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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칼럼] 봄과 여름 사이의 청춘 연가
    저는 9월에 있을 총회 준비를 위한 지방 순회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은 서울에서 서북지역협의회 리더들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5시부터 시작해서 6시 반부터는 같이 식사를 해야 하는데, 제가 초청을 해 놓고 식사를 못했습니다. 왜냐면 63빌딩에서 있는 남진 장로님 55주년 헌정 앨범 콘서트에 참석하여 유일하게 축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헌정앨범 콘서트 자리에 본인이 새에덴교회 장로라고 소개하고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유일하게 축사를 받고 싶다고 하는 남진 장로님의 신앙이 더 별처럼 빛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무대에 올라가서 “불멸의 전설, 영원한 오빠,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남진의 55주년을 함께 축하합시다”고 하자 축사가 끝나기도 전에 청중석에서 “오빠”하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헌정 콘서트가 시작하자 남진 장로님의 젊은 시절부터 영상이 나오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후배가수들이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항조씨가 ‘울려고 내가 왔나’를 부르자, 제 옆에 있는 미연방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 장로님이 옛날 사귀는 여자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가수협회 회장 이자연, 알리, 서문탁, 육종완밴드 등이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재해석을 하여 각양각색의 느낌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어찌 트로트의 제왕, 남진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노래를 듣고 있자 저도 한 번 남진 장로님의 노래를 가장 근사치로 부르고 싶은 욕구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수’를 비롯해서 ‘가슴 아프게’라든지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확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운도씨가 나와서 ‘모르리’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역시 트로트의 레전드답게 거의 근사치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내가 안 나가기를 잘했다.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헌정 콘서트의 주제는 ‘당신을 노래 합니다’입니다. 우리나라 가요계 역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제가 남진 장로님의 뒷모습을 보니까 청년의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후배들이 헌정해주는 노래를 들으며 함께 박수를 치며 그렇게 행복하게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가슴을 더 찡하게 하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팬들의 축하 영상 시간에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는 한 중노년의 여인이 나와서 축하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젊은 시절부터 남진 장로님의 광팬이 되어 좋아하자 남편분이 얼마나 시샘을 하고 싸웠겠습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남편이 여자를 인정해주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헌정 콘서트에 남편과 같이 오고 싶었는데 이미 남편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당신도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가슴이 찡한 것입니다. ‘음악이란 것이 이처럼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순서에 남진 장로님이 후배 가수들과 함께 ‘나에게 여러분이 있다면’노래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이처럼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가수가 우리 교회 장로님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 안수집사님들이 ‘나에게 새에덴이 있다면’, ‘나에게 소목사님이 있다면’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이선희가 부른 ‘청춘’이라는 노래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 청춘 노랠 불러본다” 저도 봄과 여름 사이의 시절에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주를 하던 청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그런 시절을 지나 지금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고, 또 언젠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서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때가 되었을 때 후배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존경해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전성기로 올라가고 있고 대부분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하고 박수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저의 전성기가 지나고 인생의 겨울을 맞을 무렵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을 때도 우리 교인들로부터,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인가 생각해 본 것입니다. 지금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는 저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를 대비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삶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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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8
