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두 신협의 대조적 모습에 유감
    부산지역 교회와 관련있는 신협 두곳이 정기총회를 하면서 대조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A신협은 교회가 창립했지만 지난 2014년 8월 천주교가 창립한 신협과 합병했다. 말은 ‘합병’이지만 ‘흡수’됐다는 ㅍ현이 정확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30일 C교회에서 총회를 열었지만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들이 주류를 이룬 조합원들인데도 하나님 앞에 기도 없이 정기총회 순서를 진행시켰다. 한편 2월 4일(목) 범일동 KT 강당에서 열렸던 B신협은 장기려 박사에 의해 개신교 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된 신협이라서 이날 개회선언을 하기 전에는 김운성 목사로 하여금 개회기도를 드리고 시작한 것에 좋은 대조를 보였다. 한곳은 교회 본당에서 시작해도 기도는커녕 교회 마당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지만, 다른 한 곳은 교회당이 아닌 일반 건물 강당에서 시작하면서 정중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았다고. 하지만 B신협은 회무를 사회 보는 전무가 1년 만에 총무부장에서 상무, 전무로 고속 승진한 가운데 전무가 되었다는데 놀랐다. 능력이 있고 자리가 비워 있어서 승진을 시켰을지라도 일반 회사나 조직체에는 1년 안에 두 계단을 뛰어 넘는 고속 승진은 매우 드문 케이스라는 지적이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2-25
  • 다음 이사회에서 2급 직원 임기 규정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최근 이사회를 열고 2급 직원(재단 사무국장, 병원 행정처장, 대학 사무처장)들의 임기 시행세칙을 다음 이사회에서 만들기로 결의했다. 학교법인 감사가 “임기를 넣는게 맞다”는 감사 사항에 대해 이사들이 논의한 후 다음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립대학에서는 행정직 보직자의 임기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임명권자의 권위와 재량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또 이사회는 병원 노조와의 대화 창구를 열어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한주 이사와 옥재부 이사 두 명에게 일임을 했다. 한편, 지난 고신대 학위수여식 이후 일부 이사들과 고신대 전광식 총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전 총장은 행복기숙사건과 무척산기도원 매입건에 대해 설명했다. 전 총장은 기숙사 부지의 기반이 약해 추가공사비용(5억원)이 생겼다는 말과 모금을 통해 무척산기도원을 매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무척산기도원 매입금은 2억 5천만원 수준으로 모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16-02-25
  • [함께 생각해 봅시다] 어찌 이런 나라가 …
    영예로운건 하나같이 꼴찌이고 영예롭지 않은건 단연 1등인 나라 세상에 나라가 많다보니 이런 나라도 저런 나라도 있을 수 있지만 북한과 같은 나라가 또 있겠는가. 이미 알려진대로 북한은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에서 발표한 2014년 전세계 민주화지수를 보면 167개국 중 167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 북한은 2015년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경제자유화지수를 보면 178개 국가 중 178위로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자유가 없는 나라로 꼽혔다. 그뿐아니라 2015년 프리덤하우스는 각국의 언론자유를 조사했는데 199개국 중 199위로 북한은 ‘최악 중 최악의 언론탄압국’으로 밝혀졌다. 또한 2015년 오픈도어즈가 발표한 세계기독교박해지수를 보면 북한은 2002년부터 13년간 연속 1위를 차지하여 세계최악의 기독교탄압국임이 밝혀졌다. 또 있다. EU에서는 2006년 전 세계민주의 지수를 처음 발표한 이후 2008년, 2010년, 2011년, 2012년, 그리고 2014년 여섯차례 발표했는데 북한은 여섯번 모두 167개국 중 167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기관에서는 조사대상국가들을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 ‘완전 민주국가’ ‘불완전 민주국가’ ‘민주, 독재 혼합국가’ 그리고 ‘독재국가’ 이렇게 4등급으로 분류하였으며, 북한을 전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로 발표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명예로운 것은 하나같이 모두 꼴찌이고 불명예스러운 것은 단연 1위이다. 한가지 더 밝히고 싶은 것은 종교전문 사이트 어드히런츠닷컴은 2007년 김일성 주체사상을 세계 10대 종교 중 하나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종교의 3요소는 교주, 교리, 교인인데 김일성 주체 사상교의 교주는 김일성과 김정일이고 교리는 김일성 주체사상이고 교인은 북한 주민이라고 발표했다. 북한 정권은 3대 세습 독재체제이며 김일성 일가 신격화, 우상화체제이다. 북한에는 3,200개의 영생탑이 있다. 영생탑에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쓰여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죽지 않았다. 북한 인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이렇게 믿는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두가지 생명이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생명이고 또 하나는 사회정치적 생명인데 이것은 영원하여 김일성 수령을 통해서 인민에게 주어진다고 믿는다. 즉 김일성 수령을 통해서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부분 때문에 주체사상은 종교로 간주되고 있다. 2011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에도 노동신문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는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생하실 것이다” 그랬다. 이것이 북한의 실상인데도 아직도 종북좌파가 적지 않다고 하니 이해가 안된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 오피니언
