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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칼럼] 독재자들의 평화협정
    ‘뮌헨의 교훈’(Lesson of Munich)이라는 국제정치학 용어가 있다. 독재자들은 평화협정 체결을 침략전술의 하나로 이용한다는 의미이다. 대화주의자 영국 체임벌린수상은, 체코를 침공한 히틀러에게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히틀러는 즉시 응답했고,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총리, 체임벌린 영국총리 등 4개국 대표는 독일 뮌헨에 서 역사적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1938년 9월30일, 체임벌린 총리는 협정문을 흔들면서 “앞으로 유럽에서 전쟁은 없다. 우리시대의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체임벌린은 대화를 통해 유럽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6개월 후인 1939년 3월, 히틀러는 체코전역을, 9월에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뮌헨평화협정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1973년 월맹(북베트남)은 미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했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 1월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됬다. 그러나 1974년에 미군이 철수하자 월맹은 곧바로 남베트남을 침공했고, 1975년 4월30일에 대통령궁 철문을 탱크로 밀고 들어가 남베트남을 공산화했다. 파리평화협정 후 벌어진 일이다. 파리평화협정 체결 당시 미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월맹군의 말을 믿고 평화협정체결 한 것을 가장 뼈져리게 후회한다고 훗날 술회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비밀문서에 의하면, 김일성은 1950년 6.25 남침하면서 세 단계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가 38선 인근에 병력을 우선적으로 집결시키는 것, 두 번째단계가 6월7일, 평화통일호소문 발표와 동시에 남북한 총선거 제안이다. 광복 5주년을 기념하여 8월5일부터 8일까지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실시하여 최고입법기관회의를 구성하고, 8월15일에 서울에서 첫 회의를 갖자고 했다. 세 번째 단계로, 이것을 의논하느라 어수선해진 틈을 타서 남한을 기습공격을 한다는 전략이다. 김일성은 평화통일을 호소한 뒤에 무력으로 남한을 침략한 것이다. 그 역시 독재자들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처칠은 전체주의 독재자들과 물질제공 협상이나, 굴복 혹은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했다. 역사는 이를 증명했다. 최근, 미국 트럼프대통령은 김정은과 평화를 위한 대화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도 속내로는 체제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전제로 미국과 정전협정 혹은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한다. 우리정부도 최근 북한 대화론자들을 국정원장, 통일부장관과, 국가안보실장 등으로 지명하면서 북한과 평화(정전)협정을 위한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의 유훈을 헌법상 그들의 국가이념으로 받들고 있는 김일성주의 독재국가이다. 뮌헨의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교회지도자들도 우리가 원하는 평화통일이 누구를 위한 통일이어야 하는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정부의 동향을 주시해야만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에서는 신앙의 자유도, 복음전도의 자유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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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시사칼럼] 창과 방패 같은 차별 금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에 한 장사꾼이 살았습니다. 한 날은 그가 팔던 방패를 소개하면서 하도 단단하게 만들어져 천하에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노라 했습니다. 뒤이어 같이 팔던 창 한 자루를 들고는 천하에 어떤 물건이라도 뚫지 못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구경꾼 하나가 만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중국 고전『한비자(韓非子)』에 전합니다.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는데, 모(矛)란 창이요 순(盾)이란 방패를 가리키는 한자라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모순은 일견 보기에도 또한 듣기에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나 의견이 공존하려 할 때 나타나는 비논리적 현상입니다. 모순 현상이 발생하면 특히 발화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바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물론 모순의 성질을 일부러 이용하여 자기 의견의 타당성을 극적으로 배가시키려는 기법도 존재합니다. 아이러니(irony)와 패러독스(paradox)가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라면 모순은 의견이나 주장에 아주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코로나 20’이라고 명명해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7월 8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장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통해 교회를 향한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7월 10일 18시부터 정규 예배 외 모임 · 행사 금지, 단체 식사 금지, 상시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수칙 준수를 의무화한다... 교회 내에서도 찬송 자제, 통성 기도 및 큰 소리 금지, 음식 금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의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 및 집합금지명령을 발할 수 있다.” 