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목회자칼럼]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는데…
    임종을 기다리는 시간, 어머니는 한숨을 몰아쉬면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외국에서 들어오지 못한 아들을 기다리는 것일까? 하루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보고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인데… 어머니는 아쉬움 속에 잠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여기고 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동을 하고, 저녁시간에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밤에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을 당연한 일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을 해보면, 어느 수필가의 말처럼, 내가 맞이한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갈망하고 기다린 내일이 아닌가? 일본 에세이 [종이학]을 지은 이무라 가즈키요는 일본 의과대학을 나와 내과 의사로 일하다 32세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사망 이유는 ‘섬유육종암’이 ‘폐암’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인데, 자신이 암이라는 것을 알고 죽음을 앞둔 시점에 남긴 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자신 스스로 병마와 싸우는 용기, 그렇게 살면서도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혼자 남을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 특히 자녀를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글로 잘 표현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 내 두 발로 마음대로 움직이고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 소리가 들리고 말을 하고 손으로 잡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 아프고 보니 이 모든 것이 감사와 소중함이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많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매일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직장에서 일과를 보내고 저녁에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돌아보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중환자실에 입원해 보면 감사이고, 은혜임을 알게 된다. 이번 봄에는 유난히 벚꽃이 아름답다. 연상홍이 붉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고, 바람소리를 듣고,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 행복 아닐까? CCM 가수 손경민씨가 노래한 행복이란 노래 가사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행복이라네 / 눈물 날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이라네” 당연함을 일상으로 알고 산 무지에서 감사함을 일상으로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자신도 모르게 불평, 불만을 품고 살아온 현실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동행이 말만 아닌 실재가 되어 질 때 우리 속에 참 은혜가 아닌가? / 항상 내 옆에 있는 아내와 남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은혜가 아닌가? / 내게 맡겨준 자녀가 있고 그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만으로 은혜가 아닌가? / 문제 많은 이 세상이 있기에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은혜가 아닌가? / 문제 많은 이 땅의 교회와 성도가 있어서 성령님이 지금도 역사하시고 계심이 은혜가 아닌가? 매일 반복되는 묵은 날,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새날(사43:19)을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이라는 최상의 선물을 받고 지금이라는 최고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자.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3-04-28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일제 하에서의 공산주의의 박해
    흔히 20세기 최고의 사건은 공산주의의 생성과 몰락이라고 말한다.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는 국가권력의 폭력으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엄청난 희생자를 양산하고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녹슨 이데올로기가 유독 한국에서는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고, 성경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벧전5:8) 있다. 공산주의는 비극의 역사였다. 스테펀 쿠르투아 등이 공동 저술한 <공산주의 흑서 The Black Book of Communism: Crimes, Terror, Repression>에 의하면 전 세계 공산국가에서 9천4백만 명 내지 1억 명이 이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기에 폴란드 출신 철학자 레작 콜라콥스키는 공산주의는 자유를 박탈하고 재산과 인간의 마음과 역사, 인간관계까지 국유화한 것으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악어’라고 말한바 있다. 한국에서 공산주의에 의한 폭력은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첫 희생자는 김이주, 박문기, 윤학영, 이창희 등 동아기독교 인물들이었다. 동아기독교는 지금의 침례교의 전신인데 이들은 한만국경지대라 할 수 있는 길림성에 파송되었는데, 1925년 9월 하순 공산당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들 기독교인들을 일본의 밀정으로 몰아 죽인 것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동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첫 번째 사례였다. 1932년 10월에는 간도 침례교회의 김영국(金榮國, 1884-1932) 장로와 김영진(金榮鎭, 1887-1932) 목사 형제를 살해했다. 함경북도 종성(鍾城) 출신인 김영국 장로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중국 북동지역에 마을을 건설하고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따 종성동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는 이곳에 침례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동생 김영진 목사와 함께 교회를 이끌고 있었다. 김영진 목사 또한 함경북도 종성 출신인데, 1919년 목사안수를 받았고, 간도지방에 이어 순교자 손상열 목사가 섬기던 자성군과 임강현 일대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그의 형 김영국 장로와 함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1932년 10월 14일 죽임을 당했다. 