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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작은 승리를 기뻐하는 아이로 키우자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기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은 큰 성공을 거두고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데 우리 아이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단시간에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울 때 우리는 작은 승리를 꿈꾸며 그것을 기뻐하는 아이로 우리 자녀를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큰 성공, 큰 승리를 꿈꿉니다. ‘그게 아니면 아예 승리도 아니야.’ 라고 지레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까 일상의 승리가 없어졌습니다. 일상의 간증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큰 것, 대단한 것만 바라보니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한때 서울 수서동에서 유명한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과외 선생 홍 선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그 아파트 한 단지가 다 저의 필드였습니다. 제가 한 달만 쉬겠다고 그랬더니 어머니들이 안 된다고 해서 군대 입대하기 열흘 전까지 과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하고 나서 과외를 다시 하라는 굉장히 많은 유혹을 받았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월 27만원 받는 교육 전도사를 시작해서 목회의 현장으로 들어가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국 돈보다 목회의 길을 걷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당시에 평균 60점 맞는 아이가 열심히 하겠다고 많이 찾아왔습니다. 홍 선생님 밑에 가면 뭔가 잘 된다니까 애들이 옵니다. 근데 60점 맞는 아이의 다음 시험 목표는 몇 점이어야 됩니까? 저에게 보내는 모든 엄마들의 목표는 100점입니다. 물론 제가 가르치는 클래스에 평균 100점 받는 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원래 99점 받던 아이입니다. 99점 받던 애가 저한테 와서 100점 맞게 되니까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홍 선생이 전교 1등을 만들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60점 받는 애를 데려다 놓고 100점 맞으라고 하니 어떻게 될까요? 그 아이는 도저히 100점 맞을 수가 없습니다. 또 실패를 맛볼 뿐입니다. 그 아이는 일단 한 문제부터 더 맞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65점부터 맞고 그 다음이 70점, 그다음 80점, 90점, 이렇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절차와 계획이 엄마들의 마음에 들지가 않은 겁니다. “돈이 얼만데. 당장 100점을 맞아 와야지. 70점? 야! 다니지 마!” 그리고는 학원 끊어요. 그럼 그런 애들이 다시 60점으로 내려갑니다. 원위치가 되는 겁니다. 한 문제씩 맞춰갈 때 하나씩, 하나씩 배워갈 때, 기본기가 없는 애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고, 그다음 루트도 하고 미분, 적분도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100점도 맞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지금 나의 수준보다 딱 한 단계만 더 올라가자, 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적어도 10단계, 20단계, 100단계는 단번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대단한 승리를 거둘 거야! 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목표는 항상 적어도 두 배 이상, 적어도 10배에서 100배 정도는 돼야 성공이지, 그렇지 않고 약간 늘어나는 건 성공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라톤을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2.195km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걸음을 잘 달려야 합니다. 지금 한 발을 잘 디뎌야 결국에 이 한 발 한 발이 모여서 마라톤 코스를 완주합니다. 그러면 지금 나의 한 발은 승리인가요, 아닌가요? 승리입니다. 지금 나의 한 발은 성공인가요, 아닌가요? 성공입니다. 여러분, 이게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뭐냐면 지금 나의 한 걸음이 성공임을 아는 겁니다. 지금 나의 한 걸음이 승리인 걸 아는 겁니다. 한번 도전했습니다. 한번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성공인 것이고 그게 승리입니다. 너무 큰 것을 바라보다가 지금을 놓치는 우를 범치 않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내가 예배하고, 지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성공이고 승리입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가 교회에 나오는 건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걸로 만족을 못하고, “적어도 중등부 회장은 해야지! 적어도 얘가 예배 인도쯤은 해야지! 찬양 인도쯤은 해야지! 우리 애가 드럼은 좀 쳐야지!”라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교회에 왔으면 대단한 겁니다. 업고 다니고 뽀뽀를 하고 용돈을 줘도 시원치 않은데, 구박합니다. “왜 아침에 나오는데 30분씩 걸리냐? 네 머리 괜찮은데 왜 또 감냐?”고 구박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환대해 주세요. 기쁘게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세요. 교회에 나오는 그 아이들이 너무너무 귀한 아이들입니다.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3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득점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골씩 넣어야 됩니다. 한 골씩. 이게 중요합니다. 축구공 23개를 한꺼번에 들고 와서 한꺼번에 뻥! 차 놓고 나 득점왕 됐다! 