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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댐론
    연일 계속되는 집중호우로 소양강 댐이 방류를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123m 높이와 530m 길이로 70km² 수면 면적에 29억t 저수량을 자랑하는 이 댐이 수문을 개방한 것은 1973년 10월 완공 이래 이번이 15번째라고 합니다. 초당 3,300t으로 최대 방류량 5,550t의 60%에 불과하지만 같은 북한강 수계의 화천댐, 의암댐, 평화의 댐, 춘천댐 등이 이미 방류중이라 한강 수위 상승에 따른 피해가 예상됩니다. 임진강 일대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특히 북한 측 영역에 있는 황강 댐 수문이 사전 연락 없이 개방된 징후가 포착되었습니다. 지난 2009년 홍수 때 급작스런 방류로 인해 임진강 유역에서 야영객 6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차후에는 사전 예고하기로 했었는데 말입니다. 토목공학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댐은 이처럼 정치공학의 산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986년 시작해서 2005년에야 완공한 평화의 댐을 생각해 보십시오. 홍수 조절이나 전력 생산과 같은 본연의 기능 이외에도 북한의 수공(水攻)을 가상하고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세계적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댐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양쯔강 중상류에 위치한 ‘싼샤 댐(三峽 Dam)’ 이야기입니다. 일단 규모 면에서 소양강 댐을 압도합니다. 높이 185m, 길이 2,309m로 각각 소양강 댐의 1.5배와 4.4배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최대 저수량인데, 무려 390억t으로 소양강 댐의 15배를 상회할 뿐 아니라 그 무게로 인해 지구 자전축이 2cm 가량 이동할지도 모른다는 예측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중국에 사상 유래 없는 비가 내리면서 마침내 싼샤 댐도 방류를 시작했는데 그 규모 또한 초당 38,000t으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미 450여개의 하천이 범람하면서 재산 피해 25조원에 5천 만 명에 육박하는 수재민을 남긴 참사가 이번 방류로 인해 더욱 가중될 전망입니다. 지난 2019년 구글 어스(google earth)에 가공할만한 수압 때문에 살짝 변형이 생긴 사진이 공개되면서 싼샤 댐 붕괴설이 퍼졌습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싼샤 댐이 붕괴된다면 그 결과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의 대재앙(catastrophe)이 되고도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댐 건설은 인류 문명의 총화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치경제학적으로도 댐 건설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미국의 뉴딜(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후버 댐’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콜로라도 강의 홍수와 가뭄을 억제하기 위한 용도였지만 당시 기술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던 대규모 토목공사를 조성함으로써 강력한 경기 부양의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싼샤 댐은 중국 고대 황제 시절부터 오랜 숙원이었으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치수(治水)의 기념비적 업적을 쌓고자 한 정치적 의도가 농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댐 건설이 불러올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댐은 그 자체로 주변의 자연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수몰 지구가 생겨나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흐르지 못하고 갇혀 버린 물이 부패하거나 또는 발생시키는 막대한 수증기로 인한 기후의 변화 같은 요소도 새롭게 생겨난 댐의 복병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이외 유일하게 나무를 심는 생물은 개미랍니다. 개미 군집 근처에서 발견되는 애기똥풀 등의 씨에는 지방질이 풍부한 ‘일레이오좀(elaiosome)’이라는 것이 있어 이 부분만 먹고 나머지 씨는 다치지 않게 주변에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개미들의 정원에는 독특한 식물 군락이 조성되는데, 물도 흡수하고 바람도 막아주는 일종의 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 개미뿐이겠습니까? 멕시코 산림생태학자에 따르면 울창한 중남미의 열대림은 사실 자연림이 아니라 그 옛날 마야나 아즈텍 인들이 심고 가꾼 산림이라 합니다(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중에서). 사실 우리 땅에도 오래된 댐들이 존재했습니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 제천의 의림지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연친화적인지 인위적인 시설인지도 몰랐을 정도였다니, 선현들의 지혜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창조주는 만물의 관리를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개미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선하지 않는 것 없는 하나님 작품들을 잘 가꾸며 바로 활용하는 인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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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4
  • [성경인물탐구] 베다니 마르다(마리아의 언니)