당장 교계는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사회적 안전을 위한 취지를 십분 공감하더라도 왜 교회만 특별한 제한과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을 거론하는 분도 있지만 취약 계층에 대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때문에 초래되는 불이익이라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개신교에 대한 차별’이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른바 ‘차별금지법안’이 국회의원 10인의 발의로 다시 등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교계의 반발이 다시 격화되었습니다. “다시”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지난 2017년부터 국회 제정 법률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제정 조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다투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 몇 분은 설교를 통해 차별금지법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성도들에게도 이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차별금지법 반대’가 첫 번째 국민 청원이 되면서 벌써 10만 명 이상이 찬성 버튼을 누른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는 내용이 있을 때, 아무리 법률의 이름으로 선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법안의 이름이 ‘차별금지법’입니다. 이런 말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별금지법은 반대한다.” 두 문장은 상호 모순이 아닌가,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올려놓은 우스갯소리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제일학문의 공리’로 모순율을 제시하며, “어떤 것이 동시에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이 동일한 것에 동일한 관계에서 동시에 속하며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를 달고 아무리 그럴 듯한 설명을 해도, A의 부정의 부정은 A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또한 지금 교회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차별금지법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거나 타당성을 희석시킬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성경은 차별을 조장하는 책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교회가 차별을 일삼는 집단으로, 교인들이 차별주의자로 여김 받는 낙인 효과가 발생할까봐 우려됩니다. 그 어떤 때보다 성경적 지혜가 필요하며, 어젠다(agenda)의 재정비와 홍보전의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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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미래가 온다
    엘 고어 전 미국부통령의 수석대변자이자 미래학자 관련 전문가인 다니엘 핑크의 베스트셀러인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서 앞으로의 미래는 정보 중심 사회에서 감성의 시대로 변화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시대의 변화는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능력, 공감 능력, 통찰력 등 우뇌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관념과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전 산업화, 정보화 시대에는 암기력, 논리적, 분석력 등이 좌 뇌혈관 인간들이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감성의 때에는 우뇌능력이 인재들이 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미래 감성 중심의 사회에 리더가 되려면 이런 능력을 갖추어야 된다고 한다. 감동을 주는 리더, 눈물 나는 트로트 가수들의 가사에 귀를 기울이는 시대가 되고 있다.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미디어 유튜브 설교 쇼핑하는 한국교회 신자들이 참된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정의를 내린다. 하나님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바로 참된 교회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외형적인 성장과 맘몬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교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내 아버지 집은 장사 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2:16)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된다. 온갖 물건이며 기업도 아니고 여전도회나 마치 시장 거리 장사꾼으로 둔갑하듯 마구 물건을 맡기고 팔고 이것을 가지고 선교사의 미명아래 장사하는 것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코로나19 사태가 주는 경고는 “신이 내린 인류 생존의 마지막 시험”이라는 눈으로 바라 볼 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운명과 뺄 수 없이 얹혀 있다고 홍순원 목사(기장 총회 영성훈련원 원장)가 쓴 “신이 내린 인류의 마지막 생존 시험”이란 강좌에서 그는 한국교회가 현실의 세속 안에 새 인간과 새 세계를 출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신앙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느냐? 퇴행성 종교가 아니라 ‘생명종교’를 체험하고 훈련하고 누리는 ‘생활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 시험하는 시기인가를 본다. 최근 기장 목회자협의회(상임회장 이준 목사)가 발간한 “코로나19, 무엇을 허물고 무엇을 세우나?”라는 명제로 강의한 내용의 일부에서 한 말이다. 일단 그는 현실을 진단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작은 교회가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많은 작은 교회들이 비성서적이고 비복음적인데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신천지는 아닐지라도 못지않게 반지성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데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인가 신학교, 사이비 교역자들의 구성과 난무하듯 들어서는 교회, 이런 것들을 한국교회가 과감히 식별하여 도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주 건강하고 복음적인 작은 교회도 있는데도 문을 닫게 된 미자립교회에 교회나 상가임대 교회도 많다고 하고 이런 경우 힘을 모아 살려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큰 교회나 자립하는 교회는 어떠할까? 지금의 모습으로 있는 한 문을 닫고 있는 작은 교회 운영과 같다고 했다. 소위 한기총이 아니더라도 반지성적 토대에서 정치적으로 대중 앞에 앞장 서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이 대부분 한국교회라고 힐난하게 비판했다. 그러면 전혀 희망은 없는가? 