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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한국기독교여자절제회와 여귀옥 여사
    대한여자절제회는 1923년 9월 조직된 이래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했으나 1939년 일제의 간섭으로 ‘절제회’를 ‘교풍회(矯風會)’로 개칭하게 된다는 점을 앞에서 지적했다. 절제운동은 사실상 계몽운동이자 정신적 갱신운동으로 일종의 민족운동의 성격이 있었다. 일제는 술과 담배는 물론 아편까지 허용하고 있었는데, 여자절제회가 금주 단연운동을 전개하는 일에 대하여 내심 불만이었다. 저들의 우민정책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절제’라는 용어 대신 ‘교풍’이라는 용어로 명칭을 변경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절제회의 전통을 따라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50년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절제회세계대회에 홍 에스더 여사를 파송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1952년 2월 24일에는 서울시 절제회를 조직한 이래 여자절제회 부산지회(3월 3일), 대구지회(8월 21일), 제주도지회(9월 27일), 인천지회(11월), 청주지회(12월 12일), 대전지회(12월 14일), 천안지회(12월 16일), 수원지회(12월 18일) 등이 조직되어 전국규모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53년 1월에는 대한여자절제회연합회 창립30주년 기념식과 제1회 전국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전국대회는 ‘힘차게 재건하라’는 주제로 부산 보수감리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참가인원은 1,647명에 달해 대성황이었다. 이때 회장은 홍에스더, 유각경, 부회장은 남궁함라, 최활란 여사였고 총무는 황애덕 여사였다. 이때 절제회보 제1호가 다시 발간되었고, 보다 적극적인 절제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전쟁 유가족을 위한 희망원을 설립하였고, 적극적인 금주 운동을 전개하고, 축첩 반대, 국산품 애용운동 등을 전개했다. 이 당시 금주운동 표어가 “술 냄새 없는 곳에 민족의 향기가 있다”, “남은 피 흘리는데 그대는 술 마시는가?”, “술잔 깨뜨리고 새살림 빚어내자”, “생활 혁신은 금주로부터” 등이었다. 1955년 이후에는 생활간소화운동, 복장 간소화 운동, 소년절제회 육성, 절제회 청소년 지도자 수양회, 전국남여 중고등학교 학생 금주 웅변대회 개최, 서독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세계절제회대회 대표단 파송, 기독교여성 선거계몽 강연회 개최 등을 실시했다. 1957년에만 서울 부산대구 광주 전주 마산 청주 등 전국적으로 56회의 절제강연회를 개최했다. 1960년대에도 이런 사업은 계속되지만, 특히 절제회보를 발간하고 축첩자 반대운동, 신생활운동을 전개했고, 양주 제조장 허가 반대 진정서 65통을 정부 요로에 전달하였고, 미신타파운동을 전개하였다. 따지고 보면 여자절제회는 정신계몽운동이자 민족개조 운동이었다. 이런 여자절제회를 이끌어 온 역대 회장은 홍에스더(1대), 신형숙(2대), 최활란(3대), 유각경(4대), 최활란(5대), 홍에스더(6대), 김성무(7대), 최금봉(8대), 여귀옥(9대) 여사 등이었다. 해방 이후 여자절제회 운동에 크게 기여한 이가 여귀옥(1923-2006) 여사였다. 대구 출신으로 신명여고를 거쳐 1939년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1년 청년사업가인 김수근 씨와 혼인하였다. 그가 여자절제회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초였다. 1952년에는 여자절제회 대구지회 이사가 되었고, 1957년 6월 11일 서울기독교연합회 회의실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는 주제로 열린 제20회 절제회연합회 전국대회에 여귀옥 여사는 김순해, 한재동 여사와 같이 대구지회 대표로 참석했다. 절제운동의 이념과 정신에 깊이 동감했던 여귀옥 여사는 1959년에는 사비로 대구절제회관을 구입하였다. 1962년부터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연합회 이사로 봉사했다. 철저하게 성경중심적으로 사셨던 여귀옥 여사는 신앙생활도 모범을 보이셨고 1965년 서울 영락교회 권사가 된다. 1966년 1월 서울 동자동의 절제회관 부지 구입 때는 가장 많은 800,000환을 기부하였고, 1969년에는 절제회의 강단 단상의 책상을 헌납했다. 1970년 절제회관을 건축할 당시에는 건축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172평의 대지에 건평 262평의 회관을 건축하게 되는데, 여귀옥 여사의 헌신의 결과였다. 1971년 1월 25일 신축된 절제회관에서 모인 총회에서 여자절제회연합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회장으로 봉사했다. 특히 절제회관 건립 후에는 절제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학사업은 그 후 50년간 계속되어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과 목회자들을 배출했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하는 기간동안 통상적인 절제회 사업 외에도 1980년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세계대회에 참석하면서 세계절제 운동에도 동참하여 국제적으로 헌신했다. 그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2006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는데, 뒤돌아보면 그가 절제회를 위해 일한 기간은 60여년에 달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고,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여 저명한 화가인 김영주 여사,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 특임교수를 역임하신 김정주 박사, 제2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하신 김성주 회장,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이 그 선대의 신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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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1-10
