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10
    새해를 맞으면서 가장 많이 듣고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바뀌지 않는 표현이다. 조금 다르게 ‘새해 복 많이 누리세요’로 말하면 어떨까? 그런데 누리는 것도 마냥 간단하고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오래전 가난한 유학시절 월세를 아끼려고 위험지역에 방을 구했다. 그런 까닭에 늘 긴장하며 살았다. 100여 미터만 걸어가면 아름다운 미시간 호수와 고운 백사장이 펼쳐지지만 한번도 누리지 못하고 산 후회와 아쉬움이 있다. 아무튼 잠잠히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많은 복을 받고 이 땅 위를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께서 주신 복을 진정으로 감사하며 이를 제대로 누리고, 나누며 사는 새해가 되었으며 좋겠다. 우리가 아무리 아쉬워하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아 되돌리고 싶어도 이제 2023년도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나 처럼 새해가 되면 광음과도 같이 빠른 시간의 흐름을 탄식하며 보낸 경험이 수없이 많았지만 작심삼일만큼이나 후회 없는 삶은 항상 어려운 숙제로 남아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주께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간을 주셔서 다시금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신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2024년은 과거를 반면교사를 삼아 시행착오를 줄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실 놀라운 은혜들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한해를 힘차게 맞이하고 나아갔으면 한다. 유난히 지난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자연재해가 많았다. 우리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당연히 파생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은 해를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즉 처처에서 아픔과 절망이 계속되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고통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지금 하나님의 평강과 회복의 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의 예배와 찬송이 더욱 더 생명력 있게 드려지고 불려 져야할 확실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이를 계기로 펜데믹 이후 힘들어 하는 한국교회 공동체의 영적 재건의 필요성이 보다 절실하다. 마치 느헤미아가 무너진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힘을 모아 온전히 수축한 것처럼 우리 역시 절박함으로 마음과 손을 모아야 하겠다. 진심으로 새해에는 느헤미아의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며 노래한 그 찬송이 우리의 노래가 되어 주의 은혜로 이 땅 위에 진정한 평화와 회복이 이뤄지기를 소원해 본다.
    • 오피니언
    • 칼럼
    • 교회음악칼럼
    2024-01-15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 1838-1913). 세브란스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오늘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인 세브란스 병원은 사실상 세브란스의 후원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기여와 공헌을 기리며 의료시설이나 병원에서 세브란스라는 이름은 널리 원용되었고 부산에도 세브란스라는 이름이 포함된 의료 기관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세브란스가 걸어갔던 거룩한 여정에 대해서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경제학자인 김학은 교수에 이해 세브란스의 전기가 출판된 것은 경하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글의 중요한 정보는 이 책에서 얻은 것이다. 세브란스는 석유 산업가였고 자선가로 일생을 살았고, 특히 선교를 위해 통 큰 기부를 했기에 그는 ‘선교 자선가’(missionary philanthropist)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자선의 정신은 당대로 끝나지 않고 그후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아들 존 롱 세브란스(John Long Severance, 1863-1936)는 선대의 정신을 계승하였고 ‘세브란스 존 엘 기금’은 지금도 매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이자를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통 큰 기부의 주인공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를 기억하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에 속한다. 세브란스 씨는 1838년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출생했다. 그와 석유산업에 이름을 떨쳐 석유왕으로 불린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 1839-1937)와는 친구사이였고 함께 일한 일도 있다. 세브란스씨가 석유산업을 시작한 것은 1864년인데, 당시 링컨 대통령 통치기였다. 그는 친구인 록펠러와 함께 1870년 스탠다드석유회사(Standard Oil Company)를 설립했고, 26년 뒤인 1896년 스탠다드석유회사에서 사실상 은퇴하게 되는데, 그는 사업가로 성공했고 그는 자신의 재물을 공공의 익을 위해 기꺼이 기부하는 자선사업가로 명성을 얻었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그는 1900년 서울에 현대식 종합병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2만5천달러의 거금을 기부하여 1904년 병원을 준공하였는데, 이 병원은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이었다. 여기서 시작된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과대학이었다. 