    • 칼럼
    2016-02-25
  • [시사칼럼] 붕어빵 아이들
    지난 1월 25일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전주의 한 거리에서 간암에 걸린 엄마를 대신해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오빠를 곁에서 보살피면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중학교 여학생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시민들의 온정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SNS에 올린 글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확인 결과 붕어빵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연은 좀 달랐습니다. 간염이나 우울증 증세 등으로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부모를 둔 네 가정의 아이들을 교회가 돌보면서 자활할 수 있도록 붕어빵 포장마차를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아동 학대’를 이유로 당국에 민원을 내는 사람들이 생겼고 결국 단속요원들이 철거 계고장까지 발부했다가 또 다른 시민들의 항의로 일단 철거는 보류되었다고 합니다. 켈로그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이자 세계적인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그의 책 『다른 자본주의(Confronting Capitalism)』(더난, 2015)에서 자본주의가 직면한 14가지 문제를 적시했습니다.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쓰면, ‘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소득불평등, 파괴의 씨앗’, ‘수렁에 빠진 노동자들’, ‘자동화에 일자리를 빼앗기다’, ‘이익은 기업이 비용은 사회가!’ 등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붕어빵 아이들을 생각해 봅시다. 왜 이 아이들과 그 가정들은 그토록 가난해야 합니까? 확실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답 하나는, 가난이 이 아이들의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 자체에 모순이나 결함이 있는 걸까요? 코틀러 교수는 바로 이러한 모색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는 가능하며’, ‘우리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를 꿈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하는 일종의 대안들이 바로 ‘온정적(Compassionate) 자본주의’, ‘포용적(Inclusive) 자본주의’, ‘인도적(Humane) 자본주의’, ‘건강한(Healthy) 자본주의’, 그리고 ‘깨어 있는(Conscious) 자본주의’ 들입니다.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2016)의 저자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2015)라는 책에서 오늘날 인류가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를 향하고 있다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헬라나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말을 인용하면서, 울창한 삼림에 널려있는 나무 조각을 이용해 펠릿(pellet)이라는 연료를 개발하거나 친환경 스토브를 만들고, 나아가 CLT(cross laminated timber)라 불리는 고강도 목재를 개량해서 고층 빌딩을 건설하며, 농가의 버려진 집들이나 자가소비하고 남은 작물을 재활용하고 공유하는 일본 산촌(山村)의 현장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산(里山) 자본주의’라고 부르면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와 같이 자본주의가 그 기능을 상실할 경우 보완해 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동화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가야 한다는 것이 그 주장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전주의 붕어빵 아이들을 돌봐준 것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식의 온정적 자본주의도 아니요,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 식의 ‘이산(里山) 자본주의’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은혜의 해’를 선포하고, 기업 무를 자를 두며,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교회가 불쌍한 아이들을 품었습니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오히려 세상은 교회의 아동 학대를 말하고 교회의 착취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언제 어디서나 교회는 항상 세상의 피난처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을 감당하는 교회의 모습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교회가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상이 그만큼 썩어버렸기 때문일까요? 붕어빵 속에 진짜 붕어 없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진짜 그리스도가 없다고들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16-02-03