  • [성서연구]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 왕국 유다의 말기에 활동했습니다. 그는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의 말발굽 아래 무너지는 처참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피를 토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지만, 모두 듣지 않았습니다. 애굽을 통해 바벨론을 견제하려던 그들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예레미야를 미워했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유다를 징벌하는 일시적 채찍이었고, 하나님께는 유다를 구원하여 돌아오게 하실 계획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귀를 기울여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고,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은 남 왕국 유다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그토록 의지하던 애굽, 그리고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다메섹과 블레셋, 게달과 하솔, 엘람에 대해서도 예언했고, 나중에는 소위 <세계의 망치>(렘 50:23)였던 바벨론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해서도 예언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유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전 세계 열방을 다스리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열방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제왕과 통치자도 하나님의 손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당시는 바벨론이 강성해서 주변 나라들을 침략하여 휩쓸던 시대였습니다. 근동 전체가 전쟁과 멸망의 공포에 빠져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왕들과 백성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하면서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서로 동맹을 맺어 적을 방비하려 했고, 혹은 이웃 나라가 침략을 당할 때, 돕기는커녕 침략하는 나라의 편에 서서 함께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은 멸망해도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혼란기, 다양한 해법과 의견이 분분할 때,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입니다. 예레미야 49장 20절은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고 하십니다. 그 누구의 의도나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에돔에 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의 생각도 무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알고 거기에 맡겨 따라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할 이유에 대해 말씀한 바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은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믿음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저도 오늘 우리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코로나 사태, 부동산 문제 등으로 촉발된 국민의 불안과 우리 경제의 미래,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으로 인한 안보, 한국교회의 미래, 차별금지법과 사학법 개정안 등이 가져올 불안한 미래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전문가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진 후에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적이 많아도 하나님의 뜻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안전할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인간적 해결책을 강구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꾸중하는 데 있다면 우리는 달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해법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구하고, 거기에 순종할 준비를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여겨집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구원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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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8
  • [시사칼럼] 룬샷
    21세기에 ‘유니콘’이 살고 있습니다. 전설 속 뿔 달린 말이 아니라,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진 쿠팡이나 위메프 등 11개 기업이 있고, 전세계에는 현재 586개가 유니콘 기업에 해당합니다. 최근 10-20대 취향을 저격하면서 입점 브랜드만도 5,000개를 돌파하고 700만 가입자를 자랑하는 ‘무신사’를 예로 들어 볼까요? 연평균 성장률 45%를 기록하며 2019년 11월 유니콘으로 지목된 무신사의 기업가치(2조 2,000억)는 굴지의 신세계(2조 6,000억)과 맞먹습니다. 물론 이들 유니콘 기업에 음영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거대하고 새로운 조류를 타고 있는 주인공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최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방위에서 개별 주체들의 의중과 관계없이 엄청난 변화가 예고되고 있고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지각 변동이 태동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물리학자 출신으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자문위원을 거쳤고 지금은 신약업체의 대표로 재직 중인 사피 바칼(Safi Bhacall)은 <룬샷(Loonshots)>이라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제목 그대로 일견 ‘미친’(loon)것처럼 보이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힘”이라는 주장으로, 코로나의 선지자로 불리는 빌 게이츠가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2020, 흐름). 바칼이 자신의 혁신 이론에서 강조하는 것은 ‘구조의 변화’입니다.