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다음세대

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다음세대칼럼] 내 증인이 되리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상하게 연도 만들어주시고, 썰매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신앙도 모범을 보여주셨고, 장로로서 40년 동안 잘 섬기시면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후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길 간절히 바라셨던 분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1999년 12월 소천하셨습니다. 소천하신 후에 짐을 정리하다가 누우셨던 머리맡에 말씀충만, 기도충만, 성령충만, 능력충만, 믿음충만이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글귀가 언제 기록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였습니다. 그 글귀를 기억하며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8절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의 말씀이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시는 유언과 같은 당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하고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제자들에게 최후의 당부를 남기셨습니다. 그 최후의 당부는 모든 성도들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최후의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증인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리라.’ 당부하십니다. 요 21장에서 요한의 앞날을 궁금해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22절에서 대답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을 이 땅에 살려둔다고 해도 그것은 베드로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베드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가정법 문장입니다. 종말 때까지 요한을 살려두시겠다고 단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 23절은 기가 막힌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대답을 마치신 뒤에 제자들 사이에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소문이 퍼집니다.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철부지 어린애들이나 막 신앙에 입문한 초신자들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주님을 3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모셨던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3절 뒷부분에서 사도 요한은 그 헛소문을 정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 21장에서 보면 제자들의 수준이 매우 한심스럽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이르러서는 참된 교회의 개척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증인으로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에서 ‘되리라’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미래형이면서 명령형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면서 반드시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을 좇아서 구체적으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법률 용어로서 증인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반드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둘째, 반드시 출석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응하지 않을 경우 구인을 당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반드시 진실만을 증언해야 합니다.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에 대하여 듣고 그분의 역사를 우리 삶으로 체험한 산증인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증인으로 출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과 주님의 증인 된 우리의 차이는 세상의 증인은 말로만 증언하면 그만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증언은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자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들은 것이 분명하고 본 것이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저버리고 위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될지언정 ‘증인’임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던 연약한 제자들이 그들이 보고 들은 진실들만을 전하는 참된 주님의 증인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각 교회들마다 전도축제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행사로만 여깁니다. 우리는 진실된 증인의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서 헛소문이나 듣고 전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3-11-10
  • [신앙교육나침반] 온 세대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
    120세의 노련한 리더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해 다음 세대의 양육을 책임져야 함을 절절히 외쳤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6장에서 자녀 세대들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한 핵심 전략을 명령하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는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그는 부모 세대가 내적 차원인 ‘마음’을 두고 싸워야 함을 명령하였습니다. 모세는 부모 세대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백성이 아닌, 하나님과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관계 맺는 부모는, 자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관계 맺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뜨거운 사랑의 관계 안에서 전하는 복음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매력적입니다. 