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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칼럼] 망막의 혈관 질환
    ▲ ▲ 남기엽 교수(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우리 신체에서 혈관을 직접 볼 수 있는 조직이 있을까요? 바로 눈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눈 속의 망막이라는 조직입니다. 물론 검안경이라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지만 피부나 장기를 절개하지 않고 혈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눈의 혈관에도 다양한 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전신적인 질환과 관련성이 있으며 당뇨망막병증, 망막혈관폐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당뇨망막병증은 지속적으로 혈 중에 당 성분이 증가하여 망막의 작은 혈관에 손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망막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이로 인한 이차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출혈이나 심각한 막의 형성을 일으키는 신생혈관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세계적으로 20세 이상에서 가장 흔한 실명의 원인으로 꼽힐 정도로 매우 중요한 질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뇨망막병증은 전신적으로 당뇨병이 발생한 이후 시간에 지남에 따라 가벼운 형태로 발생하여 점차 심한 상태로 진행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광범위 망막 레이저와 같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결국 눈속 출혈, 망막의 박리, 녹내장 등으로 인해 실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심한 상태까지 진행하는 동안 시력 자체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의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당뇨병을 가지고 계신 환자분들은 크게 불편한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안과적 검사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한가지 당뇨망막병증과 관련되어 시력을 떨어트리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당뇨황반부종 입니다. 이는 망막의 작은 혈관 손상으로 인해 원래는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말아야 할 혈장 성분들이 망막 조직으로 빠져 나와 고여서 시력에 가장 중요한 황반 (망막의 중심 부위)이 부어 오르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경우 최근 가장 흔한 치료 방법으로써 눈속 주사 (항혈관내피형성인자항체)를 주로 시행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국소레이저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망막혈관폐쇄는 말 그대로 눈의 혈관이 막히는 질환을 얘기합니다. 혈관에는 동맥 (망막에 피를 공급해 주는 혈관)과 정맥 (망막에 공급되어 산소 및 영양분을 전달한 후의 피를 다시 전신으로 보내는 혈관)이 있는데 어떤 혈관, 어떤 부위에 폐쇄가 발생하느냐에 따라 증상, 예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고혈압이며 이 외에도 동맥경화, 당뇨병, 혈액 질환 등 다양한 질환 들에 의해 망막혈관폐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크게 망막중심동맥폐쇄, 망막분지동맥폐쇄, 망막중심정맥폐쇄, 망막분지정맥폐쇄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망막중심동맥폐쇄의 경우 안과적으로 초응급 상황에 해당합니다. 증상 발생 2-6시간 내에 안구 마사지나 안압 하강 치료 등 응급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구적인 시력 저하가 발생하게 됩니다. 망막중심정맥폐쇄나 망막분지정맥폐쇄의 경우 황반부의 부종이 발생하면 눈속 주사를 주로 시행하고 황반부에 국소적으로 약한 레이저 치료를 시행하기도 합니다.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하며 신생 혈관이 발생하면 광범위 망막 레이저 치료나 폐쇄 부위에 국한된 지역에 대한 레이저 치료를 시행해야 합니다. 보시다시피 작은 눈 속의 망막 혈관에도 다양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눈에 발생한 병변에 대해서는 그에 알맞은 치료를 해서 상태를 개선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망막혈관질환은 많은 경우 전신적인 질환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꾸준한 관리와 조절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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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성경인물탐구] 경건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디모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라는 뜻을 가진 디모데는 모친은 유니게, 외조모는 로이스, 부친은 헬라인인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신앙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자라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진술하면서 이 믿음은 먼저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으며 디모데 속에도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디모데의 신앙이 가정에서 전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가정에서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란 자는 흔들림이 없는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 전수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명기6:6-9절 말씀입니다.