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이를 정신 나간 의견으로 배척하는 구조라면 결코 작금의 위기를 타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가 말하는 여러 사례 중 대비되는 두 가지를 인용해 본다면, 휴대폰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는 다중앱 기반을 내놓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묵살한 결과 몰락했고, 자체 스마트폰을 시도하다가 애플과 삼성에 밀려 실패했지만 참여한 직원들을 오히려 승진시킨 아마존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969년 인류가 달착륙에 성공하자 이를 두고 “문샷(Moonshot)”이라 했는데, 사칼의 주장대로라면 룬샷이 문샷이 될 수 있는 구조야말로 신인류의 새로운 연착륙을 위한 핵심이 되겠습니다. 향후 한국 교회도 거대한 변화에 직면하고 익숙하지 못한 국면들을 조우하리라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룬샷”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그러한 “룬샷”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생각해 보면 성경이야말로 격변의 시대에 일종의 룬샷을 제시한 인물들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다수파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혹독한 고초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아예 “네가 미쳤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들어야 했지요(행 26:24). 하기야 예수님조차 “미쳤다” 소리를 듣지 않으셨던가요?(막 3:21) 성경과 양심에 기반을 두고 혁신을 외치는 아이디어라면 허튼 소리로 여기지만 말고 일단 경청하고 토론하는 구조의 변화가 절실한 때입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광야의 목소리가 되거나 광인의 목소리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룬샷이신 예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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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7
  • [부산기독교이야기] 빌리그래함 목사의 부산에서의 집회(2)
    부산에서 일정을 마친 빌리 그래함은 12월 19일, 금요일 대구로 갔고, 선교부가 운영하는 병원과 고아원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전도집회를 열었다. 그 때 포장되지 않는 진흙길, 눈이 녹은 후 질퍽한 길을 돌아 한 고아원에 갔을 때 한 눈먼 아이가 “예수사랑하심”을 불렀는데, 빌리 그래함은 그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었다고 후일 회고했다. 20일 서울로 이동한 그는 25일까지 바쁜 일정을 보냈다. 12월 21일 주일에는 영락교회에서 설교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난방 장치가 없던 그 교회는 아이스박스만큼이나 추웠으나 집회 인원은 1,4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빌리 그래함은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서부전선 중부전선 동부전선에 있는 부대장병을 위한 집회를 인도했는데 장병 7천명이 참석했고, 1천여 명의 장병들이 예수를 영접했다고 한다. 서울 충무로에서의 대중 집회도 했고, 미8군 사령과 밴 플리트(van Fleet, 1892-1992) 장군과도 면담했다. 맥아더 장군이 해임됨에 따라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릿지웨이 장군이 UN군 총사령관이 되자, 밴 프리트는 릿지웨이의 후임으로 미 8군 사령관이 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장군이었다. 12월 25일에는 군 장병들에게 두 차례의 설교를 했고 그들과 같이 식사했다. 그 후에는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 때의 대담 내용과 전도집회 설교가 담긴 음반(Record)이 1953년 초 발매되었다. 그의 설교가 담긴 음반의 제목이 ‘자유가 울리게 하라 Let Freedom Ring’였다. 빌리 그래함이 한국에 체류한 두 주간 동안 통역한 이가 한경직 목사였다. 이 일로 한경직 목사는 그래함 목사와 깊이 교류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듬해 5월 18일 미국을 방문하고 40여 일 간 체류하며 각지를 순회하며 한국의 실상을 소개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를 주선한 이가 빌리 그래함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두 주간은 그에게 소중한 기간이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너무도 많은 비참한 전쟁의 참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지난 30년 동안 흘린 눈물 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 자신이 어린아이로 한국에 왔다가 성인이 되어 돌아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쟁의 아픔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의 집회 경험이 자신을 더욱 성숙한 목사로 키워주었다고 회상한 것이다. 여기서 한국에 6.25 전후 한국과 관련하여 그리고 한국에 체류하면서 선포했던 빌리 그래함의 설교가 어떠했던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빌리 그래함의 설교는 강력한 반공설교였다. 제2차 대전 후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독교를 전 세계로 수출하는 반면,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통제경제, 공산혁명을 수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미국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소련 공산주의를 사탄적인 악의 세력으로 간주하여 영적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 일에 앞장 선 인물이 빌리 그래함이었다. 이런 그의 입장이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대한 설교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그는 정기적인 '결단의 시간'(Hour of Decision)이라는 방송 설교를 했는데, 1951년 9월 결단의 시간 설교에서 한국전쟁은 미국과 영국이 포츠담과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너무 많이 양보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소련군의 북한 지주를 허용한 결과가 전쟁으로 발전했다고 본 것이다. 즉 소련은 불과 5일간 참전하여 일본과 싸우고 북한에 진주하여 공산정권을 수립한 결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본 것이다. 빌리 그래함은 동서 냉전을 아메리칸 메시아니즘(American Messianism)과 소련 메시아니즘(Soviet Messianism)의 대결로 인식했다. 