자녀의 지치고 어두운 영혼을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전하는 복음은, 자녀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복음입니다. 수많은 자녀 세대의 마음이 상하여 굳게 닫혀 있습니다. 많은 아이가 “힘들어!”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아이들의 먹거리에는 온통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으로 가득하며, 아이들이 숨 쉬는 터전은 신종 바이러스와 초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를 벗기조차 두렵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문을 닫고 온라인 소셜 미디어와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고립과 단절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녀 세대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순수한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사랑의 테두리 바깥에서 전해지는 율법과 진리는 공허한 종교가 되어, 자녀 세대의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규율, 관습, 진리는 껍데기일 뿐인 종교가 되어, 결국에는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전수가 자녀 세대의 마음을 보듬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의 삶에 생명의 영향력을 미치는 복음이 됩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교회의 모든 세대가 다음 세대를 보듬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마주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와 놀이시간을 마련해보십시오. 교회와 가정이 하나된 그 자리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진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감사의 능력으로 힘차게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온 세대가 가을 열매를 이용해서 즐겁게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송축 놀이 세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❶ 앗싸! 감사!: 밤이나 도토리 등의 가을열매를 높이 던지면서 “앗싸!”라고 외치고, 다양한 크기의 그릇으로 “감사!”라고 말하며 받습니다. 혼자 받기 또는 두 사람이 주고받기를 할 수 있습니다. ❷ 감사의 파워: 불평을 상징하는 종이컵을 세웁니다. 이때 종이컵 안쪽에 1-10까지 점수를 적습니다. 감사의 가을열매를 던져서 넘어뜨리거나, 테이블 위에서 진행할 경우 손가락으로 열매를 튕겨서 불평을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❸ 송축해: 빈 계란박스 안에 감사이름, 감사장소, 감사물건, 감사추억, 감사음식과 같은 주제를 적습니다. 박스 안에 작은 도토리나 콩을 넣고 흔든 후에, 뚜껑을 열어서 감사열매가 들어간 곳의 내용을 보고 감사를 고백해봅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다음세대와 함께, 감사와 송축을 통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3-11-10
  • [양육칼럼] 아버지의 자녀양육 참여의 중요성
    전통적인 개념의 좋은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자녀를 덜 구속하며 주로 가정 밖에서 일을 하고 자녀의 양육이나 교육에 덜 개입하며 경제적인 지원을 했지만 오늘날 좋은 아버지는 자신의 발달은 물론 자녀의 발달과 사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책임을 수용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동발달적 측면에서 볼 때 아버지의 양육행동이 어머니의 앙육행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자녀는 부모 모두에게 애착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아버지의 역할과 영향력을 중시하게 되었다. 또한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갈 자녀들이 반드시 발달시켜야 할 안정애착과 사회성 발달, 인지 발달, 성취동기 육성과 성 역할 학습에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을 많은 연구결과들이 밝히고 있다. 먼저, 아이들이 영아기에 주 양육자와 맺는 안정애착 즉 정서적 유대감은 양육자와의 신뢰로운 관계는 물론 이후 또래관계를 비롯해 모든 대인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발달 영역이다. 쓰다듬어 주고, 놀아주는 사회적인 자극이 영아의 애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버지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영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는 자녀의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아버지는 자녀의 인지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유아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주지만 그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자녀의 놀이 상대로서 물리적인 기술을 통하여, 어머니는 따뜻한 돌봄을 통해서 자녀의 인지발달을 돕는다. 한 연구에서 아버지가 있어도 아동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동과 아버지와 충분한 시간을 갖는 가정의 아동으로 나누어 연구한 결과 그 당시의 나이가 어릴수록, 그 기간이 길수록 지능과 학업성취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하고 있다. 많은 연구결과들은 아버지가 아동과 많은 시간을 가질수록, 그리고 아버지가 친절하며 따뜻하게 잘 놀아주고 격려해 줄수록 아동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사회적 관계와 성취동기, 직업선택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발달시기에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언어적 소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녀의 성취동기 발달에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안전하고 지지받는 환경에서 개방적인 탐색과 성취를 통해 자기주도성을 키워가도록 도울 때 자녀의 성취동기가 육성된다는 것이다. 자녀의 성 역할 학습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보다 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아는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남성의 역할을 배우며, 여아는 아버지를 통해 남성에 대한 관심과 남성과의 친말한 관계형성에 대해 배우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따뜻하고 바람직한 양육과 보호는 자녀의 균형 잡힌 성장에 매우 중요하며 확고한 가치관이나 신념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들은 부모의 태도와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여 흡수하며, 동일시 대상으로 중요한 아버지가 올바른 모델이 되고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아동의 바람직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양육칼럼