이럴 수 없습니다. 23골을 한꺼번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유명한 캘커타의 성녀라고 하는 마더 테레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건지고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에 한 명씩 안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축구는 한 골이 중요하고 사랑은 한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적도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거창한 성공보다 작은 승리를 기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길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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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8-18
  • [다음세대칼럼] 은혜의 집(2)
    만약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인다고 했을 때 누가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 중에 몸이 가장 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정작 은혜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연못은 진짜 은혜가 필요한 병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죽게 된 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단순 감기 환자가 먼저 뛰어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만성두통과 복통 환자가 먼저 들어가 버립니다. 다리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운동하다가 다리를 접질린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과 대립으로 가득한 살벌한 현장이 바로 베데스다 연못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각종 환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로 인해 영적 질병에 걸려서 무기력,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 줍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 있어서 천국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고통스러움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리를 절고 있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긴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풍병자와 같아서 진리를 향하여 움직이거나 진리 안에서 활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예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불신자들, 모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모든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도 비슷합니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교회와 교회도 형제가 아닌 경쟁자입니다. 교회와 교회끼리 경쟁합니다. 서로 큰 건물 짓기 경쟁을 합니다. 서로 사람 수 늘리기 경쟁을 합니다. 몇 십억, 몇 백억, 몇 천억 단위의 건물을 짓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큰 건물이 많은 사람을 흡수하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발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왕들을 뽑습니다. 진돗개 전도왕, 양육 전도왕, 파워 전도왕, 능력 전도왕, 웃음 전도왕, 심지어 마사지 전도왕까지 뽑습니다. 그리고 이 전도왕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집회를 통하여 전파하고 다닙니다. 이런 교회들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감투 경쟁, 기득권 경쟁, 자기중심적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경쟁 원리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넘쳐야 할 교회에 38년 된 병자와 같이 남을 원망하며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현실입니다. 은혜는 사라지고 온갖 원망과 불평과 불신과 판단으로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혹자는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자기중심적인 곳이 교회라고까지 말합니다. 참으로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습니다. 은혜의 집에 은혜가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예수님을 보고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정말 자비와 은혜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을 찾고 그를 절대적으로 의지합니까? 주님이 계실 때에야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계셔야만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이 계실 때 그곳은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베데스다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살아야 합니다. 베데스다는 오늘날 교회입니다. 은혜와 자비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베데스다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만을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만이 소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만이 치유자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독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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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신앙교육나침반] 온 세대가 하나 되는 전교인 수양회, 기적을 만들어내다!