  • [전영헌 목사] 학교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우리 학교(브니엘예술고) 교문을 들어서면 돌비에 새겨진 교훈을 보게 된다. 우리 학교 교훈은 좀 특별하다. 무엇보다 아주 길다. 1.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훈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학교 교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교훈은 그 학교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교훈을 통해 우리 학교가 어떤 정신에서 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6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굴곡을 지나온 우리 학교지만, 다른 미션 스쿨과는 달리 아직도 종교라는 교과목을 통하여 신앙 교육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중생회’(BORN AGAIN)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에 대해 거의 안티 수준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학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회 때마다 회심하는 아이들이 수십 명씩 나온다는 점이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항복하고 엎드리는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나는 학교에 부임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브니엘이 이 땅에 있는 또 하나의 학교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유일한 학교로 사용되게 해 주십시오!” 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학교의 교훈대로만 산다면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학교의 교훈대로만 살아도 이 땅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땅에 있는 미션 스쿨들이 설립 당시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 신앙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 나가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직 학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상 종교 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거나 학교에서 복음을 마음껏 전파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이유는 학교의 생명은 진학의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종교교육이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의 존재 목적이 단순히 대학 진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진학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삶의 변화’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관심을 쏟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우리 학교에 온 아이들이 성적 향상과 함께, 다른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이이며 소명 의식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션 스쿨에 속한 교사들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같이 해야 한다. 과거 미션 스쿨들의 영광을 회복하고, 신앙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할 수 있도록 미션 스쿨을 위한 관심과 기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학원 선교는 학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와 믿음의 가정이 같이 해야 한다. 나는 90퍼센트의 학생이 불행한 교육적 상황에서 90퍼센트 이상의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다시 한 번 미션 스쿨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 최근 SNS 담벼락에 학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목사님 한분의 글을 보았다. 아니다 학교가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이다. 교회가 학교를 위해서 어떤 수고를 했는지, 교회가 기독교사들을 위해서 어떤 격려와 힘이 되어 주었는지...비판만 하고 말로만 소망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동산으로 만들 책임은 학교와 함께 교회에도 있는 것이다. 부탁드린다. 학교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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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소강석칼럼] “당신의 가을이 더 행복하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넣으십시오. 많은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하략)” 이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입니다. 여름이 그토록 길고 폭염의 나날들이었지만 정작 가을 문턱에 서니까 그래도 남극의 여름의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염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어떻게든지 여름 햇빛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푸른 나뭇잎들은 여름 햇빛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더 부지런히 광합성 작용을 하며 과일들은 단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햇빛이 여름의 꽃들을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지금 어디를 가든지 길가엔 과꽃, 패랭이, 초롱이 꽃들로 한창입니다.아니, 제가 산행하는 길에는 벌써 앙증맞게 코스모스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웬 시골 처녀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려하고 흠모할 만한 미의 자태를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순결한 작은 몸짓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지난, 8월의 뜨거운 햇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시원하게 될 수 없었노라고...