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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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의대 제8대 김우미 학장 취임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이·취임식이 지난 10월 15일(목) 오후 1시 30분 고신대 의대 성산관에서 열렸다. 이날 예배는 교목 황수섭 목사의 인도로 이명우 목사(한소망교회 담임)가 기도, 전광식 총장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전 총장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셔서 세상을 움직인다. 리더로서 단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영안이 필요하며, 공의를 세우는 일을 하고,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김우미 학장님을 만나보니 영이 맑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뚜렷하며 남성 못지않은 추진력이 있다. 의대를 움직이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말했다. 이어 오병세 전 총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 고신대의대 학장 이취임식에서 전광식 총장(고신대)이 설교를 전했다. 2부 이취임식은 박무인 교무부학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고신대복음병원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전임 학장 임학 원장은 이임사에서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들, 교직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섬길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앞으로 의과대학 가족 모두가 힘을 모아 협력하면 머지않아 향기로운 영향력이 발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김우미 학장님을 위해 기도하고 협력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우미 학장은 취임사에서 “융합연구역량을 강화시키고 포텐셜을 최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선택과 집중적인 연구 정책을 펴 나가겠다. 빠르게 변화되는 의학 교육을 주도하고 선도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영안 이사장은 격려사에서 “역사상 첫 여성 학장이 탄생했다. 여성의 특징인 보살핌으로 학교를 돌아보고, 그러나 공의롭게 학교를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고신의대발전재단(3천만원), 엄상철 동문(5억원) 외 5명의 동문들이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 고신대복음병원 원장에 취임하게 돼 학장직을 이임하는 임학 원장이 이임사에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첫 여성학장이 된 김우미 학장은 취임사에서 명문 의대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학교법인 고려학원 강영안 이사장(우)이 제8대 김우미 학장(좌)에게 임명장을 전달했다. ▲ 7대 학장 임학 원장(우)이 신임 학장 김우미 학장에게 교기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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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5
  • 이단 박옥수 성경세미나 주의
    ▲ '박옥수 성경세미나'를 홍보하고 있는 부산 시내 버스 한국교회 이단으로 규정된 구원파 박옥수(기쁜소식선교회)의 성경세미나가 부산에서 대규모로 준비되고 있어 일선 교회의 주의가 요망된다. 오는 11월 1일부터 5일까지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그라시아스 합창단 공연 및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라는 이름으로 대형행사로 진행된다. 벡스코 오디토리움은 객석만 4천석이 넘는 공간이다. 기쁜소식선교회 측은 현재 언론과 버스 광고를 통해 성경세미나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옥수가 이단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평신도의 경우 공연과 성경세미나라는 이유로 현혹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단 박옥수의 성경세미나는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데, 특히 금년에는 대형 행사장에서 대규모로 열리고 어느 때보다 홍보를 강화했다는게 특징이다. 광주(9/30-10/3)에서는 김대중컨벤션 센터에서, 서울(10/25-10/28)은 올림픽공원 올림픽 홀에서 개최됐고, 부산도 벡스코라는 대형행사장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 박옥수 측이 예년과 달리 대형행사장에서 성경세미나를 준비하는 것은 지난달 재판을 받아온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검찰은 징역 9년을 구형했지만, 전주지법은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 달 25일 이번 사건을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에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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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5
  • 고신 가을노회 개회, 새 임원 선출
