 밥상 위에 김치찌개라도 훌훌 소리 내며 맛있게 먹는 참으로 소탈한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밖의 일에 대해서는 저돌적 추진력이 있었지요. 그 추진력은 깊은 사고력이 뒷받침했습니다. 부지런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본 적이 많습니다. 남편이지만 존경할 만한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6. 마지막으로 질문입니다. 동서학원이 미래 어떤 학원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소원하십니까? -학원복음화로 그리스도 정신을 뿌리 깊게 내리게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4차산업시대 인공지능 AI가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은 다 할수 있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AI시대를 이끌어갈 사람은 기술과 윤리성을 갖춘 사람이라야 합니다. 매주 열리는 채플과 신앙강좌 시간에 힘차게 울려퍼지는 찬송가를 들으며 기독교적인 윤리관, 세계관, 가치관을 채플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기도하면서 4계절이 뚜렷하게 조경된 아름다운 캠퍼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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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05-24
  • 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 작가 이경숙 원장
    따뜻한 봄이 되면 들판에 핀 예쁜 꽃을 따다가, 선선한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을 떼다가 책 사이에 끼웠다. 책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 마르고 나면 코팅을 하거나 편지지에 붙이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봄을, 가을을 간직했다. 이처럼 꽃과 잎, 줄기 등을 채집해 누르고 건조시킨 후 구성한 그림을 압화(押花)라고 한다. 압화라고 말하면 생소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만들었거나 보았을 것이다. 인공적인 그림과 달리 자연 본래가 가진 아름다움 때문에 지금도 압화는 널리 이용되고 있다. 간단한 카드, 편지지부터 액자, 전등, 액세서리, 손톱 등 다양한 곳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최근 압화 분야에서 잇따른 입상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이가 있어 만났다. 하수꽃예술원을 운영 중인 이경숙 집사(수영로교회)다. 성전 꽃꽂이를 시작으로 이경숙 원장은 어릴 적부터 오빠를 따라 주일학교를 다니며 경주 양남교회에 출석했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좋았고, 길가에 수줍게 핀 꽃이 좋았다. 여느 소녀들처럼 꽃을 좋아하던 그녀는 들에 핀 코스모스를 보고 한 아름 모아다 교회 강대상에 꽂아 두었다. 이를 본 담임목사는 꽃이 예쁘다고 칭찬했고, 잘했다고 격려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18세였던 그녀에게 무조건적인 칭찬과 지지였지만 그땐 칭찬으로 기뻤고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부흥회를 참석하던 중 교회 강대상을 보며 꽃꽂이를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예쁘게 성전을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렇게 꽃꽂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전 꽃꽂이를 시작으로 직접 꽃꽂이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꽃꽂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계속 이 일이 하고 싶어 28세가 되어서는 꽃꽂이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경숙 원장은 크고 화려하게 핀 아름다운 꽃도 좋았지만 야생화를 더 좋아했다. 산에, 들에 모진 환경에도 꿋꿋이 피어 있는 야생화를 좋아했고, 특히 냉이꽃과 코스모스를 좋아했다. 야생화로 무언가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지인이 압화를 소개했다. 압화에 대해 알게 되면서 식물로 그림을 그린다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크리스천인 그녀는 산에 핀 꽃 한 송이, 들에 핀 꽃 한 송이가 스쳐지지 않았다. 작고 가녀린 꽃 하나도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처럼 자연을 대할 때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컸다. 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했고, 성경말씀을 보면서 받은 영감이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술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이 원장의 재능은 여실히 발휘됐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대한민국미술대전 기타공예부문 특선, 올해 3월 제18회 대한민국압화대전에서는 분야별 대상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전남 구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압화대전은 외국에서도 참여할 만큼 손꼽히는 곳이다. 여기서 이 원장의 작품 2점이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힘없는 들풀의 힘 압화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재료를 준비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꽃을 채취한다. 귀한 꽃이 핀 곳은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꽃이 필 때 다시 찾아가 채취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은 꽃을 손질하여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종이에 한 송이씩 올려 모양을 잡고 며칠 후 다시 확인하며 약 일주일간 건조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리고서야 준비된 꽃을 핀셋으로 옮기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물감을 쓰지 않고 식물 자체를 재료로 쓰는 것이 압화의 매력이다. 이경숙 원장은 “꽃을 놓아 작품을 만들다 보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한땀 한땀 놓다보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만드셨구나 묵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경숙 원장은 6년간 학교에서 방과후교육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집중력과 정서발달을 도왔다. 지역 중학교에서 아트플라워 수업을 하며 꽃꽂이, 수경재배, 압화 등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서먹해하던 학생들이 이내 관심을 가지며 꽃을 가져와 이것으로도 만들 수 있냐며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 원장은 “아이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제 오해였다. 급변하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했다”고 말했다. 학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수업을 하고 올해는 중단했으나 지금도 가끔 공방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다. 이 원장은 “힘없는 들풀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경숙 원장에게 압화를 배우는 수강생은 압화의 재미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그저 지나치던 길이었는데 압화를 배우고 나니 길가의 꽃도 다시한번 보게 된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에게는 집중력 향상과 정서발달을 돕고, 성인들에게는 지난 추억을 떠올려 옛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이경숙 원장을 만나 작품소개 및 수상소감, 압화에 대해 들었다. Q.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이어 대한민국압화대전에서도 수상했습니다.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성전꽃꽂이를 시작하며 제 인생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지난해 10월, 올해 3월 잇따른 경사에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특히 남편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시간이 할애될 수밖에 없기에 이를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Q. 작품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번 대한민국압화대전에서 분야별 대상을 받은 작품은 <자연의 노래>입니다. 