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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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한국교회, 용서보다 처벌이 우선
    ‘사랑’의 종교인 개신교 성도들이 ‘용서’보다 ‘처벌’을 더 우선시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지앤컴리서치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용서보다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반면 ‘용서가 처벌보다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은 17.2%에 불과했고, 9.4%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조사는 이음사회문화연구원(대표 고재백 최옥경)이 주관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됐다. 26일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김상덕 한신대 교수는 “한국교회 다수가 용서의 가치를 남용하는 소위 ‘값싼 용서’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최근 흉악 범죄가 확산하면서 개신교인들도 엄정한 처벌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모토로 하는 교회가 ‘처벌’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는 여론이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자를 양자로 삼은 고 손양원 목사의 ‘사랑’을, 이 시대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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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서울고등법원, 인터콥선교회 항소 기각
    서울고등법원은 인터콥선교회가 예장 합신 교단을 상대로 ‘이단결의 취소’ 소송에서 항소를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는 지난 23일 “합신 총회가 스스로의 신앙적 정체성에 근거해 내린 판단”이라며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단 결의 무효 여부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각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인터콥측은 “인터콥의 지위와 존립, 유지에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항소를 제기했지만, 고등법원에서도 같은 결과를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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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건국전쟁’ 100만 관객 돌파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지난 27일 기점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일각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건국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한 재평가 여론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흥행은 교회들의 단체관람이 큰 힘이 됐다. 세계로교회(담임 손현보 목사)는 교인 1,200명의 관람 후기를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 이영훈 목사) 교인 5천여 명도 이 영화를 관람했다. 그 외 다수의 교회들이 단체관람을 하는 등 교회 내에서 건국전쟁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은 “내년 3월 개봉을 목표로 ‘건국전쟁2’도 제작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췄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신앙적 모습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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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3.1운동 105년과 부산진 일신여학교 만세 운동 사건을 재조명한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3.1운동이 국민들에게 주는 의미를 차츰 잊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당시 3.1운동 중 부산지역 기독교계는 남성들이 아닌 기독 여성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 당시 기독 남성들은 무얼 했을까? 부산진교회가 부산에서 초량교회와 마찬가지로 133년이란 역사적인 개척 출발이었다. 이것도 우리들에 의해서 선교 개척이 아닌 호주선교사들에 의해 출발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당시 3월 11일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 11명이 태극기 50매를 옥양목에 붓으로 태극기를 새겨 좌천동 거리로 뛰쳐 나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친 그들은 순수한 기독 여성들 학생이었다. 7회 졸업생 김반수 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가 딸 혼수감으로 장롱 속에 넣어 둔 옥양목을 몰래 가지고 나와 3월 10일 야밤에 기숙사 창문을 이불로 가리고 태극기를 만들어 다음 날 밤 8시경 거리로 들고 나왔다”고 한다. 30분만에 모두 체포되어 1년 6개월씩 감옥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이들 배후에는 3.1운동에 동조한 호주선교사 ‘벨 멘지’, ‘데이지 호킹’ 선교사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봉옥, 김신복, 김난출, 김채봉, 이상금, 이차순, 주애국 기독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던 용감한 애국 기독 학생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바로 이웃 부산진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부산진교회 남성 교우들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대표적인 제1회 졸업생 양한나(1893~1976)는 서구 괴정동에서 말년에 사회사업 ‘자매여숙’을 하기 전에는 수도여자경찰서 서장으로 역임하여 만주로 독립자금 전달까지 한 죄로 5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박순천 여사(1898~1983)는 일신여학교 제5회 졸업생으로 마산일신여학교에 선생으로, 신민당 당수, 고문을 역임한 대표적인 여성 정치지도자였다. 이 모두가 부산진일신여학교 설립을 한 호주선교사들의 대부분이 기독 여성이라는 점이고 일신기독병원 설립도 병원 창립 20주년이 되는 1972년 한국인 의사에게 병원장직을 이양했다. 호주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어 헌신해 왔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매견시 목사(1865~1956)는 1910년 2월에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메리케리 전도사와 결혼해 슬하에 헬렌(매혜란), 캐서린(매혜영), 루시, 실리의 네딸과 아들 짐을 두었다. 매 목사는 지금의 한센병 환자를 돌보아 남구 용호동에 상애원을 만들어 환자들의 사망률을 25%에서 2%로 감소시켰다. 1938년 호주로 귀국해 92세 되는 1956년 7월 2일 하늘나라로 갔다. 바로 그의 딸 장녀 매혜란 원장은 1931년 평양 외국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1938년까지 호주 멜본대학교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퀸 빅토리아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의사가 되어 1952년에 한국으로 들어 와서 동생과 더불어 부산 동구 좌천동에 1952년 9월 17일 일신부인병원을 세우고 그리스도 정신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1972년 11월 11일에 부산진교회 명예권사로 임직했다. 그 당시 부산진교회 출석한 황관익 장로, 박경화 장로, 우덕준 장로(우창웅 장로 부친), 김월출 장로, 김경석 장로 등 많은 남성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었지만 기독 여성에 비해 행동에는 용감성이 빈약한 약세였다고 한다. 부산진교회도 1891년 호주선교부에 의해 설립했다. 교회 바로 옆에 1905년 일신여학교를 세워 여성교육에 앞장섰다. 1891년 부산진교회는 호주선교사 멘지스에 의해 세워졌다. 1900년 10월은 엥겔 선교사가 담임으로 부임하여 남자교인들을 양육시켰다. 이 때 교회당을 건축하는데 남자교인들이 주도하다싶이 하여 일반 정치와는 담을 쌓았고 이웃 초읍교회, 지곡교회도 개척 설립 시켰다. 133년이 된 지금도 이 지역은 기독교 성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통합 부산노회 회관을 세웠다. 일신여학교와 담 하나 사이에 세워 모체 노회다운 면모로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옆이 부산진교회이고 바로 밑 아래에 부산 일신기독병원이 터전을 잡아 이 일대를 부산지역 기독교 아성이자 요람으로 세워 나가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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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4-03-04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우광복(禹光福, George Zur Williams) 의사
