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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부활절연합예배 따로 열리나...?
    부산기독교총연합회(이하 부기총)가 매년 개최해 온 부산지역 부활절연합예배가 금년에는 따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기총 증경회장단협의회 대표회장 박선제 목사는 “부기총 현 집행부는 동력을 상실했다고 본다.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증경회장단협의회가 주관해서 각 연합기관과 각 교단 중진 목회자들을 초청해 ‘부산지역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준비위원회가 주최가 되어 부활절연합예배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목사는 “44년 전 부기총이 처음 시작한 목적은 부활절연합예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부기총 행보를 보면 부활절연합예배보다 트리축제가 우선시 되어 온 느낌이다. 또 최근 몇 년동안 부활절연합예배는 특정 교회에서 특정인들만의 잔치로 치러졌다고 평가하고 싶다.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도 부활절연합예배 만큼은 부산지역 1,800여 교회들의 잔치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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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1
    6.25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은 어떻했을까? 부산에는 1946년 9월 20일 개교한 고려신학교가 있었다. 고려신학교는 부산진 좌천동 일신여학교 교사에서 시작되었으나 약 5개월 후인 1947년 3월 5일은 한상동 목사가 시무하던 초량교회 삼일유치원으로 이전하였다. 한상동 목사는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기 두 달 전인 1946년 7월 30일 초량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목회하여 있었는데, 해방 후 다시 선교지로 돌아온 호주선교부가 일신여학교 교실 사용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하였다. 즉 한상동 목사와 호주선교부 대표 안다손 (George Anderson) 선교사간에 문제가 있어 한상동 목사는 일신여학교 건물에서 나와야 했고, 마땅한 교사가 없어 초량교회 유치원으로 이전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40일 후인 4월 19일에는 부산시 광복동 12가 7번지 적산 건물로 이전하였다. 이곳이 지금의 광복동에서 용두산공원(당시 우남공원)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주변이었다. 따라서 전쟁기 고려신학교는 광복동 1가 7번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학생 수는 70여명에 달했다. 그렇다면 다른 신학교육기관은 없었을까? 전쟁기 서울의 대학이 부산에서 수업하거나 부산 분교를 운영하였고, 1951년 5월 4일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 조치법’을 공포하여 전시연합대학을 운영하게 했다. 이런 경우는 세계교육사상 유례가 없는 전시 하에서의 교육 제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에 있는 신학교는 어떻게 신학교육을 계속했을까?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 오게 되자 부산에서 임시교사를 설치하고 신학교육을 시행하였는데, 한신대학의 경우도 부산에서 전시학교를 운영하였다. 1940년 개교한 조선신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951년 4월 28일에는 한국신학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된다. 이 조선 신학교는 전쟁이 발발하아 임시 휴교하였으나, 1951년 3월 부산에서 다시 개강하게 된다. 이 일 주도한 이가 정대위 교수였다. 당시 학교 관계자들은 부산이나 제주도로 피난 중이었는데, 그는 항서교회 종탑 방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었다. 후에 경동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강원룡 목사도 정대위 교수와 같이 항서교회 종탑방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남부민동의 항남교회에서 신학교육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항남교회 권남선 담임목사는 일본 아오야먀(靑山學院) 출신으로 김재준 보다 2년 선배였다. 이런 관계로 항남교회 옆의 공한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강원룡의 회고록에 의하면 거제도에서 피난하고 있던 김재준 목사를 찾아가 부산으로 돌아와 다시 신학교를 시작하자고 했을 때 김재준은 완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김재준은 조선신학교 설립자 중의 한사람이었고 조선신학교를 많이 후원했던 진정률 장로가 거제도에 살고 있었기에 그곳에서 피난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유학했던 정대위 교수는 영어가 능통했고 한국전에 참가한 캐나다 군부대로 찾아가 그들이 쓰고 버리는 목재 탄환상자들을 대량으로 얻어와 임시교사를 짓고 사택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김재준 목사를 찾아가 신학교육을 위해 부산으로 돌아와 달라고 요청하엿고, 이렇게 하여 교수들이 모이고 신학교육을 재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대위 교수는 학장으로, 최윤관은 부산의 상이군인정신요양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교수하고 있었고, 김정준은 교수로 동참했으나 1951년 8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의 임마누엘신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1952년 3월에는 서남동, 이장식 교수와 전경연 박사가 교수로 취임하였다. 강사로는 안희국, 강원룡, 김종대, 서창제, 지동식, 최거덕, 한철하 등이 강사였다. 피난지에서 첫 졸업식은 1951년 7월 18일 거행된 제10회 졸업식이었다. 학부 15명과 전문부 32명을 배출하였다. 학생수가 늘어나자 미군과 교섭하여 목재와 나무상자를 얻어와 강당 겸 강의실도 세우고 신학교육을 시행했는데, 이곳이 남부민동 22번지였다. 1952년 4월 26일에는 함태영 목사가 학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대한민국 심계원장 출신인데, 저명한 법률가였다. 피난생활을 끝내고 서울 동자동 켐퍼스로 돌아간 때는 1953년 8월이었다. 그래서 한국신학대학은 2년 5개월, 곧 5학기 동안 부산에서 신학교육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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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최병학 목사]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한국의 이대남
