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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칼럼] 선물같은 삶, 그 누림을 위해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지난 2월 26일 소천한 이어령 전 장관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문학 평론가이자, 교육자, 언론인, 저술가 등 한 시대에 지성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고백입니다.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일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식, 부, 능력 등이 내 힘으로 일구고 얻었다 생각했는데, 인생을 마감할 즈음에 돌아보니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선물같은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번 주어진 우리의 인생, 선물같은 우리의 삶을 좀 더 멋있고 여유있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읽기’와 ‘뇌과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를 통해 읽는 행위를 뇌과학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문장을 읽을 때, 비판적 사고, 공감과 이해, 내면의 성찰 등이 일어남을 연구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읽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요즘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SNS를 읽고 TV, 영화 매체를 보고 읽고 삽니다. 글을 읽음으로 우리 뇌는 사고를 위한 체계를 갖추고,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이 생각이 쌓여 갈 때 삶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왕 무언가를 읽어야 한다면, 좋은 것을 읽읍시다. 지금 나는 어떤 책을 얼마나 읽고 있는가요? 두 번째는 ‘묵상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읽다보면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하다보면, 그 생각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사람들이 갖고자 원하는 ‘지혜’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물론, 창의력도 생각을 통해 드러납니다. 읽고, 그 읽은 내용을 조용히 읊조리면서 표현하면 동시에 머리에 새겨지고 묵상은 시작됩니다. 세 번째는 ‘기도하며 써야’ 합니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기록입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좋지 않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돌이나 비석에 글을 새기면 절대 없어지지 않고 오래 갑니다. 광개토 대왕릉비에 새긴 글귀는 비바람의 모진 고통 속에서도 닳아지지 않고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쓰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단지 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기록이 되고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확장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글로 남겨봅시다. 예수님도 글을 쓰시며 간음한 여인을 살리셨습니다(요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네 번째는 ‘토론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으면 외고집, 외골수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SNS를 활용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졌습니다. 생각을 쓰고, 정리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교한 후 다시 내 생각을 정리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훨씬 분명해져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4가지를 토대로 좀 더 멋있고 여유있는 삶을 살고 싶은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3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공동체, 지도자, 좋은 공간입니다. 교회는 이 3가지를 다 갖춘 최상의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같은 삶을 멋있고 여유롭게 잘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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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2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4)
    대한신학교: 김치선 박사가 설립한 대한신학교도 전시 중 부산에서 신학교육을 시행하였다. 대한신학교는 서울의 남대문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치선(金致善, 1899-1968)가 1948년 설립한 야간신학교였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김치선은 캐나다장로교 영재형(Luther Young)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함흥의 영생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하교를 졸업하고 1927년 4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한 학기 수학한 후 영재 형 선교사를 따라 일본으로 가 고베중앙신학교에 편입하였다. 1931년 3월, 이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다시 영재 형 선교사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933년 5월 졸업했다. 곧 달라신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복음주의신학교(E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로 불리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1936년 5월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고 졸업하였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구약을 전공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졸업 후 일본으로 돌아가 영재형 선교사를 도와 재일한인교회를 위해 일하던 중 1944년 3월 귀국하였고, 약 2개월 후인 1944년 5월 서울의 남대문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이 교회에서 처음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남한의 모든 교회로 전파되었다. 얼마 후 남대문교회는 한경직의 영락교회와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교회로 부상했다. 이 교회 담임목사로 일하면서 1948년 8월 야간신학교를 개설했는데 그것이 후에 대한신학교로 발전하였다. 이보다 앞서 김치선 박사는 1946년 9월 20일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개교했을 때 개교 강연자로 초청받아 ‘신학과 신조’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바 있고, 이 일로 고려신학교 교수로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바 있으나 사양하고 자신의 교회당에서 야간 신학교를 개설한 것이다. 