    마르다는 나사로의 누이로서 마리아의 자매이며 예수께 대한 대접에 헌신적이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헌신적인 대접을 하였으나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꾸짖어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했다가 오히려 책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헌신적으로 예수님께 대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베다니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기 집에 영접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앉아서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신을 돕도록 명령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마르다는 자신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동생인 마리아는 노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요구에 대하여 오히려 책망하시며 마리아가 좋은 편을 선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의 일도 중요하고 귀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귀한 일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음식을 만들어 당신께 드리는 것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을 가장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성도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의 말씀을 청종하여 그 말씀대로 행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집에서 예수님를 위한 잔치가 배설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았습니다. 나사로는 병으로 죽었다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나온 자입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씻었습니다. 마르다의 삼 남매는 모두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는데, 그들 또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남달랐습니다. 이와 같이 주를 위해 애쓰고 힘쓰는 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습니다. 그들이 베푼 잔치는 주를 기쁘시게 해드렸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이 자신의 장사를 준비함이라고 말씀하시어 구속 역사에 속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누웠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비의 병을 낫게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급히 나사로를 찾지 않으시고 며칠 후 나사로가 죽고 난 후에야 나사로에게 오셨습니다. 그때에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예수님께서 나사로와 함께 계셨더라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지금이라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였기에 죽음의 문제도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 하시고는 나사로를 불러 무덤에서 나오게 만드셨습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신앙의 삶을 살아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천국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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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3
  • [목회자칼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구할 것
    너희는 염려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염려부터하기 시작하면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과 같고 먼저 구할 것을 선뜻 대답하면 선제 대응이 되고 선점 효과가 생긴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임시적이고 가변적이고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성도들의 최고 소원이다. 그 사람의 관심사항, 소원이 무엇인가? 기도제목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신앙생활은 질문과 대답이다. 주님께 끊임없이 물어보고 응답을 받는 것이다. 코로나때는 일상이 무너지고 계획이 소용없으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작품은 질문과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의 관심사항, 소원을 점검해보고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체크해보라. 주께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여야 된다. 아담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탕자야! 밥은 먹고 사니? 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울하냐? 갱년기 장애냐? 너는 누구랑 동행하고 있느냐? 너는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쁘냐? 너는 얼마나 주님과 친밀하냐? 평소에 분주하게 살다보면 세상적인 것에 혼이 빠지고 얼이 빠져서 주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진다. 그때에 일단멈춤을 하고 목표수정을 하고 재급유를 해야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대사를 돌아보면 분명한 시대정신이 있었다. 성장에 몰두했던 60~70년대,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80년대, 그러나 지금은 헝그리사회가 아니고 앵그리사회가 됐다고 한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사회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예배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와 어떻게 교감할 것인가? 물어보고 답을 구해야 한다. 사울왕의 패인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가장 쓰임받은 다윗의 때에는 예배가 회복되었다.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이 줄고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 개인묵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가족이 모이고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회복할 기회다. 교회가 흩어져있는 개인, 1인가구를 이어주는 사역을 통해 초연결 사회가 된다.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서 소홀했던 나태함을 회개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기도가 달라져야 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지만 적화통일이 아니라 복음통일이어야 된다. 썩어질 것들을 구하지 말고 먼저 천국소망을 가지고 그의 나라를 구하고 거짓과 자기 의를 버리고 그의 의를 구하여야 된다. 코로나의 위력은 모든것을 재정렬 시켰다. 충격과 혼란과 분노의 과정을 거치며 모든게 리셋되었다. 평소에 흘러가던 일들이 멈추어서고 삶의 우선순위가 재정렬 되었다. 교통정리가 되고 가지치기가 강제로 되어졌다. 지혜는 우선 순위를 잘 따르는 것이다. 