    최근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로 인해 급속도로 ‘진보’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이대남들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자, 곧 ‘일베 이대남’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을 ‘활성 이대남’으로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만(사회비평가 박권일), 아무튼 이들은 ‘안티 페미니즘’의 기치를 내걸고 절차적인 측면에서 공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령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관련 사안에 있어서 이대남들은 “왜 아무 근거도 없이 패자를 승자와 같게 만들어 버리냐?”라고 따져 묻습니다. 기성세대는 공정을 내용적인 공정, 곧 서로 경쟁하더라도 승자와 패자 간에 격차가 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대남들은 각자도생과 승자 독식의 가치관을 주입받았기에 사회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만족과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에 길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능력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열주의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우경화로 이대남들이 60대보다 더 보수적으로 되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이대남들은 급속도로 좌경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씨앗은 일찌감치 뿌려졌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불평등을 인식하고 2011년에는 월가를 점거하고 “우리는 99%다!”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민주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어 힐러리 클린턴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세웠습니다. 물론 한국의 이대남은 그 반대 견해인 후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가난한 세대의 좌회전』(동녘, 2021)에서 미국 밀레니얼 좌파 정치의 주역이자 열렬한 민주사회주의자인 네이선 로빈슨(무려, 1998년생입니다!)은 미국 이대남의 목소리를 이렇게 전합니다. “나는 가난과 부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봤다. 명품 판매업체들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파는 것을(티파니는 490달러짜리 순은 각도기를 판다). 나는 봤다. 미국인이 매일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 15만 톤부터 버버리가 상품의 희소성과 비싼 값을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소각하는 수천만 달러어치 고가 핸드백까지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을. 나는 봤다. 누구는 해마다 새 휴대전화를 사고 전에 쓰던 휴대전화를 서랍에 넣어두는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일용 노동자들이 45센트를 벌기 위해 토마토를 따서 14㎏들이 바구니를 채우는 것을. 나는 왜 사람들이 이 모든 것에 분노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미국은 전역에서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들이 독서 모임을 시작하고, 책자를 출간하고,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집마다 찾아다니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가 역사상 가장 똑똑하지만 가난한 세대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는 ‘사회주의’라는 단어만 봐도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남북이 갈라지고 휴전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무찌르고 박멸해야 할 그 어떤 것으로 상징됩니다(재벌 부회장이 잘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 이념이 아니라, 현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겠죠? 아무튼 이념에 공감하는 이들에게도 사회주의는 무겁고 비장하며 다소 칙칙한 정언명령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미국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는 사회주의 이념이 “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힙’ 한 상상력”이 됩니다. 로빈슨의 사회주의 개념 정리를 볼까요?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믿음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돼야 하고 어떻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급진적 생각으로 나아간다. 사회주의는 인도주의적 공감에서 미래의 비전을 이끌어낸다. 즉 사회주의는 전쟁이 없는 세계, 계급이나 인종적·젠더적 위계가 없는 세계, 심각한 권력 불균형이 없는 세계, 부와 빈곤이 없는 세계,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세계를 추구한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계에 살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불평등하고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사회주의자는 엄청난 환경 파괴를 막고 자살과 영양실조, 독재자든 사장이든 압제를 없앨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야심 찬 포부의 말이지,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자는 막연한 주장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에 동참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이대남들에게, 미국 이대남 따라하기를 제안하면 박멸될까요? 조카와 동생, 아니 아들 같은 이대남들에게 우려 섞인 걱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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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독일이야기] 통일에 대한 염원
    새해를 맞이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각자 간절히 소원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 내면 깊은 곳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아시아국가로는 흔치 않게 전 세계에 문화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라로 우뚝 섰지만, 우리에게는 뭔가 소화되지 못한 것이 묵직하게 남아 있다는 느낌이 있다. 일의 매듭을 짓거나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저편 구석으로 밀어 넣은 그런 불편한 감정이다. 유구한 역사의 단일민족이 겨우 70여 년 전 외세에 의해 분단이 되었는데, 이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한 민족 한 국가로 되돌려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국가는 먼저 통일된 독일과 같이 반드시 자유로운 민주국가이어야 한다. 이 통일이야말로 우리 국민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대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그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 생각하니, 사회일각에서는 통일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그냥 분단된 상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2019년 한 신문사에서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통일에 관한 국민여론 심층분석'을 했는데, 이에 따르면 "통일을 원한다" (60.4%), "원하지 않는다"(27.3%), "모르겠다"(12.3%)였다. 