    2023-11-1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가 주인공이 되는 교회
    요즘 다음세대 사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면서 온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이들은 이 예배에서 주인공이 아닙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럼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되고 핵심 인력이 됩니다. 저희 교회도 역시 이따금씩 어린이들을 본당에 초대해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담임목사님이 설교할 때 아이들은 주인공입니까, 아니면 회중입니까? 회중입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고 있죠. 수천 년 전 애굽 이야기를 듣고 있는 회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인공을 만들까요? 간단합니다. 강단에 큰 그림을 프린트해서 붙여놓습니다. 어린 모세가 졸졸 나일강으로 떠내려오고 그 갈대상자를 바로의 딸이 줍습니다. 그 옆에는 누이 미리암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수천 년 전 애굽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랑 관계없는 이야기죠. 애들은 관심 없어요. 근데 여기에 얼굴을 파요. 얼굴을 다 파서 탕! 치면 떨어져요. 그러면서 모세 얼굴에 어린 우리 아동부 어린이 얼굴이 딱 나와요. 그러면서 바로의 딸 얼굴에는 그 어린이의 엄마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미리암 자리에는 그 아이의 언니 얼굴이 딱 나와요. 미리 대형 그림 뒤에 세 사람을 준비시켜 놓은 거죠. 그러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지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이제 지금 우리 가정의 이야기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수천 년 전 애굽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가 우리의 과제가 되고 지금 우리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과 목적이 되는 거죠. 여러분, 이 큰 대형 그림은 이 예배 끝나자마자 어떻게 쓰일까요? 온 교인들이 나와 사진 찍습니다. 포토월로 사용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모세가 “돌격! 앞으로!” 하는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준비합니다. 역시 모세의 얼굴을 뻥 뚫어놨습니다. 탕! 치면 떨어집니다. 거기에 1학년짜리 어린이가 얼굴 내밀면 다 같이 “와!” 하고 웃어요. 그러면서 뭘 깨달을까요? 지금 우리 아이가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 아이를 하나 잘 키우는 게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이 간단한 장치 하나로 해서 아이들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이 자리에 다 나와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이 시대의 모세로 자리매김을 하는 거죠. 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합니다. “분홍 목사님은 설교를 어떻게 하시길래 애들이 이렇게 좋아해요?” 저는 아이들한테 마이크를 넘겨요. 제가 설교 다 하지 않아요. 이렇게 가서 애들한테 마이크 주면 애들은 너무 얘기를 잘해요. 다음 세대 사역의 노하우는 이겁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본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소위 다음 세대 전문가 아닙니까? 왜 전문가입니까? 물어봤으니까. 여러분은 왜 전문가가 아니에요? 안 물어봤으니까. 여러분, 저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에 나올 건지, 어떻게 하면 교회 학교가 부흥하는지 압니다. 어떻게 알아요? 물어봤으니까. 아이들한테. 제가 처음 갔더니 저희 교회 학교 예배가 다 9시였어요. 9시. 여러분, 9시에 나오려면 적어도 8시에 일어나야 하고요. 집이 먼 애들은 7시에 일어나야 하고요. 머리 감아야 하고요. 그거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전날 토요일에 유일하게 12시, 1시까지 넷플릭스 보고, 핸드폰 하다 자는 애들이 어떻게 일어나냐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얘들아! 어떻게 하면 교회 학교 열심히 나올 수 있겠냐?” 애들이 다 하는 소리가 뭐냐 하면 “목사님! 9시 너무 일러요. 목사님! 11시에 모이면 안 돼요. 어른들은 11시 예배드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바꿨습니다. 바꿨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이것들이 10시면 일어나더라고요. 사람이라면. 지가 사람이라면 10시에 일어나요. 11시에 교회를 와요.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 다 찾았어요. 잃은 양 다 찾고, 부서마다 부흥했어요. 저희는 그래서 이름을 붙였어요. 유치부 대 예배 11시. 어린이부 대 예배 11시. 청소년부 대 예배 11시. 청년부는 아예 1시로 미뤘어요. 왜? 청년들이 더 못 일어나니까. 푹 자고 와서 예배해라. 그래서 저는 물어봐서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목사가 되었고, 이 아이들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를 하는지요. 정말 아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온 교인이 놀라고 교사들이 으쓱으쓱합니다. 제일 좋은 건 어린아이입니다. 4살, 5살 이런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주면 기가 막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세요.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불안하시잖아요? 아니요. 불안할 거 없어요. 얼마나 좋은데요. 아이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펼치면요. 이 자리에 있는 성령의 역사는 너무너무 완벽해집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바꿀까?”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뭘 고민했냐? “안 되는 거 빼고 다 바꾼다! 전부 다 바꾼다!” 그 정도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 호칭대신 분홍 목사로 바꾸고 옷도 가운 벗고 아이들이 좋아할 차림으로 강단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요즘 6월부터 9월까지 반팔 티셔츠 입고 올라와서 설교합니다. 저희는 각 부서의 교사 티가 다 있거든요. 그 교사 티를 입고 설교해요. 그러면서 그 부서를 지지하는 거예요. 제가 응원하는 거예요. 그러면 온 교인이 저와 함께 그 부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거예요. 