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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나침반] 온 가족이 복음에 감탄하는 시간, 우리집 성경놀이터!
    향상교회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가정이 요즘 수상하다. 한 달에 한번, 각자 방으로 들어가 정적이 흘렀던 거실이 시끌벅적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놀이터로 바뀐다. T 익스프레스를 탄 것도 아닌데, 스릴 넘치는 “꺅!” 소리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아닌데, 멈추지 않는 “깔깔깔!”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운다. 과연 무엇이 한 달에 한번, 온 가족을 즐겁게 마주하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이다. 1월(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만드셨어!)에는 찰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랑과 생명 스티커를 채워 넣으며 하나님의 형상자가 어떤 의미인지 경험하였다. 가족의 온 몸을 주무르고, 자신과 가족의 몸에 사랑과 생명 스티커를 붙이며 서로를 축복하였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해야 서로 살려낼 수 있음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놀이하는 동안, “비우자! 비우자! 나를 비우자!”“, “하나님을 담자! 하나님을 담자!”, “사랑이 쏙! 생명이 쏙!” 과 같은 향기로운 멘트가 가득 울려 퍼졌다. 2월(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어!)에는 초콜릿으로 죄의 속성을 경험해보았다. 초콜릿을 맛보고 칠해보면서, 죄와 어떤 점이 닮았을지 생각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죄의 반복된 습관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지 직접 경험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그 모든 죄가 깨끗해졌음을 놀이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초콜릿, 크래커, 스프링클을 이용한 요리활동은 예수님 보혈의 능력을 두 눈으로 생생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온 가족이 놀이하는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이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생명이란다.” 과 같은 향기로운 멘트가 가득 울려 퍼졌다. 다음은 두 달 동안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경험한 부모님들의 리얼 후기이다. * 가정 안에서 이렇게 성경적 놀이를 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 너~무 재밌고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딸아이와 점토그릇을 만들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우리 죄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초콜릿과 스프링클로 표현해보면서 복음을 쉽고 깊이 있게 다시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오래 기억이 남을 것 같습니다 * 초콜릿으로 죄를 표현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애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 1월 찰흙으로 만드는 활동 너무 애들이 좋아했고, 2월 쿠키와 초코펜 활동으로 죄와 복음에 대해 나누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매달 창의적이고 새롭고 유익한 활동으로 채워주셔서 기대가 됩니다. * 복음 안에서 가족 간 하나 됨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 온 몸으로 놀이 하는 것이 좋았고, 부모와 함께 하여 유익하고 추억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놀이를 통한 성경적 접근이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 자녀와 함께 하며 부모의 신앙도 돌아보고 서로의 공감대도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여서 좋았습니다. * 아이와 함께 활동하며 말씀 안에서 즐거운 시간 가졌습니다. * 가족과 즐거운 성경놀이 할 수 있는 키트가 있어서 좋습니다. * 가족과 함께 하는 성경 놀이 정말 즐거워요. * 아이와 함께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를 떠올리며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안 움직이는 아빠도 함께 참여할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만들어줍니다. * 아빠와 함께 찰흙으로 작품도 만들어보고 그러다보니 서로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해주는 시간이었어요.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 놀이와 여러 활동으로 아이와 함께 성경을 접하니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6학년이라 혹시나 안하고 싶어 하면 어쩌나했는데 즐겁게 참여해서 좀 놀랐습니다. * 줌 끝나고도 아이들끼리 스스로 계속 활동하면서 각자 설교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성경말씀 설명도 하면서 유익하게 보냈습니다. *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아이가 너무 재미있어 했고 저 또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성경놀이시간이 되었어요. 엄마와 함께라 더 좋았다고 하네요. * 아이와 온몸으로 활동하며 성경 내용을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죄의 속성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감사했습니다. * 함께, 즐겁게 말씀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어요. *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죄를 고백할 수 있구나 감탄했어요. * 성경을 놀이로 풀어서 아이와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기 좋았습니다. * 아이가 즐거워했습니다. 성경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 놀이키트가 너무 알차고 좋습니다. 놀이 끝나고도 다시 또 해보기도 하고, 기도하며 아이들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월과 4월에도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가 열린다. 3월의 주제는 “예수님의 부활로 새사람이 되었어!”, 4월의 주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증인이 되었어!”이다. 2022년 사순절기, 제발 가만히 있지 말자. 온 가족이 복음에 감탄하는 시간을 꼭 마련하여, 평생 하나님이 감탄할만한 가정으로 세워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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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2-03-04
  • [목회자칼럼] 나의 목회 평가를 주님께 맡기며...