단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 원래의 본질을 회복하고 새로이 복음의 생명을 실현할 변화를 일려고 노력할 때만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또 에릭 프로이센이 말했듯이 새로운 사회 실현 가능성을 물으면 희망의 조직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사회 체제에 대하여 불만의 표시가 늘어나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점점 세기의 불안을 감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러다가 자기도 교회도 곧 사라진다. 내가 불안을 느끼면서 인류의 지구를 보전하지 못한 그 책임을 하나님은 교회에 물을 것이다는 레위기26:30~35말씀처럼 너희 땅은 쑽밭이 되리라 나는 칼을 빼들고 너희를 쫓아 이 민족사에 흩어 버리리라는 경고를 들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세계적으로 사람의 활동이 멈추자 대기가 단번에 맑아졌고 이산화탄소 탄소 배출량이 두어달 사이에 6%나 줄었다는 보고를 본 적 있다. 자연재앙도 인간성 상실에서 인간이 만든 원인 제공라는 뜻이다. 이제 바이러스라는 미세한 생물이 인간에게 보복하여 지금 코로나19로 50만명(6월 현재)이 사망하고 미국은 하루에 5만명이 확진되는 이 지구촌의 재앙은 당연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쫓겨간 제2의 아담이 될 것을 예언하는 징조다. 이제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모세에게 이르신 언약의 계명을 지킬 때만이 이 지구촌은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될 것임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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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목회자칼럼] 필복, 필성, 필상, 필통, 필립
    필복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6:14) 하나님의 본심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 심판이 아니고 구원이다.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고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사람은 식언하지만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시편 첫장, 첫문장은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이 된다. 행복한 사람, 다복한 사람, 인복이 많은 사람, 일복이 많은 사람이 유복한 사람이다. 연속해서 행운이 따르는 것은 그 사람의 실력이고 계속해서 실패가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습관이다. 야곱은 장자권을 팥죽을 팔아서라도 샀다. 성도는 면류관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복을 받고 복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된다. 필성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백세에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이지만 지금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져서 세계에 37억이나 된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반드시 자란다. 아기는 태어나면 키가 자라고 식물은 심으면 반드시 성장한다. 의인은 종려나무와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축복의 DNA가 있어서 성장본능을 따라 반드시 생육하고 번성한다. 필상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믿음의 사람은 일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믿음찬 사람은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간다. 불퇴전의 믿음을 가지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살아계신 주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 믿음의 선배들은 죽도록 충성해서 썩을 것이 아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았다. 상을 받는 것은 보람차고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다. 필통 사람은 필통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여기에서 필통은 세 가지가 반드시 통해야 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필통(必通) 즉, 반드시 통해야 된다는 것이다. 삶에는 소통과 공감과 나눔이 절실하다. 소통이 안되면 고통이 오고 불통하면 불행하기 때문이다. 뜻이 통해야 한편이 되고 말이 통해야 행복하고 피가 통해야 건강하고 돈이 통해야 부자가 된다. 둘째는 필통(Feel 通) 즉, 느낌이 통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람도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있다. 느낌이 좋은 사람이 있다. 인간관계에는 영이 통하는 영성, 활기가 통하는 야성, 느낌이 통하는 감성이 중요하다. 셋째는 필통(필기도구를 넣는 통)을 가지고 다녀야 된다. 적자생존이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필기광이다. 기억보다 오래 가는 것이 기록이다. 사람들이 행동은 앞서지만 기록을 남기는 것이 대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삶이 규모가 없기 쉽다. 필립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시37:17) 의인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4~25) 성도는 쓰러지고 넘어지나 주께서 일으켜 세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일어난다. 필립(必立)이다. 필리핀의 이름은 필립왕에게서 따 온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이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아니라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명령과 동시에 함께 하심을 약속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일어나 새벽을 깨우리로다. 일어나 건너가라. 일어나 함께 가자. 청년아 일어나라.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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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이선복 교수] COVID-19 경제위기의 영향과 신앙적 교훈