당시 함경도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30여 명의 공산주의자들이 10월 14일 종성동 마을을 습격하고 마을 주민들을 종성동 침례교회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신자와 불신자를 좌우로 갈라 앉히고 지금이라도 공산주의를 따르겠다면 살려주고 예수를 믿겠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이때 잡혀온 김영국과 김영진 형제는 공산주의 청년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구원 받으라고 했는데, 격분한 공산당원들은 김영진 목사를 끌고나가 피부 살을 벗기며 매질을 가했다. 이에 김영국 장로는 “내가 이 교회 책임자다”라고 말하면서 악행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도 동일하게 묶여 야만적인 고문을 당하고 표피를 벗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이 1932년 10월 14일에 발생한 탈피참살(脫皮慘殺) 사건이다. 이날 김영국 형제 외에 정춘보 집사 또한 신앙을 거부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총살되었다. 이보다 앞서 1931년 동만주 지방에서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교회당 13개 처가 방화되고 4명의 교인이 피살된 일이 있었고, 1932년 남만(南蠻)지방 장로교회에서는 25인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또 1931년 길림 부근에서 최태봉 외 일곱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1932년 9월에는 감리교 연회의 파송을 받아 만주 한인촌에서 선교하던 김영학(金永鶴) 목사가 시베리아에서 순교했다(민경배,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214). 그는 1930년 1월에 ‘반동분자’라는 죄명으로 소련경찰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 받고 중노동하던 중이었다. 감리교에서는 위험을 감지하고 귀국을 종용했으나 “한 사람의 신자가 남아 있는 한 남겠다”며 현지에서 일하던 중 강물에 빠져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무렵 연길현의 와룡동 교회는 공산당의 방화로 불탔고 교인들은 흩어졌다. 또 적암동 교회의 노진성 영수는 피살되고 교인들 역시 다 피난을 갔다고 한다. 교회는 두 번 씩이나 습격을 받아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1931년 가을에는 남만 길림 남방에 있는 쌍거천에서 김광욱, 최태봉 등 일곱 사람은 공산당 가입을 거절하여 잔혹하게 살해되기도 했다. 만주 한인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미국 북장로교의 핸더슨(현대선, L. P. Henderson, 1895-1932)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의 형 현거선(H. H. Henderson)과 동생 로이스 헨더슨(Lois E. Henderson)도 한국 선교사였는데, 동생 핸더슨은 1920년 10월 30일 내한하여 만주선교부로 배속되었다. 당시 만주지역은 한인 공산주의 세력과 반 기독교적인 급진적 민족주의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또 만주지역 토호세력과 마적 떼들이 활동하고 있어 교회와 교인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핸더슨은 1932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장로교 총회에 참석한 후 건강이 좋지 못한 부인과 자녀를 평양에 남겨두고 혼자 만주로 돌아갔는데, 10월 15일 저녁 홍경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을 들렀는데, 그때 일본군과 중국 반군 사이의 전투를 피해 마돌령으로 가던 중 10월 16일 새벽 1시경 피살되었다. 일본군은 마적의 소행이라고 하지만 분명치 않다. 혼란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현장에서 순교의 길을 간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04-28
  • [서임중칼럼] 신앙의 하이퍼골릭(hypergolic)
    화학 용어로 ‘하이퍼골릭(hypergolic)’이라는 용어가 있다. hyper는 치솟는다는 의미이고, golic은 연료를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가령 두 가지 화학 물질이 있는데 이들이 각각 따로 있을 때는 아무런 화학 반응이 없다. 그러나 두 가지가 접촉하게 되면 발화하거나 폭발한다. 우주선도 그 기본 발상은 ‘하이퍼골릭’ 현상에 의한 연소 작용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에서 착안되었다. 불기둥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초현실주의를 hyper-realistic이라 한다. 몹시 흥분한 상황을 throw a hyper라고 하고, 자녀교육에 있어서 과잉양육을 hyper-parenting이라 한다. 진정 차원 높은 신앙의 하이퍼골릭이란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의 불편한 긴 역사의 터널을 지나 미래지향적 정치 행보를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국민정서도 찬반론으로 뜨겁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운명적인 이웃, 싫다고 멀리 할 수도 좋다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나라다. 야권에서는 굴욕적이라고 피켓 시위까지 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일본과의 사이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지내야 할 것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적인 상황은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토의 넓이와 인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 일본을 앞서고 있다. 굴욕외교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다.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Spencer)는 그의 저서인 「개인 대 국가(The Man Versus The State)」에서 ‘Only the strong survive’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동학 난(東學亂)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죽창으로 총을 이길 수 없었기에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죽창(竹槍)이 아니라 반도체를 비롯한 한류문화(韓流文化)로, 역사적 원한이 아니라 미래적 역사관으로 일본에 맞서야 할 때다. 그리고 이겨야 할 당위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어붙은 한일관계 12년의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국제질서의 리더 국가를 향한 걸음을 행보했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군사적 강국으로 G8 가입의 문턱에 서 있다. 특히 장자가 갈파한 목계지덕(木鷄之德)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 국제정치의 하이퍼골릭을 생각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강단의 설교에서는 재림에 대한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 예배 찬양에도 재림을 고대하는 찬양은 부르지 않는다. 종말론 신앙이 내재되어야 오늘의 삶에서 올바른 신앙의 가치개념이 활력을 얻고 미래를 향한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데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원망과 불평, 비판과 정죄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는 산 위의 동네로, 등경 위의 등불로서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국내외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신앙과 삶의 괴리,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의 불일치에서 오는 갈등 등인데 참으로 부끄러운 말이지만 극단적 이기주의 현상이 빚어낸 결과이다. 