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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칼럼] 직책 보다 중요한 부름 받은 감격
    제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열심은 특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을 입학한 후 유학을 다녀왔으면 지금의 저는 결코 아닐 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신학교로 갔고 백암교회를 개척하며 온갖 야성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의 저로 서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저는 우리 교회 목회하기도 버거운 사람인데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섬기는 것은 특별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무차별한 공격을 받고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코로나19를 맞아서 최대 위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선제적 대응을 했으면 좋았었는데 아쉽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반달리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어버렸고 예배가 셧다운이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온라인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만, 현장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아닌 가상 공동체의 이름으로 계속 가고 있습니다.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였는데도 예배가 제대로 회복된 교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제가 책을 내고 세미나를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교회와 몇 교회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예배가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이건 저하고 몇 목사님들이 의기투합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일보 같은 언론사와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일은 한국교회 대표연합기관인 한교총을 통해서 주도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전 처음으로 한교총 상임회장단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을 했습니다. 물론 그러기 전에 몇 교단장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려서 설득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D-day를 선포하고 스팟 광고도하고 교계 신문은 물론 일간지까지 광고를 내서 이 날은 한국교회가 새 출발하고 예배가 회복되는 날이라고 알려야 합니다. 마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감격의 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일깨우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한국교회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저는 간절한 의지가 담긴 발언을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은 교단의 총회장도 아니고 연합기관을 대표하는 목사도 아닙니다. 우리 교단의 부총회장이라고 하지만 부총회장은 연합기관에 가서 발언을 할 위치도 못 됩니다. 그래서 사회정책위원장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간곡하게 발언을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집회가 먼저 회복 되어야 그 다음에 중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행히 연합기관 대표분과 교단장, 총무들이 허락해 주셔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그분들과 악수를 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총회장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편안하게 살 때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극성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몇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미친 사람, 극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소목사님께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회의를 다 마치고 올라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무엇인데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 걸까. 나는 아직 연합기관장도 총회장도 아닌데... 그러나 아니야. 직책이 있어야 일 하나? 직책 보다 중요한 것은 부름 받은 감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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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 [성서연구] 무엇을 가질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메시아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 제자를 세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제자를 세우는 데는 모든 것을 쏟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즉시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자를 불러 훈련하고 세우는 데는 공생애 기간 전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키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랑의 수고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동반하여 다니시고,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장 실습도 보내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보내셔서 실습하게 하신 대목입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을 보면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라고 하셨습니다. 두 명씩 짝을 이뤄 실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하십니다. 