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여름을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올수록 지난 여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산행을 한 후 책상에 앉아 아까 전에 본 코스모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아니, 산 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초가을에 피어난 꽃들의 미소가 제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침묵의 모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이 폭염의 계절이었다면 지금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정염의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지난 여름의 폭염이 오늘의 우리들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듯이 이번에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꼭 행복한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가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다시 오게 될 불볕더위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불볕더위가 그리워지고 그 더위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갑바도기아 대교부 중 한 사람인 닛사의 그레고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신학자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히 이런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시 산행을 한다면 이번에는 제가 꽃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여름을 잘 견뎌냈지. 지난 여름에 불볕더위가 있었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 않았느냐. 너희들도 가을이 오면 지난 여름을 더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러나 짙은 가을이 온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거라. 아직은 가을이지만 여전히 폭염을 일으키는 저 태양의 불꽃처럼 너희들도 이글거리는 삶을 살거라. 우리 모두 함께 가을이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정말 올 가을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햇볕으로 인해 모두에게 가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좋은 소식의 열매를 따 먹는 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가을이 행복한 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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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성서연구]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건 이글의 제목이며, 매우 중요한 명제입니다. 누가 물어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게 뭡니까?> 그러면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명제는 너무 당연해서 이상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명제를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세례 요한이 등장하셨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한의 존재와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내서 그가 메시아인가를 질문했을 정도입니다. 많은 이들이 요한을 메시아로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맥락의 말씀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매우 심각한 어조로 <선생님에게 세례를 받는 그 예수라는 이가 세례를 베푸는데, 사람들이 다 예수에게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로서는 이런 현상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요한에게 몰려왔는데, 이제는 예수님에게로 가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본문은 이 때 요한이 제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차 요한의 제자들은 이렇게 말해야 하겠지요. <여러분, 더 이상 우리 요한 선생님을 찾지 마세요. 우리 선생님은 예수님의 길잡이일 뿐입니다. 진정한 메시아는 예수님이니, 그 분에게로 가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요한의 제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한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의 위대함은 그가 빈들에서 성장한 것,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것, 능력의 말씀을 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준 것 등이 아닙니다. 요한의 진정한 위대함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알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본인의 입으로, 그리고 자기 제자들의 입으로 온 세상에 공표했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위대함이며, 동시에 요한이 후세에 끼친 최고의 공로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구주가 아닌 이를 구주로 혼돈하여 잘못 믿는 것을 방지하고, 올바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믿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그가 침묵했다면, 사람들은 요한을 메시아로 믿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릴 때가 많습니다. 초기교회 성도들은 예배당 건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배당을 짓는데, 물질, 마음, 시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예배당 유지 보수에 열을 올리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믿는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배당 유지 보수 위원회를 만들고, 운영규정을 만들고, 인선을 해서 조직을 갖춥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고, 예수님을 믿는 기쁨과 감사는 사라집니다. 열심히 회의를 모이고, 일을 하지만, 구원받은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주변의 변두리적인 것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재정과 시설물 관리, 선교와 봉사를 위한 조직 운영, 노회와 총회 조직 운영 등은 예수님을 믿는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주되심과 왕이심을 믿고, 천국의 백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만 집중하길 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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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시사칼럼] 시월을 마지막으로 살다간 사람들