교회가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사회는 어둠의 역사로 전락되는 것을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얼마든지 경험했다. 이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어둠의 현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앉아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으로 오늘을 엮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어둠의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인류 역사에 생명의 빛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 신앙생활의 생명의 ‘하이퍼골릭’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래서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빛의 삶이란 무엇인가? 빛이란 앞을 볼 수 있고 그래서 분간도, 분별도, 구분도 가능하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 그래서 정의와 사랑이 숨 쉬며 용서와 기쁨과 평화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빛이라 한다. 이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세 가지 전환점이 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 개인의 인생이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되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둠을 광명한 빛으로 전환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를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시킨 생명의 은총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은총을 경험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이렇게 고백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5:8-9).” 그렇다. 우리는 전에는 어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빛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이제 부활신앙으로 다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은 용서와 치유를 넘어 채찍을 드신다는 것을 깨달아 겸손히 엎드림으로 개인도 교회도 국가도 부활신앙으로 거듭나야 한다.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가 있다. 내용은 두 마리의 애벌레가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것인데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처음 애벌레였던 그들이 어둠과 고통의 시간을 지난 후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었다는 것으로 그것은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나비라는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부활의 의미를 새겨주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바로 이런 영적 불기둥이 솟는다. 마음이 뜨거워지며 희망과 용기가 생겨난다. 이것을 나는 ‘신앙의 하이퍼골릭’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가 혼자 있으면 아무 힘도 없지만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되면 발화한다. 희망의 불꽃이 일고 용기가 발화한다. 기쁨이 샘솟고 사랑으로 충일한다. 그리고 내 삶의 장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난다.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경험함으로 신앙의 하이퍼골릭 현상이 나를 통해서 가정과 교회와 정치와 사회문화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부활신앙인의 삶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3-04-05
  • [성서연구] 주님과 함께하는 부활
    본문은 성탄절에 자주 읽는 말씀으로써 성탄절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성탄절의 핵심 구절을 4월에 생각하는 이유는 성탄과 고난, 부활의 승리가 사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성탄의 핵심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영적 죽음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함>이 성사되려면 많은 과정이 요구됩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기쁨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할 시간만 기다립니다. 그래서 평생 함께하기 위해 결혼합니다. 그러나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어떤 목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것이라면 둘 모두에게 극악의 고통일 것입니다. 짝사랑하는 때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으로 달려가겠지만, 그 상대방은 괴로울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어떨까요? 임마누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짝사랑으로 성사되었습니다. 인류의 첫 죄악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에도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거나, 거짓 하나님들, 말하자면 우상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왔습니다. 자신들의 고통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데서 온 것임 알지 못한 채,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애타게 짝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탄생하셔서 사람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함께 계심은 하나님께는 고난입니다. 마치 사람이 땅에 기는 벌레처럼 되어 벌레와 함께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악의 세상에 오시는 것, 사람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체험하신 게 고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통 사람도 경험하지 않는 십자가의 죽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인생들을 향해 <너희를 사랑한다>고 계속 고백하시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처절한 하나님의 짝사랑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찾아가는 자의 고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발품을 팔아 갈릴리 해변의 어부들에게 오셨고, 가버나움 세관의 레위에게 오셨습니다. 먼저 오는 분이 고난을 받습니다. 