그는 또 3만 달러의 의과대학 건물을 기증하여 1913년 준공할 수 있게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한국을 위해 기부하고 있지만 이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의 좌우명이 “내가 주는 기쁨이 여러분이 받는 기쁨보다 더 크다”(You are no happier to receive it than I am to give it)는 것인데,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의미 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후원은 한국뿐일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세브란스 씨는 한국을 포함하여 만주, 중국, 일본, 태국, 버마,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전 대륙으로 확산되었고,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후원을 약속하고 미처 이행하지 못한 미지급자선 명세표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그의 자선이 얼마나 광범위 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고 김학인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1900년 전 후 미국북장로교(PCUSA)선교본부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 한국선교부의 절실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적절이 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세브란스 씨가 앞장서 거금을 기부하여 한국 선교사업의 물줄기를 트는데 기여하였고, 한국에서의 의료사업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 때가 1907년 8월이었다. 그는 8월 26일 만주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는데, 그의 나이 70세였다. 이때 세브란스 씨는 32세의 젊은 주치의 알프레드 어빙 러들러 의사와 동행했는데, 1907년 1월 28일 고향인 오하이오 클리버런드를 떠나 세계일주여행을 떠난 지 7개월 되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서울, 평양, 선천, 재령을 거쳐 서울 인근을 거쳐 대구 부산을 방문하였다. 한국에서 3개월간 체류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이후에야 새로 건축된 병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기념되고 있다는 서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브란스 씨는 한국 방문을 통하여 다시 전염병환자 격리병동, 외래병동, 의과대학 교사를 기증하였다. 그 외에도 남대문교회에 예배당을, 새문안교회에 오르간을 기증했고, 당시 부산에 어을빈 부인이 관장하던 규범학교가 있었는데 이 학교 교사도 세브란스 씨가 기증했다고 한다. 부산지방 교회사를 연구하는 필자가 김학은 교수 덕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세브란스 씨의 신념, 확신, 혹은 행동양식을 결정했던 기초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기 기독교 신앙이었다. 2대에 걸친 자선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되다”(행20:35)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었다. 그러했기에 자신의 주치의 러들러 박사를 한국 선교사로 파송하고 그의 선교활동을 지원하기까지 이웃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4-01-15
  • [목회자칼럼] 새해를 맞이해서 파스칼의 말을 기억하며...
    파스칼의 팡세에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이 계셔야 할 절대공간이 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지만 평화(샬롬)를 누릴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 말이 생각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나는 내 속에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려 했는지 돌아보니, 아주 익숙한 성경 이야기에 생각이 다다랐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평생 물고기 잡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물고기를 잡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빈 배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으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니 그물은 물고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베드로가 원하는대로 되었으니, 이제 베드로는 물고기를 팔러가면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빈 배는 고기로 채울 수 있었지만, 베드로의 마음은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를 탈 때, 베드로의 빈 배만 채워주고 싶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빈 마음에 생명을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창조 이후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버린 인간의 마음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빈 공간을 돈으로, 성공으로, 편리로 채우길 원합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해 고기를 가득 잡았을 때, 엄청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심을 보고 그 앞에 엎드리며 “선생님”이 아닌 “주여”라고 부르며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매번 발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죄인됨입니다. 난 마음 속 빈 공간을 부흥이라는 미명 아래 나의 욕망으로 채우려 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나의 성공을 채우려 하지 않았는지... 나의 편안함을 채우려 하지는 않았는지... 고기만으로 만족하는 인생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명자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오늘도 수많은 영혼들이 빈 마음을 채우지 못해 온 울음, 싸움, 경쟁으로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경제 문제, 직장 문제, 관계 문제로 참 행복이 점점 사라지며, 인간은 고단함 속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지난 한 해, 내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일들을 하지는 않았나요? 새해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떠오르는 희망의 태양을 바라보듯, 올해는 분주한 일들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날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빈 마음을 다시 한 번 채워봅시다. 나의 마음 속 빈 공간을 말씀으로 채울 때, 파스칼의 말처럼, 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24년 사람을 세우는 사명자로, 참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4-01-15
