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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책맹인류 시대에 책 읽는 아이들로 양육하기(1)
    EBS 다큐멘터리 ‘책맹인류’ 프로그램이 화제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진단과 여러 나라의 국가적 대안 등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책맹인류’에 대한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밝히고, 설득력 있게 구성했습니다. 특히 1부에서는 ‘읽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읽기’를 시작할 때 뇌의 반응을 분석적으로 보여줌으로 읽기가 단순히 읽는 수준을 넘어 전인지적으로 인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실험자가 어떤 문자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 ‘해독, 인식, 구도, 문해, 지식, 추론’ 등 뇌의 대부분의 영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읽기는 뇌의 모든 영역이 서로 도와야지 완성할 수 있는 작업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더 나아가 인간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또한 10분만 책을 읽어도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어,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책맹인류’란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이 ‘정보, 지식, 재미, 정서적 만족’ 등을 준다고 하더라도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여러 매체 앞에 책은 제일 마지막 순위로 밀리고 맙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중간 중간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나와 인터뷰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애들이 하나같이 “책이 재미없어요” “책보다 게임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라는 말로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딱딱한 문자를 읽는 것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더 나아가 스마트폰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영상은 훨씬 더 몰입감이 강하고 재미있습니다. 감히 비교가 안됩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 앞에 갈 때가 있습니다.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을 빠져 나오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을 켭니다. 어떤 아이들은 엄마에게 마쳤다고 전화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문자나 카톡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 애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면 전화나 문자를 확인한 후 결국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도 이런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식사를 다 했다 싶으면, 개의치 않고 핸드폰으로 자신들 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처음으로 핸드폰을 사 주었습니다. 처음 사줄 때 스마트 기능이 없는 ‘전화와 문자’만 되는 핸드폰을 사줬다가 학교에서 반톡을 만들어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생겨 결국 6개월 만에 스마트폰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머지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습니다. 집에 TV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아 집에 오면 당연히 심심해합니다. 하지만 심심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놀 것, 읽을 것은 스스로 찾습니다. 물론 엄마는 글이 많이 있는 책을 읽기를 바라지만, 이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만화책입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읽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중학생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사주고, 집에서 영상매체를 (가급적이면)보지 않는 것 등의 원칙은 내가 첫째를 임신하면서부터 가졌던 교육관이자 동시에 책 읽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맹인류’ 시대에 양육자들이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에이, 책 좀 안 읽으면 어때? 다른 곳에서 지식과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EBS 다큐멘터리 ‘책맹인류’ 프로그램을 시청하시기를 권합니다. 책은 지식 취득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전인격적 활동이라는 것을 방송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깨달음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듯, ‘책맹인류’ 시대에 우리 자녀들이 책 읽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시대의 심각성과 책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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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3-10-2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저는 다음세대 사역에 관한 강의나 설교를 할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는 저를 정말 행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이 저는 가슴 떨리게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미래가 굉장히 밝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미래를 너무 어렵고, 어둡고, 힘들게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바라고 기대하는 우리의 소원과 이 기도의 제목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몸된 교회에 주신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거나 이러한 노하우를 소개하기를 매우 기뻐합니다.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여러분, 이런 교회를 바라십니까? 물론 바라시겠죠. 그런데 정말 이런 교회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런 교회를 바라긴 하지만 이런 교회가 있냐? 라고 물으면 다들 주저주저하세요. 아니, 다음 세대 사역이 좋긴 하지만, 필요는 할 텐데 그걸로 교회가 부흥할까? 라고 하는 반신반의를 가지고 계세요. 그런데 제가 저희 성민교회에 부임한 지는 8년 됐습니다. 그전까지 저희 교회는 세워진 지 25년 된 전통교회. 모든 것이 일반적인 교회였습니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제가 부임해서 첫 1년 동안을 설교하고, 심방하고, 성경 공부하는 데만 전념을 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저희 장로님들이 저를 보고 당회 시간에 정책 당회를 하는데 “목사님! 