특히 35세 미만에서는 통일을 원한다는 답변 비율이 50%를 넘지 않아 젊은 세대에서 통일에 대한 바람이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북한의 핵문제를 포함해서 남북 간의 이념갈등, 주변 열강들의 방해 등 넘어야 할 산은 크고 많다. 그러나 나는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생각을 갖는다. 독일 통일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독일 역시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을 보았을 때에 이렇게 통일이 빨리 올 것을 기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치 전문가들 중에서도 그런 예측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붕괴라는 예기치 못한 바람이 불어왔고, 그때 독일은 그 바람을 놓치지 않고 돛을 올려 순풍을 타고 재빨리 통일을 이룬 것이다. 그들이 통일을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했다고 해도, 이런 외적인 큰 변화가 없었다면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통일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남북관계를 위해 뭘 시도해도 그저 한 순간의 이벤트처럼 보일 뿐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우리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세계의 역사의 궁극적인 주권자가 계시다.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자 없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갖고 세계의 역사를 드라이브 해 가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세계 역사를 흔드시고 그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 주님을 바라고 기대하면서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자. 그리고 그 주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자. 아울러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바를 냉철하게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하도록 하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관해 독일의 통일이 우리에게 유용한 참고서가 되어서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이다. 모쪼록 올 한해 통일을 위한 크고 작은 진보가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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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성서연구] 기쁨의 절반은 유보하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염원은 가나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모세를 따라 애굽을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은 가나안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을 가나안에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을 조망하게 하신 후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의 나이 일백 이십 세였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구별하셔서 모세 대신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하시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하셨습니다. 모세 때 홍해를 가르고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다면, 여호수아는 요단강의 물이 멈춰서서 건너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도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셨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얻었고,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 기업을 분배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가나안을 얻었을 때 이스라엘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 우리 땅이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 기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었고, 애초부터 가나안을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생각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절반은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얻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을 얻는 것도 중요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가나안을 얻은 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을 얻은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면, 그때는 충분히 기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가나안의 삶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답게 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원수처럼 살 것인지, 이것이 아직 남아 있는 과제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을 따나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들은 가나안에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나안은 그 자체로는 복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애굽이나, 광야에서 멸망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멸망했다는 사실입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축복의 땅에서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얻었을 때는 절반만 기뻐해야 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겸손히 기쁨을 뒤로 미뤄야 마땅했습니다.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지요. 저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그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지요. 그때 가서 기뻐해야지요>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절반의 기쁨은 뒤로 남겨두었어야 합니다. 우리도 2022년을 출발하면서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웁니다. 우리에게도 가나안이 있습니다. 모두 가나안에 도착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도착할 때 절반만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기뻐하면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겸손합시다. 절반만 기뻐하고 나머지는 두려움과 겸손으로 남겨둡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그러면 언젠가 온전한 기쁨을 누릴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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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소강석칼럼] 진짜 신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
