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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신뢰도 높인 구제·구호·봉사 단체들
    우리 사회와 정치가 혼란을 격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 인구가 10년 전에 비해 123만 명이 늘어났고, 종교 순위에서도 불교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전체 종교 인구는 대폭 줄고 있는데(10년 전에 비해 9%포인트가 낮아짐)유독 기독교인만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대한 논란은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한국교회가 그만큼 사회적 책임감이 높아졌음을 지적하고 싶다. 국내에는 다양한 구제·구호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선, 장애인 단체인 밀알복지재단과 신망애복지재단, 그리고 평화와 남북을 위한 단체인, 등대복지회와 남북나눔 등이다. 봉사·복지 분야의 한국해비타트, 유니세프, 안구기증운동협회, 밥상공동체,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재)사랑과행복나눔, (사)글로벌케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이 다양한 봉사와 구제활동을 하고 있고, 구호 분야의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굿네이버스, 굿피플, 한민족복지재단, 월드비전, 한국컴패션, 구세군, 월드휴먼브리지, 유진벨재단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거기에다 기독시민운동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도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단체들이다. 한국 교회는 연간 1조원 이상을 우리 사회를 위하여 지원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독교는 말로만이 아닌, 이웃 사랑을 분명하게 실천하고 있으며, 어려움과 고난 받는 자들의 이웃이 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복음 전래 이래,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또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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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16
  • 도민인권조례, ‘동성애’ 보호 의심든다
    충청남도(도지사 안희정)가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 제정안”을 1월 21일 입법예고하였다. 이에 대한 의견은 1월 29일까지 받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충청남도 인권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하며,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한 상담/조사와 신청, 신청한 것에 대한 처리, 인권침해와 차별에 따른 불이익과 조치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조례안에 의하면, 차별행위를 당했다고 느끼는 ‘신청인’이 충남도의 인권센터에 있는 ‘도민인권보호관’에게 신고하면, 이를 접수하고 조사하여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차별행위’에 대한 규정은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충남도의 이런 조례안은 ‘차별의 금지’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다른 차별 사유보다도, ‘동성애’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할 목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각종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현행법으로도 각 분야의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다만 최근 우리 사회에 화두로 급격히 떠오르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규정은 따로 없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차별한 경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가 이런 조례안을 만드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첫째는, 공직자들과 공직에 준하는 근무자들이 동성애에 대한 바른 판단이나 비판을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둘째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조례”를 통하여 ‘인권센터’와 ‘인권보호관’을 두고, 그들이 인권을 빌미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소지가 크다. 셋째는 이런 식으로 축적된 자료들이 국제 인권단체에 제출되고, 이를 통한 한국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전횡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충남도의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 제정안”은 분명한 선을 긋고, 이에 대하여 충남도민들과 국민의 적극적인 의견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증유(未曾有)의 동성애 문제로 인하여, 국민의 정서와 도덕, 윤리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법체계와 국민들이 혼란을 겪고 있고,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잘못된 ‘성정체성’에 대한 강요를 받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고 있다. 법률이나 조례는 국민과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역차별과 왜곡을 강요받는다면, 이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사회 질서 붕괴로 전락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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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기독 교사에 대한 징계는 과도하다