잡다한 것으로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께서 호루라기를 불고 뒤로돌아 하면 꼴지가 일등이 된다. 모든 것은 자기 자리가 있다. 자기 몸에 잘맞는 옷이 있다. 다윗은 사울왕의 갑옷을 버리고 목자의 제구를 가지고 골리앗을 무찔렀다. 주께서 허락하시고 내게 맞는 자리를 찾기까지 비전과 도전과 응전해야 된다. 코로나가 지나가도록 기다리지 말고 할수 있는 것을 먼저 해야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자리가 공동체를 망치기도 한다. 성경에 보면 시대마다 쓰임받은 사람은 건축가이다. 결혼건축가라는 책이 있다. 건축은 종합예술이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 솔로몬은 아비 다윗이 못다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다. 이 시대는 무너진 시대이다. 마음이 무너지고, 건강이 상하고, 가정이 해체되고, 교실이 붕괴되고 경제가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권위가 사라지고 교회가 탄압을 받는 시대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무너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이다. 느헤미야는 네 가지의 재건축을 하였다.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했고, 깨어진 인간관계를 복원했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고, 식어빠진 심령을 부흥시켰다. 하박국은 시기오놋에 맞추어서 노래하며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쓸모없는 이몸을 고쳐서, 씻어서 하나님 나라에 기둥같이 들어 쓰신다. 야곱의 하나님은 재활용의 하나님이시다. 속이는자 야곱의 열두 아들을 열두 지파로 만들고 이긴자로 재활용하신 하나님이시다. 패륜아 탕자가 돌아와 “나를 품꾼의 하나로 쓰소서” 할때 상속권이 있는 아들이 되었다. 도시재생 프로그램이 있다. 살려놓고 봐야된다.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생태계를 복원하고, 나라를 살리고 세계교회를 건설해야 된다. 로마제국의 태산같은 핍박속에서도 성도들은 지하감옥인 카타콤에서 예배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서 마지막을 맞이하면서도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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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3
  • [부산기독교이야기] 빌리 그래함 목사의 부산에서의 집회
    전쟁 중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 목사의 부산 방문은 특별한 행사였다. 그의 방문이 한국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한국과의 교류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부근 농촌에서 1918년 11월 출생한 그래함 목사는 플로리다성서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대중 전도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1949년 로스엔젤레스(LA) 전도집회에서 엄청난 청중을 동원하면서부터 대부흥운동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50년에는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를 조직하면서 북미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전도 집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평이하고도 단순한 설교,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분명한 강조, 그러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연설을 통해 영적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가 1952년 12월 전화(戰禍)에 지친 부산으로 왔고, 대구 서울 등지를 방문하고 그해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에게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고 한국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한국에서 청소녀기를 보낸 아내와의 인연 때문만이 아니었으나 그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빌리 그래함은 일리노이주 휘튼대학 재학 중 미국남장로교의 중국 주재 의료선교사 딸인 루스 벨(Ruth Bell, 1919-2007)을 만나 1943년 8월 13일 결혼했는데, 루스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평양외국인학교에서 중등학교 과정을 공부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있는 장병들을 위로하며 전도집회를 개최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전쟁에 지친 한국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1952년 10월 하순부터 한국방문을 결심하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한국방문과 전도집회 개최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방성에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한국의 2천 여 명의 목회자들은 한경직 목사를 필두로 한국에 와서 집회를 개최해 주도록 요청하고 있었다. 주한 선교사들도 동일한 요청을 하고 있었다. 특히 선명회의 창립자인 밥 피어스(Bob Pierce)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이 한국으로 오기 전 전도집회를 개최했던 곳이 뉴멕시코주의 가장 큰 도시인 알버커키(Albuquerque)였다. 이곳에서의 집회는 11월 2일부터 4주간이었다. 이 집회 마지막 날인 11월 30일 한국을 위한 헌금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알버커키연합감리교회 이경화 장로의 지적처럼 한국 방문을 위한 준비였다. 그로부터 2주 후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빌리 그래함은 알버커키에서 집회를 마치고 로스 엔젤레스로 갔는데 12월 2일 거기서 한국방문 허가를 받았다. 12월 5일에는 하와이로 향했다. 이때 한국으로 향하는 동료가 한경직 목사와 밥 피어스 목사였다. 12월 7일에는 호노룰루를 떠나 일본 동경으로 향했다. 일본에서는 일본 주제 선교사들과 전쟁을 피해 일본에 체류하던 선교사들을 만나고 한국전 부상병들이 치료받고 있는 육군병원 방문, 극동사령부 간부들과 군목 면담 등 일본에서 일 주간을 체류하고 14일 일본을 떠나 부산에 도착했다. 그날이 주일이었다. 미군장병들을 위한 예배를 인도했고, 이튿날 월요일에는 한경직 목사가 시작한 부산 부민동의 다비다 모자원을 방문하여 위로했다. 그날부터 4일간 대중집회를 개최했는데, 12월 17일 수요일에는 야외 집회를 열렀다. 