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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인권 선언’ 자제해야 한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약 3분의 1이 ‘인권 조례’나 ‘시민인권헌장’ 등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근거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따르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권고’를 하고 있는 반면에, 지자체들이 만드는 ‘조례’는 대부분 처벌과 강제성을 띄고 있어, 그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 성격의 ‘조례’를 만들려면,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법안이 있지도 않다. 그런데 지자체들은 앞 다투어, ‘조례’부터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모법(母法)이 없는데, 자법(子法)이 먼저 태어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참다운 인권을 위하기보다는, 특정 사안에 목적을 두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고, 대다수의 양심적인 국민들을 ‘역차별’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차별금지법’이 없어도, 국민들의 권익과 인권 보호는 문제가 없는데, 일부 서구 국가를 닮아가려니, 이를 서두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인권 조례’를 만들려는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인권’의 소중함과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인권’을 빌미로 서구 사회가 차용하고 있는, 비윤리, 비도덕적인 것까지도 그 범주에 넣어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가정을 해체하는 일들을 해야 하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아주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정부는 ‘적폐청산’을 주창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원하지도 않는 조례를 시의회가 몰래 만들어 놓고, 이를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적폐’가 아닌가? ‘인권’이 뭔가?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하는 것인데, 모법도 없는 조례를 만들어 놓고,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놓고,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 참다운 ‘인권’인지 묻고자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국민들이 반대하는데도 조례만 만들어 놓았다고 ‘인권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들은 시민들의 합의를 통하여, 대다수의 시민들을 위할 법과 행정을 펼칠 때, 그것이 진정한 선진 민주주의요, 인권이 중시되는 국가로 가는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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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26
  • 부기총은 감시 받아야 하는 기관이다
    부기총 정기총회가 16일 동래중앙교회 비전센터 4층 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감사보고에서 경상비로 6백 4십여만원이 흑자로 차기 이월하는 보고서가 총회에 올라왔다. 내용대로라면 지난 1년간 살림을 잘 살았다고 박수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 회원이 “회관 특별기금 3천만원 가운데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1천5백만원을 일시 차입한 부분이 상환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흑자라고 할 수 있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부기총 신문의 지출내역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감사의 부실보고로 인해 부기총 재정에 대한 의문만 품게 되었다고 참석한 대의원들은 말하고 있다. 총회시 39회기 대표회장은 “모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설교시간에 주장했다. 그 모 언론은 본보를 지칭하는 것이고, 보도 내용은 지난 호 광야의소리의 ‘현 체제를 6개월 더 연장’이라는 내용 때문으로 이해하고 있다. 현 집행부가 6개월 더 연장하기로 임원회가 결의했다는 내용인데, 이 내용은 자문회의에서 실무임원의 발언에서 나온 내용을 증경회장들이 본보에 제보한 내용이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모 실무임원이 증경회장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 아닌가? 또 본보는 “역대 어떤 집행부보다 임원 사임이 많았고, 소통도 잘 되지 않았으며, 언론사와 불편한 관계를 가졌던 집행부가 스스로 임기 연장을 꿈꾼다는 것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 아닌가? 4명의 임원이 사임하거나 참석하지 않고 있으며, ‘언론대책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집행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하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부기총은 앞으로 더 혹독한 검증과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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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26
  • 군대 내 동성애, 헌재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군대 내에서는 현역 장교와 부사관과 사병이 포함된, 동성애 문제가 불거져 장교가 실형을 받는 사건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군대 내 동성애를 막는 특별법이 있다. ‘군형법 제92조 6항’이다. 2008년 대법원에서는, "군형법의 추행죄는 군대의 성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조항으로, ‘항문성교’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 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위헌 소지’가 있느냐의 판단을 요하는 ‘위헌심판 제청’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 국민들로서는 어리둥절한 일이다. 헌법적 상황과 맞는다는 법률에 대하여서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벌써 2000년대에 들어와서만 네 번째이다. 지난 2002년, 2011년, 그리고 지난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위헌심판 제청이 있었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에 대한 심판을 한 바 있다. 지금까지 헌재는 모두 ‘합헌’으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올해 4월 인천지방법원의 이 모 판사가 다시 위헌심판 청구를 한 상태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교회언론회가 인천지법에 보낸 공문에서, 인천지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 한다’는 답변을 보내 왔다. 그렇다면, 헌재는 우리나라 헌법의 최종 권위자이며, 결정자인데, 헌재의 결정이 나온 지 불과 1년도 안 되어, 이에 불복하여 위헌심판 제청을 하는 판사는 무엇이며, 이를 심판하려는 헌재는 무엇인가? 헌재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일선의 판사들이 헌재를 뒤흔들어 보겠다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헌재와 법원은 답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법률이며, 그 법률의 모체가 되는 것은 헌법이다. 그런데 일선 판사들이 이를 스스로 의문시한다면, 국민들은 일선 판사들의 판결을 어떻게 따르고 신뢰하겠으며, 헌재의 결정은 어디까지 믿겠는가? 따라서 일선 법원과 대법원에서는 판사의 헌법적 권위와 독립성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판사로서의 소양과 책임에 대한 것부터 똑바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 헌재는, 헌재에서 결정한 헌법적 기준에 대한 결정과 심판한 사안에 대하여, 다시 묻는 것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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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12