아메리칸 메시아니즘이란 청교도 목사 존 윈드롭(John Winthrop)의 ‘산 위의 도시’ 이념에 근거하여 미국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선민으로서 미국은 세계를 구원할 사명이 있다는 미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소련 메시아니즘은 세계를 자본주의의 악과 모순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공산혁명을 전파하려는 이념이었다. 이런 소련 메시아니즘, 곧 공산주의를 반기독교, 반자본주의, 반미주의(anti-Christianity, anti-Capitalism, anti-Americanism)라고 보았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의 설교는 처음부터 반공주의적이었다. 그는 6.25 전쟁은 이데올로기 전쟁인 동시에 공산주의에 대한 영적 전쟁으로 보았다. 그는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을 지지했고, 소련의 휴전 제의를 공산주의자들의 노림수로 이해했다. 빌리 그래함의 반공주의 메시지가 미국 지도자들의 대한 정책에도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결국 한국의 공산주의를 막는데 일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빌리 그래함의 두 번째 한국 집회가 1956년 2월이었고, 세 번째 집회는 1973년 5월에 있었던 여의도 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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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5
  • [교회학교를살린다] 코로나 이후의 다음세대 교육, 이렇게 준비하라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요즘 세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음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해마다 연초가 되면 서점에 가서 한해의 전망을 예측한 책들을 찾아보곤 한다. 여러 책들을 통해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올해 어떤 게 유행을 할지, 어떤 변화들이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펼쳐나갈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너무나 강렬하고 거대한 변수인 코로나사태로 인해서 많은 예측들이 빗나가고 말았다. 지금껏 세계화를 이끌었던 항공 및 여행관련 산업은 향후 몇 년간 매우 위축될 것이고, 미디어, 유통과 같은 언텍트 산업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뉴스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사태가 진정이 된다하더라도 여전히 교회와 교회학교에서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는 게 매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데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암울한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이다. 이미 교회 안에 교회학교가 많이 사라진 현실과 코로나19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교회들이 향후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화하며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는데 이 변화의 시점에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사고에 멈춰 서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이제는 환경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가뜩이나 교회학교가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을 보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비상상황에서 코로나19는 산소마스크를 빼앗아버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다음세대를 살리고 교회학교를 살리는 일은 이제 결코 교회학교 교사들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교회학교와 다음세대는 선교지이다. 해외선교지나 국내선교지 이상으로 상황이 나쁘다. 교회와 가정의 명운이 걸린 영적 격전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교회 전반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먼저 전교인이 함께 다음세대의 양육자로 참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더욱더 강조되고 있는 신앙의 장인 가정을 믿음으로 세워야 한다. 이제 교회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가 교사의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전교인과 부모와 교사를 신앙의 교사와 양육자로 세우는 양육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유럽과 미주교회들은 세례, 입교 등의 필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모든 이들이 생에 단 한번이라도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필수 교육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결혼 전 예비부부교육, 유아세례 때 부모교육도 함께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교육이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교육과 훈련이 더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정답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교육과 훈련을 모이는 환경에서 뿐만 아니라 비대면, 온라인으로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올해 성민교회는 유치부, 아동부, 청소년부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주일을 활용한 오프라인 모임과 비대면 온라인 두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했다. 주일모임에는 그동안 주일에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이 성경학교, 수련회를 계기로 다시 참여하여 좋았고, 온라인 성경학교와 수련회는 신앙의 공백을 없애주고, 함께함의 동질성과 연대의식을 심어주어 좋았다. 이제는 이러한 투 트랙의 노력들이 교회학교에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수고와 준비가 따른다.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두 가지를 하면 일이 두 배가 아니라 열배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피나는 노력이 있을 때 우리의 다음세대는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갈 것이다. 현실의 파도는 높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신앙 안에서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교회와 교회학교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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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08-25