    지난 1월 26일 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김형태)는 기자회견을 통하여, 강원도교육감(교육감 민병희)이 기독교 신앙인 교사들(이하 기독교 교사)에 대한 감사권을 남용하여, 인권을 탄압하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성토했다. 강원도 교육청은 지난 1월 23일 기독교 교사 3명에게 징계를 내렸는데, 2명의 교사에게는 ‘감봉’을, 1명의 교사에게는 ‘견책’처분을 내렸다. 징계 이유는 ‘종교중립 위반 및 종교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교사들은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행위를 한 것은 인정하나, 그것은 방과 후에 교사 개인이 기도한 것이며, 신앙을 가진 전학하는 학생에게 성경책을 선물한 것, 그리고 신앙을 가진 학부모와 상담하면서 신앙서적을 선물한 것이다. 그리고 방과 후에 아이들이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성경적 일화를 교훈으로 들려준 것이며, 도덕 시간에 ‘분노 관련’ 수업을 하면서, 교사의 경험 영상을 보여주므로, 학생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 준 것이 ‘종교교육 중립의무 및 종교교육’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언론들은 강원도 교육청의 발표대로, ‘교사가 아이들에게 부적을 만들어 주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는 기독교인이 어린 학생들에게 부적(符籍)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을 빌미로, 강원도 교육청이 기독 교사들에게 가혹한 징계를 내린 것은,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신앙’ ‘종교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며, 기독교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보여, 강원도 교육청의 사과와 해명이 있어야 한다. 이번 강원도 교육청의 기독교 교사들에 대한 징계 사건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 교사들이 의도성이나, 반복성을 가지고, 종교교육을 시킨 것도 아니고, 학교 학습시간이 아닌 방과 후 시간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 것을 문제 삼는다면, 이는 ‘종교탄압’과 다르지 않다. 강원도 교육청이 ‘왜곡’ ‘날조’ ‘표적감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해치려 하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국민의 기본의무를 침해하려 했다면, 그에 대한 민병희 교육감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며, 다시는 이런 종교탄압 악습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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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3
  • 청탁금지법 무력화 시도 안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2016년 11월 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행한 지 100일 밖에 안 된 청탁금지법을 흔들고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다. 황교안 총리는 청탁금지법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며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화훼 농가와 요식업계 매출이 줄었다며 보완방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농·수·축산물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 여야정협의체에서도 청탁금지법 개정을 언급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발언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청탁금지법을 완화할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가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경제를 생각한다면 부패를 막기 위한 청탁금지법은 더욱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청탁금지법의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11일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85.1%가 청탁금지법 도입 및 시행에 찬성했고, 83.5%가 청탁금지법으로 사회생활이나 업무수행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주권자의 국민들은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소위 공복들이 청탁금지법을 흔들려고 하는 행태가 처연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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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19
  • 동아일보의 엇나간 반종교적 주장 광고
    지난 1월 7일자 동아일보에 난데없는 이상한 광고가 실렸다. 그것은 소위 영생교 교주 고 조희성을 추켜세우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에 보면, ‘조희성 님은 온 인류가 고대하던 구세주가 틀림없습니다’ ‘조희성 님은 일개 종교의 교주가 아니라, 온 인류의 구세주입니다’ ‘(조희성이)모든 사람 속에 분신으로 들어가 그 마음을 마음대로 조종하시는 전지전능한 능력의 구세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그렇다고 영생교(영생교하나님의성회승리재단)의 아류가 주장하는 바를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생교의 반사회적, 반종교적 행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교주인 고 조희성은 ‘살아 영생’을 주장했지만, 2004년 72세의 나이로,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만행은 우리 사회를 경악케 하였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이들은 영생교 탈퇴자를 감금하여 폭행한 사실이 있고, 교주를 연행하려던 경찰관에게 감금 및 폭행을 가하였으며, 영생교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알려진, 살인 및 유골이 다수 발굴되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법의 엄중한 단죄가 있었고,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1994년 2월 MBC ‘PD 수첩’이 보도하였고, 1994년 3월 KBS ‘추적 60분’이 처음 보도하였고, 이후에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1995년에도 보도하였으며, 2003년에는 2부작으로 보도하는 등, 그들의 악마성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적 공기(公器)이자, 민족 정론지로 자부하는 동아일보가 이런 이단 아류의 주장을 버젓이 신문광고에 낸다는 것은, 동아일보가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것이며, 우리 사회의 병폐를 부추기는 행위와 다름없다. 따라서 동아일보는 이런 행위에 대하여 독자들과 국민들에게 즉시 사과해야 하며, 자체 정화기능을 통하여, 재발방지를 위한 선언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어지럽고, 혼란에 빠져 있다 하여도, 국민들을 미혹하고 현혹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세력을 옹호하는 주장을 그대로 게재하는 것은, 언론 스스로의 책무를 저버린 매우 실망스런 행동이다. 아무리 돈을 받고 실어주는 광고라 하여도, 절반의 책임은 언론사에 있으며, 더군다나 과거 우리 사회를 혼란케 한 사이비 종교 집단을 추종하는 세력의 주장의 광고를, 게재한 것에 대한 책임은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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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19
  • 부기총이 언론사를 검증할 자격이 있나?