이북 출신이기도 했던 김치선은 해방 이후 월남 인사 중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수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장로회야간신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곧 이 학교는 곧 대한신학교로 개칭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첫 민족복음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300만만 구령운동’을 전개했는데, 손양원도 이 운동에 동참했던 경남의 인물이었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도 신학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한신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1950년 5월에는 첫 졸업생 18명을 배출했는데 한 달 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김치선은 6월 28일 삼각산으로 피난을 떠났고 그 이후 부산으로까지 피난 오게 된다. 불가피하게 신학교육도 중단되었다. 그러던 중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게 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갔으나 그것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어 다시 서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른바 1.4 후퇴였다. 그날 목요일 아침, 서울의 강은 얼어 붇고 겨울의 세찬 바람이 피난민에게 아픔을 더했다. 다시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몰려들어 1951년 3월 부산의 인구는 12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기엔 주거 환경이 턱없이 부족했다. 곧 서울 복귀가 어렵다고 판단한 김치선 박사는 그가 거주하던 대청동의 중앙교회 노진현 목사와 대한신학교 임시교육에 대해 의논하였고,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신학교육을 재개하였다. 대한신학교 교육을 시행한 곳이 어디인가는 분명한 기록이 없지만 노진현 목사의 중앙교회당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진현과 김치선은 일본 중앙신학교 동창이었고, 노진현이 분교장을 맡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전시 중 다른 공간을 찾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임시교육은 약 2년간 계속되었다. 제주도에서도 1951년 9월 윤필성 목사를 교장으로 임시학교를 열었으나 겨우 한 학기 후 폐쇄되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의 체결되자 그해 9월 부산 분교는 서울로 복귀했다. 복귀와 더불어 대한신학교는 4년제 신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김치선 박사는 교장으로 취임했다. 전쟁 중인 1951년 5월 대구에서 총회신학교가 개교했을 때 김치선은 교수로 초빙되었으므로 김치선은 자신이 설립한 대한신학교와 총회신학교, 양 학교에 관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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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2022-04-12
  • [탁지일 교수] 부활과 이단
    이단 교주의 죽음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신이라고 믿었던 교주의 죽음은, 신도들에게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렇기에 교주의 주검을 눈앞에 두고도 교주의 죽음을 부인하거나, 부활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으로 주검을 방치하는 비상식적인 일까지 일어난다. 이해는 된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심지어 가족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간 교주를 불로불사 영생불사의 신으로 숭배하며 추종했는데, 그 신이 사망한 것이다. 공황상태다. 교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선택이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종교적 인지부조화의 순간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편을 선택한다. 그래야만 가족과 지인의 애틋하지만 냉소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교주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그 죽음을 이내 미화하고 신격화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단계로 쉽게 넘어간다. 교주가 사망한 후에도 이단 단체에 계속 남아있기로 결정한 이들은 각기 다른 셈법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사리사욕을 계속 채우기 위해 사망한 교주를 이용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교주의 죽음을 스스로 합리화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돌아갈 곳이 없어 이단 단체에 자포자기 상태로 계속 머무는 편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국 교주의 죽음은 문제의 해소점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6·25전쟁 이후 수많은 기독교 이단들이 발흥했고, 흥망성쇠를 거친 교주들은 예외 없이 사망했다. 하지만 교주가 사망한 후에도, 유사한 이단 단체들은 여전히 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예를 들면 서울 한복판에서 이미 사망한 구인회 교주를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며, 그의 사진이 담긴 전단 벽보를 붙이는 재림예수교 전국복음 전도회 소속 신도들이 아직도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구세주”와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던 문선명 교주는 사망했지만, 통일교는 여전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부인 한학자는 자신을 “6천 년 만에 탄생한 독생녀”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신이 되어 통일교를 이끌고 있다. 오대양사건과 세월호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유병언은 사망했지만, 구원파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히려 두 사건을 거치며 충분한 학습효과와 면역력을 키운 모습이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1985년 사망한 교주 안상홍을 “재림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으로 신격화하고 있다. 게다가 소위 “어머니 하나님” 장길자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교세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1988년, 1999년, 2012년의 반복적인 시한부종말론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신도들은 또다시 종말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사망하면, 신천지가 없어질까? 