창문에 총 10개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창문이 닫혔을 때는 가을 들녘에 바람이 나부끼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바람에 식물들이 날리는 쓸쓸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 연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열면 가운데는 같은 곳의 풍경을 봄, 가을, 겨울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한 공간이지만 하나의 장면을 봄과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된 느낌을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풍경만 하기엔 단조로울 것 같아 항아리로 시크라멘과 크리스마스의 우아함과 정물 같은 느낌을 담았습니다. 풍요로움과 우아함을 정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이 외 국전에서 수상한 <봄날의 하모니>는 깊은 산속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갖가지 식물들이 어우러져 찬양한다는 의미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압화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가을로의 초대>는 산 속 가을의 모습을 담아 표현해 보았습니다. Q.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시는지? A. 지나다니며 본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마음에 담아 기억해 두기도 합니다. 때론 예배를 드리며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압화가 알려지지 않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를 알려 더 많은 분들이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무심결에 밟고 지난 수 있는 꽃이지만 이를 통해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나타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이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작품 <가을로의 초대> ▲ 작품 <봄날의 하모니> ▲ 작품 <자연의 노래>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05-23
  • “크리스천이기에 달라야한다”는 이창훈 교수
    직전 부산대학교병원 병원장으로 섬기면서 매일 기도로 준비 부산대학교병원 제26대 병원장으로 지난 2016년 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3년간의 임기를 마친 이창훈 교수(부산대학교병원)를 만났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원장직을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 부족한 제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매일 아침 기도하며 출근했다. 크리스천이기에 달라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창훈 교수는 1983년 부산대 의과대학 분과 1학년이 되었을 무렵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집 근처 친구들이 전도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친척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근에 살았는데, 믿음이 깊은 할머니를 따라 할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따라가게 되었다. 아내의 권유로 교회를 가지만 믿음이 없던 할아버지는 혼자 가기 뻘쭘했는지 이 교수 집에 찾아갔고,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됐다. 당시 믿음은 없었지만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종종 교회로 발걸음 했다. 그러던 중 이 교수의 아버지가 별세했다. 대학생으로 젊은 나이에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할지 앞이 막막했다. 그 때 출석하던 부산 평광교회 성도들이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장례절차도 모르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장례 치를 형편도 아니었지만, 교회 성도들이 발벗고 나서 제 일처럼 도와줬다. “목사님께서는 염하는 것까지 도와주셨다”면서 “그렇게 교회에 감사한 마음으로 출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믿음 없이 신앙생활 하기란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에게는 공부에 대해 열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바쁜 대학생활을 보내던 중 어느날 친구들과 만남을 갖고 있는데 기침을 했더니 피가 나왔다. 이후 결핵인 것을 알았지만 객혈한 당시에는 폐병인 줄 알았다. 친구가 아는 병원을 소개해줘 결핵치료를 받게 되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용돈을 모아 고기 한 근을 사서 찾아갔더니 믿음이 좋았던 병원장이 고기는 아픈 사람이 먹고 힘내라면서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는 부산산정현교회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당시 서울에서 한달에 한번 함석헌 선생이 부산산정현교회에 와서 강연을 했는데 여기에 참석해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권유에 응했다. 부산산정현교회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듣고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새로운 깊이를 경험했다. 그렇게 교회생활, 청년들과의 유대관계, 말씀연구에 대한 관심 등이 자라게 되었다. 이창훈 교수는 “인생을 살면서 유혹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믿음의 길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부족한 제게 믿음을 주시고 진리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평광교회를 출석하다 지난 2002년 이사하면서 부산중앙교회로 옮기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장로 임직을 받았다. 이 교수를 만나 그의 신앙 이야기와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기게 된 소감을 들었다. Q. 2월 로힝야족 난민에게 의료선교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A. 지난 2월 설 연휴에 맞춰 로힝야족 난민에게 선교사역을 하고 왔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인 최현범 목사님과 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인 이병수 교수님, 그리고 지구촌구호연대 배태진 목사님께서 만남을 가지면서 로힝야족 난민에게 의료선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최현범 목사님께서 제게 의료선교를 권유하셨고, 고민하던 중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산대학교병원 병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였기에 바빠서 거절했다. 설연휴는 임기가 마치기 직전이라 힘들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장로직분을 허락 받았기에 섬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장로임직을 받았던 다른 의사 장로님과 함께 뜻을 모아 교회 선교팀을 꾸려 로힝야족을 다녀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설 연휴이고, 4일 중 이동하느라 이틀을 쓰기에 실제 사역 기간은 이틀 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경비는 많이 드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하셨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시고 움직여 은혜를 경험하게 했다. Q. 가서 어떤 사역을 했는가? A. 크게 의료사역, 어린이사역, 방역사역을 했다. 의료사역으로 내과질환, 외과질환, 당뇨검사, 소변검사, 치과 치료 등 이틀간 환자 800명을 진료했다. 또 고아들이 많기에 고아원 해피홈사역을 했다. 청년들이 어린이들에게 놀이문화를 가르쳐주면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밀집되어 살고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질병 전염성이 높았다. 그래서 소독기를 준비해 방역사역을 실시했다. 로힝야족 난민은 공식집계로 110만명, 실제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짐작한다. 실제 가까이서 보니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여성질환을 치료해 줄 의료진이 필요했다. 우리는 남자 의사들이라 이슬람 여성들의 진료를 보기 힘들었다. 고작 피부치료를 도와주는 정도였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Q.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이 되었다고? A. 지난 4월 부산시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지난 2013년 부산성소병원 박희두 장로님을 비롯해 몇몇 의사들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부산대학교병원장 임기가 끝나니 박희두 장로님께서 제게 회장직을 물려주셔서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동안 활동이 많이 부족했다. 사실 크리스천 의사들은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의사로서 병원 업무가 많지만 그 외에도 교회나 소속된 선교단체 등을 통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지역으로 묶어 단체를 만든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조금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뜻이 모여서인지 김성록 교수님께서 곧 부산에 찾아와 부산시기독의사회와 만남을 갖고 조언을 주기로 했다. 김성록 교수님은 부산대 출신으로 서울 성모병원에서 퇴직하시고 서울기독의사회 회장으로 섬긴 경력이 있다. 선배로서 부산시기독의사회가 활성화 되길 바라며 도움을 주고자 하셨다. 앞으로도 해외 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의료선교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부산시기독의사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임원들과 함께 좋은 사역들을 기획하겠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05-13