  • [의학칼럼] 백내장
    ■백내장이란? 우리 눈의 검은자와 홍채 뒤에는 투명한 안구 조직인 수정체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와 매우 유사한데, 외부에서 들어온 빛은 카메라의 렌즈에 해당하는 수정체를 통과하여 필름에 해당하는 망막에 영상을 맺게 됩니다. 렌즈의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어떤 원인에 의해 뿌옇게 혼탁해져서 시력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을 백내장이라고 합니다. ■백내장의 원인은? 투명한 계란 흰자가 열을 받으면 불투명하게 바뀌게 되죠? 이것은 계란 흰자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열에 의해 변성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백내장도 수정체 속의 단백질이 노화나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변성되면서 뿌옇게 흐려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선천성 백내장의 경우 대부분은 원인 불명이며 유전성, 자궁 내의 태아에게 발생하는 감염인 태내 감염, 대사 이상에 의한 백내장도 있습니다. 또한 외상이나 전신질환, 눈 속의 염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백내장도 있습니다. ■백내장의 증상은?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시력이 저하되는 질병이므로 대부분의 경우 시력장애 이외에 별다른 통증은 동반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백내장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하며, 발병 초기에는 특별한 이상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력이 감퇴되고, 빛이 퍼져 보이거나 눈부심 증상,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는 증상, 사물의 색깔이 붉거나 노랗게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의외로 근거리가 이전보다 더 잘 보이게 될 수 있는데, 이는 수정체의 중심부인 수정체 핵이 딱딱해짐으로 인해 수정체의 굴절률이 증가하면서 근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전에 비해 근거리가 일시적으로 잘 보일 수 있는데, 평소에는 잘 안보이던 신문 등이 갑자기 잘 보이게 된다면 눈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실 것이 아니라 백내장으로 인한 증상을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백내장 치료방법? 백내장은 초기>중기>성숙>과숙의 단계로 진행 됩니다. 백내장 발생 초기에는 혼탁의 진행정도가 작아 시력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지만 미숙 백내장 단계로 발전되면 시력저하와 함께 다양한 불편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백내장 초기에는 약물요법을 통해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이미 진행된 백내장이라면 근본적인 치료방법인 수술 적 방법이 우선시 됩니다.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그 기능을 대신 할 수 있는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백내장 수술방법? 백내장 수술은 초음파 기구를 백내장이 발생한 수정체에 삽입하여 분쇄 및 제거 후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이 때 삽입하는 인공수정체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환자의 직업 및 상태에 따라 적합한 인공수정체를 선택하는 것이 수술결과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인공수정체 종류? 인공수정체는 크게 단초점렌즈와 다초점렌즈 2가지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단초점 인공수정체의 경우 원거리나 근거리 중의 한 곳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직업 상 가까운 거리 및 중간거리 작업이 많지 않은 환자나, 사회적인 활동량이 적은 고령층에게 적절하며 수술 후 돋보기 착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에 있는 사물도 잘 보이도록 초점을 여러 개로 맞춰 제작된 것으로, 백내장과 동시에 노안도 교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중초점, 삼중초점, 연속초점 등 거리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렌즈들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굳이 안경이나 돋보기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가까운 거리 및 중간 거리에서 봐야 하는 작업이 많은 직종과 5~60대 젊은 중장년층에게 적합합니다. ■수술 후 관리? 경과 관찰을 위한 정기적인 검진은 필수입니다. 또한 눈에 무리를 줄 수 있는 행동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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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5
  • [은혜의말씀]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왕하6:15-18)
