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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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기소위가 왜 그래...?
    고신 A 노회가 임시노회를 통해 C교회와 관련된 모든 고발건과 진정건을 총회재판국에 위탁하기로 지난 7월 6일 결의했다. 그런데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든 진정건과 고소고발건이 총회 재판국에 접수되어야 하는데, C교회 담임목사건은 총회 재판국에 접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총회재판국 서기는 노회 서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노회서기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후 노회장과 직접 통화를 했다. 재판국 서기는 “노회 결의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노회장은 “모든 고소 고발, 진정권 포함”이라고 답했다. 이후 서기는 “왜 담임목사건은 빠져 있느냐? 이 건은 종결되었냐?”고 물었고, 노회장은 “종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기는 “그러면 의도적으로 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노회장이 곤란해 질 수 있다”고 말하자, 노회장은 “노회 서기에게 빨리 접수시키라고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내용인즉 노회서기가 일이 있어, 이번 사건 접수를 기소위 서기에게 맡겼는데, 기소위 서기가 담임목사건에 대해서는 빼고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소위 이름으로 접수한 자체도 불법이지만, 노회가 결의한 내용을 어떻게 기소위가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접수하는지에 대해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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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0-07-27
  • 사직동교회 새 담임목사로 복기훈 목사
    사직동교회가 김철봉 목사 후임으로 거제 섬김의 교회 복기훈 목사를 청빙했다. 사직동교회 당회는 만장일치로 복 목사를 후임목사로 선정했고, 공동의회에서도 90%가 넘는 성도들이 찬성했다. 사직동교회 관계자는 “작년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어 새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활동을 해 왔다. 청빙광고를 하지 않았고, 추천을 받아 심사해 왔다. 청빙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복 목사를 추천했고, 당회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은혜롭게 후임 목사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담임 김철봉 목사는 금년 10월 마지막 주일 은퇴식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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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7
  • 한교총, 해제 조치에 환영
    한교총이 성명서를 통해 중대본의 교회내 소모임 금지 조치 해제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한교총은 “지난 7월 8일 중대본의 교회내 소모임 금지조치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방적 조치였다. 이 조치로 인해 일선 지자체들의 과도한 규제로 혼선이 빚어져 한국교회의 불신과 분노를 일으켰다”며 “다양한 형태와 규모로 전국에 산재한 6만여 교회에 대하여 일관된 규제조치를 시행한 것은 행정 편의적인 조급함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대본은 기계적 통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현재의 방역단계에서 ‘집회금지’가 아닌 ‘방역’에 초점을 맞춰주기 바란다”고 전하면서 22일 해제 조치에 대해서는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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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0-07-27
  •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당면 과제와 역할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교회 또 감염 확산 대상으로 여겨 정부와 정면 승부수를 두면서 종교 탄압 말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교회에서의 주일예배 이외 소모임과 교회 내 식당 운영 금지를 강력한 질병 감염 관련 지침에 불응할 경우 주최측 교회는 물론 참석하는 자체도 벌금 300만원을 부과한다는 협박성 지침이 나오자 한교총 등 연합기관이 강력하게 규탄하며 나섰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고 정면 대결로 나서자 정세균 총리는 한교총 등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교회 입장을 수용할 것으로 한발짝 후퇴하는 한편 24일자로 교회에 대한 지침은 해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향한 사회적 염려도 제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한국교회도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물론 교회는 교회가 예배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교회마다 질병 예방 지침은 그 어느 단체보다 잘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면 교회가 예방 대책의 모범 사례로 사회에서는 신뢰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할 것으로, 성찰과 반성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향후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교회 본래의 모습과 부흥을 가져 올 수 있는 대책이 있을까? 바로 교회는 교회만의 교회가 아니라 대사회적 책임과 공적 연대성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하기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분들이 많다. 학교 교실을 학생 없는 강의로 영상을 통해 강의하는 비대면과 대면 양측을 시도하는 대학들이 즐비하게 늘고 있다. 하지만 교회도 예전처럼 전도와 부흥의 두마리 토끼를 잡기에 너무 멀리 있다. 그동안 교회와 교단들과 연합기관들이 성장제일주의와 교파 분열과 연합기관 분열사태는 과히 이기적인 형태로 일관하였던 것에 대해 지성과 반성을 해 볼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어떻게 변화를 모색하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느냐는 문제를 논의 해야 할 것이다. 1895년 서울에는 콜레라 전염병에 감염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조정은 콜레라 걸린 사람들을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으로 찾아가라고 곳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 받은 언더우드 목사 부부는 물론이고 선교사들로 인력이 부족했을 때 그가 출석했던 새문안교회 교인들까지 자원봉사자로 나선 분들이 이 일에 목숨을 걸고 발 벗고 나섰다. 