<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로이스와 유니게는 이 계명을 지키며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하게 교육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디모데와 같은 경건한 신앙인, 목회자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치는 것은 매우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모든 성도는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의 책임을 인식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바로 양육하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녀를 바로 양육하지 못하여 가정적으로 비극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헬라인 아버지에게서 난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할례 제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정해 주신 것으로 언약 백성임을 증거 하는 징표였습니다. 유대인남아는 태어 난지 팔 일 만에 모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언약을 준수하며 살아간다는 외적 징표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약화되고 유대인들은 외적인 징표 자체를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할례가 없는 이방인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이라는 기계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언약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 부분보다는 할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특권만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을 지키지 않는 할례는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외식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육체의 할례를 자랑하지 말고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디모데는 이미 할례를 받은 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믿음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유대인들의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육체의 할례가 없는 자들을 무시하였으므로 할례가 없는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되었던 것입니다. 디모데가 육체의 할례를 받음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기를 꾀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는 유대인같이 행하고 헬라인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는 헬라인같이 행하는 사도 바울의 선교 원리가 적용된 것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신약에서의 안수 식은 구약에서의 사명 자에 대한 기름부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와 같은 사명 자를 세우실 때 기름부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로서 기름부음을 받을 때부터 하나님의 신이 그와 함께하여 큰 능력과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안수를 받고 평생 동안 목회자로서의 신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안수를 받음은 곧 하나님께 사명 받음을 의미하므로 디모데는 사명감을 잃지 않고 인내로 하나님의 사역을 충실히 감당했던 것입니다. 디모데가 안수 받을 때 예언의 능력을 은사로 받음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 자에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심을 보여 줍니다. 이는 마치 호렙 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킬 사명을 주실 때 능력의 지팡이를 주신 하나님의 역사와 같습니다. 디모데처럼 경건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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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교회학교를살린다]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의 장을 확보하라1 가정
    요즘 아무런 이유 없이 순수하게 근황을 묻는 안부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책에서만 접하던 ‘팬데믹’이란 어려운 외래어를 요즘은 누구나 듣고 알고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많은 교회에서 주일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벌써 삼 주째 그리고 학교 개학이 미뤄진지 두 주째, 간만에 온 가족이 집에만 칩거하고 있다. 주일은 영상예배로 온 가족이 함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교회에서의 모임은 모두 잠정 중단 되었다. 그리고 온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서로 힘들지만 이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전 국민의 일상의 삶을 뒤바꾸어놓았다. 동시에 기독교교육 전문가로서 예상치 못했고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속에서 우리 다음세대들의 신앙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걱정이 많다. 현재의 비상시국 속에서 신앙인들이 신앙생활마저 잠시 멈추면 어쩌나 우려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앙교육을 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의 좁은 신앙생활 영역, 신앙교육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신앙생활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교회를 벗어나서는 신앙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 속에서 만약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정지, 퇴보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모일 수 없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신앙생활의 장, 신앙교육의 장인 가정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원인으로 지목된 이단 신천지에 대한 보도를 보며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실태들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천지 이단에 빠진 청년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놀라웠다. 그런데 신천지에 빠지는 청년들의 경우 대부분 교회 잘 나가던 청년들이었다. 