  • [시내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일본에 대한 우리의 반일감정은 쉽게 풀릴 수가 없다. 그 동안 외교상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많은 부분이 해소되긴 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한일 간의 오랜 숙제가 되어왔다. 이 과제가 한일 외무장관의 협상에 의해 타결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지난 해 12월 28일에 있었다. 그 동안 이 문제를 두고, 계속되어 온 한일 간의 불편한 관계를 생각한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분명 빠른 시간 안에 타결해 나가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타결 결과와 과정을 두고 보면, 너무나 실망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우선 누구를 위한 타결인지, 그리고 제대로 된 타결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외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삼 50년 전,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있었던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떠올리기도 한다. 수많은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인 협상의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타결 결과를 문서도 아닌 구두로 발표하면서, 일본정부의 책임과 총리의 사죄,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단 설립과 일본 재정의 투입 등을 내세워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타결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를 수용해야 할 당사자들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김복동 할머니는 “협상하기 전에 우리 의사를 들어봐야 하는데 정부가 한 마디도 없었다. 정부가 타결됐다고 하는데 뭐를 타결했다는 말이냐”라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베 총리가 나서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내 마음은 돈이 필요 없다.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시켜달라는 게 우리들의 원이다. 우리는 타결이 안 됐다” 피해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러한 격한 반응은 협상타결의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협상의 주체는 형식상 정부 실무자이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피해 할머니들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협상 전에 피해할머니들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한 후 정부입장도 전하면서 최소한 사전조율의 과정을 거쳤어야만 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의 주체이며 당사자는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갔다가 아직도 신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만일 정부가 ‘선(先)타결 후(後)설득’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정말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후에 당사자인 할머니들을 찾아가 결과를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사람을 제대로 사람대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함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극 정성으로 봉사해야 할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덧내고 있다는 것은 여성인권의 또 다른 유린이며, 박탈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부분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러한 여성인권의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이 땅에 펼쳐나가고자 하는 정의는 약자들이 보호받는 공의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가의 권위는 인정하고 법이 정한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하지만, 국가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고, 약자를 지켜주지 못할 때, 그 권력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어 갈 수 있도록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의를 보고 방관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국가 권력에 적당히 야합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일에 얼마나 무디어져 왔는지를 이제 다시 한번 성찰할 때이다.
    • 오피니언
    2016-02-03
  • [강규철 장로] 다음세대를 살립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당면과제중의 하나는 주일학교의 부흥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교회가 주일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와의 관계에는 무관심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것입니다. 흔히 인구 대비 기독교인의 비율이 2~5% 미만이면 미전도 종족지역이라고 합니다. 현재 많은 교회가 미전도 종족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물질로 지원하고 온 교회가 그를 위하여 기도로 후원합니다. 그런데 기독학생의 비율이 5%도 되지 않는 학교에는 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으냐고 질문하는 교회 지도자는 없습니까? 부산에는 기독교 건학이념을 가진 학교가 20개입니다. 그런데 교목이 있는 학교는 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 교육을 포기한 학교가 그만큼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다음세대 육성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교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근간이 됩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나 변명이 있겠지요. 재정이 부족하다든가, 마땅한 청소년 사역자가 없다든가, 혹은 오늘날 공교육에서 기독교 편향적인 교육을 금지한다든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이사장이나 학교장의 잘못된 시각과 무관심에 있다고 봅니다. 