    코로나 팬데믹의 검은 안개가 자욱한 중에도 동해의 붉은 태양은 장엄한 몸짓으로 솟구치고 황홀한 태양의 눈동자로 다시 새해의 첫 아침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해의 찬란한 일출과 함께 절망과 비난, 혼란과 분열의 비가(悲歌)를 그치고 다시 하늘 순례자의 발걸음으로 신발끈을 동여매며 가슴 벅찬 희망과 부흥의 행진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이어지는 코로나의 광야길에서 얼마나 상처받고 힘든 싸움을 해야 했습니까?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애를 태우며 부흥을 사모해야 합니다. 저 역시 코로나 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애간장을 태웠는지 모릅니다. 그 숱한 불면의 밤을 지새우다 어느 날, 하나님을 향한 순명과 애간장을 녹일 때,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위대한 메시지 자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먼저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냉담과 방치와 습관이 체질화가 되고 매너리즘에 빠져 버리게 되고 맙니다. 성경에서도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벧전5:8-9)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능동적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일찍이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라는 책에서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좋게 여기고 만족하며 그 너머의 위대한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면 망하게 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아무리 지금이 좋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더 발전하도록 도전하고 변화해야지 위대한 세계로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 콜린스는 이런 유명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Good is the enemy of Great.”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 오늘 우리의 삶도 “지금 여기가 좋사오니” 이 상태로 변하기도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원하면 반드시 신앙이 정형화되고 화석화 되고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이든 사람이든 간에 스스로 모험의 세계에 도전하며 변화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강하고 위대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했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변하는 자가 살아남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고 위대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애를 태우며 가슴 속에 갈증을 일으켜야 합니다. 도전 정신이 없으면 애간장을 녹일 수가 없습니다. 기존 매뉴얼과 형식에 맞추어 성실하게 사역하는 것과 애를 태우며 갈증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제가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드는 사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연합기관 통합을 위해서 정말 애간장을 태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통합을 하자고 하면서도 실무적으로 들어가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반대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더 애간장을 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예배 회복을 위해서 얼마나 조바심을 가져야 했습니까? 성탄절과 송구영신예배, 신년축복성회 때 얼마나 투혼을 발휘했습니까? 그런데 그 위기 속에서도 애간장을 태우는 초비상 사역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이뤘는지 모릅니다. 그런가하면 능동적 창의력을 갖는 시각과 마인드를 일으켜야 합니다. 현재가 좋다고 안주하는 순간 쇠퇴하게 됩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고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패스파인더만이 길을 열고 창의적 선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은 사랑입니다. 코로나 때는 방법이 아니라 가치 중심으로 가야 됩니다. 가치 중심으로 가야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치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생각과 방법을 앞세우니까 서로를 공격하고 내부 총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위기는 3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3년 차는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남더라도 후유증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2022년은 우리의 진짜 실력이 나타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진짜 실력이 있는 개인, 공동체, 기업은 더 두드러지게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개인, 공동체, 기업은 도태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이제, 진짜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능동적 도전과 애간장, 말씀의 임재와 사랑의 능력으로 다시 포스트 팬데믹을 선도하는 센터 처치, 센터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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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시사칼럼] 향후 한국사회의 전망