  • “학교를 새롭게 세우는데 뜻을 모으겠습니다”
    Q. 이사장에 취임한 소감은 어떠신지요? A.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가 지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학교 66년 역사 중 최고 위기의 때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어려운 때 이사장직을 맡게 되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모교의 이사장이 되는 것은 제게 큰 영광입니다. 그러나 영광과 함께 걱정이 더 앞서는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허락하셨음을 믿으며 학교 발전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살아오면서 겪은 제 경험을 통해 학교를 섬기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학교가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고, 학교의 경쟁력을 높여서 좋은 학교가 되기 위한 장기발전계획을 세우겠습니다. Q. 이사회에서 6개월간 공석이던 총장직에 허원구 목사님을 선임했습니다. 총장으로 활동한지 2개월만에 좋은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A. 훌륭한 허원구 목사님께서 부산장신대학교 제6대 총장으로 섬겨주셔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허 총장님은 경영 능력이 많고, 목회 경험도 많기에 이사회에서 뜻을 모았습니다. 선교사로, 담임목사로 사역하신 노하우를 가지고 계시기에 학교를 잘 이끌어 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3월부터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벌써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학교가 다시 생기를 되찾고 지역 교회에서도 관심을 가져 주셔서 내일이 기대됩니다. 이사회 역시 고군분투하는 총장님을 도와 학교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Q. 이사장으로서 어떻게 활동하실 계획입니까? A. 제가 현재 갈릴리교회 담임목사, 사회복지법인 갈릴리사랑의집 이사장, 의료법인 성념의료재단(맑은샘종합병원) 이사장 등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역을 하면서 제가 경험한 것은 이사장이 일일이 시설에 찾아가서 지시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설 원장에게 맡기고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동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부산장신대 역시 총장님께 학교 경영을 맡기고, 총장님이 학교 재정적 지원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의논하면 이사장은 이사회와 더불어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Q. 학교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제 생각에는 내년에 교육부 재평가를 받아서 학교가 다시 회복되는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여깁니다. 올해 교육부의 평가에서 탈락하며 학교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렇기에 내년에는 정부 지원학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내년에 회복이 안 되면 학교가 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교육부의 방향은 점차 작은 대학들을 정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4만명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 소견으로는 신학교는 다르다고 봅니다. 교회 집사님, 장로님들께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사명을 발견하고 신학교를 입학하는 경우가 있기에 일반대학과 입시 학생 대상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희망을 갖고 내년 교육부 평가에서는 반드시 회복되도록 힘을 쏟겠습니다. Q. 부산장신대학교가 존립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우리 학교는 부울경지역 7개 노회와 824개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총회에서 권역별로 학교를 세워 그곳에서 목회자를 배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산, 경남, 울산지역에 목회자들을 공급해야 하는 본교가 무너지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지역 교회 역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공급이 어렵게 되면 교회에도 위기가 옵니다. 훌륭한 목회자를 양성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본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역 교회들이 학교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좋은 학교가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Q. 학교 구성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A. 학교가 이렇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견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교수들 중 간혹 방관하거나 손을 놓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오늘 이 시점에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총장님을 중심으로 교수, 직원, 학생들이 학교를 살리는 일에 뜻을 모아야 합니다. 특히 교수님들께서 지금도 애쓰고 있지만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훌륭한 학생을 배출하는데 계속 정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학교가 바닥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학교를 새롭게 세우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교수와 이사들을 비롯해 학교 구성원 모두가 같은 뜻을 가져야겠습니다. Q. 끝으로 지역 교회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리 학교가 지역 교회와 노회와 소통이 잘 되지 못했습니다. 순기능적인 상호작용이 부족했습니다. 부산장신대는 모판입니다. 모심기하러 논으러 가기 위해서는 교회들과 관계회복이 이뤄져야합니다. 교회들로부터 사랑받는 학교, 교회가 지원해주고 싶은 학교, 목회자를 초청할 때 본교 출신 목회자를 초빙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질 높은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러니 교회 성도님들께서도 본교에 관심을 갖고 소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05-03