    지난 4월, IMF(국제통화기금)가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3.0% 하락할 것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도 -1.2%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한 감염경보가 최고 위험등급에 해당하는 팬데믹(pandemic)이 상황이 발생하며 세계경제가 패닉상태에 빠진 것이다. 국민의 81%는 3월초 코로나 확산에 두려움을 느끼고 일상에 불편을 겪기 시작했다(부산연구원). 2월 제주도 외국인 여행객 85%가 감소하고, 도시철도 이용자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숙박업소와 관광 MICE 행사가 취소되고, 중국 자동차 부품소재 감산으로 자동차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기획재정부). 지역상권은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도산하는 점포들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COVID-19로 인한 경제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신앙적 교훈은 무엇인가?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7월4일 현재 국내에서 총12,967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283명이 사망하였다. 세계 확진자 수는 1100만명을 돌파하고 52만명이 사망을 하였다. 코로나 감염이 U자 형태로 장기화되리라는 예측이 적중하여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면 좋을까?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코로나 기간 동안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중앙회, 무역협회, 상공회의소 등 많은 경제단체에서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관계부처합동회의를 통해 재난 지원책을 모색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다음 3개의 재정정책이 진행되었다. 첫째는 전국민재난지원금으로 4인가구기준 100만원을 지원, 민생과 경기부양을 도모하였다. 둘째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지원으로 특히 4.15총선과 맞물려 경쟁적 형국으로 진행되었다. 셋째는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코로나의 피해가 큰 산업이나 중소기업, 수출입기업 등을 지원, 도산을 막는 방법이 강구되었다. 그리고 통화정책으로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인하하고, 채권을 매입함으로 시장에서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는 양적 완화정책이 시행되었다. 지원방법에 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위기 시 정부가 해결에 나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즉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되, 1930년 대공황 같은 위기 발생시는 케인즈 이론 등에 따라 과감히 재정을 투입, 혼란과 도산을 막는 확대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COVID-19 경제위기의 2번째 교훈은 교회와 신앙의 자세이다. 코로나 정국으로 예배참석자가 줄며 교회마다 헌금수입이 감소하였다. 적정한 재무구조의 설계가 필요하다. 수입지출은 물론 자산과 부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 3~4개월 사역에 공백이 생기며 지출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므로 연초에 세운 예산조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 또한 각자 자신의 재물관을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는 것이다. 또 그럴려면 성경적 가치관에 따른 재정관리가 필요하다. 요셉이 애굽 땅에 찾아올 기근에 대비해 곡식을 준비했던 것처럼 재난에 대비하여 재정의 일부를 비축하고,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사치와 쾌락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 재난을 당함은 아무 준비없이 “마라나타”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난 것과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6월말 상반기 결산, 섬기는 교회의 경우 예산 대비 94.4%의 수입을 기록하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COVID-19가 빨리 종식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교회와 국가가 속히 신앙과 경제를 회복하고, 계속해서 사도행전적인 비전을 꿈꾸며 달려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기간 중 총10회에 걸쳐 화상 세미나(Zoom)에 진행, 유익한 시간을 제공한 부산성시화운동본부에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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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부산기독교이야기] 6.25전쟁기의 한경직 목사
    1950년대 이후 서울의 영락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였다. 영락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교회였고 외국의 교회 지도자들이 내한하면 영락교회에서 예배드리거나 설교하고 인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1945년 12월 설립된 영락교회는 1950년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성인 출석교인 750명, 각종 교회학교 인원을 포함하면 2천6백 명의 교회로 성장했다. 그해 5월에는 아름다운 석조예배당을 건축하고 6월 4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불과 한 달이 못되어 전쟁이 시작되었고, 6월 25일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새 예배당을 뒤로하고 피난을 떠나게 된 것이다. 전쟁 직후 한경직 목사가 중심이 되어 ‘대한기독교구제회’를 결성했으나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자 구제회는 활동을 시작도 못했다. 무엇보다 새로 지은 석조 교회당을 뒤로 하고 서울을 떠날 때 교인들의 기도와 눈물로 건축한 예배당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간신히 서울을 빠져 나온 한경직 목사는 대전으로 피난을 갔다. 7월 3일에는 피난 온 여러 목회자들이 대전제일교회에서 회합하고 ‘대한기독교구국회’를 조직했다. 목회자가 앞장서 나라를 구해야한다는 취지에서 결성한 조직이었다. 한경직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첫 행사는 시국강연회였다. 조직의 이름처럼 구국을 위한 선봉에 서야한다는 취지의 강연을 하게 된 것이다. 구제사역을 통한 전도도 기독교구국회의 중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전세는 이런 사업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어 다시 남하하여 대구로 피난했다. 대구 YMCA사무실이 구국회의 본거지가 됐다. 그러나 계속 북한군에 밀려 다시 부산까지 피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한경직 목사도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런 연유로 1950년 8월 말과 9월 초 부산중앙교회에서 개최된 회개집회에 강사로 서게 된 것이다. 