    예장고신 가을노회가 개최됐다. ▲부산노회는 지난 10월 12일(월)과 13일(화) 양일간 괴정제일교회에서 제116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 양승기 목사(서부산교회) 목사부노회장: 박삼우 목사(부민교회) 장로부노회장: 김점태 장로(구평제일교회) 서기: 박재수 목사(제7영도교회) 부서기: 김희택 목사(제8영도교회) 회록서기: 신인범 목사(제2영도교회) 부회록서기: 이용수 목사(성산교회) 회계: 강충만 장로(괴정제일교회) 부회계: 성경옥 장로(감천제일교회) ▲ 고신 부산노회 ▲동부산노회는 지난 12일(월)과 13일(화) 양일간 부산서면교회에서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 박성배 목사(용호중앙교회) 목사부노회장: 박현석 목사(서향교회) 장로부노회장: 권인관 장로(양정제일교회) 서기: 김승욱 목사(나드림교회) 부서기: 정영락 목사(동항교회) 회록서기: 강필중 목사(광안남교회) 부회록서기: 박진성 목사(성은교회) 회계: 박재길 장로(남천교회) 부회계: 임정식 장로(범내교회) ▲ 고신 동부산노회 ▲중부산노회는 지난 12일(월)과 13일(화) 양일간 장전중앙교회에서 제69회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 김해태 목사(새소망교회) 목사부노회장: 정명운 목사(금사교회) 장로부노회장: 강상균 장로(장전중앙교회) 서기: 박민구 목사(한마음교회) 부서기: 강연만 목사(부산세광교회) 회록서기: 김희상 목사(철마제일교회) 부회록서기: 김성진 목사(동상교회) 회계: 김종대 장로(금사교회) 부회계: 정기준 장로(거제교회) ▲ 고신 중부산 노회 ▲남부산노회는 지난 12일(월)과 13일(화) 양일간 소명교회에서 정기노회를 개최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노회장: 임인호 목사(배산교회) 목사부노회장: 권종오 목사(안락제일교회) 장로부노회장: 서상열 장로(부산소망교회) 서기: 박진용 목사(일신교회) 부서기: 이국희 목사(수영중앙교회) 회록서기: 송동하 목사(재송동교회) 부회록서기: 권기주 목사(한빛교회) 회계: 강윤판 장로(영광교회) 부회계: 최효섭 장로(반여동교회)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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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4
  • 오는 23일 '부산 민주통일 기독인 합동추도예배'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NCCB)는 오는 10월 23일(금) 오후 7시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2015 부산 민주통일 기독인 합동추도예배’를 가진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부산지역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며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한 신앙 선배들의 고난과 사랑의 삶을 추모 계승하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이번 ‘2015 부산 민주통일 기독인 합동추도예배’는 임기윤 목사(부산제일교회), 심응섭 목사(부산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부산중부교회), 김영수 목사(우리교회), 조창섭 목사(한빛교회), 김나야 집사(초읍교회), 전두언 집사(우리교회), 우창웅 장로(부산진교회) 등 8인의 삶을 기억하며 추도하는 자리다. 주최측은 “70,80년 대 초기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에서 기독인들의 사회참여운동은 매우 활발했고 기여도는 매우 컸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과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서서 지역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목사님들과 평신도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해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 그리고 민중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스스로 선택한 분들이다. 지금이 이분들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교회는 부산 시민들과 더불어 부산 기독교 민주열사 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정의와 인권을 지켜 내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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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3
  • [내가 만난 교계 인물1]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척박하고 황무지나 다름없는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330-30번지. 허연 벌판 같은 버스 종점지점 근처에 교회 개척을 시작한 지 35년 만에 대박을 터트린 이름대로 된 명성교회. 교인 재적12만 명, 평균 주일 출석 5~6만명. 새로 건축한 교회 내 한번에 수용 가능한 인구는 1만5천여 명이다. 35년 만에 이런 경이적인 메가 처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까운 팩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김삼환 목사를 단독면담이라 할지, 인터뷰라 할지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상관없는 것은 어째든 단독으로 김 목사를 만나 약 30분가량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에 가깝다. 이런 만남을 주선 한 분은 김삼환 목사의 측근 인사로 알려진 공병의 목사(포항동해큰교회 담임)다. 