이는 교목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재정은 교목을 교양과목인 종교교사(기독교 윤리 전공)로 채용하면 해결되고 현재 신학을 전공하는 사역자들 중에는 얼마든지 뛰어난 청소년사역자들이 있으며 사학의 건학이념은 보존시켜야 하는 권리가 학교에 있습니다. 현재 교목이 활동하고 있는 학교에서 인기투표를 한다면 아마 교목이 최다득표를 받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교목은 학생들과 마음으로 만나는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교목실은 학생들의 사랑방이고 놀이터입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담임이나 부모한테도 말 못하는 고민을 교목한테는 다 털어놓고 상담하는 경우를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교목이 친근한 보호자이며 상담자이고 자상한 형님이자 종교에 상관없이 의지할 수 있는 목사님입니다. 이들이 재학 중에도 교목의 영향으로 교회를 찾아가지만 졸업하고 난 뒤에 군에 가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이들은 목사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브니엘고에서는 한 해 동안 세례를 받는 학생이 100명 가까이 됩니다. 물론 일반교회에서 받습니다. 이는 한 학년 학생 인원 대비 30%가 넘는 숫자이며 입학할 때의 기독교인의 비율이 4~5% 밖에 되지 않음을 감안하면 기독교학교와 교목의 역할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학교에 할 수 있는 선교차원의 활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먼저 교목이 없는 기독교학교에 젊고 유능한 청소년 사역자를 교목으로 파송하는 것입니다. 주중에 학교에서 교목으로 활동하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섬기면 됩니다. 이는 학교라는 선교지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하므로 사역자 본인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학교는 교목으로 인한 교사정원의 마이너스가 없고 교회는 당당하게 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전도할 수 있게 되니 서로가 윈윈 할 수 있습니다.현재 각 학교에는 상담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학교 담당 사역자가 상담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활동비도 제법 상당합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 상담학을 부전공으로 한다면 더욱 좋겠지요. 현재 부산교육계에는 장로, 권사, 신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교장신우회가 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심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교회의 후원자들과 연결하여 도움을 준다면 이들은 잠재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다음세대를 걱정하며 육성하고 싶다면 우선 기독교학교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지에 지원 하듯이 교회 주변의 학교와 학생들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또한 교육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사들, 특히 교장들과의 유기적인 모임을 통해 체계적인 활동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정론
    2016-02-03
  • [목회자칼럼] 내 안에 숨어있는 5가지 적(敵)
    ①욕망 ②의심 ③불평 ④교만 ⑤두려움 겸손할 줄 모르는 것이 교만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그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우상숭배와 불평과 교만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싫어하실 뿐 아니라 교만하면 내가 망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인간에게 <교만으로 나아가도록>끝없이 부추긴다. 그리고 인간은 이 부추김에 가장 취약하다. 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장 12절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교만>은 인간을 패망으로 이끌어간다. 우선 성경 안에서 그 실례(實例)를 찾아보자. 이집트의 바로(왕)를 생각해보자.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자신이 소중한 인간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소중한 인간>이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하게 학대한다. 인간으로서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중노동으로 몰고 간다. 이스라엘의 조상 중 한 사람이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재임하면서 애굽을 7년 대흉년으로부터 구해낼 뿐 아니라 애굽 국민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그 아름도운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아니한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이 『背恩忘德』(배은망덕)이라는 것을 이집트의 왕 바로가 아주 잘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신다. 교만한 마음을 반성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自由)를 허용하라고 충고하고 권면한다. 이 충고는 인간 모세의 충고가 아니고 실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는 번번이 약속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기만한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땅에 차례로 내리게 된다. ‘열 가지 재앙’이라 했으니 바로(왕)가 하나님의 명령(권면/충고)을 열 번이나 무시하고 비웃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약속한 바’를 열 번이나 번복하였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집트 전역에 열 가지 재앙이 차례대로 내리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던가? 