  • 부기총 제40회 총회를 기대한다
    부기총 역사가 벌써 40년이 흘렀다. 오는 6월 22일 동래중앙교회에서 제40차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이번 총회를 통해 부기총이 새롭게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부산의 1800여 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동안 부기총은 지역복음화 보다 트리축제같은 상업적인 이벤트 문화사업에 더 몰두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 트리축제도 벌써 8년이나 됐다. 그동안 기독교의 세상적인 위상은 올라갔을지는 몰라도 복음의 순수성은 퇴색되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마음에 안든다고 언론을 길들이려는 작태는 한마디로 한심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세상은 이단과 동성애와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 성도들을 현혹하는 이단들과 하나님이 만든 아름다운 세상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동성애 세력이 정치권과 순수한 국민들을 현혹하고 미혹하는 상황이다. 1,800여 교회를 대변하고 교회의 권익을 위해 우선적으로 나서야 하는 부기총이 지난 1년 동안 과연 무슨일을 해 왔는지 한번쯤 돌아보고 반성하기를 바란다. 언론사들이 부기총이 발행하는 신문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한번쯤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성시화운동본부나 복음화운동본부가 발행하는 신문(회지)에 대해 언론사들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개인이 개인의 목적을 위해 신문을 발행한다면 언론사들이 왈가불가 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언론사들이 부기총 신문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성도들의 헌금으로 만든 신문이 특정인을 정치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너무 속보이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 아닌가? 비판하는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언론대책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든다는 것을 보면 현 집행부가 얼마나 소통을 거부하고, 일방통행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언론은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알려 드린다. 광복동 트리축제로 얻은 성과도 있겠지만, 이제는 트리축제를 전문 문화사역기관에 넘겨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보다 순수하고 전문 사역기관에 맡기는 것이 부기총의 권위를 더 세우는 일일 것이다. 부기총의 존재이유는 정관에 명시되어 있듯이 부산교계연합과 복음화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산의 1,800여 교회가 아닌 특정 개인의 정치운동 도구로 전락한다면 부기총을 더 이상 부산 교계의 대표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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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12
  • 전교조의 재합법화는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재합법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교조는 DJ 정부시절인 1999년 합법화 이후, 지난 2010년 고용노동부가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의 시정 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불복하였고, 오히려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시정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함으로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2012년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전교조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 고용노동부는 전교조를 ‘법외 노조’로 통보하였으나, 전교조는 다시 ‘법외 노조 통보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에서는 2014년 1월에 전교조에 패소를(1심), 2016년 1월 2심에서도 패소결정을 하였다. 그 사이 2015년 5월에는 헌법재판소마저도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근거인 ‘교원노조법 2조’(해고자는 노조 가입할 수 없다는 요지)를 ‘합헌’으로 결정하였다. 현재 이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촛불개혁 10대 과제’를 내세워 교원노조 재합법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과잉 친절이다. 지금까지의 전교조의 활동을 살펴보면, ‘지나친 정치 투쟁’으로 흘렀음을 볼 수 있다. 전교조는 지난 해 전국 대의원대회를 통하여 결의하기를, 교원노조법 개정, 교원평가 및 성과급제 폐지, 대학평준화 등 교육체제 개편의 ‘3대 사업’을 결의하였다. 거기에다 세월호 진상규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사드배치 저지,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에 적극적으로 투쟁한다는 목표를 공개하므로, 이것이 교육을 위한 교원 노조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에서 한껏 정치력을 발휘하려는 세력인지 모를 정도이며, 자기 정체성이 모호한 집단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졌다. 오죽하면, 전교조 내부에서조차, ‘정치 투쟁일변도로 민주성과 대중성을 잃어버렸다’는 자성과 함께, 새로운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정치권과 힘을 합하여, 재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 법치주의와 ‘준법정신’을 깡그리 무시하는 잘못된 처사이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단체로, 국민들과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먼저 준법정신을 실천하고, 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로써의 올바른 정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 전교조가 아무리 편향된 정치권의 힘을 믿고, 재합법화를 추진한다고 하여도, 대한민국의 국민들과 학부모들이 존재하는 한, 교육 현장에서 이념대립을 부추기고, 불법을 자행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만 내려고 할 때에는 국민의 저항은 커져 갈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혼란하고 무질서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기 영역에서의 성실한 역할은 도외시하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여, 지나친 자기주장들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전교조의 재합법화는 힘으로 몰아붙이려는 시도보다, 적절하고 적격한 자격과 교육자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먼저 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전교조의 재합법화는 신중히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지난 2014년 전교조의 법외노조와 관련하여, 1심 판결이 나왔을 때,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전교조가 ‘좋다’는 것에는 19%가 답을 했고, ‘좋지 않다’는 응답에는 48%가 동의한 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전전정부까지의 ‘적폐’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런 정부의 정책에 맞게, 전교조는 적폐 대상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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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나누는 5월이 되길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교회도 분주하다. 