예배당에 모여 가만히 앉아 말씀만 듣게 하시지 않고,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나아갈 때 가지고 가야 할 것과 가지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8절을 보면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라 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엔 양식, 배낭, 전대, 돈이 필수적인데, 이것들을 가지지 말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뒤집으면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한 일은 오늘날도 가난한 사역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역자가 부요하면 주님께 매달리기보다는 가진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기도가 간절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역자들이 주님께만 매달리길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7절 후반부를 보면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양식, 배낭, 전대, 돈은 없어도 영적 권능은 가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오늘의 사역자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역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진 게 점점 많아집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교회가 주는 신수비도 더 많아지고, 생활 환경도 좋아지고, 교계에서의 직함들도 많아집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여행과 취미생활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말씀과 기도보다 취미와 교양에 더 매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바쁘고 가진 것은 많은데, 권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런 것들이 많을수록 권능이 위축될까 염려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부르짖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 갈릴리 등에 너희가 머물 집들과 재물을 준비해 두었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권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최근에 엘리사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람의 군대장관으로 나병환자였던 나아만이 왕의 친서를 들고 이스라엘에 와서 병을 치료해 주도록 요구했을 때, 왕과 신하들은 전쟁을 위한 트집일 뿐이라 여겨 깊이 탄식했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 했고, 그를 치료했습니다. 엘리사에게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당하는 위기들을 보면서 우리의 능력 없음을 탓하게 됩니다. 신학과 프로그램과 정책들의 도움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권능입니다.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주님의 권능으로 무장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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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 [시사칼럼] 학교에 가고 싶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모처럼 위층 사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 “학교 가고 싶어요. 선생님도 보고 싶고 애들하고 놀고 싶어요.” 아침 등교 시간마다 엄마 손에 붙들려 억지 발걸음을 떼던 꼬마였는데, 뜻밖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파안대소하고 말았습니다. 학교란 어떤 곳일까, 이번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입니다. ‘학교란 가라고 하면 가기 싫은 곳이고, 못 간다고 하면 가고 싶은 곳이다.’ 코로나 판데믹(pandemic)으로 인해 사상 초유의 장기 휴교 사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갈 길이 급한 고등학교 3학년부터 등교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학생들은 격주 혹은 자율 등교나 오전오후반 수업을 체험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파김치처럼 늘어져서 오늘 하루만 학교 안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이라도 생각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막상 못 간다고 하면 학교만큼 그리운 게 또 있을까요? 1975년 4월 8일, 고려대학교에 휴교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학교 내에서 일체의 집회와 시위를 금하고, 이를 위반한 자는 처벌하며,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에는 병력을 사용하여 학교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 수색할 수 있다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였습니다. 고려대생들은 반발하면서, 학교 진입을 시도하는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으며 외쳤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조국이 울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우리의 대학이 통곡하고 있다... 자유, 정의, 진리의 광장으로 달려오는 우리의 걸음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막힐 수 없습니다...”(고대신문사).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그래서 더욱 자유와 진리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학교, 그 때는 그 누구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도 뼈저리게 느끼지만, 잃어버린 다음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일상이 얼마나 많습니까? 학교도 그런 일상입니다. 그 전후에도 휴교 조치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1980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광주에서는 5월 20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모든 학교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확대된 비상계엄 때문에 모든 대학교는 이미 휴교 조치가 내려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갇히고 거리에서 숨죽여 있었습니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때 수학여행을 보냈다가 300명 넘는 학생들을 잃어버린 안산 단원고는 일주일 간 자체 휴교를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 아이들은 얼마나 집을 그리워하고 학교를 그리워했을까요?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대한민국의 ‘휴교’는 새로운 사태를 직면하게 됩니다. 6월 한 달 동안 적게는 수백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소의 학교가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학교들이 한 동안 휴교했을 뿐만 아니라 수능시험까지 한 주 연기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휴교 사태를 낳았습니다. 2월 20일부터 시작되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거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일부 시도는 휴교 조치가 해제되어도 당분간은 현장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할 예정이며, 초등학생은 1주일에 한 번 이상 등교 가능하고 중학교는 1주일에 한 번 이상 등교 할 것 등 세분화된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란 무엇이며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장 자크 루소가『에밀』에서 남긴 말입니다.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나의 원칙이며 교육에 접목시켜야할 핵심이다.” 수업의 자유, 학습의 자유, 교육의 자유, 대학의 자율권, 학문의 자유 등이 속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주일학교들도 속히 재개되기를 바라면서, 이번 기회에 ‘아, 교회 가고 싶다!’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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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 [6.25동란기 부산지방기독교] 전쟁의 발발과 전선의 확대