함께하기를 원하는 이가 고난을 받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고, 예수님과 함께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실패는 함께하지 못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락방 만찬이 끝난 후에 겟세마네에 갔지만,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기까지 기도하는데, 그들은 잠을 잤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 후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지만, 그들은 도망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함께 가자>고 하시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찾아가는 고난을 경험해야 하고, 주님과 함께하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요즘 많이 부르는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 중에 다음 부분이 있습니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못 박히신 손과 발에 우리 손과 발을 포개고,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삶, 이것이 찾아오셔서 임마누엘이 되어 주신 주님께 대한 우리의 신 임마누엘입니다. 부활은 이처럼 주님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승리입니다. 죽음 없는 부활이 없듯이,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할 때,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모든 순간에,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우리를 부활을 넘어 영생의 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3-04-05
  • [시사칼럼] 꿈엔들 잊힐 리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 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시인 정지용이 쓴 <향수> 가운데 일부입니다. ‘충남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40번지’, 시인이 태어난 생가가 있던 곳인데, 이제는 그 주소명이 ‘충남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56’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시인의 향수는 고즈넉한 이 마을에 고스란히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해서 다닌 휘문고보가 위치했던 서울의 궁궐 서편(원서동)에서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다녔다던 도시샤(同志社)대학이 위치한 교토에서도, 시인은 게으른 듯 지즐대는 고향마을을 차마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았던가 봅니다. 오랫동안 잊혔던 시인 정지용과 그의 시가 세상 속에 꽃망울 터지듯 툭하고 등장한 때는 1989년입니다. 테너 박인수 씨와 가수 이동원 씨가 60년 이상의 세월을 묻혀 있던 동명의 가곡을 새롭게 편곡해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가요계는 물론 문학계와 일반 세상까지 발칵 뒤집혔습니다. 클래식을 하는 동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곳은 약간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교수요 한국 성악계의 얼굴과도 같았던 테너 박인수는 대중가요를 부르고 활동했다는 이유로 오페라단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그는 꿋꿋하게 가는 곳마다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이 노래를 기꺼이 불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클래식과 가요는 물론 국악까지 조화를 이루어, 전통과 현대를 한데 어우르며 전 세계가 극찬하는 한국 음악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출발점에 있던 박인수 씨가 지난 2월 28일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수>의 파트너였던 가수 이동원 씨는 그보다 열세 살 아래였으나 지난 2021년 11월 14일 먼저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그토록 자주 불렀던 노래의 배경과 너무나 흡사한 지리산 자락 한 마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향수에서 이동원 씨가 담당했던 파트의 노랫말들입니다. 그는 1951년 전쟁통에 부산의 전포동, 유난히 별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달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학교는 서울에 있는 보성고보를 다녔지만 그 역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릴 적 도란도란 살았던 동네가 일평생 눈에 선하지 않았을까요?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옛 마을의 호젓한 굽이길 혹은 도시의 하늘 아래 어느 골목길 또는 낯선 땅을 가로지르는 강가에서 머물렀던 하숙방 어쩌면 달도 별도 곱기만 하던 동네 그 비슷한 어디쯤의 기억을 우리는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돈도 벌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건너간 일본 땅 나고야(名古屋, なごや)에서 종일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녹슨 군용기를 닦고 페인트칠을 하는 중노동을 감당하며 하릴없이 눈물짓던 열네 살 양금덕 소녀에게도 고향 마을 정든 집 그리운 부모형제가 꿈엔들 잊힐 리 있었을까요? 지난 삼십 년 동안 싸우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양관순’이라 불리는 올해 나이 아흔 다섯의 이 할머니를 포함해서 생존하는 몇 분 되지 않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탄식과 한숨과 절망의 시간들을 어찌 돈으로 환산해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남화태도(사할린 남부)로 끌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채 죽는 날까지 ‘전남 나주군 세지면 오봉리’ 그 따뜻한 이름 속에 남겨두었던 아내와 갓난아기를 그리워하며 살았었을 김오남 씨 같은 분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정지용과 박인수와 이동원은 이제 다 떠나고 그 아련한 노래만이 남았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떠난 사람들, 지금도 향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도 이 노래가 마음에 사무칩니다. 신령한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영원한 나그네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간 이들이 먼저 가 기다리는 그곳,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문득 한 발 더 가까운 곳으로 느껴지는 그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3-04-05
  • [은혜의말씀] 부활의 증인(눅 24:1-12)