어린이 주일을 시작으로 어버이 주일, 그리고 스승의 주일, 성령강림절 외에도 스승의 주일, 부부주일 등도 지키게 된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한달을 보내게 된다. 다람쥐 쳇 바퀴 돌 듯 행사는 분주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는지 한번 쯤 고민해 봐야 한다. 무엇이 어린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어른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또 교사들과 부부를 위해 어떤 것이 좋은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행사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일이 되기를 바란다. 또 기독교인들이라면 5월의 숨어있는 날들도 되새겨야 한다. 5월 다양한 날들에 묻혀 무관심으로 지나치는 날이 있다. 바로 입양의 날(11일)과 실종아동의 날(25일)이다. 입양의 날은 건전한 입양문화를 정착시키고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제정한 날이다. 어린이에게 믿음의 가정을 심어주기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날이다. 또한 1983년 제정된 세계 실종아동의 날은, 국내에서는 2007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해 매년 5월 25일 실종아동에게 관심을 갖고, 실종아동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날이다. 실종아동의 안전한 귀가를 바라는 희망의 상징으로 ‘그린리본‘ 캠페인을 실시하여 실종아동에 대한 인식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두 날을 포함해 5월 22일 가정위탁의 날도 마찬가지지만, 행사 속에 지나쳐 가는 날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치는 날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까지. 많고 많은 날들 속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날은 없는지, 한번쯤 내가 겪고 있지 않는 고통이라도 분담해 나눌 수 있는 5월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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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5
  • 제19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즈음하여
    제19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왔다.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들은 개혁과 진보정권을 선택했다. 우선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축하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는 ‘적폐청산’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박근혜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을 청산하고, 국가다운 국가를 세울 것이라는 주장으로 선거에 임하여,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런데 국민적 지지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의 중요성보다는 박근혜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국민들의 지지는 언제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거기간 중에 쏟아낸 정책공약을 잘 실천하고, 외교와 안보 등 다방면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앞날은 순탄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우선 국가안보 문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노골적이고 점증(漸增)하는 북한의 핵위협은 지금까지의 위협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국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여, 시급히 조처하고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핵 위협 대응 등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 한 것이 사실이다.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에 대하여도 불신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이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정최고 책임자로서, 국군 통수권자다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겠다,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고 쉬운 것이 없을 것이다. 또 미래세계, 국제관계, 특별히 경제문제는 한 순간의 방심도 위험하다. 특별히 기업들이 안심하고 기업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와 간섭이 아닌,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통합의 대 리더십이다. ‘보수를 불태운다든지’, ‘보수를 궤멸시켜야 한다’는 발언들은 선거 구호일 뿐이기를 바란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국민보다, 다른 후보를 지지한 국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이념진영’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통합하고, 국론을 하나로 만드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정부는 국민을 국민답게 하고,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켜가는 정책을 펼쳐가기를 기대한다. 관련하여,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우선이다. 기독교계와 양심 있는 국민들이 반대하는 ‘동성애 옹호정책’ 이나 ‘차별금지법’ 등의 정책시도는 가정과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삼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의 심한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결정되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국민들도 국가의 바른 정책에 대해서는 협조하고 협력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도 국가의 발전과 국가적 안녕을 위해서라면, 적극 협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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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5
  • 장애인에게 관심을....