이제 좀 정체를 드러내시죠.” 그러시는 거예요. “목사님! 분홍 목사님 아니십니까? 다음 세대 사역하시는 거 저희가 알고 모셨는데 목사님! 한 1년 동안은 설교와 심방과 성경 공부만 하셨으니까 이미 저희와는 이제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됐습니다. 이제 목사님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희가 다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다음 세대 부흥 5개년 계획>안을 들고 나와서 “그러면 이걸 한번 해보실까요?”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오케이!” 하셨어요. 그래서 2017년도부터 제가 5개년 계획을 했는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5년 안 걸렸습니다. 시도한 첫해 우리가 꿈꾸던 게 다 됐어요. 그래서 숫자만 커진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 행복 지수가 너무 높아졌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어디 가서 우리 애에 대해 소개할 때 그렇게 소개합니다. “우리 애들 전교 1등입니다. 행복 지수가.” 성적 전교 1등은 소용없어요. 여러분, 그거 해봤자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행복 지수는 전교 1등이에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30분, 1시간 걸려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교회, 부모님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교회, 그래서 아이들 때문에 등록하는 교회, 아이 때문에 우리 교회로 찾아오는 교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부산뿐만 아니라 김해, 양산, 진해. 저희 경남 모든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 그리고 가장 핫한 교회가 되었어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저희 교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저희 교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냥 이러면 좋겠다가 아니라 해보니까 이렇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다음 세대 사역 표어는 “다음 세대를 주인공으로”입니다. 여러분,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주인공인가? 라고 하는 거예요. 과연 어른들이 주인공을 다 하시고, 아이들은 그냥 엑스트라 아니면 애들은 조연 배우,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1,2 정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다음 세대란 말이 문제가 있다고 그래요. 다음 세대니까 다음에 도와주자고 자꾸 그러신다고. 그러나 다음 세대는 주인공이고요. 지금 아이들은 가장 대우받고 사랑받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이게 왜 다음 세대가 주인공이냐면요. 저희 때 70년대만 해도 한 해에 100만 명이 태어났어요. 100만 명이면 길거리에 치는 게 아이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북만 쳐도 따라왔어요. 그런데 이게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 해에 64만으로 훅 줄어버립니다. 이때부터 교회 학교 위기론이 나왔어요. 애를 안 낳아요. 그러다가 2010년도 들어가니까 연간 평균 47만 명으로 훅 줄어들더니 이게 2020년도에 들어가니까 드디어 27만 명. 지금은 20만 명이 안 돼요. 즉, 5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어요. 길거리에 애들이 없어요. 학교가 줄고 있고, 폐교되고 있고. 여러분, 부산 시내에 시내 복판에 있는 학교가 지금 폐교되고 있어요. 그건 매우 심각한 위기예요. 그러니까 학교를 끼고 편하게 교회학교 사역을 하던 교회들이 지금 위기를 만난 거예요. 그러면서 그 교회들이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거느냐? 저희 교회에 전화 옵니다. “홍 목사! 심각하다.” 이러면서 저한테 요즘 굉장히 많은 전화가 오는데요. 제가 다음 세대를 사역하면서 “다음 세대 위기입니다. 필요합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던 목사님들이 이제 교회에 코로나가 딱 터지니까 애들이 사라졌잖아요. 애들이 교회 안 나오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 또 안 와요. 그러니까 이제서야 위기를 깨닫고 저한테 전화가 오고 찾아오시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솔루션을 묻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지면을 통해서 몇 회에 걸쳐서 솔루션들을 아주 자세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시고 계속 이 지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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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9-22
  • [다음세대칼럼] 우리 시대와 사사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들과 폭행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자녀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우리 시대가 왜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가정이 붕괴되고, 학교 교육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교권이 무너졌습니다. 시대가 갈수록 악해져만 갑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묵상하다 보면 우리 시대가 보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중에서 사사기 17장과 사사기 17장의 ‘미가’야 말로 사사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들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의 ‘미가’가 사사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자기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미가는 어떤 사람이었고, 미가가 보여주는 그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사사시대의 특징은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이 많은 시대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어느 날 거액의 돈이 도둑을 맞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은 1,100세겔이 없어졌습니다. 그 돈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사사기 17장 10절에 보면 미가가 자기 집의 제사장에게 준 1년 연봉이 ‘은 10세겔’이었습니다. 최소한 10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의 돈이 없어졌습니다. 오늘날 월급을 200만원으로 계산하면 연봉 2,400만원 정도이고, 약 24억 정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안의 여주인이 훔쳐간 자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저주를 듣고, 두려움으로 훔쳐간 돈을 돌려준 사람은 놀랍게도 그 집안의 아들 ‘미가’였습니다. 미가는 왜?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어머니의 재산을 훔쳤습니까? 