세찬 바람이 이는 추운 날이었으나 이날 7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함태영 부통령도 참석한 이날 회중은 길바닥에 멍석을 갈고 앉거나 서서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그의 한국 방문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인을 위한 전도 집회였다. 전쟁의 아픔을 안고 치열한 생존 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을 위로하되 영적인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미군들을 위로하고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런데 부산 집회 때도 미군들도 참석했고, 결신자 초청(altar call)을 했을 때 한국인들과 함께 미군 백인과 흑인들도 앞으로 걸어 나왔다고 한다, 빌리 그래함의 첫 한국 방문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 한국인들의 새벽기도였다고 한다. 빌리 그래함은 자신을 안내하고 사진사 역할을 했던 미북장로교의 부례문(Raymond Provost) 선교사의 안내로 새벽기도가 열리는 피난민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그 피난민 교회는 보수산 중턱에 임시로 설치된 예배당이었다. 지붕만 가린 채 사방이 개방된 추운 겨울, 새벽공기는 귀를 도려내는 듯한 매서운 날씨였으나 성도들은 거적때기 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죄와 민족의 죄악을 통회자복 하면서 전쟁의 승리와 회복을 기도하는 그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소망을 읽었다고 한다. 그 새벽기도회를 보면서 큰 감명을 받은 빌리 그래함은 한국에서 역사(役事)하실 하나님의 역사(歷史)를 기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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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3
  • [은혜의말씀] 갑절의 은혜를 체험하자(왕하 2:6-15)
    왕하 2장에 갑절의 은혜를 받은 엘리사를 보여줍니다. (왕하2:9) ‘...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즉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합니다. 그후 갑절의 은혜와 권능을 받은 엘리사는 진실로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갑절의 은혜를 체험해야겠습니까? 1. 갑절의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1) 갑절로 악해진 시대 / 지식 정보화 미디어 악플 등 (눅21:34-36)‘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 2) 갑절로 악해진 인성 (딤후3:1-5)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여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3) 갑절로 악해진 마귀 (계12:12)‘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벧전5:8-9)‘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2. 어느 때보다 갑절의 능력이 필요한가? 1) 엘리야 때보다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왕하2:9) 엘리야시대는, 이스라엘나라에 가장 사악한 아합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왕상16:30-33)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야훼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2) 예수님 때보다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요14:12)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아버지보좌 우편으로 가시매, 대신 다른 보혜사성령님을 통해 갑절의 능력을 주심 3) 오순절 때보다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욜2:23-32) 4) 초년보다 말년에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초년보다 말년에 능력이 필요하고 신앙의 초기보다 완성기에 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말년에 더욱 담대하고 거침없는 사역을 행하였습니다. (행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3. 갑절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1)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구하라!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특히 믿는 성도들의 삶의 목표는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필요한 갑절의 능력을 얻으려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마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좋은 것으로 구하십시오! 갑절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갑절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간절히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2) 갑절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어떤 고난도 감수하라! 큰 은혜와 능력을 받으려면, 어떤 고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능력을 얻으려고 엘리야의 뒤를 따를 때, 광야를 건너고 산으로 올라가고 강을 건너고 온갖 조롱과 비웃음을 감수하고 끝까지 따를 때 갑절의 능력을 받은 것처럼, 어떤 고난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3) 갑절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그 뜻대로 살려고 애쓸 경우,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절의 영력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거니와,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엘리사에게 갑절의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여, 갑절의 능력을 주옵소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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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3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경남도지시 양성봉 장로