다 바꿨어요. 여러분, 바꿨더니 다음 세대가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이것과 함께 30~40대가 같이 많아집니다. 부모 세대와 같이 숫자가 같이. 멀리서 차 몰고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인원이 전체적으로 늘게 되고. 재정이 늘게 되고. 저희는 지금 매년 최고치를 찍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치. 너무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리고 자신감도 올라가요. 교인들이 자신감이 넘쳐요. 어디를 가나 입이 근질근질하답니다. 성민교회 얘기하고 싶어서요. “사람들이 나 어느 교회 다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왜 안 물어보지?” 자꾸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나 성민교회 다녀!” 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정말? 분홍 목사님 교회?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그 교회 다닌단 말이야?”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교인들이 자신감이 하늘을 뚫어요. 다음세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세요. 교회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삶도 달라집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0-20
  • [다음세대칼럼] 다시 아빠 해주세요
    “도움 따윈 필요없으니깐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세요. 왜 저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을 해요? 그딴 감정들도 필요없으니깐 낭비하지 마시고요. 저 말고 다른 애한테나 그러세요. 내가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이니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이젠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요. 알아서 살거니까요” 얼어붙은 땅도 녹아내리고 꽃이 피며 생기가 돋는 어는 봄날. 따따이는 소년원에서 온 편지를 한 통 전해 받았다. 편지를 보낸 아이는 지원이였다. 지금껏 둥지를 거쳐간 수 많은 아이들 중 가장 마음이 아린 녀석 중 하나이다. 지원이의 부모님은 지원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였다. 사업실패 후 가정을 외면한 채 바깥을 떠돌며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버지와 이단 종교에 빠져 광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다. 지원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언니 2명과 함께 생활했다. 가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이를 못 견딘 큰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로 직장을 구해 먼저 떠나버렸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언니마저 가출하여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서, 아직 중학생으로 어렸던 지원이만 홀로 남았다. 거의 매일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싫었다. 결국 지원이도 가출을 하기 시작하였고 거의 1년 정도 가출팸들과 생활하며 지내다가 돈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는데 결국 발각되게 되었다. 그 절도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따따이가 국선보조인을 맡으며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지원이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지원이는 보호자 없이 홀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고 판사님은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둥지센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국선보조인이었던 따따이와 함께 둥지센터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가출이 습성화된 지원이는 센터를 이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시설내처우인 6호 처분을 받고 아동치료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전화시간에도 지원이는 전화를 걸 사람이 없었다. 그때마다 지원이는 생각나는 사람이 따따이 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따이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렸다. 그리고 6개월간의 6호 처분 이후 따따이는 지원이를 위해 따로 원룸을 마련해주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잘 지내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도 지원이는 도망가 버리고 다른 비행에 연루되다가 보호관찰소에서 구인장이 발부되어 다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 가장 중한 10호 처분으로 2년간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올라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 말을 편지에 가득하게 써서 따따이에게 보냈던 것이다. 따따이는 한 순간 그 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 시간을 흘러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태풍 경보까지 내려진 날 오후. 따따이에게 다시 편지가 왔다. 자기 인생에 나타나지 말라며 원망을 쏟아낸 지난 번 편지 때문인지 따따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원이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죄송해요. 지난 번 편지에 너무 모진 말들만 썼죠. 정말 힘든데 쏟아낼 때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솔직히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 편지 받고 많이 울었어요.... 저 여기 오면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이 없다는거.. 많이 힘들고 외로울거라는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목 맸던 친구들은 8개월 째 소식이 없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혼자 버티려니깐 너무 버거워요. 저 진짜 잘못 살았나봐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지원이의 편지를 읽다가 따따이는 그만 마음이 멎는 듯 했다. “따따이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했었어요. 가족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모질게 굴어도 따따이는 달래주실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따따이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은혜를 갚지도 못할망정 상처를 드려서 죄송해요. 