    예수님의 부활을 맨 처음 목격한 사람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기뻐하며,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해주는 부활의 소식을 믿지를 않습니다. 부활만 안 믿은 것이 아니라,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은 원래 믿음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그 제자들이 돌변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지요?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짜로 만난 것입니다. 부활만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삶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삶에 위대한 목표가 생깁니다. 다시 말하면 사명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사람들을 살려내라고 주님께서 사명을 주십니다. 제자들의 삶에 분명한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목표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이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숨이 넘어가는 순간 내딛는 한 발자국은 한 사람은 천국이고, 한 사람은 지옥이고, 천지차이입니다. 부활의 소식을 전해주기만 하면 그 운명의 한 발자국은 극복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옮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여러분,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그 간절한 소원을 안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하는 것은 단순히 크리스천의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갖가지 문제로 영과 육신이 부서져서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이 그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둘째, 삶에 놀라운 능력이 생겼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만 하면 필요한 능력은 얼마든지 공급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이 그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다가 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베드로가 뭐라고 하지요?(행 3:6)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는 곳에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그 놀라운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부활의 주님의 이름을 선포하며 사십시오! 오늘 이 특별한 주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위에 계신 만왕의 왕 되신 그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부활의 주님이 주신 능력을 붙드는 자는, 담대하게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의지함으로 기쁨과 감사와 기적이 있는 여러분의 삶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3-04-05
  • [교회와세금] 교회와 세금 칼럼, 최종 마무리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부활은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산 소망이다. 교회 재정과 세금에 관한 실무를 돕기 위해 그동안 10회에 걸쳐 칼럼을 연재해 왔다. 또 오늘이 그 마지막회이다. 교회가 납부해야 할 세금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실무자로서 주의 깊게 보아할 점이 무엇일까? 우리나라 세법은 국세(14개)와 지방세(11개)로 총 25개 세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동안의 내용을 총정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득세와 법인세는 일정 과세기간 발생한 소득에 대해 납부하는 세금으로, 현행세법은 예배 중 성도들이 낸 헌금이나 헌물에 대해서는 부과하지 않는다. 단 이 경우 교회는 국세기본법(제13조)에 따라 설립시 관할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고유번호등록증을 교부받아야 하며, 교회가 고유목적을 넘어 수익사업을 할 경우 법인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둘째, 부가가치세(VAT)는 재화나 용역이 생산・제공되는 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에 대해 부과하는 소비과세로서, 그 거래액의 10%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비영리법인으로 고유목적을 위해 재화를 취득한 경우 매입세액의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하며, 공급 매출세액에 대해서는 세금이 면제됨으로 환급이 적용되지 않는다. 셋째, 취득세는 자산을 매매 교환 증여 등으로 취득한 경우 납부하는 지방세로, 표준세율이 주택은 1~3%, 주택외부동산은 2.3~4%, 기타 2~7%이다. 그리고 교회는 고유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토지와 건물부동산 등은 취득세가 면제된다. 단 이 경우에도 해당자산은 3년 이상 고유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하며, 만약 다른 용도로 사용을 변경하는 경우 소급하여 취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 넷째, 종합부동산세는 주택 및 토지 등 부동산의 공시가격의 합계액이 일정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부과하는 세금으로, 교회가 소유하는 예배당과 담임목사 주택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면제된다. 그리고 부목사 사택과 선교관은 교회 재산으로 간주되어 재산세와 같은 개념으로 종합부동산세의 납부가 요구될 수 있으나, 종부세법 8조2항2호, 시행령4조에 따르면 사원용주택(국민주택규모이하 또는 공시가격 3억원이하)은 종합부동산 합산에서 제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다섯째, 재산세는 토지, 건축물, 주택 등 부동산 등의 소유에 대해 부과하는 지방세로서, 취득세 및 법인세와 동일하게 고유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보유하는 경우 면세가 된다. 단 사택의 경우 담임목사가 거주하는 사택(1건)은 재산세가 면세되나, 기타 부목사 등의 사택은 과세 대상이 되고, 교회 사찰 관리인이 부속 건물에서 관리를 위해 거주하는 경우도 고유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어 재산세가 부과될 수 있다. 여섯째, 자동차세는 자동차의 소유와 주행에 대해 과세하는 지방세로서, 교회가 차량을 구입하면 취득세와 등록세, 부가가치세를 납부한다. 또 소유 운행시에는 자동차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마지막 일곱째는 종교인소득 과세로, 종교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종사자의 소득에 대해 기타소득과 근로소득 중 선택하여 세금을 납부하고, 원천징수와 연말정산을 적용하는 제도이다. 종교인소득이 전산화되며, 교회 목회자도 소득이 적은 경우 근로·자녀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4대보험(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도 보다 투명하게 적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성도들의 신앙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또한 선한 행실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충전소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세금 또한 국가적 질서를 존중하여 모범이 되어 납부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국가는 교회 고유의 목적활동에 대해 지금까지 그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여 왔듯이, 앞으로도 순기능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신앙의 자유와 활동을 존중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를 찬미!