지금도 그 부모님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식을 찾기 위해 시위를 하는 경우도 많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잘 나오던 아이들이 이단 사이비에 빠진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모들은 아이가 교회 잘 다니니까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평소에 대부분 교회에서 어른은 이쪽 성인 예배당, 아이들은 저쪽 교육관으로 분리되어 신앙생활을 한다. 교회 안에서 조차 갈라져서 각자 신앙생활을 하다보니까 자녀의 신앙생활을 부모조차도 잘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대화를 나누어서 자녀의 상태를 늘 체크해야 하는데 각자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의 신앙을 점검하지 못한 것이다. 다음세대가 신앙의 대잇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이 부모와의 신앙적 접촉점을 늘려가는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공유하며 신앙의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같이 교회 예배가 온라인으로 바뀌는 비상시국에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반드시 필요한 신앙 활동 및 신앙교육이 바로 가정예배이다. 성민교회는 사년 째 매주 가정예배를 드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교육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힘이 있다. 그리고 비상상황에는 평소의 준비가 빛을 발휘한다. 그래서 오히려 신앙생활 하기 어려운 현재, 전 교인이 평소에 늘 해왔던 가정예배, 온라인 성경말씀 듣기를 더욱 열심히 하며 이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그밖에도 가정에서 다음세대와 함께 다양한 신앙 활동을 실천해보자. 예를 들면 성경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하는 찬양 메들리 시간, 신앙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홈 시네마 타임, 거실에서 한 가족이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자며 이야기 나누는 가정캠핑도 할 수 있다. 특히나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는 다음세대 자녀가 있다면 반드시 이단 사이비에 대한 경각심을 나누는 만화나 동영상을 한번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위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가정이 신앙생활의 중심 장으로서 다음세대를 믿음으로 살려내고 신앙으로 성숙하게 하는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행복한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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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은혜의말씀] 하늘에 복을 쌓는 비결(마 6:19-21)
    오늘 성경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권고합니다. <하늘에 복을 쌓는 길>은 무엇입니까? 1. 은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고,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신앙행위, 믿음행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1) 은밀한 구제행위(마 6:4)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할 때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합니다. 어떻게 구제행위를 해야 합니까? 은밀한 구제를 하라는 것입니다.(마 6:4) 이것이 큰 상을 받습니다. 2) 은밀한 기도(마 6:6) 은밀한 기도 중에는 참회의 기도, 회개의 기도, 골방의 기도, 아무도 듣지 못하는 기도, 하나님과만 기도하는 방언기도, 탄식기도 등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쉬지 않고 기도함은 하늘에 복을 쌓는 길입니다. 3) 은밀한 금식(마 6:17-18) 은밀한 금식을 하면서 몰래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멍에를 끌러 줄 때, 은밀한 금식을 통하여 하늘에 복을 쌓는 길이 됩니다. 2. 네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나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나의 소유, 나의 재물, 나의 자녀, 나의 명예 아내와 남편 등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면 그것이 바로 하늘에 복을 쌓는 비결입니다. 무디 신학교의 총장을 지낸 조지 스위팅 박사는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묻게 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그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드렸는가? 가 될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총 속에 구원받고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벌어서 모아놓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늘에 쌓았느냐 입니다. (마 6:19-21) 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길 1) 하늘나라를 먼저 구하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라. 복음전파와 천국확장에 헌신해야 합니다. (마 6:31-33) 2) 조국을 먼저 사랑하라. 예레미야의 조국 사랑처럼 우리 성도들은 쉬지 않고 눈물로 기도하고 목숨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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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목회자칼럼] 죽을병과 면벽기도
