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7(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송시섭 교수] 노멘(nomen)과 아그노멘(agnomen)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것이다. 정부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다가, 일종의 별칭(別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그 시작으로 그 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사용되다가, 다시 ‘이명박 정부’에 와서 다시 대통령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는 아마도 미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administration)라고 부르고 있는 점에 비추어 ‘윤석열 행정부’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성경에서도 이름 또는 명명(命名, naming)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 곳곳에서 이름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예수님도 의미심장한 순간에 제자 시몬에게 게바 또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것을 보면 ‘이름’은 성경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이름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평소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가 ‘사울’에서 ‘바울’로의 이름 변경의 배경이다. 이전까지는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이 ‘바울’이 되었다는 설교가 강한 인상으로 자리 잡아 아마도 그 무렵 언제쯤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이름이 바뀌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사도행전 13장에서는 이름 변경의 배경을 1차 전도 여행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울이 바나바와 함께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Cyprus)섬에 도착하고, 섬을 가로질러 바보(Paphos)에 이르러 바 예수(Bar Jesus)라는 마술사(엘루마), 유대인 거짓 선지자를 만나 그의 방해를 물리치고 총독인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갖게 했다는 기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특히 위 마술사를 주목하여 꾸짖는 장면에서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 이전 줄곧 써왔던 ‘사울’이라는 이름 대신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그 후론 ‘사울’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그 이름을 ‘바울’로 통일하는 기술(記述)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이 변경된 이유나 배경과 관련하여 학자들 간의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나 그 중 눈길을 끄는 설명이 있다. 초대 교부시절부터 주장되어 오랫동안 인정받았으나 최근에 강한 비판을 받고 있는 해석으로, 그 주장의 요지는, ‘사울’로부터 ‘바울’로의 이름 변경과 관련하여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Scipio)가 아프리카(Africa)를 점령한 후 그의 이름(nomen) 뒤에 아프리카누스(Africanus)가 추가된 것처럼 ‘사울’이 총독 ‘바울’을 개종시킨 후 ‘바울’이라는 새로운 이름(agnomen)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로마의 특이한 명명법(命名法)에서의 착안한 발상이 아닐까 한다. 로마의 이름 체계상 ‘아그노멘’(agnomen)은 일종의 별명(別名) 내지는 훈장(勳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은 총독 ‘바울’이 믿음을 갖기 전에 이미 ‘사울이 바울로도 불렸다’(행 13:9)는 본문과 배치되지만 그 주장의 동기는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이는, 우리의 이름이, 인생의 어느 순간을 지나며 우리의 성취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윤석열 정부’, 아니 ‘윤석열 행정부’는 출범시 이름(노멘)에 불과하고, 역사에 기록될 이름(아그노멘)은 분명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 외쳤던 ‘공정의 정부’가 될지, ‘상식의 정부’가 될지, 아니면 ‘국민통합정부’가 될지는 앞으로 5년간 그 정부가 이룬 업적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이 역사적으로 최종결정될 것임은 분명하다. 부디 국민들의 정권교체에 대한 오래고 깊은 열망을 떠안아 탄생한 정부니만큼 5년이 지나 다시 얻게 될 이름이 영광의 ‘아그노멘’이 되길 기도한다. 그래야 찬반을 넘어, 코로나를 뚫고, 밤잠을 설친 모든 주권자들이 행한 투표의 가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것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정론