    서울 강남일 교회 150여명의 온 세대가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는 주제로 전교인 수양회를 열었습니다. 미래를 꿈꾸는 3세대와 현재를 열정으로 살아가는 2세대와 과거 역사의 유산과 지혜를 품은 1세대가 3일 동안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강남일 교회 전교인 수양회의 주요 프로그램은 담임 목사님의 저녁 말씀집회와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이 이끄는 온세대 복음놀이터입니다. 지난 5월에 저는 교회의 요청으로 오후예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설교시간에, 이 시대를 살아하는 자녀세대에게 교회와 가정이 하나 된 자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절박한지를 강조하였습니다. 담임목사님과 많은 성도들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 복음을 받고, 복음을 놀이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러한 복음 놀이 안에서 온 세대가 하나 될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 하셨습니다. 당시 교회는 올 여름 전교인 수양회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를 분리하여 별도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교회는 향기나무에 연락을 주셔서, 온 세대가 함께 복음을 받고, 복음을 놀이하는 시간을 요청해주셨습니다. 드디어 전교인 수양회의 온 세대가 복음놀이터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아부터 노년에 이르는 150여명의 온 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온 세대가 ‘가정은 하나님의 보물’ 주제의 복음 말씀과 놀이에 참여하였습니다. 강남일 교회는 특히 1세대 실버 어르신들이 절반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2세대 장년들과 3세대 다음세대들은 바닥에 앉고,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실버어르신들은 관절이 불편하셔서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힘도 없으시고, 표정도 없으셨습니다. 과연 온 세대 복음놀이터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한마디로 ‘미라클’이었습니다. 향기나무의 세대통합 복음말씀이 시작되자, 온 세대가 숨죽여 매력적인 복음에 사로잡혔습니다. 복음은 연령과 성별과 직분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1세대와 2세대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3세대를 품에 안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3세대는 1세대의 2세대의 진심어린 기도와 응원의 미소 앞에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복음 놀이가 시작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2세대와 3세대가 주도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1세대 실버부대의 함성소리가 온 강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왕년에 강남일 교회를 세우셨던 뜨거운 열정이 2023년도에 다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뜨겁게 즐거워하며 복음놀이에 참여하셨습니다. 2세대와 3세대는 1세대의 숨은 열정과 천진난만함을 보며, 실버세대의 새로운 모습에 감격했습니다. 강남일교회의 40년 역사를 품은 1세대와 교회를 열정으로 세워가는 2세대, 그리고 강남일 교회의 미래를 꿈꾸는 3세대의 매듭이 묶여지니, 놀라운 기적이 만들어졌습니다. 온 세대가 함께하는 전교인 수양회는 미라클(miracle: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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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3-08-18
  • [양육칼럼] 묻지마 범죄를 보며 양육태도 돌아보기 : 십계명을 되새기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요건을 먼저 선포하신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열 가지 말씀이 나타내는 신앙과 윤리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계명 속에 들어 있는 신앙과 윤리적인 삶을 구분해 본다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관한 규범은 1-4계명으로 4가지이고, 나머지 5-10계명 즉 6가지는 윤리적인 삶에 관한 규범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 땅에서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매일같이 보도 매체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 사건을 보면 도대체 저 범죄자들은 무슨 이유로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설명되지 않는 동기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지며 일상에 대한 불안도 가중된다. 이미 일어난 범죄에 대한 모방범죄를 예고하는 글도 온라인상에서 폭주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국민 전체가 혹여 피해를 입을까 하는 불안심리도 높다. 묻지마 범죄자들은 일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처지나 실패 등의 원인을 타인이나 사회구조에 전가하여 이에 대한 분노나 스트레스를 블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의 범죄 원인은 현실적으로는 실업으로 인한 생활고, 외부와의 단절,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인한 충동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범죄 원인에 대해 교육학적. 