이런 아들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거액의 돈을 훔쳐간 자를 ‘저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범인이 아들인 줄 알고, 돈을 돌려주자 급하게 말을 바꿉니다. 사사기 17장 2절 말씀에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하면서 ‘축복’했습니다. 죄를 지은 아들을 책망하지도 않고, 도리어 ‘축복’한 것이 바로 미가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 모습입니다. 이렇게 사사 시대는 내게 해가 되면 저주를 퍼붓고, 내가 득이 되면 축복을 남발하는 시대였습니다. 복과 저주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즉 자신이 왕이고 신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미가든 그의 어머니든 복과 저주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조금의 인정함도 없습니다. 입으로는 여호와를 말하고 범사에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율법도 없었습니다. 결국 미가와 미가의 어머니,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사람과 사람의 저주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하나님께는 무디고,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는 민감했던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사 시대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아들에 대해서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들이 잘못되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잘되어야 합니다. 굳이 아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해서 기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 내 아들 기를 죽입니까? 누가 내 아들 기를 죽입니까? 누구도 내 아들 건드리면 안 됩니다. 설사 하나님이라도! 내 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리라!’ 이것이 미가의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보다 내 아들’, ‘말씀보다 내 아들이 더 우선’입니다. 어머니가 이러니 미가도 똑같은 죄를 짓습니다. 사사기 17장 5절 말씀입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레위인도 아니고, 아론의 후손도 아닌 사람은 절대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미가입니다. 결국 아들을 말씀 위, 하나님 위에 둔 것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미가의 어머니와 미가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위인 존재,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들을 돕는 존재, 복 주는 존재, 저주를 막아주는 존재, 인생 무대의 엑스트라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퇴색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 시대도 이렇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배, 말씀, 교회보다 우선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 아닙니까? 시간이 남아야 예배하고, 돈이 있어야 헌금하고, 여유가 있어야 봉사할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은 자꾸 우리 삶에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외치지만 이 시대의 미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먼저인 것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대가 갈수록 악해져 가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절대적인 신앙으로 살아가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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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양육칼럼] 듣는 마음으로 자녀와 소통하라
    오늘날 자녀 간, 가족 간의 갈등은 물론 최근 들어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가족 간, 세대 간 소통부재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최근 한 교육기관에서 실시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가정에서 자녀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설문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자녀와 나누는 대화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에 '30분 이상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30.9%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10분 이상 30분 미만'(29.1%), '1시간 이상 2시간 미만'(22.0%), '2시간 이상'(11.9%), '10분 미만'(6.2%) 순으로 집계됐다. 즉 응답자의 66.2%가 자녀와 하루 평균 1시간이 안 되는 대화시간을 갖는 셈이다. 또 자녀와의 대화는 '엄마'(55.3%)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고, '자녀'(33.6%), '아빠'(9.1%)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대화의 주도권은 엄마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아빠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비율이 미미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초등학생에서 청소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아빠와 자녀 사이에 대화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어 민감한 청소년기의 자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사뭇 염려가 된다. 또 다른 조사에서 초ㆍ중ㆍ고교생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하루 평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단 13분(평일 기준)에 그쳤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노는 시간이 하루 0.9%밖에 안 된다. 반면 학원ㆍ숙제 등 학교 밖 공부 시간은 190분, TVㆍ스마트폰 등 각종 미디어 이용 시간은 84분으로 훨씬 많았다. ‘거의 매일 자녀와 대화하는 부모’의 비율은 5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0%에 한참 모자랐다. 짧게 이루어지는 대화마저도 ‘숙제 했냐’ ‘스마트폰 한 시간만 해라’ 이런 식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본 요소가 가족인데 대화다운 대화는 없고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SNS와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가족의 말투와 표정, 혹은 동작에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다. 소통의 핵심은 말보다 마음이다. 기술보다 진정성이며, 논리보다 태도다. 자녀와 올바르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녀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듣는 즉 경청하는 태도가 우선이다.