    2022-03-18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3
    지금의 총신대학교가 ‘총회신학교’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기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배경에서 설립되었는가를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비록 총회신학교가 대구에서 개교했지만, 전쟁기였고 한국교회와 부산 지역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는 총회신학교 설립과 신학교육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서 기록했지만 1946년 6월 조직된 남부총회는 1940년 설립된 조선신학교를 총회 인준 직영신교로 결의했고, 1948년 6월 설립된 장로회신학교도 1949년 4월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35회 장로교총회에서 총회직영신학교로 인준을 받았다. 결국 총회 안에 두 직영 신학교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양 학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을 둘러싼 대립이나 경쟁은 불가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경직 목사의 제안으로 총회에 ‘신학교합동위원회’가 구성되었고, 35회 총회는 장로회신학교와 조선신학교의 합동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합동이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조선신학교 측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1951년 5월 부산중앙교회에서 모인 제36회 총회(속회)에서는 조선신학교측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 신학교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총회 직영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는 53:3이라는 압도적 지지로 가결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제36회 속회 총회기간인 5월 30일 부산 중구 보수동에 위치한 광복교회에서 권연호 목사를 이사장으로, 노진현 목사를 서기로, 김광현 목사를 회계로 하는 이사회를 구성하고 신학교 설립을 협의하였고, 그해 7월 25일 대구고등성경학교에서 모인 제2차 이사회는 총회신학교를 대구에서 개교하기로 결의하였다. 교장과 교수 선임에 대하여는 장시간 논의하였는데, 조선 신학교의 반발을 고려하여 박형룡 대신 감부열 선교사를 교장으로 선임하였다. 교수로는 박형룡, 권세열, 김치선, 계일승, 한경직, 명신홍 목사, 그리고 인톤(William Linton), 조하파(Joseph Hooper) 선교사를 선임했다. 이런 준비를 갖추고 1951년 9월 18일 화요일 ‘총회신학교’가 대구 대신동의 서문교회당 하층에서 개교하였다. 조선신학교가 합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실제적으로는 박형룡이 교장으로 있던 장로교신학교가 이름만 바뀌어 재 개교한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총회 결의에 따라 장로회신학교를 해체하고 총회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자 부산진교회에서 수업하던 신학생들은 다시 대구로 몰려들었다. 강계찬, 손영섭 같은 이들도 부산에서 한 학기 마치고 대구로 갔다. 결국 부산진교회에서 시행된 신학교육은 한 학기로 끝나고 만 것이다. 대구에서 총회신학교를 개교할 당시 신학생 수는 200-3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500여명에 가까운 많은 학생들이 몰려 왔다. 감부열 교장의 지적처럼 ‘총회신학교는 나면서부터 성인이었다.’ 교사가 부족하여 대구 대신동에 있는 안두화 선교사 쓰던 집을 기숙사와 사무실로 사용하고, 서문교회 외에도 남산교회 건물을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개학 당시 상황에 대해 권세열 선교사(교수)는 이렇게 적었다. “새로운 장로회 신학교가 대구에서 약 500명의 학생들과 함께 개교하였다. 그 학생들 중 반수 이상의 학생들의 아버지나 형제들은 순교당하였거나 가족이 이산(離散)된 이들이며 북한에서 내려온 이들이다. 학생들은 교회 건물을 임시교실과 기숙사로 사용하며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과 공부 외에도 교수의 지도하에서 노방전도, 개인전도, 교회심방, 병원과 교도소 방문 등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교회를 개척하고 성경구락부에서 아동들을 가르치고 있다.” 총회신학교가 1952년 5월 개학했을 당시 재학생은 494명에 달했는데, 이중 여학생이 74명이었다. 이를 보면 반 조신(反 朝鮮神學校)의 범 보수적 환경이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김재준 목사가 신학적인 문제로 총회에서 제명되자, 결국 조선신학교 측은 1953년 기독교장로회로 분립하게 된다. 대구에서 시작된 총회신학교는 서울 수복 후 서울 남산의 옛 조선신궁 터의 남산교사로 이동했고, 1953년 8월에는 감부열에 이어 박형룡 박사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당면과제는 교육부로부터의 인가와 교사의 건축이었다. 그래서 1954년부터 이를 추진하였고, 이를 위해 박내승을 총무과장으로 임용했다. 그러나 그가 신학교 건축기금으로 모아 둔 3천만 환을 사기한 사건이 발생하여 총회는 내분에 휩싸였고, 결국 1959년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다. 물론 다른 원인도 있었지만.