    사람들은 반복되는 역사와 그 시대의 인물들을 통하여 배운다. 역사속에는 닮은꼴의 모습들이 종종 나타난다. 구약 성경에 히스기야 왕의 역사를 보면 오늘 이 시대와 비슷한 모습을 엿볼수 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히스기야 왕을 협박할 때에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하였다.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5천명을 치니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이 되었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그 사자는 생쥐였다고 한다. 적진에 쥐가 나타나서 전염병을 퍼트리니 하룻밤 사이에 대적들을 다 죽게 만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왕따가 되고 해외 도처에서 기피대상이 되었다. 온 국민들이 자가격리 상태가 되니 포위 당한 예루살렘과 그 시대에 생쥐가 퍼트린 전염병과 흡사하다. 히스기야는 어려울 때에 사람을 원망하거나 시대를 탓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마치 야곱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다 해도 안될 때 마침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독대, 직고 하였듯이 히스기야 왕도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 성전에 나아가서 주께 부르짖었다. 주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히스기야는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호사다마다. 히스기야가 승전고를 울리며 기뻐할 그 때에 죽을 병이 걸리게 되었다. 승리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확실한 예언을 선포했다.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하시며 15년을 더 살려주셨다. 신약 성경에서 나사로가 죽을 병이 걸렸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선포하시며 고쳐 주셨듯이 히스기야의 죽을 병도 그의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고침을 받았다. 그때 히스기야는 기도할 때에 면벽 기도를 하였다.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며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멀리하고 벽을 향하여 오직 주님과 독대, 직고하였다. 오늘 이 시대에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두려워서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밥도 벽을 향하여 앉아서 혼자 먹는다고 한다. 비슷한 풍경이다. 기도는 세상 줄 끊고 주를 향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중에 동네방네 다니시며 각색 병든자들을 고치시는 분주한 일정중에서도 홀로 밤에 산에 올라 하나님 아버지와 단 둘이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히스기야가 전쟁에서 대승을 하고 죽을 병에서 살아나고 그야말로 인생의 대박을 쳤다. 그 때에 변방의 작은 나라 바벨론의 사절단이 편지와 예물을 가지고 왔다.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왕궁의 보물창고와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왕을 책망하였다. 왕이 자랑하고 보여준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이 모두 빼앗아 갈 것이고 왕의 아들들 중에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잡혀 가고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역대하32:25에는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도 순간이다. 그렇게 신실한 히스기야였지만 전쟁에서 대승하고 죽을병에서 고침 받고 나니 우쭐해서 자기도 모르게 자랑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사상 유례없는 축복을 받고 어느 순간 교만에 빠졌다. 교만과 자만, 오만과 편견은 지도자들의 눈을 멀게 하고 헛된 자랑에 빠져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되고 만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다. 나무 뿌리는 흙속에 있어야지 겉으로 드러나면 말라 죽는다. 역대하32: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회개한 히스기야에게는 그가 살아 생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는다는 위로가 임했다. 히스기야 왕의 역사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기복이 심했고 변화무쌍하였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막강대적도 하나님이 보내신 쥐와 그로 인한 전염병으로 그 진영을 무너뜨렸다. 죽을 병도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되었다. 그러나 순간적인 교만으로 보물창고를 다 털리게 되었다. 그래도 히스기야가 위대한 것은 회개할 줄 알았고 계속되는 반전의 역사를 이루었다. 회개하면 회복되고 항복하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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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 선교사들, 어네스트 홀
    어네스트 홀(Earnest F. Hall, 1868-1955)은 1903년 9월 1일 내한하여 부산 서울 청주에서 일하고 1907년 9월 경 한국을 떠나 그해 11월에 뉴욕에 도착했다. 그래서 한국에 체류한 기간은 4년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1908년 11월 16일 선교사직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공식적인 은퇴였고, 실제로 한국에서 체류한 기간은 4년 미만의 기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부산에서 활동한 기간은 내한 때부터 1905년까지 2년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의 사역은 미미했고 언어공부에 바빠 구체적인 사역을 감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지적이고 훈련된 지성인으로서 사리분별이 분명했고, 매우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한국에 오래 체류하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더 오래 한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면 한국과 한국사회 역사 문화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한국교회가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안내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비록 짧은 기간 한국에서 일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친한파 인사가 되었고, 특히 이승만을 도와 그를 신학교로 인도하고 그의 수학을 도왔던 인물이 되었다. 이 점은 이승만 연구가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일이지만 그는 이승만의 수학기에 영향을 준 생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868년 출생한 어네스트 홀은 프린스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공부한 엘리트 목사였다. 