    양성봉(梁聖奉, 1900-1963) 장로는 6.25 전쟁기 부산과 경남지방 행정관료였다. 1949년 12월 제4대 경남도지사로 임명된 그는 1953년 10월까지 3년 11개월 동안 경남도지사로 활동했다. 말하자면 양성봉은 6.25 전쟁기 피난수도 부산의 지도자였고 전쟁기 부산경남지방 행정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역할이 어떠했는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양성봉은 1900년 2월 8일 부산시 좌천동 224번지에서 양덕유(梁德有)와 한모악(韓母岳, 후일 한영일 韓永日, 혹은 남편의 성을 따라 양영일로 불리기도 함)의 10녀 1남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외동아들이었다. 위로 누나 다섯(수혜, 한라)과 아래로 여동생 다섯(봉옥, 순옥)이 있었다. 양성봉의 부모는 부산진교회 초기 신자로 1901년 2월 10일 왕길지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모태신앙인으로 출생한 양성봉은 부모를 따라 부산진교회에서 성장했으나 4살 때인 1904년 11월 30일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가 2년 뒤인 1906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후 부산진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한 후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17년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부산철도국 서무과에 취직하여 일하기도 했고, 울주군 서생면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부산으로 돌아 온 후에는 어을빈(Charles Irvin, 魚乙彬)의 제약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든 중 해방을 맞았고, 1945년 8월 17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상남도지부 발기 총회에 참여하고, 문화 외교부장을 맡았다. 미군정이 실시되자 1945년 10월 10일에는 부산부 총무과장(주사)으로 발탁되었다. 45일 만인 그해 11월 26일에는 부산시 부윤(府尹), 곧 부시장에 취임했다. 그의 영어 실력도 고려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1946년 1월 24일에는 제1대 부산시장에 취임하여 미군정이 끝난 후인 1948년 11월 6일까지 2년 10개월간 재임했다. 시장 재임기에 중립국 감시단의 인도인 메논 단장과 중국의 유어만(劉御萬) 사무총장 등 20여명을 부산으로 초청하여 동래별장에서 극진하게 대접하는 등 외교수완을 발휘하여 남한만의 총선거를 유도하는 등의 업적으로 이승만의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기독교 신자로서 성실하고 정직한 시정을 이끌었던 그는 1949년 6월 17 관선 제2대 강원도지사로 임명되어 5개월간 일하고 그해 11월 15일 물러났으나 12월에는 제4대 경남도지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7개월 후 6.25전쟁이 일어났다. 약 두 달이 지난 1950년 8월 18일부터 부산은 임시수도가 되는데 이때부터 휴전 협정 체결로 환도할 때까지 2년 10개월7일간 임시수도였다.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자 경남도지사인 양성봉 장로는 도지사 관사를 대통령 관저로 내어주고 자신은 부산 초량의 본가로 돌아와 대통령을 보위하였고, 그가 장로로 있던 초량교회는 피난민 구호에 앞장섰다. 이런 일로 초량교회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높였고, 1951년 4월 29일 주일에는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초량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양성봉 지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환도 직후인 1953년 10월에는 농림부장관에 취임하였다. 그런데, 전쟁기 양성봉 지사는 민생과 민심 수숩을 제일의 과제로 여기고 피난민 구호를 위해 크게 헌신했다고 한다. 전쟁 전 부산시 인구는 47만여 명이었는데, 개전 50여일이 지난 8월 10일에는 68만3천명으로, 1951년 2월 10일 실시된 부산시 인구는 89만명이었다. 피난민이 40만 명에 달했고, 부산에 포로수용소까지 설치되어 인구 포화상태였다.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식량 전기 식수문제만이 아니라 공중위생 문제, 쓰레기 처리문제와 교통문제가 발생했다. 주택 상황이 심각했는데, 수용시설 외에도 1953년 7월 4일 현재 판자집이 28,619호에 달했는데, 영주동 산기슭에 1,000호, 영도대교 인근에 약 700호, 보수동에 약 600호, 송도에 약 300호, 국제시장에 약 1,200호였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양성봉 지사는 피난민 대책에 행정력을 집중했고, 생존의 문제가 시급했으므로 특히 구호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외원 기관의 협조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부인 문복숙과 누이 양한라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는 재임 중에도 검소하게 살고 청렴하고 결백한 도백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는 청계(淸溪)라는 아호처럼 계곡의 푸른 물처럼 살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교회 장로라는 자각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시정부가 환도한 후 1953년 10월 농림부 장관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고, 1954년 6월 장관직을 물러난 뒤에는 정원과 온실을 갖춘 초량의 옛집에 살며 부산YMCA, 향토문화연구회, 부산로타리클럽 등에 관여하며 지내 던 중 1963년 6월 3일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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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교회학교를살린다] “코로나 이후, 기본으로 돌아가라”
    최근 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단어가 있다. 바로 ‘사흘’이었다. 8월 17일이 임시공휴일로 제정되면서 광복절 연휴로 총 사흘간을 쉬게 되자 이 사흘을 ‘4일’로 잘못 알았던 어떤 이의 항의성 댓글로 인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수많은 성인들이 사흘이 3일이고 순수 한글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현실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또 어떤 댓글에는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우느라 사흘을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왔다는 내용도 있어서 참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편의에 의한 신조어의 범람과 한글 파괴 현상으로 인해 국어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묵다와 묶다, 낫다와 낳다를 틀리는 경우는 부지기수이다. 