    • 오피니언
    • 칼럼
    • 부산기독교이야기
    2022-03-18
  • [서임중칼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님!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로 함께 달음질하셨던 이재명 민주당 후보께는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재론할 것도 없지만 대선후보 모두가 대한민국 헌법 1조(⓵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⓶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국태민안을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달음질하셨기에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의 지도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희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대통령 선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후보의 公約이 당선 이후의 직무수행을 통해 대부분 空約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디 대통령뿐이겠습니까? 여의도 1번지의 소위 選良이라는 국회의원들은 不良의 언행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치게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의 후보로서의 公約은 대부분 空約이 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론적 가치보다는 실천적 가치의 진정한 리더십의 지도자를 국민들은 보고 싶은 것입니다. 목사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역을 하기에 여야의 개념이 없고 지역갈등이 없으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없는 中庸의 使役者입니다. 오직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정치적, 사회적 관계에서는 항상 원칙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通鑑하고 해석하며 가르치고, 관계개념으로는 소외계층과 약자의 편에서 이해하며 관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聖職者라 명명합니다. 나는 목사로서 진정한 leadership은 listen에서 나온다는 목회 철학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LISTEN은 단순한 들음(hear)이 아닌 ‘경청’이기에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민들만 바라보고(Look), 국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며(Interest), 백성들의 관점을 중립적 위치에서 헤아리고(Staying on Topic), 백성들에게 적게 말하며 많이 들어주면서 소통하고(Talk & Listen), 백성들에게 눈을 맞추고(Eye contact), 백성들의 소리에 진심 어린 반응을 할 때(Nodding)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되어 그제서야 비로소 지역과 세대와 빈부의 갈등이 아닌 통합의 국태민안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당선자님의 유세기간 동안 말씀하신 내용의 중심에는 이 내용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음을 보았고, 또한 들었기에 다시 한번 되새겨 드립니다. 그렇게만 하신다면, 그리도 강조하신 국민통합과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이 이 나라 국민들의 생활에서 꽃피게 될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와 같은 정치리더십을 몰라서가 아니라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청와대를 떠날 때는 단 한 분도 백성들이 박수 치는 가운데 떠난 분들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政治가 아닌 痴政의 결과입니다. 본래 政治란 백성들이 바르게 가도록(正) 손에 法의 회초리를 들고 다스리되(攵), 백성들이 호미나 괭이를 들고(厶) 자기 자신의 삶의 몫을 잘 감당하여 입을 채우는(口), 즉 자활 의지가 물 흐르듯(氵) 다스리는 것이 政治인데 오히려 그 반대의 痴政을 하게 되니 국민들은 이리도 가슴이 시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실리콘밸리 리더십 그룹 CEO인 ‘칼 과디노’(Carl Guardino)가 지적한 정부 관료나 모든 기관단체의 지도자의 성공해법은 3L, 즉 경청하고(Listen), 학습하고(Learn), 주도(Lead)해야 한다는 말을 공감합니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자님의 후보 기간 언행을 망원경과 현미경의 炯眼으로 보고 듣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언행은 신뢰와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유세 기간의 모든 언어의 중심에 國民이 주제어가 되었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여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만 한다면…’ 이라는 同意를 하면서 박수를 보낸 것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씀이 안방에 전달되던 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公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5년이 지나는 동안 소위 작금의 언론중심의 화두어가 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 현실에, 이 公約은 空約이 되어왔음을 아파하는 것 또한 나만의 아픔이 아닐 것입니다. 2022년 5월 10일은 윤석열 당선자님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입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뛰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취임사에서는 무슨 메시지를 역사에 남길 것인가 기대를 해 봅니다. 그리고 취임사의 말씀이 어떤 내용이든 대국민 대통령 취임사가 空約이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히 제언하거니와 성경에서 교훈하는 이스라엘의 왕 가운데 사울 왕과 다윗 왕의 통치 역사를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사울은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는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며 아래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무엘의 말을 경청하고 순응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는 listen이 아닌 hear로 인하여 하나님도 사무엘도 관심이 없었고, 자기 생각 자기 뜻대로 통치하다가 퇴위가 비참했고, 다윗은 윤석열 당선자님이 자주 언급하신 것처럼 初心을 잃지 않고 하나님과 지도자 사무엘의 말을 항상 경청하고 순종함으로써 역사에 남을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윤석열 당선자께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답이 있습니다. 신학적 人間論에서 인간이란 Being이 아니라 Becoming입니다. 存在가 아니라 存在化, 곧 ‘됨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입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님은 그날 취임선서를 함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퇴임하시는 그날까지 ‘대통령이 되어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날을 기다리고, 나아가 2027년 5월 10일, 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일 여야, 지역, 세대, 빈부의 갈등이 없이 온 국민이 박수치는 가운데 퇴임하시는 그날, 역사에 남을 좋은 ‘대통령이 된’ 그날 보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그것이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는 公約이 空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2-03-11
  • [소강석칼럼] 겨울은 한 번도 쉽사리 간 적이 없지만...