    부기총 39년 역사 동안 이처럼 언론사와 각을 세운 일이 있을까? 부산기독교언론협회가 항의서한을 보내고, 기자들이 부기총에 대한 취재거부를 하는 등 현재 부기총과 언론사의 관계는 최악이다. 그런 가운데 부기총은 오는 20일 본보에 대한 ‘허위왜곡보도 1차 진상조사 보고회’를 갖는다고 공문을 보내왔다. 말 그대로 ‘싸우자’는 선전포고 수준이다. 지난 법인 이사회 때 구성한 ‘언론대책위원회’라는 것이 언론과 싸우기 위해 만든 조직인가?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언론대책위원장 이성구 목사도 이번 ‘진상조사 보고회’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성구 목사는 3일 본보 기자에게 “(진상조사 보고회)그건 우리가 전혀 논의하지 않은 일이고, 나는 부산일보를 우선 대상으로 공문보내고 면담하도록 해 놓았는데...... 그후 아무 회의 없었는데...... 무슨일인지.....”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 내용만 보았을 때, 언론대책위원회 위원장도 모르는 언론대책보고회가 개최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 속에는 아직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 누가 부기총을 이렇게 농단하고 있나? 부기총이 특정인 한두사람이 좌지우지 할 정도로 허술한 단체였단 말인가? 언론의 비판을 받기 싫으면, 비판받을 짓이나 오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본보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라는 압력도 도를 넘은 행위다. 다른 연합기관들은 오늘도 부산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그런 연합기관들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부산의 대표기관이라는 곳이 언론사를 검증하고, 광고 탄압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인가? 부기총은 언론사를 검증할 자격이 없다. 부기총은 언론의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할 기관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끝으로 정관에 명시된 부기총의 목적을 다시 기억하기 바란다. 제3조 “본회는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사도신경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교단과 소속교회, 기독교단체들이 연합하여 교제를 가지며 기독교계의 대표기관으로, 기독교계의 공동 관심사를 협의하고 부산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이루어 감을 그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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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5
  • 남녀고용평등법 일부 개정안의 실체는?
    현재 국회에는 김정재 의원(새누리당)이 지난 12월 14일 대표 발의(이하 9명이 동참)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일부 개정안’(의안번호 4384-이하 ‘일부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원래의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일부개정안에서는 이를 더 구체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일부 개정안에서는 ‘남녀’란 말을 ‘성별, 임신 여부, 자녀출산계획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 이에 대한 신고나 상담, 감독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처벌조항에서도 ‘남녀’대신 ‘성별, 임신 여부, 자녀 출산계획 등을 이유로’ 차별할 경우에는 고용주에게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라고 한다. 이 일부 개정안의 특색을 찾아보면, 첫째는 차별금지법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녀고용 평등에서 그 대상이 ‘남녀’면 되는데, 이를 굳이 ‘성별’로 함으로,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와 다양한 성의 차별을 금지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의 ‘차별금지법’을 인정하는 법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에는 차별금지법을 모방한 입법 발의가 주로 야당 쪽 의원들이 주를 이뤘는데, 이번에 일부개정안을 낸 의원들은 모두 새누리당 출신이라는 것이다.(김정재 이철우 조훈현 정병국 강석호 김도읍 곽대훈 정용기 김성원 박명재 의원) 최근에 새누리당이 정신없이 분당과 파당을 겪는 사이에 여당의원들까지도 개념 없이 차별금지법을 차용하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 일부개정안이 동성애를 지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남녀’나 ‘임신·출산’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여, 잘 지켜지고 있는데, 옥상옥(屋上屋)으로 이런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동성애자를 옹호하려는 것으로 밖에 달리 판단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법안은 당연히 폐기 되어야 하고, 국민들은 남녀차별 금지를 빙자한, 차별금지법 차용의 잘못된 법안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법률안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조차도 국민들의 정서와 맞지 않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빚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국민들의 철저한 감시와 의견 개진만이 이러한 빗나간 행위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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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5
  • 낮아지고, 겸손한 성탄절이 되길
    성탄의 의미는 세상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2016년 성탄절은 격동하는 세상의 물결 속에서도 희망과 축복으로 다가온다. 혼돈과 불만, 그리고 분노와 대립의 세상에, 화해와 희망으로 예수님이 오신 날이다. 즉,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시는 평화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누구도 의롭다고 말할 수 없는, 허물 많고, 죄를 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지금 세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무디어졌다. 법과 정의의 정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위협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광장에서 외치는 자는 많지만, 국민적 함의(含意)와는 서로 다른 소리들을 내고 있다. 지금은 죄 많은 자의 목소리가 더 크다. 흠이 많은 자가 더 화려한 놀이를 즐긴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을 보라! 주님은 화려한 왕궁으로 오시지 않았다. 누추한 마구간에 누워, 세상의 참된 희망이로되, 연한 순(筍)으로 오신 것이다. 이 성탄절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한 곳이 우리나라이다. 분노의 촛불이 무엇이고, 태극기가 무엇인가? 성탄의 예수님 앞에서 모두 낮아지고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자. 이런 성탄절이 되기를 교회들이 힘써야 한다. 이제 2016년의 성탄을 겸손하게 맞이하자. 평화의 왕이요, 세상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주님 앞에서 희망을 노래하자.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 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서 52장 7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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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2