그간 국군은 수세에 몰려 고전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으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했을 때 흩여진 영락교인들은 다시 서울로 모여들었다. 이때 한경직 목사도 서울로 돌아갔다. 그런데 서울을 수복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하여 10월 1일에는 38선을 넘고, 19일에는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때 한경직은 윤하영 이인식 김양선 등 이북 출신 목회자들과 같이 평양으로 가 10월 29일 주일 오후 2시 서문밖교회에서 집회를 열었다. 감사와 감격의 예배였고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김영준 목사의 인도로 한경직 목사는 이사야 60장 1절을 본문으로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감격적인 설교를 했다. 이날 회중이 힘차게 불렀던 찬송이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였다. 감격적인 승전도 잠시.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진출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1.4후퇴였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이때 영락교회 교인들도 피난길에 올라 대구로, 부산으로 그리고 제주도로 흩어졌다. 대구에 정착인 이들이 대구영락교회를, 부산에 정착한 이들이 부산영락교회를. 제주도로 간 이들은 제주영락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1.4후퇴로 부산으로 온 영락교회 출신 30여명의 성도들은 부산에 도착한 첫 주일인1951년 1월 7일 생활의 터전도 정비`되지 못했으나 광복동 1가 7번지의 고려신학교 교사에 함께 모여 한경직 강신명 목사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부산영락교회의 시작이었다. 이때 “피난 중에는 영락교회 당회를 부산에 둔다.”고 결의하고 14일 주일부터는 대청동 새들원(고아원, 지금의 새들맨션 자리) 강당에 모여 예배드리기로 했다. 성도들은 주일마다 늘어나고 공간은 협소했다. 천막을 치고 예배공간을 확장했으나 근원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이런 중에 약 두 달이 지난 3월 한경직 목사는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전화에 지친 한국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설교하며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5개월간 체류했다. 이 기간동안 강신명 목사가 대구와 부산을 오고가며 교회를 돌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유학차 미국으로 떠나게 되자 1951년 7월에는 이응화 목사가 부임했다. 피난민들은 계속 늘어났고 부산영락교회도 수적으로 성장했다. 서울로 돌아갈 수 없으나 두고 온 돌로 지은 예배당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부산에서도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고, 부산 서구 부민 1가 22번지(지금의 영락교회 자리)의 180평의 대지를 매입했다. 이런 와중에서 전황이 호전되고 서울을 되찾게 되자 다수 성도들이 서울로 돌아갔다. 그러나 남은 성도들은 피난의 고통 가운데서도 눈물어린 헌금을 하고 힘을 쏟아 1953년 6월 105평의 단층 석조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휴전 한 달 전의 일이었다. 7월에는 입당하였다. 전쟁 와중에서 이룬 믿음으로 이룬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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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교회학교를살린다] 0의 교육과정
    교육학에서는 우리가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소개해준다. 첫 번째는 공식적 교육과정이다. 이는 교과서, 수업계획안과 같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기독교교육에 있어서는 공과가 대표적이다. 공과가 공동교육과정을 줄인 말이기 때문에 그 말 안에 이미 공통적인 공식적 교육의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도 제일 관심을 갖는 교육과정이 공과이다. 다른 그 어떤 시간보다도 공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잘 수행했으면 그날의 교육과정은 완수했다고 생각한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적 관점에서 생각해볼 때 공과는 신앙교육에 있어서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든 순간순간이 신앙의 나날들이고 우리가 선 모든 곳이 신앙의 여정 가운데 있는 신앙교육의 공간이기에 우리는 보다 넓은 시야로 기독교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공식적 교육과정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인 공과만을 붙잡고 기독교교육을 다 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두 번째 영역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두 번째 영역은 비공식적인 교육과정이자 잠재적 교육과정 또는 숨겨진 교육과정이다. 이것은 교육의 대상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환경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환대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교회에 와서 편안한 마음을 갖고 스스로가 이 공간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다는 신앙의 안정감을 형성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숨겨진 교육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든 성인들의 부단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거듭거듭 해왔다. 신앙공동체 전체가 다음세대를 품고 기도하고 사랑으로 키워내는 노력들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엄청난 사건이 연초에 터졌다. 바로 코로나19 사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코로나19 사태는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평범한 일상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신앙인들도 신앙생활이 매우 움츠러들었다.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은 그야말로 아사 직전이다. 교회의 소모임과 여름행사가 모두 취소되는 상황이다. 공식적 교육과정이나 잠재적 교육과정도 어찌 보면 모여야 어떻게든 가르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상초유의 상황 속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교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제3의 교육과정을 수행중이다. 