심리학적 접근을 하면 범죄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포함한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충분히 공감 받지 못했으며 소외되거나 거부되는 양육환경에서 자랐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또래들로부터 또는 주변 성인들로부터도 따뜻하게 공감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며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공감 받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타인의 입장이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며 자신의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타인이나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십계명 중 5-10계명을 다시 살펴보면 자녀 양육의 핵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숙고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은 살인하지 마라. 7계명은 간음하지 마라. 8계명은 도적질하지 마라. 9계명은 거짓 증언을 하지마라. 10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이는 모두 가족과 이웃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되며 탐욕을 부렸어도 안 된다는 규범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탐심을 버리고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명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부모가 먼저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앞서 칼럼에서도 피력한 바 있지만 아이들은 가르치는 것을 배우기보다 보여주는 것을 더 쉽게, 더 견고하게 배우게 된다. 부모들의 신앙과 윤리적인 삶을 보면서 아이들의 신앙과 윤리적인 삶이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자신의 탐욕보다 가족과 이웃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려서부터 자기 자신이 존중받고 공감 받으며 실수하고 실패해도 지지하고 격려하는 양육을 받아야 한다. 존중과 공감하는 능력은 존중받고 공감 받을 때 배우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족과 이웃을 존중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감능력이 갖추어진다면 더 이상 묻지마 같은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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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육칼럼
    2023-08-18
  • 경찰청 조사 결과에 대한 동상이몽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와 관련해 부산지방경찰청 반부패수사팀이 지방재정법위반 등으로 지난 7월 31일 검찰에 송치한 사건과 관련해 이를 진정 또는 고발인측과 부기총간의 전혀 다른 입장들이 흘러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청에 진정하거나 고발한 당사자들은 “그동안의 의혹들이 경찰청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부기총은 교계와 지역사회에 사과하고, 법인을 해산하거나 (집행부가)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기총 현 집행부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고발이 들어갔기 때문에 피고발인 일부 목회자들은 개인적으로 ‘혐의없음’(증거불충분)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부기총 A 관계자는 “트리축제와 관련한 부기총에 대한 무고와 마녀사냥이 이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31일자로 부산광역시경찰청에서 부기총 목사님들에 대한 '혐의없음' 통지서가 어제(8월7일) 도착했습니다. 어둠의 긴터널이 지나고 마침내 새벽이 오고 있습니다”고 문자를 보냈고, B 관계자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기총에서 어느 목사가 공금을 횡령한 목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는 시비와 구비 국가 돈을 유용한 자는 없다고 봅니다. 사업자끼리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며 본인들(목회자)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부기총 인사들의 주장에 대해 교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비록 피고발인 목회자들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통지서를 받았다고 해도, 트리축제 재정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것은 사실이고, 이들(피고발인 목회자)이 결재라인에서 트리축제를 주도 해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교계가 주도해온 트리축제가 이제는 중구청이 주도하는 빛축제로 전락한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검찰통지에 언급되어 있는 인물 4명 중에는 목사,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업자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너무 궁색하다는 평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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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8-18
  •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 추진중인 고신의대 학생 TF팀