    <6.25 사변 70주년을 맞으면서 ‘부산지방 초기 기독교 이야기’는 잠시 멈추고 오늘부터는 전쟁 중 부산 지방 기독교의 여러 측면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흔히 6.25 동란, 6.25 전쟁, 혹은 한국전쟁 등으로 불리는 민족상쟁의 사변(事變)은 우리 민족의 일대 수난이었다. 해방된 지 불과 5년만인 1950년 6월 25일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휴전하게 되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계속된 전쟁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와 함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이후 남북한 간의 대립과 갈등을 초래했다. 양측 간의 불신과 대립은 지난 70년의 아픈 역사를 이어왔다. 물론 전쟁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1945년 이후 계속된 냉전체제와 미국과 소련, 중국 간의 대립과 패권주의의 영향이 컸다. 해방 후 좌우익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1948년 4월 3일에는 제주도 4.3사건이, 그해 10월 20일에는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게릴라전을 포함한 정치적 대립으로 약 10만 명이 희생자가 생겨났다. 1950년 5월 30일에는 제헌국회의 임기가 끝나고 총선이 실시되었는데, 전체 의석 210석 중에서 이승만의 집권세력은 겨우 30여석을 얻는데 그쳤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126명이 당선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불안정의 반영이었다. 당시 남한의 군사력은 열악했다. 병력은 북한군 201,050명의 절반인 103,827명에 불과했고, 북한의 항공기는 226대였으나 우리는 22대, 북한의 함정은 110척이었으나 우리는 겨우 36척에 불과했다. 북한의 화포는 2,492문에 달했으나 우리는 절반인 1,051문뿐이었다. 북한은 242대의 전차가 있었으나 우리에게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절대적인 열세였다. 6.25 직전 전방 지휘관들은 대거 교체되었고, 6월 23일 자정을 기해 비상경계령도 해제되었다. 농번기라 되었다는 이유에서 6월 24일 토요일 오전 일과를 마친 병사들에게 외출과 외박을 허락했다. 6월 24일 밤 육군회관 낙성식에 참석한 전후방부대 지휘관들은 저녁 늦게까지 파티를 지속했다. 응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국외적으로 볼 때, 1949년 8월 소련은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고, 그해 10월에는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는 김일성 정권에 힘을 부여하였고, 한반도에서 패권을 노리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은 깊어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Dean G. Acheson)은 1950년 1월 12일 연설에서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다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군사적 대립이 있더라도 미국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였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 속에서 긴장은 고조되었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 한반도 전역에 내리던 비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대한 불길한 징조였다. 인민군은 6월 26일 임진강 일대와 의정부 및 춘천을 돌파했다. 27일 밤 북한군은 미아리 삼거리에 설치해 두었던 장애물을 밀어제치고 길음교를 통과하고 서울 도심으로 진출했다. 개전 3일 만인 6월 28일에는 서울을 점령했다. 서울을 점령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3일 7시간 30분이었다.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교를 폭파했고, 이승만 정부는 서울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였다. 남침 하루만인 6월 26일 오전 4시(한국시간)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 이사회가 열렸고, 북한이 침략행위를 중단하고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를 무시하자 유엔 안보리는 28일 유엔 회원국들의 해,공군을 통한 한국지원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한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6월 29일 한국 전선을 시찰했고, 7월 7일 개최된 안보리는 유엔군 사령부 설치안을 가결시켰고, 10일 맥아더 장군은 공식적으로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로서 거의 90%가 미국 군인이었지만 16개국의 군인으로 구성된 유엔연합군이 창설되었다. 7월 6일 인민군은 오산 부근에서 미국 제24사단과 첫 교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미24사단에 치명타를 가했다. 7월 19일부터는 대전 공략에 들어갔고, 7월 24일에는 대전을, 7월 말에는 목포와 진주를, 8월 초에는 김천과 포항을 점령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군은 8월 3일 낙동강 철교를 폭파하고, 마산-왜관-영덕을 잇는 워커라인이라 불리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8월 말 북한군 주력부대는 낙동강까지 진출하면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전선은 교착상태로 들어갔다. 북한군은 전쟁 개시 한 달 남짓한 기간에 낙동강 남서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남한 지역의 90% 이상, 인구로는 92% 이상을 수중에 넣었다. 이제 부산은 마지막 피난지가 되었고,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의의 피난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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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2020-05-27
  • [교회학교를살린다] 다음세대를 위해 사이버 세상을 가꾸어라