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후 꿈에 나타난 여호와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하자 ‘듣는 마음’ 구한다.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이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는'이란 뜻이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와 '민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탁월한 선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솔로몬의 모든 지혜는 하늘의 소리와 백성을 소리를 듣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부모들도 듣는 마음으로 자녀의 말을 경청한다면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자녀의 의사전달력과 경청하는 태도를 함께 키워주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날 있었던 상황보다는 그 상황으로 인해 자녀가 느꼈던 감정을 물어야 한다. 자녀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 받을 때 진정으로 부모와 소통하는 기쁨을 느끼게 되며 위안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아존중감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자녀가 잘했을 때 칭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소통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비난하지 않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진심어린 격려를 받는 자녀는 자신감을 갖게 되며 실패해도 재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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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신앙교육나침반] 10월 31일은 할로윈(Halloween)? 종교개혁기념일(Holy Win)? (1)
    10월 31일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날, 바로 할로윈 데이입니다. 사람들은 유령, 마녀, 괴물 등으로 변장하여 집집마다 돌면서 사탕을 받습니다. 사탕을 받아온 후에는, 다양한 놀이 파티를 합니다. 할로윈 데이는 정말 흥미롭고 매력적인 날일까요? 그 기원에 대해 살펴봅시다. 기원전 500년경, 고대 아일랜드 캘트족은 11월 1일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1년간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머물렀다가 떠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하루전인 10월 31일은 지상에 수많은 악령이 내려와 난동을 부릴 것이라 믿으며, 그들을 두려워하여 검은 옷과 검은 두건 차림으로 횃불을 들고 사탄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신 ‘삼하인’(Samhain)에게 처녀를 재물로 바치기 위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처녀를 내놓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겠다!) 협박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탄숭배 제사의 문화가 할로윈 데이의 뿌리가 되어, 오늘날 수많은 자녀들이 귀신의 모습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를 외치고 사탕을 받습니다. 영향력있는 사탄숭배자 존 라미레즈(John Ramirez)는 하나님을 믿은 후 기적적으로 사탄숭배가정에서 탈출한 후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과 당신의 자녀가 할로윈데이에 귀신의 흉내를 내는 순간, 사탄의 영이 당신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이 할로윈을 어떤 형태로든 참여함과 동시에 당신은 악마를 기념하는 희생제사로 바쳐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당신은 단순한 흥미로움으로 참여하였지만, 그 찰나에 당신은 원수와 화친협정을 맺고,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탄의 자녀로 바꾸는 희생제물로 바친 것이다. 당신은 그러한 무서운 희생제사를 매년 한번씩 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라!”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 수많은 로마카톨릭교회 신도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외에 죽은 성인(聖人)들을 믿고 숭배했습니다. 그들 역시 매년 11월 1일은 죽은 성인들의 영혼을 위한 성인 대축제일로 지켰는데, 바로 하루 전날인 10월 31일에 성인(聖人)들의 영혼이 세상에 나오는 날로 생각했습니다. 로마카톨릭 신자들은 성인(聖人)들을 예수님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믿고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비싼 돈에 구입하여 만지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 역시 복음의 진리를 깨닫기 전, 무려 21명의 성인을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21명을 일주일로 나누어서, 매일 세 명의 성인(聖人)을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루터는 날마다 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금식하고 노동하며, 하나님과 성인(聖人)들에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행은 전혀 루터의 영혼에 평안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나는 사탄의 사슬에 꽉 묶여 누워있네!”라며 고뇌하였습니다. 이후에 루터는 1507년에 사제로 안수를 받고,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헬라어 성경 원전을 읽고 연구하던 중,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만나 지금까지 믿고 따랐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는 ‘죄인인 나를 의롭게 하시는 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인간의 모든 선행과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붙잡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눈을 뜨게 된 루터는 자신이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 복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제서야 로마 카톨릭교회의 심각한 타락이 낱낱이 보였습니다. 1517년, 루터는 로마카톨릭 교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죄악된 관습에 대해 복음에 근거한 95개조의 반박문을 작성하여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하였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바로 이날을 시작으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영광!”의 강령을 외치는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 31일에 우리 모두는 사탄의 형상이 아닌, 빛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은 사탄의 간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적하여 공격하는 전신갑주입니다. 