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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해하지 못하고 하늘나라 소풍 간 故 오병세 박사
    고(故) 오병세 박사가 6월 8일 자택에서 하늘나라로 이사를 갔다. 고신 교단 안에서는 너무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고명하신 어른이라 일일이 학력 및 약력까지 열거하지 아니해도 알만한 교단 인사들은 알고 있는 분이다. 90세까지 이 땅에서 살면서 좋은 일, 굳은 일 다 겪고 사신 교단 내의 큰 어른이라 아쉬움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여나 마음한 구석에 아쉬운 점이 있으면 이런 것이 아니겠나 하는 노파심에 한 글자 적어두고 싶은 것임을 친지, 가족 분들에게 이해를 먼저 구하고 싶다. △하늘나라로 소풍가기 전 꼭 화해하고 싶은 분들과 ‘미안하다’는 말 남겼으면... 오 박사는 고신 교단 초창기부터 고려신학교 설립 이후 고신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장, 학장, 총장, 총회장 등을 거친 유일한 인물이다. 그들이 말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1951년 고려신학교 제5회 졸업동기생들이 이제 하늘나라에서 조우하시겠지요. 고신 교단이 인재를 배출하고 끝까지 배려해준 이 세 박사들은 고신 교단의 초창기부터 후진을 육성한 신학계의 거목이자, 훌륭한 영적 스승이었다. 故 홍반식 박사는 교단 정치는 모르고 오로지 후학들을 위해 몸으로 헌신한 한국교회 신학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노회장, 총대, 총회장 한번 못해보고 오직 믿음으로 경주한 영적 스승임을 자타가 인정하는 인물이다. 아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았고, 교단이 다른 재건파 교회에 다녀도 신앙의 자유 범주에 속한다고 하여 부부싸움이 없었던 인자한 어른으로 후배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故 이근삼 박사는 학장, 총회장, 총장까지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고신대학이 고신대학교로 종합대학이 되기까지, 의과대학 의예과 신설로 인해 교명이 바꾸기까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견디어 낸 큰 어른이었다. 고려신학교가 고신대학으로 총회의 사전허락 없이 교명이 바뀐 채 문교부로부터 의예과 허락 발표가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는 날, 서울중앙교회당에서 총회 가 진행되던 기간이었다. 총대 중 특히 경북노회 소속 오병세 목사로부터 총회 허락없이 교명을 바꾼 사실로 인해 비판의 발언으로 공격을 받을 때 “모든 책임은 오로지 나 이근삼한테 있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호소할 때의 광경이 생각난다. 그때 구원 투수로 나선 사람이 김경래 장로였다. 그가 일어나 하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는데 언제 홍해바다를 건널 때 의논하고 숙의하였겠습니까? 다 교단을 위해 하신 것으로 하고 용서해 주시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였다. 천금을 주고도 못 사는 귀중한 적시타 홈런을 친 것이다. 이후 학장직을 사임하고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故 오병세 박사는 교단 내 역사를 행정과 법리적으로 체계화시켜 전통을 유지해 오는 동안 경남노회 법통노회라 하는 故 송상석 목사와 자주 충돌하는 광경을 보았다. 고신 교단 내의 두 종류의 역사관이 있다고 할 정도로 경남노회 송상석 목사가 말하는 교단 역사의 줄기와 경북노회 주류를 이루는 오병세 목사의 역사의 흐름이 다소 다르다는 평가를 후세인들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병세 목사는 학자이기 이전에 행정가이고 교단 정치가로 두루 겸비한 인물로 남고 있다. △말년에 충돌된 사건은? 박영훈 고신의료원장이 재직 당시 서구 송도 암남동 34번지 고려신학대학원의 자리를 복음병원이 사용함으로 인한 몫을 나눠갈 때 격렬히 반대에 나선 인사가 오 박사였다. 당시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으로서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절충과 타협으로 천안으로 갈 때의 조건 사항이 너무 인간적인 냄새가 풍긴다고 서로 충돌한 사소한 일이 있었다. 타협 후 자녀를 수련의와 의사로 채용할 수 있도록 부탁한 사실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나 공적인 사건과 연계될 때 이미지가 상실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송도제일교회에 두 사람의 가족들이 출석했는데, 사모끼리 충돌하다가 오병세 목사 가족은 부평교회로 따로 갈라져 출석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박영훈 장로와 오병세 박사가 이 땅에서 지내면서 서로 화해하지 않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오병세 박사의 아쉬운 여운이 남는다는 것이 인간사에 있는 화해 자리가 없었다는 점은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 박영훈 장로도 87세로, 살아생전에 서로 만나 화해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고령으로 언제 하늘나라로 따라 갈 소풍날이 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주 안에서 서로 용서로 사랑의 화해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먼저 하늘나라로 소풍 떠난 오병세 박사와 다음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서로 화해하며 포옹했으며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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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6-06-15
  • 가장 영향력 있는 두 분을 주목하라