제발 저 여기서 혼자 힘들어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따따이. 다시 아빠해주세요... 작년에 가족도 안 챙겨주던 제 생일날 바쁘신데 와주시고 그랬는데.. 아빠보다 더 아빠같이 생각했었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보고 싶어요” 따따이는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 봤다. 어제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우려한 것보다는 큰 피해가 없이 비켜갔다.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에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따따이는 모진 비바람을 겪은 지원이의 짧은 인생 같아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번 그렇게 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지 한 장에 다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이제 태풍이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다음 주엔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제 며칠 후면 지원이의 생일. 다시 서글픈 축하의 노래라도 불러주러 가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의 원문이나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책 “다시 아빠해주세요”(엠마우스출판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3-10-20
  • [신앙교육나침반]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Holy Win)? 할로윈(Halloween)? (2)
    15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 날에 루터는 로마카톨릭 교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잘못된 관습에 대항하며, 복음에 근거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하였습니다. 부모세대는 10월 31일에 우리의 자녀세대가 사탄의 형상을 입는 할로윈 축제에 어떤 모양으로도 참여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이 날은 빛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옷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주일과 10월 31일에 교회와 가정에서 온 세대와 함께 다음의 복음활동을 진행해보세요. 활동에 대한 생생한 영상은 유튜브채널 [향기나무 성경놀이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면죄부 □ 준비물: 다양한 색깔의 종이, 펜, 풀, 종이상자(두꺼운 종이), 빨간색 색종이 또는 시트지 □ 방법 종이장자를 이용해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듭니다. 면죄부를 상징하는 종이에 모든 죄를 고백한 후에 찢습니다. 완전히 찢은 죄를 십자가 종이 위에 모자이크 방식으로 붙입니다. 죄가 가득한 십자가 위에 빨간색 색종이 또는 시트지를 덮습니다. ❶ 면죄부에 나의 죄 적기 여러분, 이 종이는 여러분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죄부입니다. 여러분을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죄를 이곳에 모두 적어보세요. ➋ “없어져라!”외치며 면죄부 잘게 찢기 자, 이제 “없어져라!” 외치면서 모두 찢어봅시다. (모두 찢은 후) 우리의 노력으로 여기에 적어놓은 죄가 없어질까요? 아무리 잘게 찢는다고 해도 죄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➌ 십자가 위에 죄 종이 붙이기 우리의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곳은 바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로 가지로 오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붙여봅시다. ❹ 빨간색 종이로 죄 덮기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종이로 모든 죄를 덮어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입술로 고백해봅시다. “예수님,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세요. 죄가 나의 입술과 몸과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3-10-20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책맹인류 시대에 책 읽는 아이들로 양육하기(1)
    EBS 다큐멘터리 ‘책맹인류’ 프로그램이 화제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진단과 여러 나라의 국가적 대안 등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책맹인류’에 대한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밝히고, 설득력 있게 구성했습니다. 특히 1부에서는 ‘읽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읽기’를 시작할 때 뇌의 반응을 분석적으로 보여줌으로 읽기가 단순히 읽는 수준을 넘어 전인지적으로 인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실험자가 어떤 문자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 ‘해독, 인식, 구도, 문해, 지식, 추론’ 등 뇌의 대부분의 영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읽기는 뇌의 모든 영역이 서로 도와야지 완성할 수 있는 작업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더 나아가 인간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또한 10분만 책을 읽어도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어,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책맹인류’란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이 ‘정보, 지식, 재미, 정서적 만족’ 등을 준다고 하더라도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여러 매체 앞에 책은 제일 마지막 순위로 밀리고 맙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중간 중간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나와 인터뷰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애들이 하나같이 “책이 재미없어요” “책보다 게임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라는 말로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딱딱한 문자를 읽는 것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더 나아가 스마트폰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영상은 훨씬 더 몰입감이 강하고 재미있습니다. 감히 비교가 안됩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 앞에 갈 때가 있습니다.