피·개구리·이·파리·악질·독종·우박·메뚜기·흑암 그리고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이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에 대하여 출애굽기 12:29~30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 이었더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열 가지 재앙을 차례로 거듭 겪으면서 이집트 나라는 초토화 되었다.그러고도 바로(왕)는 겸손 할 줄 모른다. 여전히 교만하다. 그는 이집트군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출애굽하여 이미 상당한 거리로 벗어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걸어서 건너갔다. 하나님께서 홍해물의 위, 아래를 막으시면서 강바닥에 길을 내어 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다. 겸손할 줄 모르고 끝까지 교만에 갇혀 있던 바로(왕)와 이집트 정예 군대는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하다가 홍해에서 몰살당하였다. 통치자 한 사람의 끝없는 교만 때문에 이집트 전 국민들 집집마다 장남이 죽어 나가고 모든 가축의 초태생(初胎生)이 죽어 나갔다. 집집마다 시신을 치우고 장례를 치루느라고 애굽의 땅과 하늘에는 ‘통곡 소리’가 뒤 덮였다. 교만의 폐단은 이렇게 무섭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너무 교양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 될려고 하지 말고 〈원초적이고 순전한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자신이 너무 고상하고 대단하다고 착각하면 점점 교만해질 위험성이 크다. 그리되면 무어보다 ‘은혜’를 못 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은혜를 못 받으면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이다. 하늘로서 내려오는 은혜(heavenly grace)이다. 주일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예배시간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신자는 은혜를 못 받으면 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참으로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더러 겸손하게 살라고 하신다(미가6:8, 벧전5:5). 때로는 고난을 경험시켜가면서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시 119:67,71).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16-02-03
  • [교회회계] 교회회계 : 결론/마무리
    필자는 5년째 교회에서 회계업무를 맡아 왔다. 또 대학에서 15년 넘게 회계학을 강의하였다. 교회회계는 돈의 흐름을 결산ㆍ보고한다는 점에서 기업회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사용하는 복식부기를 교회에도 적용하려는 시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식부기는 현금주의 개념에 따라 수입ㆍ지출의 표시와 예산이 잘 집행되어졌는가를 검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자산ㆍ부채의 관리는 물론 교회 재산가치에 미치는 흐름을 장부에 반영하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그동안 12회에 걸쳐 복식부기 시스템에 기초한 교회회계의 방법과 절차에 대해 설명하여 왔다. 본회는 그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복식부기 교회회계의 원리(accounting cycle)는 다음 6단계로 구분해 적용하라! 교회가 복식부기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①먼저 회계장부에 표시될 거래를 식별하여 기존의 수입ㆍ지출 내용을 자산, 부채, 자본(순자산), 수익, 비용으로 분류 변경한다. ② 식별된 내용은 분개(journal)를 통해 회계장부에 기록한다. T자계정을 만들어 차변(Debit)에는 자산?비용의 증가, 대변(Credit)에는 부채ㆍ자본ㆍ수익의 증가를 표시하고, 감소시에는 그 반대로 표시한다. ③또 날짜별로 표시된 분개내용은 계정별로 집계하여 전기(posting)해 총계정원장을 작성한다. ④그리고 기말시점에 발생주의 기준에 따라 추가적인 수정분개 작업을 한다. 즉 유형자산을 감가상각하는 회계처리 등을 한다. ⑤수정분개후에는 복식부기의 핵심인 재무상태표와 운영성과표를 작성한다. 재무상태표에는 자산과 부채, 순자산을 표시하고, 운영성과표는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하는 형식으로 표시한다. ⑥마지막으로 총계정원장에 표시된 각 계정을 마감하고, 다음 회계연도를 준비한다. 2. 자금수지계산서를 운용성과표로 대체해 작성하고, 수익ㆍ비용의 영향을 구분해 표시하라 복식부기 도입시는 수입ㆍ지출을 중심으로 표시하던 기존의 자금수지계산서를 운용성과표로 대체해 작성한다. 즉 수익?비용을 경상항목과 자본항목으로 구분하여 운용성과표를 작성하되, 수입ㆍ지출의 발생 원인과 경제적 효과가 당해연도에 귀속되면 경상지출과 경상수입으로, 차기이후에 영향을 미치면 자본지출과 자본수입으로 각각 구분하여 표시한다. 즉 사례비는 지출효과가 당해에 귀속되므로 경상지출로 하고, 건물구입을 위한 지출은 장기간 영향을 미치므로 자본지출로 한다. 그리고 기말에는 발생주의 개념에 따라 추가적으로 수정분개를 한다. 감가상각비와 손상차손, 공정가치의 적용이 그 예이다. 운영성과표는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하여 표시하고, 그 잔액을 재무상태표의 순자산 항목에 반영한다. 3. 경제적 효익이 장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산ㆍ부채로 관리, 재무상태표에 표시하라. 재무상태표는 교회의 자산ㆍ부채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표시한 것으로, 교회재정의 재무적 건정성과 투명성 확보, 효율적 재산관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즉 교회에서 발생한 수입ㆍ지출항목은 운용성과표에 표시하되, 그 발생원인과 경제적 효과가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항목은 반드시 자산과 부채로 구분해 표시하여야 한다. 