그는 1903년 9월 내한 했는데, 한국으로 오기 전인 1903년 7월 1일 그의 사촌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내한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아버지의 집인 미시간 주 칼라마주(Kalamazoo)에서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8월 8일 태평양을 횡단하는 우편선인 시베리아호로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이곳 아버지 집에서 쉬게 될 것입니다. ... 저는 한국에 9월초에 도착하게 될 것이고, 즉시 평양에서 모이는 연례선교사대회에 참석할 것입니다. 그 후에 9월 늦게 부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I am to sail from San Francisco on August 8th on ‘the Siberia’, pacific mail S.S.Co. Until then I am resting here at my father’s home. ... I shall arrive there early in September then at once to attend the annual missionary meeting at Pyungyang September 12th, and return to Fusan late in September). 실제로 홀은 9월 1일 부산에 도착했고 이때부터 한국선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유관자료의 결핍이다. 그러나 알려진 바로는 그는 부산에 도착하여 첫째, 언어공부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무든 선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의무였다. 둘째, 북장로교 윌리엄 베어드가 시작한 규범학교를 도우면서 학교교육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영어를 가르쳐야 서구사회와의 접촉과 교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규범학교에서 봉사하면서 이 점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Korea Mission Field에 두 편의 글을 기고했는데, 이 글에서도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강조하였다. 셋째, 성경공부반을 조직하여 운영하였다. 한국어 공부에 주력하면서서 성경공부를 통해 개인 접촉을 시도하였다. 이 점이 어떤 결실을 가져왔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사역에서 가장 어려운 난제는 자신의 건강이었다. 병명은 좌골신경통이었다. 근본적 문제는 척추인데, 척추문제가 왼쪽다리에 통증을 유발하여 더 이상 부산에 체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서울로 이적하였고,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만난 해릿 맥리어(Harriet McLear, 1872-1959)와 1905년 10월 언더우드 집에서 결혼했다. 결혼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았으나 건강은 호전되지 못했고,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발전하여 결국 한국을 떠나게 된다. 비록 선교지를 떠났으나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내며 한국에서 더 오래 사역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1910년 새문안교회가 새로운 예배당을 신축하게 되었을 때 강대상 비품 일체를 기증했다고 한다. 귀국 후 그가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이승만과의 접촉이었다. 조지 와싱턴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마친 이승만은 하바드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중 1908년 뉴욕으로 갔고, 유니언 신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중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서울에서 만난 적이 있는 어네스트 홀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홀은 이승만에게 자신이 공부한 프린스톤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도록 권장하고 안내해 주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뉴저지 프린스톤으로 가 프린스톤대학교 대학원장 웨스트 박사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프린스톤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1910년 7월 18일 졸업식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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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 선교사들, 노세영
    노세영(盧世永)으로 불린 시릴 로스(Cyril Ross)는 1868년 4월 24일 영국 에딘버러 피블스(Peebles)에서 출생했으나 부모를 따리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성장했다. 그의 가정배경이나 초기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으나 초중등교육을 마친 그는 매서추세츠 주 노스 아담(North Adam)에 위치한 윌리암대학(William College)에 입학했다. 그 후 해외 선교의 이상을 가지고 매코믹신학교에 입학하여 1897년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의사인 수잔(Susan Shank)와 결혼했고 선교사 인준을 받은 그는 곧 한국선교사로 파송된다. 1897년 10월 11일 내한 한 그는 부산으로 배속되었다. 윌리엄 베어드가 대구지부로 전출하게 되자 그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해 미국북장로교는 부산으로 오게 된 것이다. 노세영은 베어드가 떠난 이후 그의 사역을 계승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되어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지역순회와 개척전도였다. 1891년부터 부산에서 사역하기 시작한 북장로교 선교사들도 부산과 경남일원을 순회했는데, 부산에 온 노세영은 배정된 북장로교지역을 순회하며 지역교회를 후원했다. 그는 호주 선교사들과 협력하면서 일했고, 박도면씨를 경남지방 권서인(勸書人)으로 임명하여 함께 지방을 순회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의 초량교회 제일영도교회 항서교회 등을 순회했고, 구포, 김해, 함안 마산 등 경남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거나 설립된 교회를 시찰했다. 예컨대 그는 지금의 제일영도교회인 영도교회 개척 초기에 이 교회의 설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제일영도교회 교회 연혁(1995년도 교회요람)에는 “1896년 본 교회는 설립자 김치몽이 자기 집을 헐어 예배처소를 만들고 미국북장로교 소속 선교사 로세영, 사보담 양씨를 초청하여 예배드림으로서 시작되니 교인은 김치몽 씨 가정 외 2 가정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로세영은 1897년 10월에, 사보담은 1900년 11월에 부산으로 왔기 때문에 1896년 영도교회 설립일에 초청되었다는 것은 옳지 않다. 