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을 빠져 나오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을 켭니다. 어떤 아이들은 엄마에게 마쳤다고 전화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문자나 카톡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 애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면 전화나 문자를 확인한 후 결국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도 이런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식사를 다 했다 싶으면, 개의치 않고 핸드폰으로 자신들 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처음으로 핸드폰을 사 주었습니다. 처음 사줄 때 스마트 기능이 없는 ‘전화와 문자’만 되는 핸드폰을 사줬다가 학교에서 반톡을 만들어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생겨 결국 6개월 만에 스마트폰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머지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습니다. 집에 TV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아 집에 오면 당연히 심심해합니다. 하지만 심심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놀 것, 읽을 것은 스스로 찾습니다. 물론 엄마는 글이 많이 있는 책을 읽기를 바라지만, 이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만화책입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읽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중학생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사주고, 집에서 영상매체를 (가급적이면)보지 않는 것 등의 원칙은 내가 첫째를 임신하면서부터 가졌던 교육관이자 동시에 책 읽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맹인류’ 시대에 양육자들이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에이, 책 좀 안 읽으면 어때? 다른 곳에서 지식과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EBS 다큐멘터리 ‘책맹인류’ 프로그램을 시청하시기를 권합니다. 책은 지식 취득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전인격적 활동이라는 것을 방송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깨달음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듯, ‘책맹인류’ 시대에 우리 자녀들이 책 읽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시대의 심각성과 책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3-10-2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저는 다음세대 사역에 관한 강의나 설교를 할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는 저를 정말 행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이 저는 가슴 떨리게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미래가 굉장히 밝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미래를 너무 어렵고, 어둡고, 힘들게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바라고 기대하는 우리의 소원과 이 기도의 제목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몸된 교회에 주신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거나 이러한 노하우를 소개하기를 매우 기뻐합니다.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여러분, 이런 교회를 바라십니까? 물론 바라시겠죠. 그런데 정말 이런 교회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바라긴 하지만 이런 교회가 있냐? 라고 물으면 다들 주저주저하세요. 아니, 다음 세대 사역이 좋긴 하지만, 필요는 할 텐데 그걸로 교회가 부흥할까? 라고 하는 반신반의를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제가 저희 성민교회에 부임한 지는 8년 됐습니다. 그전까지 저희 교회는 세워진 지 25년 된 전통교회. 모든 것이 일반적인 교회였습니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제가 부임해서 첫 1년 동안을 설교하고, 심방하고, 성경 공부하는 데만 전념을 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저희 장로님들이 저를 보고 당회 시간에 정책 당회를 하는데 “목사님! 이제 좀 정체를 드러내시죠.” 그러시는 거예요. “목사님! 분홍 목사님 아니십니까? 다음 세대 사역하시는 거 저희가 알고 모셨는데 목사님! 한 1년 동안은 설교와 심방과 성경 공부만 하셨으니까 이미 저희와는 이제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됐습니다. 이제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희가 다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다음 세대 부흥 5개년 계획>안을 들고 나와서 “그러면 이걸 한번 해보실까요?”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오케이!” 하셨어요. 그래서 2017년도부터 제가 5개년 계획을 했는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5년 안 걸렸습니다. 시도한 첫해 우리가 꿈꾸던 게 다 됐어요. 그래서 숫자만 커진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 행복 지수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어디 가서 우리 애에 대해 소개할 때 그렇게 소개합니다. “우리 애들 전교 1등입니다. 행복 지수가.” 성적 전교 1등은 소용없어요. 여러분, 그거 해봤자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행복 지수는 전교 1등이에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30분, 1시간 걸려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교회, 부모님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교회, 그래서 아이들 때문에 등록하는 교회, 아이 때문에 우리 교회로 찾아오는 교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부산뿐만 아니라 김해, 양산, 진해. 저희 경남 모든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 그리고 가장 핫한 교회가 되었어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저희 교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저희 교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냥 이러면 좋겠다가 아니라 해보니까 이렇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다음 세대 사역 표어는 “다음 세대를 주인공으로”입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주인공인가? 