  • [서임중칼럼] 오늘의 산타클로스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탄절이다. 또한 함께 따라오는 단어는 당연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다.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주교의 선행에서 기원된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전설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겨울을 따뜻한 소망을 품게 하는 사랑과 나눔의 시절로 데려간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왜 유독 성탄절에만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야 할까? 교회는 365일 성탄절이 되어야 하고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일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는 매일의 성탄절과 오늘의 산타클로스를 생각하면서 목회를 했다. 그것이 내 신앙과 삶이 되고 목회가 되기를 힘쓰며 살아왔다. 2023년도 이렇게 한 해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반추해보니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실패였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오히려 더 좋은 것들도 많다. 매일을 성탄 신앙의 삶으로 살아왔다면 누구나 후회 없는 한 해를 마무리 해가리라. 오늘의 성탄절 신앙의 삶이란 무엇일까?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인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 ‘빙점(氷點)’을 읽고는 보다 더 넓게 관용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젊은 날이 있었다. 특히 빙점의 마지막 부분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생아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은 심한 충격에 휩싸여 이를 비관하며 친모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된다. 삶의 의욕마저 상실한 그는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단하고 추운 겨울날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른다. 높은 언덕에 도착한 주인공은 돌아서서 하얀 눈길 위로 걸어온 자신의 발자국을 바라본다. 순간 놀라운 사실에 전율한다. 분명 자신은 앞만 보고 똑바로 걸어왔건만 눈길 위에 새겨진 선명한 발자국은 비뚤어지고 흐트러져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주인공은 그동안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완전히 용서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고 걸어온 날들이 돌아보면 옳지 않았던 것이 있다. 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오히려 불의한 것들로 발견 된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지난 한 해의 삶의 발자국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고 뉘우침이 앞서는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만과 시기 질투, 게으름과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비뚤어지고 흐트러진 발자국을 남기면서도 우리는 마냥 자신이 걷는 인생길이 바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남을 위하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 했다’는 페스탈로치 묘비명을 생각하며 ‘너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나의 삶’을 살고자 가히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걸어 나온 切磋琢磨(절차탁마)의 삶과 목회를 뒤돌아보면서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을 다시 생각한다. 지나온 삶의 발자국이 비록 온전한 일직선만이 아닌 삐뚤빼뚤 남은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돌아보는 혜안으로 오늘은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삶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매월 1일이 되면 커피와 함께 작은 케잌의 카카오 선물을 보내주는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있다. 1만 5천 원 가량의 그 선물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성탄트리에 걸어놓은 양말에 담아놓은 옛 산타클로스의 선물 방식이 아니라 내 휴대폰에 담겨 있는 상자로 들어오는 매 월초 산타클로스 선물이다. 그 신비로운 작은 선물은 한 달 내내 보내준 이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기도하게 만든다. 어디 그뿐이랴. 매년 추수감사주일을 지나고 나면 과일 한 상자와 선물 봉투를 들고 찾아오는 자식 같은 목사 부부도 있다. 가을이면 햅쌀을 보내오는 장로님도 있고 집사님도 있다. 어촌마을에서 교회를 섬기면서 직접 잡은 고기를 얼음상자에 넣어 택배로 보내는 장로님도 있다. 지역특산품이라며 명절이면 어김없이 보내오는 선물들, 이 모든 이들이 나에겐 오늘의 산타클로스이다. 그 선물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대천 김, 고흥 굴, 영양 고춧가루, 제주 감귤, 안동 참기름, 이천 쌀, 심지어는 영월파전도 있다. 여름 내내 비지땀 흘리면서 가을에 거둔 밀양 얼음골 사과도 있고, 여수 갓김치, 영광굴비, 거제 멸치도 있다. 완도 전복도 있고, 해남 고구마, 포항 과메기, 경주 빵, 진주 참마도 있다. 1년 내내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보내오는 선물들이다. 선물을 받으면 성탄트리에 걸어놓은 양말에 담긴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된다. 감동과 기쁨에 눈물짓고 이래 울고 저래 운다. “그 아픈 몸으로 자비량 집회를 하신 시간을 잊을 수 없고, 그 사랑 그 은혜를 이렇게라도 가르쳐 주신대로 내 분수에 맞는 작은 것이라도 보내고 싶었습니다.” 어느 산타클로스가 보낸 선물과 함께 도착한 메시지는 가슴을 적셨고 울컥 눈물을 쏟게 했다. 뇌 신경암과 투병하면서 은퇴 후 해마다 60여 교회 넘게 농어촌산골 개척교회를 섬긴 그 시간은 또 다른 섬김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보내온 것들을 1년 내내 그들의 이름으로 또 이웃에 나누고 섬긴다. 그것은 나 자신 또한 오늘의 산타클로스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을 위한 나의 고민이며 행복이다. 행복한 고민!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내딛기 벅찬 하루를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어딘가에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내가 그곳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사랑의 고민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고민이다. 그 사랑의 고민은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충만할 때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되면서 풀려진다. “성장이란 자기 결정 능력의 증대”라고 갈파했던 토인비의 말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무엇보다 성탄절을 맞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12월의 성탄이 아니라 매일의 성탄과 기쁨과 감동으로 오늘의 산타클로스가 되기를 소망한다.