    먼 훗날 유의미한 역사적 출발로 평가 받음직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언가 대대적으로 달라지리라는 예측은 많으나 그 변화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이런 개념 혹은 가치가 득세하겠다는 일반적 추정은 가능합니다. 먼저 정치 분야에 있어서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2-2004)가 말한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Messianicity without messianism)’를 주목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사람들은 일종의 초인(超人)을 갈망합니다. 정도령 사상이나 히틀러의 나치즘을 생각해 보십시오. 더군다나 급격하게 비종교화 · 탈정치화가 진행 중인 지금, 위기에 빠진 많은 인생들이 메시아 아닌 메시아를 고대합니다. 이 나라가 나아갈 향방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대선(大選)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선거권자들이 더 이상 ‘브이아이피(VIP)’ 즉 후보자들의 비전(vision)과 정체성(identity)과 정책(policy)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향입니다. 따라서 각별히 주의하고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보편적 시민이, 신화적 인간이 아니라 신(神)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신(新)경제학’이 대두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21세기 들어서 주류경제학은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최전방 미국의 경제를 되살리는 일에 실패했습니다(2008년 리먼 사태). 그래서 등장한 책이 『시민경제학(Economia Civile』(Zamagni, Bruni)이었고, 공감이나 사회성에 바탕을 둔 이를테면 ‘공유경제’와 같은 새로운 요소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요소수 대란 사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소방서 앞에 밤낮으로 익명의 기부자들이 줄지어 나타난 곳이 어디였습니까? 한국이었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멈추어버린 세계경제는 앞으로 커다란 도전에 직면할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연방준비위원회는 계속해서 금리인상의 카드를 꺼내들고 있고, 일본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의 우려 속에서도 엔화를 찍어내는 행로를 포기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기존의 경제학이 닥쳐올 경제적 혼돈에 창조적 질서를 부여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은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등장한 신종 코인(BTC)이나 신종 토큰(NFT)을 보십시오. 마치 기업이나 집단에 맞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다윗의 물맷돌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사회 분야에 있어서는 당분간 ‘공정(Fairness)’이 계속해서 뜨거운 감자로 남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2030세대가 치중하는 ‘공정’은 지난날의 ‘정의’나 ‘공평’과도 다른 개념입니다. 다음세대 내부 갈등의 도화선인 페미니즘 논쟁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여성을 향한 사회적 차별보다는 그 격차나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일방적 혜택에 더 크게 분노하는 ‘이대남(이십대 남자)’들이 많습니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책에 대해 그와 무관한 직종에 있는 청춘들마저 격렬하게 반대한 이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의’를 위한 명분이라도 ‘공정’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뜻입니다. 라캉(Jacques Lacan)의 표현을 빌자면 전형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행위인데, 또 하나의 현대적 추세인 공감이나 이타성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다가오는 두 차례의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이들 세대를 모른 채 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 당분간 우리 사회는 구조적 모순이나 제도적 차별보다는 개인의 복리나 분배적 정의에 영점(零點)을 맞추리라 예상합니다. 교회의 균형자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문화 분야에 있어서는 ‘포스트 한류(post-Hallyu)’를 준비해야 합니다. 백범 김 구 선생께서 꿈꾸던 문화강국의 비전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요? 우리는 현재 참으로 감격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했지만, 이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소위 ‘국뽕’ 혹은 나아가 ‘문화제국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면 왜 이제야 한류가 세상을 강타하고 있습니까? 그 표현을 이렇게 바꾸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세계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라는 백범의 말과(1947, ‘내가 원하는 나라’),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에서 기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에 가장 가까운 우리의 보편적 유산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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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최고의 전도사님을 만나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저희 집은 꽃을 파는 꽃집이었습니다. 장미와 튤립, 아네모네, 프리지아, 백합... 학교 다녀오는 길에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면 좁은 길 양쪽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온통 가득했습니다. 천장에는 색색의 리본이 다발로 매달려 있고 여기저기 바구니와 스티로폼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꽃집은 기본적인 꽃다발과 꽃바구니 뿐 아니라 결혼식 부케도 잘 만든다고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신부용 결혼사진에 쓰이는 부케를 선전하는 어린이 부케 모델이 되었습니다. 