라고 하는 거예요. 과연 어른들이 주인공을 다 하시고, 아이들은 그냥 엑스트라 아니면 애들은 조연 배우,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1,2 정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다음 세대란 말이 문제가 있다고 그래요. 다음 세대니까 다음에 도와주자고 자꾸 그러신다고. 그러나 다음 세대는 주인공이고요. 지금 아이들은 가장 대우받고 사랑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게 왜 다음 세대가 주인공이냐면요. 저희 때 70년대만 해도 한 해에 100만 명이 태어났어요. 100만 명이면 길거리에 치는 게 아이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북만 쳐도 따라왔어요. 그런데 이게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 해에 64만으로 훅 줄어버립니다. 이때부터 교회 학교 위기론이 나왔어요. 애를 안 낳아요. 그러다가 2010년도 들어가니까 연간 평균 47만 명으로 훅 줄어들더니 이게 2020년도에 들어가니까 드디어 27만 명. 지금은 20만 명이 안 돼요. 즉, 5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어요. 길거리에 애들이 없어요. 학교가 줄고 있고, 폐교되고 있고. 여러분, 부산 시내에 시내 복판에 있는 학교가 지금 폐교되고 있어요. 그건 매우 심각한 위기예요. 그러니까 학교를 끼고 편하게 교회학교 사역을 하던 교회들이 지금 위기를 만난 거예요. 그러면서 그 교회들이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거느냐? 저희 교회에 전화 옵니다. “홍 목사! 심각하다.” 이러면서 저한테 요즘 굉장히 많은 전화가 오는데요. 제가 다음 세대를 사역하면서 “다음 세대 위기입니다. 필요합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목사님들이 이제 교회에 코로나가 딱 터지니까 애들이 사라졌잖아요. 애들이 교회 안 나오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 또 안 와요. 그러니까 이제서야 위기를 깨닫고 저한테 전화가 오고 찾아오시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솔루션을 묻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지면을 통해서 몇 회에 걸쳐서 솔루션들을 아주 자세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시고 계속 이 지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9-22
  • [다음세대칼럼] 우리 시대와 사사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들과 폭행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자녀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우리 시대가 왜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가정이 붕괴되고, 학교 교육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교권이 무너졌습니다. 시대가 갈수록 악해져만 갑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 시대가 보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중에서 사사기 17장과 사사기 17장의 ‘미가’야 말로 사사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들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의 ‘미가’가 사사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자기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미가는 어떤 사람이었고, 미가가 보여주는 그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사사시대의 특징은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이 많은 시대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어느 날 거액의 돈이 도둑을 맞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은 1,100세겔이 없어졌습니다. 그 돈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사사기 17장 10절에 보면 미가가 자기 집의 제사장에게 준 1년 연봉이 ‘은 10세겔’이었습니다. 최소한 10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의 돈이 없어졌습니다. 오늘날 월급을 200만원으로 계산하면 연봉 2,400만원 정도이고, 약 24억 정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안의 여주인이 훔쳐간 자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저주를 듣고, 두려움으로 훔쳐간 돈을 돌려준 사람은 놀랍게도 그 집안의 아들 ‘미가’였습니다. 미가는 왜?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어머니의 재산을 훔쳤습니까? 이런 아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거액의 돈을 훔쳐간 자를 ‘저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범인이 아들인 줄 알고, 돈을 돌려주자 급하게 말을 바꿉니다. 사사기 17장 2절 말씀에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하면서 ‘축복’했습니다. 죄를 지은 아들을 책망하지도 않고, 도리어 ‘축복’한 것이 바로 미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 모습입니다. 이렇게 사사 시대는 내게 해가 되면 저주를 퍼붓고, 내가 득이 되면 축복을 남발하는 시대였습니다. 복과 저주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즉 자신이 왕이고 신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미가든 그의 어머니든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조금의 인정함도 없습니다. 입으로는 여호와를 말하고 범사에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율법도 없었습니다. 결국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사람과 사람의 저주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무디고,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는 민감했던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사 시대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아들에 대해서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들이 잘못되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잘되어야 합니다. 굳이 아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해서 기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 내 아들 기를 죽입니까? 누가 내 아들 기를 죽입니까? 누구도 내 아들 건드리면 안 됩니다. 설사 하나님이라도! 내 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리라!’ 