    • 오피니언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3-12-20
  • [성서연구] 하나님의 사랑의 경제학
    지난 7월에 깜짝 놀랄 뉴스가 있었습니다. 세종대학교 물리천문학과의 채규현 교수가 장주기 쌍성의 궤도운동에서 뉴턴역학이 붕괴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얻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중력이 약해질 때 뉴턴역학이 붕괴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로서 300여 년간 인정된 뉴턴역학과 100여 년간 인정된 일반상대성이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 일반상대성이론에 기초한 빅뱅우주론도 수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우주에는 많은 양의 암흑물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암흑물질이 필요치 않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미국 천문학회가 발간하는 천체물리학 잡지인 <The Astrophysical Journal> 2023년 7월 24일 월요일판에 온라인으로 실렸다고 합니다. 저는 과학에 문외한이지만, 이 뉴스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뉴턴역학을 진리로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창조 때부터의 원리라고 믿어왔는데, 이것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들과 전혀 다른 파격적 원리들을 발견합니다. 본문에도 그러한 원리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돈 없이 사는 원리>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사야 55장 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정말 놀랍지요? 이 세상의 모든 상거래는 돈을 주고 사게 되어있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 받는 것은 구제나 배급, 혹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구제, 배급, 선물은 물건을 받는 이의 의지가 없습니다. 주는 사람의 의지만 작용합니다. 물론 형편이 어려우면 구제나 배급을 기다리거나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형편이 극단적으로 어렵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대가 없이 무엇인가를 받는 것을 주저할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면 누구나 당당히 대가를 지불하고 받으려 합니다. 그래야 떳떳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돈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 한 번도 없었던 상거래를 제안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 보는 하나님의 제안에 당황했고, 대가를 지불하고 포도주와 젖을 사겠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 자기 의지가 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노력하여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 하나님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중세 때의 어떤 이들은 금식과 고행을 통해 공덕을 쌓으면 하나님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정함을 알지 못한 데서 오는 극도의 교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제안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얻는데,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포도주와 젖>은 하나님의 은혜, 구원, 기쁨과 평안입니다. 이것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그럴 존재가 못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방법은 그 앞에 엎드려 손을 내미는 것밖에 없습니다. 거저 받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게 바로 <돈 없이 사는 거래>입니다. 채규현 교수의 연구가 수백 년 된 과학적 원리를 뒤집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한 번도 없던 거래를 제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사랑>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돈 없이 받는다 해서 우리의 자존감을 짓밟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행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2023년 성탄의 계절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이 사랑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가도 지불할 수 없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의 이 사랑을 마음껏, 죄송해하지 말고, 충분하게, 기쁨으로 누리길 원합니다. 그리고 힘내서 달려가길 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3-12-20
  • [시사칼럼] 선물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에게는 “쿨라(kula)”라고 부르는 독특한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일종의 선물 교환 시스템으로 누군가가 선물을 받으면 제공자가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 선물하는 교환 기부 형태였습니다. 북미의 인디언 중에는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진수성찬을 베풀고 축제를 후원하며 상당한 가치의 선물을 하는 “포틀래치(potlatch)”를 행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족사회를 연구해서 이러한 의미심장한 결과물들을 찾아낸 마르셀 모스(Maecel Mauss)는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평화를 얻기 위해 ‘소유권을 없애기’, 서로 죽이지 않기 위해 ‘축제를 열어 분배하기’, 동맹을 맺기 위해 ‘물건을 희생시키기’”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증여론(Essai sur la don)』(1924), 원문 197-202). 그런데 이런 기부와 후한 인심은 위에서 언급한 지역들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원시 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원래 사치스러운 기부는 경쟁이 아니라 화합을 위해, 경제가 아니라 도덕을 위해, 과시가 아니라 종교적 동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인류학적으로 볼 때 “사치”는 크게 세 개의 범주로 존재해왔습니다. 