    시월입니다. 노랫말과 비슷하게 최근 시월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떠난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10월 6일에는 예수전도단(YWAM)의 창시자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3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로도 변함없이 주님과 가족과 친구와 비전 안에 살았노라고 가족들이 전한 바 있었지요?(CT) 청년 시절 바하마 여행 중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고 사역을 시작했다 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선교사 사택에 누워 성경을 펼쳤고, 늘 하던 대로 주께서 내 마음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곧 이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지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앉았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파도가 해변에서 대륙으로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고 그리고 더 깊이 밀려들어와서 그 대륙을 완전히 덮는 것이었다. 숨을 죽였다. 장면이 바뀌어 그 파도들은 청년이나 더 어린 소년들로 변하여 그 대륙들을 덮고 있었다. 거리나 음식점, 혹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사라졌다.”(『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중에서) 일평생 생생했던 그 비전을 붙잡고 주권국가든 종속국가든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던 그가 이제 여권 말미에 마지막 스탬프를 받았습니다. 굿바이, 로렌! 10월 9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노인이 92세로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2만 원짜리 시계 차던 억만장자 영면에 들다”, “방 2칸 소형아파트에서 억만장자가 잠들다”와 같은 헌사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5년 간 10조를 기부한 키다리아저씨”라 일컬어지던 척 피니(Charles Francis Feeney)였습니다. 면세점 사업(DFS)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구두쇠요 괴짜라 불리며 기인처럼 살다가 1997년 우연히 정부의 세무조사를 받다가 엄청난 기부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15년간 2,900회 40억 달러)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2016년 마침내 당시 소유하던 거의 모든 재산을 기증했는데 그 총액이 80억 달러 즉 한화로 10조가 넘어 놀라움을 선사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는 또 “대부호들의 영웅”이라고도 불리는데, 선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그를 숭상하던 주식왕 워렌 버핏은 2006년부터 510억 달러(66조)를 기부했고, 역시 그를 흠모하던 컴퓨터왕 빌 게이츠는 2022년 기준으로 자신이 설립한 재단에만 591억 달러(80조)를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피니는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아일랜드에서 건너 와 가난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숨은 봉사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합니다. 평소 그가 남긴 말들입니다. “오늘(today) 하는 기부가 훨씬 좋다(so much good)”, “돈이 필요한 이유는 편하기 위함인데 나는 지금 너무나 평안하니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그 다음 날인 10월 10일에는 1927년 생 김남조 시인이 향년 96세로 소천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분을 ‘사랑의 시인’이라 칭합니다. 평생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가장 많이 지었고, 2020년 마지막으로 낸 19번째 시집 이름도 『사람아, 사랑아』일 정도니 그보다 어울리는 별명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랑이 아니라 신적 사랑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어릴 적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고인의 시들을 별 생각 없이 공부했었는데 이제 알고 보니 기독교인이셨네요. 사랑만 그렸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긴 <겨울 바다>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며 “기도”를 떠올리다니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 아닙니까? <너를 위하여>라는 작품도 있는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고 합니다. 이쯤 되면 ‘기도의 시인’이란 별명도 하나 더 붙여드려야 하겠습니다. 그처럼 사랑과 기도로 일관했으니 그보다 더 유의미한 인생이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이들이 저들처럼 아름답게 스러져갈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10월 7일에는 축구계의 박종환 감독이 8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1983년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전대미문이었던 세계청소년축구 4강 신화를 창조했던 장본인입니다. 한국축구에 ‘붉은 악마’라는 타이틀을 안겨다 준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화려했던 전성기와는 달리 불우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지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내를 먼저 보내며 집도 없이 떠돌다가 지독한 생활고 속에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까지 시달렸다 합니다. 그러던 마지막 순간 그를 돌봐 준 사람은 가족도 지인도 아닌 한 기독교인이었네요. “자살하려고 해서 깜짝 놀라 찾아갔다. 저분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싶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조선일보 2월 14일 보도).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뉴스와 악의적인 보도로 괴롭힌 혐의로 조사를 받던 가로세로연구소의 김용호 씨는 10월 12일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4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인생을 살다간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지 않다’는 피해자들의 글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아,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가야 합니까? 범상치 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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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시사칼럼