    5월 25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김무성 전 대표와 최계환 국회의원 계파 3자가 모여 새누리당 비대혁신위원장 후보로 박상증 목사(아름다운재단 이사장)와 김형오 장로(전 국회의원)를 거론했다고 보도되었지만, 다른 분으로 낙점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두 분 모두가 기독교인이고 한 분은 성결교 목사이며, 다른 한 분은 통합교단 교회 시무장로로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비하인드 히스토리를 써내려 보고 싶은 것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박상증 목사는 어떤 인물인가? 1930년에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86세 고령이지만 그의 정신적인 나이는 아직 60대 초반의 활발한 성격을 소지한 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다. 그야말로 한국교회 안에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에큐메니칼(교회일치)운동가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해방 직후 서울대 예과를 거쳐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나 좌우대립으로 194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에즈베리대와 에즈베리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이승만 박사가 나온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에큐메니칼운동 연구로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 때 입북된 초대 성결교 총회장 박현명 목사다. 그는 1958년 귀국한 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간사(1961~1967)를 거쳐 1967년부터 한국인 최초로 세계교회협의회(WCC) 실무자로 활동했다. 1980년 민주동지회 사무국장, 1981~1990년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CCA) 부총무, 총무로 맡아 활동하였고 국내 민주화 운동을 해외에서 지원하는 것은 물론 남북교회 교류에 물꼬를 튼 1984년 일본 도산소회의, 86, 88년 스위스 글리온회의 등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맡았던 분이다. 육순을 맞아 1990년 재차 귀국하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에 취임, 연구와 에큐메니칼 강의를 하고 다녔고, 1991년 여성신학자인 부인 이선애 목사와 갈현교회를 개척하여 공동목회(팀목회)를 했다. 그의 부인을 병중에서 간호하면서 뜨거운 순애보 같은 깊은 사랑의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품에서 결국 하늘나라로 보낸 후 지금까지 홀로 그 옛날 주택의 서울 녹번동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집 대문에는 아직도 한자로 쓴 박상증-이선애 공동문패가 나란히 걸려있을 정도로 아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스며져 있다. 그는 한 때 1996년 한국기독교학생총연맹(KCF) 이사장과 1997~2007년 참여연대 공동대표 그리고 1999~2012년까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대통령 총선 때 “내가 왜 유신 두목 딸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부정도 않고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을까?”라는 긍정을 준 것이 결국 중도 좌파 인사들이 대거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데 큰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김형오 장로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경남 고성읍 출생으로 부산고등학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정치인이다. 그 집안은 독실한 불교 집안인데 기독교인 사모가 시집 와서 부산 영도교회에 출석, 안수집사를 거쳐 서울 신일교회(통합)에 시무장로가 되었다. 그의 부친은 고성읍에서 행정사법법무사로 행정면이 밝아 늘 지역 유지로 활동했다. 바로 위에 있는 형 김형래는 마산고등학교 21기로 부산대 법대를 거쳐 부산지방법원 행정계통 공무원으로 있다가 현재 부산 서구 부민동에서 사법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978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 강영훈 외교안보연구원 원장에게 발탁 돼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가면서 청와대 비서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2006년에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았다. 2008년 7월~2010년 6월까지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재직했다. 김 의장은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탈당한 상태다. 한때 영도에서 국회의원으로 첫 출마할 때 필자와 같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 할 정도로 같은 기독교인으로 신앙적 교감이 있었던 사이다. 매우 온화한 성격이나 불의와는 타협을 좀처럼 안하여 포용적이면서 한가지 일을 선택하면 추진력있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 불교 집안에 기독교 장로가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로 부산 영도에 영도교회 안수집사로 있다가 교회가 분리하는 바람에 새생명교회로 옮겨 다니다가 서울 신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 하다가 장로가 되었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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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16-06-02