    2022년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을 했다. 쇼트트랙에서 심판 판정의 문제로 모두들 한 소리를 한다. 간혹 심판은 선수들에게 오판을 내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판하지 않는다. 목회에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없지만, 가끔씩 난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잘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물론, 오롯이 혼자 갈등을 하며 그 답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도 없지만 가끔은 스스로 나의 목회를 판단하며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보다 더 잘하고픈 마음이 들고, 나의 약점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서 야박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한다. 이런 나의 생각과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바른 평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성도를 모은 숫자로 평가한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교회당 건축 크기로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다르다. 예레미야의 목회는 성공 했을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망해가는 나라를 바꾸지도 못하고 부흥시키지도 못했고 회복시키지도 못했다. 백성들, 지도자들을 회개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자기의 설교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포로로 잡혀갔다. 이쯤되면 실패 아닌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를 실패자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신실한 주의 종으로 여긴다. 결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과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는가? 비스가산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모세가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결코 그를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평가 기준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꾸준히 인도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삶이다. 그 힘든 광야 길을, 모래 바람 속에서, 모진 원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평가했다. 엘리야는 성공했을까? 엘리야는 불을 땅에 끌어내기도 한 능력의 선지자이지만 한 사람을 변화, 회개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자인가? 아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나타날 때 모세와 함께 보인 사람이 바로 엘리야이다. 비록 나의 세상적인 비전과 꿈은 좌절되어도 오히려 나를 변화시키고 자금도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 지금도 반응하고 계시지 않는가? 오늘도 말없이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오늘도 변함없이 주인공이 아닌 단역 배우라도 감당하며 사용되는 것, 쓰임 받는 것이 감사 아닌가? 영화의 주인공만 있다면 영화가 되겠는가? 많은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에 영화가 만들어진다. 나는 인생의 영화에서 단역 배우이지만 혹은 엑스트라지만 나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성공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지금도 날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오늘도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 주어서 고마워!” “오늘도 묵묵히 그 사역을 통해 나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 지금도 갈등하는 목회자를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의 음성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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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목회자칼럼
    2022-03-04
  • 한국교회, 전쟁 반대 목소리 높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세계가 우려하는 가운데, 한국교회도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합 류영모 총회장은 지난 28일 성명서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의 침공 소식이 전 세계를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자”고 호소했다. 기성 지형은 총회장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전쟁이 멈추도록 기도하자"며, "오늘날의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깊이 자각하도록 간구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평화를 바라는 온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간구하자"고 한국교회 기도를 요청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답이다' 제목의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기도하고 행동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그리고 기존의 국경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인 '부다페스트협정'을 이행하고, 군을 즉각 본국으로 철수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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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2-03-04
  • 교회 성폭력 가해자 66%가 목회자⦁선교단체 리더