    고신의대 학생들이 대학 본부 학사운영비 미지급 문제에 대해 TF팀을 꾸려 대학집행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큰 성과가 나오지 않자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에 나섰다. TF팀은 “본대 측에서 주장하는 ‘하나의 고신대’라는 미명하에, 힘들 때일수록 다같이 먹고 살 방법을 강구해보자고 부탁하여 지금까지 대화와 소통으로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대측에서는 해당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최근 (부산지역 일간지)기사에서는 지금까지의 만행을 부정하는, 우리를 기만하는 언행을 펼쳤습니다”며 “고신의대의 현 상황과 사건 개요를 외부에 알리고 이를 공론화하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의 등록금이 의과대학 교육에 적절히 사용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내기 위하여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려 합니다”고 의대 학생들에게 공지를 띄웠다. 또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이 현 상황에서 대학 측의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라며 “당장 2학기부터 450명 분의 등록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학교는 재정 운영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에 학생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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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08-18
  • 한국교회 목회자 청빙 지평이 바뀌고 있다
    5060세대 한국교회 목회자들, 특히 65세부터 70세 사이의 목회자 세대들이 일선 목회 현장에서 조기은퇴 내지 정년 70세 은퇴를 하면서 은퇴 시기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5060세대들이 세대 교체되는 변곡점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교회마다 여기 저기서 목회자 청빙광고가 교단지에 매주 즐비하게 게재되면 이럭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청빙위들이 골치 아픈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예장통합측 부산지역 교회들을 보면 백양로교회 김태영 목사가 금년 12월로 은퇴하고 김해교회. 대민교회. 은성교회. 대지교회 등 중형 교회들이 하나 둘씩 은퇴함으로서 목회자 청빙에 신경을 쓰고 있다. 통합 교단만이 아니라 예장 합동. 고신 교단들도 마찬가지다. 교회마다 청빙 절차에 골몰하고 있다. 과거 10년~20년 전에는 담임목사 청빙의 경우 자격이나 선호했던 스펙은 SKY출신, 석·박사, 해외유학파, 훤칠한 인물, 뛰어난 설교 등이 유행처럼 등장해 자격기준에서 가산점수로 보탬이 되었다. 여기에서 대형교회 현재 목회자의 추천서가 결정적인 합격 요인으로 작용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세대들의 교회 성도들은 목회자 청빙 선택 기준이 달라졌다. 서울대, 고대, 연대(sky), 석·박사, 해외유학파가 아니고, 이력서를 잘 쓰고 은혜로운 내용의 설교가 아니고, 대형교회 목회자의 추천서나 대형교회 부목 출신들도 아닌 오로지 영성과 인성을 겸비한 겸손하면서도 기도와 심방, 열성의 덕목에 관심을 갖고 청빙위원들이 서류심사나 면접을 하고 있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A교회 경우 71년의 전통이 있는 중형교회인데 과거 목회자 청빙으로 SKY 출신 목회자가 두명이나 거쳐 갔다. 수도권 교회에서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해 해회유학파, 석박사 출신, SKY 출신이 대부분 자리잡아 선호했던 것이다. 이제는 설교학 전공도 AI GPT에 접목하면 멋진 설교 한편은 문제가 없이 수월하게 짜여 나오게 되어 있다. 설교를 통해 은혜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권위의식이 몸에 베여있으면 바로 탈락감이다. 목회자는 무엇보다 성도들, 잃은 양 한마리를 찿아나서는 겸손함, 열정과 인성이 가장 선호하는 덕목이다. 그런 데다가 성전에서 엎드려 기도 많이 하는 그런 목회자를 선호하고 있다. 이제 스펙은 5060세대에 많이 쓰인 기준으로 현대교회 목회자들의 청빙 지형은 새 형태로 바뀌고 있다. 한번씩 청빙 경험이 있는 교회들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세상 밖의 기준에서 사용되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세대 개념의 발상에 치중하는 경향이라면서 젊은 시무장로 A씨는 “이제 목회자 청빙 지평은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필자가 경험했던 고 최상식 목사(은성교회 70~80대 시무)는 스펙도 없고 월남하여 피난민 거주지였던 남부민 산중턱 지역에서 기도와 심방은 필수이고 믿지않는 지역 주민들이 장례가 나면 찾아가서 기도와 격려하며 주민들로부터 칭송이 대단한 분이었다. 18년간 시무하다가 정년은퇴를 하고 서울로 이사 가는데 김해공항에 나온 대부분이 교회 동네 믿지 않았던 주민들이었다. 그들이 공항에 나와 아쉬워했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병원 심방하여 기도했고 교인 중 가을소풍을 갔을 때 뱀에게 물렸을 때도 손수 자신의 입으로 빨아 내는 그런 분이 목회하여 600~700명이 넘는 중형교회로 부흥시켰던 분이다. 정말 겸손하고 얼마나 열심히인지 기도시간 이외는 동네를 다니면서 구제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부산노회 동료 목회자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된 참된 영적 목회자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B교회 원로 장로 한 분은 “우리 시대와는 목회자 청빙 기준이 정반대가 되었다. 과거 초대 교회 형태의 목회자들이 학벌도 없고 순수한 기도, 심방 밖에 모르는 순수한 목회자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요즘 청빙 광고가 신문에 나갈 경우 줄 잡아 약 50~70통 이력서가 쌓이고 있다. 서류전형 심사에서 부터 청빙까지 약 6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교회 교단들마다 목회자들이 남아 넘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학령인구 자체가 줄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신학대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학교마다 정원을 줄이고, 각 교단에서의 6~7개의 직영 신학대학을 향후 10년 안팎에는 2~3개로 구조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이는 한국교회 전반적인 목회자 양성, 신학대학원에 대한 재조정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래야 목회자들의 과잉 수급이 줄어 목회자들의 권위도 상승 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청빙위원들도 종래는 시무장로들만의 전용으로 결정하여 공동의회에 상정하고 했는데 지금은 청빙위원도 권사, 안수집사 등 평신도 대표자들도 함께 가담하여 신중을 기하고 있다. 