정말 기초적인 문법과 어휘가 부족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코로나 이후 학력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기사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아이들이 동영상과 게임을 시작하면 책을 멀리하게 된다는데, 요즘과 같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가정에서 자녀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기초 학력마저도 저하될까 매우 우려가 된다. 그런데 이 걱정과 우려는 비단 일반 국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학교가 모이기 힘들어지면서 우리 다음세대들도 신앙에 있어서도 기초적인 부분들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아이들, 특히 청소년기로 갈수록 성경에 대한 기초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 성경의 내용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필자의 경우에는 할머니께서 사주신 이름 모를 흑백 번역 성경 만화책 시리즈를 초등학교 입학 전에 수십 번 씩 읽고 또 읽어서 책장이 다 해어졌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성경 만화가 희귀하기도 했고, 만화책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린 시절 그렇게 성경 만화를 읽고 교회학교 공과와 여름성경학교를 참여하며 성경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접하였고, 중 고등학교 때에는 성경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설교에 등장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배우고 그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에는 친구들과 문학의 밤을 준비하거나 찬양대회, 성경암송대회 등등 다양한 신앙 활동에 치중하며 공동체의 관계성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서부터 교회에서는 본격적으로 복음의 내용과 현실의 삶을 접목시키는 구체적인 성경공부에 참여하였고, 신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신학 전반의 내용들을 배우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교회 생활을 하고, 교회학교에 참여하면서 매주 성경을 접하고 성경의 내용을 깊이 묵상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었다. 성경의 지식이 점차 자라면서 삶에 적용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적어도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구별할 줄 알고, 다윗과 솔로몬이 부자관계라는 정도는 알았는데, 과연 요즘 우리 아이들은 성경의 기본 내용과 흐름을 잘 알고 있는지 심히 걱정이 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결코 그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말은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고, 어쩌면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다시 한 번 기본을 회복하는 일이다.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의 기본기,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 시대에 이러한 기회는 다시없을 지도 모른다. 경제적 위기나 사회 문화적 위기보다 더 심각한 신앙의 위기가 우리를 불신앙과 세속화로 더욱 몰고 갈지도 모른다. 신앙의 부모, 신앙의 어른들이 대각성을 하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는 심각한 침체기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 교회에서의 모임이 어렵다면 교회는 다음세대들이 일상 속에서도 성경을 접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장으로 부각되는 가정에서 부모들은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청년에 이르기까지 가정예배나 가정성경공부 등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하고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선배이자 부모로서 우리 어른들이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치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삶의 교육이 절실하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신앙의 기본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올 여름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다음세대들 마음에 남을 수 있도록 모든 신앙공동체가 힘을 다해 말씀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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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성서연구] 몇 사람이 일어나
    예레미야는 남 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 13년부터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눈물의 예언자라 불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활동했습니다. 우선 당시 유다는 거의 몰락해가고 있었습니다. 또 그가 전한 메시지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유다는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전통적 강국인 애굽을 통해 바벨론을 견제하려는 외교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비롯한 열국을 심판하기 위해 택하신 채찍이니,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며, 그렇게 하면 반드시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바벨론을 대적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외쳤으니, 예레미야가 얼마나 미움을 받았겠습니까? 