  • 한국 기독교인수 10년 전보다 늘었다
    통계청이 19일,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인구, 가구, 주택 기본 특성 항목이 들어가 있는데, 이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과연 10년 전과 비교하여 종교인의 변화다. 그 동안 한국 기독교는 지난 2005년 조사에서 다른 종교인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유독 기독교인만 줄어든 것에 대하여, 노심초사하며 기독교인의 분발과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그런데 막상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를 보고, 기독교인이 늘어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다시 한번 격려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 갈,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이 발표에 의하면, 기독교는 지난 2005년 조사 때의 844만 6천명에서 2015년 조사에서는 967만 6천명으로, 123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 비율에서도 18.2%에서 19.7%로 1.5%포인트가 높아진 것이다. 반면에 불교와 천주교는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불교는 2005년 조사에서 1,058만 8천명에서 이번 조사에서는 761만 9천명으로 나타나, 무려 297만 명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 인구 비율에서도 22.8%에서 15.5%로 기독교인비율 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조사 때마다 늘어나는 추세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줄어든 현상을 보였다. 10년 전 조사에서는 20년 전에 조사되었던 288만 5천명에서 501만 5천명으로 늘어나 세상을 놀라게 하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389만 명으로 나타나 112만 명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 인구 비율에서도 10.8%에서 7.9%로 낮아졌다. 한편 종교인 수는 지난 2005년 2,452만 6천명에서 이번에는 2,155만 4천명으로 297만 2천명이 줄어들었고, 총 인구수에 비해서도 종교인 비율은 52.9%에서 43.9%로 9.0%포인트 줄어들었다. 특히 40대에서 13.3%로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다음이 20대로 12.8%가 낮아졌다. 이번 조사가 전수 조사가 아니라, 전국의 20% 표본 가구에 의한 조사라는 한계가 있지만, 기독교로서는 전체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그 숫자와 비율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다. 이를 통하여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 보다는 책임감이 더 늘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 겸손하고 낮아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사회적 책임을 더 감당하되,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고, 약자와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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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2
  • 종교개혁 500주년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년이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다.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뜻을 재발견하려는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오늘의 기독교가 있게 한 직접적인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여러 가지 기념비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기념을 위한 기념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초 종교개혁이 가졌던 슬로건을 되새기고, 오늘에 맞는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살려, 한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모토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성경만이 진리의 최종 권위가 되며, 그리스도 교리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오직 은혜”(Sola Gratia)이다. 구원에 필요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써, 인간의 행위를 선행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넷째는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인생의 죄 값을 치룬 것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덧입는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오직 주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이 된다. 구원의 시작과 완성은 하나님으로,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기독교는 지난 500년 간 이 종교개혁의 슬로건을 잘 지켜왔다고 본다. 그러나 점점 세태가 달라지면서, 이에 대한 도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경대로의 진리가 아니면,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할 수 없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에 주어지는 영적 과제는 역시 500년 전에 일어났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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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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