그들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힘 썼다고. 마침내 콜레라가 퇴치되고 나서 조정에서는 이들 자원봉사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했다. 그런데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우리가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하여 모두가 교회에 헌금으로 드렸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교회와 기독교는 위기 극복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 비단 이 뿐이겠는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유출된 기름이 온 바다를 뒤덮었을 때에 한국교회 성도들이 나서 기름을 손수 닦았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자연환경을 살리고 지원하기 위해 나선 한국교회는 말없이 봉사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한 사회적 역할로 신뢰를 회복한 것이다. 15세기경에도 로마에 흑사병이 나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시신이 시내를 채우며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을 때 야밤에 검은 복장을 한 분들이 이 많은 시신을 깨끗이 다 치웠다. 훗날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수소문하여 알았보니, 기독교 박해로 지하 카타콤에 살았던 기독교인임을 알고 콘스탄티 황제는 비로소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때부터 노약자들을 돌보고 이들을 위해 법률을 정하고 복지시설을 세우는 한편 루터의 사회복지 법령, 칼빈의 종합 구민원, 츠빙글린의 비민법 등 사회적 재난을 당했을 때 기독교가 앞장 섰던 전례가 많다. 최근 한국교회 대표적인 대형 교회 가운데 서울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포항 기쁨의교회, 부산 장유대성교회 등이 약한 교회들이 사회에 상당한 구제금을 지원하고 나섰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서는 새 사도행전을 한국교회가 써내려 갈 수 있는 희망이 바로 100년 전 평양에 일어났던 성령의 대부흥의 바람이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에 새 소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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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역사현장
    2020-07-27
  • 슬기로운 ‘여름’ 위해 머리 맞대자
    교회 핵심 사역이라 불리는 여름사역에 비상이 걸렸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여름사역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지난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표한 전국교회 핵심 방역수칙 의무화에 충격과 함께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특히 여름사역을 준비하던 교회들의 고충은 더 깊어졌다. 한국교회는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 어느 교회는 여름사역을 모두 취소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여름사역을 취소하는 그들의 마음도 이해되고, 교회가 여름사역을 진행할까 전전긍긍하는 성도들과 지역주민들의 마음도 이해된다. 그러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다음세대 사역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아이들이 즐거운 여름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안전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하면 어렵지만 여럿의 의견이 합쳐지면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 교회의 사역으로 그치지 않고 다음세대 사역자들이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나눔터가 있길 바란다. 최근 교회학교 사역자들을 만나면 이번 여름사역에 대해 서로 묻는다. 이런 고민과 대안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이번 여름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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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7-14
  • 국민청원 하루만에 20만 넘어
    8일 정부의 방역수칙 의무화 발표 이후 ‘정부의 교회 정규 예배 이외 행사 금지를 취소해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이 청원은 빠르게 전파되어 하루만에 정부답변 요건인 20만을 넘어섰다.(9일 오전 8:50분 현재 266,199명) 하지만 일부에서는 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30일 동안 20만명 이상 추천해야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답변하는 형식이다. 기본적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정부가 벌 수 있고, 교회 현장만 혼란스러워 질 전망이다. 실제 예로 지난 2월 22일 제기된 ‘신천지 강제해산 청원’의 경우 3월23일 청원(청원자 144만 9,521명)이 마감되었지만, 정부는 마감일보다 한 달 더 늦은 4월 21일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의 답변도 원론적인 수준이었다는 지적이다. 당시 정동일 사회정책비서관이 나와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하여 관련 법률을 위반하였는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혼란과 고통은 고스란히 교회 현장의 몫이 될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에서는 이 정부 들어 교회를 압박하는 수준이 지나칠 정도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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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0-07-14
  • 당혹스러운 교회 현장