만남을 주선한 이유도 따로 있었기 때문이지 우연한 계기는 아니다. 2014년 7월 6일자 공 목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내일 서울 명성교회 당회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다음날 일찍 KTX를 타고 갔다. 기차에서 공 목사는 내게 “김 목사를 만나 무슨 얘기를 질문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매우 조심스럽고 부담스런 질문일 것 같아 분위기가 잘못 되면 만나자 말자. 인사만 나누고 일어 설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미리 신문 스크랩 한 장을 복사해 갔다. 당시 복사해 간 신문은 필자가 본지에 쓴 기사였다. 김삼환 목사와 2013년 9월 총회기간인 명성교회 옆에서 아침조찬을 우연히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교회 바로 옆 교인 집 식당이었는데 그 식당은 그야말로 시골 밥상을 연상케 하는 허술하고 10여명이 앉으면 꽉 찰 수 있는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시골에 흔히 보는 시락국 해장국 밥상에 불과한 시골식당 같았다. 몇몇 해외 선교사들과 함께 조찬에 초대 받은 것이다. 그때 김 목사는 주방에 들어가 시락국을 그릇에 담고 있었고 흔히 먹는 공기밥이 아닌 큰 사발 같은 대접에 푸근히 담은 밥그릇에 밥을 담았다. 그리고 시락국과 김치 무우 대충 반찬은 그린 필드가 전부였다. 시골 노인과 같은 분이 국을 떠서 손님에게 나눠 주는 풍경을 담아 야사 역사의 현장에 글로 담아 놓았던 글을 스크랩해서 보여 주면 좋아 할 것이라고 상상하여 첫 만났을 때 문제의 글을 자기의 사진과 함께 보여 주었다. “아!ᆞ 정말 글을 잘 썼네요.” 수수하고 서민적인 글을 본 순간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이때를 놓치면 대기자가 아니다. 나의 센스를 동원해 찬스를 포착했다. “김 목사님, 최근 교회 안에 일어난 시무장로 투신 자살사건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넌지시 물어봤다. 김 목사는 그런 말 나올 줄 알았든지 “그래요 처음으로 신 장로님과 이번 사건을 얘기하는 겁니다. 아무 인터넷 언론이나 교계신문도 애기 나눈 적 없어요”라고 전제를 하고 해명입장을 서서히 입을 여는 것이었다. 문제의 P 장로는 저가 가장 신뢰하는 장로이고 부산에 연고가 있는 경상도 인사로 모든 교회 특별 재정을 모두 맡겨 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 하루 전날에 자살하고 말았으니 도무지 대화할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 난 금액은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고 자신이 사업하다가 집이며 부동산 소유도 다 은행에 잡혀 있었다는 것도 사고 난 다음 알았다는 것이며, 모 인터넷 언론사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무슨 비자금이 있느니 하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면서 교회시무장로들과 모두 얘기한 후 지출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자면 에티오피아에 병원을 설치하는 비용 등은 교회경상비 예산이 아니고 특별계정 특히 교회 건축하다가 남은 금액일부와 김 목사가 외부에 나가 부흥회 등 강사비로 받은 금액 등을 모아놓은 비용인데 “이 금액도 모두 장로들과 의논해서 지출되는 금액이지 무슨 비자금이 어디 있어요?”라고 말했다. 돌아가신 장로를 빨리 만났더라면 안 죽을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쉽다고... 그래서 장례를 직접 김 목사가 가서 다 치러주고 사모권사님과 그의 가족들도 불만 없이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됐다. 그러면서 “이런 해명은 신 장로님한테 처음 얘기하는 것이다. 허물없는 사이이고 또 우리 교단 장로이니까 얘기 하는 것이다”며 매우 다정다감하게 얘기를 풀어 나갔다. 나는 다 듣고 난 뒤 헤어져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오는데 어떻게 할까? 글을 써야하나? 안 써야하나? 기자 근성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뉴스초점에 ‘서울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단독인터뷰’(2014년 7월 7일자)를 기사화하고 말았다. 그런데 야단이 났다. 공병의 목사가 전화로 인터넷 기사 내려 달라고 성화였다. 공 목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결국 글은 내렸지만 이미 인쇄된 신문은 나가고 마는 해프닝이 있었다. 나는 이런 비하인드스토리를 쓸라고 한 것이 아니다. 김 목사의 훈훈하고 농촌 서민의 애환을 풍기는 그의 순박한 인간성과 가끔 설교시간에 믿지 않는 전통적인 유교 안동 가문 김 씨 집안의 얘기부터 시골 교회에 있었던 구수한 ‘전설 따라 삼만리 같은 고향 얘기’가 향수같이 묻어나는 그의 설교 메시지는 누구나 농촌 출신인 교인들과 고향 얘기 나누고 엄마 얘기 하는 집안내력을 담아 들을 수 있을 때 좋아하지 않는 교인 누가 있을까? 그래서 그의 설교 스타일은 교인들의 가슴에 스며들고 감동으로 묻어나는 메시지이기에 아마도 가장 쉽게 설교하고 감동받는 서민적인 목회자라는 점, 어려운 용어 쓰지 않고 구수한 고향 얘기들을 담아 얘기하면서 가끔 찬양을 하는 그의 노래 실력은 일품이자 양념 중에도 A급 메시지일 것이다. (계속)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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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12
  • 어머니들 한자리에 모여 금식하며 기도해
