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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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교회여 테르모필레에 서라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 왕이 된 크세르크세스(Xerxes, B. C. 485~465, 성경의 아하수에로 왕, 에스더 1:1)는 10년 전 선왕(先王)의 치욕스런 패배를 되갚아주기 위해 528만 대군을 이끌고 노도(怒濤)처럼 그리스로 진격했습니다(Herodotus, Historiai).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 파죽지세로 마케도니아를 경략한 170만 페르시아 육군은 기원전 480년 여름, 테르모필라이(Thermopylae) 협곡에 도착합니다. 남쪽으로 산맥이, 북쪽으로 바다가 버티고 선 넓이 15m, 길이 7.2km의 좁은 통로를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Leonidas)와 그가 이끄는 정예부대 300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일 간의 총력을 기울인 전투에서도 페르시아 군은 이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에피알데스(Ephialtes)의 배신이 아니었다면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들은 왕을 포함하여 전원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지만,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을 그리스가 승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15년 여름 현재, 교회는 또 하나의 테르모필레 협곡에 서 있습니다. 2월 26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간통제가 한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6월 16일 미합중국 연방대법원은 동성애 결혼을 막는 주법이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라 이미 무너진 성도덕(sexual morality)의 하한선을 실증하는 사건입니다. 미국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등 파워엘리트(power elite)들이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스타벅스, 구글, 맥도날드 등도 앞 다투어 지지 의사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특히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기업들이기 때문에 그 실질적인 여파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당장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성소수자들이 주관하는 퀴어 축제(Queer festival)가 큰 논란 속에 지난 달 28일 서울광장에서, 그리고 이달 5일에는 대구 동성로에서 열렸습니다. 아직은 반대 여론이 우세하지만 퀴어 축제가 처음 열렸던 2,000년과 비교하면 성소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증가일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헌절로 기억하는 지난 17일, 이슬람 2대 축제 중 하나인 ‘이드 알 피트르’를 맞아 1,000여 명의 무슬림(Muslim)이 김해 구도심에 모였습니다. 라마단이 끝난 다음 날 모여서 이슬람 식 집회를 열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행사가 한국 땅에서 이제는 이렇게 버젓이 열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날 이들이 모인 장소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해중앙교회 건물이 서 있던 터였습니다. 한 술 더 떠 지역 뉴스의 한 기자는 이 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무슬림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예배를 드렸다. 임시 예배당에서는 하나님을 부르고 무슬림을 모으는 육성의 외침인 ‘아잔’이 낮고 평온하게 울려 퍼졌다. 차분한 아잔 덕분에 공터는 진짜 이슬람 사원이 된 듯 경건한 분위기가 흘렀다.” 현재 이슬람의 팽창은 두렵기까지 합니다. 영국의 데이빗 캐머런(David Cameron, 1966~) 총리는 20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퇴치를 위한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정도입니다. 우리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반기독교 정서를 틈타 이슬람 세력이 어느새 우리 문턱 앞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테르모필레’라는 말은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2,500년 전 여름, 300명밖에 되지 않는 스파르타 용사들의 펄펄 끓는 열정은 수천 배에 달하는 대적들의 발을 묶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숫자가 아니라 집중력이다”라고 썼습니다(김종춘,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그런데 결코 만만치 않은 현대 사회의 이러한 대적들 앞에서 한국 교회는 혹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계 3:15)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으로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향력 없는 허수(虛數)의 다수(多數)가 아니라 집중력 있는 실수(實數)의 소수(小數) 교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회여, 이제 다시 테르모필레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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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이단피해] 부모대행도 하는 신천지
    A 집사의 자녀들이 신천지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부산 모 대형교회를 다니는 자녀들이 이상하다는 소식을 담당 부교역자에게 처음 들었을 때도 ‘우리 아이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자녀들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점점 더 이상해졌고, 목회를 하고 있는 삼촌의 제보와 여러 가지 증황들이 신천지에 빠져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자녀들은 신천지에 몸담고 있다고 인정하고, 이후 자신들의 짐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 이후 6개월 동안 연락이 없었다. 6개월 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기록을 근거로 남매가 자취하고 있는 원룸을 찾을 수 있었다. A집사 부인은 “최소한 신천지가 생활비나 병원비 정도는 보태주는 줄 알았다. 아이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후부터는 자녀들과 왕래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면서 지냈다. A 집사는 “이때부터 우리 부부는 전략을 바꿨다. 