특별히 청빙에 첨가할 과제 가운데 목회자 사모의 자체와 소문도 현장교회에 가서 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의 경우 사모가 같이 목사가 되어 동역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여론이다. 이런 경우 교회 부흥에서도 보탬이 되고 흔히 스캔들 구설수에 휘말리지도 않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정인규 목사는 은성교회 임시당회장으로 파송받아 8월 6일 주일 설교 제목이 ‘청빙을 앞두고’란 제목으로(에스겔 344:7~16) 설교하면서 목회자 청빙 가이드라인 몇가지를 제시했다. 바로 스펙이나 해외유학파. 석박사 소지자, SKY출신, 설교 잘하기, 인물 중점 등을 보기 보다는 “양떼를 구원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는 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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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목회자칼럼] 늦은 비의 복을 주옵소서
    그동안 성경 첫 장 설교를 많이 한 것 같다. 창1장의 하나님의 본심 네 가지, 수1장의 쓰임 받는 사람의 여덟 가지 특징, 삼상1장의 응답받는 기도의 매뉴얼, 시1장의 복있는 사람의 특징, 눅1장의 팔방미인, 행1장의 경계선 장애 극복. 최근에는 성경 마지막장이 은혜가 되었다. 마28장의 복음의 전달자, 행28장의 담대하게 거침없이, 그리고 오늘 욥42장의 말씀이다. 사람은 마지막의 모습이 중요하며, 뒷태가 고와야 된다. 유언과 같이 최후에 남기는 말씀이 중요하다. 욥42장은 성경 상에 가장 고난 받은 사람의 모습과 치열한 논쟁 후 마지막 결론을 기록하고 있다. 욥의 회개기도와 친구들을 위한 중보기도로 마무리된다. 김양재목사 말처럼 구원역사를 통해 내 삶이 해석이 되어지면 해결이 된다. 회개할 때에 회복되고, 항복할 때에 행복해진다. 욥과 친구들의 오랜 논쟁과 갈등으로 감정이 상했을 법도 한데 욥이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요15:13) 예수님의 사랑을 친구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친구사랑의 핵심은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109:4) 욥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친구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할 때 영적회복이 되고, 관계가 회복되었다. 미움은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다. 사랑하고 축복할 때 문제가 봄눈 녹듯이 녹는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보다 갑절의 소유를 주셨다. 상황이 역전되었고, 상속권이 인정되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역전, 반전, 역주행의 기적이 나타난다. 내가 설치면 나홀로 일을 하지만, 내가 기도하면 주께서 역사하신다. 주께서 욥을 돌이키실 때 고난으로 인하여 멀어지고 오해하였던 가족이 회복되고, 이웃이 회복되었다.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욥42:11) 욥이 어려울 때에 비난하며 떠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의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 밥상머리, 베갯머리가 회복되고, 입맛, 밥맛, 살맛이 회복되고, 단잠, 숙면, 꿀잠을 자게 되었다. 그들이 욥을 슬퍼하며 위로하였으니 소통과 공감과 나눔이 회복되었다.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고리 하나씩을 위로금으로 주었으니 물권이 회복되었다. 부자는 티끌모아 태산이 되고, 십시일반이 모이고, 만 가지 은혜를 받고, 사방에 돕는 자들이 나타난다. 욥이 받은 최고의 축복은 말년의 복이다(욥42:12). 졸지에 당한 고난보다도 부인과 친구들의 정죄와 비난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끔찍하고 황망한 시절에 마음으로 원망하지 않았고, 입술로 범죄치 않았다. 사사시대에 룻이 전반전은 엉망진창이었지만 후반전에 나중축복을 받았다.(룻3:10) 시골에서 어른들이 화투치기 하는 것을 볼 때 초장 끝발보다 후 끝발이 중요했다. 인생 이모작을 살면서, 하프타임을 지나, 배터리 충전하고, 성령충만, 은혜충만 받아야 결실의 계절에 늦은 비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낙심천만한 오랜 고난과, 힘 빠지고 지치기 쉬운 인간관계 속에서 욥은 저력있게 버티었고 마침내 모년, 말년, 노년에 복을 받았다. 욥은 졸지에 일곱 아들과 딸 셋을 잃었지만, 말년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부인을 제외하고는 갑절의 복을 받았다. 자녀들의 미모와 기업을 볼 때 명성이 회복되었다. 주일학교에서 다음세대 일꾼들이 새벽이슬같이 일어나야 된다. 정치, 경제, 국방, 외교, 교육, 문화, 사회, 목회, 선교사역에 준비, 예비, 겸비, 유비무환의 지도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리라. 도산 안창호선생님은 인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네가 인재가 되라고 하였다. 욥은 오랜 고난의 세월을 버티어서 140세를 장수하였고,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으며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다(욥42:16~17).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고, 황충이 해하지 않고, 때를 채웠다. 나이가 차서 죽는, 충만의 복을 받았다. 물이 끊어지지 않고, 막히지 않고 연결이 되었다. 오래오래, 길게길게, 곱게곱게, 넓게넓게 복을 누렸다. 요셉이 7년 대풍년에 흥청망청하지 않았고, 7년 대기근을 잘 버티었다. 모세는 애굽, 바로의 궁궐에서 40년, 미디안광야에서 40년, 출애굽 40년, 오르막내리막 길을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잘 감당하였다. 아니, 그 변덕스러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께서 끝까지 이끌어 주셨던 것이다. 욥의 전반전은 눈물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것마저 후반전을 위한 눈물의 씨앗을 심는 과정이었다. 세월이 무섭게 빨리 지나간다. 누구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자기에게 남은 세월을 기억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버티고, 견디자! 주께서는 남은 자를 통하여 구원역사를 이어 가신다. 