    보통 사람들은, 육안으로만 보며 삽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과 사람들 즉, 사물을 주시하며 결정합니다. 두 번째 눈이 있다면, <마음의 눈> 즉, 심안(心眼)입니다. 즉, 마음의 눈으로 <직관과 통찰>을 통해 보는 눈입니다. 그리고 제3의 눈이 있는데, 그것은 영안입니다. 영안은 영적세계의 눈이요 믿음의 눈입니다. 1. 믿음과 진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믿음과 말씀으로 창조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현실을 볼 때에 믿음의 눈, 진리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들판에서 돌베개를 하고 자다가 상상치도 못하게 하늘 문이 열려 하늘의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 음성을 통해 자기 인생의 앞길에 대한 모든 언약을 듣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2. 영안을 열어서 영적세계를 보게 하옵소서 우리는 닥쳐온 현실의 위기만 보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현실의 위기 뒤에 있는 더 큰 섭리를 영안으로 보아야합니다. (시119:71-72)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1)엘리사의 사환이 본 영적세계(왕하 6: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2)다니엘이 본 영적세계(단10:1-21): 다니엘이 본 영적세계는, 천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가지고 다니엘에게로 내려올 때에, 바사왕국의 군주(즉, 사탄의 왕국의 군주)가 21일 동안 방해하여 막았습니다. 그 때, 천사장 미가엘이 와서 도와주므로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원하는 우리에게 응답을 가져다주지만 사탄 마귀는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세계를 알고 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축복의 눈이 열려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을 보게 하옵소서 1)하나님 아버지의 예비하신 에덴의 축복은, 원초적인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2) 십자가 안에 예비된 전인구원의 축복입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은 자기 조상의 신과 예수 중 어느 신이 참 신인가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여, 어린 영혼에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의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때부터 그는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 했습니다. 3)성령님이 공급해 주시는 예비된 은사 모든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통달합니다. (고전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4. 하늘에 열린 영원한 문을 보게 하옵소서 하늘에 열린 영원한 문은, 영생의 문이요, 천국의 문이요 영원한 하늘나라의 문입니다. 스데반이 본 하늘 문입니다. (행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우리의 영안이 열려지면, 신비한 비밀을 깨닫습니다. 야곱이 본 하늘 문! 엘리사의 종의 눈이 열려본 영적세계! 다니엘이본 하늘의 영적전쟁, 스데반이 본 하늘문! 성도 여러분, ‘주여! 눈이 열려 나도 보게 하옵소서!’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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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5
  • [서임중칼럼] 우리 목사님은 때밀이
    벌써 이십년도 더 지났다 세월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교회연합회가 주관하는 부흥성회 강사로 다녀온 것이 1998년도니 말이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한 세월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성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별 볼일 없고 젊기까지 한 지방도시 목사가 그런 대형집회 강사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골백번을 생각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였다. 마치 하늘 문이 열리고 단비가 내리 듯 집회현장은 성령의 단비가 내렸고 사도행전의 역사가 재현되는 속에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한 기적을 체험하며 기쁨으로 충만했었다. 집회를 마치면 그토록 보고 싶던 이과수폭포 관광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던 관광을 취소했다. 예정에도 없던 목회자 세미나를 2차 부흥회처럼 이어 3일을 인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여행은 할 수 없었지만 그날 그 시간의 감동은 내게 남은 여러 소중한 추억 가운데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그 때 아르헨티나에 걸렸던 플레카드는 <때밀이 목사 아르헨티나에 오다>였다. 어느 목사님이 궁금했던지 가만히 내게 묻기를 “서목사님, 혹시 목사되기 전에 때밀이 했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때밀이하고 있습니다.” 하고 조용히 답했다. 그 분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에 97년도에 출간한 <우리 목사님은 때밀이> 책을 소개하며 그곳에 답이 있다고 했다. 목사의 목회와 목욕탕 때밀이(한국 표준 직업분류상으로는 목욕관리사이며, 세간에서는 세신사(洗身士)로 통용되지만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때밀이’가 표준어다)의 상관 관계를 생각하면서 목회 현장 이야기를 엮어 출간한 책이다. 목욕탕에 갔던 어느 날 하도 힘이 없어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었던 때 겪은 일이 내 목회현장을 가꾸는 참고서처럼 적용되었다. 순서를 기다리던 나는 내 앞의 어르신 한 분이 때를 미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관리사가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때를 밀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야, 임마! 살살 밀어. 아프잖아!” 한다. 순간 청년 때밀이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아! 예, 예, 사장님” 하는데 상기되어 별 말은 없었지만 기분이 상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손님이 미운 생각이 들면서 때밀이 청년이 안쓰러웠다. 땀을 흘리는 때밀이의 상한 마음이 그대로 표출되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님이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야! 임마, 살살 밀라 안하냐! 내가 돼지인 줄 아냐 임마!”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다. 놀란 때밀이는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아, 예, 예” 하면서 다시 때를 미는데, 말 한 마디 없었지만 “그래! 살살 민다, 이 돼지야!” 하는 기분상한 표정으로 때를 밀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불현 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 분이 자기 입으로 무심코 내뱉는 “내가 돼지인 줄 아냐?”라는 말을 듣고 보니 체구가 정말 돼지를 연상하게 하는 거구였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손님 다음이 내 차례였다. 