  • “교단의 유익과 기관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 옥수석 목사 Q 이사장이 되신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A 법인 산하 기관들에 대하여 감사 2년, 이사 2년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이사장의 책무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으니,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선배 이사장님들과 이사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총회 임원들과 잘 소통하며, 다방면에 훌륭하신 현 이사님들과 하나하나 의논하면서 원만하세 잘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Q 학교법인 안에 세 개의 기관들이 있습니다. 각 기관들의 가장 큰 현안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훌륭한 교회지도자와 국가 사회지도자를 양성해 내는 일에, 또한 의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일에, 현재 실무를 맡고 계시는 대학 총장님, 병원장님, 신대원장님과 함께 힘을 쓰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세 기관의 공통적인 현안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체성 문제’와 ‘재정 문제’입니다. 특히 현실적인 문제는 재정문제입니다. 법인 산하 기관들의 주인이 교단이기 때문에 교단 교회들에게 현실과 현황을 잘 설명하면서 관심과 기도와 여러 가지 후원과 격려도 요청하겠습니다. 특별히 이를 위한 경영혁신위원회가 조직되어 현 상황과 문제점을 심도있게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혁신방안이 발표되어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Q 과거 이사회가 양분되어 싸우는 모습들이 많이 비춰졌습니다. 오히려 기관들 발전을 이사회가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사장님은 앞으로 이사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가실 계획이십니까? A 먼저 총회의 뜻을 잘 받들어 이사회를 운영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사회는 총회가 결정하여 산하 기관을 잘 돌보라고 선임하고 위임하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사회를 신임하여 주시고, 맡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이사회는 순수한 기관으로 운영되기를 원합니다. 교단 정치세력이나 외부 세력이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잘 지키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교단의 유익과 기관의 발전을 위하여 이사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Q 병원 민주노총 지부장이 출석하는 담임목사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병원 안에서는 ‘앞으로 노동조합과 원만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과 ‘앞으로 노동조합에 끌려 다닐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A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병원 대부분의 직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고, 이들 대부분이 우리 교단의 성도님들이며 소중한 인재들입니다. 분명 어려운 점들도 많겠지만, 서로가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로서 잘 풀어 갈 생각입니다. 노조와는 힘을 모아 현안문제를 극복해 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Q 복음병원이 에코델타시티에 분원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어느 정도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까? A 사실 이 문제는 제가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아직 이사회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언론에서 이 내용을 보고 알았습니다. Q 고려학원 문제가 언론에 많이 거론됩니다. 교계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언론은 주로 비판적인 기능이 강합니다. 따라서 비판은 하되, 내용을 잘 알고 비판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 가지 유언비어나 확인되지 않는 내용들이 기사화되지 않도록 언론사의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마치 아이들의 장난으로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부정확한 기사는 우리 기관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사실에 입각한 정론 언론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언론과의 관계는 이사회 서기를 통하여 공식화 하겠으며, 모든 정보는 서기를 통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법인내의 직원들에게는 회의 내용이나 정보공개를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겠습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04-23
  • 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함께하는 부활절특집 좌담회
    가정호: 부활절을 맞아 한국교회가 다시 부활하기를 꿈꾸며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3가지 주제로 토론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교회가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둘째, 교회가 유기체성을 잃어버리고, 조직화, 제도화되는 것에 있어서 어떻게 유연하게 바꿀 수 있을까? 셋째, 청년들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입니다. 먼저 교회가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문춘근: 교회가 신용을 잃고 교회가 하는 말을 무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용을 얻고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제일 큰 고민이죠. 김광석: 신용은 누가 주는 겁니까? 문춘근: 신용은 얻는 거죠. 가정호: 본인이 갖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교회가 세상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내밀만큼 빈곤한 존재인가, 우리가 가진 잘못된 질문이라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을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죠. 조주환: 칭찬이 아니고 욕을 하니 문제죠. 욕은 먹어야죠. 욕을 안 먹고 어떻게 신뢰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데 그 외 사람들이 욕먹으니 문제긴 하지만, 당해야 하니 어떡하겠어요? 주광순: 70-80년대에는 넌크리스천이어도 자녀에게 어떤 종교를 보내겠냐고 했을 때 기독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신문이나 언론에 교회 이름, 목사, 장로 나오면 겁이 납니다. 영화에서도 불교나 천주교는 종교적인 느낌으로 나오는데, 교회는 사기꾼 수준으로 나오죠. 지난해 목회자의 인격적 갱신을 요구해서 신뢰를 회복해야한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그 정도 수준으로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최근 교계는 동성애, 이슬람, 낙태 등에 대한 반대운동을 펼칩니다. 단순히 목회자가 부덕하고 잘못이 있는게 문제가 아니라 도덕이나 윤리의식 자체가 너무 과거에 치우쳐 있어서 지금 이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낙태를 반대하기 위해 피임을 선전할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죠. 낙태를 찬성 한다는게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의식 자체가 없습니다. 오래전 도덕의식에 세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춘근: 왜 이렇게 신뢰를 얻지 못했는가에 대해 고민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세상과, 사회와, 일반인과 소통해야 하는데 소통 없이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키는데 노력합니다. 그것이 마치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고, 교회를 지켜내는 것처럼 말합니다. 사회에서 교회를 생각하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죠.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고집 세고, 주장만하는 사람이라고. 대화 파트너 정도로는 여겨줘야 말을 할 텐데 대화조차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져 있습니다. 김영종: 상식적이지 않은 거죠. 최소한의 상식이 있어야하는데 신앙이 상식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식을 넘는다는 의미가 초월하는 의미로 봐야하는데 몰상식, 비상식으로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받아들여지다 보니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없는 거죠. 적어도 상식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해도 대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30-40년 동안 기독교가 신뢰를 잃어왔기 때문에 신뢰를 회복하는데 앞으로 30-40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당장 신뢰회복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김광석: 소위 개혁신학을 하는 분들은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 가운데 언제 교회가 사회 신뢰를 얻기 위해 존재했나? 