    2023-10-20
  • [은혜의말씀] 바디매오가 눈을 떴다네!(막 10:46-52)
    여리고 길가에, 한 거지가 앉아 동냥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동냥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 오늘도, 찌그러진 동냥 그릇을 앞에 두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바디매오가 사람들에게 묻죠? “여보시오,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러자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우리 마을을 지나가신다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라는 말에, 바디매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사람들은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지나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부르십니다. 바디매오는 벌떡 일어나, 겉옷을 벗어 던지고는 예수님 앞으로 달려갑니다. 예수님께서 인자한 음성으로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능력의 말씀을 선포해 주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시로, 바디매오의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 오늘, 바디매오가 고백한 믿음, 예수님이 칭찬하신 구원 얻는 믿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1. 바디매오의 믿음은, 은혜의 때(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47절)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만을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기회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회를 포착합니다. 여러분, 은혜받을 기회를 붙잡으십시오. 오늘,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의 최고의 기회이며, 또한 최후의 기회라는 긴장을 가지고, 믿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고후 6:2) 2. 바디매오의 믿음은, 최선을 다해 부르짖는 것입니다.(47절) 맹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부르짖는 자의 탄식을 외면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탄식이 탄식으로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렘 33:3)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 뒤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 눈물,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소리도 들으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하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부르짖으십시오. 우리가 소리쳐 부를 때 주님은 부르짖는 자를 지나쳐 가지 않으십니다. 지금, 바디매오의 기도를 가지고 주 앞에 서십시오. 3. 바디매오의 믿음은, 난관을 돌파하는 것입니다.(48절)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였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그때 바디매오가 기가 꺾여서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기적은 없는 것이지요. 응답이 있을 때까지, 목표를 이룰 때까지, 계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방해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주님이 들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4.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만이 내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47절) 바디메오는 '나사렛 예수'라 들었지만,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시대부터 계속 예언되어 온 “메시야”이심을 확신했습다.(렘 23:5,6)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바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이야기합니까?(마 16:16) 예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이십니다. 결국 이런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그를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눈을 뜨는 기적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는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내 삶 가운데 바꿀 수 없는 것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나의 인생을 주님께 위탁할 때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결단하며 일어설 때 주님의 주시는 기적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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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8