    앞에서 우리암 선교사에 대해 소개했는데 사실은 그의 아들 조지 윌리암스, 곧 한국이름 우광복(禹光福)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우광복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잘못된 정보가 퍼져 있고, 그의 활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 못 알려진 점들도 있기 때문에 바로 잡을 의무도 있다. 우광복은 우리암으로 불린 프랭크 윌리암스(Frank Earl Cranston Williams)의 장남으로 1907년 4월 7일 제물포항 부둣가 언덕에 있는 선교사 집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선교지는 공주였으나 아기를 출산하거나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 곳이 인천이기에 인천의 선교사집에서 출생한 것이다. 얼마 후 공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그의 한국어 이름이 ‘광복(光福)’인데, ‘광복(光復)’으로 오인하여 그의 아버지가 조선이 광복을 꿈꾸며 작명했다고 말하지만 아들이 출생한 1907년 당시는 일제의 조선 병탄이전이었으므로 광복을 꿈꾸며 작명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아버지가 세운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하고 15살 때 미국으로 가 콜로라도의 덴버에서 생활하던 조부모의 보호 아래 고등학교를 마치고 덴버대학에 입학했다. 의가가 되기 원했던 그는 화학을 전공하였고, 물리학이나 동물학도 공부했다. 1928년에는 덴버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까지 수학하고 의사가 되었고, 덴버와 메리랜드 주 리치몬드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 군의관이 되어 참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승선한 군함이 인천에 정박하게 되어 그는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방 이후 미군정이 통치할 때 우광복 의사는 군정 책임자인 하지(John Reed Hodge, 1893-2963) 사령관의 특별 보좌관으로 발탁된다. 군의관(중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가운데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광복 의사는 하지 중장의 통역은 물론, 미 군정기 인사 및 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가 특별보좌관으로 일한 기간은 이화여대 정병준 교수에 의하면 약 3개월 정도였다고 하지만 공주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서만철 박사에 의하면 약 5개월 정도였는데, 아놀드 군정장관의 요청에 따라 군정에 참여하고 후에 한국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여러 사람을 추천하게 되었고, 초기 미 군정기 정치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즉 미군정의 한국인 관료구성과 이승만의 귀국에도 영향을 발휘한 것이다. 예컨대, 영명학교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미치고 귀국한 조병옥 박사는 치안 책임자인 경무부장으로, 영명학교 교사였던 이묘묵은 하지의 통역관으로, 황인식은 초대 충남도지사로 추천했다. 이런 활동으로 초기 미군정에서 일한 한국인 50명 중 35인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정병준 교수에 의하면 우광복은 주로 선교사 인맥을 통해 두 달 동안에 한국인 관리 7만5천명을 선발하게 했다고 말한다. 서만철 박사에 의하면 우광복은 이승만의 귀국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중도좌파로 인식되던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공화국(人共)을 미군정에서 부인하게 함으로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수립하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 간 우광복은 버지니아의과대학 교수와 보건연구기관장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큰 의학적 업적은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자신도 흡연을 했는데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고 흡연을 중단했다고 한다. 버지니아의대에서 암연구를 계속했던 우광복은 그 후 메릴랜드주의 베데스다로 가서 국립보건연구원(NIH)의 요청으로 암연구센터를 세웠다. 이 기간 최대의 업적은 살아있는 암세포에서 대사과정의 자외선 흡수를 미세하게 측정할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 현미경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또 그는 버지니아종양의과대학을 설립하여 교수와 총장으로 일했고, 그 후에는 샌프란시스커의 태평양의료센터에 새로운 건강연구기관인 의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런 연구 기관의 설립 외에도 의학적 연구를 통한 기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출생하여 한국과 미국에서의 긴 봉사의 여정을 마치고 1994년 11월 22일 87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티뷰론의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자신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 일부는 누이동생 올리브가 묻혀 있는 공주 영명동산의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나머지 유골은 아버지가 묻혀 있는 글린데일에 있는 포레스트 론 기념공원 군인 묘지 자유의 뜰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이 글의 중요 정보는 기독교역사연구소의 ‘내한 선교사 사전’과 서만철의 ‘우리암과 우광복 이야기’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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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3-04
  • [김정환 사무총장] ‘보시니 참 좋았다’ 하셨던 생명의 세상을 다시 향하여