아프기는 아팠다. 그래도 참으면서 그 손님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고는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아파서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벌떡 일어났다. 흠칫 놀란 청년의 손을 잡고 “그렇게 땀 흘리면서 힘들게 밀지 않아도 돼요. 어이구, 이 땀 좀 봐...그냥 편하게 밀어요.”했더니 얼굴이 밝아지면서 “아! 예, 예, 사장님”하는 것이다. “내가 사장이 아니고 목사인데, 나도 당신 같은 동생이 있다. 얼마나 수고하시는가.”라고 했더니 때밀이의 팔에 힘이 조절 되면서 얼마나 살살 잘 밀어주는지 잠이 올 지경이었다. 때를 다 밀고 음료수 한 병을 사서 건넸더니 수없이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던 그 청년 때밀이를 생각하면서 목회와 때밀이의 상관 관계성을 담아 책으로 출간했다. 어쩌면 때밀이가 겪는 목욕탕에서의 희로애락이 목회자의 목회 현장과 흡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목욕탕 운영이 교회의 목회경영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유로 첫째, 때밀이는 목욕탕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둘째, 탕 안의 물은 항상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후 늦은 시각에 가 보면 관리가 안 되는 탕 안의 물은 머리카락과 때 등으로 지저분한 것을 본다. 출입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목사의 설교는 목욕탕 안의 물과 같다. 셋째, 지저분한 목욕탕 내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관리해야 한다. 목사의 심방관리가 이와 같다. 넷째, 목욕탕 안에서 유일하게 팬티를 입고 있는 이는 때밀이다. 목사는 항상 성도들의 눈에 띄게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다섯째, 때밀이는 손님과의 관계에 반응한다. 많은 것을 참으면서 일하지만 손님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반응은 손님에게 그대로 돌아간다. 목사의 목회 현장 교인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여섯째, 때밀이는 주인의 뜻에 순응해야 한다. 목사의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것이 때밀이와 목사의 공통점이다. 교인들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으로 목사를 바라본다. 그래서 쉽게 이렇게도 정의하고 저렇게도 정의하는 목사의 모습은 교인들에게 천태만상으로 비쳐진다. 어떤 이에게는 미가엘처럼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루시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선한 목자처럼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삯꾼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교인들은 자신이 보는 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목사를 정의한다. 그래도 목사는 대꾸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속으로 다스린다. 목사도 한 인간이다. 목사에게도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사생활의 희로애락이 있다. 그러나 그 희로애락을 목사 자신의 마음대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성도와 다른 점이다. 지도자의 표현은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는 위선적인 삶이라 힐난하고, 또 어떤 이는 지도자로서 얼마나 힘든 삶인가 하여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목사는 지도자로서 기쁨이든 아픔이든 그 자체를 또 속으로 모두 관리해야 한다. 어느 목욕탕이든 주인은 쉬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때밀이는 항상 보인다. 교회는 주님이 보이지 않고 목사가 보인다. 때밀이의 좋은 관리로 목욕탕 운영이 잘 되는 것처럼 목사의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으로 교회가 평행감축이 되기도 한다. <우리 목사님은 때밀이>의 목사도 교인도 이것을 헤아릴 때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왕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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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4
  • [성서연구] 참 주인이신 하나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그 자체로도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그 와중에 우리 사회와 교회는 신천지 이단으로 인한 혼란과 놀람을 함께 겪었습니다. 신천지의 폐쇄성과 응집력에 놀랐습니다. 그와 함께 무엇보다 그들이 즐겨 쓰는 거짓이란 도구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신천지를 경험한 이들에 의하면 신천지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거짓은 마귀의 무기입니다. 뱀의 모양으로 나타난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때도 거짓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마귀는 열매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하와는 거기에 속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황당한 거짓말을 교묘하게 하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을 끌고 올라가 천하 만국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마귀는 천하 만국을 자신이 창조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라고 말했는데, 언제 하나님께서 천하 만국을 마귀에게 넘겨주신 적이 있습니까? 천하 만국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마귀에게 내어 주신 일이 없습니다. 또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고 했는데, 어떻게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주겠습니까? 이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자기 것처럼 팔아먹는 것과 같은 거짓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귀의 말에 속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런 일은 권력 주변에서 늘 있어 왔습니다. 과거의 왕은 나라를 자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왕은 원하는 자들에게 마음대로 자리를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했습니다. 