    • 오피니언
    • 칼럼
    2023-04-05
  • [목회자칼럼] 밀알의 부활
    예수님의 모습은 한 알의 밀알과 비슷하다. 한 톨의 밀알은 별 것 아니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싹이 나고 자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내려오시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되었다. 농사에서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고 마침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의 생애가 그러하였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겨자씨 한 톨은 작고 볼품없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닮았다. 씨앗이 소중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작은 씨앗이지만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겨우내 북풍한설을 맞아도, 앙상한 모습으로 버티고, 봄철이 오고 밭에 갖다 심은 씨앗은 마침내 발아하고, 잎이 나고, 자라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지옥이 죄의 값인 죽음의 종착지라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생명의 결과이다. 도적, 사탄, 마귀, 귀신은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고 풍성케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생명운동, 살리는 운동을 해야 된다. 죽은 것을 관리하는 사역이 아니라 역동적인 새 생명의 사역을 해야 된다. 죽은 물고기는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폭포수를 역류해서 치고 올라간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이다. 씨앗은 간수하고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까워도 끝까지 보관하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흩어서 뿌리고 심어야 된다. 봄철이 다가왔다. 씨를 뿌리는 계절이다.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씨를 뿌리면 어느 것이 더 잘 될는지 모른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파종해야 된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파종할 때를 놓치면 1년 농사가 곤란하다. 씨를 뿌리는 자는 너무 편하게 농사 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 씨를 뿌리는 자의 컨디션이 좋지 않고, 환경이 좋지 않아도,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뿌리면 마침내 기쁨으로 추수할 때가 온다. 고난주간이 지나야 부활주일이 온다. 춥고 지리한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바람이 불어오고 봄 눈 녹듯이 겨우내 얼어 있던 것이 녹아 내리고 만물이 약동하며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어나게 된다. 아침이 되면 긴 밤의 어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혹독한 추위도 훈풍이 봄바람으로 불어오면 이내 사라지고 만다. 새싹은 비록 여리고 약하지만 단단한 대지를 뚫고 싹을 낸다. 신앙생활은 춘하추동을 지나는 농사와 비슷하다. 농사는 사시사철 할 일이 따로 있다. 한 겨울에는 추위를 견뎌내야 되고 봄철에는 부지런히 씨를 뿌려야 된다. 한 여름이 오면 태풍이 오고, 기근이 오고, 홍수가 나고, 땡볕이 쏟아져도 농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적극, 담대, 낭만, 진취, 발전, 소망을 가지고 나선다. 심는 이가 있고 물주는 이가 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생사화복,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농부는 성장 본능을 믿고 씨를 뿌린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라고, 식물을 심어놓으면 반드시 성장한다. 씨앗은 작지만, 추수의 풍성함을 바라보고 씨를 심는다. 춘하추동을 지나며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을 맞지만 강인한 생명력과 승부근성을 가지고 마침내 결실한다. 아주 작고 초라한 씨앗이지만, 자란 후에는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어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 울창한 숲도 한 톨의 씨앗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씨앗을 심어서 큰 숲을 만드는 운동을 해야 된다. 한 알의 밀알은 예수님의 모습과 같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는 연한 순과 같았지만, 생명의 본체시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되셨다. 한 알의 밀알은 땅에 떨어져 썩을 때에 많은 열매를 맺듯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세대에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이 선한영향력을 미친다. 그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연약한 우리를 체휼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죄악으로 죽을 우리를 살리시고 천국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그가 떨어짐으로 우리가 올라가고, 그가 썩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저 낮은 곳을 향하여 긍휼사역을 펼쳐야 된다. 잡초 근성을 가진 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 풀뿌리 사역은 미세한 뿌리들이 사방으로 뿌리를 뻗어서 수분을 빨아들이고 박토에서도 생존을 한다. 묵은 땅을 기경하여 옥토를 만들어 좋은 땅에 알곡을 심어서 가라지를 신경 쓰지 말고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다. 나의 마음 밭을 잘 가꾸어서 주인 닮은 정원을 만들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자. .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3-04-05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한국 기독교와 공산주의