  • 6월, 교수문제 거론될 부산장신대 이사회
    부산장신대학교(이사장 민영란 목사, 김용관 총장) 이사회가 6월 중순경 정기이사회를 가질 예정이다. 6월이면 개방이사 황용림 장로(진주노회)와 허원구 목사(부산노회)의 이사 임기가 끝나면서 두 자리가 공석이 된다. 개방이사 추천위(총회에서 3명, 교수평의회에서 4명)에서 복수로 나오는 인사에 대해 이사 15명이 참석해 선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사회 관계자가 밝혔다. 오는 11월, 개방이사 이윤수 목사(평양노회)와 이종삼 목사(경남)의 임기가 끝난 다음 12월이면 현 민영란 이사장의 임기가 종료된다. 전임자의 잔여임기로 이사장에 있는 민영란 목사는 겨우 1년 9개월 이사장 임기밖에 채우지 못함으로, 유지이사는 재임할 수 있는 현 정관 시행세칙에 의해 재선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민 목사가 재임할 수 있을지 아니면 11월 중순 개방이사가 끝나는 이종삼 목사가 다시 재임명 이사로 개방 추천위에서 추천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면서 민영란 목사와 이종삼 목사가 이사장을 놓고 경합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이 벌써부터 학교 주변에서 일고 있다. 한편, 이번 6월 정기이사회에서는 결산심의와 개방이사 선출을 한다. 최대 관심사인 모 교수의 논문조작과 더불어 공문서 위조 및 직인도용건에 대해 심의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사장 민영란 목사는 “학교 안의 교수 논문에 따른 공문서 위조 등 형사사건이 벌어질 경우 가장 민감한 사건이라 중대한 사안으로 다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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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6-02
  • 요즘 이단도 ‘여성시대’
    최근 이단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여성 신격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통일교는 한학자, 하나님의교회는 ‘어머니 하나님’으로 불리는 장길자, JMS(기독교복음선교회)는 정조은, 신천지도 김남희로 권력이 넘어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이단 전능하신하나님교회(동방번개)도 양상빈이라는 여자 교주가 이끌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스게소리로 “여자 대통령시대라서 이단들도 여성 교주들이 대세인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 이단전문가인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는 “실제 여성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사회 핵심지도력으로 여성들이 부상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이단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생존전략상 시대 트렌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이들 여성 후계자들의 배후에는 일반적으로 전권을 가진 실세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이단 후계자들의 여성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단 조직 내 남성중심의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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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6-06-02
  • 행정처장, 사법당국에 ‘무혐의’ 처분 받아
    복음병원 곽춘호 행정처장이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직범죄 수사 1팀으로부터 ‘배임수재혐의’로 조사를 받고 최근 무혐의(내사종결)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누군가 곽 처장을 음해하려 사법당국까지 진정했지만, 사법당국까지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노조가 문제제기한 내용에서부터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구입과 가족 여행경비 출처까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청은 “어떠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내사 종결을 했다. 곽 처장은 “누군가 내 문제를 진정한 것 같다. 그리고 광범위한 조사를 받았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징계위원회에 모아지고 있다. 사법당국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처장을 징계위가 어떤 징계를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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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2