바로 0의 교육과정이다. 원래 0의 교육과정은 말 그대로 제로의 교육과정이다.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회에서 의도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교육을 수행하지 않는다. 신앙과 성경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의도적으로 교육과정에서 빼버리는 것을 0의 교육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경우는 가르쳐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의미가 가르쳐지는 것이다. “왜 선생님이 그 내용에 대해서 안 가르쳐 주시지? 아!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구나.”라고 아이들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가르쳐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중요도가 떨어지거나 지금 배울 필요가 없다고 교사가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0의 교육과정은 가르쳐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육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상황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0의 교육과정을 수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교회가 소모임이 중단되고 여름행사가 막히는 이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0의 교육과정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가르쳐진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 그 모습은 고스란히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가르쳐진다. 현재 우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음으로서 가르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우리는 이 비상시국에 무엇이라도 가르쳐야만 한다. 비록 교회에 모일 수 없지만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여름행사는 가정에서라도 해야 한다. 열심히 참여한 모습을 피드백 받고 공유하며 서로서로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 처절한 노력이 이번 여름 우리에게 주어진 교육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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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07-14
  • [성경인물탐구] 베다니 마리아(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는 예루살렘 교외의 베다니 출신으로서 마르다의 동생이며 나사로의 누이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헌신적이었는데 특히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 드린 그녀의 행위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참모습을 보여 줍니다.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게 되자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과 나사로의 가정은 가깝게 지내며 예수님을 의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병을 반드시 고칠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오라비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급히 오셔서 나사로의 병을 고쳐 주시지 않고 나사로가 죽어 무덤 속에 들어간 후에야 오셨습니다. 그때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며 통곡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우는 것을 보시고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주위 사람들의 애통함을 보시고 죽음 앞에 무력한 인류의 불쌍한 모습을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그를 부르심으로써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역사는 마리아와 마르다 가정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켰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부활이 되심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가까웠을 때 베다니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잔치에 참여하셨을 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마리아는 죽은 오라비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 주신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예수님께 이와 같이 행했던 것 같습니다. 가룟 유다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를 말하며 마리아의 행위를 책망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감사와 헌신의 뜻에서 그렇게 행하였지만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워 왔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물질로써 표현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중심을 보시고 그 행위를 칭찬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계를 맡은 자로서 헌금을 훔치는 도적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위하여 비싼 향유를 부었을 때 그는 마리아를 책망하면서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지 낭비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행위를 칭찬하시면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당신을 위해 사용하는 그 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는 예물을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중심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도 전부를 드린 과부의 두 렙돈을 더 많다고 평가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성도는 주를 향한 진정한 마음으로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성도의 물질에 대한 바른 행동은 주어진 일을 사명으로 받아드리고 열심히 일을 해서 얻은 물질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며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 복 받은 바른 삶인 것입니다. 이런 삶으로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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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의학칼럼] 암 경험자 백만 시대, 올바른 건강관리와 예방 접종