자녀들이 스스로 경계를 풀고 돌아올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천천히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장녀인 딸이 신천지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부부는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지만 딸은 부모의 말보다 신천지인과의 결혼을 택했다. A 집사는 “신천지인과 결혼한다면 절대 결혼식장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결혼을 강행했습니다”고 말했다. A 집사 부인도 “평생 한번뿐인 딸의 결혼식에 우리가 왜 안가고 싶겠습니까? 너무 가슴아팠지만, 그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신천지를 인정하는 결과가 될 것 같아 끝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이후 A 집사 부부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결혼 이후 몇 개월 만에 딸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몸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딸에게 병문안을 갔었고 이후 딸의 신혼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양가 부모들과 찍은)결혼사진에 사위쪽 부모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신천지측이 참석하지 않은 A 집사 부부대신 신천지측 사람들을 세워 부모로 대행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딸은 (부모대행으로 나온)이들을 향해 “고마운 분”이라고 말해, A 집사 부인은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A 집사는 “평안한 우리 가정을 신천지가 완전히 망가뜨렸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꼭 돌아올 것으로 확신한다”며 오늘도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이단
    • 신천지회심자
    2015-07-23
  • 교계의 새로운 트렌드 "휴가, 교회에서 보내세요"
    포도원교회(김문훈 목사)는 지난 5월 5일(화) 지역주민들을 위한 어린이날 행사를 교회 내에서 개최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에어바운스 놀이기구를 수백만원에 대여 해 와서 지역 어린이들에게 개방한 것. 김문훈 목사는 “그때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어린이 날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들이 야외나 식사를 하러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김 목사는 성도들과 지역주민들이 휴가를 교회에서 보낼 수 있도록 금년 처음으로 하기수련회를 교회에서 개최했다. 8월 2일(주일)부터 5일(수요일)까지 개최되는 포도원교회 하기 수련회의 특징은 새벽과 저녁은 어른들 중심으로, 낮에는 아이들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또 지역주민들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교육적이면서, 대중적인 문제들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접근했다. ‘미디어 중독 예방 특강’, ‘창조과학특강’, ‘악동뮤지션부모(이성근, 주세희)자녀특강’ 등과 트로트가수 구자억 목사 공연,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장경동 목사 부흥회 등 다양한 강의 등이 준비 돼 있다. 특히 부모들이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탁아방을 운영하고, 멀리서 오는 외부 손님들을 위해 숙박 시설도 마련한다.김문훈 목사는 “보통 휴가를 다녀오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풀 수 있지만, 육체적 스트레스는 쌓이게 된다. 교회에서 보내는 이번 휴가는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영적으로도 충만한 휴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도원교회보다 더 원조격인 교회도 있다.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에 위치한 세계로교회(손현보 목사)다. 세계로교회는 지난 2009년부터 ‘부산, 경남 복음화를 위한 하계대수련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성도들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수련회를 개최 해 왔다. 미처 휴가일정을 잡지 못한 성도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 했을 정도로 세계로교회 하계대수련회는 여름철 휴가기간 '명소'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하지만 금년에는 본당증축 공사로 인해 하계대수련회를 개최하지 못한다. 교회 관계자는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좀 더 넓은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2016년 여름에 만나길 기대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두 교회 ‘수련회’의 특징은 여름 휴가기간(평균 4일) 본 교회에서 개최되고, 교회 성도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지역교계 성도들에게도 문을 개방했다는 것, 또 숙식 및 모든 비용이 무료라는 점에서 기존 교회들이 개최해 오는 일반 전교인 수련회와 차별성을 갖고 있다. 두 교회의 차별된 수련회가 앞으로 한국교회 새로운 트렌드가 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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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성서연구] 연평해전 후기(에베소서 6장 10-17절)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개봉되어 관객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평해전이 있은 후 십 수 년이 지난 이제야 영화를 통해 그 날의 비극을 접하게 되었는 바, 너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연평해전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999년 6월 북한 고속정들이 계속 북방한계선을 넘어 도발하던 중, 6월 15일 오전 8시 45분경 북한 경비정 7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에 충돌공격을 실시하고, 우리 해군도 충돌공격을 가하였고, 이 와중에서 북한이 먼저 사격을 가해옴에 따라 우리도 즉각 대응사격을 가하였고, 그 결과 북한은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5척이 크게 파손되어 도주하였습니다. 반면에 우리 해군은 고속정 5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흔히 이것을 제1차 연평해전이라고 합니다. 제2차 연평해전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러 우리나라와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리던 6월 29일에 발발하였습니다. 이 날 북한은 다시 북방한계선을 침범했고, 이날 오전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부터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에 대해 집중사격을 가함으로써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전은 31분간 진행되었는데, 북한 군함은 대파된 채 도주하였습니다. 