    아직 다소 이르긴 하지만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금방 느끼게 된다. 아직 푸르름이 남아있지만 그 가운데 작은 변화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의 눈이, 귀가 그리고 감각이 반응하며 변함없이 주께서 이루어 가시는 섭리를 깨달아 알게 하심에 감사하며 찬송을 드린다. 마트를 가면 햇과일들로 넘쳐 난다. 이 수확의 계절에 내가 거둬들일 열매는 얼마나 될까? 사람은 누구나 주변의 여러 것들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만큼 해 주기를 바라는 존재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기 또한 원한다. 세상에서만 아니라 교회공동체 내에서도 다를 바 없이 똑같은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사실 씨를 뿌리지 않고 얻을 열매는 없다. 더욱이 베풀지 않고 나에게 올 것을 기대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우리가 말씀과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나 아직 덜 성숙하여 그러노라고 하면 달리 무어라 할 말이 없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주께서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한번쯤 생각해 볼 수만 있다면 오히려 불평, 불만, 서운함을 갖기 보다는 격려, 배려, 위로를 줌으로서 그 가운데서 얻게 될 기분 좋은 기쁨을 맛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남을 나보다 더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원초적 실천을 의미하는 것인데 최소한 우리가 이것만 삶속에서 이룰 수 있다면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을 변화시키고 진정 성숙한 삶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매우 힘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모두가 어렵다. 그래서 도무지 그런 영적인 여유를 부릴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고달플지라도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옛날 하박국 선지자가 노래하였듯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노래가 우리의 고백이 되어 주께 드려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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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가 주인공이 되는 교회
    요즘 다음세대 사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면서 온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이들은 이 예배에서 주인공이 아닙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럼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되고 핵심 인력이 됩니다. 저희 교회도 역시 이따금씩 어린이들을 본당에 초대해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담임목사님이 설교할 때 아이들은 주인공입니까, 아니면 회중입니까? 회중입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고 있죠. 수천 년 전 애굽 이야기를 듣고 있는 회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인공을 만들까요? 간단합니다. 강단에 큰 그림을 프린트해서 붙여놓습니다. 어린 모세가 졸졸 나일강으로 떠내려오고 그 갈대상자를 바로의 딸이 줍습니다. 그 옆에는 누이 미리암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수천 년 전 애굽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랑 관계없는 이야기죠. 애들은 관심 없어요. 근데 여기에 얼굴을 파요. 얼굴을 다 파서 탕! 치면 떨어져요. 그러면서 모세 얼굴에 어린 우리 아동부 어린이 얼굴이 딱 나와요. 그러면서 바로의 딸 얼굴에는 그 어린이의 엄마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미리암 자리에는 그 아이의 언니 얼굴이 딱 나와요. 미리 대형 그림 뒤에 세 사람을 준비시켜 놓은 거죠. 그러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지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이제 지금 우리 가정의 이야기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수천 년 전 애굽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가 우리의 과제가 되고 지금 우리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과 목적이 되는 거죠. 여러분, 이 큰 대형 그림은 이 예배 끝나자마자 어떻게 쓰일까요? 온 교인들이 나와 사진 찍습니다. 포토월로 사용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모세가 “돌격! 앞으로!” 하는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준비합니다. 역시 모세의 얼굴을 뻥 뚫어놨습니다. 탕! 치면 떨어집니다. 거기에 1학년짜리 어린이가 얼굴 내밀면 다 같이 “와!” 하고 웃어요. 그러면서 뭘 깨달을까요? 지금 우리 아이가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 아이를 하나 잘 키우는 게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이 간단한 장치 하나로 해서 아이들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이 자리에 다 나와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이 시대의 모세로 자리매김을 하는 거죠. 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합니다. “분홍 목사님은 설교를 어떻게 하시길래 애들이 이렇게 좋아해요?” 저는 아이들한테 마이크를 넘겨요. 제가 설교 다 하지 않아요. 이렇게 가서 애들한테 마이크 주면 애들은 너무 얘기를 잘해요. 다음 세대 사역의 노하우는 이겁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본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소위 다음 세대 전문가 아닙니까? 왜 전문가입니까? 물어봤으니까. 여러분은 왜 전문가가 아니에요? 안 물어봤으니까. 여러분, 저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에 나올 건지, 어떻게 하면 교회 학교가 부흥하는지 압니다. 어떻게 알아요? 물어봤으니까. 아이들한테. 제가 처음 갔더니 저희 교회 학교 예배가 다 9시였어요. 9시. 여러분, 9시에 나오려면 적어도 8시에 일어나야 하고요. 집이 먼 애들은 7시에 일어나야 하고요. 머리 감아야 하고요. 그거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전날 토요일에 유일하게 12시, 1시까지 넷플릭스 보고, 핸드폰 하다 자는 애들이 어떻게 일어나냐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얘들아! 어떻게 하면 교회 학교 열심히 나올 수 있겠냐?” 애들이 다 하는 소리가 뭐냐 하면 “목사님! 9시 너무 일러요. 목사님! 11시에 모이면 안 돼요. 어른들은 11시 예배드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바꿨습니다. 바꿨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이것들이 10시면 일어나더라고요. 사람이라면. 지가 사람이라면 10시에 일어나요. 11시에 교회를 와요.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 다 찾았어요. 잃은 양 다 찾고, 부서마다 부흥했어요. 저희는 그래서 이름을 붙였어요. 유치부 대 예배 11시. 어린이부 대 예배 11시. 청소년부 대 예배 11시. 청년부는 아예 1시로 미뤘어요. 왜? 청년들이 더 못 일어나니까. 푹 자고 와서 예배해라. 그래서 저는 물어봐서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목사가 되었고, 이 아이들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를 하는지요. 