혹은 땅과 재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수백 명의 백성들을 노비로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왕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가진 재상들이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매관매직은 이런 데서 생긴 것입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나라는 도탄에 빠지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했던 권력도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각 나라에서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권력층 주변에 불나방들이 모여드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마귀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천하 만국의 모든 권세는 마귀에게 넘겨진 것이 아닙니다. 그 주인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것입니다. 혹시 누구에게, 무엇에게 엎드려서 무엇인가를 얻을 생각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당장에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건 망하는 길입니다. 무엇을 원하신다면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 외의 존재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이며, 믿음의 정절을 꺾는 일입니다. 다니엘은 왕립 학교에 선발된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느부갓네살왕의 권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주신 것에 불과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에게 받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필요하다면 권세도, 명예도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한 것도 다 그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치시니 그가 소처럼 이슬을 먹었고, 진정한 주인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성도의 자존심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권력과 재물과 구조를 쥐고 흔드는 세력들이 있지만, 그들은 느부갓네살에 불과합니다. 하나님만이 참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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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4
  • [통일칼럼] 우리는 어떤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은 영토와 국민, 국가체제와 사람이 하나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추구하는 통일 내용과 목적이 각각 다르다는 점에 있다. 대한민국은 인류 보편적 통일과 통일국가를 꿈꾼다. 분단된 남북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위에서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 남북의 시민 모두가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헌법 4조에서 이 내용을 볼 수가 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 있다. 66조 3항에는 통일과업을 대통령의 의무조항으로 적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인류 보편적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하는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일당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헌법보다 노동당규약이 상위법에 해당된다. 노동당규약 전문에 통일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남북, 필자주)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 고. 북한이 택한 사회주의와 김일성주체사상을 남한까지 확대하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노동당규약 전문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로동당은 전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지지 성원하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고. 남한 땅에서 미국을 철수시키고, 일본과 외세를 배격하고, 북한과 힘을 합해(우리민족끼리) 김일성주체사상의 사회주의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한국사회 안에 내부 동조세력을 조직하여 선동하게 하고, 이들을 지지하고 성원하여, 한반도를 적화통일 하겠다고 노골적인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김일성사상을 숭배하는 독재국가체제로 통일하려는 북한의 통일전략은 김일성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정되고 변한 적이 없다. 일관적이다. 초중고 대학의 모든 교육과정에서도 정치교육이라는 이름하에 김일성주의 민족통일론을 철저하게 세뇌 교육하고 있다. 헌법적 가치를 해마다 설문조사하여 통계를 내고, 통일을 할까 말까, 혹은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나이별로 물어보는 한국의 통일교육 실정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통일 노래를 부르고, 회담을 하고, 문화행사를 하고, 체육대회를 갖지만, 북한정부가 꿈꾸는 통일은 오로지 한국을 공산독재사회주의로 적화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통일을 원하고 있는가? 김일성주의 독재국가인가? 자유민주주의 통일국가인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통일을 위한 기도내용이 더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 교회지도자들의 메시지에는 복음통일을 위한 기독교적 가치를 더욱 자주 강조해야만 할 것이다. 한반도에 복음이 힘차게 울려 퍼지는 자유민주주의 통일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우리 주님도 원하시는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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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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