    요즘 우리의 세상이 B.C와 A.C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즉, 비포 코로나와 애프터 코로나로 나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회학교 입장에서 보면 매우 좋지 않은 징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 모이지를 못하고 있다. 나라에서 생활방역으로 지침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들이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고, 그래서 신앙인들의 활동 역시 여전히 움츠러들어 있다. 어떻게든 모여야 뭐라도 해볼 텐데 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 될 거라는 예측 때문에 더더욱 힘이 빠질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맥 빠져하며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이 시점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을 좀 더 넓혀보면 신앙교육에 있어서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앙교육의 영역을 보다 넓게 생각하자. 그저 교회에 와서 한 시간 앉아 있다가 가는 절대적으로 적은 신앙교육시간과 공간을 넓혀보자.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살아가는 모든 공간이 신앙의 장이고 모든 시간이 신앙의 시간이라는 전제 하에 다시 신앙교육을 돌아보자. 그중에서도 금싸라기 땅이 있다. 바로 사이버 공간이다. 이 가상의 공간, 사이버 세계는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며 엄청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우리의 수많은 다음세대들이 기성세대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을 구축하며 신앙적 가치관 없이 단지 눈앞의 즐거움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 모두는 알게 되었다. 이 가상의 공간이 끔찍한 범죄와 은둔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뉴스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사이버 성범죄 사건의 주범들은 대부분이 십대 때부터 사이버 상에서 관련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마냥 해맑고 건강하게 자라야할 그들은 이미 십대 때부터 사이버 세상 속에 자신만의 범죄 공간을 구축하며 수많은 이들의 몸과 영혼을 갉아먹으며 이 사회에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왔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살아가고 있는 광대한 공간인 사이버세상을 내버려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이 사이버세상을 다음세대들이 건강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야 할 것이다. 이 공간은 아마존 밀림과도 같아서 우리가 잘 가꾸기만 한다면 신앙생활의 보고가 될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많은 교회들이 인터넷 예배를 드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일어난 한시적인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이들을 위한 교회의 필수 서비스가 될 것이다. 미래 사회는 편의성이 더 강조될 것이다. 단지 편리함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겠지만, 교회가 신앙의 플랫폼이 되어서 사이버세상을 통해 다양한 양질의 신앙 컨텐츠를 각 가정과 개인에게 배달해주는 게 중요한 사역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성경 한 장씩 설교를 전달해주는 일도 있고, 예배 영상과 활동 업로드,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활용한 소통의 장 등 다음세대를 위한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에 나와 있는 앱이나 기독교방송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이제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양질의 생수를 구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다. 양질의 생수와 같은 컨텐츠를 계발하는 일이 또한 교육지도자들의 몫이다. 앞으로 이 사이버세상은 점점 넓어지면 넓어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활한 공간을 어떻게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갈지도 중요한 일이다. 하나의 영상이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 요즘에 정말 좋은 영상, 좋은 자료, 좋은 컨텐츠 하나를 계발하고 보급하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기성세대 중에는 첨단의 사이버 세상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 세상에 대한 이런 저런 우려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어떤 교회는 영상예배가 교인들의 실제 출석율을 저하시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상 미래 사회는 사이버 세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 모두는 그 세계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다음세대에게는 사이버 세상과 미디어가 일종의 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이버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참여하며 소통의 폭을 넓혀감으로서 그들이 이해받고 존중받는 건강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사이버 세상이 익숙한 그들에게 배우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사이버 세상이 다음세대와 기성세대를 연결해주는 의미 있는 신앙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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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05-27
  • [은혜의말씀] 생각과 결심(빌 4:8-9)
    우리의 생각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기 운명은 <생각>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위대해지고 유치해지는 것이 그 생각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1. 좋은 생각 좋은 결심을 하라! 생각은 창입니다. 생각의 창을 통하여 좋은 것을 바라보면 좋은 일이 생기고, 그 창을 통하여 나쁜 것을 바라보면, 불평이 생깁니다. (빌 4:8)과 같이 무엇에든지 진실된 생각을 하면 진실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고상하고, 옳은 생각을 하십시오! 순전하고 정결한 생각을 하십시오! 어디에 있든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칭찬받을만한 생각을 하십시오!. 우리가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결심하면 하나님이 생각과 뜻을 이루어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2. 나쁜 생각, 나쁜 결심은 수술해 버리십시오! 우리가 생각과 결심을 할 때, 수술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쁜 생각, 나쁜 결심>입니다. 사람이 왜 실패합니까? 나쁜 생각을 제거해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잠4:20-27)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부정적인 말, 파괴적인 언어를 버려야 합니다. 