    지난 2월 8일에 인천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회장과 사무총장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하면서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갖지 않고 그냥 정기적인 모임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회장도 없었고 그냥 지역 별로 돌아가면서 초청을 하는 모임을 갖도록 했습니다. 다만 제가 그 모임의 운영경비를 대부분 후원하고 섬길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종교소득과세 문제가 대두되며 한국 교회가 들썩들썩할 때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때 교계 연합기관은 서로 세 다툼을 하느라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17개 광역시도 연합회 대표회장과 사무총장들이 당시 여당의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설득을 해서 ‘종교인소득과세’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포괄적차별금지법을 막고 너무 래디칼하게 가려고 하는 지방 인권조례를 균형 있게 연착륙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윤보환 대표회장님의 초청으로 인천에서 모였는데, 제가 상임의장 자격으로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고 다음 일정 때문에 조금 일찍 이석을 해야 했는데 어느 지역의 대표회장님께서 잠깐만 저를 좀 만나자고 하며 할 얘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교계의 절대다수의 목사님들이 소 목사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말도 듣고 저런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생각이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받고 공격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절대 상처받으면 안 됩니다. 그런 소리에 절대로 마음 쓰지도 말고 일체의 반응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목사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고 육체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목사님이 건강해야 계속해서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마음 관리, 몸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분의 말씀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고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저도 지난 날 힘든 겨울 광야 길을 걸어온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아직도 제가 걸어가야 할 겨울 광야길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이런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겨울은 한 번도 쉽사리 간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어느 해도 봄이 한 번도 쉽게 온 적은 없었습니다. 봄이 오는 듯하더니 또다시 추워 지고 봄이 다 온 듯하더니 또 꽃샘추위가 오고요. 오죽하면 봄이 온 줄 알고 속아 미리 피어난 매화나 목련꽃잎들이 추위에 언채 눈물되어 떨어지기도 했지 않습니까? 저의 삶과 사역의 겨울도 아직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연합기관을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쉬지 않고, 한국의 공교회를 위한 공적사역을 멈추지 않는 한 제가 걸어가야 할 겨울 광야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이 한 번도 쉽게 간 적이 없지만, 그 어떤 겨울도 가지 않는 적은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매서운 겨울도 새봄을 이기지는 못하죠. 그래서 저희 교회가 섬기는 전철 이미지 광고에도 이런 글자를 새겨놨습니다. “그 어떠한 겨울도 새 봄을 이길 수 없지요.” 그렇습니다. 겨울이 한 번도 쉽게 간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안 간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새봄을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올해도 꽃샘추위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몰라도 새봄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앞에 있는 겨울 광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질 것이고 들녘에서 피어나는 푸른 잎새들의 잔인한 생명의 찬가와 합창소리가 대지에 메아리치는 날을 맞게 될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소강석 칼럼
    2022-03-04
  • [성서연구] 요한에서 예수님으로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가장 부러운 인물 중 하나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주목을 받으려면 사람들이 밀집된 곳에서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아우들도 예수님께 갈릴리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에서 사역하도록 권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4절을 보면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인적이 없는 유대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유대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찾아다닌 설교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을 기웃거리는 요즘 사역자들과 비교됩니다. 또 그는 무엇에도, 완전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제사하러 오는 이들이 드리는 것으로 먹고살다보니, 많은 제물을 드리는 이들에게 매였습니다. 아무래도 왕들이 가장 많은 제물을 바치다보니, 제사장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스스로 생활을 해결했던 선지자들은 비록 가난한기는 했지만,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왔습니다. 