또한 자산중 퇴직급여기금과 같이 사용이 제한된 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과 구분하여 표시한다. 그리고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잔액으로 교회 설립시 기본금을 포함, 각종적립금과 차기이월잉여금으로 표시할 수 있다. 4. 회계감사와 내부통제제도를 구축하고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라. 회계감사(auditing)는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맞추어 적정하게 표시되었는가를 검증하기위한 위한 것으로, 매년말 감사를 선임해 진행한다. 감사내용은 (1)장부상의 현금예금과 통장잔액이 일치하고, (2)재무제표와 회계장부의 표시가 적정한가, (3)재정의 수입지출이 적정히 집행되었는가, (4)영수증과 감사증거 자료를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감사결과는 적정의견, 한정의견, 부적정의견, 의견거절 4개로 분류해 감사의견을 표시한다. 또한 내부통제제도(internal control system)란 회계적 오류나 부정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절차로서, 두 사람 이상이 상호 견제속에 업무를 분담하고 필요한 매뉴얼에 따라 진행할 때 교회 사역이 더욱 원활하게 움직여 갈수 있다. 작년 12월에 종교인 과세문제와 관련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교회회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아져 있다. 또한 2013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교회회계와 재무처리기준”을 발표해 예산규모가 10억원 이상인 교회에게 복식부기를 적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10억원이 아닌 5억원의 수준으로 낮추어 교회가 가능한 한 복식부기를 모두 적용했으면 한다. 또 그런 의미에서 본 칼럼을 통해 구체적인 복식부기 적용방법을 실무적 관점에서 설명하여 왔다. 물론 규모가 작은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에게 복식부기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교회회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대에 와 있음은 분명하다. 교회지도자의 교회회계에 대한 바른 인식과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자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단 또는 도시 성시화 차원에서 복식부기와 교회회계 발전을 위해 일조해 갈 것을 다짐해 본다. <문의 sblee6@hanmail.net>
    • 오피니언
    • 칼럼
    2016-02-03
  • [은혜의 말씀]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장 15~17절)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마지막으로 심방하십니다. 실패한 베드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린 베드로, 물고기 잡으러 도망간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밥부터 챙겨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패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먹이는 것입니다. 친해지기 전에는 가르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급하고 바쁘다고 일부터 해버리면 충돌과 상처가 일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친해지고 난 뒤에 일을 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이 무슨 말 일까요? 아직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에 불가한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집중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인격적으로 배은망덕하고 실패한 사람이고, 사업적으로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은 빈털터리 인생이 베드로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집중해 나가는 것이 요한복음 21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철저히 일대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아직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고 옆에 눈치코치 영향을 받는 삶이기 때문에 이렇게 접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사랑에 실패를 하면 안 됩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 되고 나중사랑을 우리가 감당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이 뭐냐?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그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한테 배반을 당하고 실망을 할 때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이제는 주님의 일을 하고 사명자의 길을 가라. 베드로 네 양이 아니고 예수님의 양을 지금 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것은 첫째, 네 것 아니고 하나님의 것. 둘째, 철딱서니 없는 말썽꾸러기 같은 그런 미숙한 어린양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결론이 21절 22절에 "너는 나를 따르라." 베드로야 너는 한눈팔지 말고 딴 짓하지 말고 시선 집중해서 중심을 잡고 나를 따르라. 헛된 마음 버리고 쓸데없는 자랑하지 말고 사명자의 길을 가라. 사명자가 사명을 가지면 죽어도 좋아. 네 양떼가 아니고 주님의 어린양을 붙들고 먹이고 돌봐라. 하나님은 쓰임 받고 주의 일을 할 동안에는 힘도 건강도 지혜도 믿음도 물질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름 받아 변화된 베드로가 사도행전 넘어가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사람의 말을 들을까, 하나님의 말을 들을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변화된 베드로가 설교 할 때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여 돌아옵니다. 그런 많은 상처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고 오직 베드로 한 사람에게 집중해 가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주님 한 분에게 집중해서 세월이 갈수록 성숙의 변화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16-02-03