    정부가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한 방역수칙 의무화 조치를 발표한 데 대해 교회 현장에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10일 오후 6시부터 예배를 제외한 구역예배, 성경공무모임, 성가대 연습 같은 소모임과 교회내 식사 금지, 예배 때 찬송도 자제(마스크 착용)해야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말하는 행위(통성기도)도 금지된다. 교회학교도 비상이다. 사실상 여름수련회 일정 등에 큰 차질이 있을 전망이다. 모 교회 관계자는 “수련회 일정을 모두 세워두었는데, 현재로서는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회 모 관계자는 “정부 발표는 사실상 수련회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수련회 일정 취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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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0-07-14
  • 교회 다녀? 진료 거부
    부산 A교회 성도가 갑작스레 찾아온 요로결석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구급차에 실려 인근에 위치한 B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진료 전 의료진으로부터 “혹시 교회에 나가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렇다고 답하자 진료를 거부당했다. 다시 근처 C병원으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교회 출석 여부를 물었고, 사실대로 답하자 진료 거부를 당해 세 번째 찾은 병원에서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A교회 성도는 통증이 심한 와중에도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진료 거부를 두 번이나 당해야만 했다. 한국교회 성도는 때아닌 믿음의 시험을 당하게 생겼다. 교회 출석으로 직장에서 배척당하고, 아파도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현실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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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0-07-14
  • [서임중칼럼] 코로나19가 그렇게 무서운가?
    나는 늙어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필요한 곳이 있는지 말씀 대언의 사역을 계속하게 하신다. 친구들이 나에게 붙여준 작금의 닉네임이 ‘서삿갓’, ‘바울사도’다. 아마도 전국을 다니며 말씀사역을 하는 나의 일상을 빗댄 것이리라. 그러나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김삿갓의 삶은 ‘죽장에 삿갓 쓰고 술 한잔과 방랑 삼천리’한 것이고, 나는 ‘복음의 신을 신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목적 있는 삼천리’이기에 그렇고, 바울은 ‘이름만 읊조려도 무릎이 꺾어지는 위대한 복음전도’가 그 삶이었기에 나 같은 미말의 목사가 바울사도의 이름 곁에 붙여지는 것 자체가 황송하고 어불성설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작금의 나의 일상은 일 년 내내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떠도는 내용은 다르지만 상황은 김삿갓처럼, 바울 사도처럼이기에 동역자들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리라.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의 정부 방역대책에 교회도 앞장 서 협력하면서 주일예배도 온라인예배로 드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시적 상황에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은 그야말로 ‘온 세계 코로나19 멘붕(mental collapsing) 상태’의 지속이다. 한마디로 카오스 현상이다. 이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상황인지력과 예지력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두려움에 함몰되는 영적생활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일상생활이어야 한다. 상황인지력이란, 코로나19 시대에 소위 ‘믿습니다’를 앞세워 정부 방역 대책에 불응하는 신앙관이 아니라 WHO와 질병관리본부의 방역대책에 순응하며 자기관리, 집단관리로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예지력이란, 성경적 관점에서 질병의 발생 원인과 대응, 그에 따른 영적 반응을 이름이다. 질병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이해와 극복하는 자세를 통해 질병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한 차원 더 나아가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잠언 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인간생활에서 마음관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더욱 깊이 교훈하는 말씀이다. 전국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 사역을 하는 동안 듣는 모든 목회자의 공통된 아픔이 예배출석과 헌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답답한 속내의 솔직한 목회내용을 점검해 보면 ‘교회 출석이 가능한데도 코로나19를 앞세워 예배 출석을 안 한다. 따라서 교회 전반적인 교육 행정 선교가 멈추는 듯한 상황’이다. 그럴 때마다 조언해 주는 것은 목회자부터 코로나19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야함을 강조한다. WHO는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서 쉬 멀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견한다. 수많은 사람이 세계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고 바이러스는 변종으로 더욱 우리의 생활을 위축시키며 불안하게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수단은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하기 뿐이다. 이미 이것이 오늘의 일상생활이 되었다. 이런 때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습관도 영적으로 자연스럽게 더욱 승화되어 내 영혼을 지키기 위한 영적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육신의 죽음은 두려워하면서 영원한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신앙인이 아니다. 가시적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면서 죄의 무서운 바이러스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야고보 4:8절에서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권고하셨다. 코로나19 때문에 손 씻기가 일상이 되듯 손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야고보서 1:26절에서는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일상화하면서 자기 입에 재갈을 씌우지 못하면 헛된 신앙이다. 