아마도 1897년 이후 로세영은 영도교회를 돌보고 교회 행사에 방문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교회 연혁에서는 설립시 관여한 것으로 잘못기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1899년에는 함안지방을 순회하던 중 함안이령교회 설립에도 관여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기록은 다음과 같다. “함안군 이령(二靈)교회가 설립하다. 선시(先是)에 선교사 로세영과 의사 어을빈의 인도로 김세민(金世民)이 신종하여 교회가 성립되니라” 곧 김세민은 노세영에 의해 영수로 임명되었다. 1901년에는 마산문창교회도 순회했음을 다음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구마선 교회가 설립되었고, ... 그후 선교사 노세영이 래(來)하여 학습 7인을 세우고 부산교회 재직이 윤회인도(輪回引導)하였으며...”(88쪽) 이때를 전후하여 부산의 초량교회에도 관여하였음을 보여준다. 1901년분 사기에 보면, “부산부 영주동(瀛洲洞)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노세영의 전도로 강형린(姜亨璘) 장여익(張汝益) 박원일(朴元一) 김성윤(金成允)이 신종(信從)하여 사가(私家)에 예배하다가 교우가 점가(漸加)하여 초옥(草屋)을 매수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고, 그 후에 와제(瓦製) 14평 예배당을 개축하니라.”(89쪽) 이 기록도 정확한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초량교회는 1893년 설립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후의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부에서 사역하면서도 1900년 10월에는 대구의 헨리 부르엔과 더불어 평양으로 가 마펫과 같의 그의 사역자를 둘려보는 여행에 동참하기도 했다. 1897년 10월 내한 한 이래 약 5년간 일했던 그는 1902년 11월25일 평북 선천지부로 전임하게 된다. 부인과 아이들은 1903년 4월 선천으로 갔다. 그 후에는 강계에서 활동했다. 1903년에는 강계로 이동하여 만주지방까지 전도했고, 1912년 장로교총회가 조직될 당시에는 초대 평북노회장으로 피임되기도 했다. 노세영은 매우 학구적인 인물이었다. 선교사로 일하면서도 프린스톤에서 신학사(BD), 파크대학(Park College)에서 문학석사(MA), 달라스신학교에서 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개척 전도, 교육활동, 성경개역 작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1937년 4월 한국에서 은퇴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의사인 부인은 부산에서 하디의사를 도와 의료활동을 했다. 후에는 선천 강계지역에서 의료선교사로 크게 활동했다. 귀국 후 1954년 6월 16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소천했고, 남편 노세영은 1963년 2월 5일 캘리포니아 그랜데일에서 사망했다. 그의 딸 Lillian Ross(盧一蓮)은 아버지에 이어 한국에서 1926-54년 어간 대구지방에서 제2대 선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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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5
  • [목회자칼럼] 변화의 주역이 되자
    욕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뀌는 것이다. 사람을 대할때에 얼마나 의욕적인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해 볼수가 있겠다. 사람 욕심이 많고 일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특출한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 꿈도 없고 욕심도 없고 의욕도 없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소귀에 경읽기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친 사람은 화가 미친다.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것도 문제지만 욕심이 과해서 설치는 사람도 큰 문제이다. 사람들은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어진다. 욕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더러운 욕심이 어느 순간 열정이 되고 불꽃같은 열정이 역사를 만들어낸다. 포기할 수 없는 욕심이 그 사람을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밀어부쳐서 마침내 작품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은 초창기 어려웠던 시절 그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든 원동력은 앙심이었다고 한다. 가난이 뼈에 사무친 사람은 그 뼈저린 가난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부자가 된다. 가난이 교사다. 시장이 반찬이다. 우는 아이 젖준다. 스트레스가 양념이다. 피곤이 능력이다. 열등감이 추진력이 된다. 가장 나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불평과 원망이 변해서 감사와 찬송을 만든다. 트러블 메이커가 피스 메이커가 된다. 난제들이 기도제목으로 바뀌면 문제거리가 간증거리가 된다. 쓴물이 단물이 된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된다. 야곱은 약탈자요 속이는 자요 사기꾼 같은 욕심꾸러기였지만 얍복강을 거치면서 이긴자, 이스라엘이 되었다. 환도뼈가 부러져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욕심에 주께서 져 주시면서 이긴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재활용의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집안은 복잡하다. 열두 아들들의 엄마가 다양하다. 서자 출신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열두 지파로 들어쓰셨다. 욕심꾸러기가 야곱의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가 되어서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핍박자들을 용서하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일꾼이 되었다. 불같은 성격이 불꽃같은 사역자를 만들어 세상이 감당할 수 없게 된것이다. 마가는 최초의 선교사 바나바와 사도바울이 심히 다투게 되는 화근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유익한자로 변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음이 주인이 바뀌고 입술의 고백이 변화되면 사람이 달라진다. 가치관이 바뀌어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인생관이 변해야 인생이 달라진다. 