    부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안용운 목사) 여성기도국(국장 조금엽권사)은 지난 10월 8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수영로교회에서 제7회 어머니금식기도회를 개최했다. ‘주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기도회는 3천명 이상의 성도들이 모였다. 점심을 금식하며 오전부터 7시간 동안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 가정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이날 강성혜 전도사(그레이스미션 대표)와 필그림스의 찬양으로 시작해 안용운 목사의 개회선언 및 축사, 이성구 목사(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의 축사, 이규현 목사(부산성시화운동본부 수석부본부장)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설교는 오전에 한홍 목사(새로운교회 담임)가 강사로 나서 메시지를 전했다. 한 목사는 설교에서 “하늘의 기적은 기도를 통해 내게 다운로드 된다. 누가 영적 지도자인가? 교회의 지도자는 목사와 장로가 아닌 스데반과 빌립 집사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그 교회의 지도자다. 가정에서도 부모보다 자녀가 더 많이 기도한다면, 자녀가 그 가정의 영적 지도자이다”며 “성경말씀에서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모두 현재진행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도를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후 설교는 고형원 선교사(부흥한국 공동대표)가 강사로 나서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모인 참석자들은 나라와 민족/ 북한을 위해, 한국교회와 마마클럽을 위해, 가정을 위해, 부산성시화를 위해, 다음세대를 위해, 선교와 열방을 위해 주제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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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9
  • [탐방] ‘손양원기념관’ 드디어 모습 드러내
    - 3가지 테마룸의 나라사랑, 인간사랑, 하늘사랑‘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정신 고스란히 담아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가 이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성지로 거듭난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완공되면서 한국교회 성도들의 발길이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 2014년 4월 착공식을 갖고 시작된 손양원기념관이 완공됐다. 오는 10월 20일(화) 개관식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손양원기념관을 찾았다. 용서와 화해를 상징하는 성지 경남 함안군 손양원 목사의 생가 터(함안군 칠원읍 덕산4길 29-1) 위에 기념관 및 복원된 생가가 우뚝 들어섰다. 3,655㎡(1,100평)의 대지 위에 30㎡(8평)의 복원된 생가와 약 727㎡(220평)의 대지 위에 지상 2층 규모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푸른 숲을 뒤에 둔 기념관은 마치 여느 예술관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손양원기념관의 설계자인 이은석 교수(경희대, 코마건축사사무소)는 손양원 목사를 지칭하는 ‘사랑의 원자탄’을 그대로 표현했다. 원자탄을 형상화해 둥근 모양의 건물에 땅에는 물이 있고, 지붕이 없는 건물 위로 낮에는 해와 밤에는 달이 비추는 빛이 늘 어우러지는 평화를 상징화 했다. ‘나라사랑’ 화이트룸 고난의 길을 표현한 좁은 길을 따라가면 처음 만나는 곳이 화이트룸, ‘나라사랑’이다. 손양원 목사의 애국심을 표현한 곳으로 박시영 목사(기념관건립본부장)는 “경남 함안지역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의 주도자였던 손종일 장로는 손양원 목사의 부친으로,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나라사랑의 의와 아들 손양원 목사의 신앙적인 의가 마주친 곳”이라고 설명했다.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됐던 손양원 목사를 기리기 위해 감옥을 연출했다. ‘인간사랑’ 스톤룸 다음 만나게 되는 곳은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헌신한 손양원 목사를 기린 스톤룸, ‘인간사랑’이다. 손양원 목사는 경남지역 순회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부산 상애원의 한센병 환우들을 섬겼다. 침이 한센병에 효과 있다는 말에 호주선교사 맥켄지 선교사가 입으로 직접 피고름을 빨아내는 모습을 지켜봤다. 맥켄지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손양원 목사 역시 이후 직접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며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 해방 후 출옥성도로서 환호 받는 길을 마다하고 손양원 목사는 한센병 환우들에게 돌아갔다. 손양원 목사에게 병이 전염될까 환자들의 접근을 막았을 때도 손 목사는 “차라리 나도 전염이 되어 더 가까이에서 저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이웃을 향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정신을 기렸다. 스톤룸은 백범 김구 선생과 절친한 사이였던 손양원 목사를 표현했다. 김구 선생은 이화여고 교장으로 손양원 목사를 초빙하려 했으나 목회자인 손 목사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친구였던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을 그대로 본 떠 밀랍인형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하늘사랑’ 레드룸 스톤룸을 나와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곳은 십자가의 사랑을 표현한 레드룸, ‘하늘사랑’이다. 