첫째는 신성한 사치 혹은 속세의 사치로 신들이나 왕들에게 고가의 물건을 바치는 형태를 의미합니다(질 리포베츠키, 엘리에트 루, 『사치의 문화』(2004), 32).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사회적 사치’ 혹은 ‘에토스(ethos)적 사치’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전술한 쿨라나 포틀래치도 여기 포함됩니다. 둘째는 미학적 사치인데, 예를 들면 예술품과 같은 어떤 물건들은 사회적 위상이나 권력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귀한 존재처럼 소개되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로스(eros)적 사치’라고 할 만한 이러한 변화는 중세를 지나면서 르네상스와 근대를 잇는 중요한 하나의 표상으로 작용합니다. 셋째는 감정적 사치 즉 ‘파토스(patos)적 사치’로서 ‘사치의 현대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조짐을 보이다가 20세기 들어 대유행하기 시작한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가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는 파리의 고급 양장점의 총칭인데 해가 지날수록 발전을 거듭해서 1935년 이미 4천 명이 일하고 있던 ‘코코 샤넬(Coco Chanel)’만 해도 연간 2만 8천 점의 작품(?)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샤넬만큼은 아니어도 1956년에 크리스티앙 디올(Christian Dior)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1,200명이나 되었다 합니다(사치의 문화, 48).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디올”이 대한민국의 언론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영부인이 동사의 고가품 가방을 선물 받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유포되면서부터입니다. 그 직후 대통령 내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환영식 광장에 있던 커다란 디올 매장을 우연인지 트럭이 가리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지금 한국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인물은 바로 디올의 최고경영진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해서 디올 제품이 앞으로 불티나게 팔리리라는 예측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했던 프랑스 사상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삼척동자라도 하겠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사는 디올을 입는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면서 디올의 국내 매출액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상승했고(6,139억) 영업이익은 102%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머니투데이, 2022.6.5). 우리는 신이 인류 최대의 선물인 “성탄(聖誕)”을 안겨준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성탄은 석가나 다른 성인들의 탄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물론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참된 의미의 성탄은 창조주가 영원 전에 나시고 영원 전부터 함께 하신 독생자를 아낌없이 인류를 위해 내어주신 사건이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세속적 사치나 미학적 혹은 감정적 사치를 위해 내어준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면서 바치는 뇌물이 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이 선물을 이 땅에 투척한 이유 또한 원시 사회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을 불태우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던 행태와도 달랐습니다. 절대존재이기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따위의 이론이 적용될 여지도 전혀 없었습니다. 성탄은 창조주의 무한한 호의의 결과요, 지고지순한 순수의 산물입니다. 모스는 원시사회를 분석하며 “선물의 교환은 풍성한 부를 만든다”(증여론, 165)고 했지만, 성탄이야말로 스스로를 다 내어주면서 모든 사람을 풍성하게 만든 유일무이한 선물이었고, 지금도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3-12-20
  • [은혜의말씀]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 1:26-38)
    예수님의 탄생은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꼭 열 달 전에 이 엄청난 일을 혼자서 다 겪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지요? 마리아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다” 예고했을 때 마리아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처녀가 임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천사에게 따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할 때 마리아는 겸손히 순종합니다. 그는 천사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지녔던 믿음이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천사가 한 말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 때 마리아의 나이는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셉과 정혼을 한 사이지만 아직 어린 처녀 아이입니다. 그런데 잉태가 웬 말입니까?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한 이래 들어본 일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38절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기적의 하나님인 것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기독교 교리 중에서도 핵심교리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육신의 아버지와 육신의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탄생하셨습니다. 