정말 아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온 교인이 놀라고 교사들이 으쓱으쓱합니다. 제일 좋은 건 어린아이입니다. 4살, 5살 이런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주면 기가 막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세요.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불안하시잖아요? 아니요. 불안할 거 없어요. 얼마나 좋은데요. 아이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펼치면요. 이 자리에 있는 성령의 역사는 너무너무 완벽해집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바꿀까?”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뭘 고민했냐? “안 되는 거 빼고 다 바꾼다! 전부 다 바꾼다!” 그 정도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 호칭대신 분홍 목사로 바꾸고 옷도 가운 벗고 아이들이 좋아할 차림으로 강단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요즘 6월부터 9월까지 반팔 티셔츠 입고 올라와서 설교합니다. 저희는 각 부서의 교사 티가 다 있거든요. 그 교사 티를 입고 설교해요. 그러면서 그 부서를 지지하는 거예요. 제가 응원하는 거예요. 그러면 온 교인이 저와 함께 그 부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거예요. 다 바꿨어요. 여러분, 바꿨더니 다음 세대가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이것과 함께 30~40대가 같이 많아집니다. 부모 세대와 같이 숫자가 같이. 멀리서 차 몰고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인원이 전체적으로 늘게 되고. 재정이 늘게 되고. 저희는 지금 매년 최고치를 찍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치. 너무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리고 자신감도 올라가요. 교인들이 자신감이 넘쳐요. 어디를 가나 입이 근질근질하답니다. 성민교회 얘기하고 싶어서요. “사람들이 나 어느 교회 다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왜 안 물어보지?” 자꾸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나 성민교회 다녀!” 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정말? 분홍 목사님 교회?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그 교회 다닌단 말이야?”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교인들이 자신감이 하늘을 뚫어요. 다음세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세요. 교회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삶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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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0-20
  • [다음세대칼럼] 다시 아빠 해주세요
    “도움 따윈 필요없으니깐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세요. 왜 저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을 해요? 그딴 감정들도 필요없으니깐 낭비하지 마시고요. 저 말고 다른 애한테나 그러세요. 내가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이니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이젠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요. 알아서 살거니까요” 얼어붙은 땅도 녹아내리고 꽃이 피며 생기가 돋는 어는 봄날. 따따이는 소년원에서 온 편지를 한 통 전해 받았다. 편지를 보낸 아이는 지원이였다. 지금껏 둥지를 거쳐간 수 많은 아이들 중 가장 마음이 아린 녀석 중 하나이다. 지원이의 부모님은 지원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였다. 사업실패 후 가정을 외면한 채 바깥을 떠돌며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버지와 이단 종교에 빠져 광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다. 지원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언니 2명과 함께 생활했다. 가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이를 못 견딘 큰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로 직장을 구해 먼저 떠나버렸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언니마저 가출하여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서, 아직 중학생으로 어렸던 지원이만 홀로 남았다. 거의 매일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싫었다. 결국 지원이도 가출을 하기 시작하였고 거의 1년 정도 가출팸들과 생활하며 지내다가 돈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는데 결국 발각되게 되었다. 그 절도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따따이가 국선보조인을 맡으며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지원이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지원이는 보호자 없이 홀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고 판사님은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둥지센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국선보조인이었던 따따이와 함께 둥지센터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가출이 습성화된 지원이는 센터를 이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시설내처우인 6호 처분을 받고 아동치료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전화시간에도 지원이는 전화를 걸 사람이 없었다. 그때마다 지원이는 생각나는 사람이 따따이 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따이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렸다. 그리고 6개월간의 6호 처분 이후 따따이는 지원이를 위해 따로 원룸을 마련해주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잘 지내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도 지원이는 도망가 버리고 다른 비행에 연루되다가 보호관찰소에서 구인장이 발부되어 다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 가장 중한 10호 처분으로 2년간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올라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 말을 편지에 가득하게 써서 따따이에게 보냈던 것이다. 