이런 질문을 하며 시작하니 다음 이야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목사에 대해 생각해보면 복음을 설명하는 방식이 지극히 인위적입니다. 오늘 좌담회를 생각하며 버스에 탔는데 마침 버스에 아주머니 한분이 “하나님 믿으세요 교회로”라는 스티커를 하차문 봉에 붙이고 내리시는 걸 보았습니다. 마침 바로 앞에 10대 여고생 2명이 앉아 있어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민하며 보았습니다. 냉소적인 분위기로, 맹목적이고 지나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방식이 우리에겐 이것밖에 없나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교회의 힘으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공공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이 자체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할 수밖에 없는 양극단의 방식 말고는 한국교회의 많은 분들이 복음을 설명하는 방식자체가 없다는게 너무 슬펐습니다. 주광순: 흔히 목회자나 교회가 비윤리적이다, 비상식적이라 신뢰를 잃는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것보다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아젠다가 같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는 낙태를 안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를 묻고 있는데, 교회는 예전처럼 낙태를 할거냐 애를 낳을거냐는 문제를 삼으니 접점 자체가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때에 물 길러 간 여자에게 찾아간 남자는 그녀의 고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메시지는 유대교의 전통을 상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조주환: 세상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진리가 이렇다 저렇다 하기보다 감정을 먼저 받아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의 감정을 받아주신 것이죠. 예수님이 먼저 수가성 여인의 현실에 대해 말하지 않으셨죠. 문춘근: 신뢰회복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기독교 대표자들이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든지, 기독교인들이 뜻을 모아 누구를 밀어줘야 한다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권력 가까이, 돈 가까이에 교회 지도자들이 가장 가깝게 서 있습니다. 정권 창출하는데 망친 일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 또 다시한번 교회지도자들이 그런 정치세력으로 인식된다면 다음세대에겐 치명적입니다. 이건 거의 회복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한 번씩 문자가 옵니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을 금하고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둬야 합니다. 더 좋은 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합니다. 조주환: 한국은 패거리문화가 있습니다. 정치권에 붙은 목사들에 대항할 또 다른 패거리를 만들어 싸우면 똑같아집니다. 지금은 비난 받을 때입니다. 그 와중에 공감하고 누룩처럼 정리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선필: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뻔한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세상이 교회를 교리로 판단하거나 교계의 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상식이 있고 소통할 의도가 있는데도 우리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보는 방향은 선명합니다. 교회는 내면적이고,영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걸어왔습니다. 교회를 크게 만들고 돈을 요구하는 길을. 중세가 그렇게 무너져갔지만 성공했던 적이 있는데, 수도원 형태로 간 것입니다. 우리가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것을 멈추고 복음적으로 변화되어야 덜 욕먹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춘근: 욕망이 나쁜 건 아니지만 신앙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그걸 실천하는 지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욕망을 더 일으키고,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더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비난 받고 자성하면서 복음이 요구하는 단순한 삶으로 천천히 가면서 그게 스며들어 사람들이 쳐다볼 때쯤 싹이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영종: 자성하면 되는데 문제는 그게 핍박받고 고난 받는다 생각하고 고수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 것이죠. 가정호: 복음이 신뢰를 얻을 수 있으려면 복음을 경험하고 누리는 자들에게 복음이 쾌락이어야 합니다. 실제 일상에서 쾌락이었는가라는 측면에서 반성을 해보면 제가 겪어 본 목회자들, 장로들이 쾌락으로 드러내주지 못했습니다. 목사님들이 주일날 어떤 기회들이 있어 리트릿으로 모일 경우에 “오늘 교회 어땠어?”라고 물어보면 “여기까지 와서 교회 이야기 하냐”고 말합니다. 장로님, 집사님들도 야외로 가면서 차에서 찬송가 부르면 “여기까지 와서 찬송하나”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이 대부분 종교용이고, 교회용이었습니다. 욕망을 포기할 수 있는 힘은 복음이 우리에게 거룩한 욕망일 때만 가능합니다. 주광순: 신뢰라는 측면을 아까는 비판적이었고 지금은 긍정적으로 말해보면 고민은 해석학적 문제에 있습니다. 성경을 시대마다 풍요로운 새로운 메시지로 다시 읽어야 합니다. 구약에 보면 고아와 과부가 부르짖으면 그 소리는 언제든지 듣는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아픔을 당한 자, 약자들 반드시 가난한자는 아닌데 어떤 형태로든지 사회 속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목소리들을 듣는 것이야말로 구약성경의 메시지고 예수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선필: 두 번째 주제는 교회의 유기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인데,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자고 합니다. 열심히 헌신하면 기뻐야 하는데 왜 녹초가 될까요? 교회가 잘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 지쳐있습니다. 가정호: 목사님들이 흔히 하는 말씀이 주일날만 교회에 와서는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길 주일만 나오면 안 된다고 해서 새벽에도 열심히 나가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도 열심히 나갔는데 안 된다고 합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 분을 보았습니다. 예배당을 많이 갈수록 유기적 공동체성은 사라지고, 많이 갈수록 직분은 높아지고 기성화 되고, 기득권화 되고. 이걸 어떻게 하면 본래 교회의 기능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문춘근: 이웃들은 멀어서 모른다고 해도 성도들과 모였을 때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귀를 기울이면,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이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오잖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생각할 때 쉬게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가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힘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더 하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관습적인 행사를 빼주고 모임을 빼줘야 공간이 나옵니다. 성도들도 나오다 안 나오면 신앙이 안 좋아진 것 같고 불안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그렇게 신앙을 체크해왔기 때문입니다. 김광석: 16년 전에 제가 담임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부임해서 평일에 교회에 오지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불안해하더라고요. 갑자기 담임목사와 교역자들이 청소한다고 하지, 평일에 오면 뭐라 한다고 하지, 이렇게 해서 신앙생활이 되나 싶었던 거죠. 이것을 설득하는데 꽤 오래 걸렸어요. 이거 외에는 해본 적이 없는 거죠. 이래서 신앙생활이 되는가? 저 사람 목사 맞나? 목사가 교회오지 말라고? 애굽을 나올 때 히브리 민족만 나온게 아니라 허다한 잡족이 같이 나왔잖아요. 