제2 연평해전으로 우리 해군은 참수리 357호가 예인 중 침몰했고,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북한군은 약 30여 명이 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평해전으로 이런 피해를 입은 이유는 소극적인 교전수칙 때문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던 당시 정부는 전쟁을 염려하여 상대방이 먼저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 발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병사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그러나 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응전 개념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 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5단계 대응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3단계 대응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쏠 때까지 기다리는 소극적 대응으로는 적을 막을 수 없고 아군의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입니다. 종종 경기를 해설하는 이들이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입니다. 적이 쏠 때까지 기다려서는 적을 능률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과 신앙의 영역에서도 선제공격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쉴 새 없이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는 영적 싸움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면서 우리가 입어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그 중에는 방어와 수비를 위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사탄을 선제공격할 무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말씀의 검입니다. 6장 7절을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 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씀보다 더 예리하고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적을 이기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사단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말씀의 검으로 공격하십시오. 적극적 대응으로 영적 승리를 거두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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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시내산] 고향 산의 부활
    연두색 산하에 산들바람 불고 날빛 찬란한 오월에 존경하는 선배 시인 장로님께서 시문 선집 “부활연습”을 출판하고 한권을 보내 주었다. 우선 책 이름이 좋았다. 이 땅을 오고갈 모든 사람은 날마다 새롭기 위해 헌 것은 버리고 새 것으로 채우는 희망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뜻을 담아 신앙의 마음으로 승화시킨 글이라 생각하였다. 그 분은 20여 년간 시를 쓰고 수필을 쓴 문인인데 풀잎, 야생화, 호박꽃, 겨울나무, 도시비둘기 등, 약한 것들을 소재로 하여 글을 썼다. 그러나 그 글은 애잔하면서도 광야에서 외치는 말씀처럼 마음을 울렸다. 약한 것이 반드시 약한 것이 아니고, 강한 것이 반드시 강한 것이 아니며, 화려한 것이 반드시 화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 닳고 이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약하고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실망하고 위축되고 분노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마음도 읽었다. 낙담하는 사람에게 “너는 작고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고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힘찬 소리가 담겼었다. 마침 나는 유월 첫 주가 되면 고향을 찾는데, 한 때 대우받았던 뽕나무가 세월에 밀려 산천에 버려졌지만 오디를 검붉게 익혀놓고 오라 부르기 때문에 간다는 말을 되뇌며 찾아간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 떨어져 사는 동생들을 권하여 함께 오디를 따러 간다. 물론 그 일만은 아니다. 그 곳 언덕숲속에 유택을 정한 부모님도 뵙고 옛날을 회상하며 노래도 부르고 소풍날처럼 함께 식사를 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기위해서기도 하다. 뽕나무, 양잠하던 때는 뽕밭이 따로 있었다. 넓고 큰 뽕잎을 얻기 위해 거름을 주면서 또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주인의 보호와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명화에 밀려 용도가 폐기되니 결국 귀족이 천민이 되어 성 밖으로 쫓겨나듯 비탈진 언덕이나 큰 나무들의 너울진 숲 속으로 이사하였다. 그 나무들은 현실에 순응하여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내려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마음껏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큰 나무가 되어 무성한 잎과 많은 오디를 달고 있었다. 그래서 가지를 잡고 삭게오처럼 나무에 올라 사랑스런 어머니 가슴가린 적삼처럼 손을 넣고 싶은 충동에 푸른 잎을 젖히고 잘 익은 오디를 한줌씩 딴다. 그 맛은 비할 수가 없다. 그 추억 때문에 매년 이맘때를 정하여 모이고 즐기게 되었다. 고향의 산, 소먹이고 풀 베든 시절에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푸르게 욱어진 숲을 이루고 새들을 불러 흥겹게 노래 부르도록 부활하였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나 골짝이 울창하여 낯설었지만 넓은 그늘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니 가슴마저 확 트인다. 이것이 휴식, 치유, 회복, 재충전이라는 용어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리라. 또한 정신적 치유라는 힐링의 장소가 분명함을 느끼게 하니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솟는다. 유월, 고향을 가보라. 분명 맛난 것도 주지만 잊은 옛이야기와 소박했던 감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한 때 대접받든 뽕나무가 잡나무들 자리에 서서 자존감을 꺾고 자생력으로 오디를 익혀놓고 출향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나무에서 느낀 오디 맛 때문에 어느새 오디 물로 얼룩진 옷을 보다가 뽕밭 주인의 호통에 놀라 설익은 오디를 따먹다 도망친 옛일이 되살아나니 빙그레 웃는 웃음도 달콤했다. 수목도 천한 것이 따로 없고 모두 귀하다. 제가 선 위치에서 꽃으로, 열매로,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가치를 십분 발휘한다. 인생도 한 때 설치든 자존감보다 현실을 어떻게 장식할까 생각해야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핀잔 받든 사람이 노력하여 큰일을 했다는 이야기처럼 결과가 좋아야 한다. 고향의 벌거숭이산들이 푸르게 부활한 유월, 검붉은 오디는 물론 산딸기와 산나물을 들고 지나온 날을 회상하는 고향은 한껏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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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하수룡 장로] 내게 맡긴 직분을