모델은 튀어야 눈에 띈다며 초등학교 1학년짜리였던 제게 당시 흔치 않던 파마까지 해주셨던 아버지의 센스가 인정을 받았는지 부케는 찾는 이들이 참 많았고 꽃집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잘 되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나라에서 꽃집을 사치산업으로 지정해서 금지시키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운영이 잘 되던 꽃집은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모아놓았던 돈도 모두 떨어지자 아버지는 당시 건설붐이 일던 중동의 리비아라는 나라로 돈을 벌러 가셨고 어머니는 조그마한 옷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사를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집에서 정이 좀 들라치면 또 이사를 가고, 그 동네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또 큰 길을 넘어 옆 동네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한 살 차이인 형과 제가 다른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된 것은 지금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가난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살아가던 시절, 저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어서 길거리에 나와 혼자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 날도 지나가는 개미떼를 지켜보며 여름방학의 오후를 보내고 있던 제가 삐에로 선생님의 북소리를 따라서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노방전도의 열매로 나가게 된 교회학교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해야 칭찬을 받지만 교회는 나오기만 해도 착한 어린이였습니다. 성적을 매기는 것도 아니고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부장님은 못난 모습 투성이인 저를 늘상 예쁘다, 예쁘다 하시며 반겨 주셨고, 선생님들은 항상 맛있는 간식을 두둑이 챙겨주셨습니다. 이런 넉넉한 사랑은 저의 마음을 완전히 교회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나갔던 교회는 서울 후암동에 자리한 통합측 서울서노회 소속의 염천교회였습니다. 당시 염천교회의 아동부를 담당하시던 이춘수 전도사님은 훤칠한 키에 늘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무장 해제시키던 최고 멋쟁이셨습니다. 이춘수 전도사님은 후에 목사 안수를 받고 평택 동산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시면서 동산교회를 경기지역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키우셨고 은퇴 후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큰 본을 보이시는 존경받는 사역자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처음 나간 교회에서 그런 훌륭한 전도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설교시간마다 우리의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멋지게 사용하실 그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부터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들도 우리를 귀하게 여겨줄 거라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어깨를 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희들이 들으면서 다 이해는 못했지만 그래도 참 좋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기죽지 말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늘 몇 번씩 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에 가면 늘 춥고 배가 고픈 현실이 변함없이 저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교회만 오면 어린 제 어깨를 하나님이 꼭 붙잡아주시는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저를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멋지게 사용해주실 거라는 영화 같은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오늘까지 다음세대 사역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때 그 어린 시절, 저의 가난을 이기게 해준 복음, 바로 그 능력과 감격 때문일 것입니다. 저처럼 초라한 아이까지도 품어주셨던 전도사님의 품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저도 분홍목사로서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언제까지나 힘차게 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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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1-07
  • [은혜의말씀] 예수님의 기도(요17:1-11)
    요한복음 17장은 전체가 예수님의 기도로 되어있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에 가셔서 40일을 금식 기도하시며 그 시작을 알리셨고, 또 공생애를 마치실 때도 역시 기도로 끝을 맺고 계십니다. 확실히 기도는 우리 신앙의 시작이요 끝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지요. 이 중요한 기도생활 여러분은 성공하고 계십니까? 오늘 주님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다시 기도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17장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기도가 등장합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1절) 생의 마지막 순간, 예수님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도의 소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지금 십자가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걸 좀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해 주소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4절) 곧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최고의 소원으로 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순종하기 위해 부르짖고 있습니까?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원이 가득해야 할 줄 믿습니다.(고전 10:31) 두 번째, 우리들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20절) 중보기도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를 말하지요. 지금 예수님은 예수님이 떠난 다음에 남게 될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중보하신 기도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보전과 하나됨 입니다.(11절) 1)보전 보전한다는 것은 온전하게 잘 지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제자들을 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이 세상에 머물지 않고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깨어있고 보호되기를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하늘보좌에서 기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 8:33,34)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제 예수님의 중보기도에 우리를 초청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중보기도 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2)하나 됨 여기서 ‘우리’란 말은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듯.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생긴 것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한 분이며,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한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한 형제인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연합과일치의 영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회복과 치유와 하나됨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개인과 가정과 직장에 분열의 영이 떠나가고 사랑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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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 [다음세대칼럼] 눈높이 사랑