그들은 권력에 매이지 않고 소신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사람에게 매여 소신있게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과 비교됩니다. 그러면서도 요한의 메시지는 강력한 폭탄 같았습니다. 강포한 군인들과 물질에 눈먼 세리들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칭찬하고 축복하면서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쳤고,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외쳤습니다. 만약 요즘 이런 설교를 하면 그날로 쫓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설교에는 권위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그의 탄생과 사역이 예고되었을 정도로, 탄생부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매우 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서 기적적으로 탄생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때로 저는 한국교회에 세례 요한 같은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그것은 요한은 우리에게 <나를 보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예수님을 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함께 예수님의 하실 일을 증거했습니다. 3장 11~12절입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은 자신은 기껏해야 회개를 위한 세례를 베풀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고백하게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게 하는 것까지가 요한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지은 죄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사람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며, 심판하실 분이었습니다. 결국 요한은 <내가 대단해 보이지만, 나를 보지 말고, 진정한 구원자인 예수님을 보라>고 외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대단한 설교자, 선교사, 사역자들이 있지만, 우리 구주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 같은 사역자가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님만 바라볼 때, 거기 희망이 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충만하길 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2-03-04
  • [독일이야기]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1)”
    독일 교회는 근대 역사에서 독일국가와 함께 많은 잘못과 시행착오를 범했다. 한편으로는 국가의 일에 무관심하면서 그릇된 정치를 방관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를 기독교신앙과 동일시하면서 교회를 정치화시켜 정권의 도구로 만들고 말았다. 1차 대전에서는 당대 독일 신학계와 교계의 지도자들이 대거 황제의 전쟁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2차 대전의 원흉인 히틀러가 1933년 반자유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표방하며 집권하자 많은 기독교지도자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그들은 ‘독일그리스도인’이라는 교단까지 만들어 히틀러의 유대인말살과 전쟁정책의 후견인이 되었다. 패전 이후 독일교회는 불의한 전쟁들에 앞장섰던 자신들의 과오를 누구보다도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평화를 교회가 지향해야할 가장 소중한 사회윤리적인 방향키로 삼았다. 교인들에게 평화를 설교하고 자녀들에게 평화를 교육하며, 국가에는 평화를 지향하는 정책을 요구했다. 이런 독일교회의 단호한 평화주의적 태도가 독일통일에 큰 밑거름이 된 것이다. 독일은 전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된 냉전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고, 1961년에 세워진 베를린장벽은 이 냉전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이런 가운데 평화를 앞세웠던 독일교회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냉전논리에 일방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도리어 동서화해와 이념갈등의 극복을 위해 힘썼다. 1945년 동서독 분단에도 불구하고 양쪽 교회들은 1969년까지 독일개신교교회협의회(EKD)라는 하나의 조직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서로 간에 많은 만남과 교류를 추진하였고, 하나 됨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들의 노력은 자연스레 통일을 갈망하게 했다. 이것을 경계한 동독정권은 1969년 동독교회를 EKD와 분리시켜 동독개신교연맹(BEK)이라는 이름으로 묶으면서 서독교회와의 교류를 단절시켰다. 아울러 기독교인들은 공산당원이 되지 못하게 하는 등 무언의 압력을 통해서 동독교회를 고사(枯死)시키는 정책을 펼쳐갔다. 수많은 교인들이 이탈하는 가운데 교회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쳐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독의 교회들은 자신들을 소위 ‘사회주의 안에 있는 교회’로 칭하면서 사회주의와 공존과 비판을 겸하여 갖는 교회로 조심스럽게 자리매김을 했다. 이때 서독의 교회의 반응이 매우 중요했다. 얼마든지 색깔론을 뒤집어씌워 동독교회를 빨갱이교회로 매도하면서 교류를 단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냉전시대에는 그렇게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독교회는 그리하지 않았다. 동독교회를 비난하거나 매도하기보다는 사회주의 독재정권 아래서 취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동서독 교회의 관계를 ‘특수한 공동체’(Die besondere Gemeinschaft)라 부르면서, 주어진 상황에서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했다. 이것은 서독교회가 자신을 ‘자본주의 안에 있는 교회’로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체계를 절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모든 정치이념을 뛰어넘어 서있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했었던 것이다.