요 1:14 뭐라고 합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전에 벌써 그와 같은 일을 예언했습니다. 사 7: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은 기적을 믿으세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면 우리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그런 기적의 얘기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기적을 믿을 뿐 아니라 기적을 기대해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가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그렇게 기적을 믿고 사는 것이 복 된 삶입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니라.” 했지요.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며, 여러분 모두가 기적이 상식이 되는 그런 축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3-12-20
  • [목회자칼럼] 하나님의 선한 손길
    꿈자리가 사나울 때는 어떻게 해야될까? 속 시끄러울 때는 무엇을 해야할까? 꿈자리가 사납고, 일이 종잡을 수가 없을 때, 그 때 주께서 간섭하신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다할 때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역사하신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코너에 몰리고, 힘겨울 때 주께서 숨통을 틔워주신다. 구약성경에는 이방 왕들의 꿈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을 볼 수 있다. 바벨론 포로시절에 개인적으로는 출세하여 수산궁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던 느헤미야는 고향 예루살렘이 황폐해진 것과 무너진 성벽소식을 듣고는 수일을 슬퍼하며 금식 기도하는 중에 아닥사스다 왕이 그의 소원을 묻고 느헤미야는 왕 앞에 황망한 중에도 막간 기도를 하며 왕께 아뢰니 하나님의 도움의 손이 역사하셔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총독으로 파송 받고, 건축 자재를 얻고, 특별조서까지 받았다. 나라의 결재권자는 왕이지만 역사의 최종 결정권자는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에스더는 민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하수에로 왕의 눈을 열어 왕에게 부름 받지 못한지 30일이 지난 에스더를 예쁘게 보게 하였고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만큼 사랑하는 마음을 주었다. 다급한 가운데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에스더는 내일 잔치에 오라고하는 여유를 부릴 때는 그 믿음의 배짱이 대단하다. 어느 날 밤,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역대일기를 읽는 중에 모르드개가 암살음모에서 왕을 구한 것을 알게 되고 대반전이 일어나서 하만을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을 구했는데 위기의 때에 이방왕의 마음을 움직인 분은 하나님이시다. 요셉은 꿈꾸는 아이였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는 반대로 돌아갔다. 살아서 나오기 힘들다는 왕실의 감옥에 갇힌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총리가 되어서 가족과 민족을 보호하였다. 바로 왕은 요셉을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받은 사람으로 인정을 하였다. 다니엘은 그 시대에 최강 제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쓰임 받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어린 시절 이국 만리 포로로 끌려간 아이가 다니엘이다. 패배감, 절망감, 열등감, 수치감에 살아갈 팔자였지만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멀고도 험한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집에 가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의 루틴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도할 때마다 더 어려워졌다. 왕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사자 굴에 투옥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기에 모든 지혜자들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마저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다니엘의 꿈 해석으로 친구들도 살고 뜻밖에 그는 총리가 되어서 정권이 바뀌는데도 세 번이나 총리가 되었다. 모두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부와 부흥되지 않는 교회의 공통점은 영감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 영감이 없고, 성령의 영감(Inspiration)이 없다는 공통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생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주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주께서는 꿈을 통해서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꿈이라도 꾸어지면 언젠가 실제상황이 된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꿈이라도 빵실하게 꾸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꿈도 없고, 소원도 없고 “냅둬 이래 살다 죽을란다” 성도는 긍정, 낭만, 진취, 발전, 소망의 꿈을 꿔야 된다. 잠꼬대라도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된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100%, 사람100%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부간에 존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도시를 사랑하라. 성경 곳곳에는 이름도 없고 힘도 없는 여인들의 믿음 찬 모습이 나온다. 이방 모압 여인 룻의 신앙과 하나님의 우연한 인도로 재혼 후 다윗 왕통 출생,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결단으로 인한 온 가족 구원, 자식이 없음으로 통곡하며 오래 기도한 한나에게 이스라엘 최고 멘토 사무엘 주심,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외딴집에 살던 헤벨의 아내 야엘... 신앙생활에는 5기가 있다. 언약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대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쉬지 말고 기도하면 기념비적인 기적이 일어난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3-12-20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호주선교부의 미우라 고아원 출신 김순복 여사2