    1989년 2월까지, 14살짜리 중학생이던 나는 감정과 의지의 밑바닥을 계속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성적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중독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의지, 그로 인해 점점 커져가는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청소년에 불과했던 내게 그런 삶은 스스로에 대한 마지막 희망의 끈도 놓아버리게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하지만 2월 5일 오전, 난생 처음 교회에 발을 내딛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꿈이 생기면서 공부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진 자아상을 성경 속에서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독 증세가 내 삶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 브레이크 없이 바닥으로 치닫던 인생이 역전되어서, 하늘을 향해서 달려가는 삶으로 변화된 것이다. 지금 돌아볼 때, 이는 나를 향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가운데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신 교역자, 교사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분들은 삐뚤어지고 모난 내게 찾아와 내게 친구가 되어주셨다. 그분들은 내가 먼저 찾아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늘 내게 먼저 찾아오셨다. 학교 앞에 찾아오셨고 집에 찾아오셨으며 내 인생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던 나의 꿈을 인정해주시며 이 꿈의 언젠가는 너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꿈대로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분들을 통해 나 같은 사람도 교회에서는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천 년 전,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거하는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33년을 거하시면서 당신의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땅의 만남, 그것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한다. 나는 청소년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성육신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만나기시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청소년들의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청소년들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그들의 문화로서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고민 속에서 공감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성육신적인 청소년 사역이다. 지금 돌아볼 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셨던 분들의 사역 역시 성육신적인 사역이었으며,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성육신적인 사역을 ‘눈높이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의 눈높이에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것이다. 청소년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언어, 생각,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해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삶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주일 오전에 교회에서 기다렸다가 일주일에 딱 한번 만나는 사역이 아니라, 주중에 학생들의 삶 속에 찾아가야 한다. 학교의 교문 앞에 찾아가서 점심시간에 잠시 얼굴 보고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간식 하나 쥐어주고 오더라도 우리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이들도 안다. 주일날 만나서 “보고싶었다.”는 교역자, 교사의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안다. 주중에 연락 한번 없고, 만나려는 노력 조차 없었으면서, 주일날 만나서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 학생들은 그런 말보다는 주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주중에라도 그들에게 연락하고 찾아가는 마음의 발걸음을 원하고 기다린다. 나는 지난 25년간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평일에는 거의 매일 제자들이 다니고 있는 중고등학교에 점심시간마다 찾아가거나 밤늦게 학원 앞에서 만나왔다. 그곳에서 기도회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건 아니지만, 잠시 얼굴 보고 싶어서 등 한번 두드려 주고 싶어서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이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복음이 되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사랑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높이에 당신의 시선을 맞춰주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친구가 될 수 있었듯이,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눈높이를 맞춰줘야 할 시기이다. 교역자, 교사로 사역하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눈높이가 청소년들의 눈높이와 수평을 이루고 함께하는 올 한해가 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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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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