현재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늦은 비의 복을 대망하면서 살아 버티어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간다. 늦은 비가 내려야 곡식이 익는다. 찬 서리가 내려야 가을걷이가 끝이 난다. 성경에는 이른 비가 우리나라의 늦은 비이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시간 개념이 크게 혼돈하게 되었다. 골든타임, 하프타임, 파이널타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알 수가 없고,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법이다. 이 세상 끝날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갈, 저 천국이 예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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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이승만 연구가 유영익 박사
    오늘 아침 신문을 보고 유영익 박사가 7월 26일 저녁 이대서울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36년 4월 9일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신 유영익 박사는 사학자로서 큰 족적을 남기고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그는 1960년 미국으로 가 하버드대학교 역사·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1972년에는 갑오경장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했다. 그 후 택사스의 휴스턴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일하던 중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사학과, 한림대학교 사학과,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객원교수, 그리고 한림대학교 부총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한국학 석좌교수로 일했고, 그 후에는 한동대학교 국제개발협력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했다. 필자가 그를 만났을 때가 이 무렵이었다. 물론 지면으로는 이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지만 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한동대학교 교수 기도회와 학생 채플 설교차 갔는데, 아침 교수 기도회 후 유영익 교수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필자에게 먼저 오셔서 “유영익 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던 노학자의 겸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그와 교류하며 그의 학문과 인격을 대하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큰 영예였다. 나의 부족한 책도 인사하는 뜻으로 그에게 보냈지만, 그는 2010년 4월 아시아왕립학회 서울 지부가 펴낸 영문서적 <초기 한국의 미국과 일본과의 접촉>(Early Korean Encounters with the US and Japan)을 선물로 주었고, 2013년 6월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일조각, 2013)을, 2019년 8월 말에는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청미디어, 2019)을 보내주어 감사하고 송구했다. 한동대학교를 떠나 이후에는 한일역사공동연구촉진위원회 운영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휘하에서 제12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소천되기까지 국방대학원 석좌교수였다. 유영익 박사는 한국근현대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이지만 특히 이승만 연구가로서 이승만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하버드-옌칭 도서관에서 청년기 이승만이 저술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읽고 그의 개혁사상과 국제정세에 대한 식견에 큰 충격을 받아 이승만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승만이 <독립정신>을 탈고했을 때가 1904년이니 29세 때였고, 한성 감옥에서 쓴 책인데, 출판된 것은 1910년 미국에서였다. 이 때 이승만은 대한제국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 그리고 대한제국이 해야 할 일들을 말하면서 기독교입국론을 주장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유영익 교수는 이 책을 읽고 국제 정세를 헤아리는 청년 이승만의 식견에 감복하였고, 이후 이승만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1993년 말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 교수로부터 이화장에 보관되어 있던 10만 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승만 관련 사료를 기증받은 일이었다. 이때 이건희 삼성회장은 50억 원의 연구자금을 제공했고, 최송옥 여사는 1996년 8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소재한 자신의 저택을 이승만 연구를 위해 연세대학교에 기부하였다. 그래서 유영익 박사의 주도로 1997년 연세대학교에 현대한국학연구소가 설립되어 이승만 연구를 주도하게 된다. 유영익 박사는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로서 연구원의 초대 소장이었다. 2011년에는 연세대학교 현대학국학연구소에서 이승만연구원이 분리되어 독립된 기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영익 박사는 방대한 문헌을 바탕으로 이승만 연구를 수행하여 이승만 재평가를 이끌었고, 이승만을 비판하는 수정주의, 좌파적 시각을 거부하고 이승만의 생애, 사상, 독립 외교활동, 교육, 연설활동 등을 연구하였다. 그는 이승만의 공과를 따진다면 공7, 과3으로 평가하면서 자유민주의에 기초한 정부수립 혹은 건국, 미국식 대통령제 확립,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농지개혁, 60만 명 수준의 국가 상비군 육성, 양반제도의 근절과 남녀평등 실현 들을 공로로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이승만은 중국의 쑨원(孫文),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 諭吉)를 능가하는 인물로 평가했다. 