이곳은 온통 붉은 색으로 칠해진 방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용서의 정신을 기렸다. 1948년 10월 이른 바 ‘여순반란사건’으로 손 목사의 두 아들인 손동인, 손동신 형제가 순교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구명운동해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를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부른다. 진정한 용서를 보인 손양원 목사를 소개하는 수묵화 영상이 레드룸 벽면에 상영된다. 2~3분 가량의 영상을 통해 손양원 목사의 기독교적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은 2층 구조로, 구름다리로 지나갈 수 있다. 삶의 집약체 ‘생가’ 복원 3가지의 대표적인 테마룸 외에도 1층에는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 유명 화가인 최미경 작가(전주대 교수)가 그린 7m 규모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단일 기념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림으로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장례식, 마지막 심판 날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손양원 목사의 세 부자에게 면류관이 내려오는 모습,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이 작품이 전시된 상설 갤러리가 자리잡고 있다. 또 2층에는 생가이야기로 손양원 목사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소개했다. 독립운동으로 나라사랑을 가르친 아버지 손종일 장로, 경남성경학교 교사로 애국심과 굳건한 믿음을 가르친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에게 세례를 준 호주선교사 맥크레이 선교사, 상애원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섬긴 맥켄지 선교사를 조명했다. 특히 호주선교사 맥크레이(맹호은) 선교사는 손양원 목사에게 세례를 주고,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학교에서 중퇴한 손 목사를 일본 동경 쓰가모중학교에서 수학하도록 도운 이가 맥크레이 선교사다. 기념관 밖을 나오면 손양원 목사의 생가를 복원해 놨다. (사)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만열 교수는 “손양원 목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오늘날 혈연, 지연, 학연과 이념으로 분열되고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이곳이 용서와 화해, 평화를 상징하는 귀한 성지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사랑과 화해의 정신이 이곳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로 널리 꽃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념관건립본부장 박시영 목사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신앙은 물론 원수까지도 용서한 그의 사랑은 이 시대에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유산으로 삼아야 하며, 믿음의 후대까지 이어가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이 기념관이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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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07
  • 부산YMCA 송진호 신임사무총장
    Q. 지난 9월 부산YMCA 신임사무총장으로 선출되셨다. 소감을 부탁드린다.A. 무거운 마음이다. 다중적인 위기의식 속에서 특별히 부산YMCA라는 기관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내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는 성장통이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이 주신 시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시키신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무게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기구적, 운동적, 사업적, 지역교회와 연결하는 일들이 무거운 주제들이다. 마치 멀미하는 기분이다. Q. 30년 동안 YMCA에서 활동하셨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송 총장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간 활동 등 소개를 부탁드린다. A. 1986년 대구YMCA 청소년부 간사로, 1987년부터 1995년까지 회원활동부 사회교육부 간사 부장으로 있었다. 1991년 ‘평화교육 환경교육으로서 YMCA캠프의 재해석’이라는 논문으로 한국YMCA 정간사 자격을 취득한 이후 세계YMCA연맹 중견간사학교를 수료, 유니온신학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다. 대구YMCA와 한국YMCA전국연맹을 거쳐 울산YMCA사무총장으로 재직했다. 그동안 캠프, 사회교육, 지구시민교육 등 다양한 교육운동영역과 행정과 재정, 목적과 사업연구 등 기구운영영역 및 지역협력 국제개별협력 등 YMCA 사역과 함께 ODA(공적개발원조) 관련 어드보커시 및 글로벌 시민사회 정책개입활동 등을 해왔다. 