물론 역사 속의 다른 이단들처럼 반드시 몰락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이만희가 사망하면, 일단 신격화 교리가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 이만희를 노리는 추종자들은, 이만희를 이용해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조직을 장악한 후에는, 마침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울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단 교주의 죽음을 계기로 이단을 떠나는 탈퇴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단이 싫어서 떠난 탈퇴자들의 경우, 반드시 교회를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단도 싫고, 교회도 싫은 혼동과 혼란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피해 치유와 회복을 위한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만약 교회와 가정이 이단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품어내지 못하면, 피해는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부활 없는 인간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는 이단들의 허망지설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준비하는 교회의 선견지명이 필요한 부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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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2-04-12
  • 봄날에 하늘나라로 이사간 정필도 목사, 정금출 장로
    하필이면 두 정씨가 3월 봄 날씨에 하늘나라로 갑자기 이사를 가다니, 모두들 놀라기도 하고 너무 충격적인 죽음의 부고를 접했다. 우리는 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잊고 살아가고 있다. 죽음은 말이 없다. 살아 있을 때는 별로 탐탁치 않다가 병원과 요양병원에 갔다고 하면 그때사 죽음의 그림자가 차츰 가까이 자기 곁으로 오는 것을 실감 할 수가 있다. 평소 한국교회나 부산교계 복음의 열정과 헌신으로 힘써 일한 두 거목 정필도 목사, 정금출 장로를 떠나 보내면서 그 분들의 헌신을 일일이 소개는 못드려도 필자가 알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짚어 보고자 한다. 정필도 목사(82세)는 1975년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기 전 경기고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공군 군목 출신으로 초량교회 정태성 장로의 2남 정해찬 장로가 수영만에 태광(주) 목재상을 경영할 때 창신대 총장을 역임한 강병국 장로와 함께 태광공장 내에서 첫 개척예배를 시작한 것이 효시였다. 한때 잘 나갈 시기인 1990년~2000년대에 그 교회 교수 장로 한 분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헤어질 때 개척한다는 명분으로 개척비 얼마를 주고 나갔다. 그때 그 시절 분쟁이 있던 교회를 취재에 응해 주어 감사했다. 좀처럼 잘 응하지 않는데 대화를 나눈 것은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필도 목사는 새해 되면 시무장로들과 만나 가슴과 가슴끼리 포옹을 하면서 기도하는데 왠일인지 문제의 k장로와 맞대어 기도하는데 가슴이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 분이 나를 멀리하는구나 하고 마음 속으로 느겼을 그 시기에 목회에 태클을 걸고 나와 과연 그렇구나 하고 이 분과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좋게 개척명분을 주어 나간 적이 있었다고 사사건건 목회에 걸림돌이 되면 목사가 나가던지 장로가 나가던지 둘 중에 한 분은 교회 부흥을 위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목사의 목회 철학이다고 했다. 정목사는 하루에 4시간 이상 기도하는 목사로 유명하다. 그만큼 기도의 영감에서 오는 텔레파시가 정목사로 하여금 헤어져라는 성령의 암시를 받아 그렇게 했다고 실토했다. 정목사는 목사가 기도하는 만큼 교회를 성장시켜 준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부기총(부산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을 역임하고 나서 바로 그 다음 해 부산성시화운동본부를 설립했다. 부기총 가지고는 부산 복음화는 이룰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부산성시화은동본부를 수영로교회 성도들의 헌금을 모아 기금을 만들었다. 지금 부산은 이 성시화운동본부의 역할이 부산 교계의 복음의 중심추 역할을 하고 있다. 부기총은 산산히 둘로 나눠 져도 성시화는 초교파적인 연합체로 하나로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정필도 목사의 강한 리더쉽 때문일 거라 생각이 된다.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인물은 역사적 존재요 사회적 존재 가치가 돋보인다. 교회 부흥은 그의 위대한 행동과 사상으로 살아 왔다는 흔적이 이를 말해 준다. 성시화운동본부는 57차 지역 교회별로 전도운동을 해오고 있다. 정목사가 뿌려놓은 씨앗이 열매를 맺어 수십배 결실을 맺었다. 정목사의 사상의 안목은 평소 깊은 기도의 열정이고 그의 시대 정신이요 행동 철학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한국교회가 몇 명의 지도자가 있어 초기와 같은 일제강점기에 걸쳐서는 이른바 빛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 규정하고 싶다. 그가 남기고 간 귀한 업적은 부산교계에 귀한 복음의 밑거름이 되고 한알의 밀알이 되어 열매를 지금도 맺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부산교계에서 폭발적으로 출석교인 3만 명으로 교회를 부흥 성장 시킨 기록을 아직 그 어느 교회도 추월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들, 사위도 목사이지만 목회 세습은 꿈도 꾸지 아니했다. 딸 둘 은 음악을 전공했고, 아들은 목회자, 본인은 2011년 10월, 36년 목회 은퇴 후에 전국 교회에서 부르는 곳에 가서 은혜 목회 노하우로 부흥회를 인도한 그의 복음적 열정은 후배 목사들도 본 받아야 한다. ▲정금출 장로 (당87세), 한 때 대한 학원을 운영했다. 후에는 건설업에 잠시 경영하다가 마지막은 성구사를 운영하는 가운데 둘째아들에게 맡겨 운영하고 있다. 금출이라는 이름이 금출이라 해서 복이 나간다고 했다. 자기는 돈이 자기로부터 빠져 나간다고 해도 남을 위해 이웃을 위해 귀하게 쓰여지면 그게 복이다고 이름을 개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교단지 “기독교보”를 연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교단내 두 정치적 산맥인 부곡파와 돼지파가 있었는데 부곡파의 수장 진주교회 원로 이금조 목사의 막강한 지지와 후원을 받아 오랫동안 연장할 수 있었다. 중앙 무대는 한기총 공동회장으로 부산교계는 부기총을 창립할 시 멤버이고 서기에서부터 사무총장까지 5번이나 독점하다 싶이 했다. 부산 교계는 그를 마당발이라고 별명을 붙여 왔고 부산기독실업인회 창립 멤버로 고 정태성 장로 성창기업 총수에 잘 보여 부산YMCA 임시 과도기 총무까지 했다. 아들 둘 중에 의식있는 큰 아들이 대학시절 군사 유신시절 데모를 하여 중부경찰서에 잡혀 왔었다. 필자가 잘 아는 정보과 윤형사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방면한 적이 있다. 이 아들이 동일교회 장로가 되고 덕원 고교에 교사로 출발하여 교장까지 역임한 숨은 이야기는 필자만이 아는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두분은 하늘나라 주님 품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며 기뻐하시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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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2-04-12