사도행전 15:29절에서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고 했다. 요한1서 5:21절에서는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잘 지키면서 죄악된 것들에서 거리를 두지 않는 생활을 하면 코로나19로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죽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역대하 7:13~14절에서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WHO를 중심으로 온 세계가 코로나19 백신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면 또 다른 질병이 발생한다. 하나님은 근원적인 백신을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1서 1:7).”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4).” 코로나19가 그렇게도 무서운가? 영혼을 죽이는 죄의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백신을 널리 전파하는 복음 전파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여호와 라파’를 노래하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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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0-07-14
  • [성서연구] 주 예수를 믿으라
    코로나19는 익숙하던 많은 것을 빼앗았습니다. 예배당에서 모이지 못하니 예배당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구역, 남녀선교회, 교회학교, 소그룹 등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초대교회 당시와 흡사합니다. 초대교회도 예배당, 남녀선교회, 노회, 총회도 없었습니다. 평소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초대교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해 왔는데, 지금이야말로 초대교회를 배울 최적의 기회입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초대교회의 신앙을 깨닫는다면, 코로나19를 축복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본문은 초대교회의 신앙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온전하게 했는데, 이로 인해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워져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밤중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했는데, 그 밤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벗겨졌습니다.(행 16:25-26)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마음으로 굴복한 간수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고,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행 16:31) 이 대답은 초대교회 신앙의 핵심입니다. 모든 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데서 출발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교회란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성령님 안에서 사랑과 기도로 연결된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 선배들은 예배당도, 교회 조직도 없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기도했고, 전도했고, 말씀을 따라 살려고 힘썼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려고 순교까지 했습니다. 이게 초대교회의 신앙이었습니다. 당시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단순했지만,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고, 거기 사람을 배치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조직에 들어가 일을 많이 하면 믿음이 좋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거기 붙어있는 군더더기가 더 중요해지는 왜곡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 더 극심합니다. 목사를 소개할 때도 몇 대째 믿는 가정 출신인지, 학벌은 어땠는지, 신학교 성적은 어땠는지, 그 후 어느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를 장황하게 소개할 뿐, 얼마나 주님을 간절히 믿고 사랑하는지,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지 등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세요>는 말 대신 <교회에 다니세요>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은 안 믿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런 이들이 세속적 사고로 교회 일을 하니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는 비극이 생깁니다. 기억합시다. 기독교 신앙은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당에 자주 모이지 못해도, 아니 전혀 모이지 못해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는 본질보다는 조직과 제도에 매였던 것에서 벗어나 예수님께 더 집중할 기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에 근거하여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 사이에서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진정한 신앙을 훈련할 기회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 생태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며, 지금까지 흐릿해졌던 주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또렷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성도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성도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메시지를 다시 새길 기회입니다. 코로나19 시대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정말 초대교회를 닮게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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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연구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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