공정무역거래와 분쟁지역에서의 YMCA의 피스메이킹 사역, 국제평화협력을 위해 주로 현장으로 20년 넘게 다녔고, 뒤에는 정책파트에서 일을 했다. Q. 부산YMCA가 성장통이라고 표현하신 내홍을 겪었다. A. 저는 운동이라는 것이 변화에 대해 목말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부터 작은 변화를 꿈꾸는 것이 운동이고 이것이 조직이 되면 사회운동이라고 본다. 부산YMCA의 내홍이 끝났다고 보지는 않는다. 잠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안에서 마음이 가난해 지는 것을 잃었고, 사업만 남았다. 프로젝트는 열심히 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상상은 없었다. 기관과 기구는 있었지만 운동이 없었던 것이 부산YMCA의 위기였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고 기구를 살리는 일들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우선을 꼽자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 밖에 없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신뢰하는 일이 필요하다. 처음 직원들을 만났을 때 거짓말하지 말자고 말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리가 무엇인지 우리 안에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말하면서 내 안에 평화와 생명이 없다면 거짓말이기에 우리부터 변화되자고 말했다. 자기 성찰적인 모습이 있어야 한다. YMCA의 원형을 쫓아가는 회개운동이 제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산YMCA는 부산의 리더십이 이루어야 한다. 부산YMCA의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제가 할 역할은 그러한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부산의 좋은 청년리더십을 길러내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부산YMCA의 앞으로의 방향,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A. 생명평화운동이다. 오늘날의 시민운동은 생명평화운동이다. 한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생명평화운동이다. 그 시작은 ‘나’다. 나의, 개인의, 우리의 변화를 바탕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한다. 우리 안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고 남들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니요 식’(say no) 시민운동이 아니라 대안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운동이 필요하다. YMCA의 역할은 가장 나중 된 자를 찾는 것이다. 그들은 탈북자나 다문화가정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이 누구일까를 찾고, 우리가 나서서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 하나님께서 그들과도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YMCA의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생명평화운동으로서의 부산YMCA의 지평을 넓혀 가야한다.두 번째로 YMCA의 역할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과 세상을 다시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한다. 한탄만할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런 모델들이 부산에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부산시민을 넘어서는 세계시민, 지구시민운동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책임성을 가진 모델을 찾는 것이다. 책임 있는 지구시민이라는 것은 한 세대를 넘어서 지구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청년들이 세계적인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한다. 네 번째는 대안사회모델이다. 이 4가지가 각각이 아니라 하나다. 젊은이들이 생명평화적인 가치로 부산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제가 해야 할 것이 내적으로는 YMCA의 회복운동이며, 외적으로는 YMCA가 교회와 사회 사이 이 역할들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교계와 YMCA의 협업으로 잘할 수 있고, 신나는 일을 찾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운동을 전개해야한다. 교회와의 파트너십을 회복하고 구체적인 실천들, 그리고 YMCA를 신뢰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다. Q. 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린다.A. 그동안 YMCA가 교만했다. 충분히 이유 있는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YMCA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선교기관으로서 새롭게 서기 위해서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도와주시길 바란다. 애정을 가지시고 잔소리해주시면 YMCA가 제대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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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5-10-07