우리는 이 말을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허다한 잡족은 빼고 히브리 민족만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름은 없지만 허다한 잡족이 같이 나왔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교회가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히브리 민족만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바리새인이 됩니다. 직분론에 대해서도 직이 항존직이지 사람이 항존이 아닙니다. 마치 해병대처럼 한번 목사면 영원한 목사이고, 장로이면 영원히 장로인 것처럼. 이런 부분의 가르침부터 개선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선필: 목사님들이 성도들의 직장 상황들, 사회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심각성을 더 주도면밀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지금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일도 교회에 출석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적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이해해야 합니다. 가정호: 목사님들도 평일에 성도들이 못 모인다고 하소연합니다. 평일도 안 오고, 부흥회 해도 안 온다고 말합니다. 현장에서 목사님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모두 알고 있고 힘들어합니다. 유기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목사님들이 가정교회, 목장교회 등 소위 평신도들이 스스로 모여 대소사를 살피고 하는 쪽으로 강화하죠. 문제는 그런 유기체성을 확보하려고 해도 체제 자체가 유기체성을 확보하고 강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박사과정을 할 때는 학문적 깊이를 위해 교수님이 한 두명을 가르칩니다. 깊이 있는 유기체성을 가지려면 한 두명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합니다. 그러나 큰 교회를 추구하는 현대 교회는 유기체성을 확보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이선필: 저는 양들에 대한 사랑이 없는 교회가 곧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교회가 양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도대체 이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게 정당한가? 정말 가난하고 힘든 성도들이 있는데 교회가 그래도 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주광순: 교회안에 허위의식이 팽배합니다. 까놓고 말해서 주일날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만납니까? 사람을 만납니까? 허위의식이라는 것이 목회자나 중직자는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고 말합니다. 목사님들과 교인들의 순수한 의도자체를 의심하지 않아요.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교회에 오라는 것을 예로 보자면, 목사님들도 선의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도의 신앙이 돈독해지기 위해서. 그런데 사회학자가 보기엔 이는 교회의 매니지먼트입니다. 교인들이 모여야, 이들을 돌려야, 사업을 벌려야 그래야 묶어둘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썩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는 경우죠. 목사님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잘하려고 애를 써서 그런 건데, 문제는 허위의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김광석: 거대담론보다, 경험을 해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강의를 들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 청년들이 한 번도 생애 가운데 ‘교회가 몸이구나’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말은 무성하고 강의는 많은데 피부로 ‘주님이 머리고 교회는 몸이구나’라는 경험이 없습니다. 이쪽 팔이 아프면 다른 팔이 해주는구나를 배우게 됩니다. 특히 다음세대들이 이런 경험이 있다면 유기체 같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내가 대신할게’, ‘나도 낼게’ 이러한 실천적 배움이 있지 않을까요? 교회가 모아둔 걸로 구제하려 하지 말고 지갑을 열어 그 자리에서 성도들이 몸 됨을 실천하고 경험하는 장이 있다면 그래도 회복을 앞당기는데 조금이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영종: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봉사, 헌신을 강요하지만 실제적으로 그 헌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수요일에 교회 올 수 있는 사람, 금요일에 교회 올 수 있는 사람이 누구 일까요? 그 정도 시간 있고,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평일에 와서 교회 봉사를 합니다. 그 외 사람들은 담임목사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의 부담은 있지만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들은 더 괴로워합니다. 이게 세 번째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요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해야 하고, 학자금 갚아야하고, 현실적으로 취업은 안 되는 이런 상황에서 교회 모임을 가야합니다. 교회에 가면 아웃팅을 나가는데 1/N을 해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내야하고 돈을 내며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건 정말 사치입니다. 적어도 지금 교회 청년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그 정도 경제적인 혹은 부모의 서포트든 뭐든,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층 안에 있기에 가능하지 그 안에도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눈길도 못 받고 심지어 신앙이 없다는 비난도 감내해가면서 신앙의 끈을 안내려 놓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유기체성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교회 유기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제가 너무 현실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유기체성에 대한 고민은 해야겠지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광석: 목회자가 방향만 바르게 제시하면 같이 갈 성도들이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있던 교회에서 청년 한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려는데 부채가 800만원이 있었습니다. 집이 너무 어려워 부채 800만원을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방도 구해야하고 월급 백몇십만원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월급 상당부분으로 계속 부채를 갚아야하는 상황입니다. 이를 성도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부채 전액을 갚아주었습니다. 교회 재정 400만원과 성도들이 함께 모금한 400만원으로 빚을 일시불로 갚았습니다. 성도들도 방향성을 잡아주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회자와 지도층이 제도적으로 묶여있는 것으로만 하려고 했지 이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죠. “그럼 다음 사람은 어떻게 해요?” 이런 계산속에서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지는 않고 다음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다음에도 800만원 나오면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럼 해야죠. 한 번이라도 몸 된 교회를 경험해본 것과 하지 못한 것은 다릅니다. 의외로 100%는 아닐지라도 상당수가 함께 동참하며 교회가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유기체적 교회를 하는데 몸부림치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주환: 지금 이야기들을 교리적, 조직신학적으로 이해하니 환경을 바꿔야합니다. 정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이 나오듯이 신학교에서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들어야한다고 하지만 들을 귀가 있으려면 그것을 경험해야 보이는 것입니다. 칼빈 이야기만 하지 말고 지금 이 시대에 칼빈 같은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춘근: 우리가 말한 욕망이 수준이 높고, 단련 되어 있다 보니 그게 채워지기 전까지는 보류합니다. 나중에 상황이 되면 하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가 있습니다. 다만 내가 지금 그럴 형편인가 해서 미루는 것이죠. 