  • [성공칼럼]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사람은 가장 바깥에 육체가 있다. 또 육체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 마음이 있다. 마음은 생각과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육체와 마음을 넘어서 사람의 실체인 영이 있다. 이 영이 겉사람과 속사람의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영은 생명이 아니라 그릇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그릇에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담으면 죽은 영이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담으면 살아있는 영이 되는 것이다. 육체와 마음과 영과 생명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안에 있으며 생명을 싸고 있는 덮개가 있다. 사람의 행동은 손과 발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손, 발에 힘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생명도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있는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수십 년을 살다가도 영혼이 떠나면 육신은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혼의 생명도 사람의 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영혼에 주님의 생명이 없으면 영은 지옥을 향하게 되는 것이며, 사람이 영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사랑을 담으면 그 영은 살아있는 영이 되어 천국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깊은 곳에 주님의 생명이 있어야 모든 삶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한다. 위기란 의미는 교인 숫자가 줄고 교회의 재정이 충분하지 않기에 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위기는 사람들의 중심에 주님사랑과 이웃사랑보다는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이 잘 마무리된 후에 “주님께서 도우셨고 함께 애쓴 분들 덕분”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내가 잘나고 내가 한 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또, 나를 알아주지 않거나 내 생각대로 되지 않거나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하면 발끈하고, 돈이 있으면 더 소유하기를 원하고 돈이 없으면 걱정하고 자신이 상대방보다 많이 알고 힘이 있으면 상대방을 무시하고 아래로 본다면 이것은 그 속에 주님사랑보다 자기사랑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속이 생명으로 가득하려면 자기사랑이 주님사랑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사랑과 세상 사랑이 중심에 있는 한 고귀한 영적 진리를 만나도 그것은 지저분한 그릇에 귀한 음식을 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의 중심에 주님사랑이 있기 위해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자신 속에 주님사랑이 자리 잡는 것을 방해하는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거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육체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은 섭취하고 몸을 망가뜨리는 음식은 거절해야 한다. 그리고 선은 행하되 악을 행하는 일은 거절해야 할 것이다. 또 마음을 밝게 유지하기 위해 걱정하고 화가 나고 우울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만들어질 때 주님사랑을 담을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육체가 건강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마음이 밝아질 때 드디어 육체도 마음도 아닌 본래의 나를 만나게 된다. 이 본래의 나는 태어난 적도 죽음도 없으며, 고향도, 부모도, 나이도 없다. 나이가 없다는 말은 나이 때문에 갈등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만나면 아이처럼, 젊은이를 만나면 젊은이처럼, 노인을 만나면 노인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사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자유가 된다는 것이다. 본래의 나를 만나게 될 때 이제야 예수를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중심에 자기사랑과 세상사랑은 사라지고 주님사랑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반을 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주님사랑을 중심으로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아서 진리대로 사는 이웃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살 때 어두운 삶은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 천국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천국은 여기에,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삶을 건강한 육체에서 밝은 마음으로, 더 나아가 주님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안으로, 안으로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16-02-0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