    기독교반성폭력센터(센터장 방인성 박유미)가 2021년 상담통계를 조사한 결과 “목회자와 선교단체 리더, 교수 등 권위를 가진 그룹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45건 중 30건(66%)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총 45건의 성폭력 사건이 접수됐다. 피해자가 지목한 가해 대상자의 교회 내 직분으로는 담임목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목사와 전도사 등 부목회자(8명), 선교단체의 간사나 선교사 등 리더(6명), 신학교 교수(3명) 등의 순이었다. 센터 관계자는 “전문적이고 권위를 가진 종교 지도자의 힘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센터는 가해자들을 치리할 교회법이 미비한 점이 아쉽지만, 최근 들어 각 교단이 성폭력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을 환영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성폭력 가해자를 제명한 데 이어, ‘성폭력 대책기구’를 구성하는 안건을 통과시켰고,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교단헌법 범과 종류에 ‘성폭력’을 포함시켰고,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목사 안수 과정에 양성평등과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화 시킨 점을 예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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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2-03-04
  • 개신교인의 후보 선택은 ‘종교적 신념’
    개신교인들의 후보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지난 2일 아크연구소와 목회데이터연구소가 기자회견을 열고, ‘제20대 대선 관련 개신교인 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개신교인 42.8%가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 뒤로 ‘가족의 의견’(40.1%)과 ‘TV 정치 평론가’(36.9%)가 차지했다. 반면 ‘교회 목사’는 19%로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개신교인들은 목회자나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목회자가 ‘설교 등 공식적인 곳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16.3%만 찬성했다. 이는 대상을 한국교회로 확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회의 정치적 발언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반대한다’(64.1%)는 의견이 ‘찬성한다’(26.1%)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한국교회가 기독교 가치에 맞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그렇지 않다’(54.1%)로 답해 ‘그렇다’(39.6%)에 앞섰다. 이번 조사는 아크연구소와 목회데이터연구소가 피앰아이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4~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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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2-03-04
  •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하자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눈 앞에 다가왔다. 역대 가장 비호감 선거라는 조롱 썩인 목소리도 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5년을 책임질 지도자를 뽑는 중요한 선거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혼란이 야기되고 있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늘어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느낌이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의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우리는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국민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한국교회도 국가 못지않게 중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세속화와 이단 사이비가 극에 달하고, 교회 안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빛과 소금되지 못하고 오히려 제2의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제는 다시 회복의 길을 가야 한다. 먼저 회개하며, 우리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이번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이제 이렇게 기도했으면 한다. 모세와 같은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 시므이를 용서했던 다윗처럼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 솔로몬과 같이 어려운 경제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도자, 다니엘과 같은 깨끗하고 정직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길 원한다고... 그래서 통일 한국의 문을 열고, 국민이 행복해 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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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3-04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2)
    6.25 전쟁기에도 신학교육은 계속되었는데 앞에서는 고려신학교와 조선신학교의 피난지 학교에 대해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장로회신학교는 어떠했을까? 장로회신학교는 1948년 6월 3일 서울 남산에서 개교했다. 학교의 설립일에 대해서는 3일, 9일, 20일 설이 있으나 20일은 주일이므로 이날은 아닌 것 같고, 3일(목) 혹은 9일(수)일 것이다. 학교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1946년 9월 20일 고려신학교가 박윤선 목사를 임시교장으로 하여 부산진 좌천동에서 개교했는데, 교장으로는 만주에 계시던 박형룡 박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송상석 목사는 사지를 넘어 만주로 가서 박형룡 목사 가족을 안전하게 귀국하게 하였고, 박형룡은 부산으로 와 1947년 10월 14일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고려신학교 설립자 한상동과 박형룡 교장 사이에는 이견이 제기되었고 결국 박형룡은 교장으로 취임한지 불과 5개월이 지난 1948년 초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가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1948년 6월 개교한 장로회신학교였다. 