김광석: 내 자신을 돌아보면 나도 훈련이 안 되어 있습니다. 돈의 문제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훈련이 안되어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유기체적 경험이 나에게도 없는 것이죠. 당시 청년들을 보니 알바를 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른세대가 교회의 유기체적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몰랐던 것이죠. 어른세대 역시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저자신도 그렇죠. 가정호: 세 번째 주제인 창세기의 아담아 어디 있느냐 처럼 청년들아 어디에 있느냐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주광순: 청년이 우리 때와는 아주 다른 열악한 처지에 있습니다. IMF, 4차산업혁명,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상태, 어릴 때부터 많이 누렸지만 실제로 앞으로도 그걸 유지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는 세대. 청년들이 있는 자리는 그거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에 대한 진단은 많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조주환: 그들이 원하는 것을 통해 소통하는 수밖에 없고, 힘든 상황입니다. 연결고리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소통하는 길을 찾아야죠. 이선필: 너무 기성 교인들에 집중해 왔습니다. 청년들이 미래라고 말하면서도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청년들을 먼저 배려하고, 목회 철학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문춘근: 교회 내 활약을 못하는 그룹들 중 하나가 청년입니다. 특히 부모가 믿지 않는 가정의 청년들은 더 힘듭니다. 교회는 어떤 부분에서 청년들을 배려하고 있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각성한다면 쉼을 허락하고 회복되게 힘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때도 청년은 교회 봉사의 징집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때는 시간이 많았지만 지금 청년들은 여력도 없고 정신없는 청년들입니다. 쉼을 얻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나가 떨어지게 하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안타깝습니다. 김영종 :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청년을 상담한적 있습니다. 학교 때문에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고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선교단체에서 시작해 적응해 나갔습니다. 문제는 이 아이의 성향이 질문하고 답을 얻어야 하는데 이 선교단체가 그렇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결국 1년을 고민하다가 나와 다른 교회를 찾아갔는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청년들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회나 사역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계속 뻔한 이야기, 익숙한 이야기만 하죠. 물론 익숙하고 동의는 하는데 마음속에 있는 질문과 답답함을 해결해 줄 교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청년들이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부족합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바로 나뉘어졌죠. 비기독교인들은 결혼 안한다, 혼전순결 필요 없다고 말하고, 기독교인은 결혼 해야한다 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다. 혼전순결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기에 지켜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들이 같은 그룹에서 서로 대화를 하면서 기독교 청년들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비기독교인이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기독청년들이 나는 지키겠지만, 남에게 지켜라고 해서는 안되겠구나라고 태도가 바뀌어갔습니다. 교회 청년들이 사회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이 문제에 고민하고,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자극을 주면 이들은 고민합니다. 기성세대처럼 굳어져 있지 않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하려는 기본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담당하기보다 한 두명과 접촉해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져주면서 도전을 하다보면 좀 더 고민하는 친구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광순: 제가 있는 인문대가 사회 비판적이고 교회 비판적이다 보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청년들을 만나다보니 느끼는 것은 교회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자리와 인문대에서 배운 교육받은 자리가 너무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교회에 교리적 문제로 여자에게 안수를 안주는 것을 청년들이 보기엔 가부장적인 전형이죠. 안수를 안주고 장로를 안주니 의결권에 들어갈 통로가 없는 것입니다. 또 식당 봉사에도 여성들만 가서 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하죠. 페미니즘이나 동성애가 무엇이 문제냐면 ‘권리’입니다. 교회가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죠.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이 위선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문춘근: 사실 청년문제를 넘어 교회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교회가 70-80%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운영이 되는가? 5년 후에도 유지가 되겠는가? 이런 고민을 안고 그 안에 청년부가 있나 없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청년문제가 벅찬 것입니다. 김영종: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 30-40대가 교회로 들어옵니다. 교회가 존립의 위기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30-40대가 교회에 헌금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하는게 아니라 못합니다. 그들에게 교회가 버팀목이 되어줄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교회는 이들을 끄집어내서 교회에 앉혀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교회에 적은 두지만 헌신, 동참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김광석: 사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교회에서 찾아야 하는데 청년들이 보기엔 똑같습니다. 교회 와서는 똑같이 경쟁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더 칭찬하는 걸 똑같이 겪어야합니다. 이런 걸 몸으로 체득하는 순간 그들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교역자들도 본인들이 이런 경험이 없습니다. 청년사역자들도 이런 고민에 발을 담가 본 적이 없죠. 회심에 대해 구원론적인 이야기가 전부이지, 회심한 이후 이 땅에 살아갈 존재 방식으로서의 고민을 청년사역자들도 그렇게 깊이 있게 해보지 못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본인이 삶의 실존으로서 맞닥뜨려 본적 없는 사역자가 청년의 삶에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와 함께 가보자는 말을 본인도 해 본적이 없으니 안 되는게 당연합니다. 설교도 가벼워지던지 문화론적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이게 나쁜 게 아닙니다. 본인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광순: 교회는 왜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교회로 끌어오기 위한 것인가? 그들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인가? 궁극적인 질문도 필요합니다. 가정호: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물
    • 좌담/대담
    2019-04-16
  • “담임목사의 마음으로, 선교사의 마음으로 섬기겠습니다”