    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웃에 선행한 사실을 공식화된 것만을 보아도 불교 신문에서 조차 불교보다 수 십 배로 많다고 불교인의 각성을 촉구한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기독교가 극히 소수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란 불명예스런 별명을 낳게 되었다. 기독교의 부패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직분을 받기 전의 세상적인 사고나 사명 의식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된다. 부쩍 2000년대에 들어 교회의 지도자인 소수의 직분 자들이 일 만 악의 뿌리인 돈을 하나님 위에 두는 것을 현실화 시켜 버렸다. 돈이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물질제일주의가 교회 내에 들어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소수의 젊은이들이 사명감 없이 목사의 길을 택한 것이 문제가 되고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분들이 교회 지도자의 직분을 맡은 것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21세기에 들어 젊은 직분자들은 목사사례를 보통 회사 사장월급으로 생각하고 장로는 무급 상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것도 믿음은 뒤로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이나 세상 학문을 많이 수학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가 되어 버렸고 직분을 신분 상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직분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교회의 모든 일을 사명감을 갖고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았다. 또한 학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학생이 사명감 없이 신학을 전공하여 목사가 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물론 하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잘하는 목회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20세기에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와 현재 21세기의 직분자들의 믿음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헌신하는 것도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정말 놀랄 때가 많다. 오늘날의 직분자들이 옛날처럼 목회자를 존경하고 주의 사명을 헌신적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 작금의 교회의 현실이라 하겠다. 말씀대로 살고 보수적인 신앙을 자랑하는 장로교 총회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극히 소수의 직분자지만 자기의 명예를 위해 금권을 발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웃 총회에서는 총회장직을 맡기 위해 공탁금을 엄청 내어 놓아야 한다니 일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교회는 목사이면 충분한데 박사에 목매여 국내에서 아주 쉽게 박사를 취득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교회나 상회의 책임을 맡은 직분자들은 교인들이 헌금한 돈을 공짜 돈처럼 함부로 쓰는 것이 상습화 되어 버렸다. 교회당 부지를 구입하는 데 직분자가 이면계약을 하여 차액을 챙기는 불미스러운 일들도 생긴다. 큰 교회로 성장시킨 은퇴목사는 교회에서 자기가 맡은 직을 자녀에게 세습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한다니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이 650만도 안 된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많은 성도로 채워져 있고,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많아지고 세례 받는 교인이 날로 적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걱정스럽다. 이렇게 진행되면 잠시 뒤에는 유럽이나 미주 교회처럼 교회당은 텅텅 비고 연세 많은 교인으로 명맥을 이어나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우리 눈앞에 도래하겠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더해 온다. 거기에다 거대한 이슬람의 침략이 더 무섭다. 그런데도 직분자들은 교회당을 자꾸만 높이 그리고 크게 지으려는 경쟁심으로 하나님의 집은 빚더미 위에 앉아있게 만들어 놓았다. 감당할 수 없이 지은 매머드 교회당을 내어 놓아 이단에 헐값에 처분하는 불행한 사태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데도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렇게 빚에 쪼들려 이단에 헐값에 팔려나가는 교회당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나에게 맡긴 귀한 직분을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확실히 믿고 주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일을 제대로 감당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왜 손가락질을 한단 말인가? 비록 시작은 잘못 되었더라도 내가 받은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믿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사명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직분을 맡은 자는 누구든지 내가 모든 일에 주인공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주님을 최고의 자리에 좌정하시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살고 다음 세대가 대대로 살아갈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오직 기도 밖에 없다. 지도자인 직분자가 크게 입을 벌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어야만 한다. 직분자들이 말씀을 떠나면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떠나신다. 그래서 내게 맡기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을 두렵고 성실한 마음으로 제대로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하면 가정의 모든 문제, 교회문제, 국가사회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 오피니언
    • 정론
    2015-07-2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⑥