    최근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 중인 민주노총 조직국장이 북한 공작금 수수혐의 등으로 재판받는 모 목사와 10여 차례 통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 목사는 북한공작원 리광진과 접촉했는데, 2015년 4월 쿠알라룸프르에서 미화 1만8900달러의 공작금을 받았고, 또 다른 목사와 함께 북한 공작원과 회합, 통신하고 북한체제를 찬양하고 선전한 혐의로 체포된 인물이라고 한다. 문제는 목사들 가운데서도 공산주의 체제를 찬양하고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공작금을 수수하는 등 간첩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한 목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5년 12월 기소되어 2017년 징역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앞의 모 목사는 북한 공작금 관련 기소가 늦어져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조선일보, 2023. 1. 25). 이런 친북 공산주의자는 한국교회에서 여러 차례 출몰한 일이 있다. 조선 공산당은 1918년 6월 25일 러시아의 하바로프스코에서 조직되었고, 1819년 4월 25일에는 해삼위(海參崴)에서 고려공산당을 조직했는데, 그 책임자가 이동휘(李東輝, 1873-1935)였는데, 그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였고 감리교회 전도사였다. 그때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해삼위라고 불렀다. 1917년 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해삼위로 건너간 그는 볼셰비키에 가담한 전력이 있고, 7월 초에는 ‘독일 제국의 밀정’으로 오인되어 케렌스키 임시정부 헌병대에 체포되어 수감된 일도 있다. 1919년 8월 말 중국 상해로 갔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에 선임되었는데,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과 충돌했다.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동휘는 김구에게 국제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김구는 이를 제3국가에 의탁하는 것으로 보아 거절했다고 한다.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코바에서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렸는데, 극동인민대표회의(極東人民代表大會)라고도 불리는 이 회의는 코민테른 국제회의였다. 이 대회는 “약소민족은 단결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동아시아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된 회의였다. 이 회의에 한국인으로는 김규식, 김단야, 나용균, 박헌영, 여운형, 이동휘, 임원근 등이 참석했는데, 김규식과 여운형(1886-1947)은 의장단에 선출되었다. 김규식은 새문안교회 교인이었고, 여운형은 승동교회 출신이었다. 특히 여운형은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서울 인사동의 승동교회 전도사로 일한 적이 있고, 1911년부터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한 일도 있다. 1911년부터 1913년까지 다시 승동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기독교신앙과 무신론 공산주의가 어떻게 병립할 수 있을까? 양자 중 어느 하나에 철wj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일성(金日成)과 김일성의 가계가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金亨稷, 1894-1926)은 서북지방에서 이름난 장로교장로인 강돈욱의 사위였고, 장인의 도움으로 숭실학교에서 수학한 기독교신자였다. 그가 자식들에게도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을 것이다. 강돈욱은 평양의 하리교회가 1905년 설립한 창덕학교 교장을 지냈는데, 김일성이 창덕학교에서 2년 간 수학 할 때 손자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姜盤石, 1892-1932)은 칠곡교회에 출석하며 성장한 교회의 장로의 딸이었고, 오빠 강진석은 장로교 목사였다. 김일성을 도와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민주당 당수, 그리고 기독교회를 탄압했던 어용조직 ‘기독교도연맹’ 위원장을 지낸 강양욱은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의 6촌이었다. 강양욱은 후(後)평양신학교 3회로 1943년 신학교를 졸업했다. 김일성은 기독교적 환경에서 성장했고 만주에서는 감리교 손정도(孫貞道, 1882-1931) 목사의 북산교회에 출석하며 손정도 목사의 도움을 받았다. 손정도 목사와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막역한 사이였다. 손정도 목사가 선교사 신분으로 길림에서 일할 때 김일성은 2년 여 동안 손정도 목사의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김일성이 투옥되었을 때는 손정도 목사가 뇌물을 제공하고 김일성을 출옥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유언(流言)의 사실 여부는 규명되어야 할 과제이지만 손정도 목사의 교회에 일정 기간 적을 두었던 것은 분명하다. 북한측 기록에 의하면, 손정도 목사의 예배당은 김일성의 공산주의 교육의 전용 집회소였다고 한다. 김일성의 회고록(1992)에서 김일성은 손정도 목사와 3년간 교류했고, 자식처럼 보살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무신론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기독교회와 기독교 신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멸절시킨 희대의 독재자가 되었다. 김일성은 1929년 17세 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한다. 기독교적 가정 배경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1925년 서울 소공동의 아서원(雅敍園)이라는 중국식당에서 조선공산당이 창립되었고, 1926년 5월 길림성 영고탑(寧古塔)에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문을 열면서 만주 한인사회에 공산혁명의 기운이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고 곧 국내에도 공산주의 운동이 서서히 지경을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도 가담하게 된다. 그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알지도 못한 채.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04-05