  • ‘국민통합’ 교계가 앞장서자
    대선이 끝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념, 지역, 세대, 남녀 갈등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처럼 한국사회 갈등이 심상치 않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89%)가 우리 사회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변하였다. 또한 세대지역남녀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비율도 더 증가하였다. 특히 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처벌 강화 등 정책 공약으로써 젠더 이슈가 부각됨에 따라 남녀 갈등은 우리 사회 갈등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인식하고 ‘국민통합’에 힘을 모으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번 대선 다음날 5개 일간지가 일제히 사설에서 ‘국민통합’을 헤드라인으로 뽑아서 강조했다. 교계도 새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지나친 이념논쟁과 진영싸움으로 인해서 후보자는 물론 모든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와 같은 망국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전망할 수 없다”며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한 대로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국민 통합을 최우선과제로 삼아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속히 치유하여 상생과 공존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분열의 정치에 의해 나뉘어진 마음을 주권재민의 가치 아래 다시 하나로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대화하며 합리적 의사소통의 공론장을 활성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교계가 한마음으로 국민통합을 강조한 점을 환영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부터 하나되는 마음을 갖고, 국민의 아픔과 상처난 마음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더 낮아져서 국민을 섬기는 교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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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3-25
  • 40일간의 여행 ‘사순절’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는 날은 항상 수요일로 ‘재의 수요일’, ‘성회 수요일’, ‘속죄일’ 등으로 불린다. 사순절을 시작으로 종려주일, 고난주간을 거쳐 부활절을 맞이하기 때문에 최근 사순절을 ‘40일간의 여행’이라고도 표현하며 부활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한국교회는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를 통해 자신을 절제하며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나 이러한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적게 실시되고 있다. ‘사순절’에 대한 뜻을 모르는 교회 성도들도 많고 이를 기념해 지키는 교회도 드물다. 과거에는 사순절을 앞둔 새벽기도, 금식기도를 비롯해 40일이라는 특성을 살려 ‘목적이 이끄는 삶’ 등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다. 교회에서 이를 알리는 현수막을 게재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이런 현수막도, 교회 주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교회 교육프로그램 역시 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사순절을 단순히 회개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겸한 경건의 시간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어떤 모습의 사순절을 보내든 이를 기념하고 가르쳐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지 않을까? 부활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져 가는 지금, 사순절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 경건의 시간을 갖고 부활절을 맞이한다면 그 은혜가 다를 것이다. 칸타타 혹은 지역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등 봉사활동으로 부활절을 보내는 것도 유익하고 좋겠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바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경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22-03-25
  • 중요사건으로 분류돼 경찰청으로 이송
    지난해 11월 부기총 트리축제에 대한 진정서를 검찰과 경찰에 접수한 자유기독인총연합회(대표회장 박선제 목사)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자유기총 관계자는 “지난 2월 24일 검찰의 의뢰를 받고 사건을 수사중이던 부산진경찰서가 이 사건을 중요사건으로 분류하고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송했다”며 “현재 부산지방경찰청 반부폐 경제범죄 수사대에서 맡아서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유기총 관계자들은 다음날(16일) 오후 진정인 조사를 위해 부산지방경찰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A 목사는 “진정인 조사가 끝나면 참고인 조사와 피진정인 조사가 바로 시작될 것 같다”며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했다. 부산교계는 이번 사건의 결과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2-03-25
  • 신천지 위장포교는 위법
    법원이 신천지 ‘모략전도’에 철퇴를 가했다. 대전지법 민사항소3부(부장판사 신지은)는 지난 11일 신천지 신도였던 A씨 등 3명이 신천지 서산지파와 신도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A씨의 청구 일부를 받아들여 “피고는 위자료 500만원 및 이자 등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것은 신분을 속이고 교리를 가르치는 이른바 ‘모략 전도’가 사기 범행이나 협박 행위와 비슷하다고 본 것. 재판부는 “피고 중 한 명이 A씨에게 신천지 신도를 상담사로 소개한 뒤 A씨가 센터에서 교육받는 동안 피고 역시 마치 강의를 처음 듣는 것처럼 했다”며 “A씨가 센터에 입교한 지 5∼6개월 지나서야 신천지 소속임을 밝히고, 다른 신도의 신분을 목사로 속이는 등 공동으로 모략 전도함으로써 A씨의 종교 선택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시했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도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신천지에 모략 전도 책임을 물고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했던 1심 판결에 더해 직접 가담한 신도들에게도 보상 책임을 함께 물게 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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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2-03-25