    암경험자란? 암경험자는 이전에는 좁은 의미에서 암 치료가 완료된 환자라는 의미로 사용 되었지만 최근에는 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암 진단을 받은 모든 환자분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20만명이 넘는 암 환자가 발생하고 150만 명이상이 암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치료 기술의 발달과 암의 조기 발견으로 암 환자 10명중 7명은 암에서 치유되며 이후 3-6개월 또는 1년에 한번씩 암의 재발과 합병증에 대한 경과 관찰을 하게 됩니다. 암 경험자는 암 치료후 재발없이 5년이 지나면 암에서 완치 되었고 치료 하는 병원에서도 더 이상 병원에 와서 암에 대한 경과 관찰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간 암경험자 분들은 이후에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대한 지지와 재활을 필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암경험자의 암 재발 관리 암경험자 분들이 가장 걱정 하시는 부분은 가지고 있는 암의 재발 여부 입니다. 5년 완치 판정 후에도 환자 분들은 조금만 배가 아파도, 어깨가 조금 결려도 혹시 암이 재발한게 아닐까 아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암은 2-3년 안에 재발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5년 이후에는 재발률이 현저하게 떨어지지만 위암, 대장암, 유방암과 같은 경우는 5년 이후에도 재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문적인 암 치료 기관에서 추적 관찰이 끝난 후에도 재발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으나 위암, 유방암, 폐암 경험자의 경우 위내시경, 유방촬영과 초음파, 저선량 폐 CT 검사를 1년 마다 하는 것이 좋으며 대장암의 경우에도 2-3년 주기로 대장 내시경이 추천 됩니다. 암 경험자의 건강 관리 국내 연구 결과 암 진단후에도 4명중 1명이 음주를 지속하고 10명중 1명은 흡연을 지속합니다. 지속적인 음주와 흡연은 대부분의 암의 경과를 악화시킬수 있기에 반드시 중단하여야 합니다. 또한 고지방 고당질 음식 섭취로 인한 체중 증가는 유방암과 전립선 암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균형잡힌 식단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암 경험자는 심혈관계 질환과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의 위험이 증가하고 호르몬 치료를 받은 전립선암 환자 아로마타아제 억제제를 사용한 유방암 환자의 경우 고지혈증과 골다공증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일차 진료를 통한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겠습니다. 암 경험자의 예방 접종 암 경험자는 병의 치료 과정 이나 치료 후에도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 질 수 있기때문에 올바른 예방 접종을 받는 것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2009년 신종 플루 유행시에도 암 경험자의 예방 접종률은 34%로 낮은 접종률을 보였기에 적극적인 예방 접종을 통해 감염성 질환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 경험자가 필요한 예방 접종은 매년 독감 예방 접종과 2회에 걸친 폐렴 구균 예방 접종 그리고 10년에 한번씩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접종을 하는 것이 추천됩니다. 또한 대상 포진 예방 접종은 60세 이상의 암 경험자에서 접종할수 있고 만약 항암 치료를 받은 경우라면 종료 3개월 후에 선별적을 접종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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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은혜의말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려면(요 14:16-20, 25)
    성령님을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으로 모셔라 성령님은 참 하나님으로서, 예수님 부활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 이 땅에 와계시고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과 이제부터 교제를 시작하십시오! 성령님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합니다. 성령님 앞에 꿇어 엎드려 나의 연약함을 통곡해야 합니다. 다윗 왕도 시편 51편에 통곡하며 성령님께 매달렸습니다. (시51:10-11)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2. 성령의 감동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라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영감으로 읽어야 그 말씀을 깨닫게 되고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성령님의 책망과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의 깨달음을 알고 실천하게 됩니다. 영원한 말씀을 굳게 부여잡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진하십시오! (마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에는 다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감동이 들어 있습니다. 그 감동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더 큰 일을 위해 성령의 권능을 받자 예수님의 최후 분부를 기억해 봅시다! 1) 성령침례를 기다리라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침례를 받읍시다! 그들에게 강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2) 갑절의 영감을 받기 위해 기도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갑절의 영감을 구하십시다! 이 시대는 갑절이나 죄악이 난무합니다. 음란과 방탕과 술취함과 거짓과 폭력이 날로 더해 갑니다. 이 죄악된 세상을 이기는 길은 성령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시 영적 재 충만을 위해 기도합시다! 성령의 9가지 은사를 구합시다! 성령님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도록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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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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