    Q. 그동안의 사역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가 지금까지 3가지 사역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기도 여주에서 시골 개척교회 담임목사로 4년 동안 섬겼습니다. 당시에는 목사가 되려면 의무적으로 개척을 해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2명으로 개척해서 4년간 200명으로 자라면서 교회가 자립 했습니다. 선교사를 돕고 후원하는 교회로 성장했죠. 두 번째 사역으로 칠레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10개 이상의 교회를 세우고 임마누엘기독교학교를 세웠습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교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 세계를 다니면서 펀드레이징하며 눈물로 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울었습니다. 하나님 모금 못하겠습니다. 주는 사역 할테니 사역을 바꾸어달라고 기도했더니 23년전 부산 산성교회로 부임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부임당시 600명 정도 모였는데 지난 23년 동안 눈물로 씨를 뿌리고 선교중심의 목회를 해왔더니 2천명 이상 모이는 교회가 되었고 지난해까지 100호 선교사를 파송, 세계 곳곳에 59교회를 세웠습니다. Q. 그동안 거론되지 않았던 목사님께서 총장이 되셨습니다. 총장이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A. 행복한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만65세 은퇴하고 총회로부터 임명받은 순회선교사가 되어 세계를 다니면서 선교사님들의 카운슬러가 되고 그들을 돕는 사역을 하려고 계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28일 오후 4시 30분에 놀라운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준비도 안 된 저에게 연락이 와서 목사님을 총장으로 선출했다는 전화였습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가 다 되었습니다. 저는 난감해 아내와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4번째 사역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총장직을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보낼 때처럼 전격적으로 이 사역으로 밀어 빠지게 하셨습니다. 도망갈 길이 없었습니다. Q. 부임 후 학교에 와서 보니 어떠셨습니까? A. 부산장신대 총장직이 6개월간 공석이었습니다. 이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고 산재해 있는 여러 현안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학교가 안정을 찾고 회복하고 있습니다. Q. 지난해 학교가 대학진단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A. 전국 통합측 신학교가 모두 7개입니다. 안수를 주는, 즉 신대원이 있는 대학이 7개입니다. 그 가운데 부산장신대학교는 준칙대학입니다. 준칙대학은 법대로 해야 하는 대학입니다. 일반과가 종교과보다 숫자가 많으면 준칙대학이 됩니다. 설립 때부터 준칙대학으로 설립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죠. 규모는 작은데 법을 다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대학이 되면 지금보다 통제를 덜 받기에 그런 면에서 다소 불리한 입장이었습니다. 준칙대학은 학교 규모, 위치와 상관없이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제가 오기 전 부산장신대가 평가인증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대학임에도 큰 대학과 같은 척도로 평가를 받다보니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풀어가고 있다. Q. 올해 학생 모집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A. 지난해 평가인증을 낮게 받아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신대원의 경우 100% 충원되었지만 학부의 경우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올해는 심기일전해서 교회와 더불어 학생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새로운 모습으로 학생들을 맞이하고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Q. 부임 이후 바쁘게 모금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A. 보리떡 비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광야에 먹을 것이 없었죠. 사먹을 곳도 없고 돈도 없어 제자들이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자고 했더니 주님께서 갈 것 없다 하시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통해 빈 들의 희망을 만들겠다는 말씀이고, 너희들이 할 수 있다며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긴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자들이 찾아다니니 오병이어가 나오고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자 만명 이상 먹이는 기적의 양식이 되죠. 빈 들판이 희망의 들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직전에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빈들의 희망이다, 너는 부지런히 찾기만 하면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총장으로 계속 말씀을 전하며 보리떡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 구좌를 만원씩으로 해서 매달 헌금할 수 있는, 그야말로 보리떡 같은 작은 운동이죠. 그것을 모아서 주님께 올려드려 하나님의 학교가 운영되게 하는 운동입니다. 어제도 부산의 한 교회가 74개의 보리떡을 주셨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25개의 보리떡을 받았습니다. 일단은 학교가 살기 위해 떡이 필요합니다. 매달 5천개 정도면 충분히 운영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부산장신대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A. 우리 학교의 장점은 규모가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제식 학습이 가능합니다. 이제 큰 것은 재미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슈마허의 책 제목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것입니다. 이제 작은 걸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학교는 큰 대학교와 달리 작기 때문에 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세계가 필요로 하는 중요한 것을 잘 가르쳐 인재를 양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세계로 보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 장로교회만해도 담임목사가 없는 교회가 5백 교회가 넘습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담임목사가 없는 곳에 잘 준비된 인재를 양성해서 파송하는 것이 비전입니다. Q. 부울경지역 교회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부산장신대학교는 통합교단 부울경지역 824개 교회가 백억원을 헌금해서 세운 학교입니다. 지금 학교가 위기에 있지만 다시 온 교회가 하나 되어서 보리떡으로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면 반드시 학교가 살아날 것입니다. 장학금도 답지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물질을 보내주시고 역사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빈들의 기적이 일어나고 빈들에 희망이 싹 트고 있습니다. 부산장신대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앞으로 한국의 신학교들이 다 어려워질 것입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통합측 교단 7개 신학교 중 우리가 가장 먼저 매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것을 보여줘야 희망이 있죠. 이렇게 해야 산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각오 한말씀 해주십시오. A. 하나님께서 개척교회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기성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키운 담임목사의 경험을 가진 저를 긴급 투입하셨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 담임목사의 마음으로 왔고, 선교사의 마음으로 부임했습니다. 제 마음의 나이는 34세입니다. 제가 칠레 갈 때 34세였습니다. 불붙는 마음으로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한 것처럼 딱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안의 불같은 열정으로 4년간 섬길 것입니다. 교수들과 학생들과 부울경 824개 교회와 함께 학교를 지켜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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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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