  • 68세 목사 강간미수로 징역 3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예장합동 소속 A 목사(68세)를 5가지 법률 위반으로 징역 3년 및 벌금 300만원에 처하고, 12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렸다. A 목사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검찰측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항소했다. A 목사의 5가지 법률 위반 가운데는, 아동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 추행)과 강간미수 등 목회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범죄도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건축법 위반 등의 범죄도 저질렀다. A 목사는 2013년 11월부터 1년여간 부산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맡아 왔는데,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이 교회 10대·20대 여성 교인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판결문에는 2013년 12월 당시 15세였던 A 양을 성추행했고, 2014년 8월에는 경북 김천 자택에 놀러 온 당시 22세 B 씨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라고 기록돼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여성 교인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고,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A 목사가)교화 내지 상담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주장하거나 피해자들이 합의금 등을 노리고 허위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서 범행을 축소하고 은폐했기 때문에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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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0
  • 고신대, 때아닌 ‘혼전순결’, ‘성적장학금’ 논란
    고신대학교가 최근 연일 일반 언론에 오르내렸다. 고신대 총여학생회의 ‘혼전순결’ 캠페인과 고신대 ‘성적 장학금 지급 규정’ 때문이다. 혼전순결 논란은 최근 고신대 총여학생회가 ‘혼전순결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내용을 SNS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전근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적인 글들이 올라왔고, 지역 진보적인 언론에서 이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강제로 하면 몰라도 개인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캠페인인데,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주장과 “청년 성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취지에서 이런 캠페인을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닌것 같다”는 의견들도 제기되고 있다. 크리스천 사이에서는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세상이 혼탁하다는 증거”라는 반응이다. ‘성적 장학금’ 논란은 장학금 지급 규정에 ‘교회출석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항목 때문에 불신자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 때문이다. 모 학생이 언론에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후 이 언론은 속보를 통해 “다음 학기부터는 교회출석 확인서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고신대 학생처 담당자는 “아직 결정된 것 없다. 장학위원회가 모여야 되지만 아직 모이지 못했다. 다만 학교 정서상 이 규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불신자 학생들이라도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게 대학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 규정은 과거 고신대가 신급을 적용할 때부터 있었던 내용이다. 당시에는 입학생 모두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급이 사라지고, 최근 불신자 학생들이 다수 입학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역 교회들은 “안타깝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기독교대학들마저 기독교적인 색체들을 많이 잃어 가는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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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0
  • K성도에 출교조처 내린 H교회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교단의 부산 H교회 당회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지난 16일 주일 1, 2부에 걸쳐 교회와 노회를 소란하게하고 고소고발사태를 야기시킨 K성도에게 가장 엄한 출교조처를 내리고 이를 교인 전체에 공포했다. 교회 당회는 이미 가중처벌로 징계를 하였음으로 상회에 상소할 기회마저 상실하였으므로 사회법정으로 끌고 갈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K성도는 이에 대응할 권리를 찾을 교회, 노회 출구가 막힌 상태에서 사회법정 밖에 다른 길은 없게 되었다. H교회는 K성도로 인해 어느 장로는 치리를 당하고, 지금도 당회장을 상대로 노회에 계류된 내용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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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0
  • 부산이 낳은 인물 윤인구 박사 (2)