    1. 사실의 사진: 교리 주입 사진-신학(Photheology)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매력적이다. 사진에도 신학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진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사진에 신학과 신앙이 없다면 그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진에 신앙과 신학이 있다는 것은 사진 한장에 한 사람의 숨결이나 한 세대의 생명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고, 신앙적 생명을 얻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의 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백승균 교수는『사진 철학을 만나다』(북길드, 2014)에서 사진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 의식과 사진의 관계에 관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26-37). ▲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 여기 사진이 있다.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연작 사진이다. 사랑하는 딸의 패션쇼를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는 패션쇼를 가능하도록 만든(옷을 입혀준) 언니 희주가 있고, 또 이 모습을 찍은 아빠가 있을 것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언니와 아빠 모두가 이 사진의 완성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사진은 사실의 기능을 한다. 사진-신학의 지평도 마찬가지다. 사실의 사진은 사실의 신학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를 주입하는 신앙에 다름 아니다. 교리에 그 교리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 그리고 그 교리를 완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 하에서.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 지평(곧, 의미)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사실의 사진은 의미의 사진으로 넘어가고, 사실의 신학은 의미의 신학으로 진행해야 될 것이다. 2. 의미의 사진: 해석학적 신학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석의 지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희진이의 패션쇼는 아빠의 사랑이, 언니의 정성이, 그리고 주인공 희진이의 애교가 의미놓여져 있다. 이것은 배고파도,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의미의 차원이다.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창설한 프뢰벨(F.W.A. Fr?bel, 1782~1852)은 아동의 내적인 신성이 자연물과의 친근함을 통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가령,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목각기차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으로 달려간다면, 프로벨은 그 기차를 그저 장남감으로만 여기지 말고 실제 기차로 간주할 것을 주장했다(백승균, 32). 그렇다. 사람은 사실만으로 살지 않고(그리고 이 사실은 경제와 정치, 현실의 모든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로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잘 알았고, 마귀의 시험을 지혜롭게 대처하셨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1-4절) 따라서 의미의 신학은 해석학적 신학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실의 신학이 단순한 교리 주입이라면, 의미의 신학은 성서 말씀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사실을 넘어 해석학적 의미의 지평 융합을 이룬 것처럼. 3. 의식의 사진과 신학의 사명: 김아타를 중심으로 사진은 불가능한 순간(가령 1/125초~1/15초의 순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기술이며,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영원으로 잇게 하는 예술이다. 사진의 특별한 기법에는(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해당되지만)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과 ‘다중노출(multiple layering)’이 있다. 연장노출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두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형체를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반면 다중노출은 이미지를 수십 번 중첩하는 것으로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따라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처음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 뉴욕을 촬영한 1만컷 이미지를 단 하나로 중첩시킨 작품 앞에 선 김아타 <뉴욕 타임스>가 “철학적 사고가 지극히 참신한 작가”라 극찬한 박박 민 머리, 동그란 안경, 검정 인민복의 사진작가 김아타는 연장노출과 다중노출 기법을 통해 작품을 창작했는데, 뉴욕의 모습을 찍은 1만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약간의 채도 차이가 있을 뿐 희뿌연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자『도덕경』5290자,『논어』1만5817자,『반야심경』260자를 한자한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도 했는데(성경은 분량이 많으니 ‘요한복음’이나 ‘창세기’만을 한 글자 한글자 찍어서 촬영하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김아타는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고 말한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다. 예수께서도 깨달은 바 천하 만국의 영광이 결국 사라짐을, 아쉽지만 지금 사랑하는 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 속에 사라져 감을 깨닫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셨고,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는 답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의미를 넘어 의식의 변화가 새로운 존재를 창출하는 것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4-8절) ▲ (2004) 사진에서 의식의 변화를 이룬 김아타의 ‘아이스 모놀로그(Ice Monologue, 얼음 이야기)’인 ‘ON-AIR Project’ 시리즈는 영원함을 상징하면서 역사적 의미도 지닌 파르테논 신전, 부처, 마오쩌둥, 피라미드 등의 조형물들을 얼음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이 점점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3개월 동안 실제 크기의 15분의 1로 얼음조각을 만든 뒤 녹아 없어지는 1개월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냈다. “모든 존재는 생멸하고 이 우주에 생멸하는 법을 거스를 존재는 없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가령, 스틸 사진 3장으로 표현한 <마오의 초상>은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문화
    2015-07-23
  • 대형교회만 조용하면 한국교회 평안하다?