개교하기에 앞서 5월 20일에는 서울 창동교회에서 새로운 신학교 설립을 결정하고 이사회를 조직하였고, 개교식은 6월 3일 혹은 9일 서울 남산의 과거 조선신궁 터 자리에 있던 성도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개교식 이후 성도교회당이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사로 사용되었다. 장로회신학교는 1회 졸업생 25명, 2회 졸업생 38명, 3회 졸업생 35명을 배출하고 전쟁의 발발로 1950년 9월 학기를 개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9.28 서울 수복 후 늦게나마 개강했으나 어수선한 가운데 두 달을 채웠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1.4 후퇴였다. 1951년 1.4 후퇴 때 교수와 학생들이 다 피난길에 올라 수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다시 장로회신학교가 개강하게 되는데 그 때가 1951년 5월 1일이었다. 임시교사를 수색하던 중 부산진교회 당회의 허락을 얻고 부산진교회당을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진교회 담임목사는 김성여(金聖與) 목사였는데, 당회 기록에는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사 건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없다. 일반적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개강한 날을 ‘1951년 봄’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교수이기도 한 권세열(Francis Kinsler) 선교사는 1951년 6월 16일자로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에서 5월 1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 등록한 학생은 275명에 달했다고 한다. 권세열 선교사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장로회신학교는 1951년 5월 1일, 부산진교회 건물에서 피난민학교로 다시 개학하였다. 우리들은 한 100여명 정도의 학생들이 오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재 등록된 학생 수는 275명이나 된다. 사실 신학교에 온 대부분의 청년들은 전쟁터에 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올 수 있었다.” 이어서 학생들의 기도생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 학생들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다. 학생들이 매일 자신들의 새벽기도회를 스스로 인도하고 있으며, 교수들은 별로 참석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말씀을 증거한 후 기도를 드린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약 30분 이상 기도를 드리며, 많은 이들은 눈물로서 하나님께 호소한다. 저들은 음식이나 집 같은 저들에게 핍절한 물건들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보다 나은, 진실된 신앙생활과 한국교회와 전체 한민족을 위하여 기도드리는 것이다. 우리 서방 세계에서는,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교장은 박형룡 박사였고 한경직 권세열 등이 교수였다, 그해 7월에는 제4회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졸업생은 66명이었다. 평양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피난하던 임인식은 가족은 제주도에 남아 있고 본인만 부산으로 와 공부하고 4회로 졸업했다. 전쟁 중 부산에서의 제4회 졸업식이 마지막 졸업식이 되었다. 장로교회는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 문제로 갈등하였고, 두 신학교를 통합하여 총회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비록 조선신학교는 이에 불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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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송길원 목사] 자기 검역의 시간이 왔다
    "오, 신이시여, 당신의 바다는 더 없이 크고, 제 배는 더 없이 작습니다.”(O, God. Thy sea is so Great and my Boat is so Small.)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어부의 기도’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 동판에 새겨졌었다고 한다. 기도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의 첫 설교에도 인용된다. 그의 나이 23살 때다. ‘나는 이 땅의 나그네이오니...’ 어린 나이에 무슨 ‘나그네’일까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아니다. 나그네는 초기기독교인들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에 신앙고백이 담겼다. 아브라함이 말한다. “나는 당신네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창 23:4). 어느 날 야곱이 바로 앞에 선다.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를 묻는다. 야곱이 자신의 나이를 밝히기에 앞서 스스로를 나그네라 칭한다. 묻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고백이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 삼십 년이니이다”(창 47:9). 나그네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삶의 본적지는 하늘나라다. 지난 주, 한국 지성의 대들보라 불리는 이어령 교수가 ‘돌아가셨다’. 그는 생전에 죽음을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말했다.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 한 마디로 우리는 돌아서야 한다.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이제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야‧‧‧‧‧‧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우리 모두 ‘귀환명령’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앞서 세계 권력을 손에 쥔 케네디도 알았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작고 작은 보트에 비유된 겸손의 자기무장이었다. 고흐도 그랬다. 동생 테오에게 늘 빚진 삶을 살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자살을 시도할 만큼 생은 험난했다. 야곱만이 아니었다. 모든 인생은 고통과 함께 살아간다. 파도가 없는 바다가 진짜 바다가 아니듯 고통이 없는 인생은 진짜 인생이 아니다. 지난 주, 내가 담임으로 있는 청란교회 가족들은 나그네를 주제로 삶의 수칙을 만들어보았다. 하나. 낯선 것은 당연하다. 설렘으로 바라본다. 그렇다고 동경하지도 않는다. 둘. 불평하거나 투덜대지 않고 감사한다. 