  • 태권도선교사를 양성하는 고신대 태권도선교학과 이정기 교수
    ▲ 이정기 교수(고신대) 고신대학교 태권도선교학과가 지난 8월 광양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제38회 한국대학태권도연맹회장기 전국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금2, 은2, 동6개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그들을 지도한 이정기 교수는 지도력을 인정받고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다. 학과 개설 7년 만에 이뤄낸 것이다. 처음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태권도선교학과는 10년도 채 되지 않아 태권도로 유명한 타 대학의 우수 선수들과 겨루고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거기에는 이정기 교수의 기도와 지도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세계대학 태권도협회 사무차장이자 한국대학태권도연맹 총무이사로서 활동하는 이정기 교수는 청년시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5년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도했었다. 태권도를 통해 복음의 불꽃을 태웠던 태권도선교사 이정기 교수는 이제 전문인선교사 필요한 때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학과가 세워졌다고 말했다. “전문인 선교사가 필요한 시대다. 학과 개설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다. 15년 후 하나님께서 학과를 세워주셨다. 우리 학과는 태권도를 도구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하는 학과로 세워졌다”고 말했다. 학과 개설 초창기에 적잖은 어려움도 있었다. 고신대학교와 태권도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말들도 많았다. 이정기 교수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더 지도하고 훈련시켰고, 학생들의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학과의 경쟁률이 높아졌고 학부모들의 인식도 변화되고 있다. 이정기 교수는 “전국 유일하게 선교하는 태권도학과다. 전 세계 유례없이 학과 전체가 팀을 나눠 선교사님들을 섬기고 있다. 올해도 7개국 선교지를 섬겼다. 학기 중에는 전국 교회에서 말씀이 담긴 태권도시범으로 예배로 섬기고 있다”면서 “이러한 섬김들을 통해 학생들의 믿음의 견문도 넓혀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정기 교수의 비전은 태권도선교학과 학생들이 오대양육대주로 나가는 믿음과 실력을 겸비한 선교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한손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또 다른 한손에는 도복을 가지고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이 전 세계를 바라보며 복음을 전하는 아이들로 양성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아직 제대로 된 체육관이 없어 이를 두고 기도하고 있다는 이 교수는 많은 교회들과 함께 함으로 꿈을 주는 학과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 우리 학과다. 짧은 역사 속 변두리 학과가 아니라 신실한 청년, 실력 있는 학생들을 위해 많은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15-10-07
  • [이단피해] “가족들이 많이 힘듭니다”
    H군의 가족은 무교 집안으로,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다. H군 역시 학업에도 성실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집안 일을 잘 돕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H군이 대학교 2학년 때인 2014년 10월경부터 학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혹은 헬스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귀가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는 약간의 의심을 가졌으나 평소 H군의 성실함으로 기다려줬다. 그런데 9개월 전 H군의 가방에 있는 계시록을 발견하게 됐고, 신천지에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신천지에서 공부하기 시작한지 1년반이 지났고, 복음방, 센터 수료 후 신천지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이후 H군의 학교 성적은 전과 다르게 떨어졌다. 발각 당시 가족들은 충격을 입고 꾸중과 회유, 동정심 등으로 말렸지만, H군은 가출, 감시, 유기, 감금, 구타 등을 당했다는 표현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가족들은 센터나 교회로 찾아가 헤매기도 했다. 신천지에 빠진 후 H군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침울하고 반항적인 말투에 거칠어진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기다리기로 했다. 직장을 포기한 채 아들에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H군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H군의 부친은 취미활동과 같은 개인 시간을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 이단
    • 신천지회심자
    201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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