    • 오피니언
    • 독일이야기
    2022-03-04
  • [시사칼럼]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
    바야흐로 선거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스무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여덟 번째 맞이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에 즈음하여 부쩍 시민들이 많이 하는 넋두리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뽑을 사람이 너무 없다는 푸념입니다. 특히나 이번 대통령선거전만큼 ‘차악(次惡) 논쟁’이 벌어졌던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시민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중적인 고민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체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투표의 기준이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가?’라는 질문과 대답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부합하는 후보가 없는 실정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고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 사람을 보라’를 외치고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 및 형제와 자매간 혹은 교우들 사이에도 정치적 분쟁이 발생하여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합니다.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에 몇 가지 오해가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세속적인 선거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선택하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대답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일세를 풍미하고 각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와 식견을 가진 후보자들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기준이 어떠합니까? 성경 속에서 이와 같은 기준을 만족시킨 사례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직접적으로는 다윗 한 사람밖에 없지 않았던가요?(행 13:22) 더군다나 세속적인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유권자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정당의 이름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표를 의식해서라도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공식적으로 표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후보자 군(群)에서 찾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신자는 신앙이 아니라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 그리고 인품이나 행동거지를 잘 판단해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믿는 자들에게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선거를 두고 하는 신자들의 기도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신자들은 선거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기도 응답의 결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표현을 빌자면,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세속적 예전”입니다. 이러한 예전(禮典)에서 신자의 정치적 기도는 이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즉, 이번에 선출되는 후보자가 변화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속담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신념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변화시킨다는데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선거판 자체가 변화하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조차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이행론”(Adam Przeworski)을 주창합니다. 신자들은 더욱 그런 기도를 해야 마땅합니다. 앞으로 더 이상은 ‘차악을 위한 선거’가 재현되지 않게 하시고, 좋은 후보자들이 많이 나와서 짐 월리스(Jim Wallis)의 말처럼 “공동선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정치적 주권을 굳건하게 신뢰해야 합니다. 세속 군주가 신자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다리오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들의 이름이 연이어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의 왕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처형하려다가 실패한 직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예루살렘에는 바울이 구제금을 전달하러 와 있었죠(행 12:13, 25). 훗날 로마서에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유대 왕이 그러했지만 로마의 황제라고 다를 바가 있겠느냐는 준엄한 선포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시대에도 같은 정치적 원리가 작동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가 선출되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를 사용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2-03-04
  • [은혜의말씀] 출애굽의 서막(출1:8-14)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으로 ‘출발’ 혹은 ‘탈출’이라는 뜻의 헬라어 <엑소도스>가 명칭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주제는 ‘구속-구원’ 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구속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셔서 결국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입니다.(7절) 본문에 보면, 인구 증가를 표현하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중첩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번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창 15:5, 46:3)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7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400년 전 약하디 약한 야곱의 12 아들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이라는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 역사의 무대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불타는 사명을 가슴에 안고 계속 전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동래와 부산 그리고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 복음의 구조선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해진 학대입니다.