더 좋은 것이 있음을 알아서다. 셋. 다른 언어를 갑갑해 하지 않는다. 친절과 미소의 제 2 모국어를 쓴다. 넷. 너덜너덜 많은 짐을 거추장스러워 한다. 심플한 것의 자유를 누린다. 다섯. 조급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 영원히 머무르지 않은 것을 알아서다. 형제, 자매, 집사, 장로... 그 어떤 호칭보다 ‘나그네’가 정겹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그네는 초대교인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소망이고 꿈이었다. 그 삶이 파도로 일렁이는 바다를 헤쳐 나가는 조각배와 같을지라도 그들은 겁먹지 않았다. 엄마 태속의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나그네는 하나님의 마음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있음도 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약자들을 돌볼 줄 안다. 나그네들은 ‘험악한 세월’을 살고 세상을 떠날 때라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고백처럼 ‘나의 집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숙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할 것이다. 재의 수요일(3월 2일)로 시작해 우리 모두 자기 검역의 사순절을 보내게 되었다. 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인가? 나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가?“나는 나그네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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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은퇴해 보니’ 이제야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세월이 유수같이 70대는 70키로 80대는 80키로 속도로 흘러가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1993년 4월 18일 집사 안수를 시작으로 5년 후 1998년 12월에 장로 장립을 거행하고 16년이 지난 2014년 12월 28일에 장로 은퇴를 했다. 교회와 노회 및 공적 조직에서 물러난 셈이다. 노회나 교회 공직에 있을 때에는 부산노회장로회 회장과 부산노회남선교회 회장, 그리고 부산노회 사회봉사부장과 노회 재판국, 감사부장 및 총회 사회봉사부 회계직에서 봉사해 왔다. 그리고 나서 장로 은퇴를 해 보니 또 봉사할 기회가 생겨 2021년 연말에 부산노회장로원로회 회장직을 맡아 헌신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부산기독교협의회 초대 장로 상임회장과 부울경 장로회 회장직에서 교계직은 마무리 짓는 듯하였다. 이 모든 명예직과 감투가 전도서 기자가 말했듯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1:2) 한 세상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1:4) 모든 명예와 이력은 물 거품처럼 흘러가는 안개와 같도다.” 너무 아웅다웅하지 말 것을 후회가 막심할 뿐이다. 헌신하는 것도 삶에 생기가 생기고 의욕에 차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좋지만 사회 친구들과의 사귐은 두절 되었고. 기독교적 삶에 젖어 일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라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배후에는 지금도 어김없이 친구로 반려자로 시원찮은 남편으로 일생동안 동거동락해주신 나의 조강지처 아내 김해옥 권사 덕분이다. 교계 신문 기자로 출발해서 오로지 한 길만 묵묵히 걸어 왔던 것이 무슨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어려운 세월, 야곱이 말했듯이 정말로 어려운 세월을 손수 겪어 왔던 것이 꿈만 같다. 근 80년 동안을 뒤돌아 보니 인생의 3분지 2가 교계와 연관을 맺어 온 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아마도 사회 직종으로 돌아다녔다면 벌써 추락하거나 하늘 나라에 가고 없을 것이다. 막상 은퇴를 해 보니 지나간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헛발짓 하다가 세월만 보낸 나의 삶의 흔적들 뿐이었고 자랑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이 그저 즐기다가 세월만 보낸 나의 일생 일대기는 한 마디로 말하면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나풀거렸던 한 마리의 다람쥐와 같았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하루살이에 만족해서 정신없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회개할 것도 많고 잘못 한 일들이 잘했던 것보다 많은 줄 생각이 되어 지금도 새벽기도회나 일어나면 시편 23편을 외워 낭독하고 내 탓으로 회개하며 눈물 젖은 하루를 출발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죄인이고 죄인 중에 괴수”라 하지 아니했던가. 그래도 가문 중에 최고의 가문이고 많은 학문과 언어를 구사하여 신약전서의 반이상을 집대성하여 완성한 전도자의 지도자였다. 지금 국가적으로는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는 대선 기간이다. 정권이 교체되느냐 아니면 정권 연장으로 이어져 기독교 뿐이니라 나라 통체로 공산화 길로 가는가에 심히 위기 일발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부산 교계는 무엇에 몰두하고 있는가? 내부적으로 갈등과 분열로 내부 총질과 의혹에 찬 전쟁을 벌이는 지경이라 정말 사회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하다.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그만 다 내 탓으로 내가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용서를 빈다면 해결될 것을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우긴다면 반드시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법에 심판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냥 마스크를 쓴 채로 살아라하고 “그럼 잘 해 봐라”하고 비웃고 계실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미스바 광장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길 밖에는 없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면 하나님은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부산 교계 모양 꼴이 말이 아니다. 