따따이는 한 순간 그 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 시간을 흘러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태풍 경보까지 내려진 날 오후. 따따이에게 다시 편지가 왔다. 자기 인생에 나타나지 말라며 원망을 쏟아낸 지난 번 편지 때문인지 따따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원이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죄송해요. 지난 번 편지에 너무 모진 말들만 썼죠. 정말 힘든데 쏟아낼 때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솔직히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 편지 받고 많이 울었어요.... 저 여기 오면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이 없다는거.. 많이 힘들고 외로울거라는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목 맸던 친구들은 8개월 째 소식이 없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혼자 버티려니깐 너무 버거워요. 저 진짜 잘못 살았나봐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지원이의 편지를 읽다가 따따이는 그만 마음이 멎는 듯 했다. “따따이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했었어요. 가족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모질게 굴어도 따따이는 달래주실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따따이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은혜를 갚지도 못할망정 상처를 드려서 죄송해요. 제발 저 여기서 혼자 힘들어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따따이. 다시 아빠해주세요... 작년에 가족도 안 챙겨주던 제 생일날 바쁘신데 와주시고 그랬는데.. 아빠보다 더 아빠같이 생각했었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보고 싶어요” 따따이는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 봤다. 어제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우려한 것보다는 큰 피해가 없이 비켜갔다.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에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따따이는 모진 비바람을 겪은 지원이의 짧은 인생 같아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번 그렇게 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지 한 장에 다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이제 태풍이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다음 주엔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제 며칠 후면 지원이의 생일. 다시 서글픈 축하의 노래라도 불러주러 가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의 원문이나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책 “다시 아빠해주세요”(엠마우스출판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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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 [신앙교육나침반]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Holy Win)? 할로윈(Halloween)? (2)
    15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 날에 루터는 로마카톨릭 교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잘못된 관습에 대항하며, 복음에 근거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하였습니다. 부모세대는 10월 31일에 우리의 자녀세대가 사탄의 형상을 입는 할로윈 축제에 어떤 모양으로도 참여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이 날은 빛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옷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주일과 10월 31일에 교회와 가정에서 온 세대와 함께 다음의 복음활동을 진행해보세요. 활동에 대한 생생한 영상은 유튜브채널 [향기나무 성경놀이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면죄부 □ 준비물: 다양한 색깔의 종이, 펜, 풀, 종이상자(두꺼운 종이), 빨간색 색종이 또는 시트지 □ 방법 종이장자를 이용해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듭니다. 면죄부를 상징하는 종이에 모든 죄를 고백한 후에 찢습니다. 완전히 찢은 죄를 십자가 종이 위에 모자이크 방식으로 붙입니다. 죄가 가득한 십자가 위에 빨간색 색종이 또는 시트지를 덮습니다. ❶ 면죄부에 나의 죄 적기 여러분, 이 종이는 여러분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죄부입니다. 여러분을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죄를 이곳에 모두 적어보세요. ➋ “없어져라!”외치며 면죄부 잘게 찢기 자, 이제 “없어져라!” 외치면서 모두 찢어봅시다. (모두 찢은 후) 우리의 노력으로 여기에 적어놓은 죄가 없어질까요? 아무리 잘게 찢는다고 해도 죄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➌ 십자가 위에 죄 종이 붙이기 우리의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곳은 바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로 가지로 오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붙여봅시다. ❹ 빨간색 종이로 죄 덮기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종이로 모든 죄를 덮어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입술로 고백해봅시다. “예수님,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세요. 죄가 나의 입술과 몸과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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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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