10월 31일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종교개혁자들이 생명걸고 외친 다섯 가지의 핵심 5대 강령을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기념하며 온 세대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 자료를 공유드리려고 합니다. 온세대가 참여하는 복음 가득한 종교개혁기념 파티에 대한 활동 자료는 유튜브채널 [향기나무 성경놀이터]를 통해서 9월 22일부터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교회와 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향기나무 성경놀이터] 채널의 많은 구독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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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사춘기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제가 부모들 교육을 할 때 믿는 부모들이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니까 아이들이 이제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사춘기 부모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교회에도 나와야 하니까 “한 달에 한 번만 예배에 나와라.” 이렇게 정리를 했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잘했죠!”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제발 욕심을 버리시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안 믿는 집 애들은 공부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믿는 집 애들은 공부도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사교육도 받아야 하고 공부도 1등 해야 하고 교회까지 와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애가 어디 있습니까? 슈퍼맨입니까? 못합니다. “안 믿는 부모들은 공부만 시키지, 우리는 공부에 신앙까지 시키니 어떻게 애들이 견디겠습니까? 적어도 하나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중요하면 이것만 꼭 잡고 나머지 중에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포기를 못하십니다. 학교 공부도, 사교육도, 예체능도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학원을 대여섯 개 보내시면서 교회까지 잘 나오는 그런 자녀로 키우기를 기대하시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자녀들을 밀어 붙입니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들이 그 욕심에 치를 떨면서 교회 나오기를 거부하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부모가 자기 자신을 포기 못 한 겁니다. 내 사회적 체면, 내 지위, 내 계획, 내 꿈을 포기 못 하니까 내 자녀에게 나보다 더 많은 삶을 압박하고 강요하는데 그걸 애들이 어떻게 따라옵니까? 다 넘어지지. 그러니까 사춘기가 되면 교회를 안 나오는 겁니다. 결국 누구 때문에 안 나오는 겁니까? 우리 때문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래 놓고 분홍목사에게 답을 찾고, 분홍목사에게 솔루션을 내놓으라고 그러면 제가 무슨 수로 내놓습니까?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왜 내 아이의 미래를 못 맡깁니까? 왜 우리 아이의 진로를 하나님께 못 맡깁니까?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결정됩니다. 맡기세요. 우리가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우리 아이의 통치자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수많은 문제들은 여기에 다 걸립니다. 수많은 케이스가 있는 거 같지만 딱 하나에 걸립니다. 누가 왕인가? 하는 겁니다. 누가 왕인가? 하나님인가, 아닌가? 여기에 모든 문제가 다 걸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하나님의 왕이 아니니까 다 걸리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닌 것이 왕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 아닌 어떤 것이 왕이 됩니까? 당연히 물질, 그리고 나 자신입니다. 물질이라고 말할 때 그게 뭐냐면 이 땅에 썩어질 것을 즐기는 내 습성이 다 묻어나는 게 물질이거든요. 그게 집일 수도 있고, 땅일 수도 있고, 명품일 수도 있고. 이게 다 여기 묻어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은 누구입니까? 내 자녀 때문에 죽고 못 사는 나. 내 명예, 내 인기, 여기에 집착하는 내가 물질이고, 나 자신이고, 결국은 이게 두 개가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집착을 위해 살 때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됩니까?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남과 재고, 그러다가 절망하고 좌절하고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닌 것이 왕이 될 때 우리 인생의 결론은 패배입니다. 그것도 완전한 패배입니다. 예수 믿고 패배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내가 가진 그 어떤 가치보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서운함보다 하나님이 더욱 크신 분임을 알고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며 살아가는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내가 가진 그 어떤 가치보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서운함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이걸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걸 못 믿으니까 내가 가진 게 커 보이고, 내가 못 가진 게 서운하고 그게 아쉽습니다. “아! 그때 교회를 안 보냈으면 우리 애가 공부를 더 했을까?”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그때 그 수련회 안 보냈으면! 그때 그 성경학교 안 보냈으면! 우리 애 등급이 높아졌을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얻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놓친 그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온전히 찬양하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참된 승리가 찾아오는 겁니다. 승리는 돈 버는 게 아니고, 승리는 1점 더 받는 게 아니고, 승리는 한 번 더 칭찬받는 게 아닙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자부심이 있습니다. 적어도 성민교회 아이들은 행복 지수가 전교 1등입니다. 성적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는 합니다. 그런데 행복 지수는 전교 1등입니다. 저는 식사하면서 저희 교회 부교역자 사모님께 그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은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스트레스 없는 목사! 저는 그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왜 사역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요. 하나님이 왕 되시면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보다, 놓친 것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그분만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선택과 집중으로 우리의 사춘기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고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대이어 위대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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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9-08