게다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온갖 죄악을 일삼는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패망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 26장 5-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접한 유다의 고관들은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아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예레미야가 죽어 마땅하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그들의 손에 있으니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서,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앙에 대해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가 죽을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온 나라가 여호야김 왕의 통치 아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달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거기 모인 고관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사견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기 때문에 죽일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히스기야 시대의 미가 선지자가 예루살렘을 쳐서 심판과 멸망을 예언했지만, 히스기야 왕과 당시 백성들은 미가를 죽이지 않았고, 오히려 히스기야 왕이 두려워서 여호와께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돌이키신 일이 있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면 오히려 자신들의 생명을 스스로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가 예레미야가 선포한 것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후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 백성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보호했습니다. 예레미야 26장에는 비록 악한 시대였지만, 그 안에도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판이 기울어가는 유다 왕국을 바로 잡을 수 없었습니다. 유다 왕국은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소소의 바른 사람들의 존재 가치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들은 결과에 무관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순복했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말했습니다. 유다 왕국은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멸망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사회가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나라 전체를 바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의 위치에서 바른말을 합시다. 바른 삶을 삽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결과가 어떠하든지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주관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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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9
  • [소강석칼럼] 위드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코로나 팬데믹이 온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아니, 팬데믹은 엔데믹이 되어 대한민국 사회도 끊임없는 긴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의학계에서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는 여름이 되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했는데,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예외적으로 여름에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니, 다 잡았는가 싶었더니 몇몇 교회를 통해서 감염이 일어나면서 교회도 고위험군으로 확정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들이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특히 식사하는 일에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몇몇 교회 문제로 교회 전체가 제재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도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포스트 코로나’라는 언어를 많이 썼습니다. 포스트코로나라는 말은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가 아니라 ‘위드 코로나(with orona)’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당분간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완벽한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위드 코로나, 즉 코로나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할 상황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시작했을 때 한국교회 지도부도 리더십의 방향성을 정하지 못했고 갈팡질팡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확산의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는 한국교회 대표 지도자는 아니지만 줄기차게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소수중심의 현장예배와 온라인예배를 병행할 것을 주장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배 회복 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역사에서는 만일이라는 가설이 있을 수 없지만, 신천지 집단감염과 게이클럽 감염만 아니었으면 오늘의 상황까지 왔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문제는 이단과 동성애에 있었던 것이죠. 어떻든 간에 코로나 백신과 완벽한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위드 코로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보다 코로나를 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답을 주시고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이걸 믿고 하나님의 답을 가진 사람만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퍼스트 리더가 되고 선제적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 역시 이번 코로나 위기 때도 선험적 리더십을 발휘하였고 우리 교회도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해 왔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다 한 마음을 품고 하나 되었기 때문에 이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위기 상황이 계속 될 것 같은데,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위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교회적 리더십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처한 개개인의 삶의 현장에서도 퍼스트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위기 때 리더가 나온다잖아요. 당신이 그 리더가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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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9