(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조는 점점 불어나는 이스라엘에 일종의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고된 노동으로 생활을 괴롭게 하고 심지어 산파들을 시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갈 뿐 아니라 강해져 갑니다.(12절)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하는 사단의 음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사단의 공격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연단 받으므로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강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의 숨겨진 선물이요, 은혜의 방편입니다. 세 번째, 참으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한 믿음의 여인들입니다.(17절) 노동을 통한 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는 산파들에게 태어나는 남자 아기는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태양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바로의 명령은 얼마나 무거운 것입니까?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을 어깁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 왕의 말보다 하늘나라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입술로 행동으로 또 물질로, 신앙고백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믿음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그런 분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놀라운 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20절, 21절)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가족,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십시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2-03-04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 엄마가 그어주는 사랑의 경계
    막내가 올해 7살이다. 아이 4명을 양육하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잊는다’는 사실이다. 막내를 낳고 모유수유를 시작했을 때, 분명 위의 형제들도 수유를 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조금 먹다 잠들어서 금방 깨는 것도 생소했고, 먹다가 사래가 들려 콜록콜록 거리는 것도 낯설었다. 형과 누나들이 혼자 샤워를 했을 때도 기특했는데, 막내가 혼자 머리를 감고 나올 때는 마치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처럼 놀랍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먼저 태어난 형과 누나의 육아 시절을 까맣게 잊으며 막내의 모든 행동이 처음인 것처럼 여겨질 때 느끼는 나의 감정은 “막내가 무조건 예쁘고 귀여운” 사랑스런 마음이다. 어른들이 “막내는 뭘 해도 막내다. 심지어 혼낼 때도 이쁜 게 막내다”고 말할 때 “그럼 마음이 형제 간 차별을 조장하는데… 내가 낳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이쁘지, 누군 덜 이쁘고 또 누구는 더 이쁜게 있을까” 싶었는데 사랑의 크기는 같을지언정 사랑의 모양과 색깔은 다른게 분명하다. 막내는 막내다. 최근에 7살 된 막내에게 잊지 못할 일이 생겼다. 날이 조금 풀린 날 아이들과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는데, 두발 자전거를 타는 형을 유심히 보더니 “엄마, 나 이제 네발 안 타. 두발 자전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두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형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막 7살이 된 어린 아이에게 단번에 보조 바퀴를 뗀 자전거를 주는 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위험한 일이어서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그 사이, 그 찰나 같은 순간에 막내는 떼를 쓰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차례 더 어르고 달래 보았지만, 두발을 잘 탈 수 있다는 아이의 말에 오히려 설득 당해 그 때부터 맹훈련이 시작되었다. 약 2시간 정도 열심히 넘어지더니 어느 순간 비틀비틀 거리지만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혼자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기도 놀랐는지 아이도 엄청 기뻐하고, 스스로 바람을 가르며 행복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보는 나도 정말 감격스러웠다. 첫째, 둘째가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를 탔을 때도 지금처럼 기뻐했겠지만,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막내의 두발자전거가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다. 내가 막내를 조건없이, 무한히 사랑한다는 것을 나머지 아이들이 눈치챘고, 무엇보다 막내가 사랑받는 자신의 위치를 누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형아, 누나보다 날 더 좋아해”라는 말을 곧잘 하는 막내가 이제 슬슬 그런 나의 마음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막내 특유의 애교와 귀여움을 발사하며 무조건 자기 뜻대로 일이 되도록 만들었다. 형에게 잘못을 했을 때도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인 것 마냥 눈물을 훔치면서 혀 짧은 소리로 “엄마, 형아가 자꾸만 나한테 마음대로 해”라며 자기 잘못은 말하지 않고,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아직 애기니까 조금만 먹을거야”라며 불리할 때 쓰는 막내 카드를 마음대로 막 사용한다. 하루 이틀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더 이상 두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경계를 그어주기 시작했다. 운동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그라운드가 그어져 있다. 축구는 가로 120m, 세로 80m의 축구장에서만 경기를 해야 하고, 야구는 1루와 3루 사이에서 오고 가는 공들만 득점으로 인정된다. 마찬가지로 탁구도 규격의 탁구대에서만 경기가 치러지고 농구, 달리기 등 모든 경기는 정해진 경계 내에서만 자유롭게 경기할 수 있도록 정해 놓았다. 이제 우리 막내에게도 그런 경계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는 막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경기장을 조금 벗어나도 이해해줬지만 이제는 더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확실한 경계를 지어줘야 할 때가 되었다. 물론, 아이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경계가 생겨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엄마가 만든 사랑의 경계가 구속이 아니라 더 행복한 자유를 준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인 나에게도 사랑의 경계는 아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양육하고 치우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방법이될 것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 아이와 나는 함께 자란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2-03-0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빵돌이에게 찾아온 기적