사람은 중심이 이동해야 된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화된다. 나뿐인 나쁜 사람이 조화로운 좋은 사람이 된다. 세상적인 사람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현실에서 살아가지만 천국을 바라보고 시온의 대로로 걷는 자가 될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의 센터가 중요하다. 신앙생활에는 쓰리 센터가 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다. 사람은 중심을 잘 잡을 때 요동치 않고 균형있는 삶이 될 것이다. 성경에서 쓰임 받은 사람들을 한결같이 변화된 사람들이다. 75세 할아버지때에 부름받은 아브라함은 윗물은 더러워도 복의 근원이 되어서 37억의 후손을 거느린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성경에서 누구보다도 허약했던 이삭은 백배의 결실을 얻음으로 마침내 왕성, 창대, 거부가 되었다. 약할 때에 강해지는 것이다. 요셉은 인간관계를 거의 실패했다. 그것이 오히려 쓴게 약이 되듯이 인생의 큰 교훈이 되었다.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형님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주인으로부터 누명을 받고 인생막장인 감옥까지 갇혔지만 성경에서 최강멘탈의 요셉, 야곱의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다. 엘리야는 열심이 특심이었기에 마음의 상처도 많고 우울증도 왔지만 성경상에서 가장 악독한 아합 왕 시대에도 주께서 지켜주셨다. 3년 6개월동안 가뭄이 왔지만 그릿시냇가로 인도하시고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시고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이끌어 가셨다.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고 조마조마한 세월이었지만 마침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어서 구약 성경을 대표하는 선지자가 되었다. 돈밖에 모르던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가 되고 제자가 되었다. 허물 많은 베드로도 예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변화가 되어서 천국열쇠를 받고 으뜸제자가 되었다. 우레의 아들 요한도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어서 주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셨다. 요한은 성경을 다섯권이나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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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5
  • [교회학교를살린다] 다음세대를 살리는 성숙한 신앙인8
    누군가 해준 말이 있다. 그 사람이 진짜 어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어른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 쉽게 말을 놓지 않고 존중하는 매너 있는 말을 쓴다고 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면 쉽게 반말을 하고 하대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다. 누구든지 쉽게 아래로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말에서부터 나타난다. 말이라는 것이 그만큼 자신의 인격과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잠언이나 야고보서에는 말에 대해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야고보서 3장 1절에서 2절에는 이렇게 써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이 말씀은 가르치는 이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으로서, 어른으로서 우리는 다음세대를 인도할 책임을 가진 세대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직책을 맡겨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말에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져서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생각나는 좋은 교사들을 뒤돌아보면 따뜻하고 친절한 분들이 참 많았다. 실제로 교사대학을 진행해보면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기억나는 좋은 교사들은 그분들이 가르쳤던 지식이 아니라 그분의 말과 행동, 사랑의 마음이었다고 다들 공통적으로 고백한다. 그중에서도 따뜻한 말 한 마디, 격려의 말, 용기를 주는 말, 위로의 말, 이끌어주는 말 등등 말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래서 오죽하면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 완벽한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상담에서도 내담자를 향한 공감의 말이 매우 중요하다. 코칭에서도 관심을 갖고 정확하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며 말을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다. 교육에서도 교사가 갖추어야 할 전문적인 지식 중에서 언어 구사 능력은 필수적이다. 특히나 어린아이일수록 말의 내용보다 말의 분위기를 더 우선하여 인지한다. 아기들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인상을 쓰고 안 좋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면 내용보다 분위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심지어 울기까지 한다. 어른들의 경우에도 분명히 내용은 맞는데, 기분을 안 좋게 만드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과는 자신도 모르게 대화를 꺼리게 된다. 교회학교에서도 예전부터 잘못된 언어습관으로 인해서 다음세대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비본질적인 것을 지적하고 혼내서 다음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성숙한 신앙인은 어떤 언어생활로 다음세대에게 영향을 주어야 할까? 그 첫 번 째는 말에 앞서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말은 마음의 자세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필자는 항상 우리의 진정한 교사는 삼위일체 하나님뿐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평생 배우는 위치에 있는 학생이라는 마음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일반 교육과 신앙교육의 결정적인 차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교화시킬 수 없으며 변화시킬 수 없다는 철저한 신앙고백에서 우리는 출발한다. 