  • JMS 정명석, 또 성범죄 혐의 피소
    여성 신도들에 대한 준강간 혐의 등으로 10년을 복였했던 JMS 정명석이 또 성범죄 혐의로 피소됐다. 지난 16일 광화문 변호사회관에서 ‘JMS 교주 정명석 출소 후 성폭력 피해자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영국 국적의 입 메이플 잉 퉁 후엔(29)씨가 참석해 정 씨를 상습준강간·상습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경찰청에 형사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메이플씨는 18살이던 2011년 홍콩에서 신도가 됐고, 정 씨가 출소한 2018년 충남 금산에 소재한 JMS 수련원에서 2021년 겨울까지 정 씨에게서 상습적으로 준강간, 준강제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성추행 7회, 유사간음 6회, 간음 2회 등이었다고 한다. 메이플씨는 “JMS에 속아 신도가 된 후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정명석은 메시야가 아니고 사이비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고소하는 이유는 더 이상 나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고소 대리인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진술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일관되어 있다. 그 일을 경험치 않은 이들이 도저히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한편, JMS 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기자회견에서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과장된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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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25
  • [성서연구] 대선 후에 교회에 남은 숙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에게 무거운 숙제를 남겼습니다. 교회는 이제부터 숙제를 잘 풀어야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 중 하나는 무속 문제였습니다. 후보와 배우자의 주변에 특정 무속인이 있다거나, 점을 쳤다거나, 오살 의식을 행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후보를 지지하는 굿판이 벌어졌고, 굿판을 주도한 인물이 선거 캠프에 이름을 올렸다가 사퇴하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일은 무속 문제로 서로를 공격하다 보니, 후보와 후보 진영의 인사들은 무속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거나, 과거에 교회에 다녔다고 하거나, 혹은 집안의 친척 중에 목회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후보는 자신이 교인이라고 하는데, 정작 교회에서는 교인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영락교회 예배에 참석해도 되느냐는 문의도 있었는데, 영락교회 예배 참석이 무속의 그림자를 덮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각 후보 진영에서 무속의 올가미를 벗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건강한 종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기독교는 대한민국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여전히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각 후보 진영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욕구, 혹은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1위 종교인 기독교를 통하지 않고, 무속적 방법으로 당선을 기원하거나, 당선 여부를 알고자 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입니다. 우선 교회에서는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또 점쟁이가 하듯이 어떤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당선되길 기도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 진영에서 무속에 의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이유가 전부일까요? 저는 더 두려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각 후보 진영에서 볼 때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무속을 의지하여 점을 치고 굿판을 벌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속과 얽히는 것이 비난 받을 일인 줄 알면서도 무속에 의지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됩니다. 이는 교회가 1위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짠 맛을 잃은 소금처럼 영적 능력과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반증인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는 방법은 교회가 다시 맛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상황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처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언젠가는 진리가 승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복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무속을 포함해서 세상에 다양한 종교에는 신께서 죄인인 인간을 위해 죽으신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참 생명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만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은 이들이나, 잃은 이들이나,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연약한 인생입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치고, 복지국가를 이룬다 해도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참 생명과 평안은 오직 주님의 복음에만 있습니다. 우리는 무속이나 다른 종교가 갖지 못한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선은 끝났지만, 복음으로 대한민국을 세워나가야 하는 과제는 우리에게 숙제입니다. 다시 한 번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의 복음을 들고 민족복음화를 위해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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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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