    호주 장로교의 커를 의사를 따라 진주로 이주하게 된 박순복은 남편 박성애 조사와 함께 커를 의사가 준비한 진주면 성내4동 정경철 씨 소유의 초가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곳이 호주선교부의 첫 거점이 되었고, 바로 이곳에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처음에는 거주지에 주택 한 켠에 서적고를 설치하고 성경 보급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시작이 되어 1905년 10월 22일 진주교회가 탄생했다. 이 교회가 진주지방 첫 교회이자 서부경남지방 첫 교회가 된다. 1906년에는 대안면 2동에 8칸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동하였고, 1916년에는 도동면 옥봉리 비봉산 아래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전했는데, 이때부터 옥봉리교회라고 불리게 된다. 이곳에서 커를 의사를 도와 진주지방 첫 근대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개교식은 1906년 4월 15일 거행되었고, 첫 입학생은 21명이었다. 학교 이름은 안동남학교였다. 설립자 겸 교장은 커를 선교사, 교감은 김경숙, 학감은 박성애, 교사는 안헌이었다. 안헌(安憲, 1886-1946)은 후에 안확(安廓)으로 개명하는데, 후일 그는 마산 창신학교 교사가 된다. 일본에서 유학 한 이후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문명개화론을 주창했던 인물이었다. 또 그는 국문학자이자 역사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 학교의 교과는 성경,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체조, 창가, 그리고 영어였다. 남학교가 설립된 지 4개월 후인 그해 8월, 커를 선교사 부인 에셀 커를의 주도로 사립 정숙학교라는 이름의 여자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때 김순복은 교사기 되었다. 정식 개교식은 9월 3일 거행되었는데 교과목은 성경과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침공(바느질) 등이었다. 학비가 면제되었기 때문에 진주지역 뿐 만 아니라 인근 고성, 산청, 하동 지역에서 오는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설립된 안동남학교와 정숙학교는 1909년 2월 통합되어 사립광림학교가 된다. 각종학교로 인가를 받기 위한 조치였다. 비록 학교는 통합하였으나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누어 수업했는데, 학급은 심상과(尋常科) 4년, 고등과(高等科) 2년으로 편성하였다. ‘심상 尋常’이라는 말은 평범한 것, 보통의 것이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교육제도의 소학교, 곧 초등학교 과정을 의미했다. 1910년 당시 이 광림학교의 교직원은 6명이었고, 학생 정원은 40명이었으나 실제로는 80명 이상 재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부 사립 광림학교는 재정 문제로 1929년 폐교되고, 여자부는 1921년 시원여학교로 개칭되는데 이 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9년 7월 31일자로 폐교되고 만다. 진주에서 첫 근대의료 기관인 배도병원이 설립된다.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는 1906년 6월 병원 설립 기금으로 825 파운드를 진주로 보냈고, 커를 의사는 1907년 12월 병원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되어 현재의 진주교회 뒤편 삼전아파트 자리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진주지방에서의 병원 설립의 시작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커를의 조사였던 박성애와 부인 김순복 여사가 동역하였다. 1910년 10월에는 병원 건축을 시작하였고, 1913년 11월에는 50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런 학교와 병원 설립의 뒷바라지를 한 이가 김순복 여사였다. 남편 박성애 조사는 191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5년에는 진주교회 장로가 된다. 1917년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1월 목사 안수를 받고 진주교회 첫 담임목사가 된다. 따라서 김순복은 남편을 도와 목회자의 아내로 살게 된다. 그런데 광림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순복은 평양을 다녀온 남편 박성애 목사의 주선으로 김 마리아 등이 조직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여 진주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추대되었다. 김순복은 진주지방의 여성동지를 규합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 모금과 항일광복운동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1919년 11월 28일 서울에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이 발각되어 전국 조직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 수감되었는데 진주의 김순복도 박보렴, 박덕실(朴德實)꽈 함께 체포되어 대구 지방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 때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19년 12월 19일자 등에 보도된 바 있다. 박순복 여사는 목사의 아내로서 민족과 애국, 독립운동에도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편 박성애 목사가 1920년 창원교회로 이동하게 되자 박손복 또한 창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창원여자야학교’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때의 헌신이 널리 알려져 1922년 8월 8일자 「동아일보」는 ‘박순복 여사의 열정’이라는 기사를 게재하여 그의 봉사를 기념하였다. 이상과 같이 독립운동과 애국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김순복 여사는 2021년 3월 1일에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처럼 고아 소녀로 성장했으나 호주선교부의 사랑으로 양육을 받았고, 부산과 진주에서 개척자의 길을 가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김순복 여사는 55세를 일기로 1942년 10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2-20
  • [소강석칼럼] 국기원에서 태권도를 재발견하다