    저는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학교에서 빵돌이를 했습니다. 당시 학교 매점에서 빵을 파는 아이를 빵돌이라고 불렀습니다. 매 수업시간 마치는 종 치기 5분 전에 저는 일어나서 혼자 교실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래도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빵돌이가 빵 팔러 가는 가보다 하는 겁니다. 저는 애들이 공부하는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갑니다. 그래도 아무도 제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빵돌이니까요. 매점으로 가서 문을 열고 빵을 준비합니다. 드디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학생들이 매점으로 뛰어오기 시작합니다. “야, 나 빵 줘.” “나, 볼펜 줘.” “나, 우유.” 정신없이 팔다가 다시 수업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다시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매점 문을 닫고 애들이 공부하는 복도를 지나갑니다. 아무도 절 쳐다보지 않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지 5분이 지나 수업이 한창인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도 아무도 절 쳐다보지 않습니다. 빵돌이니까. 저는 그렇게 투명인간처럼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다니며 수업의 앞뒤 10분을 잘라먹고 독학으로 보충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친구들이 축구하는 점심시간에 저는 내내 빵을 팔았습니다. 학생들이 농구하는 방과 후 시간, 저는 내내 빵을 세며 재고를 파악했습니다. 왜 빵돌이를 했을까요? 학비를 못 내서 그랬습니다. 집에 학비를 낼 돈이 없으니까 빵돌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빵돌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저한테 “야, 너 빵돌이 아니야.” 하는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예? 하나님 저, 잘 보세요. 저 빵돌이 맞거든요.” “아니야. 너는 내 자녀야.”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큰데, 너 내가 안 보이냐? 야, 네가 누구인지 뭐가 중요해? 내가 중요하지. 너 내 자녀야.” 그러시는 겁니다. 저는 놀랐지만 그 자리에서 “아멘!” 했습니다.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겼습니다. 학교만 오면 늘 눌려 살던 제게 하나님은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을 가지고 그해 전교 학생회 부회장에 출마했습니다. 당시 저희 학교의 학생회장, 부회장 선거는 학생들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선거에 나갔을 때 제일 반대한 게 누구였을까요? 바로 저희 친형이었습니다. 한 살 위의 형이 제게 한 말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빵돌이는 빵 팔아라.”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가 빵돌이를 찍어 주냐? 너 빵돌이인 걸 전교생이 아는데 누가 너를 찍어 주냐? 빵돌이는 빵 팔아라.”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빵돌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학교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 수긍하고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내가 빵돌이인 줄 전교생이 다 알아. 맞아. 그런데 나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항상 정직하게 빵을 팔았어. 한 번도 내가 애들한테 짜증 낸 적 없고, 한 번도 속이거나 잔돈 적게 준 적 없고, 바꿔 달라고 한 것을 안 바꿔 준 적도 없어. 나는 정직하고 성실했어.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사는 걸 보여줄 거야. 그래서 나는 이번 선거 꼭 나갈 거야.”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형, 나는 선거 운동이 필요 없다. 애들이 나한테 매시간 와. 내가 가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 와서 나한테 부탁해. 빵 좀 달라고. 우유 좀 달라고. 아이들이 늘 줄을 서, 내 앞에. 나를 만나려고. 나 명찰 달고 있잖아? 전교생이 내 이름을 안다구. 형! 나는 이번 선거 나가면 이길 수밖에 없어! 나 이거 안 나갈 수가 없어.” 그리고 선거에 나갔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현직 빵돌이 신분으로 그해 학생회 부회장에 당당히 당선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해에 저는 학교에서는 전교 학생회 부회장이 되었고 교회에서는 고등부 회장이 됐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에서 고등부 회장은 학교에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또 학교 회장들은 교회 오면 예배드리고 나면 다들 바로 내빼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학교에서는 학생회 부회장 잘하게 도와주시고 교회에서는 고등부 회장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시간 부족해도 공부할 때 집중력 주시고 교회에서는 잘 봉사할 수 있게 믿음 더해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응답해주셔서 저는 학교에서는 부회장으로, 교회에서는 회장으로 둘 다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 년 후에 다시 출마한 학생회장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어 학생회 부회장에 이어 전교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부족해도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통해 역사하시고 영광 받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다음세대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며 살아가기를 꿈꾸며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3-0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