    2024년 3월 11일이면 후쿠시마 핵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13년이 됩니다. 아직도 지진과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사람과 집, 불과 연기에 뒤덮인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 트라우마처럼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자연과 재산의 피해를 입은 채 방치되어 있는 곳, 아직도 고향인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후쿠시마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핵사고로 인한 저장된 핵오염수가 해양 투기를 시작하여 바다를 따라 흐르며 해양 생태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011년 이후 한국의 시민사회는 후쿠시마 핵사고를 교훈 삼아 핵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계속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려 하고 원전의 신규건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핵오염수 투기조차도 용인해 버리고 있습니다. 2024년 새해 첫날 전해진 일본 혼슈 중부 노토반도를 강타한 7.6규모의 지진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속보를 통해 언론으로 전해지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다시 한번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가?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원전은 이러한 강진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선뜻 그렇다고 답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2016년 9월 12일 국내 지진 관측 이래 사상 최대인 규모인 5.8의 강진이 경주 일대에서 발생했고, 1년 뒤인 2017년 11월 16일 사상 2번째 규모의 5.4 포항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지진이 계속 한반도에서 발생하고 있어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 국민은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규모 4~5이상의 지진이 잇달아 발생한 동해 남부 해안지역에 18기나 되는 핵발전소와 그 반경 30km 이내에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주민들은 지진이 원전 사고로 이어질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려고 하고 지역주민들과는 제대로된 소통 없이 원전부지 내에 핵폐기장을 설치하려고 하는 정부 당국과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하여 시민,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세상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국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인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묻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핵발전은 방사능 위험뿐만 아니라, 지역 간 불평등, 핵폐기물 처리라는 거대한 숙제, 초고압 송전탑으로 인한 주민의 고통, 지역공동체의 파괴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시는 후쿠시마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지역 주민의 안전과 지구가 안고 있는 온실가스와 기후재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리2호기와 같이 수명이 다한 원전의 불을 완전히 끄는 일과 함께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탄소중심의 에너지 체제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낼 에너지 체제로 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태양과 바람과 물을 이용한 에너지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안전한 사회로의 전환을 만들어낼 분명한 대안이며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 그 창조세계, 생명의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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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4-03-04
  • [서임중칼럼] 망원경과 현미경 목회
    나의 목회병법 10가지 가운데 망원경 목회병법과 현미경 목회병법이 있다. 문자 그대로 멀리 보는 것과 가까이 보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안동을 떠나 포항으로 임지를 옮기던 날, 예배당 마당을 가득 메우고 들어선 성도들의 얼굴에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헤어짐의 아픔과 슬픔들, 아니 절박하고 처절하다는 표현이 맞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들……. 그날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아니 결코 지울 수 없는 목회 여정 중의 한 날이었다. 그날 새삼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8년을 섬겨오던 교인들의 실상을 그날에야 더욱 확연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은 달랐지만, 포항중앙교회를 떠날 때도 그랬다. 함께 울고 웃던 교인들의 실상을 그날에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교인들은 무덤덤한 표정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교인들은 저만치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음이 왔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재대로 볼 수 있는 현미경이 내게 없었고, 전체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내게 없었다는 것. 서 목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듯했던 사람들은 저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었고, 서 목사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던 교인들은 여기저기 서서 울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주저앉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소리 없는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던 그날, 아직도 그날은 멀어지지도 지워지지도 않고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이 후로 나의 목회병법에 망원경 목회와 현미경 목회를 추가했다. 먼 곳만 보는 사람은 가까운 곳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가까운 곳만 보는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경영리더십의 교훈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과 현미경 가운데 하나만을 갖고 있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 성공을 하고 한 가지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목회 현장 또한 다를 바가 없다. “곤충의 눈으로 발밑을 보고, 매의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라.”는 교훈도 있다. 곤충의 눈은 현미경과 같고 매의 눈은 망원경과 같다. 곤충의 눈으로는 가까운 곳 나의 발밑을 보아야 하고, 동시에 매의 눈으로 먼 곳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나무와 숲을 모두 본다는 뜻이다. 기업경영이나 정치 현장에서도 가까운 곳만 보고 있어서는 트렌드의 변화나 외부의 위협을 감지하지 못하고, 반대로 먼 곳만 보고 있어서는 내부의 균열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교훈한다. 그래서 성공자의 삶에는 반드시 곤충의 눈과 매의 눈을 확보한 시야가 있다. 1982년에 발매된 조용필 4집 <못 찾겠다 꾀꼬리>에 ‘비련’이라는 제목이 있다. 당시 매니저 최동규 씨는 이와 관련된 감동 이야기를 남겼다. <4집 발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시골의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14살 지적 장애가 있는 소녀가 한 번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비련이라는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하는 돈을 드릴 테니 직접 와서 노래를 불러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는 것이다. 행사 하나만 나가도 엄청난 돈을 받던 가수왕 조용필 씨는 예정된 4개의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그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지적 장애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불러주었다. 아무 표정도 없던 아이가 펑펑 울었고 부모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노래를 마친 조용필은 소녀를 안아주며 사인한 CD를 선물했다. 부모가 사례를 한다고 하자 조용필은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또 앞으로 벌게 될 돈보다 더 비쌉니다.”