이것이 미가의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보다 내 아들’, ‘말씀보다 내 아들이 더 우선’입니다. 어머니가 이러니 미가도 똑같은 죄를 짓습니다. 사사기 17장 5절 말씀입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레위인도 아니고, 아론의 후손도 아닌 사람은 절대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미가입니다. 결국 아들을 말씀 위, 하나님 위에 둔 것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미가의 어머니와 미가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위인 존재,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들을 돕는 존재, 복 주는 존재, 저주를 막아주는 존재, 인생 무대의 엑스트라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퇴색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 시대도 이렇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배, 말씀, 교회보다 우선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 아닙니까? 시간이 남아야 예배하고, 돈이 있어야 헌금하고, 여유가 있어야 봉사할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은 자꾸 우리 삶에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외치지만 이 시대의 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대가 갈수록 악해져 가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절대적인 신앙으로 살아가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3-09-22
  • [양육칼럼] 듣는 마음으로 자녀와 소통하라
    오늘날 자녀 간, 가족 간의 갈등은 물론 최근 들어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가족 간, 세대 간 소통부재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최근 한 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가정에서 자녀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설문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자녀와 나누는 대화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에 '30분 이상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10분 이상 30분 미만'(29.1%), '1시간 이상 2시간 미만'(22.0%), '2시간 이상'(11.9%), '10분 미만'(6.2%) 순으로 집계됐다. 즉 응답자의 66.2%가 자녀와 하루 평균 1시간이 안 되는 대화시간을 갖는 셈이다. 또 자녀와의 대화는 '엄마'(55.3%)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고, '자녀'(33.6%), '아빠'(9.1%)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대화의 주도권은 엄마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아빠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비율이 미미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초등학생에서 청소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아빠와 자녀 사이에 대화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어 민감한 청소년기의 자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사뭇 염려가 된다. 또 다른 조사에서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하루 평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단 13분(평일 기준)에 그쳤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노는 시간이 하루 0.9%밖에 안 된다. 반면 학원ㆍ숙제 등 학교 밖 공부 시간은 190분, TVㆍ스마트폰 등 각종 미디어 이용 시간은 84분으로 훨씬 많았다. ‘거의 매일 자녀와 대화하는 부모’의 비율은 5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0%에 한참 모자랐다. 짧게 이루어지는 대화마저도 ‘숙제 했냐’ ‘스마트폰 한 시간만 해라’ 이런 식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본 요소가 가족인데 대화다운 대화는 없고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SNS와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가족의 말투와 표정, 혹은 동작에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다. 소통의 핵심은 말보다 마음이다. 기술보다 진정성이며, 논리보다 태도다. 자녀와 올바르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녀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듣는 즉 경청하는 태도가 우선이다.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꿈에 나타난 여호와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하자 ‘듣는 마음’ 구한다.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이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는'이란 뜻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와 '민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탁월한 선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솔로몬의 모든 지혜는 하늘의 소리와 백성을 소리를 듣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부모들도 듣는 마음으로 자녀의 말을 경청한다면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자녀의 의사전달력과 경청하는 태도를 함께 키워주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날 있었던 상황보다는 그 상황으로 인해 자녀가 느꼈던 감정을 물어야 한다. 자녀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을 때 진정으로 부모와 소통하는 기쁨을 느끼게 되며 위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아존중감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자녀가 잘했을 때 칭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소통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비난하지 않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진심어린 격려를 받는 자녀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실패해도 재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양육칼럼
    2023-09-22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