  • [다음세대칼럼] 작은 기적의 무대, 둥지극단
    이제 제법 배우 느낌이 나는 둥지아이들. 각자 자신의 대사를 읊조리며 곧 있을 둥지극단 정기공연 “엄마의 바다”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이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디아코노스 김태연 단장님이 아이들과 7년째 호흡을 맞추어 왔다. 이 공연이 있기까지의 첫 시작은 김태연 단장님이었다. 아이들과 연습한 지 딱 두 번 만에 단장님이 따따이에게 놀라운 제안을 했다. “따따이. 우리 둥지아이들로 연극공연 합시다!” 확실한 의지를 보이는 단장님에게 따따이는 공연이 어려운 몇 가지 이유를 댔다. “우선 아이들이 대사를 외울 수가 없어요. 간단한 것도 암기하지 못하는데 연극대사를 외울 수는 있겠습니까?” “외울 수 있습니다. 그냥 외우는 것과 대사암기는 좀 다릅니다” “그리고 배역을 정해 놓으면 뭐합니까? 언제 이탈할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연극공연이라는 목표가 생기면 이탈 안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어서 정식 공연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압니다. 제가 둥지 아이들과 연습을 해보니깐 이 아이들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끼가 있어요. 다른 고등학교 연극부나 모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게 있다니깐요. 한 번 해 봅시다” 결국 단장님의 설득에 따따이가 이겨낼 수가 없어 연극공연을 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연습 중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음을 여는 시간으로 연극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출발이었다. 그동안 소외된 채 자기 표현을 서툴러하고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무대에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표현하기만 해도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고 연기감각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특히 연극의 스토리가 비행과 범죄로 재판까지 받았던 자신들의 살아온 삶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가족과 갈등, 가출, 연예인 지망 등)을 담고 있어서 더욱 와닿았다. 제목을 ‘엄마의 바다’라고 정하고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초대하여 회복의 무대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소박하게 하려던 공연이 아이들의 열심에 감동을 받아 더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에 ‘둥지극단’이라 이름을 정하고 정식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은 따따이의 마음이었다.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 비해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나 작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의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이탈하거나 무단가출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모습이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인생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이기에 가끔은 대견스럽기도 하다. 따따이는 지인들에게 연극공연에 초대하는 문자를 보내면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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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신앙교육나침반] 알파세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교회교육 핵심전략 3
    최근 세계사의 재미에 푹 빠진 12살 첫째 딸, 예나가 노트북으로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고 있습니다. 스크린 오른쪽에 놓여있는 테블릿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악보가 보입니다. 아이는 테블릿에 띄워놓은 악보와 세계사 영상을 번갈아 보면서, 두 손으로 칼림바(아프리카 악기로,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손가락 하프임)를 연주합니다. 각각의 디바이스에서 제공하는 다른 컨텐츠를 아무렇지 않게 흡수하는 2012년에 태어난 이 아이는 바로, 알파세대입니다. 알파세대는 2010년 이후에 태어났고, 2024년까지 태어날 아이들의 세대를 지칭합니다. ‘알파’(α)라는 이름은 호주의 인구통계학자인 마크 매크린들(Mark McCrindle)이 21세기에 태어난 첫 번째 세대라는 의미로 그리스어 알파(α)를 사용했습니다. 알파세대는 그 이름처럼 지금까지 세대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IT기술과 스마트 디바이스는 도구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이며, 이들은 AI쳇봇과 친구처럼 함께 성장하는 세대입니다. 알파세대의 특징을 고려한 교회 현장의 교육 방향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첫째, 지식 전달이 아닌 경험, 티칭(Teaching)이 아닌 코칭(Coaching)! 알파세대는 AI와 공존하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첫 번째 인류가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지식은 스마트기어를 통해서 언제, 어디어사 검색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파세대에게 교사중심의 지식 전달 수업은 그 어떤 흥미와 감동도 줄 수 없습니다. 알파세대는 교사가 이미 만들어서 제공하는 지식이 아닌, 자신들이 탐구하여 지식을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참여하는 수업에 흥미로워합니다. 이들은 누군가가 기획하고 만들어 제공하는 컨텐츠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알파세대는 타인이 제한하여 만들어준 컨텐츠보다는,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기획하여 창조하는 컨텐츠에 특별한 매력과 재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다이소, 마라탕, 버블티에 열광합니다. 교회학교 현장은 추상적인 지식을 주입하는 티칭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말씀이 주는 지혜를 발견하고, 그 지혜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을 코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감탄과 즐거움을 경험하는 하이터치(High Touch)가 있는 교회! 알파세대는 코로나 펜데믹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인생에서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에 사회적 결핍과 공백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불행하게도, 알파세대는 펜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환경으로 인하여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 매우 편안한 세대입니다. 