    시대가 흘러갈수록 ‘복지’가 강조되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아직도 거동하기 불편한 현실이다. 아직도 계단은 많고 대중교통 이용하기도 불편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것은 여전하다. 교회도 이런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에 맞춰 교단마다 장애인의 주일을 지키기도 하지만, 사실상 장애인의 주일을 지키는 교회는 드물고, 관심도 저조하다. 더구나 지금은 모든 관심이 ‘대선’에 쏠려있다. ‘대선’이라는 블랙홀 때문에 금년 장애인의 날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부활절을 지내며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기억할 때, 모든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에게 귀천이 없는 것이 기독교의 사상이 아닐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성하지 못한 장애인들 즉 눈 멀고, 귀 먹고,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피부에 병이 난 장애인들을 위해 오시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장애현상을 친히 짊어지시고 간고를 많이 겪었고 질고를 아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모든 병과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동자엔 하나님이 하실 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자신의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강함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장애인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복지 정책을 내세운 후보들도 있다. 과거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내세웠지만 과연 얼마나 지켜졌는지 의문스럽다. 태어나면서 장애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장애를 얻는 경우가 더 많은 세상이다. 장애인들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 또한 잠재적 장애인이란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랑, 나눔, 헌신을 강조하는 교회가 여전히 장애인들이 함께 하기엔 불편한 곳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들은 육체가 조금 불편한 장애를 가졌으나, 우리는 마음에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섬겨야 하는데도 마음이 삐뚤어진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닐지 고민하고 고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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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7-04-27
  • 새로운 지도자 선택을 위해 기도하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한 주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그야말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이다. 원래대로라면 금년 12월이 대선이겠지만 이른바 장미대선이라 부리며 5월 9일에 치러진다. 우리는 지금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시시때때로 국제정세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다. 위로는 북핵 위기와 북의 핵실험으로 인해 미국, 중국, 일본이 국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가의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우리는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국민적 책임이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도 국가 못지않게 중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세속화와 이단 사이비가 극에 달하고, 교회 안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빛과 소금되지 못하고 오히려 제2의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국가적, 교회적 상처투성이 현실에서 이제는 다시 회복의 길을 가야 한다. 국민들이 이제는 정신 바짝 차려 정직하고 올바른 대통령을 선택해야한다. 이제 이렇게 기도했으면 한다. 모세와 같은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 시므이를 용서했던 다윗처럼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지도자, 솔로몬과 같이 어려운 경제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도자, 다니엘과 같은 깨끗하고 정직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길 원한다고. 그래서 통일 한국의 문을 열고 4차 산업의 동력을 이끌 수 있는 참신한 지도자를 선택되길 바라고 함께 기도하자.
    • 오피니언
    • 사설
    2017-04-27
  • 부활절, 새롭게 도약하자
    만물이 생동하는 봄, 우리는 또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됐다. 죽음의 권세를 박차고 일어나 생명의 불꽃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우리는 다시 경험하게 된다. 부활절의 의미가 늘 새로운 것은 비단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부활절을 계기로 이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나라 안팎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탄핵정국에서 이제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시대 위정자들은 우리 유권자들을 말로써 현혹하고, 나중에는 큰 상처를 안겨 주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죽음 가운데서 새 생명을 잉태해낸 부활의 역사를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차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이 땅에서 부활의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배려였을 뿐 아니라 모두가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부활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소수의 남은 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인다. 부활은 영혼을 새롭게 하고, 육체를 새롭게 하고, 삶을 새롭게 하고, 역사를 새롭게 하며, 자연을 새롭게 하는 생명을 드러내는 단어이다. 옛 것을 다시 형상화 시키는 것이 부활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거듭남을 입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것이 아닌 옛것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자. 부활의 의미를 무엇보다 제대로 정립해야하는 기독교가 진정한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 기독교가 서야 한다. 부활을 맞아 우리가 먼저 의식을 깨어 구태의연한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 부활의 참 의미를 되새기자.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위대한 미래를 건설할 것이다. 옛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도약하고자하는 우리들의 진정한 소망은 이 시대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건전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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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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