말을 축복의 언어로 바꾸고, 먼저 생각에서 나쁜 것을 수술해 버려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생각을 이식하십시오! 인간적인 결심만 가지고는 결코 참된 행복과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55:7-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이식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이식하는 순간부터 마귀는 놀래 도망칩니다. 4. 생각하고 결심한 것을 끝까지 이루십시오! 요셉은 소년시절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대한 꿈을 고난 중에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 결국 이루었습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했으며, (고전13:7)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무리 좋은 생각과 꿈도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면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 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결심이 여러분의 일생을 좌우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지 마십시오! 이왕이면 좋은 생각, 좋은 결심을 하시되, 나쁜 생각은 수술해 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을 이식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고 결심한 것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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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 [의학칼럼] 녹내장 검사
    ■녹내장 검사가 중요한 이유? 녹내장은 말기까지 거의 증상을 느끼지 못합니다.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조기 지단과 치료가 녹내장으로 인한 실명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녹내장 검사 방법은? 녹내장은 어떤 한 가지 검사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검사를 통해 비교, 대조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녹내장을 진단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가 필요합니다. 안압, 전방각경, 시야검사, 시신경검사, 시신경 빛간섭단층촬영 등이 필수적이며,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시신경의 변화를 분석해 점차 조기에 녹내장의 발생 및 진행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 검사 과정은? 제일 처음 병원에 방문하게 되면 문진을 진행하게 됩니다. 과거병력, 약물사용여부, 가족력, 전신증상, 생활습관 등 전반에 걸친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증상이 있을 경우 증상의 발생 시기와 빈도, 심한 정도를 확인하고 녹내장과의 연관성 등을 조사합니다. 또한 급성 녹내장의 증상인 심한 눈의 통증과, 시력감소, 충혈, 구토, 두통이 동반되는 증상이 있는지 문진을 통해 확인합니다. ■ 문진 후 진행되는 검사는? 안압검사를 진행합니다. 안압은 녹내장 발생의 매우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측정해야 합니다. 첫 진찰시와 주기적으로 관찰시 항상 필요한 검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녹내장 환자 안압측정의 표준방법인 골드만 안압계를 이용하여 검사를 진행합니다. 세극등 현미경을 이용하여 각막 및 홍채의 모양, 전방각 깊이 등을 측정하는 전안부 검사도시행하는데 전방각경 검사를 통한 전방각의 상태를 측정합니다. 또한 전방의 염증 유무를 살펴 이차 녹내장을 감별합니다. ■ 시신경 검사도 따로 있나요? 시신경 및 망막신경섬유층의 이상을 검사하는 것이 시신경 검사입니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손상되어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질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신경 검사 역시 필수이며, 안저사진 또는 세극등현미경이라는 장비를 통해 시신경의 형태를 검사하여 녹내장성 손상이 발생하였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시신경의 기능을 검사하는 표준화된 방법인 시야검사도 함께 진행합니다. 녹내장 환자에서 시신경에 손상이 생긴 후에 시야 이상이 발생하기에 시야검사는 녹내장의 정도나 진행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매우 중요한 검사입니다. ■ 그 외 진행되는 검사는? 안압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배제하기 위하여 각막두께 검사를 시행하기도 하고, 초음파생체현미경이나 전안부 OCT 등을 이용하여 폐쇄각 녹내장의 진단유무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녹내장 발생이나 진행에 매우 중요한 신경섬유층을 측정하기 위해 빛간섭단층촬영기 등의 검사도 필수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안축장 측정 검사와 더불어 일반적인 내과 검사도 함께 시행합니다. ■ 당부사항? 녹내장으로 진단된 환자는 평생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때문에 진단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정밀하고 정확한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진단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6개월에 한번 씩 정기적인 안검진이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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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7
  • [목회자칼럼] 내리 사랑 올리 신앙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장로로부터 들은 것이 있다. 농사도 배워야 되니 알도록 배우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내리사랑 올리효도였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평생을 투자하고 사랑을 쏟아붓는다. 자식 키워봐야 부모마음을 아니까 그 자녀들이 자라서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게 된다. 사랑은 흐름이고 신앙도 흐름이다. 사랑은 자식에게로 내려가고 신앙은 위를 향한다. 주의 은혜는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은택을 이룬다(시103:2). 기도는 향연처럼 올라가(계8:4) 주께 상달되고, 찬송이 하늘에 사무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 날개침 같이 올라간다(시103:5, 사40:31) 사랑은 물 흘러가듯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이다 물 특징은 아래로 흘러 내려가고, 무색무취하지만 물리지 않는다. 물은 아무리 틀어막아도 차오르면 흘러넘친다. 물은 흘러가면서 산천초목을 푸르게 한다. 사람이 밥은 안 먹어도 살지만 물을 못 마시면 죽는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고인물은 반드시 썩는다. 그래서 흐름을 맑고 힘차게 해야한다. 건강한 사람은 혈행이 고르다. 피가 맑고 잘 흘러가는 것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것은 그 힘이 아니라 잦음 때문이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쓴물을 흘리지마라. 