일명 “부기총”내부 갈등이 3년째 진행 중이다. 2~3개로 갈라져 트리 축제 돈 맛을 안 관계자 때문에 비상대책위원장과 위원들은 부기총 관계자들을 향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와 자기들의 직책에서 새 출발을 위해 마음을 비운다면 용서와 더불어 새로운 신뢰와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인데 도무지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는다면 비상대책위원장 김상권 장로는 자신이 몇억의 변호사 로펌을 사서 바로 세우고 말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현명한 자들이면 이제 서로 43년을 이어 오던 부기총이 정상화 되는 길을 모색하여 서로 양보와 자숙으로 모든 명예와 직책을 내려놓아야 회복이 될 것이다. 이제 은퇴를 해 보니 사람이 보이는 듯하다. 서로 용서와 화해로 가야 되는 반성의 토대가 쌓여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기독교를 위해 목숨을 다 해 싸워나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나갈 것이라는 사명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모세는 80세에야 광야에 고생하며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대장정을 펼쳤다. 그는 끝내 4일이면 건너갈 수 있는 요단강 저쪽 가나안을 가지 못하고 무덤 하나없이 사라져 버린 모세의 삶은 나이 120세를 넘기고 죽을 때에야 자신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의 사명이 여기까지다라고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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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3
  • [성서연구] 해석보다 중요한 것
    요셉은 꿈을 잘 해석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꿈 해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그는 꿈을 잘 해석함으로써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처음으로 꿈을 해석한 것은 감옥에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 장군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 후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감옥에 투옥되었고, 옥사장은 요셉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뒷바라지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었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침에 이들의 근심을 알아차린 요셉이 질문했습니다. 창세기 40장 6~7절입니다.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두 사람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요셉은 두 사람의 꿈을 들은 후 해석해 주었습니다. 꿈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석방될 것이라는 고무적인 내용인 반면, 떡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흘 후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이루어져 술 맡은 관원은 복직했고, 떡 맡은 관원은 죽었습니다. 두 사람의 꿈은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고, 그 미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축복으로 여겨질 미래가 열릴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통의 미래가 주어질 것입니다. 자, 이 상황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 봅시다. 꿈을 꾼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미래에 대해 약간의 암시를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꿈을 누가 해석해 주면 어떨까요? 물론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두 관원처럼 고민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은 요셉으로부터 해석을 들은 후 사흘 동안을 기대감에 부풀어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 복직되었으니, 그는 인간적으로 볼 때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꿈의 의미를 아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떡 맡은 관원은 요셉의 해석으로 인해 사흘 동안을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해석이 없었다면 꿈의 의미를 몰라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후에 처형될 것을 알고 보내는 사흘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요셉의 해석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사흘 동안에 자신의 죽을 운명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몸부림치다가 속절없이 죽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해석의 한계를 생각하곤 합니다. 해석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해석은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이년 후 바로 왕이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은 꿈을 해석하여 다가올 풍년과 흉년을 예고했고, 대책을 세워 애굽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게 했으니, 이때는 해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경우엔 해석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죽을 자였는데 살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죽을 사람을 살게 하는 것, 망할 사람을 부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게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차원의 은혜의 일입니다. 결국 꿈과 그 해석만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시고 방향을 바꾸시는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꿈이나 해석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인생을 바꾸고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고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2022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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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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