  • [소강석칼럼] 바보가 될 바에는 더 큰 바보가 되라
    류시화 시인이 쓴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밀림 속에서 모든 동물들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당나귀가 풀의 색깔을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당나귀가 자기 혼자 “풀이 파란색”이라고 소근 거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예 모든 동물들 앞에서 풀의 색깔이 파란색이라고 소리쳐 대는 것입니다. 이때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풀은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당나귀는 더 소리를 높였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니까!” 그러자 동물들이 덩달아 편 가르기를 하였습니다. ‘초록색파’와 ‘파란색파’로, 혹은 호랑이파와 당나귀파로 나뉜 것이죠. 호랑이는 포식동물의 왕답게 으르렁대기 시작했고 당나귀는 분수를 모르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니까!”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밀림의 왕 사자를 초청하여 판결을 부탁하자고 하였습니다. 호랑이도 동의를 하였습니다. 왜냐면 사자는 고양이과 동물로서 당연히 자기편이 되어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당나귀의 주장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호랑이의 주장도 잘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사자는 당나귀의 말이 옳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말이죠. 판결 후에 호랑이가 사자에게 으르렁대며 “왜 그따위 판결을 하느냐”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너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오판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른발로 사자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사자가 지혜롭게 말을 했습니다. “어이, 호랑이.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숲의 제왕이 되어가지고 저 하찮은 당나귀와 논쟁을 벌이다니. 논쟁을 벌이려면 적어도 자네보다 훨씬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해하지. 자네는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을 했어. 이미 호랑이다움을 잃어버렸고 소중한 시간과 기운을 낭비한 채 오히려 세상을 더 시끄럽게 만들었다네...” 저도 어릴 때부터 우김질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한번 우기면 그것이 잘못된 주장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우김질을 했던 기질이 있었습니다. 개척교회 때는 물론, 중형교회가 되었을 때도 스티븐 코비의 주장대로 “언제나 주도적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주도적 의미를 아전인수격으로 생각을 했던 면도 있었겠지만요. 이런 제가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공적사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좋은 일을 하면서도 비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공교회를 위하여 옳은 일을 하면서도 불필요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에 있는 호랑이 본성이 발동하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가 극심한 상황에 이르러서는 방역 당국과 예배 퍼센티지를 협상하는 것을 신사참배로 규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목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며 격려비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차마 입에 담기에도 창피스러운 프레임으로 공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호랑이의 입을 다물도록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말을 했죠. “기왕 바보가 될 바에야 더 큰 바보가 되자. 그리고 논쟁을 하려면 너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능력 있고, 지혜 있는 현자와 하자.” 어떻게 풀이 파란색이란 말입니까? 당나귀의 주장은 말도 안 되죠. 풀은 당연히 초록색이지요. 그러나 호랑이는 호랑이답게 놀아야 했습니다. 당나귀와 논쟁을 하는 그 순간부터 호랑이는 호랑이의 자존심과 체면을 구겨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격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저를 충동질 하였습니다. “소 목사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허락만 해주시면 제가 나서서 대리 고발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안의 호랑이가 으르렁대려고 했습니다. 아니, 제가 나서서 법적조치를 하면 당연히 실형을 받게 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저 다움과 한국교회 진정한 리더 다움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보다 훨씬 능력이 있고 지식이 넘치는 현자들을 찾아 토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고, 그런 분들과 만나 말씀을 듣고 때로는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이 걸어가는 바보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제 앞에 골드오션(Gold Ocean)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소강석 칼럼
    2023-03-0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