    최근 어느 목회자가 그랬다. “대형교회만 사고 치지 않고 조용하면, 한국교회가 조용하다. 대형교회 때문에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어서 “특히 수도권에 있는 대형교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콕 찍어서 이야기 했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말 마음에 남는 말이다. 크리스천이든 넌크리스천이든 모두가 아는 사랑의교회 문제부터 전병욱 목사 등 국내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대형교회들이 매번 큼지막한 사건을 터뜨려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도 이어지고, 심각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지만, 결국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당연히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선이라는게 있지 않는가? 사랑의교회 문제는 식을 줄 모르고, 전병욱 목사 사건은 홍대새교회 측에서 성명서를 발표해 “도저히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 사건의 민낯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겠다”고 말해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의 필수도서 중 하나가 리처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이다. 1989년 발매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혀지는 책 중의 하나다. 제목만 들어도 깨닫게 되는 뭔가가 있다. 실제로 교계에 있다 보면 목사나 장로들, 혹은 성도 등 교회에서 벌어지는 이유가 저 3가지로 압축된다. 재정 문제이거나, 성 문제, 권력을 위한 자리싸움이 교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이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읽혀진다는 것은 가장 인간의 본능적 죄악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 오피니언
    • 사설
    2015-07-23
  • 고신과 고려의 통합 움직임 환영한다
    1976년 제26회 총회시 ‘신자간의 사회 법정 소송에 대한 이견’으로 분열된 고신과 고려가 39년만에 하나로 통합된다는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비록 절차들이 남아 있지만, 두 교단 총회장의 의지와 통합추진위원들의 대화 소식은 훈훈함 그 자체다. 금년 총회에서 분명 좋은 소식이 들려 올 것으로 확신한다. 고신총회는 지난 21일 대구성동교회당에서 총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고려총회와의 통합추진위원회 보고를 받고, 금번 65차 총회에 통합 안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가결했다. 이날 통합합의문도 공개됐다. 통합합의문에 따르면 1. 고신총회와 고려총회는 2015년 9월에 개회되는 제65회 총회 시에 통합을 하기로 한다. 통합 시, 양 총회의 모든 역사(총회회기, 교회역사, 신학교졸업기수 등)는 병합한다. 2. 고려총회의 노회는 그대로 유지하고 통합총회의 행정 개편과 함께 지역노회로 편성한다. 3. 양 총회 소속의 목사, 선교사, 교역자의 신분은 헌법대로 보장하며, 항존직을 비롯한 교회의 직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교회(당)는 가급적 유지재단 가입을 권장하고, 목회자에게 은급(연금) 제도 혜택 및 계속 수학의 기회 등은 양 총회 공히 동등하게 제공한다. 4. 고려신학교 신학원(M.Div 과정)은 고려신학대학원의 역사와 병합하며, 졸업자의 학적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관리하고, 재학생은 신입생으로 입학(특례)하게 한다. 고려신학교 여자신학원은 고신대학교의 병설과정으로 하여 총회 직영으로 한다. 5. 통합에 따른 경과조치와 추후 필요한 사항은 양 총회 통합위원회가 합의해서 처리한다 등이다. 고신과 고려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따라,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에 순교로 대처해온 순교 교단들이다. ‘신자간의 사회 법정 소송에 대한 이견’으로 교단이 분열하였지만, 두 교단은 고린도전서 6장 1-10절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도간의 사회법정 소송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고 믿고 있다. 두 교단의 통합이 한국교회 분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통합과 화합의 역사의 시작임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5-07-23
  • 영남신대 총장선출, 다음 달로 연기
    영남신학대학교(이사장 김수읍 목사)는 지난 20일(월)에 가진 이사회에서 제7대 총장 선출을 다음 달인 8월 14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이날 이사회에서 새 총장을 선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장인선위원회는 인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사회는 후보로 등록했던 이춘길 교수, 최무열 교수, 최인기 교수에게 동의를 받아 총장초빙 재공고를 내기로 했다. 김수읍 이사장은 “동문회비상대책위와 이사들이 새 총장을 자유롭게 추천, 인사의 폭을 대폭 넓혀 일괄적으로 선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남신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학내 문제가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 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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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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