흉보면서 배우고 싸우면서 정든다. 잡초는 안심어도 난다. 나쁜 것은 안 가르쳐도 잘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인물난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는 코로나도 전염이 잘 안된다고 하니 환기와 환풍이 필요하다. 성도는 영을 흐리게 하는 곳에 가지말고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은 감정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피하는게 낫다. 모든건 기분이다. 기분이 상하고 흥이 안나면 한이 맺힌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것과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다(렘2:13). 광염교회 조현삼목사는 긴급 구호팀을 운영하면서 파이프 행복론을 외친다. 교회가 어려움 당한자를 찾아가서 사랑과 물질을 흘려보내는 교회가 복되다는 것이다. 필자의 교회는 10년이상 밑반찬 도시락을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에 나누었다. 이번에 부활의 기쁨을 어려움 당한 이웃에게 사랑의 나눔박스로 전달하였다. 작은교회 월세를 돕고, 고립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통행금지와 폐쇄조치가 된 아프리카에 옥수수가루와 의료보호구세트를 보냈다. 우리나라 부자의 3대 특징은 식솔이 많아서 그릇이 많았다. 경주 최씨부자는 300년동안 오래 갔다. 그리고 진정한 부자는 난리때에 진가가 드러났다. 근동 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였다. 코로나 사태는 암울하지만 막힌 동굴이 아니라 지나가는 터널이다 사람은 인생막장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아야 된다. 쓰임받은 사람들의 특징중에 하나는 순수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쓰시는 것이다. 나쁜일은 속히 지나가고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길게길게, 곱게곱게, 넓게넓게 되어야 된다. 주께서 고통의 때는 감해주시고, 은혜의 때는 지속 시켜주신다. 우리나라 4대강인 섬진강의 발원지는 데미샘이다. 그 산봉우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서 물길따라 꽃길따라 봄길따라 오백리 물길을 만들고 열두개 시군을 거쳐서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저주는 삼사대까지, 축복은 수천대까지 이르른다(출20:5~6).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끊어질듯하나 도도히 이어진다. 끊임없이, 거침없이, 막힘없이, 중단없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아이야의 축복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윗물은 더러워도 조상 탓하지 않고 그가 복의 근원이 되었기에 현재 아브라함의 자손은 세계에 37억이나 된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낳았고 이삭은 환갑에 아들을 낳았다. 늦었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삭은 번제단을 통과한 순종파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아들 이삭을 번제를 드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15세였고 이삭은 15세였다. 제법 건장한 청소년이었지만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였다. 태생적인 연약함이 있었지만 이삭은 다투지 않고 쫓겨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팠기에 르호봇의 복을 받았다(창26:22).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지났으나(창47:9)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 그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샘터를 이룬 순정파다(창29:20).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49:22). 부부간의 사랑과 존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같다. 가정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따르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은 내리사랑 올리효도, 올리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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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3
  • [통일칼럼] 도둑같이 임할 통일을 대비하자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살전5:2)” 올 것이라고 했다. 통일의 관점에서 볼 때 독일통일이 도둑같이 임한 케이스다. 1989년 11월9일 저녁,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선전 담당 비서였던 귄터 샤보브스키는 동독주민의 서독여행 자유가 곧 있을 것이라는 내각 결의 내용을 기자회견 하고 있었다. 그 때 이탈리아의 안사통신 기자가 “비자발급은 언제부터인가?”라고 질문을 하자, 자료를 뒤적이며 머뭇거리던 샤보브스키는 확인도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내가 알기로는…지체없이 지금부터(As far as I know … effective immediately, without delay)”라고 답했다. 사실 비자발급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었다. 이탈리아 기자는 곧바로 본국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긴급뉴스를 타전했고, 이탈리아는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이 소식을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 뉴스를 듣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인용보도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기막힌 오보가 오보를 낳았지만 결과적으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을 통일로 이끌었다. 도둑같이 찾아온 통일이었다. 한국의 독립도 이와 유사했다. 한국에 일본 식민통치가 한창이었던 1943년 11월22~2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루즈벨트),영국(처칠),중국(장제스) 세 나라 대표들은, 일본 패전 후 적절한 절차에 따라 한국에 자유와 독립을 부여하자는 의제를 최초로 논의하였다. 그 후 소련의 얄타회담(1945.2.4.-11), 독일 포츠담회담(1945.7.26)에서 미국, 영국, 중국 대표들은 카이로회담 내용을 재확인하였다. 하지만 막상 한국이 독립될 날은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두 방(히로시마,나가사끼)의 원자폭탄을 맞고 일본천황이 항복선언하던 1945년 8월15일이, 한국의 독립기념일이 되어버렸다. 도둑같이 찾아온 해방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공산주의자 김일성은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휴전선을 넘어 도둑같이 남한을 침공했다. 주말 휴가 중이었던 남한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낙동강벨트까지 후퇴하였고, 겨우 서울을 회복한 후 70년간 분단상태다. 미국의 북한전문가 빅터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100%이지만, 점진적 통일은 힘들고, 어느날 갑작스럽게 성취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밀리터리 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른 시일에 북한정권이 붕괴될 것" 이라고 전망하였다. 독일통일이나, 한국해방, 그리고 김일성의 남침이 그랬듯, 통일도 도둑같이 올 것이다. 교회지도자들은 70년간 기도해 오고 있는 한반도 통일을 복음으로 선점하기 위해 메시지에 담아 진지하게 준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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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2