스마트 기어가 제공하는 단방향 소통에 익숙한 아이들은,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유튜브 시청을 더욱 선호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을 위한 교회교육 현장은 감탄과 즐거움이 가득한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현장이 되도록 더욱 세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가상공간의 경험은 결코 이 아이들의 영혼을 터치하지 못합니다. 알파세대에게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은 특별하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 현장은 마음이 공허하고 아픈 이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터치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 안에서의 ‘나’를 발견하는 교회! 알파세대는 자신의 모든 삶을 sns에 라이프 로깅(lifelogging: 일상을 기록하다)합니다. 아이들은 수시로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트위터 등에 일기처럼 기록합니다. 이아이들은 자신의 게시글에 달린 ‘좋아요’와 ‘공감’ 숫자로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며, 평가합니다. 온라인의 일상이 아이들의 일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가 없는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스마트 도구를 향방 없이 사용하며 중독되어갑니다.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교회교육 현장이 필요합니다.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영적 파워를 지닌 ‘나’를 발견하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파세대가 하나님 안에서의 나를 발견하고, 영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알파세대에게 스마트기어는 더 이상 아이들의 일상을 주도하는 본질이 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비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최고의 도구로 스마트기어를 선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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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작은 승리를 기뻐하는 아이로 키우자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기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은 큰 성공을 거두고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데 우리 아이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단시간에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울 때 우리는 작은 승리를 꿈꾸며 그것을 기뻐하는 아이로 우리 자녀를 기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큰 성공, 큰 승리를 꿈꿉니다. ‘그게 아니면 아예 승리도 아니야.’ 라고 지레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까 일상의 승리가 없어졌습니다. 일상의 간증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큰 것, 대단한 것만 바라보니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한때 서울 수서동에서 유명한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과외 선생 홍 선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의 그 아파트 한 단지가 다 저의 필드였습니다. 제가 한 달만 쉬겠다고 그랬더니 어머니들이 안 된다고 해서 군대 입대하기 열흘 전까지 과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하고 나서 과외를 다시 하라는 굉장히 많은 유혹을 받았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월 27만원 받는 교육 전도사를 시작해서 목회의 현장으로 들어가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국 돈보다 목회의 길을 걷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당시에 평균 60점 맞는 아이가 열심히 하겠다고 많이 찾아왔습니다. 홍 선생님 밑에 가면 뭔가 잘 된다니까 애들이 옵니다. 근데 60점 맞는 아이의 다음 시험 목표는 몇 점이어야 됩니까? 저에게 보내는 모든 엄마들의 목표는 100점입니다. 물론 제가 가르치는 클래스에 평균 100점 받는 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원래 99점 받던 아이입니다. 99점 받던 애가 저한테 와서 100점 맞게 되니까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홍 선생이 전교 1등을 만들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60점 받는 애를 데려다 놓고 100점 맞으라고 하니 어떻게 될까요? 그 아이는 도저히 100점 맞을 수가 없습니다. 또 실패를 맛볼 뿐입니다. 그 아이는 일단 한 문제부터 더 맞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65점부터 맞고 그 다음이 70점, 그다음 80점, 90점, 이렇게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절차와 계획이 엄마들의 마음에 들지가 않은 겁니다. “돈이 얼만데. 당장 100점을 맞아 와야지. 70점? 야! 다니지 마!” 그리고는 학원 끊어요. 그럼 그런 애들이 다시 60점으로 내려갑니다. 원위치가 되는 겁니다. 한 문제씩 맞춰갈 때 하나씩, 하나씩 배워갈 때, 기본기가 없는 애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고, 그다음 루트도 하고 미분, 적분도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100점도 맞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지금 나의 수준보다 딱 한 단계만 더 올라가자, 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적어도 10단계, 20단계, 100단계는 단번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대단한 승리를 거둘 거야! 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목표는 항상 적어도 두 배 이상, 적어도 10배에서 100배 정도는 돼야 성공이지, 그렇지 않고 약간 늘어나는 건 성공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라톤을 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2.195km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걸음을 잘 달려야 합니다. 지금 한 발을 잘 디뎌야 결국에 이 한 발 한 발이 모여서 마라톤 코스를 완주합니다. 그러면 지금 나의 한 발은 승리인가요, 아닌가요? 승리입니다. 지금 나의 한 발은 성공인가요, 아닌가요? 성공입니다. 여러분, 이게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이 뭐냐면 지금 나의 한 걸음이 성공임을 아는 겁니다. 지금 나의 한 걸음이 승리인 걸 아는 겁니다. 한번 도전했습니다. 한번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성공인 것이고 그게 승리입니다. 