라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순을 넘기면서도 국민가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조용필 씨의 현미경 철학을 통해 그의 망원경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은퇴 10년이 되었다. 함께 했던 많은 동역자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교회를 섬겼던 교인들이 새삼 조명된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을 통한 배신과 아픔, 가슴 치며 통곡했던 시간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았던 사람들의 외면을 경험하면서 쓰라린 고통으로 잠 못 이룬 날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했다. 그것은 망원경으로 보고자 하는 나의 인간관계관의 실천이었다. 조금은 멀리서 보는 것이 아름답기에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을 아름답게 다듬어 가고 싶은 관계개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곁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이해하고 관용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행과 동역을 경험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연다. 그 아름다운 관계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현미경으로 보는 인간관계가 일상이 되었다. 멀어져간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망원경으로 보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어서 현미경으로 본다. 걸어나온 내 인생의 모든 삶의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본다. 그리고 이즈음 새삼 삶의 여정에 正視, 正思, 正心, 正言, 正道, 正行을 다짐한다. 동시에 유다서 11~13절 말씀을 묵상한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인간관계는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나를 지키시고 돌아보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간다면 너와 나의 관계는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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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성서연구] 우리가 믿는 하나님
    인식론에 있어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경험론 철학자들은 오감으로 경험한 것에 의해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에 의한 추론으로 지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인식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경험되지 않고, 이성으로도 추론이 불가능한 세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방법은 믿는 것입니다. 10세기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1033~1109)은 그의 책 『프로스로기온, Proslogion』에서 <믿음은 지식을 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4세기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알기 위해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와 통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알려면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천국, 영원한 생명의 구원 등은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는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이성적으로 추론하면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기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이렇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여기서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로 믿었습니다.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자이신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믿는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늙은 아브라함 부부는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번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인간적으로 비통했을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1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보다 조금 뛰어난 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으로 죽은 자도 살리는 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어렵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위대하게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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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시사칼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해도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Repoters Without Borders, RSF)가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7위였습니다. 지난해보다도 4계단 하락한 수치에 해당하지만 가장 높았을 때인 지난 2019년에도 41위에 불과했으니 크게 유의미한 결과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결코 자랑스러워할만한 위상도 아닙니다. 티모르(10위)와 같은 태평양의 섬나라보다도, 대만(35위)과 같이 다소 권위적인 체제보다도 여전히 동떨어진 순위이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최근 언론과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한국기자협회 인용). “TV 조선 기자들, ‘언론 윤리 저버린 신동욱, 박정훈 부끄럽다”, “박민 KBS 사장, 임명동의제 무시하고 보도국장 임명 강행”, “공영방송 복구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이 정부의 목적”(2024. 1. 26). TBS 출연금 지원 중단,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연합뉴스 정부구독료 82% 삭감에 정부 지분 매각까지, 이런 흐름을 두고 정준희 교수는 현 정부의 언론관을 전근대를 넘어 초현실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언론의 자유만큼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존중하고 보호하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금방 자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정부 시절 뉴욕포스트는 대통령을 총 맞아 죽은 침팬지로 묘사하며 경찰관 두 명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만평(Sean Delonas)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한 경찰관이 죽은 침팬지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다음번 경기부양법안에 서명할 누군가를 찾게 되겠군,” 읊조리는 장면을 두고 인권단체는 물론 많은 네티즌들은 인종차별적인 몰상식한 만평이라 비난하고 나섰고(Al Sharpton), 일부 시민들은 뉴욕포스트 구독중단과 광고게재 거부 운동을 전개하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Barbara Ciara). 만평에서 침팬지가 등장한 것은 여성을 공격해 경찰에 사살된 침팬지 ‘트래비스(Travis)’가 화제였기 때문입니다. 