  • [시사칼럼] 작은 자들을 위하여
    2월 2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캐서린 존슨이라는 여성이 10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면서 "존슨은 우리의 영웅일 뿐 아니라 그의 삶과 품위는 전 세계에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그녀가 없었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었을 이정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미 정부는 그녀에게 2015년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으며, 그 일대기를 소개한 소설은 2016년 영화화되어 이듬해 유수의 상을 휩쓸었는데 일반 개봉에 앞서 당시 오바마 대통령도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특별시사회까지 열었던 그 제목이「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입니다. 천재적인 수학자였지만 평범한 계산원으로 묻힐 뻔 했던 한 여성이 소련과의 우주개발경쟁에서 우주선의 정확한 궤도와 이착륙지점을 계산해내는 혁혁한 공을 세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흑인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이중적인 차별과 그로 인한 분노와 아픔을 800m 떨어진 <유색 여성 전용 화장실> 같은 상징적인 장치로 깊은 여운 속에 담았습니다. 캐서린 존슨 한 사람 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은 차치하고라도,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능력과 소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얼마나 많은 '히든 피겨스'가 있었을까요? 아니,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차별은 차치하고 성적 추행과 같은 피해에 시달리면서도 침묵을 강요당했던 얼마나 많은 '히든 피겨스'가 존재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다고 하는 우리 사회를 바라봅시다. 얼마 전 최대지방자치단체장의 극단적인 선택이 온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에 상당히 훌륭한 시정을 펼쳤던 인물이었던지라 놀라움이 컸고, 자신의 여비서와 관련된 성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초래된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습니다. 이번에는 가해자의 사망으로 끝이 났지만, 그러나 그 동안 성적 피해자가 2차 가해에 시달리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억울하게 숨진 여배우 J 사건은 아직도 미궁 속에 있고, '별장 성접대 사건' 가해자들은 풀려나온 반면 피해 여성들이 보상이나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가 없질 않습니까? 자크 라캉은 여성을 '전체가 아닌(Not-All)' 존재라 불렀습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배제된 타자(他者)라는 뜻이며, 물질중심적이고 소비지향적인 욕망의 구조 속에서 때로는 성적 환상으로만 대접 받는 현실을 고발하는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social minorities)'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절대적인 숫자가 부담스럽다면 성경적인 표현대로 "작은 자(elakiston, minimis, 마 25:40, 45)"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the least)"까지도 배려하는 말씀과 행위를 보이셨건만, 그러나 우리는 명백하게 통전적(holistic)이어야 할 하나님 나라조차도 남성 위주로 형성된(King of God) 그런 신학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이사시 디아즈(Isasi Diaz)는 '킹덤' 대신 '킨덤'이라는 표현을 제시했고(Kin-dom of God, Mujerista Theology, 2004), 피오렌자(Fiorenza) 같은 이들은 '왕국(Kingdom)' 대신 '바실레이아'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자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Discipleship of Equals, 1993). 세상의 티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바라봅시다(마 7:3-5). '그루밍(grooming) 성범죄'가 교회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동물이 털을 쓰다듬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 말은 친분이나 보호 관계를 이용해서 저지르는 성범죄, 즉 최근의 'N번방' 등에서 거론되는 표현이라 교회에서 등장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극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교회만큼은 여성을 향한 비하나 모욕적인 표현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청정지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사회 전 분야에서 이른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깨져가는 등 여성의 지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비해 신학과 목회 현장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고 나아질 기미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교계 행사에서 여성도를 아직도 '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커피는 당연히 여성이 타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말입니다. 십자가 작은 핏방울이 교회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여성을 비롯한 작은 자들을 위한 교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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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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