    ▲위대한 꿈을 펼치다 1953년 서구 대신동 부산대의 판잣집 건물로 잘생긴 벽안의 미군 장성이 들어선다. 윤인구 부산대 초대총장의 초청을 받고 온 위트컴 미군 군수기지 사령관이었다. 반갑게 위트컴을 맞은 윤인구는 집무실에 붙여 놓은 그림 한점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장군, 내 그림을 한 점 사주시오”라고 말하자 “무슨 그림 말이요?”라고 위트컴이 말했다. 윤인구는 “이 땅의 꿈과 교육비전이 담긴 내 그림이오”라고 말하자 “하하, 그거 흥미롭군요. 좋소. 내가 그림을 사겠소”라고 위트컴이 말했다. 폐허가 되다싶이하고 피난민들의 집합지인 부산에 가장 위대하고 기념비적인 ‘예술작품’이 부활되는 순간이었다. 그 그림은 부산대 장전동 캠퍼스 배치도였다. 대학문을 열었으나 캠퍼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윤인구는 위트컴의 통큰 수락에 감격했다. 윤인구가 요구한 캠퍼스 부지는 금정구 장전동의 산지 50만평 일대 임야를 말했다. 어마어마한 면적이었다. 1952년에 준공한 서구 대신동의 부산대 건물 면적이 1566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00배 가량 넓은 땅이었다. 위트컴은 곧바로 정부와 경남도지사를 설득했고 장전캠퍼스 165만㎡(50만평)가 무상 양도되는 꿈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캠퍼스 시설 공사비 25만 달러를 대한미군원조처(AFAK)를 통해 자금을 지원 받게 되었다. 미군 제434공병부대는 온천장~부산대 길이 1.6km의 진입도로를 뚫어주었다. 오늘날 국립 부산대학교는 이렇게 한 크리스천 교육사역자의 꿈에 의해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그것도 개인을 떠난 이 민족의 교육대계를 위해 인재양성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가 된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보잘 것 없는 한 기독 청년의 기도제목이 그림 한장으로 군수기지사령관을 감동시킨 것은 배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으로 믿는다고 훗날 윤인구 목사는 말했다. 위트컴(1894~1982) 사령관도 부산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한 크리스천이고, 그의 묘지는 지금 부산UN묘지에 안장됐다. 미군 32명 중 유일한 장성이다. 그는 한국인 여성(한묘숙 여사, 91세)과 결혼해 윤인구 총장과 함께 부산대 건설을 이뤄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도움으로 청년의 꿈이 실현됐다. 윤인구 박사가 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 공부한 것도 다 준비된 하나님의 섭리하신 과정이기도 했다. 문제의 그림은 시골에서 흔히 보이는 언덕 위의 교회 종이었다. ‘부산대 동래캠퍼스 평면도’라는 그림을 종 모양의 그림 안에 부산대 캠퍼스가 그려져 있다. “하나님이 천상을 가꾸듯 부산대를 천상화원으로 가꿨다. 집에서 주먹밥을 뭉쳐서 현장에 나오고, 인부들과 함께 국수를 말아먹고 군용침대에서 주무셨다.” 효원교사를 지을 때 함께 일했던 전 부산대 교수 오점량 씨(78세)의 얘기다. 오늘날 남아있는 염원한 웅비의 탑과 교기의 독수리상은 윤인구가 창안한 것이고 부산대 구석구석에 윤인구의 평소 꿈꾸던 그의 꿈의 비전과 정신이 요소요소에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의 제자이자 영적아들이었던 정권섭 장로(소정교회 원로)는 정직과 믿음, 교육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자가 없을 만큼 대단했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부산대에서 15년간 근무했다. 61년 연세대 총장으로 부임해 4년간 근무했다. 80년 중풍으로 눕기까지 부산신학교(지금 부산장신대학교), 영남신학교(지금 영남신학대학교) 교장 등 교직자로 살다가 1986년 1월 25일 하늘나라로 갔다. 훗날 윤인구 박사는 전재산 2억 원을 부산대 후진양성을 위해 장학기금으로 희사하고 인덕기념관이 대학안에 세워져 있다. 그와 그의 부인 이름을 한자씩 딴 인덕기념관. 그는 영원한 이 땅의 교육자이자 (광복교회를 일본인으로부터 인수받아 목회) 목회자이자 애국애족한 민족의 지도자요 부산이 낳은 교계 지도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정도다. (참고문헌: 국제신문 새로 쓰는 인물사 2016.3.7.일자)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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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0
  • 세상 갑질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학교법인 고려학원(이사장 강영안 장로) 징계위원회가 5월 3일 모임을 가졌다. 강 이사장이 지난 3월 22일 이사회에서 병원행정 처장의 임기만료를 결정하고 감사 보고를 이유로 징계에 회부 한 뒤 첫 모임이다. 강 이사장은 교단지에 해명서를 통해 감사보고서가 징계위 구성의 사유서라고 해명했다. 차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자신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여질 수 있다. 징계위원회에서 조사하고 사실이 아닐 시에는 오히려 의혹 해소를 위해 더 좋은 일이 아니냐고 강조하고 있지만, 징계회부 자체가 개인과 기관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 자체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인지.. 징계의 회부로 얻어지는 일보다 내부적인 위화감 조성과 소신있는 업무를 제한함에서 오는 총체적 행정력 감소가 뚜렷한데도,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사장의 입장은 마치 지배적 지위의 남용, 즉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갑질’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여론이다. 세상에 어느 재판에 검사와 판사가 겸직을 하도록 하고, 직위를 이용해 강행하는 모습은 분명 세상에서 지적하는 갑질과 큰 차이가 없다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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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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