    얼마 전에, 우리교회에 출석하시는 최규옥 회장님이 점심을 초대하여 갔습니다. 거기는 이수성 전 총리님이나 백성학 회장님 등 여러 고명하신 분들이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함께 자리를 했던 우리교회 협동장로이자 국기원 원장이신 이동섭 장로님이 국기원이 이곳에서 가까우니 잠시 방문을 해 줄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사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의 메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인들에게는 바티칸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도 같은 곳이죠. 차를 타고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는데 태권도의 위엄이 벌써부터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국기원은 김운용 초대 원장에 의해 1971년 겨울 강남의 언덕배기에 기공식으로 시작된 곳인데요. 본관은 한옥의 멋과 풍류를 고스란히 반영한 건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청와대를 본떠서 지붕이 청기와로 덮여 있었습니다. 본관 앞에 도착하니 210개국의 국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210개국의 2억 명이 넘게 태권도 수련을 하였고, 1100만 명 이상의 유단자와 20만 명 이상의 사범이 배출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태권도를 통해서 210여개국 이상에 정신적, 무도적 영향을 미치고 지배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섭 국기원 원장님의 안내로 박물관 관람부터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2천 6백여 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국내와 세계의 주요 대회에서 시상한 우승컵, 상장, 메달, 우승기 등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동섭 장로님은 “목사님이 지금까지 몰라서 그렇지, 국기원 원장 자리는 가톨릭으로 말하자면 교황과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저야말로 태권도의 교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저는 교회에서 늘상 보던 장로님과 국기원에서의 장로님이 사뭇 다르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거인 앞에 제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로님은 국기원 원장실로 저를 안내하시더니 먼저 기도부터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의 기도가 마치자, 장로님께서는 태권도의 C.I.를 비롯해 수련의 목적을 설명하였습니다. “태권도는 단순히 무술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신 수련과 인성교육에 더 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쌓이는 정신 수양은 인의와 예의, 관용과 생명, 인격, 인내력과 의협심을 가져다주고 덕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인격을 완성하게 해줍니다.” 이런 태권도의 황제인 이동섭 장로님이 20대 국회의원으로 계실 적에 국회의원 225명의 서명을 받아 태권도를 대한민국의 국기로 지정하는 법을 만드셨습니다. 한마디로 국기 태권도를 법제화한 것이죠.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면, 중국이 태권도의 동북공정을 할 뿐만 아니라 일본은 올림픽 경기에서 태권도를 제외시키고 가라테로 교체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국기 태권도법을 입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거인을 옆에 두고도 저는 이제야 거인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아, 내가 왜 국기원을 방문하지 않았던가. 진작 국기원을 방문하였을 걸...” 국기원 수련장을 둘러보니 전국에서 모인 수련생들이 대련(시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워낙 시골 깡촌에서 자라서 태권도 도장에는 한 번도 못 가보고 학교 운동장에서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빨간 띠까지는 읍내에 있는 관장님이 학교로 오셔서 심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품새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대련에서 누구에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검은 띠를 딸 때가 되었습니다. 사범님으로부터 예비심사에 합격을 하고 읍내에 가서 관장님 앞에 심사만 받으면 검은 띠를 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단자가 되려면 그때 당시 심사비를 꽤 많이 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어머니가 절대로 유단증을 못 받게 하였습니다. “검은띠는 큰 형으로도 족하다. 너는 어딜 가나 누구에게도 안 맞고 다니지 않느냐. 태권도만 잘하면 되지 검은띠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너까지 검은 띠를 따게 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저는 실질적으로는 유단자였지만 심사를 못 봐서 검은띠를 못 땄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죽기 살기로 도전을 했더라면 뭘 못했겠습니까? 제가 마당에 엎어져서 뒹굴고 엉엉 울어댔으면 어머니도 어찌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태권도 말고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 백일장 대회나 웅변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오는 것으로만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제가 국기원에서 공인 9단이요, 세계 태권도의 교황 앞에 서서 제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히 옛날에는 안 맞고 다니고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만 배우려고 했던 태권도가 심신 수련과 인성교육, 덕과 인격 완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가 새삼스럽게 위대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태권V 이동섭 국기원 원장님이 더 거인으로 보였고, 이제는 옛날에 배웠던 태권도를 복습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신 수련과 덕과 인격 완성의 과정을 삼아볼까 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소강석 칼럼
    2023-12-0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