뉴욕포스트 편집국장(Col Allan)은 “오늘자 만평은 침팬지 난동 관련 뉴스를 패러디한 것이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경기부양법안 등 경제회복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을 조롱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한 칼럼니스트(Sam Stein)는 “이 만평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여성을 공격해 사살된 침팬지같이 경기부양법안도 나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만평이 우리 언론에 등장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지난 2023년 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건을 보도했던 MBC 방송국을 상대로 외교부가 제기했던 정정보도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방송사측이 허위보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의 첫 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고, 낭독하는 동안 위 정정보도문의 제목과 본문을 통상의 프로그램 자막과 같은 글자체 및 크기로 계속 표시하라”며 “이 같은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할 때까지 하루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얼마 전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달리해야 한다”며 직언하던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전주을)을 경호원들이 강제로 제압해 입을 막고 팔다리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몰아낸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경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이제 이 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언론이나 국회의원까지도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상당한 불이익과 처벌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사건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 미가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그는 “모레셋 사람”이라 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선지자들이 사마리아나 예루살렘 등 대도시에서 활동했던 반변 미가는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낮은 자,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미가서는 다른 어떤 선지서보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특별하기로 유명합니다. 베들레헴 탄생을 예언(5:2)한 유일무이한 성경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미가서에 유명한 구절이 하나 더 있는데,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가에게 그랬습니다.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1:6). 그래서 그가 입을 닫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부디 오늘 이 시대에 일종의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하는 언론들이 두려워서 입을 닫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언론보다 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하는 성직자들이 두려워서 입을 닫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와 마찬가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 정치 제1장 제1조의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가 잘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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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은혜의말씀] 사람을 세우는 교회(사도행전 6: 1-7)
    초대 교회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믿는 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놀라운 성장을 거듭할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교인들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그들을 돕는, 구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제 대상에 헬라파 과부들이 자주 빠지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즉각 나섰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 일곱 명의 일꾼, 일곱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 이제는 교회가 조직을 갖추고 제 기능을 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이 사람을 세울 때 제시한 ‘선정 기준’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3절에 나와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함께 감당하기 위해 세우는 일꾼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첫째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교회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교회는 개인의 능력이나, 학력, 경력을 우선시하기보다, 영적 성숙도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 사로잡힌 사람이라야 합니다. 성령께 사로잡히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기 고집대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 열심도, 그 헌신도 인간적인 계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모든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지혜 충만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분별력 있는 사람,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바로 이런 지혜로운 사람 때문에 교회의 문제가 덮이고, 조용하고,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많이 지적합니다.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해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일꾼으로 뽑은 뒤로부터 불평과 불만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안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수습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주를 위해 일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이 ‘객관적’으로 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믿음이 좋다든지, 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칭찬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도들이 일꾼들을 세워서 요소요소에서 사역하게 했더니, 결과가 어떻게 되었지요?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놀랍게 확장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져 함께 주의 일을 하므로, 교회가 더욱 성장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고, 하나님의 꿈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바로 여러분을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열심히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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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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