그런데 지난 6월 20일 유영익 박사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경애하는 이상규 교수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에 교수님께서 날마다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유영익.” 자주 문자를 주시는 분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문자였기에 반가운 나머지 바로 답신을 드렸다. “아이구 존경하는 유 박사님, 황송합니다. 늘 강건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제 밤에 안동에 왔습니다. 오늘 경안대학교에서 강연하게 되었습니다.” 꼭 한 달 전의 일이다. 경북 안동에서 나눈 문자가 마지막 통신이었다. 자신의 갈 길을 예견하신 듯 미천한 후배 학도에게 지상에서 마지막 고별의 문자를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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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 [박만 교수]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하자
    나이 들고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시간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점 있지만 감사할 일들이 더 많다. 많이 모자란 사람이 그저 은혜로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아울러 남은 시간 더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다짐 한다. 그 가운데 요즘 들어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큐로스를 곧잘 생각한다. 에피큐로스(BC 341-BC 270)의 가르침은 대단히 직설적이고 분명하다. 곧 쾌락은 좋은 것이고, 삶의 목표는 가능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기쁨과 쾌락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우리 삶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가령 신들이 있고 그들이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들의 심판과 저주를 생각하며 살면 누구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언한다. ‘신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설혹 있어도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당신에게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들 생각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각자 알아서 행복의 길을 찾으라.’ 더 나아가 그는 영혼도 내세도 부인한다. 이들은 몸이 죽으면 영혼(정신작용)도 끝나고 그것으로 끝이니 영혼이니 내세니 하는 데 골몰하여 지금 눈앞의 기쁨과 즐거움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에피큐로스의 이런 주장 때문에 그의 사유는 보통 쾌락주의(Hedonism)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쾌락주의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들이 말하는 쾌락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는 쾌락이었다. 그는 귀족이나 부자 남성 같은 특권층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권한이 있으며 사회 역시 이처럼 그 구성원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쾌락에도 등급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이 볼 때 맛있는 것을 먹고, 원하는 물건을 소유하며 마음에 드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 역시 쾌락을 주지만 이런 종류의 쾌락은 일시적이고 열등한 쾌락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쾌락이다. 곧 이들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정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진정한 쾌락이며 삶은 이런 높은 차원의 쾌락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도 없고 내세도 없다는 에피큐로스의 주장은 물론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있고, 행복에는 등급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누구도 차별 없이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깊이 공감한다. 실상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 이유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긍지있고 행복하게 살게 하려 하심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최근 들어 좀 더 행복하게 지낼 길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취미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기타를 다시 손에 잡았고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 서툴지만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고 친교를 나누니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먼저 내가 행복해야 행복한 설교, 행복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스스로 먼저 행복하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분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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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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