우리를 고치시고 변화시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로만 우리 인간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인간 교사로서 우리는 갓난아기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학생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훈련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기술들이 유용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왜’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왜라는 말을 들으면 비난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음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왜 예배시간에 늦었니?” “지난 주일에 왜 교회에 안 왔니?”라는 말을 들으면 대화하려는 의도보다 비난과 질책으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왜라는 말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니? 걱정했단다.” 등과 같은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좋겠다. 그밖에도 다양한 훈련과 말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올 한해 교회학교와 다음세대의 부흥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다음세대의 마음을 여는 말로 따뜻하게 다가가는 성숙한 교회의 어른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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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02-25
  • [성경적 회계윤리] 결론
    성경적 회계윤리 마지막회 칼럼이다. 1997년 금융위기 당시를 포함해 분식회계(accounting fraud)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본 칼럼은 신구약 본문에 비추어 성경이 말하는 회계윤리에 대해 12회에 걸쳐 살펴보았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그 끝이 멀어 보인다. 성경이 요구하는 교훈과 윤리적 수준에 비해 우리 사회의 의식이 너무나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2년 금융당국에 의해 외부감사법이 개정되면서 관련제도가 대폭 강화되었다. 매출액과 총자산이 500억원 이상이거나 일정요건(자산 120억원, 부채 70억원, 매출액 100억원, 종업원 100명 미만중 3개이상)을 충족 시 상장비상장법인은 물론 유한회사도 외부감사가 의무화되었다. 또 감사계약 일부가 자유수임제에서 지정제로 전환되고, 회계부정신고 포상금은 최대 10억원으로 상향조정되었다. 회계정보의 신뢰성을 재고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감사대상과 범위,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보수도 증가하고 회계법인 등 감사업계로서도 환영하는 눈치이다. 또 2019년말 현재 실재 현황을 보면 외부감사대상 회사는 32,431사로 3.0%, 감사인지정을 받는 회사는 1,224사로 75.1% 증가하였고, 회계부정신고도 총64건이 접수되었다 한다. 필자 또한 회계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의 1인으로서 이와 같은 제도적 보완이 과히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회계 부정행위는 근본적인 마인드 변혁이 따르지 않는 한 해결방법이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재무정보가 자본시장에 제공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고, 회계담당자와 경영자의 신실한 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하다. 회계제도가 뛰어나도 적용이 잘못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모든 상장회사에 대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를 적용해 재무제표(financial statement)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하였다. K-IFRS는 국제회계기준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K-IFRS가 도입되었으면 우리나라 회계기준의 국제경쟁력 지수도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최하위수준으로, 기업이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과 회계윤리가 필요하다. 윤리란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 선과 악, 도덕적인 행위와 비도덕적인 행위를 구분하는 가치판단이다. 또 이를 기업내 회계 시스템과 연결시킨 것이 회계윤리이다. 우리 사회에 정직과 양심에 기초한 회계윤리가 필요하다. 특별히 크리스천 CEO에게는 성경적 가치에 근거한 회계윤리가 필요하다. 지난 2017년 종교개혁(Reformation) 5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집회가 있었다. 1907년 평양에서 있었던 회개 부흥운동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많은 이들이 전하고 있다. 본 칼럼은 크리스천 경영자 CEO에게 필요한 윤리로 다음 6개의 강령을 한번 더 강조한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청지기의 자세로 경영하라. 둘째, 말씀에 순종하여 정직하고 거짓과 속임을 행하지 말라. 셋째, 가난하고 어려움에 있는 자를 돕고 선한 사업과 구제에 힘쓰라. 넷째,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말고, 경영의 중심을 하나님께 맡기라. 다섯째, 작은 것에도 가치의 소중함을 알고 부지런하여 기업성장을 도모하라. 여섯째, 감사와 십일조의 제물을 드리되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칼럼을 마친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 제1문이다.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바른 신앙과 회계윤리 위에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의 의(義)를 이루고,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가는 모든 크리스천 CEO와 회계담당자가 되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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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회계&성경적 회계윤리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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