  • [서임중칼럼] 하나님 진노를 돌려야 한다
    민수기 11:1~2절에는 아주 의미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여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다. 그런데 그들의 영성이 잠을 자게 되니 악한 말을 하게 되고 원망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악한 말을 하고 원망하는 입술을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의 진을 사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의 중요한 것은 “백성이 부르짖으매” 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모세가 기도하니”라는 말씀이다. 백성이 “부르짖다”는 말은 ‘차아크’로서 이는 고통 중에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는 뜻이다. 그리고 모세가 “기도하니”는 ‘이트팔렐’인데 이는 “중재하다” “판단하다”라는 ‘팔랄’에서 유래된 말로 여호와께 절규하듯 간청하면서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불이 꺼졌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카오스현상이다. 5월이 되어도 우리들의 일상은 불편하고 무겁고 불안과 근심, 걱정과 아픔이 뒤엉킨 혼돈이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역대기하 7:13~14절 말씀이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리고 이어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라고 말씀 하셨다. 교회도 온라인 예배가 2개월가량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예배당에서 예배드림이 얼마나 좋았던가를 돌이켜 보면서 신앙생활을 새롭게 정돈하는 듯 했는데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다보니 마치 냄비안의 개구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1872년 ‘하인즈만’이 실험한 내용에 따르면, 개구리를 섭씨 21도인 물에 넣은 후, 37.5도까지 90분에 걸쳐 서서히 온도를 높였을 때, 개구리가 튀어나오지 않고 죽었다는 것처럼 이제 5월부터 코로나 19 방역대응이 생활방역으로 전환되어 얼마든지 예배당에 출석하여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 가다보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영성이 죽어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온라인예배를 실시하고 2개월이 지나 오프라인 현장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출석율이 엄청나게 떨어지게 된 것을 토로하는 상황을 듣고 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회안에서 온라인예배와 관련하여 찬반론이 일어나게 되고 본질을 벗어나 원망 불평이 일어나는 현상을 듣고 보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은 불평과 원망이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 마음에 감사한 것은 보지 못하게 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게 하고 원망하게 한다. 그것이 습관화되면 영적 지도자에게로 이어지고 결국은 하나님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처음부터 팔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영성이 죽어가면서 은혜와 감사함은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라가 모세를 반역한 것도, 발람이 나귀의 조롱을 받게 된 것도, 삼손이 소명도 비참한 말로를 당한 것도, 사울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한 것도, 웃시야가 말년에 나병환자가 된 것도, 서서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해 우리는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영성이 회복되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거룩한 삶의 절정이다. 그러기에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고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역설 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적 생활이 무기력해 진다. 신앙생활의 즐거움도 보람도 감격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영성이 잠들었기 때문이다. 죄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영성이 회복되면 삶의 모든 것이 생명력이 있게 된다. 그러나 영성이 잠들면 모든 것이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다. 찬송의 감동이 없다. 기도의 감격, 설교의 은혜, 헌금의 기쁨, 헌신의 열심, 예배의 행복이 없다. 억지로 찬송하고, 마지못해 기도하고, 설교를 비판하고, 돈 예기만 나오면 불평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바보스럽게 느껴지고, 형식적인 예배가 된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삼킬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이러할 때 마귀가 찾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가 이렇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 있겠는가만 영성이 잠들면 그렇게 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잠자는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영성이 잠들면 모든 것이 깨달음이 오지 않는다. 깨달음이 없으면 그것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다.(시편49:20) 시편 18: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힘의 원천이다. 기도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있는 것을 뜻한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닫힌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영성이 죽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잠자는 영성을 회복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노래하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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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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