너무 큰 것을 바라보다가 지금을 놓치는 우를 범치 않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내가 예배하고, 지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성공이고 승리입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가 교회에 나오는 건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그걸로 만족을 못하고, “적어도 중등부 회장은 해야지! 적어도 얘가 예배 인도쯤은 해야지! 찬양 인도쯤은 해야지! 우리 애가 드럼은 좀 쳐야지!”라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교회에 왔으면 대단한 겁니다. 업고 다니고 뽀뽀를 하고 용돈을 줘도 시원치 않은데, 구박합니다. “왜 아침에 나오는데 30분씩 걸리냐? 네 머리 괜찮은데 왜 또 감냐?”고 구박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환대해 주세요. 기쁘게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세요. 교회에 나오는 그 아이들이 너무너무 귀한 아이들입니다.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3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득점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골씩 넣어야 됩니다. 한 골씩. 이게 중요합니다. 축구공 23개를 한꺼번에 들고 와서 한꺼번에 뻥! 차 놓고 나 득점왕 됐다! 이럴 수 없습니다. 23골을 한꺼번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유명한 캘커타의 성녀라고 하는 마더 테레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기아에서 건지고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한 번에 한 명씩 안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축구는 한 골이 중요하고 사랑은 한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적도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거창한 성공보다 작은 승리를 기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길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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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08-18
  • [다음세대칼럼] 은혜의 집(2)
    만약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인다고 했을 때 누가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 중에 몸이 가장 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정작 은혜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연못은 진짜 은혜가 필요한 병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죽게 된 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단순 감기 환자가 먼저 뛰어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만성두통과 복통 환자가 먼저 들어가 버립니다. 다리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운동하다가 다리를 접질린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과 대립으로 가득한 살벌한 현장이 바로 베데스다 연못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각종 환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로 인해 영적 질병에 걸려서 무기력,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 줍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 있어서 천국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고통스러움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리를 절고 있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긴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풍병자와 같아서 진리를 향하여 움직이거나 진리 안에서 활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예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불신자들, 모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모든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도 비슷합니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교회와 교회도 형제가 아닌 경쟁자입니다. 교회와 교회끼리 경쟁합니다. 서로 큰 건물 짓기 경쟁을 합니다. 서로 사람 수 늘리기 경쟁을 합니다. 몇 십억, 몇 백억, 몇 천억 단위의 건물을 짓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큰 건물이 많은 사람을 흡수하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발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왕들을 뽑습니다. 진돗개 전도왕, 양육 전도왕, 파워 전도왕, 능력 전도왕, 웃음 전도왕, 심지어 마사지 전도왕까지 뽑습니다. 그리고 이 전도왕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집회를 통하여 전파하고 다닙니다. 이런 교회들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감투 경쟁, 기득권 경쟁, 자기중심적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경쟁 원리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넘쳐야 할 교회에 38년 된 병자와 같이 남을 원망하며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현실입니다. 은혜는 사라지고 온갖 원망과 불평과 불신과 판단으로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혹자는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자기중심적인 곳이 교회라고까지 말합니다. 참으로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습니다. 은혜의 집에 은혜가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예수님을 보고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정말 자비와 은혜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을 찾고 그를 절대적으로 의지합니까? 주님이 계실 때에야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계셔야만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이 계실 때 그곳은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베데스다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살아야 합니다. 베데스다는 오늘날 교회입니다. 은혜와 자비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베데스다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만을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만이 소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만이 치유자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독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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